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12화 (12/157)

#12화. 진상을 부리러 온 손님

#12화.

총격전과 전투의 여파로 폐허가 되어버린 패스트푸드점.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고농도 마나액의 여파로 울렁대는 속을 게워낸다.

“형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루돌프야.”

“네.”

“아까 말한 고문 말이다. 날 잡자.”

“그거 없던 일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잠시 미쳤었나봅니다.”

“그럼 너도 저렇게 되는 건 어때.”

“어······.”

매장 바닥에는 루돌프가 철썩같이 믿고 의지하던 갱단 두목놈의 시체, 그리고 얼굴이 처참하게 뭉개진 뱀눈 마법사와 유사 갱스터들의 시신들이 떼거지로 늘어져 있었다.

살처분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어울렸다.

그러게 나는 의와 협을 논하는 무인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본래 목숨이 판돈인 실전에는 협 따위 없는 법이다.

“사, 살려주십쇼.”

“고문도 싫고 죽기도 싫으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형님, 여기 총알 스친 자국 보이세요?”

“보인다.”

“그렇죠? 형님도 보이시죠? 이건 레나님을 보호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얻은 상처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루돌프놈이 식은땀을 줄줄 흘린다.

어차피 칩을 갈아 끼울만한 놈들도 죄다 죽어버렸으니, 이번 한 번 정도는 넘어간다.

“앞으로 잘하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실 나도 고문하기 싫었다. 너같은 놈은 최대한 고통받다가 천천히 죽어야해.”

“······네?”

나는 코를 시원하게 먹는 루돌프를 무시한 채 레나를 찾았다. 엎드려서 몸을 떠는 모습은 마치 껍데기를 깨고 세상 밖에 나오려는 병아리 같았다.

“레반, 나 이제 조금 괜찮아졌어.”

“화기에 토사물이 묻으면 제 값 못받는다.”

“······아까 그런 건 미안해. 그런데 이젠 정말 괜찮다니까.”

감자튀김 트레이를 내려놓은 레나.

그녀는 피로 진창이 된 바닥과 끔찍한 시체들을 목도하더니 또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웁!”

좋은 곳에서 좋은 것만 보고 자란 부잣집 영애에게 이런 살풍경은 아직 무리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 무뎌질 날이 올 테지.

“분류는 다 끝났습니다. 저희 차로 같이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총포점의 그 여인이 보내준 직원들.

화기와 사이버웨어를 포함해 돈이 될 만한 건 깡그리 수거한 직원들이 시체와 짐을 나누어 픽업트럭에 실었다.

곧 털털대는 디젤 엔진 특유의 소음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훅 뿜어져 나왔다. 직원 하나가 뒤를 돌아보며 양해를 구한다.

“구식이라 승차감은 별로입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진동하는 탄내를 맡으며 총포상으로 향한다. 총성과 굉음에 몰려든 거리의 구경꾼들 사이, 이쪽을 우묵한 눈으로 주시하는 변태 거지도 보였다.

저 거지놈은 아직도 안 죽었군.

철컥.

몰려드는 시선에, 어쩐지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아 권총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탕—!

무일푼 구경꾼들이 혼비백산해 뿔뿔이 흩어진다.

*

덜컹.

1번가 총포상 앞에 멈춰 선 픽업트럭.

“왔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제 그 여인이 다가와 악수를 건넨다. 만면에 요염한 미소를 띤 채였다.

“여기 총포점 주인 친씨아야.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손을 잡자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느껴졌다.

“레반이다.”

“그런데 옆에 예쁜 언니는 누구야? 저 이상하게 생긴 하레니오 떨거지는 또 뭐고.”

“일행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 뭐, 사정이 있겠지.”

픽업트럭에 훌쩍 뛰어 올라탄 친씨아는 가져온 총화기들과 두목의 몸뚱이에 붙어있는 사이버웨어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

와중에 몸을 숙일 때마다 헐렁한 옷이 늘어지며 하얀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는 한심한 얼굴로 가슴을 힐긋대는 루돌프를 타박했다.

“보니까 좋냐.”

“네? 저 눈 깔고 있었는데요.”

“그러니.”

“그런데 굉장하긴 하네요.”

