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8화 (8/157)

#8화. 새로운 시종

#8화.

좀비 아포칼립스의 1원칙.

- 살아남을 것.

좀비 아포칼립스의 2원칙.

- 1원칙을 지킬 것.

두 가지 생존 원칙을 지키는 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 직감을 먼저 따르고.

항상 방아쇠를 가볍게 유지하는 것.

끝장나버린 세상에서 같은 인간은 이름이 붙여진 좀비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내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이 들면, 여자, 노인, 아이 상관없이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90% 확률로 터지는 시한폭탄 앞에서 터지지 않을 10%의 확률까지 신경 써줄 여유는 없었다.

그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랬던 내가 바뀌게 된 계기는 3회차 중원 무림의 어릴 적, 사파의 절대고수이자 미치광이로 악명을 떨쳤던 내 스승을 화음현의 객잔에서 우연히 만나고부터였다.

스승이라는 인간은 객잔 구석탱이에서 조용히 소흥주를 퍼먹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 자리에서 만두를 깨작대던 나와 몇 번 눈이 마주치나 싶더니, 대번에 내 상태를 알아보고는 ‘그 썩어빠진 눈빛을 고쳐주겠다’ 라며 다가와 머리채를 잡는것이 아닌가.

말 그대로 미치광이였다.

스승은 그날로 저항하는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매일같이 두들겨 팼는데, 난 늘 머릿속에 각인된 1, 2원칙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몰래 숨겨둔 비수로 기습도 해보고 음식에 하독도 해봤다. 살문에 청부를 넣기도 했으며, 야밤에 변소 밑에 숨어있다가 칼을 들고 기습도 해봤다.

그러나 우습게도 한 번을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 아, 내가 졌다. 그때 만두를 먹으러 가는 게 아니었어. ]

[ 독기가 골수까지 들어찬 놈이 끈기는 왜 또 이 모양인고? 그러지 말고 더 해봐라. 네 1원칙이 어쩌고저쩌고 지껄이지 않았더냐. ]

[ 어차피 안 통하는데 뭐 하러 더 해? ]

[ 쯔쯔, 넌 아직도 덜 처맞았느니라. 운남성 똥개만도 못한 놈. ]

[ 차라리 죽여라. ]

[ 이놈아. 널 죽이면 지금까지 두들겼던 시간이 허송세월이 되지않느냐? 무공도 알려줘 가며 패는데 감사한 줄도 모르고. ]

내 스승은 진짜배기 광인이었으며 사람을 미치도록 잘 때렸다.

죽진 않고, 딱 죽도록 아플 만큼만.

그렇게 제자라는 명목으로 개처럼 끌려다니며 두들겨 맞기를 2년.

고작 2년 만에 전생부터 내내 뒤틀려있던 인격이 그나마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그만 때리라고 이 새끼야! ]

[ 주둥이 꾹 닫고 죽을 때까지 묵묵히 맞다 갈 줄 알았더니, 이제는 그만 때리라는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일취월장이다. ]

[ 더 때리면 관에 신고할 겁니다. ]

[ 어디 해봐라. 내가 직접 데려다주랴? ]

[ 알겠으니까 그만 좀 때리세요. ]

[ 이제야 덜 금수 같구나. 허나 넌 아직 더 맞아야 한다. 왜냐하면 말본새가 특히 싸가지 없기 때문이다. ]

매질의 효과는 확실했다.

정신이 홰까닥 가버린 놈도 꾸준히 시간을 들여 고문하고 죽기 직전까지 두들기다 보면 언젠간 바뀌게 되어있다.

꾸준한 매질과 폭력은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25년을 산 미친놈마저 변화시킨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그런데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잘 고정되어 있던 뼈가 툭- 하고 빠지며 탈골되듯. 스승에게 당한 모진 매질에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2회차의 인격이 불쑥 튀어나오는 날이.

그럴 때마다 깊이 감탄한다.

정말 스승의 말이 맞았구나.

난 아직도 덜 두들겨 맞은 거다.

두들겨 맞고 인간성을 되찾았던 게 아니라, 단지 스승의 매질이 두려웠던 2회차의 인격이 내 무의식 깊은 곳 어딘가로 처박혀버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20년이면 아주 오래도 처박혀 있었지.

일리가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꾸욱. 꾹.

그리곤 손끝으로 얼굴을 만져본다.

아직도 화하게 욱신거리는 상처.

참 웃긴 놈이다.

“내 스승도 얼굴에 칼은 안댔는데.”

나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철걱. 철걱. 철걱.

총가방이 경쾌하게 덜그럭댄다.

*   *   *

웨스트 정크타운 17번가.

