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철립마륜
“하여간에 하후 소저는 사람 행방 찾아내는 데는 정말 귀신인 것 같습니다.”
마동파가 급히 걸음을 옮기며 강태웅에게 신기한 듯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하후란이 갑자기 그들을 찾아와서는 유성탄이 천요궁으로 갔으니 데려오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천요궁이면 엄청 요사스런 곳이라고 들었는데, 대형께서 거기는 왜 가셨을까요?”
강태웅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표도행이 다시 물었다.
“천요궁의 행사가 좀 남세스러운 데가 있기는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나쁜 짓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도 거기 한번 들어가면 뼈만 남은 송장이 되어 나온다고 하던데요? 혹시 대형께서도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황대산이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걱정도 팔자십니다. 내 생각으로는 천요궁의 여자들이 오히려 삐쩍 말라버릴걸요.”
그러자 철패가 별걸 다 걱정한다는 투로 말을 받았다.
“그런데 소문대로라면 대형 취향에 가장 잘 맞는 곳일 텐데, 우리가 간다고 따라오실까?”
듣던 장우왕이 다른 쪽으로 걱정 어린 말을 꺼냈다.
“자, 이제 조용히 하자. 천요궁의 정문이다.”
강태웅은 마치 기루의 정문같이 화려한 색으로 장식된 커다란 문이 나타나자 아우들의 대화를 막았다. 그들의 앞에는 산속에 어떻게 이런 화려한 전각들을 세웠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화려한 장원이 나타났다.
“어떻게 오셨지요?”
강태웅과 아우들이 정문 가까이 다가서자 여인 둘이 나타나더니 물었다.
“우리는 낭인칠웅 중 여섯 아우들이오. 유성탄이란 분이 이곳에 와 계시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연락을 좀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분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그들이 들었던 소문과는 달리 약간 차가운 목소리로 묻던 여인의 말투가 갑자기 공손하게 변했다.
“아우들입니다.”
유성탄의 아우들이라는 말에 여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이제 아예 태군으로 결정되다시피 했으니 그 대우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요? 왜 이렇게 잘 대해주는 걸까요?”
상냥하게 눈웃음까지 치면서 그들을 안으로 안내하자 표도행이 어리둥절해서는 혼잣말하듯이 물었다.
“글쎄? 대형이 뭔가 대박을 친 것 같은데.”
마동파가 자신들을 주시하는 수많은 여인들을 보며 잠시도 고개를 쉬지 못하고 대답했다.
“뭐? 아우들? 난 아우 같은 거 없는데.”
정자에 비스듬히 누워 두 여인의 안마를 받으며 편안하게 술을 마시고 있던 유성탄은 아우들이 찾아왔다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미친 척한다.
“예? 정말입니까? 이놈들이 감히 천요궁에 와서 장난을 쳐! 알겠습니다.”
유성탄에게 보고를 하던 여인은 유성탄의 말을 듣자 갑자기 눈에 살기를 띠고는 나가려 했다.
“잠깐! 너 걔들 기름에 튀겨 죽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천요궁을 농락한 자들은 기름에 튀겨 죽이지는 않지만 살려두지도 않습니다.”
‘에이 씨! 한창 좋은데…….’
“내 아우들 맞다. 들어오라고 해라.”
신선놀음을 방해할 것 같아 모른 척하려고 했지만 아우들을 죽일 거라는데 계속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보고하던 여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공손히 절을 하고는 나갔다.
“아이고, 대형!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정자에 누워 있는 유성탄을 발견한 황대산과 마동파 그리고 표도행이 가장 빨리 달려들더니 덥석 엎드리며 절규했다.
“야! 우리 헤어진 지 열흘도 안 됐거든, 마치 이산가족 만난 것같이 그러지 마라.”
여인이 입에 넣어준 포도를 입에 가득 물고는 유성탄이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대형! 아우들은 완전 거지를 만들어놓고 혼자 여기서 이렇게 호강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 섭섭합니다.”
“이것들이! 니들은 칠우동 가서 좋은 건 다 먹어놓고 왜 그래?”
“뒤끝이 너무 길면 남자가 아니라 하신 것은 대형이십니다.”
“알았으니까, 할 말 있으면 해봐.”
“아이 참. 대형도. 우리 사이에 언제 할 말이 있어야 만났나요? 그냥 대형과 우리는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니는 사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마동파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자 유성탄과 유성탄을 안마하는 두 여인만 빼놓고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에이 씨! 오랜만에 재미있는데…….’
