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2화 (2/157)

#2화. 레반

#2. 레반

발두르 시티.

고급 주거구역의 저택.

“그때 그 매화검신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더니 검강을 무슨 집채만 하게······”

“······.”

새까만 머리칼에 작은 체구.

발두르 시티에 본사를 둔 마법계 제약기업 반 바이오 컴퍼니 회장의 차녀, 잉그리드 반 레나.

그녀의 고운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레반? 그 얘기 저번에도 했던 거잖아.”

“아, 그랬나요.”

레나가 가볍게 핀잔을 주자, 옆에 서서 이야기를 이어가던 레반이 말을 멈추었다.

전속 시종 레반.

레나가 정확히 10살이 되던 해, 회장이신 아버지로부터 받은 선물.

인간을 따라한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가 아닌, 날 때부터 오직 그녀만을 위해 맞춤 제작된 진짜 ‘인간’ 시종.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며 언제나 절대적인 레나의 편이자 친구가 되어준 존재.

물론.

‘······빌어먹을.’

그 전속 시종이 네 번의 전생을 겪은 것과.

방금의 그 얘기가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조합해 만들어낸 공상 소설이 아닌, 자신의 3회차 생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이라는 것은 레나가 알 리 없는 사실이다.

‘불면증 걸린 여자애한테 동화책이나 읽어주고 있는 신세라니. 스승이 보면 아주 뒤집어지겠군.’

잠시 자신의 처지를 속으로 한탄한 레반은 어떤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그러면 이 이야기도 했나?”

“어떤 건데?”

“하루는 안전한 쉘터에서 식량을 독점하고 있는 무리를 봤어. 머릿수는 대략 열 명쯤. 쉘터 앞에는 식량과 은신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인간들이 북적거렸지.”

어둡고 낮게 깔리는 레반의 목소리.

레나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자, 그가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웃긴 놈들이었지. 자기들이 내는 문제를 맞히면 안으로 들여보내주고 식량까지 제공해 준다더군. 몇 번 보니까 맞추기만 하면 정말 들여보내주긴 해. 그런데 이상한 게, 한번 들어간 놈은 다시 나오질 않아. 입구는 하나뿐인데.”

자신의 2회 차 좀비 아포칼립스.

어떤 기괴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었다.

“생각해봐. 들어오는 족족 다 죽인거야. 식량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렇게 총 여섯의 머저리가 당했을 때, 내가 쉘터에 불을 질렀지. 불붙은 놈들이 발광하며 뛰쳐나오더군. 못생긴 놈 순으로 다 쏴 죽이고 다시 던져넣었지.”

“······.”

숨죽여 듣던 레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인공지능이 즉석에서 텍스트를 조합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겠지만, 진짜로 겪은 일을 풀어놓는 것만 같다.

레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랬더니 쉘터 앞에 있던 머저리들이 날 붙잡고 뭐라 그랬게? 불 꺼지면 같이 들어가서 먹어도 되겠냐고 묻더라고.”

이야기가 점점 그로테스크해지자.

“···읍, 그게 뭐야.”

결국 질려버린 레나가 헛구역질을 한다.

그런 그녀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응시하던 시종 레반이 돌연 말투를 바꾸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귀찮은 주인의 마수에서 도망칠 기회다.

“아가씨.”

“······응?”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조명은 소등해야겠습니다. 아가씨의 불면증은 애석하게 생각하지만, 부디 편안한 밤 되시길.”

“!?”

레나의 눈이 동그래진다.

저렇게 끔찍한 얘길 하다가 중간에 끊고 그냥 이렇게 가버리겠다고? 사람 찝찝하게 만드는 것도 정도가 있지.

당황한 그녀가 황급히 소리치며 팔을 뻗었다.

“야 레반—!”

그러나.

이미 사라져버린 레반.

칠흑같이 어둡고 적막해진 침실 안.

누군가 쳐다보는듯한, 끈적한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아버린 레나는 소심하게 이불을 끌어 올렸다.

*     *     *

하루의 마무리.

레나의 침실을 빠져나와 시종의 방으로 가는 복도.

고개를 돌려 유리창 밖을 바라보자 저 멀리 ‘연방’ 을 이루는 7개의 거대 도시 중 하나, 발두르 시티(Baldr City) 중심업무지구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

언제봐도 입이 벌어지는 광경이다.

심히 어둡고 우중충한 하늘.

그 하늘 턱밑까지 드높게 솟은 초고층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어두운 도심의 전경을 환히 밝히고, 건물 옥상으로 이어진 네온 라인을 따라 작은 우주선처럼 생긴 업무용 캐리어들이 이동한다.

중심업무지구의 한쪽 라인은 마법계 기업들의 빌딩들이, 다른 한쪽 라인은 무림계 기업임을 상징하는 동양풍의 고층 건물들이 경쟁하듯 주욱 늘어서 있다.

