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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펑크의 전생자-20화 (20/157)

#20화. 사내다움으로 승부했다

#20화.

발두르 서쪽 외곽.

웨스트 커너 공장단지.

시티에 위치한 모든 공장단지 중 가장 낙후된 공단이자, 하루 임금 몇십 크레딧에 건강을 버려가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드는 곳.

망가져도 고쳐줄 필요가 없는, 기름과 전기 대신 싸구려 칼로리바를 연료 삼아 일하는 이들의 터전이다.

노동자들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각.

사람을 죽이러 온 여섯의 사내가 공단 진입로에 발을 들였다.

웨스트 커너 공장단지는 마치 커다란 미로 같은 구조였다. 등평위는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바뀌는 주변 광경을 눈에 담아두기 바빴다.

바닥을 덮은 뿌연 먼지와 잿가루.

공장단지는 초입부터 다 쓰러져가는 공장들이 마땅한 구획도 없이 난립해있었고, 정체 모를 폐자재와 폐기물이 길거리에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질퍽한 길바닥엔 오물과 플라스틱 폐자재가 발에 채여 부스럭대고, 근처에는 정화조 시설이라도 있는지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부스럭-

“으어헉!”

“조용히 해라.”

“···예. 죄송합니다 형님.”

혹여나 벌집이 될까, 겁을 잔뜩 집어먹은 루돌프놈은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거렸다.

그렇게 공단 진입로에서 20분 정도를 걸어 들어갔을까.

마력으로 후각을 예민하게 강화한 내 발걸음이 뚝 멈추었다. 유독 한 공장의 주위를 비릿한 혈향이 가득 메우고 있었던 탓이다.

유난히 높게 둘러쳐진 담벼락과 철조망.

앞에는 접근 금지를 알리는 방사능 마크와 고전압, 독성물질등의 표지판이 띄엄띄엄 박혀있었다. 흉악한 경고문구 덕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테니, 공장의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굳이 기웃거릴 일이 없는 곳이었다.

“저 안에서 돼지를 잡을 리는 없고.”

어느정도 확신에 찬 내가 물었다.

“돌프야. 아까부터 비린내 안 나더냐?”

“비, 비린내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동산처럼 높게 쌓여있는 폐자재를 밟고 뛰어올랐다. 마법으로 몸을 잠시간 허공에 띄우자, 철조망 너머의 풍경을 상세히 볼 수 있었다.

높은 철조망과 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부지.

그 중간에 네모반듯한 공장이 보였다. 이곳 저곳에서 간헐적으로 빛나는 렌즈들이 공장부지와 바깥을 사각지대 없이 감시하는듯 보였다.

이렇게 낙후된 공장단지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폐쇄 회로 CCTV까지 달 일이 있긴 할까.

강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자, 뒤따라오던 등평위가 눈치를 채곤 말했다.

“대협, 월담을 해서 안으로 진입하시지요.”

“우리가 뭐 부끄러울게 있어서 담을 넘냐. 사람을 좀 죽이러 왔을 뿐이니 흑도의 방식을 따르자.”

“좋습니다.”

촘촘한 철조망과 자물쇠로 잠겨있는 공장의 입구.

내가 그 앞에 가서 당당히 서자, 입구 철조망에 걸린 렌즈가 빠르게 점멸한다.

[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냐? ]

스피커를 통해 누군가 의문을 표했다.

졸다가 막 깨어난 듯, 잠긴 목소리였다. 슬프게도 야간 당직을 맡은 놈이리라.

나는 눈 아프게 번쩍이는 라이트와 당직놈의 질문을 깡그리 무시하곤 내공을 끌어 올렸다.

우지직-

다짜고짜 굳게 잠긴 자물쇠를 잡아 뜯었다. 반쯤 우그러져 덜렁대는 쇳덩이에 뒤따라온 문도 하나가 기함한다.

자물쇠를 뜯어내자, 그에 딸려와 엉킨 철조망들이 말썽이었다. 철조망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 전류에 펑 소리가 나며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압축도를 휘둘러가며 덤불마냥 얽힌 철조망들을 잘라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시끄러운 사이렌이 공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철조망을 걷어내 입구를 연 뒤, 안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출입금지가 쓰여있는 커다란 공장이 부지 중앙에 하나. 가장자리에 직원들의 숙소나 창고로 추정되는 컨테이너 몇 개.

피비린내는 중앙 공장쪽에서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이쯤되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부터 밖으로 대가리 내놓는 놈은 전부 쏴라.”

타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총성이 터진다.

저 멀리, 가장자리에 위치한 컨테이너 앞.

비상 사이렌이 울리자 상황을 확인하러 나온 듯한 놈의 이마에 구멍이 뻥 뚫렸다. 시체가 실 끊긴 인형처럼 풀썩 쓰러진다.