펍과 클럽, 사창가가 극도로 밀집해있는 구역.

간판이든 건물이든 상관없이 붉은색 계열의 형광 네온사인을 잔뜩 떡칠해 놓았는데, 슬럼가나 빈민가의 야경은 왜 하나같이 저런 걸까.

보기만 해도 눈이 상당히 어지럽다.

“오빠! 오늘 나 어때?”

또, 헐벗은 채 행인을 유혹하는 섹스토이들도 귀찮다.

어딘가 사람같지 않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안드로이드들. 저가형이거나 오래된 중고 모델이겠지.

“지나갈게요.”

“오빠! 정말 싸게 해줄게!”

“저 여자예요.”

“여자도 문제없이 커버 가능한데?”

“네, 그럼 한 바퀴 둘러보고 올게요.”

“그럼, 옷이라도 여기 두고 갔다 와!”

“좀 지나갑시다.”

친한 척 붙임성 좋게 들러붙는 능숙한 섹스토이들을 지나쳐 걸었다. 깊게 들어가면 갈수록 호객이 적어졌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나는 17번가의 끝자락에서 호객도 못 하고 우물쭈물대는 섹스토이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한 번 할 수 있겠냐 물어보니, 대번에 얼굴이 환해졌다.

“다, 당연하죠! 저만 따라오세요!”

그 손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프리랜서 섹스토이들이 손님을 받는 공유 사창가였다.

작은 침대와 보송한 이불이 아기자기하게 준비되어 있는 방.

눈을 환하게 빛내는 섹스토이에게 물었다.

“얼마지?”

“80···아니, 90 크레딧이요!”

“아까 보니까 초입에서는 50 크레딧에 해준다던데? 거기로 가야겠군.”

“···그, 그럼, 저도 그 가격에 해드릴게요! 대신 몸을 망가뜨리시거나나 하는 플레이는······.”

녀석은 어리숙한 초짜 섹스토이였다. 능숙한 사창가 초입의 섹스토이들에 밀려 구석에 박힌 초짜.

“그래, 여기가 그 곰팡이 가득핀 여관방보다야 낫겠지.”

“네?”

나는 초짜 섹스토이에게 100크레딧을 송금해주며 물었다.

“여기 두 시간쯤 혼자 있을 수 있겠나?”

날 뭐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섹스토이는 오랜만에 얻은 불로소득에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로 방을 빠져나갔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구요!”

섹스토이와 이름 모를 변태 남정네들이 몸을 섞었을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앉았다. 방해받지 않고 운공을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 도망쳐오느라 죄다 써버린 내공이 조금씩 차오른다.

10년간 호흡으로만 축기를 하다 제대로 심법을 사용해 운공을 하니, 그 망할 컨트롤 칩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이 새삼 실감 났다.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전투 전 간단한 재충전을 마친 나는, 한 층 맑아진 몸과 정신으로 공유 사창가를 나왔다.

총포상의 그 여자가 알려준 놈들의 본거지는 17번가 유흥중심지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2층짜리 술집.

어렵지 않게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군용 조끼에 다 보이게 권총을 찔러둔 놈 하나가 17번가 골목에서 유독 한산한 술집을 지키고 서 있다.

팔뚝에 자랑스레 새겨놓은 장미문신.

그 루돌프 놈과 똑같은 문신이다.

놈에게 다가가 반갑게 묻는다.

“여기 아직 영업합니까?”

“영업? 뭐야 이 멍청한 애새끼는. 네 눈에는 여기가 평범한 술집 같아 보여?”

“입장료도 미리 냈는데. 5천 크레딧.”

“뭐라 지껄이는 거야? 이 새끼가 대가리에 구멍나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문지기가 조소하며 슬쩍 권총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놈은 살인에 익숙해 보였다.

“온 김에 이거나 한 방 맞고 가라. 이 등신 애새···.”

푹!

순식간에 튀어 올라 놈의 쇄골 아래에 단검을 박아 넣자.

“억!?”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뜨는 문지기.

그대로 벽에 밀어붙인다.

“대답 잘해. 개소리하면 뽑는다.”

“뽀, 뽑지 마!”

“시끄러워도 뽑는다.”

놈이 목소리를 낮추며 신음했다.

“······제발 진정하라고 친구. 원하는 게 있으면 이러지 말고 대화로 좋게좋게 풀면 되잖아. 내가 살짝 거칠었지?”

내게도 친구가 생겼다.

역시 폭력은 효율적인 수단이다.

“타운 밖에서 온 외지인이 입장료를 안 냈을 때는 어떻게 되지?”

“그건 왜······.”

우직!

맛보기로 검날을 조금 비틀었다.

