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더 늦기 전에
#6화.
발두르 시티, 서쪽 외곽구역.
그 섹터에는 빈곤 계층이 모여 형성된 슬럼가이자 치안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최악의 타운이 있다.
갱을 표방하는 집단이 하루가 멀다하고 총질을 일삼으며 유흥주점과 도박장, 암시장, 클럽, 마약, 사창가, 청부 사무소, 무허가 의료시술소 등의 온갖 불법과 편법이 공존하는 곳.
공권력이 닿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총성을 자장가 삼아, 길거리에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는 시체를 구경거리 삼아 하루를 살아가는 빈곤계층이 모인 구역.
무법지대(無法地帶), 웨스트 정크타운.
“정크타운에 온 걸 환영한다. 좆만아.”
“······.”
스각-
콧잔등에 빨간색 장미 문신을 그려 넣은 말라깽이 하나가 내 앞에서 나이프로 묘기를 부려댄다.
관자놀이 쪽에 구닥다리 1세대 넷 링크포트를 장착하고 있는 걸 보니 돈이 있는 놈은 아니다.
아마 이 슬럼가 타운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양아치, 범죄자, 미친놈. 셋 중 하나겠지.
‘나노로봇 카트리지는 땅에 묻어두고 오길 잘했군.’
정신 사나운 나이프 묘기를 멈춘 놈이 말했다.
“1인당 입장료 2천 크레딧. 너희는 둘이니까 합쳐서 5천 크레딧이다.”
“······.”
묶음 할인율이 마이너스인 기적의 계산법.
《 잔고 / 9,000C 》
네트워크 계좌에 잠들어 있던 1만 크레딧 중 고급택시 요금에 1천 크레딧을 보태 사용했고, 아직 9천 크레딧이 수중에 남아있으니 입장료를 낸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이건 그냥 내주고 넘긴다.
“지금 입금했습니다.”
“응? 진짜 입금했다고 5천 크레딧을? 너 지금 나랑 장난치냐?”
“한번 확인해 보시죠.”
다만.
이 냄새 나는 외곽 동네까지 와서 처음 받아보는 인사가 얼굴에 칼빵 놓기라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화악-
칼에 베인 부위가 화끈거린다.
“···허. 진짜네? 스물도 안된 것 같은 꼬맹이가 무슨 돈을···일단 오케이. 넌 특별히 통과다. 내 앞에서 꺼져.”
“······.”
“근데 이놈 이거 눈깔 봐라. 아~그깟 면상 좀 그었다고 꼴 받았냐? ”
“아닙니다.”
“사내새끼치고 얼굴이 너무 깨끗하길래 들어가서 무시당하지 말라고 하나 새겨준 거야.”
“꼴 안 받았어요.”
“정말?”
“예.”
“근데 네 눈깔은 아니라는데?”
스윽.
놈이 내 목에 또 칼을 들이밀었다. 그냥 죽여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이 한심한 몸 상태로 무작정 적을 만들 수는 없다.
“업힌 년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어디서 섹스토이라도 훔쳐가지고 배달온 모양인데. 주문한 놈이 누구든 난 신경 안써. 그러니까 눈알 착하게 굴리자. 죽여버리기 전에.”
신기하게 못생긴 놈이 같잖은 허세는.
- 밴스! 받았으면 빨리 보내 그냥! 교대하러 가야 한다고!
저 멀리 허름한 초소에서 총을 쥐고 있던 덩치가 소리치자, 눈앞의 말라깽이가 아쉽다는 듯 말하며 날 툭툭 밀었다.
“이제 꺼져라. 훠이!”
그래.
행인들 돈 빼앗느라 고생했는데, 가는 김에 칭찬 하나라도 해주고 가야겠군.
“근데 그거 루돌프 맞죠.”
“?”
“콧잔등에 한 딸기 문신, 굉장히 멋지네요.”
스걱-
화끈한 감각이 얼굴을 가로지른다.
아까 전보다 깊게 베인 탓인지 피가 주르륵 흘러 턱 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새끼가, 딸기?”
“아닌가요.”
“장미다 이 애새끼야. 너 그거 네 눈깔 아니지? 눈알파츠 해킹이라도 당했냐 이 병신-”
놈이 다시 칼을 휘두를 준비를 한다.
그때.
- 야 이 새끼야! 지랄 적당히하고 보내라니까! 교대 안 할 거면 너 혼자 한 타임 더 뛰든지!
저 멀리서 다시금 들려오는 고함.
얼굴을 와락 찡그린 루돌프놈은 마지못해 칼을 거두곤, 충고인지 협박인지 모를 소리를 한다.
“너 객기부리다간 바로 골로 간다. 얼굴이 반반한 게 딱 그쪽인 놈들이 좋아하게 생겼거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충고 고맙습니다. 우리 또 봐요.”
“또 보자고? 큭큭. 그래 꼭 또 만나자! 타운에서 뒈지지 말고! 응? 또 보자 꼭!”
