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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왜항의 풍운 (74/79)

제6장 왜항의 풍운

“왜관에서 유성탄이 또 큰 공을 세운 것 같습니다.”

팔지신타가 급보로 연락을 받았는지 급히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무슨 일인가요?”

“춘약을 공급하던 놈들을 소탕한 모양입니다.”

“왜관에 도착한 것이 어제 아침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어떻게 벌써……?”

“그러게 말입니다. 관부에서 그렇게 뒤져도 못 찾는 곳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았는지 하여간 재주가 비상한 것 같습니다.”

“재주가 아니에요. 제가 들은 것이 있어요. 유성탄에게 맞으면 불지 않고는 못 배긴다고요. 하여간 왜관에 보낸 이유가 그것은 아니었지만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한 셈이 되었네요. 이미 사방에 퍼져나간 춘약도 빨리 찾으라고 하세요. 그리고 춘약을 공급한 놈들의 정체는 알아냈나요?”

“이번에도 청담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또요? 아무래도 청담이라는 자를 잡아야 반역세력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소탕했다면 청담이라는 자도 잡았나요?”

“그자는 놓친 모양입니다.”

“딴 놈들은 잘도 괴롭히는 작자가 청담 그자는 왜 못 잡는데요!”

“그게… 이상하게 추적을 하지 않더랍니다.”

“왜요!”

“전들 알겠습니까?”

“하여간에 짜증나는 놈이야.”

“그것보다, 문제가…….”

“문제요?”

“유성탄이 압수한 춘약을…….”

* * *

“아이, 쪽팔려서…….”

“그러게 말입니다. 거기다 이런 식으로 다니면 사방의 눈이 다 우리에게 쏠릴 텐데요.”

“눈이 쏠리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저게 다 춘약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우리는 당장 공적으로 몰릴 거다.”

방도들이 몰고 가는 춘약이 실린 마차의 뒤를 따르며 마동파와 표도행이 나누는 대화에 황대산이 끼어들며 걱정 어린 말을 했다.

마차에 가득 실린 춘약 더미에는 사방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유성탄 거〉

〈이거 건드리면 죽는다〉

〈포천망쾌의 물건〉

〈만지지 마시오〉

〈누구든 손대면 삼 일 밤낮 나한테 맞는다〉

마차에 붙어 있는 글귀들이었다. 그리고 유성탄은 춘약 더미 위에 비스듬히 누워 코를 후비고 있었다.

“후후후! 왜, 걱정되느냐?”

뒤에 나타난 강태웅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태웅 형님께서는 뭐 하러 저런 글을 써주셨습니까?”

“대형이 원하신 일이다.”

“그래도…….”

“난 기분이 좋기만 하다. 예전 생각을 해봐라. 어디를 가든 우리는 고개도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했다. 어깨에 힘만 줘도 무림제파의 무사들에게 징치당하고 양민들은 우리를 마치 마적 보듯 하고 우리가 언제 큰소리 한번 쳐보았더냐? 지금 대형께서는 천하에 외치시는 중이다. ‘봐라! 유성탄이 여기 있다. 누구든 까불지 마라. 내가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난 지금 대형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

“하지만 저게 춘약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춘약이건 황금덩어리건 심지어는 무림인들이 가장 원하는 비급 더미라 해도 걱정할 것 없다. 무림은 강자존의 세계다. 이미 대형은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봐라! 우리가 저렇게 했다면 이미 어디선가 나타난 무림인들에게 칼을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이렇게 돌아다닌 지 한 시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느냐?”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하하하! 그렇다면 우리도 이렇게 걱정만 할 이유가 없겠군요.”

“아니, 저 영감이 왜 또 나타난 거야?”

춘약을 어떻게 사용해야 잘 사용했다는 말을 들을까 하고는 행복한 계획을 짜고 있던 유성탄은 갑자기 몸에 익은 기운과 함께 코로 스며드는 악취를 맡자 몸을 일으키며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행복하냐?”

유성탄이 앉아 있던 춘약 더미 위로 훌쩍 뛰어오른 궁상개가 물었다.

“어디를 올라오는 거요? 이거 굉장히 귀중한 물건인데 영감 냄새가 배면 값이 떨어진단 말이요. 내려가시오.”

“야, 이놈아!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게 춘약이란 거다. 난 내 몸에 춘약이 묻어서 내 옷을 더럽힐까 그게 더 걱정이다.”

‘이놈의 영감이… 하여간에 개코라니까. 이게 춘약인 것은 어떻게 안 거야. 씨!’

