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밑바닥의 생리
#9화.
찰칵-
컨트롤 칩이 포트에 맞아 들어간다.
이제 컨트롤 칩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시종의 행동강령이 놈의 뇌신경을 타고 동기화된다. USB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컴퓨터에 옮기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거부반응이 심하면 백치가 되거나 죽겠지만···
실패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어차피 당장 죽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놈이니까.
“끅, 끄아아-!”
나는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놈에게 소감을 물었다.
“느낌이 어때? 혹시 어지럽진 않니.”
“어떻긴 이 씨팔! 내 포트에 뭘 꽂은거야 이 또라이 새끼야!”
“괜찮아 보이는군.”
“너, 너 삼호문이랑 관련 있는 놈이냐? 아니면 청부 해결사?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두목이 도착하면 넌—”
“시끄럽게 굴지 말고 주둥이 닫아.”
콰직.
팔꿈치로 놈의 머리를 내리찍는다.
수박통 깨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찰흙처럼 찌그러지는 루돌프놈의 얼굴.
꺽꺽대는 놈을 발로 차 밀어두고, 죽은 시체의 가슴팍에 박혀있던 단검을 뽑았다. 붉은 피가 꿀럭이며 흘러나온다.
“루돌프야. 너 하나 때문에 애먼 사내가 일곱이나 죽었다.”
“미친, 네가 죽였잖아!”
이 놈은 눈치라는게 아직 없구나.
아니면 아직 자기 처지를 잘 모르는 건가.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내가 금방 고쳐줄 수 있으니까.
스릉-
피묻은 단검을 놈의 앞에 가져다 댄다.
“······?”
“자, 이제부터 눈치가 생긴 것 같으면 말해.”
서걱-
부지불식간 단검을 휘둘렀다.
놈의 얼굴에 깊게 새겨진 십자 혈선.
갈라진 상처를 타고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하자,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챈 루돌프놈이 술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댄다.
“어억···? 잠깐! 잠깐만!”
놈의 고함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역수로 쥔 단검을 내리찍는다. 눈알은 두 개니까, 하나쯤 없어도 괜찮다.
“생겼어요. 눈치 생겼다고요-!”
뚝.
단숨에 비굴해진 놈의 동공 바로 앞에서 칼질을 멈추었다.
“벌써 눈치가 생겼나?”
“그럼요! 제가 전부 다 잘못했어요.”
“역시 네 생각도 그렇지?”
“예! 다 저 때문이죠 형님. 하하하. 나도 참.”
고작 칼질 몇 번 했다고 저렇게 붙임성이 좋아지다니. 의외로 성격이 밝은 놈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까 말하던 거 계속해봐. 누가 온다고?”
“아! 예! 지, 지금 무스코 단장이랑 그 뱀눈깔 마법사가 이리로 올 겁니다. 단장은 멀쩡한 팔다리를 죄다 자르고 사이버웨어 파츠로 대체한 인간인데요. 얼마 전에는 크레딧이 어디서 났는지, 피부까지 리얼 스킨으로 대체할 거라더라고요. 아주 미친놈이에요. 형님이라도 분명 위험하실 겁니다. 또···또, 아! 방금 제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미리 고백할게요.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같이 도망치죠. 참고로 제가 이 동네 길은 빠끔하고요, 생각보다 쓸모가 많아요. 절 죽이시면 진짜 존나게 후회하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루돌프 놈의 장황한 설명을 뒤늦게나마 끊어낸다.
“그냥 닥쳐라.”
“예!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저 배신 뭐 그런 거 기가맥히게 잘합니다!”
“자꾸 쓸데없는 말을 왜 이렇게 길게 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넌 지금, 이 상황이 즐거워?”
뻐억-!
놈의 복부에 주먹을 내지른다.
고작 이것도 못 버티고 기절하거나 죽어버리면 어쩔 수 없는 노릇.
다시 말하지만, 죽어도 별 상관 없다.
컨트롤 칩만 회수해서 다른놈 머리에 꽂아보지 뭐. 동네에 널려있는 게 이런 놈들인데 유독 칩빨 잘 받는 놈이 하나쯤 없겠는가.
뻐억! 뻐억!
이러다간 진짜로 죽겠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무자비하게 쥐어팬다. 부위는 가리지 않는다.
“···아니, 왜! 악 씨펄···.”
“욕은 하지 말고.”
“···억! 억!”
온 힘을 다해 몇 분 정도 두들겼을까.
의외로 잘 버티나 싶던 것도 잠시. 원래도 형편없던 얼굴이 더 형편없어진 루돌프가 내 다리를 부여잡고는 엉엉 울부짖는다.
“죄송합니다···살려주십쇼···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이 새끼들 진짜 악질입니다. 사람도 우습게 죽이고요. 시체를 토막내서 갖다 팔고 그러더라니까요. 저는 사실 본성이 착해서 그런 거 못하거든요. 어휴, 잘 죽었다 저 망할놈들.”
붉은 핏물로 덮여 더욱 빨갛게 물든 콧잔등의 장미 문신.
