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군산에 이는 풍운 (77/79)

제9장 군산에 이는 풍운

“뭔 인구가 이렇게 많아?”

군산에 도착한 유성탄은 의외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 놀랐다.

“뭔 일이 있나 보지요.”

아직 북천존자에 대한 얘기를 유성탄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는 그들로서는 유성탄의 말에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에이 씨! 뭐야? 온통 무기 든 놈들뿐이네. 이렇게 되면 일이 많아지는데. 생기는 것도 없이 일이 많아지면 안 되는데.”

유성탄의 중얼거림에 강태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대형, 분명 대단한 것이 생기실 것입니다.”

“대단한 것? 황금 한 마차?”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강태웅의 말에 유성탄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반문했다. 강태웅은 명성이 생길 거라는 뜻이었지만 유성탄의 해석은 달랐다.

“형님!”

커다란 주루 안으로 들어선 유성탄은 꽉 찬 사람들을 보며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도 배가 고팠지만 자신의 세 명의 아름다운 마누라 예정녀들이 빨리 뭔가를 먹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유성탄의 모든 것은 그녀들 위주로 행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누군가가 뛰어오며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어! 아이, 얘는 싫은데…….’

유성탄은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며 다가온 남궁무를 보자 자신의 마누라 예정녀부터 쳐다봤다. 자신이 봐도 잘생긴 남궁무를 만나는 것이 그는 싫었다.

“너 여기는 어쩐 일이냐?”

“군산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기에 여기 오면 형님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니 말인즉슨 날 보려고 여기 왔다는 얘기냐?”

“당연하지요. 형님 볼 생각이 아니었다면 제가 뭐 하러 여기 옵니까?”

무림의 일보다는 협에 더 관심이 많은 남궁무는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징치하는 일에 더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천존자의 일이 터지고 천하의 무림인들이 군산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듣자 어쩌면 유성탄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온 것이었다.

“공자님, 오랜만입니다.”

강태웅도 반갑다는 듯이 포권하며 인사를 하자 남궁무도 황급히 포권으로 받았다.

“강 소협도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누군데 무 동생이 이렇게 반가워하지? 소개 좀 시켜줘.”

남궁무와 같이 온 일행인지 한 여인이 다가오더니 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유성탄 일행의 행색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으잉! 아니, 이 아름다운 낭자는 누구신… 아야!”

유성탄은 생각 외로 대단한 미모를 가지고 쭉 뻗은 몸매를 자랑하는 남궁혜미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 하다가는 백리빙이 자신의 옆구리를 꼬집자 말을 멈췄다.

남궁혜미도 눈치를 챘는지 시선을 백리빙에게 돌렸다. 언제나처럼 정자운과 화설군은 얼굴에 면사를 쓰고 있었지만 면사를 착용하는 것을 답답해하는 백리빙은 얼굴을 내놓고 있었다. 남궁혜미의 눈이 커다래졌다. 백리빙의 미모가 무림오미 소리를 듣는 자신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호호! 오늘 나 남궁혜미가 안목을 넓히는 날이네요. 여기 여협은 누구신가요? 정말 예쁘시네.”

남자같이 걸걸하다고 소문이 난 남궁혜미답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었다.

“전 신녀궁의 백리빙이라고 합니다.”

“무산 독봉! 어마,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괜찮습니다. 다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남궁 언니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남궁세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남궁혜미였다. 무림 오미의 한 명이기도 했지만 삼십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혼인도 안 하고 모험을 즐기는 그녀의 성격 탓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오미에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를 보았던 젊은 무림의 남자들은 그녀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그녀의 허물없이 대하는 행동에 매력을 느껴 오미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개성적인 미인이었다.

주루가 꽉 차 있다 해도 남궁세가 정도면 어떻게든 자리하나 마련하기는 간단한 법이었다. 남궁무가 손짓을 하자 세가의 무사들이 주인을 만나 뭔가 얘기를 나누더니 안채를 하나 내주었다. 주루와 객잔을 겸하고 있는 곳인지라 아예 독채를 하나 전세를 낸 것이다.

“너 재주 좋다.”

안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자리에 털썩 앉은 유성탄이 남궁무를 보며 말하자 남궁무가 씩 웃는다. 상당히 큰 자리가 준비되어 있어서 아우들과 오살까지 다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 내가 원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확실히 하자.”