“너 이렇게 춘약을 한 봉지도 아니고 한 마차씩 백주대낮에 끌고 다니다가는 무림공적으로 찍혀서 평생 도망 다녀야 한다.”

“어떤 놈이 감히 나 포천망쾌를 건드린다는 거요? 건드리기만 해, 그럼 내가 평생 쫓아다니면서 괴롭힐 거니까!”

“야, 이놈아! 말 좀 들어라. 천하를 다 적으로 삼을 거냐?”

“천하란 놈이 어디 사는 놈이요? 도대체 얼마나 세기에 영감이 이러는지 몰라도 난 하나도 안 무섭소.”

“정말 말 안 통한다. 하여간에 석두라고 하기에도 아까운 놈이야. 그래, 이제부터는 철두라고 불러야겠다.”

“그따위 시답잖은 소리 하려거든 빨리 가시오. 나도 왜관에서 빨리 일을 마치고 어디 가야 하니까.”

“니가 갈 데가 어디 있냐? 내가 조사해 봤는데 너 갈 데가 없어서 그냥 사방을 쏘다니는 중이라고 결론이 났다.”

“이 영감이! 이래 봬도 나 엄청 바쁜 사람이요. 사방에서 오라는 사람투성이지.”

“그만두자. 네놈하고는 말하면 말할수록 짜증만 나니까. 용건만 말해 주마. 여기서 제일 큰 왜항에 가면 커다란 창고가 하나 있다. 내 생각에 니가 찾는 곳이 거기인 것 같으니까 가봐라.”

“영감이 나도 모르는 내가 찾는 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아오?”

“척 보면 탁이지! 간다.”

‘저 영감이 분명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니, 난 남자가 나 좋아하는 것 싫은데.’

궁상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유성탄에게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유성탄 역시 궁상개가 뭐라고 하건 받아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야! 왜항이 어디 있는지 아냐?”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자.”

“대형, 왜 그쪽으로 가시는데요?”

마동파가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내가 사방을 보다 보니까 거기에 가면 우리가 찾는 것을 찾을 수 있겠더라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 자식아! 척 보면 탁이지! 하여간에 아직도 대형에 대해서 잘 몰라요.”

‘궁상개 선배님께서 와서 가르쳐주고 간 것이 분명하건만. 하여간에 잘난 척은 정말 수준급이시라니까.’

“그런데 정말로 연 공자님께서 대형께 여기로 가라고 한 이유를 모르십니까?”

“몰라. 그 자식 무조건 왜관으로 가라고만 하더라고.”

강태웅은 유성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급히 소리쳤다.

“자, 빨리 왜항으로 가자!”

하지만 춘약을 가득 실은 마차를 끄는 말들은 강태웅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어기적거리며 천천히 움직일 뿐이었다.

* * *

“어떻더냐?”

“저로서는 상대할 수가 없는 자였습니다.”

상당히 멀리 도망친 청담은 유성탄이 쫓아오는 기색이 없자 그때서야 태성기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아주 악질적인 양아치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보면 볼수록 강해지더니 지금은 어찌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만약 원래부터 강했는데 숨기고 있었다면 문제가 없는데 진짜로 강해지고 있는 거라면 십 년 안에 천주님과 맞먹을 정도가 될 수도 있다. 현재로는 그자가 가장 우리의 대업에 방해가 될 자다.”

“천주님은 이십대 때 이미 천하를 한번 평정한 적이 있으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최소한 열 배는 더 강해지셨고요. 아무려면 그따위 인물이…….”

“지금같이 강해진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여간에 그놈 때문에 이십 년 가까이 계획해 온 대업들이 모두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내 다른 놈은 몰라도 그놈만은 꼭 죽이고 말 것이다.”

말하는 청담의 목소리에서는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그럼 이제 어찌하실 계획이십니까?”

“왜관에 왜국에서 온 무사들이 수십이 있다. 얼마 후 청진무관의 관주의 육십회 생일이 있는데 그자가 화산의 속가제자 중 가장 배분이 높다. 아마 화산에서 장로 정도 되는 고위급을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절강의 여러 문파와 남궁세가와도 친하니 남궁세가에서도 분명 사람을 보낼 것이다. 그때를 맞춰 그들을 투입하여 혈겁을 일으킬 예정이었다.”

“그들만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거기에는 금모전의 무사들이 마룡방으로 변복을 하고 참가하기로 되어 있다. 청진무관과 마룡방은 그동안에도 여러 가지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정파에서는 마룡방이 구룡회와 싸움이 붙은 김에 청진무관을 친 것으로 알 것이다.”

“청진무관 정도로 정파에서 마룡방을 칠까요?”