곧바로 빠릿빠릿한 대답이 나온다.

“크흐···씨이발! 이, 입장료를 낼 때까지 굴려 먹어야지.”

“어떻게?”

“계집이면 우리가 관리하는 영업장에 보낸다.”

“남자는?”

“고, 공장! 공장에 보낸다고 들었어.”

“무슨 공장인데?”

놈의 동공이 지진 난 듯 흔들린다.

“그건 나도 정확히는 몰라.”

“모르면 됐고, 코에 빨간 장미 문신하고 못생긴 말라깽이. 누군지 알지.”

“밴스? 알지. 알아. 끄윽···.”

“지금 어디 있지?”

“이 안에···! 마침 안에 있어. 이봐! 뭔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밴스 그 멍청한 새끼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 가서 죽여도 상관없다고···.”

확실히 잘 찾아왔군.

“그거 좋아 보이네. 좀 빌리자.”

쥐고 있던 단검에서 손을 떼곤 놈이 가지고 있던 권총과 조끼를 빼앗아 걸쳐 입었다.

“사, 살려줘. 난 이 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어. 진짜야···.”

쇄골 밑에 칼이 박힌 채 구슬피 끅끅대는 놈.

총가방에서 소총을 꺼내 탄창을 끼우고 예비 탄창은 조끼 허리춤에 비스듬히 꽂아둔 후 숨을 몰아쉬는 놈에게 다가간다.

“가진 돈 좀 있냐?”

“어, 없어. 진짜 없어.”

“그렇겠지. 그나저나 누가 저 술집 안에 있지? 그 마법사나 너희 두목도 안에 있나?”

“마법사? 그, 그 인간은 지금 다른 곳에 있어! 내가 다 알려주지. 거기가 어디냐면···.”

“이놈 이거 연기 되게 잘하네.”

“뭐?”

“이미 안에 있는 놈들한테 호출 때렸잖아. 안이 너무 조용한데?”

“뭔···아니야! 이 씹! 진짜 아니라고! 아무것도 안했어! 목에 칼이 박혀있는데···!”

“그렇군. 진심이 느껴져. 그런데.”

놈의 목에 손잡이처럼 박혀있는 단검 손잡이를 틀어쥐곤.

콰득.

가볍게 힘을 주어 뽑아낸다.

“시끄럽게 굴면 뽑는다고 했잖아.”

“이 미친···!”

붉은 피가 솟구치자, 놈이 기겁하며 손으로 상처를 틀어막는다.

기억관리 프로그램 지니는 주인에 대한 세뇌만 제외하면 매우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갱이나 마피아, 빈민가의 정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놈들중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놈은 없다.

99% 확률로 밑바닥 인간쓰레기.

나머지 1%라면···참 안된 일이다.

“끅······!”

“내 친구, 입 열지 말고 잘 들어. 상처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서 혈관을 막으면 버틸 수 있다. 그래. 너라면 분명 할 수 있어.”

헉헉대며 쓰러지는 문지기에게 진심이 가득 담긴 응원과 방금 지어낸 생존솔루션을 제공한 뒤, 총구를 앞세워 입구로 들어간다.

술집 1층.

어두운 조명 아래서 발랄하게 뿅뿅거리는 아케이드 게임기 모니터들과 시끄러운 음악, 싸구려 술을 섞어파는 휴머노이드 바텐더 하나가 날 맞이해준다.

아직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어떤 술이 필요하십니까? 오늘같이 칙칙한 날씨에는 쌉쌀한 블루 마티니를 추천해 드립니다.

바텐더를 무시하고 계단을 오른다.

그때였다.

계단 위, 2층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 5천 크레딧을 진짜로 입금하던데? 대체 뭔 놈인가 싶었다니까.

- 주변에서 전당포라도 털었나?

- 몰라. 아무튼 얼굴이 반반하길래 진짜 남자로 만들어 줬더니, 지랄을 떨더라고. 교대 시간만 아니었어도 진작 쏴 죽여버렸을걸.

- 앙칼진 놈이네. 얼굴 한번 보러 갈까?

- 킥, 미친놈.

고개를 슬쩍 내밀어 확인한다.

널찍한 호텔 로비같이 생긴 술집의 2층.

놈들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태우며 떠들고 있다. 총 여덟 명. 총기는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루돌프 놈도 있군.

음···.

서로 간의 대화는 필요 없겠지.

이 쇳덩이와 납덩이들이 내 의지를 실컷 표출해 줄 테니까.

나는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랐다.

딸칵-

소총의 조정간을 연사로 돌린다.

총의 방아쇠는 항상 가볍게.

드르르르륵-

무방비한 할머니 갱단 놈들의 머리 위로 불을 뿜는 총구.