그 마천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합금 기왓장이 용의 비늘처럼 촘촘히 박혀있는 초고층 전각.

저 압도적인 전각은 상위 메가콥인 무당 코퍼레이션 소유의 건물로, 3회차 중원때 보았던 제일의 기루보다도 열 곱절은 화려하며 웅장하다.

“무당은 어디서든 무당이군.”

처음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상식을 애매하게 벗어난 세계.

하나의 세계 아래 무림계와 마법계가 나뉘어져 존재하는 것도 신기한데 21세기의 지구보다 최소한 반세기 이상 앞선 첨단기술까지 융합되어 있는 세계라니.

고도로 암호화된 무공, 마법 데이터 칩을 구매한 후 ‘다운로드’ 받아 익히고, 첨단 사이버웨어와 나노기술의 발달로 팔 하나가 잘려 나가더라도 사이버웨어 파츠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지니에게 기억을 주입당할 때까지만 해도, 믿지 않았었다.

게다가.

증기기관을 한계치까지 발전시킨 이종족들의 도시도 연방에 소속되어 있다.

엘프, 흡혈귀, 드워프 같은 것들이 주를 이뤄 살아가는 증기와 황동의 도시라고 하던데, 탈출에 성공한다면 그 광경을 내 눈으로도 볼 날이 오겠지.

나는 업무지구의 반대편으로 눈을 돌렸다.

해봐야 서울과 비슷한 면적의 도시라지만 있을건 다 있다.

지금 시간쯤이면 네온사인 조명과 간판이 그득한 저 시티 중앙 환락가에는 온갖 군상들이 다 몰려들었겠지.

한정판 마약 찾는 놈, 카지노에서 쫓겨난 놈. 자신의 페티쉬를 만족시켜줄 섹스토이 찾는 놈, 그냥 아랫도리가 심심한 놈, 강도질하는 놈, 실력 좋은 해결사 찾는 놈 등등.

그리고 저 시끄러운 중심 환락가를 지나고 슬럼화된 외곽 소도시 너머 거대한 장벽 밖에는······.

“빌어먹을 좀비는 좀 없었으면 더 좋았을걸.”

이 세계의 화룡점정을 찍는···여기서 부르길 ‘죽지않는 시체’ 혹은 ‘언데드’

부르는 말만 다르지 그냥 좀비가 맞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는 2회차 아포칼립스에서 겪었던 그 망할 좀비가 떡하니 존재했다.

지니로부터 주입받은 기억에 따르자면.

[ 언데드중 최근 가장 유명세를 탄 네임드 개체는 오딘 시티에 숨어있다가 레벨 9의 전설적인 연방집행관 ‘모리 무라타’ 를 살해하고 유유히 달아난 ‘가륵’ 이래. 정말 무섭지 않아? ]

9레벨은 무림으로 따지면 화경(化竟).

4회차 라아기스의 기준이라면 7위계 마법사인 왕국 대마탑주 정도의 강자.

인류의 전반적인 무력 수준은 그간 겪어왔던 세계중 가장 높다지만······.

그 정도로 초강자인 집행관을 죽였다면 내가 알던 2회차 아포칼립스 세계의 좀비들보다 아득히 강력하다는 얘기다.

심지어 저 가륵 사태는 약 15년 전, 내가 인큐베이터 속에서 인공지능 지니로부터 정보를 주입 받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 강해졌을지도.

아포칼립스에서의 경험상, 좀비는 오래 살아온 개체일수록 변이와 진화를 거쳐 강력해지고 영리해졌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는 20년을 산 개체가 맨손으로 군전차를 부숴버리거나 건물 옥상에서 콘크리트 잔해를 던져 헬기를 격추하는 기행을 벌였었지.

그런데 이 세계는 좀비의 탄생이 자그마치 ‘150년’ 전이다.

[ 그거 알고 있어? 최소 레벨9 이상으로 확인된 언데드인 ‘파루무치’ 나 ‘악부’ ‘구로신’ ‘가륵’ ‘녹량백량’ 같은 네임드 개체가 시티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연방의 세 영웅인 삼존(三尊)이 늙어 죽기를 기다리느라 그런 거란 우스갯소리가 있대. 인간은 언젠가 늙어 죽지만 언데드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니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잖아. ]

답이 보이질 않는다.

확인된 개체들을 제외하고도 저 장벽 바깥의 땅에는 상상 초월의 괴물이 몇 마리나 더 돌아다니고 있을지···.

아직 연방이 망하지 않은게 용할 정도.

하기야 이런 상황이니 대륙 전체가 좀비들의 땅이 되지 않았겠나.

인간 냄새에 환장하는 놈들덕에 전체 대륙 면적에 비하면 티끌 수준인 일곱 대도시와 소수의 지역만이 남았다.

