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10화 (10/157)

#10화. 세상은 만만치 않다

#10화.

마법사와 무인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우선 무인은 단전에 내공을 쌓아두고, 기경팔맥을 통해 공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내공을 쌓기가 어디 쉬운가?

제 아무리 대단한 내공심법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정순한 내공을 단전에 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선대지신공(舞仙大地神功)이라는 절세심법을 익힌 나라도, 하루 이틀 운공을 해봐야 당장 얻을 수 있는 내공은 보잘것없다는 뜻.

어디 천년 하수오나 설삼, 공청석유 같은 영약 혹은 이 세계의 영약인 ‘에센스’를 구해 먹는게 아닌 이상은 말이다.

그러니, 당장은 마나회로 제작을 우선한다. 회로 하나만 있어도 하위계 마법 정도는 우습게 사용할 수 있을테니까.

이미 5개의 마나회로를 만들어 봤던 내게는 어렵지 않은 과정.

구태여 오래 생각지 않아도 된다.

【 아이야, 너는 그 경이로운 재능을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

전생의 제국 대마법사가 인정했던 그 재능, 이 세상에서라도 열심히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

이튿날 아침까지 꼬박 이어진 마나회로 제작.

어느 순간.

막혀있던 가슴께가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과 함께, 심장을 중심축 삼아 대회전 하는 마나 회로 ‘두 개’ 가 자신의 탄생을 알리듯 주변의 마나 입자를 마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두 개?”

흡수된 마나입자가 마법의 발현과 함께 방출될 때만을 기다리며 고고하게 흐른다.

두 개의 마나 회로에서.

“이건 나도 예상 못했는데.”

처음 한 개를 제작하는 건 예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정신력과 집중력을 극한까지 요구하는 일이지만, 경험이 있던 만큼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를 이미 엮었음에도 내겐 정신의 여력이 충분히 남아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두 번째 회로 제작에도 도전했는데 꽤나 수월하게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하룻밤 사이에 두 개의 고리를 엮어버렸다.

임독양맥이 뚫려 상단전이 열린 것이 마나 회로를 제작하는데도 도움을 준건가?

그렇다면 잃어버린 10년이 제 할 일을 했다.

어지간한 마법사가 이 모습을 봤다면 아마 거품 물고 쓰러졌겠지. 전생의 나라도 부럽다며 거품을 물었을거다.

물론, 초창기의 나약한 회로인 터라 레벨 4에는 못 미치는 수준.

아무튼 다음 세 번째 마나 회로를 만들기 위해선 갓 자리잡은 지금의 회로들을 끝없이 사용하며 길을 들여야 한다.

명인급의 대장장이가 칼 한 자루를 수천 번 담금질하듯, 중심축이 될 첫 번째와 두 번째 회로를 견고하게 다져둬야만 이후에 탄생할 마나회로도 흔들리지 않는다.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면 언젠가 모래성처럼 뒤틀려 무너져버릴 날이 올 테니까.

그런데 뭐···

마법 발현을 서포팅해주는 인공지능이나 일회용 마법 메모리칩, 마법 수식 고속 연산장치, 고농도 마나액 주입기 따위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그딴 걸 누가 신경 쓰기나 할까?

모르겠고, 이제 배나 좀 채워야겠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졸고 있는 루돌프를 강하게 걷어찼다.

“억···!”

정크타운의 아침.

사위가 칠흑처럼 어두웠던 밤에 비해 살짝 옅어져, 먹구름이 심하게 낀 정도로 바뀌었다.

“오늘 날씨 괜찮네요. 형님.”

평범한 아침이다.

햇빛이 쨍쨍하게 비치는 날은 연중 일주일도 채 되지 않으니, 인간이 우울해지기 딱 좋은 세상.

그렇기에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조명과 네온사인은 아침에도 꺼지지 않는다.

- 10크레딧 줄 테니까 제발 한 번만!

- 안 꺼져? 별 거지 같은 새끼가···아니다. 그냥 뒤져라! 뒤져!

