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마지막 대결
“그러니까 나를 무지 사랑한다는 말이잖아?”
“웃기지 마요. 잘못하면 죽게 될까 봐 그냥 한 말이라고요!”
유성탄은 마누라 예정녀들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쓴 것이 너무 좋은지 잠시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묻고 또 묻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말해 놓고는 은근히 어색해하던 그녀들로서는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히히히! 헤헤헤!”
마냥 좋아서 히히대던 유성탄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졌다. 충동에서부터 그는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고 다가오는 벌레와 그냥 지나가는 벌레를 직감적으로 알아냈었다. 그것은 그의 육감이 오랜 어둠 속에서 인간으로서는 발달하려야 발달할 수 없을 정도로 극성으로 예민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의 육감에 엄청난 위험신호가 잡힌 것이다.
“신녀단하고 천요궁도들 다 불러!”
갑작스런 유성탄의 말에 모두의 얼굴색이 변했다. 지금같이 다급한 유성탄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빨리 불러!”
말을 마친 유성탄은 문을 열더니 밖을 향해 소리쳤다.
“철패! 전부 다 불러라.”
“예!”
밖에서 교대로 망을 보던 철패가 급히 대답을 하고는 숙소로 뛰어갔다. 그녀들과 달리 철패는 유성탄의 명에 군말이 없었다. 마누라와 아우의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이상한 놈들이 여기를 포위하고 있는데 수가 우리보다 훨씬 많다.”
유성탄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감히 어떤 놈들이! 대형, 걱정 마십시오. 누구든 들어오면 나의 이 도끼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장우왕이 도끼를 빼어 들어 유성탄의 눈앞에서 흔들며 소리쳤다.
“문제는 그놈들의 무공이 너희들보다 더 강한 것 같다는 데 있다.”
이어지는 유성탄의 말에 장우왕의 입이 닫혔다. 수가 훨씬 많은데 무공은 더 높다면 싸움의 승패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들이 분명 우리를 노리고 온 것이 확실해요?”
화설군이 물었다.
“몰라!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수도 많고 무공도 강하다 하면, 퍼져서 싸운다면 우리의 필패예요.”
정자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우선 뒤가 막힌 장소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곳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으니 유 상공께서 뒤를 막아주셔야겠어요.”
잠시 후 정자운의 명에 따라 방도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유성탄이 한곳을 맡고 다른 쪽은 강태웅과 나머지 아우들이 방도들과 맡는다. 만약 유성탄이 없는 쪽으로 강한 자가 나타나면 유성탄이 급히 달려오고 나머지는 유성탄이 있던 곳으로 급히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취약한 곳은 오살이 둘씩 짝을 지어 신녀단과 천요궁도들과 합심해서 막기로 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급한 대로 최선의 방어책이었다.
“그리고 고 호법께서는 빨리 궁상 어르신을 찾아 도움을 청하세요. 늦으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적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살수의 기본이에요.”
말을 마친 고화월은 몸을 날리기 전에 지정우를 한번 쳐다보았다. 살수인 그녀도 슬슬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지정우에게 죽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자식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고화월이 떠나고 일각도 지나지 않아 적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그리고 유성탄은 이번에는 적에게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몽둥이를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포천망쾌가 있는 쪽은 피해라! 그쪽은 강시들과 태성기가 맡는다.]
담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던 청담이 수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유성탄이 있는 쪽으로 수하들이 가봐야 싸움에는 전혀 도움도 안 되고 피해만 늘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어? 이놈들은 그때 봤던 이상한 놈들 같은데. 그럼? 청담 이놈이 감히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덤빈다 이거지!”
자신의 몽둥이에 맞았는데도 끄떡없자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유성탄은 예전 청담을 추격하다가 만났던 이상한 놈들과 같자 곧 눈치를 챈 듯이 커다랗게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유성탄이라 해도 삼십 구에 달하는 강시는 쉽게 없앨 수 없었다.
[포천망쾌! 내가 바로 청담이다. 감히 네놈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계획을 망쳤는지 아느냐? 오늘 너와 관련이 있는 놈들은 다 죽는다. 그리고 너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놈들은 모두 뒤져서 개밥을 만들 것이다.]
유성탄은 자신의 귀에 들리는 청담의 목소리에 눈에 살기를 띠며 소리쳤다.
“청담 이놈! 만약 그랬다가는 나한테 평생 맞을 거니까 알아서 해라!”
[미친놈! 오늘 네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꿈 깨라. 거기다 곧 천주님께서 무림을 접수하면 그 다음은 황궁까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니 누가 나를 건드릴 수 있다는 말이냐?]
“천주? 천주가 누구야? 천주가 어떤 미친놈이기에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냐?”
“이놈! 감히 미천한 놈이 그분의 이름에 모욕을 가하려드느냐!”