“그래, 그럼! 그냥 내 옆에 서 있어라.”
“대형! 지금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조용히 있던 강태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거 또 무게 잡는다. 태웅이 저게 말하면 이상하게 말려드는데.’
“날 봐라. 상황이 난 좋기만 한데 뭐가 좋지 않다는 거야? 괜히 사람 겁주지 말고 그냥 말해라.”
“대형! 영웅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특히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도 했습니다. 하후 소저의 말에 의하면 지금 무림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마룡방과 구룡회의 세력다툼에 금모전이 끼어들었고 상관세가가 언제라도 싸움에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정파인 상관세가가 사파 간의 싸움에 끼어든다면 당연히 상관세가와 친한 정파에서 도울 것이고 그렇게 되다 보면 무림은 정사 간의 전쟁으로 비화되고 그러면 천하대란으로 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대형께서 천하에 영웅으로 이름을 내밀 때입니다.”
‘얘 또 영웅 타령하네. 아이, 난 영웅 싫은데.’
“강태웅 너는 내가 지금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도 지금 영웅이 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대형! 천요궁에서 이렇게 여인들을 둘이나 끼고 놀고 계시면서 영웅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인정하겠습니까?”
마동파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하여간에 너희들은 너무 무식해! 니들은 영웅호색이라는 말도 못 들었냐? 우선 영웅이 되려면 호색이 기본이라는 말이야! 나는 지금 영웅의 기본을 쌓고 있는 중이다. 호색도 못하면서 영웅이라고 누구한테 큰소리치겠냐? 우선 나는 영웅호색을 완벽하게 이루고 나서 영웅본색으로 나갈 생각이니까 더 이상 말 마라.”
“대형, 영웅호색이라는 말은 영웅이 되면 여인이 저절로 꼬인다는 말이지, 호색을 스스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다 만약 대형께서 여기서 이러고 계신 것을 신녀궁에서 아시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아마 청혼은 완전히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잉! 그건 안 되는데.’
다른 말은 안 먹히더니 정자운과 백리빙과의 청혼 문제가 깨질 수도 있다는 말에는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설마…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 정도로 청혼까지 깰까?”
“대형!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대형이 졸라서 ‘그럼 청혼이나 해보세요.’ 한 거지, ‘제발 청혼을 받아주세요.’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다 금년 안에 안 하면 모두 무효라고 했다면서요? 지금 이러시는 것이 신녀궁의 귀에 들어가면 아마 금년이 아니라 내일 당장 무효라고 할 겁니다.”
눈치 빠른 마동파가 강태웅의 말이 먹혔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곧장 지원에 들어갔다.
“청혼 무효가 아니라 대형 눈알을 뽑아 오라고 천하에 파발을 띄울지도 모릅니다. 아시잖아요? 신녀궁 말발이 정파에 얼마나 잘 먹히는데요.”
“난 모르는데? 궁(宮)이 말까지 하냐?”
* * *
“에이 씨! 도대체 아우라고 여섯이나 있는 것들이 도움이 되는 놈이 하나도 없어요.”
계속 꿍얼대며 산을 내려가는 유성탄을 보며 아우들은 모두 얼굴에 미소를 짓고는 따라가고 있었다.
정자운과 백리빙의 이름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유성탄을 보필하고 있던 여인들이 궁주님께 간다고 말이라도 하고 가라고 잡았지만 유성탄은 ‘설군이에게 나 보고 싶으면 정식 청혼하라고 해!’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대로 천요궁을 떠난 것이다.
“대형, 지금 연 공자도 지금 대형을 찾고 있다고 했는데 어디부터 가시겠습니까?”
“연 소주가? 걔는 남자가 왜 남자인 나를 찾는 거야? 짜증나게. 연 소주부터 가자!”
유성탄은 짜증난다고 하면서도 주소연을 먼저 만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유정삼과 유성우에게는 주소연이 더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유성탄의 말을 듣자 강태웅의 얼굴에 감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하후란은 유성탄을 만나면 자신에게 오지 말고 주소연을 먼저 만나라고 하면서, 주소연이 찾는다는 말을 하면 유성탄도 주소연을 먼저 만나겠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저건 또 웬 떨거지들이냐?”