그리고 머리를 많이 맞았는지 아직도 알아듣기 힘든 말을 지껄이는 걸 보면, 그새 머리가 더 나빠지기라도 한 건가.
그래도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짓을 했는데 죽이진 않았으니, 이미 충분한 자비를 베푼 것이다.
내가 이리도 자비로운 사내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아 그럼요. 물론입죠.”
나는 행사하던 폭력을 멈추고 느긋하게 주변의 시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놈들이 사용하던 각종 총기와 선반에서 발견한 총기들, 100 크레딧 짜리 낡은 현물지폐 30장.
거기다 쓸만한 칼도 하나 얻었다.
도신이 다섯 뼘에 조금 못 미치는 직도. 짧은 단검보다야 월등히 낫겠지.
내가 한창 그러고 있던 그때.
- 후우, 후.
뒤쪽에서 루돌프가 똥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불규칙한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놈이 뭘 기다리고 있는지 뻔히 보여 웃음이 새어 나왔다. 피로 범벅이 된 총기들을 가방에 눌러 담으며 말했다.
“네가 기다리는 놈들 안 올 거다.”
“······예? 뭐가요?”
놈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발뺌한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갱이랍시고 총까지 들고 다니던 놈이 밑바닥의 생리를 모를줄이야.
“생각을 해 봐. 어떤 놈이 혼자 쳐들어와서는 눈 깜짝할 새에 저만 빼고 다 싹 죽여버렸습니다. 다들 목숨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습니다. 아무튼 어서 달려와서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해주세요······라고 전하면 네 친구들이 의리있게 뛰쳐와줄 것 같아?”
“어······.”
뒷골목 양아치들 주제에 그럴 리가.
갓 죽은 시체에 페티쉬라도 있지 않은 이상에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다. 뒤늦게 상황 파악이나 하러 기어 오겠지.
“제 목숨이 소중한 놈들이면 안 와.”
“···그렇네요?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와서 이거나 눌러 담아라. 더 두들겨 처맞기 전에.”
“알겠습니다. 형님! 헤헤.”
“웃지마.”
“예.”
나의 오랜 흑도 경험상, 장담할 수 있다.
밑바닥 인생은 괜히 밑바닥 인생이 아니고, 삼류 양아치는 괜히 삼류인 게 아니다.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
“가자. 받아라.”
나는 두둑한 가방 두 개를 루돌프에게 던지다시피 건네주곤 1층으로 내려왔다. 아까와 똑같이 아케이드 게임기의 소음과 바텐더의 질문이 들려온다.
- 오늘 같은 날씨에는 씁쓸한 블루 마티니 어떠세요? 정말 훌륭한 선택일 겁니다.
“제일 비싼 놈으로 한병 줘.”
- 네. 알겠습니다.
휴머노이드 바텐더에게 술 한 병을 통째로 받아 챙긴 후, 어정쩡히 서 있는 루돌프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먼저 나가봐라.”
“네?”
“혹시 내 말이 틀렸을 수도 있잖아. 누가 밖에서 총을 쏴 갈길 수도 있으니, 네가 먼저 나가서 확인하라고.”
“······아.”
세상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이다.
안전. 좋아.
“싫으냐?”
“사실은 그게요.”
“쓸모가 없다면 폐기 처리 해야겠지.”
“······.”
루돌프는 잠시 미적거리다 내 뒷춤에 꽂아둔 칼을 힐긋 쳐다보고는, 결국 발을 절뚝이며 밖으로 향했다.
이제야 눈치가 조금 생긴 것 같다.
물론, 예상대로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은 없었다. 예상대로 쥐죽은 듯 고요한 술집 입구와 여전히 한산한 골목. 숨이 끊겨있는 문지기의 시체만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시체를 보며 끌끌 혀를 찼다. 놈이 정말로 상처에 손가락을 쑤셔 넣은 채로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농담인데. 그걸 진짜로 믿었네.”
곧 루돌프와 함께 행인과 섹스토이가 북적이는 17번가 길거리로 스며들었다.
혼잡한 거리와 붉은 네온사인 조명 밑이라면 얼굴에서 피를 좀 흘리고 있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리라.
그렇게 5분 정도를 걸었을까.
누군가 뒤를 쫓아오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곤 직도 한 자루와 상태좋은 권총 몇 정을 골라 챙긴 뒤, 노획한 가방 두 개를 모두 바닥에 던져놓았다.
“와서 가져가.”
그러자.
“······.”
골목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 두 명의 사내. 그들은 나와 루돌프를 번갈아 바라보다 자신들을 소개했다.
상당히 조심스럽고 공손한 어투였다.
“사장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따라붙은 잔당들이 있나 확인한 것인데, 혹여 미행처럼 느껴져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럼 가방부터······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윽고.
가방을 열어본 놈들이 피와 기름이 잔뜩 묻어 얼룩진 화기들을 보곤 눈가를 좁혔다.
중고 총기들 상태가 보통 다 저렇지 않은가?
괜히 찔리기에 설명을 보탰다.
“사용감이랑 기스가 조금 있네. 그래도 탄은 잘 나가던데. 내가 직접 맞아봤거든.”