남궁혜미는 유성탄의 말에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쳐다보았지만 유성탄을 아는 모든 사람은 그의 순발력에 감탄을 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마음껏 드십시오. 돈은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남궁무가 알아들었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유성탄이 뭔가 찝찝한 얼굴로 내뱉듯이 말했다.

“니가 아무리 그래 봐야 내가 더 멋있거든 그러니 괜히 멋있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자, 그러면 모두 오늘은 양껏 제일 비싼 걸로 마음대로 시켜라.”

쪼잔한 유성탄이 또 남궁무를 보자 열등감이 생기는지 쓸데없는 트집을 잡더니 본전을 찾으려 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남자 자식이 아주 쪼잔하네.’

시원시원한 성격의 남궁혜미가 유성탄의 행동과 말이 영 마음에 안 드는지 마땅찮은 얼굴로 중얼거리더니 남궁무에게 물었다.

“자, 이제 인사 좀 시켜주지.”

“아참! 형님 이분은 초롱검객으로 불리시는 남궁후생 숙부님이십니다. 전에 보셨던 남궁후기 숙부님의 형님 되시고요. 그리고 여기 이분은 무림 오미 중 하나로 유명하신 남궁세가의 꽃! 남궁혜미 누님이십니다.”

원래 과묵한 남궁후생은 말은 없었지만 아까부터 계속 유성탄의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유성탄 일행의 행색이 너무 서로 간에 조화가 되지 않으니 누구인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무보다 멋있게 보이려는 강박관념으로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던 유성탄은 정자운이 허리를 쿡 찌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일어서더니 우선 정자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는 무산신녀궁의 궁주 정자운, 여기는 천요궁의 화설군 그리고 얘는 이미 말했고 여기는 내 아우들인 강태웅, 장우왕, 황대산, 마동파, 철패 그리고 표도행이고 여기는 본방의 방주의 호법을 받는 방주호법 오살 그리고… 대충 이렇소!”

말하다가 주위를 둘러본 유성탄은 다 소개가 끝난 것 같자 말을 끝내고는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세상에… 무산신녀와 천요색화라니! 호호호, 정말 여기에 오기를 너무 잘했군요. 호호호!”

정자운과 화설군이라는 말을 듣자 남궁혜미가 너무 뜻밖인지 반가워하더니 유성탄을 보고 한마디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소개를 안 하시네요.”

‘잉! 실수다. 씨! 이거 내가 수를 잘못 센다는 게 들킨 것은 아니겠지.’

“하하하! 내가 언제나 좌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렇게 실수하는 척을 좀 합니다.”

변명한다는 것이 누구라도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게 말한 유성탄이 목소리를 깔면서 다시 말했다.

“내가 겸손해서 내 소개는 잘 안 하는데, 흠! 세상 사람들이 나를 신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천재라고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나도 협의를 안다고 타고난 협객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호호호! 정말 겸손하시네요. 그런데 서두가 너무 기신 것 같네요. 우선 성명부터 말씀하시는 게 순서일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도 마땅치 않은 유성탄이 겸손을 핑계로 엄청나게 잘난 척을 하자 남궁혜미가 말을 끊었다.

‘우이 씨! 저게 늘씬해서 좀 예뻐해 주려고 했더니… 넌 내 취향에서 지운다. 씨!’

“낭인칠웅의 대형이자 유성방의 방주이며 정자운의 남편이고 화설군의 남편이고 백리빙의 남편이고 거기다 황제와 친구 먹는 포천망쾌 유성탄이오.”

“아니! 형님이 포천망쾌이셨습니까? 난 갑자기 포쾌 복장을 하고 계셔서 변복을 한 이유가 뭘까 했는데…….”

화려하게 자신의 신분을 소개한 유성탄이 자리에 앉자 남궁무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고 남궁후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포권을 하며 다시 인사를 했다.

“포천망쾌에 대한 소문을 너무 많이 들어서 한번 만났으면 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니 반갑소이다.”

‘저 작자가 포천망쾌라고? 아무리 그렇다 쳐도 세상에 오미 중의 둘이, 거기다 오미와 맞먹는다는 무산 독봉까지 저자의 아내라니… 내가 보지 못한 무슨 매력이 있나?’

아무리 남자 같은 남궁혜미였지만 역시 여자인지라 궁금한 것이 달랐다.

