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너도 한 번 막아봐
#17화.
마피아?
내 생각이지만, 마피아와 메가콥은 서로 다를 바가 없다.
당장 사천당가가 반 바이오를 무너뜨린 일도 얄팍한 명분만 있다면 합법으로 포장되는 세상이다. 명분마저 만들어내면 그만이지.
속은 더러운데 겉으로는 깨끗한 체하는 놈들이나, 더러운걸 숨길 생각조차 없는 놈들이나 그냥 오십보 백보 아니겠는가.
마침 대놓고 더러운 놈들이 보이는군.
- 문신 보니까 맞는것 같은데.
- 하레니오 갱단에 절름발이도 있었나?
- 싸우다가 병신이라도 됐나보지.
과연 친씨아의 경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다리를 절뚝이는 루돌프가 타운을 누빈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변을 수상히 얼쩡대는 놈들이 눈에 띄었다. 사내 세 명이었는데 느껴지는 기세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윽고.
“누, 누구신데 이러세요?”
주변을 슥 둘러본 놈들이 한순간 달려들어 루돌프를 에워쌌다. 개중 한 놈이 루돌프의 목덜미를 붙잡고는 오줌 냄새가 지독할 것만같은 골목으로 끌고 들어간다. 나는 권총에 소음기를 끼우며 그 뒤로 따라붙었다.
“너 하레니오 갱단 새끼 맞지.”
“저,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저도 화나면 한주먹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쪽 다리도 부러지고 싶어?”
“아, 아뇨.”
기운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저중 가장 강한 놈이 등평위의 수준도 못 되었다. 저리 몰려다니며 어깨에 힘줄 정도는 아닌 것 같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놈들이 루돌프를 마구 겁박하기 시작한다.
“왜 선금 받아놓고 잠수를 타고 지랄이야? 너희 때문에 나까지 좆되게 생겼잖아. 응?”
“너희 대장 무스코 어디있어?”
루돌프가 땀을 삐질 흘린다.
“죽었는데요.”
“그 누더기 사이보그 새끼가 죽었다고?”
“주민들도 이미 다 아는 얘기입니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타운에 처음 보는 남자가 나타나서······진짜입니다. 아니면 미쳤다고 잠수를 타겠습니까.”
배우 해도 되겠군.
루돌프의 징징대는 생활 연기에 속은 놈들이 탄식을 내뱉으며 저들끼리 얘기를 주고받았다.
“돌겠네 이거. 소문이 사실 맞네.”
“머저리들, 산공독이랑 몽환향만 먼저 내주면 정크타운을 접수한다니 뭐니 지랄을 떨 때부터 알아봤지.”
“빈손으로 돌아가면 공장장 그 새끼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젠장. 뭐 어떻게 하자고?”
저들끼리 떠드는 시간이 길어진다.
골목 밖에서 조금 더 대화를 엿들어봤지만, 더 이상 알아낼 내용은 없을 듯했다.
“다들 거기서 뭐해! 누굴 괴롭히는 거니.”
나는 골목 입구를 막아선 채로 크게 소리쳤다. 지금은 죽어버린 하레니오 뱀눈의 목소리였다.
“!”
죽은 뱀눈 마법사의 특유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리자, 놈들이 움찔한 얼굴로 뒷춤에 손을 뻗었다.
“다 죽었다며? 이거 그 마법사 목소리잖아.”
“확실해. 나도 몇 번 들어봤다.”
“아 그게요······.”
모두의 눈초리가 루돌프를 향했다.
저들이 그 뱀눈 수준만 됐어도 의심 정도는 했을터. 저리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걸 보면, 심부름꾼이나 다름없는 놈들이다.
“어이, 역시 넌 안 죽었나봐? 하긴 낭인용병일 하던 마법사가 쉽게 죽을리가 없지.”
그 뱀눈 마법사, 용병 출신이었나? 어쩐지 마나 사용법이 마법사치곤 너무 투박하다 싶었다.
나는 얼굴을 가려주는 방진마스크를 믿고선 더욱 뻔뻔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죽은 녀석들을 묻어주고 오는 길이다. 난 갱이 적성에 안맞아서 다시 용병으로 돌아가려고 해. 거기 그 빨간코는 죽여도 좋지만 나는 찾지 말아줘. 그리고 받은 선금은 다 써버렸다. 미안하게 됐어.”
내가 그리 말하자 저들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담배를 태우며 심히 불쾌하다는 티를 낸다. 좁은 골목 위로 하얀 담배연기가 퍼져나간다.
“씨발 무슨 헛소리야? 사정은 빌어먹을 섹스토이한테나 가서 하시고요. 이제와서 이러면 뭐 어쩌자는 거야. 배째라는 거야? 여기 눕혀놓고 째줘?”