“이봐 친씨아! 이 천박한 놈이 말하길, 네 젖이 크다는데 어떻게 해줄까? 이빨을 다 뽑아줄까?”

“난 괜찮아. 걔가 보는 눈은 있네.”

“······.”

원하던 류의 대답은 아니군.

나는 결국 좋다고 계속 힐긋대는 루돌프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찜질 해버렸다. 사실 막연히 놈을 패고 싶었다. 몇 대 때리고 나자 속이 좀 후련해졌다.

이윽고, 가져온 노획품을 다 훑어본 친씨아가 값을 매긴다.

“흐음, 무스코가 쓰던 사이버웨어 파츠들은 상태가 어째 메롱이네. 그런데 그냥 제 값으로 쳐줄게. 어제 가져다준 무기들이랑 요것들까지 해서 십 오만 크레딧. 어때?”

저 고철덩이를 돈 주고 사가겠다고?

하레니오 두목놈의 사이버웨어 파츠는 나와의 전투에서 걸레짝이 되었다. 저건 어디가서 고철값도 받기 힘들다.

“의심하지마. 단골이 될 손님이 오셨는데 사장 재량으로 서비스는 줘야지. 어차피 나 아니면 이만큼 매입해줄 곳도 없다?”

무려 15만 크레딧.

배양육 버거 수천 개를 사서 땅바닥에 내던질 수 있는 금액이자, 연방정부가 있는 오딘 시티까지 운행하는 사설 캐리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돈.

“그럼 그렇게 하지.”

내가 수락하자, 친씨아가 웃으며 물어왔다.

“그런데 하레니오가 관리하던 사업장들은 다 어떻게 할 거야?”

그놈들이 사업장도 가지고 있었나?

“설마 몰랐어? 17구역 펍이나 클럽, 사창가는 전부 거기서 보호세 받아가며 관리했는데······다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면 여기저기서 눈독 들이겠네. 동업자 개념 없는 게 또 이 동네잖아.”

놈들이 관리하던 사업장이라···

아마 보호세를 올려받겠다고 하면 업주들이 반발하겠지. 그때 본보기로 몇 명 죽여패고 말 잘 듣는 놈을 앉혀야겠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예상외의 수입이 또 생기겠군.

그렇게 머릿속으로 교통정리를 마쳤다.

“업장들은 내가 알아서 하지.”

“판매대금은 어떻게 줄까? 계좌 있어?”

“받기 전에 2층을 좀 둘러보고 싶은데.”

비록 뱀눈 마법사가 생각보다 약했다지만, 4레벨급 마법사라는 저 친씨아의 말이 아주 헛소리는 아니었다. 루벤카의 사무실에서 훔쳐온 고농도 마나액이 없었으면 꽤 고전했을거다.

아직 본신의 힘이 일천한 나는, 조금 더 괜찮은 무기에 투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천천히 둘러봐. 많이 사면 좋고~”

총포상의 2층.

그녀의 말마따나 중고품이나 파는 1층과는 전혀 다르다. 네 자릿수 크레딧부터 시작인 물건들답게 고급스러운 조명 아래 전시된 무기들이 날 반기고 있었다.

심지어 군용 수류탄과 최신식 산탄 지뢰가 박스로 쌓여있는 광경은, 처음 올라와본 고객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번에 유탄류는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크레모아까지 박스 채로 쌓아뒀군.”

친씨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이미 예약이 되어있는 물건들이야. 성질 급하신 기존 고객들이 있거든.”

“시체 사냥꾼들인가?”

“응, 거긴 항상 물자가 부족하니까. 그래도 괜찮은 것들은 차고 넘쳐. 아무거나 집어도 후회 안 할 거야.”

그런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불만을 감추고 다시 2층을 둘러봤다.

하지만 수류탄과 산탄 지뢰를 본 뒤에는 딱히 마음에 와닿는 놈이 없었다.

결정이 늦어지자, 지루한 기색을 보이던 친씨아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냥 내가 특급으로만 몇 개 골라서 소개해줄까? 칼이든 총이든 말만 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친씨아가 2층을 돌며 무기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쓸만한 화기와 예기가 줄을 이었다.