“형님, 생각대로 대단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여자들은 여자끼리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른 방으로 옮겨갔고 남자들끼리 모이자 남궁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한 듯이 말하자 유성탄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를 않으니 어쩌냐? 이곳 군산의 치안을 지켜달라고 어찌나 사정을 하는지 어쩔 수 없이 불쌍해서 왔다.”

“누가 사정을 해요?”

“누군 누구야! 아주 중요한 사람이지.”

“그러니까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고요.”

“넌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냐? 나라의 비밀을 알면 다친다.”

“후후! 알겠습니다.”

‘이 자식이! 후후가 뭐야, 씨! 웃음이 기분 나쁘네.’

* * *

“제가 먼저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군산은 동정호 북쪽에 위치한 섬이었다. 물론 하나의 섬이 아니라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群島)였다. 북천존자는 군산의 섬 중 한곳을 지정해서 그곳으로 오면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내를 해줄 것이라고 했다. 물론 함정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상대가 죽는다면 시체는 다시 돌려줄 것이라고 선포했다.

정상적인 일대일 비무로 죽은 것과 함정이나 여러 명에게 협공당하여 죽은 것은 시체를 보면 곧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지금 무허 진인은 북천존자에게 도전하겠다고 나선 대하 선사에게 자신이 먼저 도전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진인께서는 빈승이 죽은 후에 뒤처리를 맡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진인과 빈승의 무공은 여러 가지로 다릅니다. 상대의 무공의 흔적을 온전히 가져오는 데는 금강신공을 익힌 내 몸이 더 나을 것입니다.”

“무량수불!”

대하 선사는 이미 죽을 것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아주 담담했다. 그는 자신의 육체가 금강신공으로 단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간한 상처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하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군산 전체에는 무림 십대고수 중 수좌인 대하 선사가 북천존자에게 도전을 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성탄은 사방에서 무림인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절강에 이상한 포쾌 하나가 사방을 휘젓고 다닌다는 소문은 이미 퍼져 있었지만 무림인들이 직접 포천망쾌의 위력을 직접 맛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무림인들의 뇌리에도 포천망쾌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오늘 무슨 날이냐?”

잠깐 밖을 돌고 돌아온 유성탄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객잔으로 돌아오더니 역시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아우들에게 물었다. 밖도 뭔가 이상하게 엄숙한 분위기더니 안까지 이상했다.

“쟤들은 또 왜 저러냐?”

유성탄은 남궁세가 사람들이 묵고 있는 방 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리자 짜증난다는 듯이 물었다.

“이리 들어와 봐요.”

갑자기 들려오는 정자운의 목소리에 유성탄이 좋아서 뛰어 들어간다. 한 번 일을 치른 후 뭔가 됐다고 생각한 유성탄이 다시 한 번을 외치며 계속적으로 기회를 엿보았지만 정자운은 오히려 조금의 허술함도 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자 유성탄은 또 다른 상상을 하며 뛰어 들어간 것이다.

“아니, 이 영감이! 내가 벼룩이나 빈대 생기면 안 된다고 오지 말라고 했지요! 이상하게 안에서 궁상스런 기운이 느껴져서 이상하다 했더니. 씨!”

안에 들어선 유성탄은 인상을 찌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이놈아! 지금 무림의 큰 별이 지셨다. 천하가 다 슬퍼하는데 그런 소리가 나오냐?”

“영감! 아침이 되면 별은 크건 작건 다 지는 거요. 대낮에 별이 나타나는 것 본 적 있소? 하여간에 누가 거지 아니랄까 봐 무식해 가지고는!”

“내가 말하는 별은 그런 별이 아니다.”

“별이면 별이지 뭐가 다르다고.”

“유 상공, 우선 앉으세요.”

정자운의 말에 유성탄은 우선 앉았다.

‘신기하게 자운이 말은 잘 듣는단 말이야.’

유성탄이 고분고분 자리에 앉자 궁상개가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지금 무림의 큰 어른이 돌아가셨어요. 정말 훌륭하신 분이셨는데… 그분 시체가 곧 도착할 겁니다.”

“뭐! 시체가 왜?”

“니가 포쾌잖냐? 당연히 조사를 해야지!”

“난 특수포쾌지 수사포쾌가 아니란 말이요. 시체를 조사하려면 고남보를 불러야지 왜 나한테 그러는 거요?”

“지금 군산에 포쾌는 너밖에 없다.”

“무슨 소리요? 관아에 가면 포쾌가 수두룩하게 있는데! 내가 불러다 달라면 불러주겠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아가씨나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셔야지요.”