“정파 놈들이 얼마나 계산적인데 그 정도로 마룡방을 치겠느냐? 아마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는 어느 정도 이익을 챙기고 넘어가겠지. 그러나 그 하나만이라면 그렇겠지만 동시 다발적으로 일이 일어나면 좀 달라질 것이다.”

중원의 각 성에는 보통 정파가 하나 정도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천같이 무려 셋이나 큰 정파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사파는 아예 힘도 못 쓰는 지역까지 있었다. 그런데 상권이 발달한 절강에는 신기할 정도로 큰 정파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상관세가가 제법 큰 문파로 자리 잡고는 있었지만 명문대파라고 하기에는 그 무게가 모자랐다. 오대사파 중 두 개가 절강에서 활개를 펼 수 있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곧 상관세가에 큰 혈겁이 있을 것이다. 원래는 타격만 좀 입히고 빠져나오는 계획이었는데 천주님께서 새로운 계획을 짜라고 하니 아예 상관세가를 절강에서 지워버리는 것으로 바꿨다.”

“상관세가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이미 서역에서 많은 무사들이 들어왔다. 구룡회로 변복을 시키고 머리에 가발만 씌우면 된다. 상관세가에서 구룡회에서 마룡방의 무력집단 하나를 다 죽이는 것을 봤다고 폭로하면서 구룡회에서 이를 갈고 있으니 역시 정파에서는 그대로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정파에서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이니 정사대전이 바로 이 절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 * *

“지정우하고 고화월만 남고 나머지는 다 돌아가라.”

왜항에 도착한 유성탄은 궁상개가 말해 준 창고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당연히 뱃사람들로 붐벼야 할 창고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런데 유성탄이 갑자기 강태웅에게 모두를 데리고 돌아가라고 하고 있었다.

“대형!”

“왜?”

“혹시 저희들보고 돌아가라는 이유가 적들이 강해서입니까?”

“뭐, 강하다기보다… 그냥 돌아가라.”

“대형, 저희들이 대형을 모신 이후로 제대로 대형을 보필한 적이 없습니다. 대형을 위해서라면 저희들은 목숨 따위는 얼마든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희도 같이 싸우겠습니다.”

“얘가 갈수록 무서운 소리만 하네? 야!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따위라니? 그렇게 인명을 경시하면 못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대형, 그렇다면 금자 만 냥하고 내 목숨하고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뭘 택하시겠습니까?”

마동파가 유성탄의 말이 달라지자 슬쩍 물었다.

“넌 어째 물어도 그렇게 어려운 것을 묻냐?”

유성탄의 대답에 모두의 입에서 파안대소가 터져나왔다. 목숨이 어쩌고 하던 대화가 금방 화기애애하게 변하자 유성탄이 다짐하듯이 물었다.

“좋다. 그럼 니들도 같이 싸우는데, 대신 다쳐도 치료비는 나한테 청구하면 안 되고 죽어도 장례비는 난 안 대준다. 그래도 좋아?”

“좋습니다.”

아우들은 물론 듣고 있던 유성방도들까지 커다랗게 대답하자 유성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정우를 보며 말했다.

“지정우, 아무리 봐도 전에 니가 고화월이하고 꼴값 떨 때 니들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놈들하고 같은 놈들 같거든.”

지정우와 고화월은 유성탄의 말을 듣자 얼굴이 약간 벌게졌다. 그 당시 일이 생각난 것이다.

“우리 그때 꼴값 떤 거 아니거든요!”

고화월이 기분 나쁜 듯이 말하자 유성탄이 고화월을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알았어. 꼴값이 아니라 사랑타령이라고 하자, 어찌됐건 니들이 먼저 공격에 들어가야겠다. 그리고 너희들은 준비하고 있다가 튀어나오는 놈들이 있으면 그대로 작살내라.”

일방의 방주로 보기에는 너무 무식하게 명을 내리는 유성탄을 보며 모두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무기들을 뽑아 들었다.

“나하고 고화월이 저놈들 때문에 완전 쪽팔려버렸다. 오늘 우리 오살이 왜 중원제일의 살수로 불렸는지 보여주자!”

지정우의 외침과 함께 오살이 스르르 사라졌다. 살수비기인 은잠술을 펼친 것이다.

“야! 쟤들 언제부터 중원제일의 살수가 된 거냐? 정일호한테는 꼼짝도 못하더만.”

“원래 싸움에 임할 때는 저러는 법입니다. 그래야 힘이 나니까요.”

유성탄의 말에 황대산이 대답했다.

“그럼 니들도 싸움할 때마다 중원제일의 낭인이라고 뻥치면서 달려들었냐? 니들 뻥 같은 거 너무 치면 못쓴다.”