- 억!

밥 먹으러 가던 길에 어제 길에서 봤던 부랑자를 또 마주쳤다.

저건 무슨 게임속 변태 NPC인가.

답 없는 슬럼가에서 저따위로 빌어먹고 사는데 아직 목이 붙어있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군.

두들겨 맞는 놈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 또봉이네 맛있는 리얼버거 》

목적지는 여관 근처의 패스트푸드점.

간판의 길쭉한 디스플레이에 햄버거 광고가 자동 재생되고 있다.

- 우리 《 또봉이네 맛있는 리얼버거 》에서 사용하는 배양육 패티와 진짜 고기로 만든 패티의 차이점이 뭔지 아십니까? 위생? 맛? SNS감성? 영양? 아니죠. 가장 큰 차이는 가격입니다 가격! 배양육은 싸서 마진이 많이 남으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배 터지게 햄버거를 처먹을 수 있는 겁니다! 아주 감사한 일이죠?

햄버거 광고 주제에 굉장히 솔직하다.

지잉.

매장 입구의 자동문이 열리자.

시끄럽던 손님들이 찰나간 조용해졌다가 저들끼리 모여 웅성거리는 분위기로 바뀐다.

딴엔 작게 소곤대는 소리가 정확하게 들렸다. 아마 어젯밤 회로 제작으로 마나와 친숙해졌기 때문이리라.

- 예쁜데?

- 벌써 봤냐? 단골 펍에 새로 들어온 섹스토이보다 낫네.

수군대는 첫 번째 이유는 레나의 외모.

- 근데 옆에 있는 말라깽이는 하레니오 아냐?

- 보지마. 괜히 또 쌩지랄할라.

- 아오, 쟤들은 햄버거 배달시켜 먹으라고 하면 안 되나? 괜히 기어들어 와서 분위기나 십창내고 말이야.

- 야 목소리 낮추라니까.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하레니오의 단원인 루돌프놈이 일행에 끼어있기 때문일 것이며.

아마 세 번째 이유는.

- 시펄, 뭐야 저거? 총 아녀?

내가 권총을 들고 있기 때문인가.

- 우리 나가야 하는 분위기 아니야?

- 설마 비싼 총알 아깝게 우리한테 쏘겠냐. 조용히 카운터만 털고 튀겠지.

이걸 내가 언제 꺼냈더라.

이거 참, 습관적으로 그만 실수했군.

나는 얼른 권총을 바지춤에 집어넣었다.

“그런 사람 아닙니다.”

매장 안 손님들의 오해를 친절히 풀어준 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앉자마자 카운터 뒤에 숨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날 주시하던 꼬마 직원이 쪼르르 달려온다.

강도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나 보다.

“뭐 드실 거예요? 크레딧은 있는 거죠?”

“돈 있다.”

“어떤 거 드실래요?”

하레니오 놈들에게서 노획한 현물 지폐를 보여주며 햄버거 세 개와 감자튀김 양 많이 그리고 콜라를 주문하자, 주문을 받은 꼬마가 주방에 쪼르르 달려가 뭐라 외쳤다.

그리곤 다시 이쪽으로 달려와 속닥인다.

“사실 여기 햄버거 되게 맛없어요.”

“꼬마야. 프렌차이즈 햄버거가 어떻게 맛이 없냐.”

“정말인데요. 이 매장이 유독 맛없거든요. 손님들 눈탱이 맞았어요.”

“그럼 좀 진작 말해주지 그랬니.”

“에이, 그러면 사장님이 혼낸단 말이에요. 형 옆에 있는 저 하레니오 아저씨도 무섭구요.”

굉장하군.

이 동네는 장사를 이렇게 하나?

신기한 판매 방식이다.

“그럼 가서 여기 햄버거 만드는 놈 나오라고 해. 다시는 햄버거를 만들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주마.”

“에이~그럼 제가 일자리를 잃는걸요? 대신 3 크레딧만 팁으로 주시면 제가 햄버거를 맛있게 튀겨드릴게요! 튀기면 신발도 맛있어요!”