“왼쪽부터 자동 유도조준장치가 달린 스마트건. 차세대 군용 정밀스코프. 그리고 저 작은 건 통감조절기라고, 팔에 꽂아두면 느끼는 통증의 정도를 순식간에 낮출 수 있어. 수치를 최대로 낮춰놓으면 총에 맞아도 바늘에 찔린 정도의 통증으로 느낄 수 있는 정도? 효과는 두 시간. 혹시 도검류도 필요하면 말해. 광학위장을 탑재한 나이프나 경량화된 접이식 카타나. 이건 여러번 압축한···아 이건 아니다. 멀쩡한 인간이 쓰라고 만든 건 아니니까······.”

“음.”

수많은 무기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무미건조한 외형의 백색 직도였다.

얼버무리는 친씨아를 향해 물었다.

“방금 그 칼도 파는 건가?”

“흐음, 이 압축도?”

친씨아가 이건 사지 말라는 표정으로 나를 말렸다. 보통 무거운것이 아닌지, 칼을 들어올린 그녀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건 사단법인 태도철장(太刀鐵匠)에서 제작한 합금압축도 넘버 6 시리즈. 소속 장인들이 수작업하는 물건이야. 튼튼하긴 한데 워낙 무겁기로 소문나서 실제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 가격도 7만 크레딧으로 꽤 비싼 편이고. 그냥 다른걸 사는게 어때.”

“또 모르지. 잘 맞을지도.”

쐐액-

나는 압축도를 받아 몇 번 휘둘러 보았다.

‘괜찮군.’

칼날은 얇지만 직접 들어보니 정말 놀랄 정도로 무거웠다. 다만 균형과 무게중심은 훌륭하게 잡혀있었다. 어지간한 총격에 날이 부러지거나 쉽게 중심이 휠 걱정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일천한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검(劍)보다는 힘 잘 받고 투박한 도(刀)가 더 효율적이기도 하다.

“통감 조절기, 그리고 이 칼로 하지.”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후우···.”

나는 땀에 절은 몸으로 운기행공을 마치고 일어났다.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비실했던 몸뚱이에 힘이 붙고 있다.

훌륭한 심법에는 나약한 인간의 근골마저 탈태시키는 신력이 있다. 그러니 신공이라 이름 붙이겠지.

[ 오형검법(忤形劍法)은 대성하면 태산도 벤다. 그리고 무선대지신공(舞仙大地神功)은 빌빌대는 네 근골과 정신을 탈태시켜 줄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익혀라. ]

[ 태산을 썰어요? 거짓말 좀 하지 마십쇼. ]

[ 게으름을 피워 성취가 늦는다면 하루에 두 시진씩 네 얼굴에 주먹질을 하겠다. ]

[ 두 시진? 벌써 노망이 나셨나. ]

[ 지금부터 주먹질을 하겠다. ]

오형검법(忤形劍法) 그리고 무선대지신공(舞仙大地神功).

스승의 전대(前代)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검법과 심법이었다.

내가 세상의 모든 무공을 아는건 아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윗단계의 검법이나 심법은 견식해본 적이 없다.

감히 절세(絶世)를 칭할 수 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정신나간 낭인검객이던 스승을 무림의 십대고수로 만들고 대단한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나란히 서게해준 무공이니까.

매화검신에게 죽었을 때도 단지 그 노괴가 규격 외의 존재였던 것일 뿐. 오형검법이 화산의 무공보다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 성취를 쌓아 가다보면, 네놈같은 모지리도 중원을 오시할 날이 올 거다. 절강 흑도에서 칼밥먹던 삼류 검수도 해낸 일이다. ]

칼밥먹던 삼류 검수가 바로 스승이다.

그의 모습이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곧 뇌리에서 털어냈다.

제정신일 때가 거의 없던 광인의 말씀이시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윗 층으로 향했다.

네온 불빛이 커튼 사이를 뚫고 들어온다.

이곳은 하레니오가 아지트로 쓰던 그 술집.

시체는 루돌프를 시켜 깔끔히 치워 놓았고, 공짜 휴머노이드 바텐더까지 있으니 당분간은 여기서 머무르기로 했다.

2층.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의 디스플레이들이 펼쳐져 있고, 정신없이 변화하는 선을 바라보는 레나가 눈에 들어온다.