지정우를 선두로 은잠술을 이용하며 창고로 다가가던 오살은 얼마 안 가 그들과 같은 살수들이 창고 주위에 여럿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잠술이라는 것이 몸체를 완전히 투명인간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어딘가에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뻔한 지형에 한둘이라면 몰라도 그 수가 십여 명이 넘으면 몸을 숨길 장소 역시 뻔해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유성탄의 명에 따라 아우들이 창고 주위로 산개했다.

“곧 시작할 것 같으니까 죽지 마라!”

싸움에서 기본은 선제공격이었고 선제공격의 핵심은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시끄러운 유성탄에게서 선제공격의 이점을 얻기란 애당초 어려웠다.

창고 안은 밖의 허술함과는 달리 아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수많은 방으로 나뉘어 있었고 어떤 방에서는 남녀 간의 운우의 정을 나누는 듯한 교음이 스며나오는 곳도 있었다.

“밖에 웬 놈들이 나타나서 시끄럽게 구는데 복장이 포쾌 복장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직 우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포쾌가 무슨 일로 온 거지?”

보고를 받은 다께미야는 검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죽을 상황을 수없이 겪은 그가 포쾌 따위를 무서워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들의 정체를 숨겨야 할 시기였다.

왜국은 지금 전쟁 중이었고 다께미야가 충성을 바치는 주인은 그들을 보내면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이미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일이 끝나면 나머지 돈을 받아 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하지만 아무도 살아서 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는 믿지 않았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받은 액수가 엄청났던 것이다.

“그냥 평상적인 순찰일지도 모르니 잠시 두고 봐라.”

쾅!

다께미야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창고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완전히 지워버려라!”

커다란 창고가 부서질 듯이 울리자 다께미야는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모두 죽이라고 다시 말을 바꿨다.

아우들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유성탄은 그대로 몸을 날리더니 창고 문을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어찌나 세게 받았는지 문은 완전히 작살이 났고 커다란 창고의 지붕까지 흔들렸다. 그러자 곧 이마를 밀고 머리를 뒤로 묶은 왜국의 무사들이 안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별의별 이상한 놈들을 다 봤지만 이놈들은 볼수록 이상하게 생겼단 말이야. 앞머리는 왜 밀어버린 거야? 밀려면 다 밀지. 에잉, 괜히 보는 내가 짜증이 나네.”

왜국의 무사들 특유의 모습이 영 거슬렸는지 한마디 내뱉은 유성탄은 생각보다 왜도의 공격이 날카로운 듯하자 급히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놈들은 어제 본 놈들보다 많이 강한데? 야, 니들 조심해라!”

다시 한 번 아우들에게 주의를 준 유성탄은 교묘하게 도 사이를 빠져나가더니 그에게 도를 휘두른 세 왜인의 민 이마를 몽둥이로 쳐버렸다. 반짝거릴 정도로 확실하게 민 이마가 왠지 몽둥이로 때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유성탄은 세 놈을 때려눕힌 후 다시 한 번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곧장 몸을 날려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유성방도를 향해 달려가는 놈들의 뒤통수를 갈겼다. 낭인칠웅 정도라면 모를까, 방도들로서는 상대하기가 어려운 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방도들에게 다가가던 왜인들을 쓰러뜨린 유성탄은 주위를 다시 둘러보다가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여간에 하고많은 무기 중에 왜 도끼를 쓰는 거야. 에이…….”

단칼에 승부를 내는 왜국의 도법은 빠르기가 생명이었다. 이미 상당한 내공을 사용하는 강태웅은 여유 있게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고 마동파와 표도행도 생각 외로 잘 받아치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장우왕과 황대산 그리고 철패는 계속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중 도끼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장우왕이 가장 불안했다. 왜도를 상대하기에 도끼는 여러모로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아이 씨! 저거 죽었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유성탄은 장우왕의 면상을 향해 떨어지는 도를 발견했다. 한 명을 간신히 상대하는 장우왕을 먼저 처리할 생각인지 또 한 놈이 갑자기 끼어들더니 장우왕의 빈틈을 노린 것이다.

“으악!”

촌각을 다투는 순간 놀랍게도 유성탄의 몸이 어느새 도와 장우왕의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상대를 때려눕힌다 해도 도는 그냥 떨어질 상황이었으니 장우왕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는데 비명은 유성탄이 질렀다.

상대를 때려눕힐 시간조차 없자 유성탄이 다시 자신의 몸을 믿고는 도를 몸으로 받아버린 것이다.