장사를 싹싹하게 잘하는 녀석이다.

나중에 다 크면 좋은 점소이가 되겠어.

“좋다. 그렇게 하자.”

“정말요?”

“그래.”

“헤, 감사합니다! 금방 가져올게요.”

꼬마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돌아가자.

루돌프가 친한 척 귓속말을 속닥거렸다.

“형님. 여기 배양육 패티에 돌빵이라 튀겨도 맛없습니다. 감자튀김도 숯덩이로 나오고요. 돈도 있는데 그냥 다른 거 먹으러 가시죠.”

“내 돈이지 네 돈이야?”

“······.”

“넌 먹지말고 굶어. 아침 공복이 건강에 이롭다.”

곧바로 정색해준다.

감히 한낱 종놈 주제에.

- 음식 나왔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빠르게 세팅된다. 나는 버거 하나를 빼서 서빙하는 꼬마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너 먹어라.”

“네? 정말이요?”

“그래, 커서 좋은 점소이가 되거라.”

“감사합니다!”

꼬마 녀석은 미안한듯 햄버거의 원래 주인인 루돌프를 쓱 훑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곤 돌아갔다.

쭈욱-

나는 콜라부터 집어 시원하게 빨았다.

지친 몸에 생기가 돌아오는 기분이다.

레나도 그간 배고팠는지, 별 말도 없이 작은 입을 오물대며 노릇한 감자튀김을 마구 탐한다.

루돌프놈이 말한것보단 음식 상태가 괜찮았다.

“감자튀김이 숯덩이로 나온다며?”

“그러게요. 이상하네? 여기 감자튀김은 원래 까맣던데 오늘은 왜 노랗지.”

“네놈한테만 탄 걸 팔았겠지. 꼴 보기 싫어서.”

“······.”

조금 시간이 지나자, 레나가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얼굴로 말을 꺼낸다. 입가엔 감자튀김 기름을 잔뜩 묻힌 채로.

“레반.”

“그래.”

“우리, 상황이 괜찮아지면 발할라 시티로 가는게 좋을 것 같아.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반 루벤카가 있는 발할라 시티.

레나의 유일한 혈육이 있는 도시다.

“그래서 말인데 레반. 다른 시티까지 운행하는 사설 캐리어 티켓이 일인당 5만 크레딧이 넘는 거 알지? 앞으론 밥값도 최대한 아껴야 해.”

“음.”

그 말을 듣고 테이블을 바라봤다.

말라비틀어진 감자튀김이 몇 개만이 트레이 위를 뒹군다.

어떤 누군가가 자기 몫의 햄버거는 그대로 남겨둔 채 공공재인 감자튀김만 미리 싹 쓸어간 것이다.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나 했더니.

레나를 빤히 쳐다보자 자기도 민망한 듯 고개를 수그린다.

“오늘은 배가 고파서···.”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레나, 돈이 있어도 캐리어는 못 탈 거다. 네가 승강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BCPD에 체포되거나 당가가 손을 쓰겠지.”

“그렇지만 만약을 대비해 크레딧은 꼭 모아둬야 해. 뭔가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말인데 레반, 혹시 가진 돈 좀 있어?”

“주식하려고?”

“자신 있는 게 증권쪽이니까.”

연방 증권거래소를 말함이다.

각 기업의 주식을 사고파는 증권시장.

레나는 반 바이오 컴퍼니의 자산운용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능력이 나이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출중해 꽤 큰 이익을 거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수익 비중에서 가장 높았던 것이 주식투자였다.

인공지능 트레이더나 대형 기업, 어마어마한 자본금을 보유한 자산운용사와 프로그램 거상(巨商)들이 날뛰는 증권시장에서 수익을 보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총알 대신 크레딧으로 전쟁하는 증권시장에서 몇 년을 굴렀으니, 돈 냄새 맡는 감각 하나는 탁월할 테지.

사실, 루벤카의 사무실에서 가져온 고농도 마나액 주입기 박스만 팔아도 당장 티겟값은 구한다. 어차피 못 타겠지만.

