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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펑크의 전생자-11화 (11/157)

#11화. 마법사 하기 좋은 세상

#11화.

“무승부? 지랄.”

회심의 무승부 제안을 가차 없이 내친 두목놈은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튀김기의 감자튀김을 양껏 집어 먹었다.

“맛있군. 더럽게 비싼 산공독을 넣은 감자튀김이라 그런가.”

산공독(散功毒).

내공을 흩뜨리거나 기맥을 막는 독. 무공의 경지가 높으면 쉽게 파훼하겠지만, 쥐톨만한 내 공력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어쩐지 단전이 이상하게 잠잠하더라니.

감자튀김 트레이에 뿌려놓은게 산공독이었나?

“나는 그냥 시즈닝인줄 알았지.”

“큭큭.”

공력 사용은 당분간 불가하다.

이러면···놈들과 타협할 수밖에 없겠지.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곤 떳떳하게 고함쳤다.

“그때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그래서 뭐 어쩌란 거냐.”

“게다가 난 나이가 어려서 아직 철도 덜 들었다. 사내답게 한 번 넘어가준다면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

“어떤 역겨운 동네에서 왔는지 몰라도, 적어도 정크타운 얘기는 아니군. 취했든 애새끼든 사람을 일곱이나 쏴 죽였으면 대가는 치러야지. 안 그러냐?”

“······!”

사람을 몇 명씩이나 쏴 죽였다는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레나의 동공이 마구 흔들린다.

충실한 십년지기 시종이었던 레반이 사실은 끔찍한 연쇄 살인마? 라는 식의,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빛.

이 질문은 인정하지 말아야겠다.

“이젠 없던 일까지 지어내는군. 역시 무시무시한 갱스터.”

우적-

이왕 다시 앉은 김에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어본다.

곧,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모래 씹는 식감에 누린내 나는 육즙, 찌든 내 가득하고 기름진 패티. 최대한 멀리 집어던지고 싶은 신기한 맛이다.

튀겼는데도 맛이 이따위일 줄이야.

“괜히 돈까지 줘가면서 튀겨 달라고 했나.”

그렇게 아쉽다는 듯 말하니, 병풍처럼 서 있던 갱단원 하나가 딴지를 걸었다.

“킥, 호구새끼. 튀겨주는 건 원래 공짜인데.”

세상에, 참 장사수완이 좋은 꼬맹이다.

들고 있던 버거를 땅바닥에 내던진 나는, 산공독에 절은 감자튀김 트레이 위. 아직도 고개를 처박곤 침을 질질 흘리는 루돌프놈을 노려봤다.

“루돌프야. 햄버거는 원래 공짜로 튀겨준다고 왜 말 안 했니.”

“맛없으니까 다른 데 가자고 했잖아?”

이런 싸가지 없는 놈.

“했잖아는 반말이잖아.”

“뭐 어쩌라고. 너 몇 살이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다음? 다음이 있겠냐? 넌 끝났어. 여기서 뒈지는 거라고! 알어? 온갖 센 척은 다 하더니 아침부터 뭔 놈의 햄버거를 잡수시겠다고 꾸~득꾸득 기어 나왔어? 앙?”

놈이 신나서 삿대질을 해댄다.

사람 열받게 하는 재주는 확실히 있군.

침까지 튀어가며 열심히 욕을 뱉는 루돌프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풉, 뭐라는거야 새끼가.”

“한 번만 더 욕해대면, 먼저 네 손톱을 전부 뽑을 거다. 다음은 손가락 마디마디. 그것도 다 뽑아내면 열심히 지혈해주고. 발가락으로 넘어가지. 다 뽑으면 시체들 밥으로 내던져주마. 이빨 무른 놈들로 잘 골라서.”

“또 허세 부리네. 그런다고 내가-”

“못할 것 같나.”

“······.”

파르르 떨리는 루돌프의 안면근육.

와중에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할 만큼의 눈치는 남아있다.

까부는 건 아직 덜 맞아서 그렇다. 계속 맞다 보면 언젠간 착해진다. 예전의 누구처럼.

- 레반.

레나가 입모양을 숨겨가며 조용히 속닥거린다.

- 어, 어떻게 하면 돼? 나도 싸울까?

“괜찮다.”

괜히 귀하신 몸에 총구멍 뚫릴라.

나는 남아있던 콜라를 해치우고 일어났다.

아침 식사는 아쉽지만 이걸로 끝이다.

“독이 단전에 잘 받는 체질인가봐. 아니면 생각보다 경지가 허접한 건가?”

내가 식사를 끝내자, 아까 전부터 신경 쓰이던 뱀눈 마법사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온다.

이 매장 내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

비꼬는 뱀눈 놈의 말에 입을 대강 닦으며 대꾸했다.

“너는 눈매 교정부터 해야겠군.”