“대형! 괜찮으십니까?”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를 유성탄이 몸으로 받아버리고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자 장우왕이 감격과 함께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너 저렇게 날카로운 도를 몸으로 막았는데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냐?”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괜찮을 수가 없지요. 하지만 대형은 신인(神人)이시잖습니까? 대형이야 끄떡없지요.”

“신인? 흠 듣기 나쁜 소리는 아니군. 어쨌든 이따가 새 옷 사줘야 한다.”

유성탄의 비명은 아프거나 다쳐서가 아니라 하필 새 옷을 입고 나왔는데 등 쪽이 완전히 반으로 갈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옷이 아까워서 지른 비명이었던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열 벌 사드리겠습니다.”

“쓰는 김에 스무 벌은 안 되겠냐?”

“대형, 또 공격입니다!”

생사를 가르는 싸움터에서 쓸데없는 잔머리를 굴리는 유성탄의 목을 향해 잠시 어리둥절하던 왜인의 도가 다시 날아온 것이다.

“이 자식들이 지금 옷이 스무 벌이 생기려는 찰나였는데!”

그대로 선 채로 몸이 확 돌아간 유성탄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도를 보더니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정말로 떨어지는 도를 손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도를 잡힌 왜인은 알 수 없는 언어로 크게 소리치더니 도를 놓고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러고는 이마에 큰 충격을 느끼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이곳저곳으로 몸을 날리면서 몇 명 더 쓰러뜨린 유성탄은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아우들은 물론 오살 역시 잘 싸우고 있는 것 같아 보이자, 부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유성탄이 안으로 뛰어들자 이미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도가 날아왔다.

“이 자식들은 생긴 것도 이상하고 키도 작달막한 것들이 표독스럽기는 엄청 표독스럽네.”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왜국 특유의 공격법이 유성탄은 마음에 안 들었다. 유성탄은 조금 더 세게 때려주기로 마음먹었고 그들은 더욱 큰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웬 놈이냐!”

통로를 가득 메운 수하들을 순식간에 때려눕히고 자신의 방에 들이닥친 유성탄을 노려보며 다께미야가 어눌한 한어로 물었다. 하지만 도에 한 손을 올려놓은 그의 모습은 마치 잘 벼린 칼날같이 날카로웠다.

“얌마! ‘웬 놈이냐’는 내가 물어봐야지! 수상한 놈은 내가 아니라 너야!”

유성탄은 다께미야의 무게 잡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는지 소리를 지르자마자 몽둥이를 그대로 다께미야의 이마를 겨냥하여 휘둘렀다. 하지만 다께미야는 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였다. 몽둥이가 그의 이마를 짓쳐오는데도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있다가는 발도를 했다. 싸움의 경험이 많은 그로서는 유성탄의 공격에서 틈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간단했고 그의 도는 몽둥이보다 두 배가량 길었다.

“으윽! 이게… 분명 갈랐는데…….”

다께미야는 자신의 도가 먼저 유성탄의 가슴을 갈랐다고 느꼈는데 이마에 커다란 통증을 느끼자 눈이 동그래졌다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머나먼 왜국에서 큰 임무를 띠고 온 그로서는 너무나도 허무한 끝장이었다.

“전부 다 오라에 묶어서 관아로 압송한다.”

모두 때려눕힌 유성탄이 유유하게 밖으로 나오더니 마차를 지키는 유성방도들에게 명을 내리고는 춘약 더미 위로 훌쩍 뛰어올라 아직 싸우고 있는 아우들을 보고 소리쳤다.

“야! 여기 대형은 다 끝내셨다. 뭐 하냐? 빨리 가자!”

* * *

“공주 마마! 생각대로 왜관에 왜국에서 들어온 수십 명의 무사들이 숨어 있는 것을 유성탄이 찾아냈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반역을 꾀한 것이 아니라 청진무관이라는 절강의 작은 무관을 며칠 후에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답니다.”

팔지신타의 보고는 주소연에게는 뜻밖이었다.

“그래요? 이상하네요…….”

주소연은 새외에서 이상한 무리들이 들어온다는 보고를 듣고는 곧 반역의 무리들이라는 확신을 가졌었다. 마약이나 황궁의 금을 탈취하는 것이 혼란을 조성하는 데는 유효할지 몰라도 그것만으로 반역이 성립할 수는 없었다. 반역이 성립하려면 거병할 수 있는 군사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사방을 아무리 조사해도 군을 동원할 만한 세력이 없었다.