나는 레나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초기자금은 얼마나 필요한데?”

“아무리 적어도 1만 크레딧은 있어야 해. 레반 네가 가지고 있는 비상금이 있을 테니까 일단 그걸로 계좌를 트고······.”

“그거 이미 다 썼다.”

“레반, 지금이 장난칠 때야?”

“진짜야. 네 옆에서 쫄쫄 굶고있는 새로운 시종이 뜯어간 돈만 5천 크레딧이거든.”

“······아. 입장료를 냈다고 했지.”

“그래.”

“······.”

그 말에 감자튀김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루돌프가 대역죄인처럼 대가리를 푹 숙였다.

“그런데도 햄버거를 먹으려해? 아주 보통 염치없는 새끼가 아니야. 눈치 말고 염치를 먼저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내 말에 레나가 푸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잠깐의 어색한 정적이 흐른 후,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받으러 갈 돈이 있어. 1만 크레딧 정도는 충분히 될거야.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

의아한 듯 눈을 빛내는 레나.

지금은 발할라로 가는 것보다, 비상금을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내 육체를 안정화시켜주고, 경지를 빠르게 올려줄 기운.

“크레딧이 모이는 즉시 에센스부터 구할거다.”

— 에센스

백 년 전, 인류는 살아있는 시체의 혈액 속에 존재하는 아주 극소량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나입자 즉, 기(氣)를 농축해 머금고 있는 무언가. 그것이 오늘날 에센스라고 불리는 물질의 발견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영약’ 이다.

무인에겐 공력을. 마법사에겐 마력을.

쥐뿔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에겐 건강을.

오랫동안 생존한 개체이거나, 가진 힘과 능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놈들의 혈액이 머금고 있는 에센스의 질도 훌륭해진다.

오죽하면 상품(上品)이상의 에센스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돌겠는가.

과거 에센스라는 대체 영약이 발견되자마자, 에센스 채혈을 업으로 삼는 전문 시체 사냥집단이나 기업 에센스 수급 부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그러나.

직접 좀비를 사냥해 에센스를 채혈하는 짓은 극악의 위험도를 자랑한다.

전설적인 9레벨의 초강자조차 시티 안으로 숨어든 좀비에 목이 따이는 판국에, 그런 괴물이 즐비할 장벽 밖에서 좀비 사냥? 현재의 나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나는 내 처지를 나름 잘 파악하고 있다.

5번의 전생을 겪었지만, 지금 내 수준으론 뒷골목 깡패들이나 때려잡는 것이 한계다. 장벽 밖은 상위 레벨들도 퍽퍽 죽어 나가는 곳이니까.

어찌 되었건.

삼류 무인에 2위계 마법사.

정신적인 성취는 높아도 경지는 낮다.

현대식 총기와 기술의 힘을 빌린다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자체적으로 평가한 내 수준은 완숙한 레벨 3정도.

그렇기에 에센스가 절실하다.

이렇게 거대한 슬럼가라면 시체 사냥꾼과 거래하는 브로커나 그쪽에 선이 닿는 놈 하나쯤은 있겠지.

“그러니 우선순위는 에센스다. 크레딧은······.”

그때였다.

눈앞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지더니.

——쾅!

“?”

루돌프의 머리가 테이블에 처박힌다. 고개를 들자 루돌프의 얼굴을 짓눌러대며 킬킬 웃는 놈들이 보였다.

귀밑에 촌스러운 빨간 장미 문신.

아, 하레니오인가.

“밴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어차피 이럴 거 뭐 하러 도망갔냐? 그냥 거기서 같이 뒈져버리지.”

한 놈이 비웃기 시작하자 놈의 뒤에서 루돌프를 욕하는 여러 목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저 새끼는 저 사이에 껴서 뭘 처먹고 있는 거야? 정신 나갔나?”

“꼬라지 봐. 쥐어 터졌나 보네.”

“비응신. 자알 하는 짓이다.”