“곧 죽여달라고 빌어야 할 놈이 입은 살았네. 주둥이로만 의협을 논하는 무인다워.”

“무인?”

“일부러 온갖 군데에 총질해서 숨기면 모를 줄 알았냐? 말 해봐. 몇 레벨 무인이야? 삼류지?”

놈이 도마뱀마냥 혓바닥을 날름댄다.

타운에서 보기힘든 마법사라 그런가? 콘셉트를 희한하게도 잡았다.

대답없이 돌연, 손을 들어 올렸다.

“뱀눈, 내가 마법사일 가능성은 없나?”

슥—

그리 대단치는 않은 움직임.

손가락 끝으로 눈앞의 허공을 반듯하게, 천천히 그어간다.

매장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천천히.

“뭐하냐?”

조소하면서도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가는 뱀눈만 빼고는 다들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손 내려 인마. 잘라 버리기 전에.”

“왜 이리 예민하지? 그냥 장난이다.”

뱀눈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긋는다.

왼쪽 끝에서부터 오른쪽 끝까지 길게.

그 간단한 동작을 끝낸 나의 손가락이 뚝 멈추자, 눈가를 더욱 좁힌 뱀눈이 감자튀김을 주워 먹고 있는 두목을 불렀다.

“무스코.”

“왜?”

“저놈 뭔가 느낌이 안 좋아. 그냥 지금 죽이자.”

무스코라 불린 두목놈은 황당한 얼굴로 성을 냈다.

“웬 개짖는 소리야? 절대 쉽게는 못 보내주지. 남자 밝히는 놈들 찾아서 며칠 굴리다가 공장으로 보낼 거다. 저 옆에 붙어있는 년도 똑같이 해줘야 직성이 풀리겠어.”

나는 잠시 귀를 닫고 집중했다.

마법을 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4회차, 라아기스의 마법사들은 흔히 영창으로 대변되는 시동어나 일련의 동작, 물체를 매개체삼아 마법을 발현시키곤 했다.

나는 그중 ‘동작’ 을 통한 마법의 발현에도 꽤나 능통했었고, 방금 전 내가 한 일련의 동작은 사실상······

“······!?”

공격 준비를 끝냈다는 말과도 같았다.

내 심장 주위로 갑작스럽게 응집하는 마력을 느낀 뱀눈이 화들짝 놀라며 이쪽을 돌아본다.

나는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대응했다.

“오해다. 난 무인이거든.”

“이런 미친···.”

“눈 뜨고 잘 봐.”

“전부 다 대가리 숙여!!!”

이윽고.

심상치 않은 마력의 움직임을 눈치챈 놈이 보호 마법을 전개하는 것과 동시에, 허공을 그었던 내 손가락 끝에서 손톱 크기의 마력 투사체 수십 개가 쏘아진다.

“끅!”

“아악! 내 눈!”

“제기랄, 앞이 안보여!”

4회차. 왕국과 제국의 국경선.

왕국의 병사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갑주를 씌운 군마를 타고 돌진해오는 강력한 기사였다.

흉포한 기사의 투기(鬪氣)에 어지간한 마법은 근처도 못 가고 흩어져 버리니, 결국 기사를 저지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마력 투사체를 쪼개 철갑주 아래로 드러난 군마의 두 눈을 노리는 것.

위력은 벌레나 죽일 정도라지만, 짐승의 눈알을 긁어 혼란스럽게 하는 정도로는 차고 넘치지.

“병신같이 얼타지 말고 안 보이는 놈은 뒤로 빠져!”

격분하며 크게 소리치는 뱀눈.

그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런 씨발, 갈겨버려!

“······!?”

—그냥 쏴 갈겨! 내가 보호해준다!

내 입에서도 뱀눈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매장을 쩌렁쩌렁 울린다.

최전선에서 싸웠던 내 잔재주 중 하나.

『 마나 공명 』

인간의 음성이 내는 진동은 마나입자를 타고 흐른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진짜 음성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눈 한번 깜빡이는 찰나의 시간.

타앙-!

나는 순식간에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 아무래도 시작을 끊어줘야 반응이 오겠지.

타앙-!

“으억 뭐야!”

근접한 거리에서 총성이 들리자마자 레나를 온몸으로 보호하며 바닥에 몸을 던지는 루돌프놈.

컨트롤 칩이 정상적으로 자리 잡았군.

긴급한 상황임을 감지하고 놈의 행동을 강제하고 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레나는 지키려 들 것이다.

- 쏘, 쏘라고? 눈이 안보이는데?

- 보호해준다잖아. 그냥 쏴 갈겨!

철컥. 철컥. 철컥.

듣기 좋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나는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편승해 신나게 소리쳤다. 물론, 뱀눈 놈의 목소리로.