온갖 증권과 관련된 차트들.

그녀는 7만 크레딧이나 하는 칼붙이를 구매한 내게 아쉬움을 표했지만, 곧 크레딧을 더 구해다 주겠다는 소리를 듣곤 남은 돈으로 장비를 구비해 증권시장에 뛰어들었다.

나는 피곤한 눈으로 디스플레이에 집중하고 있는 레나에게 물었다.

“잘 돼가?”

“······.”

대답이 없었다.

화면을 슬쩍 확인해본다.

[ 종목명 : B-1 퓨타 밀테크 ]

《 매입 금액 : 32,900C 》

《 평가 금액 : 26,600C 》

《 손익률 : -19.33% 》

[ 종목명 : 로이마르 바이오 ]

《 매입 금액 : 34,900C 》

《 평가 금액 : 20,600C 》

《 손익률 : -41.11% 》

대답이 없던 이유로군.

정말 답이 없었다.

“한탕 치려고 개잡주 탔다가 물렸구나.”

“아, 아니거든! 개잡주 아니거든!”

“너무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거상들이 한꺼번에 물량을 뱉어서 그래. 금방 회복할거라고······!”

콧김을 씩씩대는 레나.

하레니오와의 일은 모두 잊었으려나.

하기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속해서 생기다 보면, 받아들이지 못하던 몸도 결국은 적응을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레나는 적응을 잘 마쳤다.

“레반, 표정이 왜 그래? 아직 매도 안 했으니까 손해본 금액은 없어.”

“그래, 이따 맛있는 거 사 오마.”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이틀간 충분히 쉬었으니, 이 이상 휴식을 취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그간 쌓였던 육신의 피로와 부스터, 마나액의 후유증은 완전히 떨쳐냈다.

“루돌프, 따라와라.”

“형님, 어디 가려고 그러세요?”

“17번가에 장사 잘하고 있나 확인하러.”

“업장들이요? 잘 쉬다가 갑자기 그걸 왜 확인하러 가십니까?”

“그야 이제 내 것이니까.”

그 말에 루돌프놈이 파랗게 질렸다. 놈은 사색이 된 얼굴로 걱정을 늘어놨다.

“하레니에서 관리하던 업장이 한 두 개도 아니고, 개나 소나 콩고물 뜯어 먹으려고 혈안이 돼 있을 겁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다른 놈들이 차지했을걸요. 이 동네라면 무조건입니다.”

“나도 안다.”

“예?”

“하지만 내 업장을 빼앗기면 수입이 적어질 테고, 수입이 적어지면 생활이 궁핍해지겠지. 생활이 궁핍해지면 맛없는 배양육 버거만 처먹어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분이 나빠진 내 주먹이 누구한테 향할 것 같으냐? 바로 너다.”

“······.”

“그리고, 너는 하레니오의 갱단의 ‘적통’ 계승자다. 이제 명분은 우리 쪽에 있군.”

“다 같이 입 맞추고 덤벼오거나 이미 업장을 먹어버렸으면요. 몇 개는 적당히 포기하고 넘겨주는 게 어떨까요?”

“내 돈을 왜 남한테 넘겨주라 마라냐?”

“그게···.”

내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 놈을 두들겨 팼다. 아프다며 콧물을 질질 짜도 멈추지 않았다.

못난 놈 같으니.

혹시 내 스승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군.

“운영하던 사업장, 빠짐없이 안내해라.”

“예.”

“얼굴에 피나는 건 좀 닦고.”

“괜찮습니다. 금방 또 날 텐데요.”

“다리는 왜 절고 그러냐. 마음 아프게.”

“이거요? 모르겠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다리 한 짝이 제 말을 안 듣네요. 총에 맞았나.”

“잘 타일러 봐. 아니면 아예 잘라버리고 사이버웨어를 달아버리든지.”

“그래도 생다리가 낫죠. 노력해보겠습니다.”

“노력하는 모습. 보기 좋다.”

“감사합니다. 형님.”

나는 새로 장만한 압축도를 들고 문을 나섰다. 내 허리에 매달린 권총집을 보던 루돌프놈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가서 또 누굴 죽이시게요?”