“예.”
“어우, 피 나는거 봐. 아프겠다 야.”
빨간 코에 말라깽이 루돌프.
내 얼굴에 칼질하고 욕설 뱉음.
이놈은 똑똑히 기억해 둬야겠군.
정크타운 입구에서 삥 뜯는 둘을 지나쳐 5분 정도 걷다 보니, 뺨을 타고 주르륵 흐르던 피가 어느새 멎어간다.
‘고작 2세대도 이렇게 쓸만한데.’
2세대 의료용 나노로봇의 능력.
어릴적, 레나 덕에 시술을 받았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때는 어렸던 레나가 선물받은 시종이 다치면 어쩌냐며 반 회장 앞에서 떼를 썼었던가.
이젠 썩다리 구식으로 평가받는 2세대 의료용 나노기기의 가격이 아직도 30만 크레딧부터 시작이니, 평범한 시티 주민들은 꿈도 못 꾼다.
효과는 충분히 괜찮은 편.
피부가 갈라지는 상처 정도는 구태여 지혈하지 않아도 금방 피가 멎는다. 반나절이면 갈라진 살이 붙고, 하루가 지나면 흉터만 남는다.
단순 골절도 일주일쯤 내버려 두면 자연히 회복된다. 아예 뼈가 가루처럼 으스러지거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면 답이 없지만···.
곧 시판도 안 된, 최고급 6세대 나노로봇으로 교체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오래되고 울퉁불퉁한 도로 옆 갓길.
【 여기부터 정크타운 】
다 녹슬어버린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표지판의 뒤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명 참 쓸데없이 화려하네. 어지럽고.”
거대한 슬럼가의 풍경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발두르 인구 약 1억. 그중 가장 밑바닥 계층에 위치한 이들이 자신들의 터전으로 삼은 소도시.
마치 90년대 홍콩의 뒷골목 야시장과 구룡성채를 보는듯한, 번쩍대는 옥외 간판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싸구려 야광 조명으로 잔뜩 떡칠해둔 구식 건물들의 군집.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골목과 낡아빠진 저층 건물들. 그 사이는 조잡한 철판과 나무판자를 구름다리처럼 연결해 지나다닐 수 있게 해놓았는데, 그 다리와 옥외간판의 수가 워낙 많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개미굴같다.
나와 레나, 두 사람 정도라면 저 거대하고 복잡한 개미굴 속에 몸을 숨기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으리라.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레나를 들쳐멘 채 걸음을 재촉했다.
쿵. 쿵. 쿵.
정크타운의 길거리.
누군가 내 머리 위의 구름다리를 지나다닐 때마다 냄새나는 톱밥과 녹슨 쇳가루, 새까만 먼지가 후드득- 떨어진다.
발두르 중심업무지구의 첨단화된 풍경과는 매우 극명하게 대비되는 동네지만···
차라리 이런 분위기가 내겐 더 친숙하다.
- 아아아악-!
왁자지껄한 소음에 귀가 따끔거린다.
- 아악-! 이거 놓으라고 이 새끼야!
- 그거 들었냐? 찰스 그 멍청한 개자식. 어젯밤에 마약하다 뒈져버렸더라고.
- 요앞 펍에 괜찮은 섹스토이가 새로 들어왔다는데? 얼마 쓰지도 않은거래!
- 이봐 주인장, 배양육 버거 하나에 20크레딧이 말이 돼? 좆같이 맛없는데 가격은 왜 맨날 올라? 햄버거가 새끼라도 낳냐!
- 꼬우면 처먹지 말고 나가! 재료값이 또 올랐다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 이미 다 먹었다 새끼야! 배양육인데 재료값이 오르긴 지랄. 돼지같은 네 살이 더 오른 거겠지.
그렇게, 온갖 군상이 난무하는 길거리를 지나가던 그때였다.
툭.
- 어이 형씨.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마약과 술에 찌든 얼굴.
먹물처럼 탁한 눈빛에 떡진 긴 머리. 제 몸 하나 못 가누는 인생막장 부랑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비슷한 놈을 몇 명 봤다.
- 그거, 파는 거야?
“?”
놈의 시선은 내 등에 업혀있는 레나에 꽂혀있었다. 손가락으로 동그란 구멍을 만들어 보인놈이 한심한 얼굴로 히히덕댔다.
- 그거 말이야. 한 번 하는데 30크레딧 어때? 내가 최대한 빨리 끝내볼게!
대충 봐도 제정신이 아닌 부랑자.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 주기로 한다.
“그거라면···30크레딧은 무슨. 10크레딧만 받아도 충분하지.”
- 뭐? 정말이야?
뻐억-
둔탁하고 묵직한 타격음.
놈이 명치를 부여잡고 꺽꺽댄다.
- 끄억···?
이놈 오늘 운수 좋은 날이네.
“외상으로 달아둬.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가서 꼭 갚으마.”