놈은 담뱃재를 털며 연신 신경질을 냈다.
죽은 뱀눈이 자신들보다 강한 4레벨 마법사임을 알고 있음에도 저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면, 믿는 뒷배가 있긴 있다는 거로군.
“와보니까 길에 널린게 사람이더라. 내일까지 남은 물량 너희 둘이서라도 시간 맞춰서 가져와.”
“너라면 못 할 것도 없잖아?”
“솔직히 우리도 이러기 싫어.”
셋은 돌아가며 한 마디씩 뱉어댔다.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기라도 죽인줄 알았는지, 더욱 기세등등해진 놈들이 킥킥 웃어댔다.
나는 다시금 세 놈을 향해 고함쳤다.
“지금 으악주는거야? 나 산전수전 다 겪은 스트릿출신 마법사라고. 내 뱀처럼 찢어진 눈을 보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끝까지 지랄하고 있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우리 물건이 어디로 배달되는지 몰라서 그래? 기한 못 맞췄다간 너도 우리도 다 공장장 손에 죽는······.”
“이것들 말이 안 통하네.”
나는 놈의 말을 무시한 채, 골목 끝에 꿇어 앉아있는 루돌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뱉는다.
“저는 살려주십쇼 형님! 기가막히게 절뚝대는 연기 보셨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하레니오 갱단의 쓰레기 같은 계약을 이어받을 이유는 없다. 친씨아가 경고했던 대로 마피아와 엮여있는 귀찮은 놈들 아니던가.
하지만 중심업무지구에서 보고 들었던 마피아는 이런 동네에 장기를 납품하는 한량들이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커다란 조직이었다.
이놈들이 공급하는 사람 장기가 마피아 산하의 팀에 들어가든 말든, 사실 그들은 아무런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이런 놈들은 다른 외곽 슬럼가에도 널려있을 것이고, 마피아의 수뇌부가 신경 쓰기에는 너무도 하찮은 놈들이니까.
나는 그리 결론을 내리고 외쳤다.
“자! 토막친 시신이 얼마나 필요하지?”
“알면서 뭐하러 처물어봐. 열다섯 구다.”
“그럼 토막날 놈 셋은 구했군.”
“?”
스르릉-
압축도의 길고 흰 도신이 칼집에서 유유하게 미끄러져나온다. 나는 묵직한 그립감을 즐길 새도 없이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탓!
단전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공력.
기맥을 타고 올라온 공력이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내력을 잔뜩 머금은 압축도가 섬전처럼 쏘아졌다.
퍼억-!
육중한 파공성을 내며 쏘아진 압축도가 지근거리에 있던 사내의 목을 두부처럼 꿰뚫는다. 졸지에 목이 사라진 몸뚱이가 담뱃재를 털던 모습 그대로 허물어진다.
털썩 쓰러진 목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뭣······!”
그 광경에 나머지 두 놈은 약속이나 한 듯 뒷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단박에 내 머리를 겨눈 총구들이 불을 뿜는다.
총성이 골목에 메아리 치기 전.
콰과곽!
회로에 응집해있던 마나를 한 호흡에 방출하며 전방에 보호막을 생성한다. 마나 보호막을 때린 탄환은 반쯤 파고들다가 힘을 잃고 떨어진다. 하지만 탄환 한 발을 막을 때마다 보호막이 뭉텅이째로 깎여 나간다.
‘뭐지?’
고성능 테크 무기인가.
적어도 싸구려 권총은 아닌게 확실하다.
미리 고농도 마나액을 주입해둘걸 그랬군.
총탄 세례를 막느라 순식간에 과열되어 가는 마나 회로. 하레니오 놈들이 쓰던 구식 무기와는 다르다. 이건 정말 얼마 못 버틴다.
“멈추지 말고 계속 쏴! 저 새끼 저래봐야 4레벨이야. 마력 금방 떨어져!”
“같이 뒤져보자 이 새끼야!”
이대로 가다간 회로가 뻗는다.
나는 보호막의 면적을 줄여나갔다. 보호막의 범위 밖으로 빠져나간 옷자락에 총알구멍이 숭숭 뚫린다.
‘저놈 봐라?’
와중에 골목 바닥에 멀뚱멀뚱 꿇어앉아 있는 루돌프놈이 시선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뒤집어 까며 녀석을 주시했다. 후에 대체 몇 대를 두들겨 패줘야 상처받은 내 마음이 풀릴지 모를 일이다.
“우리 돌프는 지 형님 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을 모양이구나.”
“······!”
루돌프가 그 말에 흠칫하며 손을 떤다.
마치 죽길 바라는 의중을 들킨 듯한 얼굴이다.