“내가 뭘?”

백리빙의 외침에 유성탄이 볼멘소리로 물었다.

“생각해 보세요. 저나 아가씨 그리고 천요궁주님 모두 무림에서는 알아주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우리들의 낭군이라는 분이 이렇게 시체나 겁내고 하면 어떡하느냐고요. 전부 다 우리한테 시집 잘못 갔다고 할 거 아니에요!”

“시체 어디 있어? 완벽하게 조사해서 범인을 잡아들이겠어.”

백리빙의 말이 끝나자 달라진 유성탄의 말에 궁상개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더니 유성탄을 불쌍한 듯이 쳐다보았다.

“그래요. 나 화설군에게 사람들이 천하제일미라고 해요. 그런 나의 낭군이 되려면 최소한 천하제일은 돼야지요.”

‘씨! 최소한 천하제일이면 최대한은 뭐가 돼야 하는 거야. 아… 이거 마누라들이 나를 너무 잘 아니까 그것도 피곤하네.’

유성탄은 그녀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소한 천하제일로 본다고 생각하자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이구나.”

“영감은……?”

“유 상공!”

“유랑!”

십팔나한의 호위 속에 대하 선사의 시체를 운반해 온 무허 진인을 본 유성탄의 입에서 영감 소리가 나오자, 이미 궁상개로부터 무당의 무허 진인이 직접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정자운과 화설군의 입에서 동시에 유성탄을 부르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왜?”

“이분이 어떤 분이신데 그런 무례를 저지르시는 거예요?”

정자운의 놀람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너무나도 공손하게 대하는 남궁후생이나 심지어 궁상개조차도 무허 진인의 앞에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워하자 유성탄은 무허 진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이 영감하고 나하고 무지 친해.”

‘어……?’

대하 선사는 몸에 수많은 상처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표정이 아주 평화로웠다. 온몸을 덮었던 피는 이미 십팔나한이 깨끗하게 닦아놓아서 그런지 몸의 상처가 아주 또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유성탄은 대하 선사의 얼굴을 보자 약간 충격을 받은 듯싶었다. 바로 자신의 뇌리를 어지럽히던 거지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놈이 이 불쌍한 노인을… 죽었어. 씨!”

주름이 가득한 대하 선사의 얼굴을 보며 유성탄의 얼굴에 분노가 나타났다. 힘도 없이 간신히 불경이나 외어서 동전 한 문 벌어먹고 사는 여리디여린 중을 잔인하게 죽인 누군가에게 엄청 화가 난 것이다.

“이게… 사람의 손으로 한 짓이란 말입니까?”

대하 선사의 옷을 벗기자 나타난 검상에 옆에서 보던 남궁후생의 입에서 경악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자신도 검객 소리를 듣는 터였고 남궁세가 자체가 검가였기 때문에 나름 검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믿었던 그였지만 대하 선사의 몸을 가르고 있는 검의 흔적은 어떻게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검이 좌우상하를 자유자재로 움직였습니다. 이게 가능한 건가요?”

남궁무도 놀란 눈으로 무허 진인을 보며 말했다.

“가능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검을 움직이려면 검신일체 아니 심검일체가 돼야 할 겁니다.”

무허 진인의 옆에 서 있던 청오 진인이 대신 대답을 했다. 검은 찌른 후에 베기나 휘두르기로의 변화는 어느 정도 수련을 하면 가능하지만 수직으로 내려치던 검을 갑자기 수평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전설의 심검일체가 되면 검이 마음이고 마음이 검이다 보니 생각으로 검의 변화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전설일 뿐 심검일체를 실현했다는 고수는 아직까지 소문으로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심검일체라면 무공의 끝이라고 하는 무공 아닙니까?”

“전해지기는 그렇지요. 심검일체가 가능하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고 검이 없이도 검식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말 아닙니까?”

“그가 누구야? 세상에 최소한 천하제일인 나 포천망쾌 유성탄이 있는데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듣던 유성탄이 마누라 예정녀들에게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와 싸울 일도 없고 볼 일도 없는데 큰소리나 쳐야지. 히히히! 조 귀여운 것들 놀라는 눈 좀 봐라. 존경한다는 게 팍팍 보이는구먼.’

방금 죽인 자를 반드시 잡겠다고 큰소리치던 유성탄은 이미 자신이 한 말은 잊었는지 그란 자와 싸우지 않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큰소리쳤다.