옆을 보니 가늠자에 눈을 붙이고 있는 등평위. 그의 총구를 타고 신선한 화약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젊어서 그런가 수전증은 없군.”

“사내는 원래 오십부터 시작이지요. 젊은 사내에겐 없는 중년의 원숙미(圓熟美)가 엿보일 나이 아닙니까.”

“음, 묵직한 바디감 뭐 그런 건가.”

나는 맞장구를 치며 숨을 한껏 들이켰다.

탓!

이윽고, 경공까지 사용해가며 전속력으로 넓은 부지를 주파한다. 한 번의 호흡에 거리가 수십 미터씩 좁혀졌다. 가장 먼저 중앙에 있는 대형공장을 무력화시킬 생각이었다.

중앙 공장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열린 문 밖으로 특이하게 생긴 휴머노이드 두 기가 뒤뚱대며 튀어나왔다. 놈들이 들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기다란 날붙이였는데 마치 뼈를 발골하는 칼처럼 생겨 사뭇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아보였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내가 도를 휘둘렀다.

콰직-!

외형과 달리 묵직한 압축도가 앞서있던 휴머노이드의 허리춤을 반쯤 파고든다. 잔뜩 조여놓은 볼트 부품이 덧없이 빠지고, 진동하는 쇳덩이의 기분 좋은 울림이 도를 타고 검명처럼 전해진다.

끼익대며 가동을 멈춘 휴머노이드 한 기.

단단히 박힌 도를 비틀어 회수하곤 중앙 공장쪽으로 몸을 던졌다.

쾅! 끼이익.

강하게 발로 차자 그대로 넘어가는 문.

뒤쪽으로 여러 가지 소음들이 겹쳐 들린다.

휴머노이드의 몸체에 납탄 부딪치는 소음과 컨테이너에서 튀어나온 놈들이 본격적으로 총질을 해대는 소리.

뭐, 알아서들 잘하겠지.

나는 삼호문에 뒤처리를 맡기고 전진했다.

문을 차부수고 공장 안쪽으로 진입하니, 정육점과 비슷한 색감의 조명이 켜져있는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2층짜리 교도소를 연상케 하는 구조였다.

———!

와중에 공장 안쪽에도 귀청이 터질듯한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마침 공장 1층 구석에 ‘작업실’ 이라 적힌 몇개의 격실이 바로 시선에 들어왔다.

덜컹.

작업실 하나를 열고 들어가본다.

환풍기 하나가 애처롭게 돌아가는 격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붉은 피딱지가 뒤덮고 있는 작업대가 격실 내에서 묘한 악취와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저 작업대 위에서 몇 명의 인간이 명을 달리했을까.

그리고.

토막난 채로 빨랫줄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저 허벅지와 팔뚝들이 짐승의 것은 아닐테지.

무명인들의 명복을 빌어준 나는 곧바로 공장 천장의 조명과 사이렌을 조준 사격했다.

챙강-! 챙강-!

총성이 연거푸 공장 안을 때리고, 실내를 어둡게나마 밝혀주던 네온 유리관들이 챙그랑대며 산산이 깨져나간다.

내부를 시끄럽게 울리던 사이렌도 꺼져 적당히 적막한 어둠이 찾아오자 오감이 곤두섰다. 커다란 총성에 적응된 청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 아니, 정문을 그냥 부수고 들어왔다니까!

정문 스피커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이 중앙공장을 외로이 지키는 당직 근무자인듯 한 놈이 다급한 목소리로 어딘가에 상황을 전파하고 있다.

그 목소리를 쫓아 조용히 위로 올라간다.

2층의 기다란 복도 끝.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감시카메라 화면이 가득한 방이 보이고, 그 통제실 같은 방에서 한 뚱뚱한 사내가 성질을 내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뒤로 접근한 나는 놈의 두툼한 목덜미를 잡고 지그시 눌렀다.

“컥!”

놀라 발작하며 고개를 치켜드는 놈.

콰앙-! 콰앙-! 콰앙-!

목덜미를 더 강하게 틀어잡곤, 데스크가 박살날 때까지 내려찍는다. 얼굴이 반쯤 뭉개져서야 비로소 놈이 얌전해졌다.

놈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답해라. 너희 대장 어디있어.”

“고, 공장장을 말하는 거냐? 로티스님은 이 시간에 여기 없다. 저녁이 되어야 오실거다.”

“나름 야습이라고 한건데 하필 올빼미형 인간이었나.”

“그게 무슨 헛소리······.”

“로티스란 놈한테 연락해.”