물론 기룡왕부에 청담이 나타났다는 말에 기룡왕부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지만 특별하게 알아낸 것이 없었다. 그때 들은 것이 사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중원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정보였고 주소연은 바로 그들이라는 확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역이 아니라 무림의 주도권 다툼이었다는 말인가요?”

“현재로서는 일이 그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진술은 확실한가요?”

“유성탄이 때려서 알아냈답니다. 그렇다면 확실하겠지요.”

“새외에서 들어왔다는 자들은 행적은 어떻게 되고 있지요?”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다시 막히는군요. 황 장군이나 용 부장에게서는 다른 소식이 없나요?”

“그게… 동창에서 드디어 일을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관부의 도움을 무제한으로 받아서 정보를 얻기가 쉬웠는데 동창에서 무슨 말들을 했는지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는 모양입니다. 저희가 원체 인원이 없는 상태에서 관부의 도움으로 일을 해왔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막힌 상황입니다.”

“감히 그자들이 내 명이라는데도 듣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동창의 비위를 거스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동창의 비위를 마음대로 거스를 수 있는 자는 천하에…….”

“천하에요?”

“황상과 유성탄밖에 없습니다.”

* * *

“그놈들, 어찌나 말을 못 알아듣는지 힘이 다 빠졌네.”

몽땅 왜관의 관부로 왜인들을 압송해 온 유성탄은 다음 조치로 정보를 알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인들은 유성탄의 매타작 속에서도 자신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불지 않았다. 유성탄의 입에서 질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곧 그들이 유성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실지로 대답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려왔고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이미 유성탄의 매타작에 얼이 빠질 대로 빠진 그들은 말이 통하자마자 모조리 분 것이다.

“왜국 놈들인데 당연히 못 알아듣지요.”

철패가 말했다.

“우리말을 하는 놈이 있었다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다친 아우들이 많아서 유성탄 혼자만 고문실에 들어가게 한 것을 강태웅이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유성탄이 말했다.

“됐어. 그렇지 않아도 자식들이 생긴 게 얄밉게 생겨서 더 때려주고 싶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다 연락은 했냐?”

“예, 하후 소저에게 연락했으니 연 공자님께도 소식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방의 궁상개 장로님께서 오셨기에 알아낸 것을 다 말씀드렸습니다.”

“거지 영감? 아이 씨! 돈 받고 가르쳐줬어야 하는 건데.”

“지금 이 보고서를 총단에 보내고 각파에 뭔가 조짐이 이상하니까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라고 해라.”

궁상개가 왜인들의 행적을 알아낸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절강의 여러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습격이 줄을 이었고 그 와중에 한 명이 유성탄을 따라 다니던 궁상개의 눈에 띈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그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상대가 만만치 않은 것을 느끼고는 개방의 제자를 동원할까 하다가는 춘약 더미 위에서 코를 후비고 있는 유성탄을 보자 생각이 바뀌어 유성탄에게 넌지시 알린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치도 않게 왜인들의 창고에서 마룡방도와 구룡회원들의 복장을 발견했다는 말에 급히 총단에 연락을 취한 것이다.

“유성탄이라는 포천망쾌의 능력이 생각 외로 대단합니다. 잘하면 무림고수들의 판도가 그에 의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궁상개의 명을 행하던 만걸개가 대단한 고수들로 이루어진 왜인들을 유성탄과 허접하다면 허접하다고 할 수 있는 유성방도들만으로 모두 잡아들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이 말했다.

“특이한 놈이지. 그리고 약간 미련한 놈이기도 하고. 한 가지 다행인 것이 천성이 착한 거야. 그 성질에 천성까지 악했으면 천하에 다시없는 악귀가 되었을 것이다.”

“어? 자운이가 여기 어떻게 왔어?”

“왜요? 오지 말 것을 그랬나요?”

할 일 없이 객잔 방 안을 뒹굴거리던 유성탄은 생각지도 않은 정자운의 방문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럴 리가! 나야 자운이만 좋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그런데 빙아는?”

“빙아는 오다가 일이 생겨서 며칠 후에 도착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여기까지 자운이 혼자 왔다는 말이야! 아니, 세상에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혼자 돌아다녀?”

“걱정 마세요. 신녀단과 같이 왔으니까요.”

‘가만있자, 빙아가 없으면 그 사이에 어떻게…….’

유성탄이 순발력 있는 공상을 하는 사이 정자운이 유성탄을 보며 물었다.

“오면서 소문을 들어보니 사방에서 이상한 자들이 무림인들을 공격해서 많은 사상자가 나온 모양이던데 유 상공께서는 별일 없으셨나요?”

“하하하! 내가 겸손해서 잘 말은 안 하지만 세상에서 나를 건드릴 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하하하!”