매장 내 눈알들이 조용히 돌아간다.

이윽고 슬슬 눈치를 보던 손님들은 익숙한 상황인 듯,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어느새 매장에 들어찬 열댓의 양아치들. 더러운 몸에는 하나같이 빨간 장미 문신을 달고 있다.

“음······.”

하레니오 갱단.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갱단치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편이군.

‘마법사는 저 뒤쪽에 빠져있는 뱀눈깔인가.’

업무지구만 가봐도 4레벨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으나, 이곳 정크타운이 밑바닥 슬럼가라는걸 고려해야한다.

저 놈 수준이면 타운 전체에서 한 손에 꼽는 강자겠지.

“나같으면 들어오면서 총질부터 했을 텐데. 다들 예의가 바르군.”

내가 그렇게 시부렁거리며 상황을 보는 사이 누가 봐도 나 갱단 두목이오! 할 법한 덩치놈이 쿵쿵대며 걸어와 묻는다.

“어이, 햄버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

살기와 광기가 반반쯤 섞인 눈빛.

나는 일단 부정했다.

“오햅니다. 걔들 제가 안 죽였어요.”

“지랄하지 마라.”

“저 빨간코 루돌프가 한 짓입니다.”

“주둥이 닥쳐. 다 알고 왔으니까.”

“그렇군.”

다 알고 왔구나.

서둘러 발뺌을 포기했다.

늦었지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너희도 햄버거 먹으러 왔니? 오늘 감자튀김 물 좋아.”

쾅!

강철과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주먹이 테이블을 부순다. 신체 강화용 구세대 사이버웨어로군.

“······하나 묻겠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벌였지? 이유나 들어 보고 싶은데.”

“놈들이 죽을 짓을 했겠지.”

“좋게 대답하는 게 나을 거다.”

“내가 못 할 짓을 한것도 아니고 왜들 이래? 서로 남자답게 잊고 넘어가자. 화해하면 되잖아.”

“화해? 지금 화해라고 했나?”

후웅-

내 머리 위로 주먹을 뻗어오는 덩치놈.

순식간에 놈의 팔목을 낚아채며 단검을 뽑아 내리찍는다.

팅!

“······.”

그러나.

끝이 구부러져버린 단검.

쩍 갈라지는 두목의 겉옷 밑으로 숨겨져있던 철제 속살이 드러난다.

놈이 조소한다.

“아주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이러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지.

곧바로 머리 숙여 사과한다.

“미안합니다.”

“괜찮다. 나도 할 거니까.”

턱-

코웃음을 친 갱단 두목놈이 내 어깨에 손을 떡하니 올려놓는다.

강한 악력에 우둑거리는 어깨뼈.

고개를 숙이곤, 당황한 눈앞의 레나에게 잠시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어이, 무인이면 네 좆대로 까불고 다녀도 될 줄 알았나? 버러지들만 모여있는 정크타운이라 헤퍼 보였어? 뒤진 놈들이 너도 보내달라고 지옥에서 아주 난리야.”

우드득-

악력이 점점 강해진다.

팅. 팅.

나는 어깨를 붙잡고 있는 손가락 파츠를 툭툭 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시종 때보다 인기가 많아진 건 좋은데 왜 하필 냄새나는 이런 놈들이 꼬이는 건가. 밥 먹는데 옆에서 쇠비린내 풍기며 쫑알대는 거한이라니.

“사주에 도화살이 끼었나···.”

거칠게 꿈틀대는 하단전.

드르륵.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허리춤에 꽂아둔 직도에 손을 가져간다. 일단 이 덩치 팔부터 썰고, 다음은 저 재수 없는 뱀눈······.

덜컥.

“?”

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칠게 꿈틀대던 공력이 갑자기 꼼짝도 하지 않는다.

호수의 수면처럼 고요해져 버린 하단전.

잠시 우두커니 서서 상황을 곱씹던 나는···

일단 넘어진 의자를 바로 세우곤 침착하게 자리에 앉았다.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세상이 이렇게나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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