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3화 (3/157)

#3화.

새벽 6시.

나는 전뇌 컨트롤칩 덕에 원치 않더라도 자동으로 잠에서 깬다.

싸늘한 냉기가 맴도는 이부자리를 정리한 뒤,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와 중심업무지구에 있는 반 바이오 본사로 출발해야 한다.

—끼이익.

[ 60 크레딧 결제 완료. ]

“60크레딧?”

이상하군. 원래 50크레딧 아니었나.

“거기, 안 들어가고 서서 뭐 합니까?”

“요금이 왜 60크레딧입니까. 내 목적지는 업무지구인데요.”

“오늘부터 10크레딧 인상됐어요.”

이미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지, 트램 경비원은 귀찮은 얼굴로 손을 대강 휘적이며 대답했다.

나는 별수 없이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가격 인상의 여파인지 오늘은 비어있는 좌석이 많았다.

—위이이잉.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노면전차. 발두르의 대중교통수단인 시티트램이 레일 위를 빠르게 미끄러진다.

시티트램은 드높은 콘크리트 정글을 헤치며 나아갔다.

발두르는 연방의 일곱 거대도시 중 가장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1억에 가까운 인간이 득실댄다. 안드로이드와 휴머노이드를 뺀 순수한 인구.

한정된 면적때문에 초과밀개발이 일상화 되다보니 도심속에선 작은 공원조차 보기 힘들다.

이 좁아터진 도시에 뭐 이리 사람이 많은지.

빠르게 바뀌어가는 트램 밖의 풍경.

트램 옆쪽으로 길게 난 도로는 이 시간대에 늘 혼잡하다. 돈 좀 있는 중산층들의 자율주행 차량과 털털거리는 고물차, 시끄러운 바이크들이 한데 뒤섞여 느릿느릿 나아간다.

‘오늘은 별일 없네.’

보통 출근길에 트램 밖을 구경하다 보면, 이따금 재미있는 광경을 볼 때가 있다.

도로에 뜬금없이 무장 강도가 출몰하기도 하는데, 개조한 바이크를 탄 강도들이 백만 크레딧을 호가하는 〈쿼롯 르길레라 GTS〉 차량에 총을 쏴대다가 그대로 머리가 터져나가는 걸 본 기억도 있다.

하기야 그만한 하이퍼카를 운용할 정도면 벌이가 꽤 되는 인간일 텐데, 그걸 타고 있는 작자가 돈 많은 기업가인지 혹은 지체높은 마법사나 무인인지 한낱 강도 따위가 어찌 알겠는가. 재수가 없었지.

[ 발두르 중심업무지구 역입니다. ]

트램에 탑승한지 20분쯤 지났을까.

시티트램이 중심업무지구의 초입에 들어선다.

여기까지 오며 지나쳤던 빌딩들보다 세 곱절은 높은 대기업의 초고층 빌딩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게 보인다.

시티의 중심가는 햇빛이 없어도 초고층빌딩의 외벽 조명들 덕에 그 무엇보다 화려하다.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도시치고는 말이다.

트램에서 내려 도보로 10분.

늦지 않게 반 바이오 본사에 도착한 나는 레나의 상층 집무실을 청소하고 먼지를 걷어냈다.

저택에서 식사를 마친 레나가 출근하기 전까지, 청소를 마치면 약 1시간 정도가 나의 유일한 자유시간이다. 보통 사내 매점에서 대충 밥을 사먹고 화장실에 다녀온 뒤 넷에 접속해 시간을 때운다.

[ 쿼롯 가문의 마법칩이 시장에 풀린다! ]

시티 공용네트워크에 접속해 최근 기사를 둘러보던 도중, 조회수가 꽤 높은 네트워크 기사가 눈에 띄었다.

[ 쿼롯 가문의 마법을 담은 ‘쿼롯 마법칩’이 경매에 등장해 화제입니다. 발할라의 마법계 대기업 ‘쿼롯 그룹’ 의 계열사 ‘쿼롯 오토모빌’의 높은 부채비율을 해소하고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최후의 수를 꺼내 든 것으로 보입니다. ]

[ 이 마법칩을 구매한다면 쿼롯 가문의 마법사들만이 배울 수 있는 고유의 마법을 익힐 수 있는데요. 관련 전문가들이 측정한 ‘쿼롯 마법칩’ 의 판매가는 500만 크레딧입니다. ]

[ 한정된 100개의 물량이 모두 소진될 시,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대금은 약 4억 크레딧으로 추정됩니다. 쿼롯 가문은 이 판매대금을 모두 기업가치 정상화에 사용하겠다며······. ]

크레딧만 넉넉히 있다면 데이터화된 무공, 마법칩을 언제든 쇼핑할 수 있는 세상이다.

신경과 연결된 링크포트에 능력이 들어있는 데이터칩을 꽂으면 저장된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개발해냈는지는 몰라도, 차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칩을 사용하려면 단전이나 마나 회로는 가지고 있어야한다. 없으면 사용하지도 못한다.