강시들 틈에서 유성탄의 허점을 노리던 태성기가 유성탄이 천주를 놈이라 칭하자 노기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미친놈을 미친놈이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태성기가 달려들자 유성탄은 걸렸다는 듯이 육지비행법으로 옆으로 몸을 피하더니 그대로 태성기의 허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그 사이를 강시 하나가 뛰어들며 유성탄의 몽둥이를 잡았다.
“으악!”
“으아악!”
“이 씨!”
뒤쪽에서 계속 들리는 비명에 유성탄의 마음이 점점 급해지고 있었다. 탁 듣기에도 유성방도들의 비명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순간 유성탄의 몸에서 예의 괴력이 터져나왔다.
“다 죽었어!”
선천강기가 온몸을 돌면서 유성탄의 팔과 다리가 완전히 따로 놀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이럴 수가…….”
완벽하게 죽일 자신이 있던 청담은 순식간에 상황이 변하자 얼굴이 흑색으로 변해버렸다.
“사자님! 피하셔야겠습니다. 포천망쾌 저자는 인간도 아닙니다.”
채지공이 급히 청담의 팔을 잡으며 끌었다.
“놔라! 이 지경이 됐는데 나보고 천주님을 어찌 뵈라고 하는 거냐!”
채지공의 손을 뿌리친 청담의 작달막하면서도 단단한 몸이 유성탄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선천지기를 무아지경으로 사방으로 뿌리고 있는 유성탄에게 당할 수는 없었다.
“크흑!”
자신의 최고의 절기로 유성탄에게 돌진했지만 청담은 유성탄의 몸 근처에도 못 가고 선천지기에 의해 만들어진 벽에 의해 그대로 피를 뿌리며 튕겨나갔다.
하지만 유성탄은 청담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지 강시들을 다 제거하자마자 곧장 앞으로 달려가더니 유성방도들을 공격하고 있는 청담의 수하들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유성탄이 본의 아니게 처음으로 여러 명을 죽이게 된 날이었다.
“내가 그랬지? 나는 몰라도 내 주위 사람을 건드리면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는다고. 넌 많이 맞아야 해!”
청담의 수하들을 다 처치하기는 했지만 이미 많은 희생자를 낸 유성방이었다. 화가 난 유성탄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청담에게 다가가더니 살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큭큭큭! 대단하다고 인정을 해주마. 하지만 내가 죽는다고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천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절대로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아니, 내 말대로 너와 관계된 모든 사람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청담이 피를 흘리며 울부짖자 유성탄은 청담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천주란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내게 걸리면 죽어!”
“천주님은 이미 인간이 아니시다. 너 따위가 감히 욕을 입에 담을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웃기지 마라, 내가 지금까지 살았어도 천주란 놈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겠지. 천주님을 너희들은 북천존자라고 부르니까. 이미 천주님께서 세상에 포효를 한 이상 니들이 알고 모르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지옥에서 보자. 욱!”
청담은 유성탄의 얼굴에서 겁난 표정을 발견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입에 물고 있던 독단을 문 것이다. 이미 포천망쾌가 제압한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청담으로서는 그런 치욕을 당하느니 목숨을 끊는 것을 택한 것이다.
“형님!”
청담이 스스로 독을 물고 죽는 것을 본 태성기가 이미 부서져버린 자신의 다리를 손으로 잡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검으로 자신의 목을 그어버렸다.
“이거 무림의 금지 마물인 강시 아닙니까?”
일이 다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궁상개를 비롯한 무림의 여러 고수들이 담을 넘어왔다가는 장내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에 분명 철골강시거늘 어떻게 이렇게 종잇장 찢듯이 찢어버렸을꼬.”
궁상개는 아우들의 상처를 보고 있는 유성탄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침이 되도록 유성탄이 한마디도 하지 않자 모두 불안한 얼굴로 유성탄을 보다가는 결국 정자운이 물었다. 너무 촐랑대서 걱정이었는데 갑자기 진중해지자 오히려 촐랑댈 때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정자운의 물음에 머리를 박박 긁은 유성탄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어떠냐?”
밖으로 나온 유성탄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강태웅을 보며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강태웅의 안색은 심각했다. 싸움의 여파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오살 중 조황이 죽었고 황대산과 철패 역시 정자운이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생명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마동파와 표도행도 죽지는 않을 정도였지만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 방도들이 이십여 명이 죽었습니다. 신녀단도 두 명이 죽었고 천요궁도도 네 명이나 죽었습니다.”
말하는 강태웅의 얼굴에 침통한 빛이 돌자 듣고 있던 유성탄의 눈에서도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북천존자에게 도전하겠다고?”
갑자기 찾아온 유성탄의 말에 궁상개가 뜻밖인지 다시 물었다.