그건 나도 알 수 없기에 대답하지 못했다.

*

끼익- 끼이익-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소음.

거리의 양쪽 상가를 잇는 층계 구름다리에서 더러운 톱밥과 먼지들이 끊임없이 떨어진다. 녹슨 경첩은 떨어지기 직전이고 대강 덧대놓은 목판들은 습기에 젖어 썩은지 오래다.

공기도 시티 중심가에 비하면 너무 탁해서 내가 숨을 쉬는 건지 먼지를 퍼마시는 건지 헷갈릴 지경.

나는 머리를 털어내며 걸었다.

사창가와 펍, 클럽이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17번가 거리.

일명 하레니오의 사업장들이 있는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2층 난간에 기대어 있던 놈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비니를 뒤집어쓴 사내였다.

“뭐야! 밴스 아니야? 하레니오는 전부 죽었다고 들었는데!”

루돌프의 얼굴을 아는 기색인듯 했다.

놈과 눈을 마주친 루돌프놈은, 우중충한 목소리로 ‘나도 죽고 싶다’ 며 혼잣말을 뇌까렸다.

“정말 죽고 싶나?”

“제가 가끔 헛소리를 합니다.”

“저 비니쓴 사내는 뭐 하는 놈이냐.”

“17번가에서 상업용 섹스토이들 관리하는 놈입니다. 저랑 술도 마시고 목욕탕도 가고 그랬어요.”

대화를 나누던 중, 저 위에 있던 비니가 다시 고함친다.

“밴스, 여기 분위기 말도 아니다. 어제 뻗대던 새끼들 죄다 두들겨 맞았어.”

“두들겨 맞아? 삼호문 짓이냐?”

“그래. 하레니오 다 뒈졌다고 존나 신나있더라! 솔직히 나도 신났었는데 이제 삼호문에 보호세 내게 생겼다. 하여튼 너도 조심해!”

놈은 주변 눈치를 보며 말하고, 루돌프는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형님. 그렇다는데 어쩔까요?”

“어쩌긴 뭘 어째. 가장 큰 업장부터 안내해라.”

“예.”

그렇게 이동한 곳은 17번가에서 가장 보호세를 많이 내왔다는 대규모 클럽이었다.

화려한 입간판이 눈을 사로잡는다.

『 H. Club - Munioz 』

마약에 중독되어 눈빛이 탁한 덩치가 클럽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루돌프놈이 문지기를 옆으로 밀치며 앞장섰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자욱한 담배 연기와 습기 찬 곰팡이 비린내가 방문자를 맞이한다.

—! —!

개미굴처럼 어둡고 구불대는 통로를 뚫고 들려오는 거칠고 빠른 음악.

흐느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칙칙한 빛의 조명이 클럽 내부를 비춘다.

털퍽 주저앉아 싸구려 담배를 태우거나 약에 취해서 헤실헤실 웃는 이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그들의 옷가지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다.

- 우웨엑!

악취가 풍기는 화장실 앞.

한 놈이 벽에 구역질을 해댄다.

앞서가던 루돌프는 익숙한 광경인듯 침을 퉤 뱉고는, 놈을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더러워 죽겠네. 저렇게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놈들이 시간 때우러 옵니다. 술처먹고 꼴아서 스트리퍼 엉덩이도 주물러 대고요.”

한 마디로 미래없는 자들의 아지트.

그래도 장사는 확실히 잘될 것 같다.

이 동네 주민은 죄다 미래가 없으니까.

클럽의 통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뿌연 연기로 가득찬 스테이지 위에서 헐벗은 채 춤을 추던 여자가 이쪽을 향해 끈적한 시선을 보낸다.

—! —!

번쩍이는 조명과 레이저의 향연 속, 클럽을 찾은 밑바닥 인생들은 헐벗은 스트리퍼의 춤사위를 보며 주둥이에 술을 부어댔다.

“여긴 술값이 싼가?”

“독하고 값싼 화주를 대량으로 들여온 다음에 이것저것 섞어서 양을 불린 겁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해도 남는게 술장사란 말이 있죠.”