고통에 신음하는 거지놈을 대충 발로 밀어 넘어뜨리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 뭐야 저 꿈틀대는 굼벵이는.
- 들어보니까 30크레딧은 있는것 같던데···
- 한번 가서 뒤져볼까?
사람이 쓰러져 꺽꺽대는 중인데도 행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몇 명의 아이가 다가가 쓰러진 부랑자의 주머니를 신나게 뒤적거릴 뿐.
웨스트 정크타운은, 원래 이런 곳이다.
*
나는 곧바로 지낼 숙소를 찾았다.
허름하고 다 쓰러져 가는 뒷골목 여관. 네온사인 간판마저 군데군데 꺼져있는 곳이다.
“하루 숙박료는 40크레딧. 특실은 80크레딧. 둘 중에 어디로 할거요.”
퉁명스러운 말투의 여관 주인.
이런 곳에서 친절한 서비스 같은 걸 기대하긴 어렵겠지.
스윽. 슥.
주인장이 권총을 닦으며 다시 묻는다.
“어디로 할 거냐니까.”
“특실.”
“오호? 어려 보이는데 통이 크시군. 근데 들쳐업고 있는 여자는 죽은건가?”
“그건 아니고 많이 취해서.”
“그래 뭐, 방 안에서 죽지만 마쇼. 치우기 힘드니까. 그리고 벽에 구멍 같은 거 뚫으면 재미없을 줄 아쇼.”
그렇게 배정받은 방은 여관 2층 끝방.
말만 특실이지 사실상 곰팡이 잔뜩핀 반지하 원룸과 비슷한 수준이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레나를 침대에 던져놓았다. 피로감이 온 몸을 잡아먹으며 몰려왔다.
당장이라도 누워서 한숨 자고 싶지만.
“······레반, 여기 어디야?”
어느새 부스스 깨어난 레나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레나가 기절했던 동안 일어난 일을 말해 주었다.
사실 그간 일어난 일이라고 해봐야, 본사 빌딩에서 무작정 시티외곽의 슬럼가로 도망온 것 밖에 없다.
“아무리 사천당가라고 해도 이건 말도 안 돼. 그럼 우리가 소송에서 졌다는 얘기인데······.”
중간까지 묵묵히 듣던 레나는 결국,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회사 업무를 하던 녀석이다. 또래보단 성숙하다지만, 또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세상이라곤 해도 마냥 이성을 지키긴 힘들겠지.
그 뒤로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조금 진정이 된 듯한 레나가 습기찬 눈가를 문지르며 입을 연다.
“메세지가 와있어. 다행히 언니는 지금 발할라에 있대. 파혼 일로 따지러 갔다가 거기서 소식을 들었다고···”
반 회장의 장녀 잉그리드 반 루벤카.
그 괄괄한 성격이 목숨을 살린 듯하다.
차라리 다행이군.
성격 드세기로 유명한 루벤카 그 여자가 반 바이오 본사에 있었다면 아마 사천당가고 뭐고 빌딩이 다 무너져 내릴 때까지 저항했겠지.
시종인 메리도 같이 살아있을 것이다.
“······괜찮아. 우린 아직 괜찮아.”
“?”
“연방으로 찾아가면 돼. 오딘 시티의 연방 정부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면···.”
당연하게도 괜찮은 상황은 아니지만, 레나는 괜찮은 척하며 이 말 저 말을 아무렇게나 주워섬겨댔다.
무슨 얘기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도 모를 테니.
어차피 나는 내 방식대로 할 예정이다.
“레나.”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마라.”
“······응?”
레나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냐는 듯 눈을 깜빡인다.
나는 그럴싸한 변명을 지어내려다 문득, 설득할 시간조차 아까워졌다.
여기가 행동을 조심해야 할 반 바이오도 아닐뿐더러, 이미 충분히 오랜시간 기다려왔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더 미루는 건······
이제 사절이다.
“레반, 설마 옛날에 시술한 나노머신이 오류라도 일으킨거······.”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건드리지 마.”
“······.”
오줌이라도 마려운 사람처럼 급하게 말끝을 얼버무린 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골랐다.
손가락 끝으로 내 관자놀이 부근을 더듬자, 살갗 아래에 볼록 튀어나온 금속이 느껴진다.
으직.
빌어먹을 전뇌 컨트롤 칩의 측면부.
망설임 없이 손가락에 힘을 주어 강하게 틀어쥔다. 하단전에 잠들어 있던 쥐톨만한 공력도 기혈을 내달릴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내 전신이 화로처럼 끓어오른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레반!”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빌어먹을 인큐베이터 10년, 눈칫밥먹는 시종 생활 10년. 도합 20년. 내 성격에 많이도 참았다.
그러니 이제는 더 늦기전에 돌아갈 시간이다.
부잣집 딸 전속시종 따위의 삶이 아닌, 전생자의 삶으로.
“뽑고 나면, 아까 그 루돌프부터 찾아가야겠군.”
으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