“도전이 아니라 도전을 받아주겠다는 말이오.”
“그 말이 그 말이고. 그런데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냐?”
“내가 천하제일의 포천망쾌 아니오? 당연히 쓸데없는 짓으로 치안을 어지럽히는 북천존자를 놔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소?”
“죽을 수도 있다.”
눈을 감고 있던 무허 진인이 눈을 뜨더니 유성탄에게 다짐하듯이 물었다.
“북천인지 뭔지 그자가 죽을 수도 있겠지요.”
유성탄은 군도로 가는 뱃머리에 서서 뭔가를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맞았어. 그 거지 중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바로 이거였어.’
대하 선사가 유성탄에게 마지막으로 혜광심어로 보낸 말은 아주 간단했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바람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으니 어찌할꼬!”
유성탄은 어떻게든 무림의 복잡함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결국 북천존자와 스스로 싸우러 가는 자신을 보며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났다.
“그래, 나 유성탄은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 천하가 나를 원하니 어떡하겠냐? 이 한 몸 희생해서 천하를 구한다면 그것 또한 남자로서 해볼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유성탄이 혼자 하듯이 하는 말을 들은 무사들은 감탄의 얼굴로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면 모두 나를 존경하겠지? 에이 씨! 재수가 없으려니까 이상하게 꼬여가지고…….’
북천존자가 살아 있는 이상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 거기다 자신을 따르는 아우들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 유성탄은 죽기로 북천존자와 한판 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배를 타고 가까워질수록 뭔가 아쉬웠다.
‘에이, 그러고 보니 아직 빙이하고 설군이는 못 먹었는데. 지금이라도 무효로 하고 돌아가? 말아?’
“포천망쾌 나리!”
“뭐요?”
“방금 나리의 독백을 들었습니다. 아마 나리의 오늘 영웅담은 무림이 존재하는 동안 세상에 회자될 것입니다. 또한 나리가 하신 말은 제가 돌아가는 대로 천하에 알리겠습니다. 나리는 진정 영웅이십니다. 꼭 이겨서 돌아오십시오.”
‘이 씨! 쓸데없이 잘난 척하려다가 또 코가 꿴 것 같네. 에이! 무효로 하고 돌아가자고 지금 말하면 완전 쪽이 되겠지?’
좀 더 생각해 보고 말해야 하는 것을 너무 빨리 멋있어 보이려고 한마디 한 것이 다시 족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포천망쾌? 청담이 말하던 그 이상하다는 포쾌 말이냐?”
“예, 지금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해라!”
“청담 형님과 태성기가 어제 포천망쾌에게 죽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청담과 태성기가 왜 이곳 군산에 와?”
“지밀단주 채지공의 말에 의하면 청담 형님께서 천주님의 앞을 방해할 최대의 적을 포천망쾌로 지목했다고 합니다. 천주님의 힘을 좀 덜어드린다고…….”
“이런 미련한… 내가 그냥 외곽에서 혼란만 좀 부추기라고 했거늘.”
말하던 북천존자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청담과 태성기의 죽음에 심한 분노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뭐야, 이거! 설마… 북천존자란 놈의 기운? 이 씨! 이번에는 진짜 죽은 것 같은데.’
안내를 받으며 올라오던 유성탄은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에 간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자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떠오르는 세 명의 아름다운 마누라 예정녀들의 얼굴에 다시 마음을 다졌다. 마누라들을 쪽팔리게 할 수는 없다는 좋은 남편의 표상이었다.
“정말 대단한 싸움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북천존자가 있는 군도의 주위에는 수십 척의 배가 떠 있었다. 유성탄을 내려놓고 간 무사가 유성탄이 했다는 독백을 전하자 무림인들은 감동하고 말았다. 그리고 너도나도 배를 타고는 섬의 주위로 몰려든 것이다.
새로운 영웅의 마지막 싸움을 멀리서나마 응원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염원대로 그 멀리서까지 싸움의 기운이 보이고 있었다.
“저게 검강 아닙니까?”
산봉우리에 무려 일 장 가까운 검기가 왔다 갔다 하자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세상에 못 자를 것이 없다는 검강이 무수히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눈에까지 보이자 북천존자의 무서움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중인들이었다.
“아이고! 검강이면… 대형은 맷집 하나로 사는 사람인데 큰일 아닙니까?”
따로 배 하나를 빌려서 타고 온 유성방도들은 검강이라는 말에 얼굴색이 변했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마동파가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로 말하자 백리빙의 눈이 꼭 감겼다.
‘유성탄, 꼭 살아 돌아와야 해. 만약 죽으면 내가 절대로 살려두지 않을 거야!’
기도를 하듯이 중얼거리는 백리빙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안타깝기는 화설군도 마찬가지인지 언제나 남들 앞에서 하는 멋진 요염한 몸짓을 잊은 듯 교미향의 손을 꾹 잡고는 떨고 있었다.