정신이 나간 것처럼 흐느적대는 클럽 내의 군상들은, 허리춤에 대놓고 칼과 총을 차고 다녀도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정신놓고 즐기는 것만이 유일한 행복인 것처럼.

“형님. 저쪽 룸에 있을 겁니다.”

루돌프가 복잡한 클럽 내를 두리번거리다 한 곳을 가리킨다.

고개를 돌리자 그나마 깨끗한 룸 안.

담배꽁초와 술병, 도넛 박스로 너저분한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는 두 명이 보였다.

나는 그 옆으로가 털썩 앉았다.

“······? 뭐야 너.”

후줄근한 후드에 찢어진 청바지.

테이블 중앙에 앉은 놈은 황당해 하면서도, 내 옆에 기립한 루돌프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 밴스! 너 이 새끼 살아 있었구나?”

나는 놈들이 반가운 해후를 나누는 동안 도넛 하나를 집어 먹었다. 별로 맛은 없었다.

“돌프야. 이 친구가 여기 사장이냐?”

“예. 맞습니다.”

루돌프가 자기 말에 아무런 반응없이 눈치만 보고 있자, 금세 웃음기를 지운 후드놈은 날 흘겨보며 대꾸했다.

“뭐냐니까 당신은?”

“이제부터 월세 받을 사람.”

“월세? 보호세 말하는 건가?”

후드 대신 옆에 있던 놈이 낄낄댄다.

“하레니오가 나자빠지니까 개나소나 빨대 꽂겠답시고 기어 오는구나. 곧 우리 매장에도 행차하시겠어.”

내가 답을 원하는 눈으로 루돌프를 바라보니, 자기도 저 놈은 누군지 잘 모른다는 표정이다.

뭐, 앞으로 따박따박 월세를 낼 임차인중 하나겠지. 태도가 불량하더라도 상냥하게 대해줘야하지 않겠나.

“누구시길래 내 말을 끊을까.”

“너야 말로 누군데 보호세 타령이야? 니가 뭐 밴스 애비라도 되는···.”

쾅-!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통수를 잡아 테이블 위에 꽂았다. 도넛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폭력이 일상적인 대화 수단인 동네.

즉, 나는 지금 놈과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방금 머리를 처박은 놈은 혼절해버린 관계로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수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나랑 더 대화하고 싶은 사람.”

엎어진 놈의 코에서 피가 쏟아지며 테이블로 번져나갔다. 후드놈은 그제야 자세를 공손히 했다.

“······저 친구 힘 깨나 쓰는데, 보기보다 화끈하신 분이셨군요.”

피를 보고 나서 급변한 태도.

저래봬도 여기서 가장 규모있는 업장을 운영하는 사내이니, 존댓말 정도는 써주기로 했다.

“사장님.”

“아이고! 이제 말씀 편하게하세요.”

“요즘 벌이는 좀 어때요? 힘든 시기잖습니까.”

“아. 예. 그게 요새는 삼호문놈들 때문에 장사가 통 시원찮습니다. 계속 방해를 해가지고.”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하레니오가 없어졌으니까 이제부터 지들쪽에 상납을 하라고 하더군요.”

뒷골목 세계가 대부분 이렇다.

누군가의 빈자리는 새로운 놈들이 나타나 채운다. 그리고 힘 없는 대다수는 그 순환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셨죠?”

“생각해보겠다고 했죠.”

의리라곤 쥐뿔도 없는 임차인이었군.

“이보세요. 사장님. 여기 하레니오 갱단의 적법한 후계자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거 안보여?”

“······누구? 아 밴스 이놈이요? 얘한테 어떤 업주들이 보호세를 내겠습니까.”

후드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워낙에 등신이니, 우기는 것도 한계가 있군.

우기기를 포기한 내가 루돌프 놈에게 물었다.

“삼호문은 뭐하는 놈들이냐.”

“그게···비무 도박장, 동양식 기루, 객점, 음식점 같은 곳들을 운영하는 애들입니다. 본거지는 25번가에 있어요.”

아주 전형적인 흑도 세계의 집단.

하여간 하레니오와 결이 비슷한 놈들이라는 얘기다.

“우리랑 겁나게 많이 싸웠죠. 무스코가 뱀눈이 조만간 삼호문을 칠거라고 했었는데······.”