방금까지만 해도 히죽히죽 웃고 떠들던 셋과 하물을 꼿꼿이 세운 채 불룩한 바지를 자랑하던 변태 놈은 절명하고 살아남은 절반은 소파와 테이블 뒤로 몸을 던진다.

이제 넷 남았다.

“무, 무슨···!”

“저 개새끼 뭐야!”

“총! 야 내 총 어디있어!”

틱! 틱!

난사로 인해 동난 탄창.

진각(震脚). 내공을 잔뜩 실어 바닥을 때려 밟자 눈앞의 테이블이 앞으로 쓰러진다.

놈들이 허둥지둥하는 사이, 두꺼운 철제 테이블을 방패 삼아 탄창을 갈아 끼운다.

철컥.

“귀가 안 들려 씨팔!”

“입 닥치고 갈겨 그냥!”

텅텅텅···!

놈들이 다급하게 쏟아붓는 총탄이 애먼 테이블 위를 퍽퍽 때려댄다.

섬뜩한 총성이 잠시 느려졌을 즈음.

방패 삼던 테이블을 발로 밀어찬다.

끄그그극-

귀 따가운 소리와 함께 바닥을 긁으며 놈들 쪽으로 미끄러지는 테이블.

그 뒤에 바짝 따라붙어 달리자.

옆에서 갑자기 한 놈이 달려든다.

총을 어깨에 견착한 뒤 다른 손으론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달려들던 놈의 손바닥을 찌른다.

푹!

“끄아악!”

우직하게 밀어 넣는다.

으드득.

손바닥을 꼬치처럼 관통해 밀고 들어간 단검이 놈의 가슴팍 깊숙이 박혀 들어간다.

이 묵직한 손맛.

한번 맛보면 쉽게 못 끊는다.

정신 나간 사파와 마교의 무인들이 대개 그렇다.

“계속 안 쏘고 뭐해 새끼야!”

“아 씨팔. 탄이 끼었···.”

테이블 위로 총구를 올린다.

드르르륵-

욕설이 들린 방향에 대고 남은 탄창 분을 전부 긁어버리자, 바닥으로 붉은 피가 넓게 퍼져 나온다.

이제 남은 건 루돌프를 포함해 둘인가.

찰나간, 귀를 먹먹하게 울리던 총성의 메아리가 잠시 멎는다.

무섭도록 고요해진 2층.

철컥.

나는 테이블 뒤에서 마지막 탄창을 결합하며 입을 열었다.

“설득을 해봐.”

고요한 2층 로비 어딘가.

누군가의 덜덜 떠는 숨소리가 내 귓전을 간지럽힌다.

“사랑하는 아이가 있다든지, 자선 단체에 매월 얼마씩 기부한다든지 뭐 그런 거.”

“······.”

대답이 없다.

“없구나. 알았다.”

끄그그극-

다시 테이블을 강하게 찬다.

그러나 이번엔 그 뒤로 붙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옆으로 구르자, 상기된 얼굴로 애먼 테이블에 총탄을 낭비하고 있는 마지막 엑스트라가 보인다.

탕-!

이제 남은 건 루돌프 하나.

그런데 바로 그때.

어정쩡한 폼으로 날 바라보는 구석의 루돌프와 눈이 마주친다. 놈이 다급하게 장전손잡이를 덜걱거린다.

탈칵. 탈칵. 탈칵.

나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저런.”

“미, 미친 새끼가.”

루돌프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겁에 질려 커다랗게 치켜뜬 눈동자가 사슴의 눈망울을 떠올리게 한다. 어딘가 마음이 아려와 잠시 녀석을 동정했다.

“언제는 사람도 막 죽여봤다며. 사실 총 처음 써보는구나.”

불쌍한 녀석 같으니.

시체 밭에서 이도 저도 못 하고 주저앉아 있던 루돌프놈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너, 너 진짜 이래도 괜찮겠냐? 자신 있는거야? 이미 우리 단장이 이쪽으로···.”

“루돌프야.”

놈의 말을 무심하게 끊고 물었다.

“네 관자놀이에 붙어있는 1세대 링크포트, 거기 좋은 칩 하나 박을 생각 있나?”

“······뭐?”

나는 주머니를 뒤적이다 손끝에 걸린 작은 물건을 꺼내 보였다. 약간 쿰쿰한 피비린내가 나는···

강제 노예행 전뇌 컨트롤 칩.

이미 링크포트를 뚫어둔 녀석이니 호환도 충분히 가능할 테지.

아무래도 다른 놈 머리에 박는 만큼, 성능은 내가 쓸 때보다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레나가 새 시종을 마음에 들어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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