‘이 작자가…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말 안 듣는 남자는 평생 속을 썩인다 했는데. 하여간에 돌아오기만 해! 유랑, 돌아와야 해요. 그럼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뽀뽀를 마음대로 하게 해줄게요.’
‘유 상공, 최선을 다하십시오. 저는 유 상공께서 스스로 올라가셨다는 것에 너무 기쁩니다. 걱정 마세요. 저승에 가시면 저 역시 쫓아갈 것이고 다쳐서 오신다면 제가 평생 유 상공의 팔과 다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정자운은 그저 기도하는 마음뿐이었다.
“우 씨! 이놈의 영감 진짜 세네. 아이구! 아구! 죽갔다.”
싸움이 시작된 지 이미 두 시진이 지났는데 유성탄의 공격은 하나도 통하지를 않았다. 어차피 도망도 못 가는 거, 나름 열심히 싸우고 있었지만 북천존자의 무공은 정말 너무 강했다. 그런데 북천존자 역시 유성탄에 버금가게 놀라고 있었다.
“허허, 이게 무슨 해괴한……?”
흑혈신마와 대하 선사의 내장을 몽땅 부숴버린 그의 파멸신장에 유성탄이 너무나도 쉽게 연달아 맞자 북천존자는 이런 놈에게 청담과 태성기가 죽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죽겠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유성탄은 계속적으로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가져왔던 몽둥이는 이미 박살이 나서 사라졌고 유성탄이 단 하나 사용할 수 있는 절기인 육지비행법은 북천존자가 더 빠르니 무용지물이었다. 거기다 유성탄이 삼류무공을 바탕으로 펼치는 특기도 북천존자에게 놀라움은 줬지만 위협이 될 수는 없었다.
대하 선사의 몸에 수많은 검상을 남겼던 심검합일도 유성탄의 몸에 상처 하나 남기지 못하자 북천존자는 검강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실 검강은 위력은 강하지만 내공의 소모가 많아 고수들 간의 싸움에서는 거의 사용하는 적이 없었고 하수들에게는 공포조성용으로 이따금 보여주는 전시형 무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검강은 유성탄의 몸을 가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몸이 검에 갈라지자 유성탄도 놀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벌써 한 시진 가까이 검강에 맞은 유성탄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뿐 죽지는 않았다.
검강이 스치고 몸이 갈라지며 피가 보일락 하다가는 그대로 아물어버리는 유성탄의 신기한 신체에 북천존자도 질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밤낮이 지났다.
“이 씨! 태어나서 하루 종일 한 대도 못 때리고 맞기는 처음이네!”
그렇게 맞고 베이고 했는데도 유성탄은 쌩쌩하기만 하자 북천존자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내공을 이용해 유성탄의 몸을 아예 가루로 만들 생각을 한다.
“어, 이거 왜 이래!”
유성탄의 주먹을 손으로 감싸쥔 북천존자는 간단하게 유성탄의 손을 펴더니 자신의 장심을 유성탄의 손에 붙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공력을 유성탄의 몸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신의 장으로 고통이 밀려들자 유성탄은 급히 손을 떼려고 했지만 마치 접착제에 붙은 듯 옴짝달싹하지 않자 당황한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곧 입도 열기 어려워졌다. 온몸이 마치 불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뜨거워지면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 것이다.
‘아니고, 나 죽겠다. 에이 씨, 죽어도 아프게는 죽기 싫었는데…….’
속으로 울상을 지으며 중얼거린 유성탄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송 맺히기 시작했고 곧 유성탄의 얼굴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점점 일그러지던 유성탄의 입이 아예 찌그러들려는데 갑자기 북천존자의 안색이 변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거력이 자신의 힘을 맞받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강한 북천존자의 공격에 유성탄의 선천강기는 밖으로 뿜어져 나올 생각도 못하고 유성탄의 몸을 보호하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뿜어져 나왔을 선천강기가 유성탄이 아무리 흥분해도 잠잠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유성탄의 몸이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자 더 이상 보호만으로는 안 되겠는지 맞받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선천강기는 후천적으로 쌓은 공력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그 사람을 보호하는 기운이기 때문에 유성탄의 현재 마음가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격을 시작하자마자 온몸으로 퍼져 방어를 하던 모든 기운이 한곳으로 집중하자 북천존자의 기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으윽!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운이라니…….”
유성탄의 선천강기가 공격을 시작한 지 반시진쯤 지났을까. 북천존자의 입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보이더니 곧 입에서 분수처럼 피가 쏟아져나왔다. 그냥 싸웠다면 죽이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절대로 패배는 하지 않았을 북천존자가 한순간 판단 잘못으로 스스로를 망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