초대형 우주 정거장까지 건설하며 우주 진출을 목전에 두었던 첨단 문명의 세계는, 150년 전 좀비의 등장이후 여기까지 주저앉은 것이다.

게다가 장벽 너머엔 좀비 하나만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시티의 바깥은 방사선과 화학 퇴적물에 오염되고 절여진 생체기계들, 과거 무림과 마법계의 대전쟁에서 수거 못한 살상 지뢰, 주인없는 휴머노이드와 버려진 군용 안드로이드, 도망친 범죄자 등등이 손에 손잡고 떠돌아다니는 극히 위험한 땅.

연방에 소속된 일곱 거대 도시간 이동과 물류 수송은 대부분 공중을 떠다니는 캐리어로만 가능할 정도이니, 저 장벽 밖은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이겠지.

이렇게 일부러 위험한 것들만 골라서 모아둔 것 같은 지금의 세계에서, 현재 시종일 뿐인 내 목표는 하나.

빌어먹을 좀비 사냥도 잃어버린 인류의 땅 수복 같은 거창한 것도 아닌.

툭툭-

‘일단 컨트롤 칩부터 뜯어내야 한다.’

노예 탈출.

유리창에 이제 갓 소년티를 벗은 내 모습이 비친다. 또래 평균보다 조금 더 큰 키에 평범한 골격, 흐릿한 인상의 얼굴. 그리고 관자놀이 옆에 박혀있는 얇고 날쭉한 금속재.

저 금속재가 바로 태어날 때부터 박혀버린 전뇌 컨트롤 칩이다.

일반적인 맞춤형 인간 시종이었다면 아주 어릴 때부터 가상 기억관리 프로그램에 세뇌되어 뜯어낼 생각조차 못 했을 낙인.

당장이라도 뜯어내고 싶지만, 무작정 힘으로 뜯어내려 하다간 반병신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고 마법적인 처리까지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예민한 신경들과 연결이 되어 있기에 그렇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꿈찔.

단전에서 고요히 움찔대는 무언가.

삼류 잡배 수준도 안 되는 나의 내공이다.

전뇌 컨트롤 칩의 행동 통제와 신체 이상징후 감지를 피해서 지난 10년간 호흡으로만 쌓아온 최소한의 내공.

3회차의 단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나, 이 쥐꼬리만한 공력이 칩을 강제로 뜯어낼 때의 충격을 막아줄 안전장치 역할을 해줄 거다.

‘마법계 기업만 아니었어도 진작······.’

마법의 사용이 가능하다면 이깟 컨트롤 칩 정도야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겠지만···반 바이오 컴퍼니는 마법계 기업.

덜컥 마나 회로를 만들어 버리면 하루도 안 되어 발각당하고 말겠지.

망할.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시종 레반. 확인되었습니다. ]

저택 구석에 있는 시종 전용 방 앞에 도착하자 두꺼운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두 개의 침대와 이불만 있는 작은 방. 미래화된 세상에 비해 너무도 썰렁한 시종 숙소. 그곳에서 누군가가 환한 미소로 날 반겨준다.

“레반! 오늘은 조금 늦었네?”

움푹 들어간 보조개에 큰 키.

허리까지 내려오는 밝은 금발의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외모.

반 회장의 장녀이자 레나와 자매인 ‘잉그리드 반 루벤카’ 를 모시는 시종이며 최고급형 안드로이드인 메리다.

“누가 봐도 사람같군.”

“또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 한다.”

단순히 인간과 유사한 모습의 기계를 통칭하는 휴머노이드(Humanoid). 그리고 거기서 발전한 단계인 안드로이드(Android)는 외형과 지능은 물론이고 인간의 감정까지 보유한 인조인간이다.

특히나 엄청난 값을 자랑하는 최고급형 수준이 되면 촉감이나 말투, 호흡같이 사소한 것조차 인간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흡사한데 저 메리 역시 그렇다.

가끔은 나도 메리를 인간으로 착각할 정도니까.

“레반은 매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별 거 아니다.”

“흐음···.”

메리는 자연스레 내 옆으로 다가와 누웠다. 두 눈을 빤히 뜨고 날 바라보던 녀석은 고혹적인 미소를 꾸며내며 입을 열었다.

“특별히 한번 안아줄까? 너만 원한다면 내가 밤새 위로해줄 수도 있는데.”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자라.”

단호한 대답에 녀석이 웃음을 터뜨린다.

“농담인데 괜히 진지하기는. 설마 정말로 기대한 거야?”

“······.”

“루벤카님 성격에 우리끼리 몸 섞는 걸 허락해주실리 없잖아. 그러니 레반, 이만 네 자리로 돌아가줄래?”

“메리, 여기가 내 침대다.”

“괜히 부끄러워하긴.”

“······.”

한낱 기계의 장난질에 농락당하는 삶.

반드시 탈출하고야 만다.

#3화. 화경의 잡무 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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