그녀들의 눈이 존경이 아닌 걱정 어린 눈이란 것은 생각도 못한 유성탄이었다.

“몸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에요.”

시체를 직접 조사하던 정자운이 유성탄의 말에 쳐다보다가는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모두 그녀를 쳐다보았다.

“물론 검들이 몸속을 다 헤집어놨어요.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내장이 으스러지다 못해 거의 녹아버렸습니다. 검을 맞기 전에 이미 대사님께서는 회생키 어려운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의 눈에 절망의 빛이 어리더니 시선이 유성탄을 향했다.

‘잉! 뭐야? 부담스럽게 왜 나를 보는 거지? 이거 이상하게 기분이 으스스해지는데…….’

눈치 없는 유성탄도 뭔가 느꼈는지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래, 최소한 천하제일인 유성탄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유성탄만 믿자고.”

궁상개가 유성탄이 시선을 옮기기 전에 후다닥 징을 박았다.

“하긴, 포천망쾌가 있는데 다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요.”

남궁혜미가 은근히 얄미웠던 유성탄을 약 올릴 심산으로 한마디 더하자 이상하게 분위기가 유성탄밖에 없다는 듯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래? 내가 언제 그자란 자를 이긴다고 그랬어. 내 말은 최소한 그자에게 죽는다는 말이었다고! 아까는 내가 속이 안 좋아서 잘못 말한 거야.”

마누라들에게 잘난 척 한번 하려고 꺼낸 말이 잘못했다가 진짜가 되어버릴 듯하자 유성탄이 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횡설수설이 되고 있었다. 유성탄이 얼마나 다급한지 알 수 있었다.

“제 생각도 이건 아니라고 봐요. 누가 뭐래도 이분은 제가 사랑하는 제 낭군이 될 분입니다. 무림을 위해 이분이 어느 정도 힘을 쓰는 것은 저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힘을 쓰는 정도가 아니라 자살을 하러 가는 것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아가씨, 전 유 상공께서 이 일에 끼어드는 것을 더 이상은 찬성하지 못하겠어요.”

뜻밖에 언제나 유성탄에게 탁탁대던 백리빙이 좌중 앞에서 유성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하고 반대의 뜻을 표하자 유성탄의 눈에 감동의 빛이 나타났다.

“저 역시 유랑께서 이 일에 끼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가 없네요. 천요궁의 궁주로서 태군은 천하제일의 기남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저도 유랑께서 죽는 것은 원치 않아요. 유랑께서 북천존자와 싸우러 간다면 제 몸을 던져서라도 전 막겠습니다.”

이번에는 화설군이 나섰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 것으로 보아 대하 선사의 시체를 보면서 충격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유성탄을 움직일 수 있는 세 여인 중 둘이 반대를 하고 나서자 궁상개의 눈이 정자운을 향했다. 이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궁상 어르신께는 죄송하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돕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에 제 상공을 밀어넣을 수는 없겠네요. 죄송합니다.”

“하하하! 역시 내가 마누라는 잘 얻었다니까.”

무허 진인조차도 대하 선사의 시체를 보고는 유성탄에게 가서 싸워달라고 종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대하 선사의 시체를 운구해서 나서는 그의 얼굴에는 고심의 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궁상개는 물론 남궁세가의 사람들도 무허 진인의 뒤를 쫓아나갔다. 이제 군산에 모인 여러 문파의 대표들을 불러 의논할 것이었다.

그들이 떠나자 쪼르륵 여인들이 들어간 방으로 쫓아 들어간 유성탄은 계속 행복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지금 모든 문파의 고수들은 무당이 있는 중앙통으로 몰려갔습니다. 현재 포천망쾌와 그의 수하들만이 객잔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채지공의 보고를 듣던 청담의 눈에 살기가 나타났다.

“지금 모두 몇 명이나 동원됐느냐?”

“광밀단 이십이 명, 야밀단 사십이 명 그리고 제밀단 삼십 명, 총 팔십이 명입니다. 거기에 철골강시가 여덟 구, 초벌강시가 이십이 구입니다. 남은 강시는 모두 천주님이 계신 주위를 호위하도록 했습니다.”

“알겠다. 완벽하게 포위를 한 후에 그 객잔 안에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살려두지 마라.”

“알겠습니다. 반시진 후에 공격에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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