유성탄은 오랜만에 몸을 풀자며 산속으로 아우들을 몰고 갔다. 심술 난 것을 풀 겸 수련도 할 겸이었는데 앞에 십여 명의 인영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십여 명의 노인이 좌우로 늘어서 있고 가운데에는 장대한 체구에 검은 피풍의를 걸친 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그의 등에는 커다란 철립이 걸려 있었다.
유성탄은 어깨에 힘을 주고는 껄렁대며 다가서다가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야, 아무래도 내가 화설군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왔어야 하는 건데 좀 너무했던 것 같다. 천요궁에 다시 갔다 와야겠다.”
뜬금없는 유성탄의 말에 아우들이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다가는 후다닥 달려들어서는 유성탄을 잡았다.
“대형, 사나이 체면을 생각하십시오. 아까 그렇게 멋있게 말해 놓고 지금 다시 가시면 완전 쪽이 되는 겁니다. 거기다 천요궁주는 성질이 더럽다고 소문 나 있는데 지금 이렇게 죽어 들어가시면 평생 잡혀 살 수도 있습니다. 안 됩니다.”
“대형, 동파 말이 맞습니다. 제가 혼인을 해봐서 아는데 여자들은 조금만 죽어주면 머리끝까지 올라서는 버릇이 있습니다. 벌써부터 버릇을 잘못 들이면 평생을 고생하시며 살 수도 있습니다.”
황대산이 마치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듯이 유성탄의 허리를 잡고는 부언했다.
‘아이, 이 자식들, 진짜 눈치 없네.’
“아, 그리고 내가 천요궁에 뭐 놔두고 온 것 같다니까!”
“대형, 대형께서 우리랑 헤어질 때 완전 개털이셨는데 뭘 놔두셨다는 겁니까?”
아우들은 유성탄의 마음이 다시 변할까 두려운지 잡은 몸을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으윽!”
유성탄을 잡고 있던 아우들의 손이 저절로 풀리며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갑자기 자신들의 몸을 찢을 듯이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을 느낀 것이다.
“대형! 이거였습니까?”
“그럼 진즉 얘기하시지…….”
아우들은 유성탄이 갑작스럽게 천요궁으로 돌아가려고 한 이유를 그때서야 눈치 챘다. 말하는 아우들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그러나 힘겨운 와중에도 모두 무기를 꺼내 들고는 유성탄의 주위를 감쌌다.
“하여간에 니들 눈치 없는 것 때문에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저리 비켜! 니들로는 상대도 안 된다.”
단지 기세만으로도 비틀거리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겠다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아우들의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도망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어리구나.”
등을 보이고 있던 자가 몸을 돌리자 마치 정면이 전부 다 그의 몸으로 꽉 차는 것 같았다.
“아직 늙으시군요.”
이미 도망치기는 틀린 것 같자 유성탄의 곤조가 나왔다.
“아직 늙으시군요? 하하하! 소문대로 웃기는 놈이구나.”
“노인장, 내 소문을 이미 들은 모양인데, 그렇다면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도 들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내 앞을 막으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소이다.”
“포천망쾌에 대해 듣긴 들었다. 그럼 내 이름은 들어봤나 모르겠구먼.”
“지금 나랑 족보싸움을 하자는 모양인데, 노인장이 누구신지 말해 보시오.”
“나를 사람들이 철립마륜이라고 한다네.”
노인의 말이 끝나자 유성탄의 뒤에 서 있던 아우들의 입에서 침음성이 튀어나왔다. 철립마륜이라면 오대사파의 하나인 백마성의 성주이자 무림 십대고수가 아니었던가. 유성탄이 보자마자 도망을 치려고 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철립마륜이라… 내 이름보다 멋은 없는데.”
“자네 이름보다 멋이 없다? 하하하, 내 이름을 듣고 생각난 것이 그것뿐이더냐? 하하하, 철립마륜이라는 이름이 그 정도로 값이 떨어져 있는 줄은 몰랐군.”
“값이 떨어졌는지 아닌지는 뭐 나한테 생기는 게 없으니 모르겠고, 지금 여기 나타난 것이 나 때문이오, 아니면 우연이오?”
“이 산속에 내가 우연히 나타났다고 생각하나?”
‘에이 씨! 정말 나 때문에 온 모양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강한 자들이 많은 거야?’
“제가 원체 유명해지다 보니까 사방에서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요. 하지만 저는 노인들은 싫어합니다.”
“호오! 노인은 싫다? 그럼 누구를 좋아하나?”