—괜찮으니까 그냥 쏴! 피떡으로 만들어!

그에 진짜 뱀눈은 대경실색해 총을 내리라며 고함을 쳐보지만.

인간의 음성은 탄환보다 느리고, 밑바닥 삼류들의 동료애는 짐승의 생존본능보다도 한참 뒷전이다.

총든 장님은 적아를 가리지 않는법.

——!!!

찰나간, 귀를 멀게 만드는 수십 발의 총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탄환 세례. 총구들이 시뻘건 불길을 뿜는다.

나는 일이 벌어짐과 동시에 하나의 마법을 구현했다.

『 몰타의 껍질 』

몰타 왕국 마탑의 공용마법.

전신을 밀착해 둘러싸는 마나 보호막. 맞으면 많이 아프기야 하겠지만, 총알 몇 발에 죽을 일은 없다.

퍼억···! 퍼어억···!

총격전에 아비규환으로 변해가는 내부.

지근거리에서 눈먼 총탄에 난사당한 놈의 전신에 빨간 점들이 피어나더니, 피가 울컥 뿜어져 나온다.

천천히 쓰러지던 놈의 총구가 또 다른 단원들이 있는 곳을 주우욱 긁어버리고, 패닉에 빠진 채 계속 방아쇠만 당겨대고 있는 놈들을 향해 내 권총도 불을 뿜는다.

탕-! 탕-!

이윽고.

멍한 정적이 흐르는 매장 안.

1분도 채 흐르지 않았으나 멀쩡하게 선 인간은 단 셋.

방어 마법이 잠깐 흩어진 사이 도탄을 맞고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뱀눈,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카운터에 몸을 숨긴 거한. 그리고 나.

정적을 먼저 깬 건 뱀눈이었다.

“······말도 안 돼. 분명 내공을 사용한 흔적이었다. 그런데 마법사라고?”

그리고 그 다음은, 내가 이어받았다.

“믿어주지 않아서 슬프더군.”

푹!

고농도 마나액 주입기를 꺼내 가슴 언저리에 찔러 주입하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농도의 마나가 회로를 잠식해 나가며 황홀할 정도의 전능감이 전신을 난타한다.

이거, 마법사 하기 좋은 세상 맞네.

내가 히죽 웃으며 몸을 한번 떨자, 멍한 얼굴로 서있던 두목이 격하게 흥분하며 고성을 내질렀다.

“···이런 좆같은 새끼가!”

육체의 절반 이상을 잠식한 사이버웨어 파츠들이 우득거리며 서슬 퍼런 칼날과 총구를 드러내고.

“씨발, 마나액 주입기도 가지고 있었어. 우릴 가지고 논 건가······? 몇 레벨이지? 4레벨? 아니면···5레벨?”

뱀눈은 아직 정신이 나간 듯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리고 있다. 작은 눈은 한계까지 부릅떠진 채로 다시 좁아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나는 이제야 놈들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다.

*

중심가 총포상.

여느 때와 다름없어야 할 아침, 친씨아 블랑키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것을 심란한 눈으로 바라본다.

피와 기름이 엉겨 붙어있는 각종 총기.

친씨아가 제법 놀란 얼굴로 턱을 괸다.

“허세는 아니었네? 미친놈 맞구나.”

뒤에있던 직원이 조용히 덧붙인다.

“단신으로 17번가 아지트를 쓸어버렸습니다.”

친씨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렇게 나댈 정도면 보통내기는 아니란 얘기인데, 중고 총기까지 주워와서 알뜰히 팔아치우고······뭐 카지노에서 놀다가 전재산이라도 날렸나?

그러던 그때였다.

——!!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총성과 굉음이 연속해서 거리를 울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친씨아의 네트워크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사장님. 15번가 사거리 리얼버거 매장에서 총격전이 일어났습니다. ]

“들었어.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아봐.”

[ 그게······ ]

[ 하레니오의 두목 무스코와 위험인물로 분류해두었던 마법사 포함, 하레니오 갱단원 모두 사망했습니다. ]

“······정말?”

지금 제대로 들은게 맞나?

친씨아는 믿기 힘들다는 어투로 되물었다.

“다 죽었어? 확실해?”

[ 예. 총포상에 들렀던 그자의 소행입니다. 그리고······무스코의 사이버웨어와 노획한 총화기의 판매를 원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

정크타운의 일부를 지배하던 무장집단이 하루 아침에 황망히 사라졌다. 그것도 햄버거 매장에서. 고작 한 명에 의해.

그렇다면···더할 나위 없이 최고다.

보통내기는 아님이 분명하거니와, 코 끝으로 살살 풍겨오는 달달한 크레딧의 냄새.

“어쩌면 괜찮은 단골이 생길 것 같네. 당분간 심심하진 않겠다.”

친씨아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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