그 전에 나와 싸우다 전멸해버렸고.

“거기 두목이 무인이냐?”

“예. 솔직히 무공 쓰는건 별로 못봤는데 총은 확실하게 쏩니다.”

친씨아가 말한 5개의 집단 중 한곳이자, 수장이 무인인 슬럼가의 흑도 무리.

주제에 동양식 기루까지 운영하고···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기루에 기녀들도 있냐?”

“섹스토이가 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인데 꽤 반반합니다.”

“꽤 반반해?”

“예. 지나가면서 몇 번 슬쩍 봤는데-”

“가자. 안내해라.”

“······삼호문 기루요? 저도 같이요?”

“그래. 눈 뜨고 업장을 빼앗길 처지니, 속이 쓰려서 술이나 한잔해야겠어. 삼호문의 주인과 월세에 관한 얘기도 도란도란 나누고.”

“그건 안됩니다. 가면 저 죽어요.”

내가 부정적인 대답에 눈살을 팍 찌푸리자, 루돌프가 황급히 변명한다.

“형님은 무슨 일이 터져도 어떻게든 하시겠지만, 저는 괜히 휘말렸다가 총이나 칼 맞으면 바로 죽잖아요.”

“그렇겠네.”

“그쵸? 이제 제 마음을 아시겠어요?”

“모른다.”

“형님, 이 바닥이요. 다짜고짜 찾아가서 업장 내놓으란 얘기를 꺼내면 싫어하는? 꺼려하는? 아무튼 삼호문쪽에서 굉장히 불쾌해할 가능성이 있어요. 총도 막 쏘고.”

“그쪽 업장이 아닌데 불쾌할 게 뭐가 있어. 내가 억지라도 부리고 있다는 얘기니.”

루돌프놈이 고집스럽게 항변했다.

“에, 그건 아니지만 집단 간의 관계라는 게 아무래도 또,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에. 이틀 전처럼 너무 막나가시면 삼호문 쪽에서도 불편한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고···.”

또 쓸데없이 쫑알대는군.

시종 주제에 자아가 왜이리 강한지.

“대체 뭐가 그리 불편하다더냐. 네 다리보다 더 불편해?”

“···제 다리요?”

뻐억!

나는 곧장 루돌프의 다리를 걷어 차 넘어뜨리곤, 종아리를 마구 밟았다.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이제 정말로 다리가 불편해진 것이다.

“추, 출발하시죠 형님. 안내하겠습니다.”

발길질을 잠시 멈추자, 벌떡 일어난 루돌프놈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곤 굽신댄다.

하여간 간신배 같은 녀석.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먹는구나.”

나는 눈치를 되찾은 놈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섬세한 사내답게 걱정도 잊지 않았다.

“저런, 너 다리가 왜 그러냐?”

나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림때도 허구헌 날 죽도록 맞으면서 꾸역꾸역 버티던 놈이 있었는데, 떠올려보니 이놈과 꽤나 닮았다.

참 재미있는 사내였는데 말이지.

“돌프야. 네 얼굴을 보면 옛날에 내 스승한테 매일 두들겨 맞던 한심한 놈이 겹쳐 보여. 그래서 더 정이 간다.”

“설마 그게 형님이십니까.”

“아니, 그 놈은 결국 맞다가 죽었다. 난 버티고 버텨서 악착같이 살아남았고.”

“······네?”

“너도 못 버티면 그놈처럼 죽는거야.”

“······.”

루돌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곧, 비장한 눈빛으로 침을 삼키는 놈. 하지만 나는 그 꿀렁임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 놈의 목젖을 강하게 때렸다.

“컥!”

“빨리 가자.”

*

위로 올려다보이는 화려한 전각.

삼호문에서 운영한다는 동양식 기루다.

저게 정크타운 25번가의 랜드마크라던가?

『 三虎樓 』

“삼호루?”

높이를 보면 적어도 4층은 되겠군.

기루의 외벽엔 얇은 디스플레이 판을 달아 하늘하늘 흩날리는 흰 꽃을 재생시켜놓았고, 전체적으로 역한 슬럼가의 냄새와는 다르게 괜찮은 주향이 난다.