사실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아도, 대놓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좀 뒤져라. 부탁이야. 제발 죽어. 이렇듯 거칠고 사내다운 욕설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을것이다.
“그래서 돌프야. 이제 어쩔 거냐?”
*
타앙-! 타앙-!
“돌프야, 슬슬 결정해야지. 나 죽는다.”
“······.”
루돌프, 밴스의 등이 땀으로 축축이 젖는다.
정크타운에서 살며 별별 또라이와 범죄자, 살기를 포기한 막장인생은 수두룩하게 봤지만, 저 인간은 뭐랄까···똘끼의 격 자체가 다르다. 마치 파리잡듯 칼을 던져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거다.
‘자기가 무슨 군용 안드로이드야?’
크레딧이나 섹스를 목적으로 살인을 하거나, 그냥 살인이 주는 흥분감에 미친 놈이거나,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수틀리면 당연하다는 듯 죽여버린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싸이코패스 살인마.
적어도 밴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미친놈.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상황 아니었나? 왜 갑자기 칼은 왜 던져가지고······아무튼 좀 죽었으면 좋겠다.’
“돌프야.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니?”
“예 형님, 그러니까 그게요. 보자······”
밴스의 눈동자가 세차게 굴러간다.
시야로 들어오는 골목의 풍경.
데구르르-
우선 목이 떨어져 따끈한 시체 하나.
얼마나 대단한 마법인지, 총탄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며 무표정으로 서있는 저 괴물과, 총격이 생각보다 데미지가 없는듯 보이자 슬금슬금 살아 나갈 궁리를 하는듯 보이는 공장놈 둘.
이렇게 계속 가면 결국은······.
끝이다. 저 괴물이 또 다 죽일거야.
“계속 쏴! 저 새끼 절대 오래 못버텨!”
“아이고~! 으악 나 죽네.”
‘오래 못버티긴 지랄한다. 망할 새끼들. 마력이 떨어지긴 개뿔 언제 떨어져? 말하는 것만 봐도 존나게 여유있구만······.’
시발. 내가 또 속을줄 알고?
이건 분명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거다. 늦었지만 나중에 덜 두들겨 맞으려면 지금이라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
밴스는 속으로 궁시렁대면서도 착실히 움직였다. 목이 잘린 놈의 몸뚱이를 뒤집어 허리춤의 리볼버를 끄집어낸다.
‘새끼들, 존나게 좋은 총 쓰네.’
리볼버는 한 눈에 봐도 구형 권총과 차원이 다른 무기였다. 근거리 파괴력을 극대화한 테크리볼버. 전용 탄환을 쓴다면 어지간한 방탄복은 그냥 찢어발긴다.
하지만 이 리볼버보다 무서운 것은, 이 강력한 총을 저렇게 쏴대는데도 멀쩡히 버티는 레반이었다.
밴스의 고민은 잠깐이었다.
어디에 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을 마친 그는, 무방비하게 뒤를 내보이고 있는 공장놈을 향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생색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형님! 제가 지금 도와드리겠습니다!”
콰아앙-!
천둥치는 듯한 총성이 일자, 레반과 전투중이던 한 놈의 무릎이 박살나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저놈은 여기서 살아 나간대도 평생 한 다리로 살 것이 분명했다.
“끄어억!”
“저건 또 뭐야 씨팔!”
무릎을 부여잡고 발광하는 한 놈. 그리고 당황한 나머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는 한 놈.
기회를 포착한 레반이 찰나간 거리를 좁힌다.
콰득-!
내력이 가득 실린 권격이 망치처럼 떨어져 발광하는 사내를 찍어 내리자, 바닥과 레반의 주먹 사이에 낑긴 놈이 그대로 절명한다.
골목에 수박 터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이 씨파알!”
딸칵.
이제 혼자가 되어버린 사내는, 탄창이 동난 권총을 던져버리고는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었다.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정글도가 흉흉한 기운을 흘리며 레반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어디, 이것도 막아봐라 개같은 새—!”
그러나.
타캉-! 타캉-! 타캉-!
고요한 세 발의 총성이 먼저 울렸다.
“······?”
곧, 비장하게 달려들던 남자가 허탈한 표정을 짓으며 고개를 떨군다. 세 개의 작은 구멍이 난 복부에서 울컥이며 흘러나오는 피가 골목의 바닥을 흥건히 적셔간다.
소음기 달린 권총을 흔들어보인 레반이 귀를 후비적대며 말했다.
“막았다.”
“······.”
이윽고, 권총을 집어넣은 레반이 아까 던진 압축도를 각목마냥 질질 끌고와 그의 앞에 섰다.
피칠갑이 된 도신(刀身)이 허공을 반으로 가르며 떨어진다.
“너도 한 번 막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