툭툭-

한참 기사를 읽던 도중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1층 로비에서 잡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두꺼운 책을 내밀며 말했다.

“쿼롯 그룹에서 반 바이오로 보내온 마법칩의 상세 카탈로그입니다. 레나님께 전해줘요.”

“출근하시면 바로 전해드리죠.”

“그래요. 그럼, 이만.”

반 바이오는 마법계 기업이다. 그래서인지 저들의 판매 목록에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문의 마법인데 개나 소나 구매하게 두는것보단 적당하게 신용있는 곳에 팔아먹는게 나을 테니까.

【 쿼롯 — 320년 가문 역사를 함께 써내려갔던 마법. 먼 과거 십이제(十二帝)의 1인이었던 고위 마법사 ‘쿼롯 아그리드’ 의 정수가 담긴 마법으로써······. 】

카탈로그를 열어서 대충 읽어봤다.

가격, 할부 금리, 마법의 성능, 구매자에 대한 예우 등등.

‘가문의 비전 마법이라곤 하지만 생각보다 전제 조건이 많다. 그래도 돈만 많으면 적당히 살만하겠네.’

나는 저런 기사를 볼때마다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 머릿속에 가득 들어있는 무공과 마법도 나중에는 팔아먹을 수 있으려나···하는 생각.

기억하는 고유 마법만 수백 개. 명문대파의 절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공 역시 머릿속에 있다.

35년의 무림생과 15년의 마탑 생활 동안, 혹시 모를 다음 생을 위해 쓰지 않을 무공과 마법까지 죄다 익혀뒀으니까.

기업의 재정위기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시중에 풀리는 것들중 질 좋은 무공, 마법은 없다.

워낙 기업과 가문들이 자신들의 비전을 아끼는 탓에 허접한 칩도 괜찮은 값에 거래가 되는 판인데, 아마 내가 아는 마법과 무공을 시장에 풀어버리면 분명 반응이 뜨거울 것이다.

대부분이 기본적인 삼재검법 응조수, 죽엽수, 운기토납법등의 기본서와 듣도보도 못하고 화려하기만한 개잡무공들이 프리미엄 가득 붙여서 거래되는 판국이니.

하지만, 누가 시종 따위의 말을 믿어주겠나.

믿어준답시고 데려가면 오히려 더 큰일이다. 한평생 고문이나 당하면서 무공과 마법을 뱉어내는 자판기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오전 9시.

레나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시간.

내게 주어진 대단한 업무는 없다.

무료한 얼굴로 한쪽 구석에서 대기하다가 레나가 뭔가를 시킬 때 행동한다.

예를 들면 커피를 타오라는 심부름이나 다른 층에서 뭘 좀 받아오라는 잔심부름. 말 상대 해주기. 창문 열어서 환기하기 등등.

- 특허소송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보통···

솔직히 회사에서는 하는 것 없이 시간이나 축내고 있는거다. 비서도 아니고 말 그대로 오너의 ‘시종’ 일 뿐이니까.

레나가 회사의 업무를 맡고 나서부터 이 시간이 미친 듯이 아까웠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저 탈출할 기회가 생기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허전한 단전을 채워나가는 수밖에.

‘그래도 이 전뇌 컨트롤 칩만 제거한다면······전생의 경지보다도 더 높이 갈 수 있다.’

배양 인큐베이터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내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은 말짱하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의 몸으로, 날이 지날 때마다 원래 알았던 것처럼 주입되는 기억을 받아들일 뿐.

그렇기에 명상과 심상 수련을 병행했다.

자그마치 ‘10년’ 이나.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그간의 공부를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자신의 의념을 오랜 기간 가다듬을 시간이 있었던가.

의념이 깊어지고 또 깊어져 무아(無我)에 빠지고, 무아 지경은 곧 깨달음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결국, 내공 하나 없는 아이때부터 임독양맥(任督兩脈)이 시원스레 뚫려 상단전이 활짝 열려버렸다.

어느 순간 무아를 벗어나 의식을 차려보니 세상이 한 걸음 더 다가와 있더라.

다시 말해 조화경(造化境).

[ 응? ]

무림 시절에도 도달하지 못했던 그 고절한 깨달음의 경지에, 내공도 없는 아이의 몸으로 올라서버린 것이다.

본래 태어날 때는 열려있던 임독양맥이 나이를 먹고 탁기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닫히는 형식인데, 갓난아이 때부터 10년간 면벽수행을 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이상할 일도 아닌가.

문제는 정신과 육체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것.

내공도 없고 육체도 단련하지 못한 시종의 몸이다.

상단전을 열어 조화경에 다가서면 뭘 하나? 삼류 강도가 칼을 휘두르면 픽 하고 쓰러져 죽을거다.

대체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그 대단한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소림굴에 틀어박혀 깨달음을 얻었던 면벽수행이 9년인데······.’

달마대사보다도 면벽수행을 오래한 사내.

정신만큼은 화경인 사내.

그것이 바로 나다.

“레반! 이 서류좀 로비에 빨리 전달해줘!”

“······.”

조화경의 잡무 시종, 레반.

#4화. 염원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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