우우우웅—

그때, 밖에서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경치좋은 2층에서 창밖을 내다보자 구불구불한 길을 미친 듯이 내달려오는 사륜 지프차 네 대가 보였다. 연락은 굳이 안 해도 되겠군.

“로티스는 어떻게 생겼지?”

“자, 잘생겼다. 그리고 매일 하얀 수트를 입는다.”

“좋다. 이제 그 멋진 놈한테 뱀처럼 찢어진 눈을 가진 마법사가 쳐들어왔다고 크게 외치는거다. 아주 간단하지?”

“······아, 알겠다.”

뚱뚱한 녀석은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공장장이란 놈이 버럭 화내며 연락을 받자마자 내가 말한 그대로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쓸모를 다한 놈의 통신기를 빼앗아 부수고 도를 뽑았다.

스릉-

“뱀눈 마법사한테 안부 전해라. 네 목소리는 잘 쓰고 있다고.”

푸욱!

가차 없이 몸을 꿰뚫는 압축도에 육중한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놈을 처리한뒤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공장 밖의 전투. 2층 통제실에서는 컨테이너에서 튀어나와 총질을 하는 공장놈들의 면면이 그대로 보였다.

여기 뷰 좋네.

나는 권총을 뽑아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삼호문과 총격전을 벌이던 놈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간다. 그와 거의 동시에, 망가진 철조망 입구를 힘으로 뚫고 들어와 급정거하는 네 대의 지프차.

끼이이이익-!

새하얀 양복을 빼입은 한 남자와 열댓 명의 사내들이 다급히 내리는 걸 보곤, 나도 깨진 창문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땅에 사뿐히 내려선 나는 조용히 포권했다.

“드디어 죽었구나. 잠시였지만 즐거웠다.”

눈 앞에서 한심한 자세로 쓰러져 죽어있는 루돌프를 향해서였다. 격한 총격전 중에 결국 비명횡사 해버렸군.

컨트롤 칩은 회수해서 다시 써야하는데 설마 관자놀이에 총을 맞은 건 아니겠지.

“형님. 저 안 죽었는데요?”

“그러냐.”

루돌프가 서운한 듯 입을 꾹 닫는다.

나는 엎드려있는 녀석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그러면 왜 바닥에 누워있니.”

“초, 총알이 자꾸 날아와서요.”

“그래. 그럼 계속 누워있어라.”

“네.”

쿵!

마지막으로 공장에 진입한 지프차 한 대가 열어뒀던 철조망 문을 반대로 밀어 탈출로를 막아버렸다.

곧, 시커먼 사내들이 줄줄이 내려서고.

고급진 백색 수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덩치큰 무언가를 앞세워 중간으로 걸어 나온다. 냅다 총을 갈겨버릴까 했으나 걸음걸이가 딱딱한 것을 보아하니, 저 덩치는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으리라.

저 수트를 입은 자가 로티스인가.

호위를 받으며 나온 사내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수려한 외모에 헌앙한 풍채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토막내서 장사하는 미친놈만 아니었다면 여인 여럿 울렸을 것이다.

총성의 자리를 이제 정적이 대신했다.

쓰레기처럼 널려있는 공장 직원들의 사체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놈이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모르는 얼굴인데, 누구냐?”

단 한 마디로 장내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본래 사람의 외형이 뛰어나면 범인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법이었다.

아무래도 얼굴로는 내쪽이 한 수 밀려 승부를 보기 어려울 것 같기에, 나만의 특장점인 사내다움으로 말의 포문을 열었다.

“죽은 네 부모가 보낸 저승사자다.”

“······.”

놈의 잘생긴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공장장놈은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는듯, 뒤에 있던 이들에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어떤 한 놈이 무리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자기소개를 한다.

“우리, 이 근방의 낭인 용병들입니다.”

명령을 기다리는 사냥개처럼 땅에 발을 붙이고 있던 십수 명의 사내중 가장 덜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었다.

낭인 용병.

크레딧만 된다면 무슨 의뢰든 받는 자들이다.

“어렵게 가지 맙시다. 그냥 투항해주십쇼.”

녀석이 깍듯하면서도 뻔뻔히 요구해왔다.

누가 듣는다면 어이없다며 코웃음을 치겠지만, 결과가 정해진 싸움에서 서로 다치고 목숨을 잃느니 쉽게쉽게 가자는 당차고 효율적인 요구였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그렇게는 못 하겠다.”

“정 그렇다면 우리 입장도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래 이런 바닥인 거 아시죠?”

“좋다. 내 노력은 한번 해보마.”

“고맙습니-”

타앙—!

사내는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듯 하다가 찰나간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서부극의 베테랑 총잡이를 연상케 하는 속도였다.

그것이 공격신호인 듯, 낭인 용병들의 거센 총격이 뒤따라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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