어떤 귀한놈들을 손님으로 받는 건지, 삼류 흑도무리 치고는 분위기를 내는데 꽤 공을 들였다.

아마 다른 소도시에서 원정 여흥을 즐기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곳이지 싶은데···.

“두 분이십니까?”

“그래.”

기루의 정문에 당도하자, 문지기 역할을 하는 휴머노이드가 다가와 포권 자세를 취했다.

강호의 예를 익힌 휴머노이드다.

“혹, 흥을 돋울 기녀가 필요하진 않으십니까?”

“기녀?”

“아름다운 기녀와 술을 기울이시려거든 선금으로 일인당 100 크레딧을 지불하시면 됩니다.”

“선금도 내야 하나?”

“저희 삼호루의 원칙입니다. 어느 층으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기루에서 가장 풍광좋은 곳.”

“그렇다면 4층입니다. 타운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술을 즐기시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4층의 입장가는 400 크레딧입니다.”

선금 계산을 마치자 중원식 복장을 한 기루직원이 우릴 4층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4층 방 앞에 도착한 그때였다.

툭!

“에이 씨발. 뭐야?”

옆 방에서 복도로 나오다 루돌프놈과 어깨를 부딪친 한 남자가 상스러운 욕설을 뱉는다.

술기운이 잔뜩 올라 벌개진 얼굴.

놈이 자기 가슴팍을 툭툭 치며 난데없이 시비를 걸어온다.

“뭘 꼬나 봐. 이거 안 보여?”

특별한 뭔가가 있나 해서 자세히 들여다봤으나, 옷 아래로 볼록 튀어나온 젖꼭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몹시 더러워졌다.

“오라버니. 밖에서 그러지 마시고 어서 들어오세요~”

옆 방에서 다급히 따라나온 기녀 하나가 싸움을 말리려는 듯, 놈의 팔을 슬며시 붙잡는다.

그러나 기녀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놈이 기녀의 머리채를 잡아 흔든다.

“이게 미쳤나 감히 내가 말하는데······.”

“꺄악! 이, 이러지 마세요!”

외형을 보니 하급 안드로이드 같은데···

역시 기루 같은 곳에 오면 저런 몹쓸 장면도 있어 줘야지.

우리는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기녀를 내버려두곤 안내받은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술상과 함께 들어와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기녀 둘. 화려한 의복으로 몸을 가리고 있으나 인간은 아니다.

“설향이에요.”

“화향이에요.”

외모도 이름도 상당히 평범하다.

“둘 다 안드로이드인가?”

“네. 손님께서 아무리 가슴을 거칠게 주물러도 끄떡없답니다. 한번 쥐어 보시겠어요?”

“괜찮다.”

“부끄러워하시긴······.”

나온 안주를 몇 개 집어먹고 술도 한잔 걸친다.

무림의 화주를 떠올리게 하는 향과 맛이라 그런가 독해도 그리 나쁘진 않다.

나는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정크타운의 야경을 내려다보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안드로이드 기녀들에게 물었다.

“궁금한게 있다.”

“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여태까지 기루에서 가장 진상을 심하게 부렸던 놈은 무슨 짓을 했지?”

“음, 워낙 많았지만 굳이 꼽자면요.”

몇 달 전, 한 손님이 술에 취해 직원을 죽이고 도망쳤다가 결국 삼호문주에게 잡혀 죽었다는 말을 온갖 미사여구까지 붙여가며 늘어놓는 기녀 설향.

기억장치의 성능이 괜찮은지, 바로 앞에서 본 일처럼 생생하게 설명한다.

“그래. 누구 한놈 죽여버리고 진상을 부리면 삼호문주가 허겁지겁 튀어온다고?”

“네, 제 말 뜻은 그게 아니었지만요. 아마도 그렇겠죠?”

떨떠름한 반응을 보아하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좋아, 술도 시원하게 한 잔 걸쳤겠다. 누구 하나 반 죽여버릴 놈이 없을까?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다 손뼉을 탁 쳤다.

다행히도 곧바로 떠오르는 놈이 있지 않은가.

“돌프야.”

“네.”

“옆방 가서 아까 그놈 끌고 와라.”

“맡겨만 주십쇼.”

마침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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