“역시 야들야들한 여인이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철립마륜은 유성탄과의 대화가 재미있는지 처음 온 목적을 잊은 듯이 껄껄껄 웃더니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나 같은 늙은이보다는 야들야들한 여인이 좋기는 하지.”
“우리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은데, 괜히 여기서 무게 잡지 마시고 같이 기루라도 가서 한잔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돈이야 뭐 노인장이 부자 같으시니까 노인장이 대시고…….”
“돈은 내가 대고 기루에 가서 한잔하자? 좋기는 한데 내 부하들이 네게 몇 명 죽었더구나, 백마성은 의뢰받은 일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어떠냐? 네가 나의 십 초를 받아낸다면 더 이상 너를 귀찮게 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
“아니, 내가 돈도 안 되는 십 초를 왜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난 그런 거 싫은데요.”
“그럼 그렇게 하게,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평생 백마성에서 자네를 죽이려고 쫓아다닐 텐데?”
“하하하! 십 초 정도면 제가 받아드리지요.”
금방 말을 바꾸는 유성탄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던 철립마륜이 주위를 둘러보자 옆에 늘어서 있던 노인들이 십여 장 정도 물러났다. 동시에 등에 매여 있던 철립이 저절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뭐야, 씨? 엄청 무서울 것 같은데.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하여간에 저놈들만 만나면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지 모르겠어.’
유성탄이 아우들 때문이라는 듯이 뒤를 쳐다보며 노려보자 아우들은 자신들도 노인들같이 물러나라는 말인 줄 알고는 역시 십여 장 뒤로 물러선다.
‘자식들이 본 거는 있어가지고.’
동시에 유성탄도 옆구리에서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이 철립은 보통 쇠로 만든 것이 아니다. 나무 몽둥이로는 막기 힘들 것이다.”
“이 몽둥이는 보통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외다. 아마 그 약해빠진 철립으로는 막기 힘들 거요.”
“정말 재미있는 놈이구나. 한마디도 지지를 않는군. 자, 먼저 시작해라. 내 륜은 한번 공격을 시작하면 쉼이 없다. 그래도 한번 공격은 해야 후회가 없지 않겠느냐?”
“정말 웃기는 노인이시네, 내가 한번 공격을 시작하면 정말 노인장은 공격을 시도해 보지도 못하실 겁니다. 그래도 먼저 공격하라니까…….”
말하던 유성탄은 기습적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아주 현실적인 놈이군, 딴 말은 그대로 따라 하더니. 후후.”
하지만 중얼거리던 철립마륜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유성탄의 공격이 실로 전광석화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자운에게 몸에 둘렀던 금자를 다 빼앗긴 후 유성탄의 몸놀림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거기다 그동안 싸우면서 비록 삼류무공이지만 무공의 오의를 몸으로 깨우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과는 다른 몸의 움직임은 그 위력을 수십 배로 증대시켜 주고 있었다.
‘어허, 태극권의 움직임에 삼재검법과 육합검법을 혼합한 몽둥이에 무슨 신공인지 듣도 보도 못한 위력이라. 거기다 어떻게 팔이 저렇게 움직일 수가 있는 거지?’
유성탄의 공격을 간단히 막고 피하면서도 철립마륜은 순간순간 놀라고 있었다. 분명 피한 공격이 도저히 굽혀질 수 없는 방향으로 팔이 구부러지면서 다시 공격을 하곤 하니 그가 아니었다면 이미 그의 공격에 한 대 맞았을 것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철립마륜과 유성탄의 몸이 떨어졌다.
“진짜 세네!”
흑혈신마나 기룡왕부에서 싸웠던 노인과 비교하여 전혀 약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 유성탄은 근래 조절이 좀 가능해진 선천지기를 온몸으로 퍼뜨렸다.
“만만치 않을 거야, 그래도 십 초면 견딜 수 있을 거라 믿네.”
철립마륜은 아직도 공중에 떠 있는 철립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철립이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탈혼마륜식은 모두 구 초 이십칠 식으로 이루어져 있네. 일 초 일 초가 거의 삼 초같이 느껴질 정도로 일 식 일 식의 위력이 강하지. 잘 견디게.”
철립마륜의 손이 유성탄 쪽으로 움직이자 회전하던 철립이 그대로 유성탄을 향해 날아갔다.
“뭐야, 씨? 왜 기분 나쁘게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오는 거야?”
유성탄은 아무래도 몸으로 때우는 것은 위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우선 철립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채채챙!