유성탄이 어깨에 힘을 꽉 주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정자운이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자신의 말에 진정으로 동조하는 듯한 정자운의 말을 듣자 유성탄의 입이 벌어졌다.

“하하하! 역시 나를 인정하는 사람은 자운이밖에 없다니까.”

자신을 인정하는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남자의 복이었다.

“어디 가?”

유성탄은 정자운이 일어나자 깜짝 놀라 물었다.

“저하고 신녀단은 따로 숙소를 잡아놨어요. 빙아하고도 거기에서 만나기로 했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미래의 낭군을 여기에 놔두고 어딜 간다는 거야?”

“아직은 부부가 아닙니다. 혼인도 하기 전에 한 숙소에서 같이 묶는다면 남들 보기에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데…….’

“그러지 말고 이따가 저녁때 가! 내가 바래다줄 테니까.”

애절한 눈으로 말하는 유성탄의 손을 뿌리치지 못한 정자운이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

“유 상공이 떠난 후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조금 더 만남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좋은 생각 했네. 그래, 꼭 혼인을 하고 나서 만남을 갖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암!”

정자운의 말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유성탄은 뭔가 조짐이 좋다고 생각했다.

“대형!”

“누구냐?”

“강태웅입니다.”

“왜! 난 지금 바쁘다.”

“중요한 연락이 왔습니다. 잠시만 나와보십시오.”

‘에이, 눈치 없는 것들…….’

유성탄은 속으로 꿍얼거리며 정자운에게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가면 안 돼! 알았지!”

다짐을 하듯이 말한 유성탄이 밖으로 나가자 정자운은 다시 예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였다. 예의는 좀 없고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자꾸 해서 그렇지, 유성탄이 얼마나 자신과 같이 있고 싶어하는지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데 이 중요한 때에 나를 부르는 거냐?”

밖으로 나온 유성탄이 눈에 살기를 띠고 말하자 강태웅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흑혈신마가 죽었다고 소문이 파다합니다.”

“뭐라고? 흑혈이면 그 장의사 영감?”

“예.”

유성탄의 눈이 동그래졌다. 흑혈신마와는 별로 좋은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과 동업까지 말이 오갔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잠깐 누구 만나고 온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렇게 무서운 영감이 어떻게 죽었다냐? 마차에 깔렸나?”

“흑혈신마 같은 고수가 왜 마차에 깔려요. 지금 소문으로는 일 갑자 전의 천하를 뒤집어놨던 신비의 고수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 같던데요.”

“신비의 고수?”

유성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심각하게 생각하다가는 결정한 듯이 말했다.

“좋다. 유성방의 방도는 신비의 고수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간다. 만약 도망가기 어려운 상황이면 무조건 살려달라고 빈다. 만약 그래도 살려주지 않을 것 같으면 무조건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말하고 죽는다. 이제 됐지? 이제부터는 절대로 이 방 근처에는 누구도 오지 마라. 그리고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다시 또 나를 부르면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하지 않는다.”

유성탄에게 현재 홀로 방 안에 앉아 있을 정자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성탄은 급히 명 같지도 않은 명을 내리고는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대……!”

강태웅이 다시 유성탄을 부르려고 하자 마동파가 막았다.

“그만두시지요. 솔직히 대형께 지금 형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형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다시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마동파의 말에 강태웅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흑혈신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보내온 것은 하후란이었다. 그런데 그 소식만 온 것이 아니었다.

* * *

갑자기 터진 흑혈신마의 죽음은 천하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십 년 가까이, 무림 십대고수는 부동의 절대자였다. 독불장군인 흑혈신마였지만 대문파에서도 양보하기 일쑤였고 작은 문파에서는 자신의 세력권에 나타나기만 해도 몸을 사렸었다.

흑혈탈혼기를 만들어 자신만의 규칙을 고수하며 천하를 공포에 떨게 하던 흑혈신마의 죽음은 드디어 무림의 십대고수들의 아성의 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했지만 문제는 흑혈신마를 죽인 자가 누구인가가 문제였다. 무림 최고수로 군림하던 십대고수가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죽었다면 그 실력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난다는 말이었고 그런 절대고수의 등장에 무림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마두였던 흑혈신마의 죽음에 사람들이 환호하기보다 숨을 죽이고 있는 이유였다. 먼저 나서서 정을 맞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 * *

“그자가 다시 나타난 것 같습니다.”

무림 십대고수 중의 한 명이자 무당 검신으로 추앙받는 무허 진인의 거처를 아침 일찍 방문한 청오 진인은 이미 일어나 밥을 짓고 있는 무허 진인에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하고는 곧 심각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그자? 그자가 누구인고?”