“그런 게 아니라, 생각보다 양이 많아 확인과 분류에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럼 그냥 가져가고 내일 다시 들리겠다고 전해줘요.”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 * *
피로 칠갑이 되어있는 술집 2층.
처참한 일곱 구의 사체와 전투 흔적.
레반이 17번가를 떠난 후, 뒤늦게 근거지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 뒈졌네. 바로 튀어 왔으면 우리도 저 옆에 나란히 누워있었겠어.”
“근데 밴스 그놈이 안 보이는데?”
“무서워서 튀었나보지. 총도 싹 긁어서 가져갔네.”
“칼 맞아 죽은 시체가 하나 있긴 한데 나머지는 전부 총상이야. 작정 하고 쓸었어.”
“삼호문 놈들인가? 그 한심한 쫄보 새끼들이 그랬다기엔 너무 가차 없는데?”
단원들의 대화에 전신을 사이버웨어로 도배한 거구, 하레니오의 두목인 무스코가 분노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뭐 이딴 개 같은 상황이 있나.”
이런 적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멋들어진 총격전을 벌인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안방에서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한 꼴이 아닌가.
무스코의 입가가 푸들푸들 떨리던 그때였다.
“어라?”
아까부터 이곳저곳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훑어보던 한 남자의 눈에서 마력이 옅게 요동친다.
2층 계단 바로 앞의 나무바닥.
바닥재가 움푹 패인 부분을 잠시 주시하던 그가 피식 웃으며 운을 뗐다.
“이야, 무림계 놈인가 본데?”
그 말에 저 멀리서 열을 내고 있던 무스코가 땅을 울리며 다가와 물었다.
“무인이라고? 확실해?”
“봐, 여기 패여있는 발자국. 내공을 실어서 밟은 흔적이 확실해. 탄착점도 확인해 보니까 전부 한 놈이 벌인 짓이야. 여기 계단서부터 시작했군.”
“······무인이라면 사냥이 쉽지. 공장에서 거래대금 대신 받아온 거, 이놈 잡는데 써보면 되겠어.”
“그 짝퉁 산공독(散功毒)?”
“그래. 내가 이 개새끼 낯짝 구경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무스코의 분노섞인 물음에, 뱀처럼 찢어진 남자의 두 눈에 푸른 마나가 깃들었다.
곧이어 그가 혀를 날름대며 말했다.
“이틀.”
* * *
차가운 한기가 목 주위를 감돈다.
낡아빠진 여관방으로 돌아온 나는 현재, 좁은 방에 꿇어앉아 있는 루돌프를 중간에 둔 채 레나와 눈싸움을 벌이고 있다.
“쟤가 이제부터 네 새로운 시종-”
“아, 그래?”
레나가 경멸하는 표정을 짓는다.
솔직히 조금 껄끄럽기야 하겠지.
이게 다 못생긴 루돌프 탓이다.
“······그래서 네 칩을 저 사람 포트에 꽂아둔 거야?”
“기왕 이렇게 된거 어떻게든 써먹는 게 낫다. 그리고.”
내가 네 옆에 붙어 다닐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널 떠날 생각도 없다.
무장이라도 한 새 시종이 옆에 붙어 있으면 그나마 마음이 편하겠지. 이건 다 널 위해서.
—라는 식의 달콤한 논리로 끈질기게 회유하자, 그녀의 표정이 점점 시무룩해져만 간다.
딱히 큰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곧, 그녀의 속눈썹이 축 쳐진다.
“말은 고맙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저렇게 다 죽어가는 사람을 데리고 오면···.”
“괜찮다. 생각보다 튼튼하더라고.”
그렇게, 내 얼굴에 칼질을 하던 루돌프놈은 레나의 시종으로 살게 되었다. 놈을 죽기 전까지 괴롭혀줄 생각에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그날 새벽.
나는 잠에 들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일.
아마 며칠은 조용히 넘기더라도, 나름 갱단이라 자처하는 놈들이 언제까지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태 파악이 끝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적을 해오겠지.
‘4레벨급 마법사가 있다고 했던가.’
《레벨》
이 세상은 연방의 공인 아래 무림계, 마법계, 이종족, 사이버웨어 시술로 보유한 무력의 경지를 하나의 척도로 통합해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1부터 12까지 총 열 두개의 단계로 나뉘는 《레벨》 이다.
간단히 나눠보자면.
1레벨. 기를 느낄 수 있는 일반인.
2레벨. 입문자 수준.
3레벨. 삼류무인, 회로가 한 개인 1위계 마법사
···
7레벨. 절정무인, 5위계 초위 마법사
8레벨. 초절정, 6위계 상위 마법사.
9레벨. 화경, 7위계 고위 마법사.
—보통 이런 식이다.
10레벨 이상은···그냥 말할 필요도 없는 규격 외의 존재들이니 제외하고.
아무튼 4레벨이라면 왕국 마탑 기준으로 고리를 두 개 엮은 2위계 마법사. 무인 기준으로는 이류의 경지 정도.
기본적인 방어 마법 몇 개는 익히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러니, 소총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마나 회로부터 만들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