마치 톱날에 쇳덩이가 닿는 소리가 나더니 철립이 다시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철립마륜의 손이 움직이자 그대로 유성탄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채채챙!
“아이구! 손 저려.”
연달아 두 번이나 기이한 굉음이 터지더니 유성탄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갔다. 하지만 철립마륜도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오 성이 넘게 공력을 불어넣었건만 아직도 나무 몽둥이 하나 잘라내지 못한 것이다.
“오 성이면 검이나 도도 잘라내건만.”
“노인장, 삼 초는 지난 거요?”
유성탄이 공중에서 돌고 있는 철립을 쳐다보며 물었다. 생각보다 십 초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일 초 삼 식이라고, 이제 일 초가 지났다.”
“무슨 소리요? 그런 식으로 사기 치면 안 되지요. 분명 세 번 공격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이게 일 초란 말이오?”
“일 초란 연결되는 동작을 말하는 것이다. 일 초에 세 번의 변화가 있으면 그걸 삼 식이라고 하지. 방금 공격은 세 번이 모두 연결된 일 초였다.”
“난 인정 못합니다. 난 삼 초식으로 계산할 거니까 그렇게 아시오.”
철립마륜은 유성탄의 말에 미소를 짓더니 말없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철립이 소리까지 내면서 돌기 시작했다.
‘아이 씨! 왜 또 소리까지 나는 거야? 겁나게.’
유성탄은 철립이 다시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철립을 향해 몽둥이를 곧추세우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유성탄이 긴장을 하자 갑자기 그의 선천지기가 유성탄의 온몸을 휘돌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른 소리가 연달아 울려퍼졌다.
철립마륜의 눈에 더 이상 놀라움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성탄을 자신의 적수로 인정한 것이다.
‘아이구, 죽겠다. 저 영감도 엄청 힘세네.’
하지만 유성탄은 더 이상 중얼거릴 사이가 없었다. 철립과 함께 철립마륜이 직접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 영감이 미쳤나? 왜 직접 덤비는 거야. 씨…….’
철립마륜까지 공격에 들어가면서 유성탄의 손발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철립을 막으랴 철립마륜의 공격을 막으랴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으악! 죽었다.”
한참을 막고 치던 유성탄은 철립이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자 순간 소리쳤다. 더 이상 막을 손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성탄이 죽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예의 괴력이 온몸에서 뿜어져나왔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둘의 사이가 떨어졌다. 동시에 유성탄의 목을 향해 날아들던 철립이 멈추더니 철립마륜의 손으로 빨려들어 가자 유성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수고했다. 십 초 지났다. 더 이상 백마성이 너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철립마륜은 철립을 회수하자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리쳤다.
“돌아간다. 그리고 이제부터 포천망쾌는 백마성의 적이 아니라 친구로 대한다.”
말을 마친 철립마륜은 훌쩍 몸을 날렸다. 놀랍게도 몸을 날리는 철립마륜의 입가에 피가 비치고 있었다. 십 성의 공력까지 사용했지만 놀랍게도 오히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장강의 앞 물결은 결국 뒷물결에 밀린다더니 아직 대성하지도 못한 것 같건만…….’
마지막의 거력은 철립마륜으로서도 막기가 힘들 정도로 엄청났었던 것이다.
“철립마륜이 누구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야!”
유성탄은 철립마륜이 그대로 떠나버리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강태웅에게 물었다.
“대형,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바로 무림 십대고수 중의 한 명이잖아요.”
마동파 역시 구사일생했다는 표정으로 끼어들며 말했다.
“뭐? 그 노인이 십대고수야? 에이, 십대고수도 별거 아니네.”
방금까지 죽을 뻔했다고 하더니 순간적인 순발력으로 잘난 척하는 유성탄을 보며 아우들의 얼굴에 존경의 빛이 나타났다. 유성탄은 정신없이 싸우느라 모르지만 아우들의 눈에 비친 유성탄의 모습은 정말 신인에 가까웠다.
“대형, 이제 대형께서는 무림 십대고수와 같은 반열에 오른 겁니다. 이제 유성탄이란 이름이 천하를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강태웅이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아우들 모두의 얼굴에도 감격의 빛이 나타났다. 무지렁이 낭인이었던 그들의 대형이 무림 십대고수와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유성탄의 얼굴은 그리 편치 못했다.
‘에이, 그런 거 다 필요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