“북천존자입니다.”

청오 진인의 대답에 무허 진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흑혈신마가 죽었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던 무허 진인은 흑혈신마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얼굴이 더욱 굳어지더니 목소리까지 약간 경직되었다.

“언제 일인가?”

“소문이 중원에 퍼지기는 어제부터입니다. 하지만 흑혈신마가 죽은 곳이 사천과 천산이 만나는 경계라고 하니 싸움은 최소한 삼 일 전에 있었을 것입니다.”

“흑혈신마가 거기까지 간 이유는 무엇인가?”

“흑혈신마는 누구와도 교류가 없는지라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에게 한 명의 기명제자가 있는데 그가 사천의 서쪽 끝에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약 두 달 전에 누군가에게 피살을 당했다고 하니 복수를 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무허 진인은 몸을 일으키더니 부엌에서 나왔다.

“그자가 나타났다고 단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흑혈신마의 시신을 조사한 청성의 도진자의 말에 따르면 흑혈탈혼기가 주위에 꽂혀 있었고 싸움의 흔적으로 보이는 약 십여 장의 폐허를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싸움이 격렬했는지 아름드리나무들이 무려 이십여 구나 부러져 있었고 흑혈신마의 내장이 다 녹아버렸다고 할 정도로 가루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현 무림에서 흑혈신마와 정면대결해서 그의 내장을 박살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지만 대하성승 이외에는 가능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십대고수 중 장이나 권을 사용하는 자는 대하성승과 흑혈신마 그리고 무영존뿐이지. 검이나 도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면 천하에 흑혈신마를 그렇게 죽일 사람은… 그래서?”

“하지만 장문인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능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하성승께서도 흑혈신마를 그렇게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북천존자는 검을 사용하는 자였다.”

“알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주위를 조사한 자가 청성의 도진자입니다. 도진자는 아주 치밀한 사람입니다. 그가 덧붙이기를 싸움을 하는 동안 주위에 적어도 이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 있었던 흔적을 발견했고 검집째 박혔던 것 같은 흔적을 가진 돌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추리하기를 검을 든 자가 흑혈신마를 보고는 자신의 병기인 검을 돌에 꽂아놓고 권장으로 상대를 한 것이 아닌가…….”

“됐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청진 도장의 추리는 흑혈신마가 죽었고 그를 죽일 수 있는 자가 북천존자밖에 없다는 가정을 했기에 나온 것이었다. 한마디로 너무 억지스런 추리였지만 무허 진인은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소림의 대하성승에게도 연락이 갔겠지?”

“갔을 것입니다.”

“대하성승과 천무제 그리고 나는 오래전부터 북천존자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맞건 안 맞건 북천존자가 다시 나타났다는 가정하에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좋겠지.”

무허 진인은 오십년 전 생각이 주마등같이 눈앞을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무허 진인이 삼십대 중반이었다. 당시 그는 무당의 일대 제자 중 가장 촉망받는 제자로 이미 무림에 무당일검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가 북천존자를 만난 것은 이미 여러 고수들이 북천존자에 의해 죽음을 당한 이후였다. 분명 정식 비무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북천존자의 행보는 죽이는 데에 있었지 절대로 무공의 고하를 정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무허 진인이 그를 본 곳은 바로 무당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산문 안의 연무장이었다. 당시 무당제일고수였던 무허 진인의 사부인 천승진인은 북천존자의 비무를 원하는 배첩을 받고는 원래는 거절하려고 했었다. 아직 이십대의 젊은 청년인 북천존자와의 비무를 수용하기에는 그의 배분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계속되는 비무를 가장한 살겁을 일으키는 그를 언제까지 그냥 두고 보기도 어려웠던 천승 진인이 결국 비무를 승낙했고 비무의 장소는 놀랍게도 무당의 연무장이 된 것이다.

당시 무림의 십대고수 중 한 명이었던 천승 진인과 북천존자의 싸움은 무려 오백여 초를 겨루는 대혈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공이 강해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이었다. 결국 하루 밤, 낮이 지나면서 천승진인의 움직임이 눈에 띌 정도로 느려지면서 북천존자의 검에 심장을 내주고 말았다. 무허 진인은 피를 철철 흘리는 천승 진인을 품에 안고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후 그가 겪은 고행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덕에 무당검선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지만 사부와 북천존자의 비무를 직접 본 그로서는 아직까지도 북천존자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허허… 그 당시 젊은 나이에 지금의 나와 비슷한 무공을 지녔던 그가 현재는 도대체 얼마나 강해졌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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