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새로운 세력
“대형! 호법들에게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열심히 강태웅이 써준 서찰의 글자를 그리고 있던 유성탄은 갑작스런 강태웅의 말에 글쓰는 연습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유성탄이 방해하지 말고 나가라는데도 끝까지 유성탄의 주위에 몰려 앉아 노닥거리고 있던 아우들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문젠데?”
“호법들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빠진 모양입니다.”
“뭐! 걔들이 비실거리기는 해도 여간해서는 위험에 빠질 애들이 아닌데…….”
“하후 소저의 전갈로는 시간을 다툴 정도로 다급한 것 같았습니다.”
“에이 씨! 장가 한 번 들겠다는데 거치적거리는 게 뭐가 이렇게 많냐?”
유성탄은 손에 든 붓을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일어섰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믿고 혈문까지 배신하고 들어온 그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가자!”
“예?”
“시간을 다툰다며! 쓸데없이 시간 끌다가 걔들 죽으면 어떡하냐? 밤마다 나를 찾아와서 내 목숨 돌리도……! 그러면 난 무서워서 못 산다.”
유성탄이 밖으로 나가자 아우들도 후다닥 무기를 챙기더니 급히 유성탄을 따라나섰다.
“포천망쾌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유성탄을 예의주시하던 조은이 홍수동에게 급히 보고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느냐?”
“갑자기 떠났는데 무척 급한 듯 했다 합니다.”
“이놈을 반드시 찢어 죽여야겠는데…….”
나름 자신이 대단한 지위에 있는 굉장한 인물이라는 자부심이 있던 홍수동은 유성탄에게 생전 처음 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동창 중 홍수동의 무공이 가장 높았다. 그런 그가 유성탄의 단 일 권에 내장이 흔들리는 상처를 입었다. 한마디로 현재 유성탄을 제압할 고수가 그에게는 없었다.
“아직 연락은 없느냐?”
“전서로 보냈으니 곧 연락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태감 나으리조차 어찌하지 못한 자를 누가 와서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보기에 그 놈의 무공은 이미 무림 십대고수에 버금간다고 할 정도다. 일 대 일로 그 놈을 잡을 사람은 십대고수 이외에는 현재 없다고 보인다.”
“그 정도였습니까?”
조은이 유성탄과 싸운 지 이제 석 달 남짓이 지났을 뿐이었다. 비록 당하기는 했지만 설마 유성탄이 그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그였다.
“특무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것도 안 되면 군사를 동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할 생각이다.”
“황룡패를 가진 자인데 가능할까요?”
“황룡패가 아니라 더 한 것을 가졌다 해도 동창을 건드렸다면 살아남을 수는 없는 법이다. 너는 언제든지 우리가 준비가 되면 그 놈을 제거할 수 있도록 절대 그 놈의 행적을 놓치지 마라.”
“걱정 마십시오.”
말하는 조은의 목소리에도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 * *
“도대체 저 놈들이 누굴까?”
고화월이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지정우를 보며 물었다.
하후란의 정보망에 수상한 세력이 잡힌 것은 오살이 팔을 잘린 전화생을 데리고 하후란을 찾아오기 바로 전날이었다.
한번 몰락하기는 했지만 하후란이 속해 있는 하오문은 여전히 천하에서 가장 큰 방파였다. 물론 무공으로는 별 볼일 없었지만 그들에게 속한 사람의 수는 개방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하후란의 정보망은 개방처럼 양질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지만 그 방대한 양은 개방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거기다 개방은 그들이 얻은 정보를 오로지 자파를 위해서만 사용했고 이따금 그들만으로 처리가 곤란한 경우 정파와만 같이 공유했다.
그러니 천하의 정보상은 하오문에서는 꽉 잡을 수밖에 없었고 정보는 하오문에는 아주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무공 때문에 깊숙이 파고드는데 한계가 있었던 하오문은 그 약점을 정보분석으로 메웠다. 여러 가지 잡다한 첩보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정보를 규합하여 고급정보로 둔갑시키는 기법을 발달시킨 것이었으니 그곳의 책임자인 하후란이 만사무불통지라는 별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후란은 언제나 조금만 더 자세한 정보가 있었으면 하는 갈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오문에도 어느 정도 무력집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과 생각한 것이 용병들 중에 가능성 있는 자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한물간 용병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들이 하오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촉각에 유성탄이 잡힌 것이다. 그리고 하후란은 유성탄에게 모든 것을 거는 도박을 단행했고 이후 그녀의 행보는 유성탄을 무림 최고의 이름을 얻도록 하는데 주력했다.
유성탄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그녀는 유성탄을 위협할 요소는 모두 조사를 하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여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동시에 두 개의 이상한 세력이 잡힌 것이다. 하나는 감숙에서 안휘를 거쳐 절강으로 들어왔고, 또 하나는 광동에서 복건을 거쳐 절강으로 들어왔다.
그들에게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어 하오문에 그들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 것은 약 한 달 전이었다. 하지만 너무 잡다한 정보가 모이는 곳인지라 하후란에게 그들의 수상한 점이 보고가 된 것은 겨우 오 일 전이었고 그들은 이미 절강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선 하오문도들이 전부 사라지면서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하후란이 때마침 부상을 당한 전화생을 안고 나타난 오살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어차피 유성탄에게 그들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하기 시작한 오살에게 하후란의 유성탄을 위한 일이라는 설명을 들은 그들에게 그 부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우선 그들은 고화월과 지정우 그리고 나야종과 조황 둘로 나뉘어 추적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중원의 일급살수답게 그동안의 하오문도와는 달리 정체를 들키지 않고 그들을 쫓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으로 절강성 서쪽의 한적한 장원에서 서로 만났다.
하후란이 두 개의 다른 세력이라고 생각한 그들이 합류를 한 것이다.
신중한 지정우가 기다리자고 했지만 이번에도 고화월의 호기심을 막지는 못했다. 확실하게 어떤 자들인지 알아야 한다는 고화월의 주장에 따라 결국 장원에 잠입한 그들은 놀랍게도 그들과 같은 부류의 인물들이 장원을 경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행히 오살의 잠행술이 그들보다는 더 뛰어났는지 걸리지 않고 안채에까지 들어가는데 성공했지만 놀랍게도 안채의 경비는 더한 고수들이 맡고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그들은 상대를 혼란시킬 요량으로 다시 두 패로 나누어 행동을 하기로 했다. 우선 조황과 나야종은 먼저 도망을 쳐서 하후란에게 상황을 알리기로 하고 좀 더 강한 지정우와 고화월은 추격하는 자들을 기습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대로 나야종과 조황은 그럭저럭 쉽게 그들의 추적을 벗어났다. 하지만 지정우와 고화월은 순식간에 그들의 포위에 걸리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그들의 살수비기가 적들보다는 더 나았는지 벌써 십여 명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었다. 하지만 곧 강한 자들이 나타나면서 지정우와 고화월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번 흔적이 잡히자 혈문과 같은 부류인 그들은 둘이 어떤 방법을 써도 흔적을 찾아냈고 계속 덜미를 잡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지정우가 부상을 당하면서 도망을 포기하고 우선 몸을 숨긴 것이다.
“그들의 잠행술이나 추적술은 우리가 배운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우리가 들었던 혈문 이외의 다른 중원의 살수문의 살수 수법과도 여러모로 차이점이 있었다.”
살수들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구급주머니에서 압박붕대를 꺼내어 가슴의 상처를 감고 있던 지정우가 여전히 변화없는 얼굴로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지정우, 너도 그렇게 생각했냐? 내 생각과 같구나. 이거 봐라.”
지정우의 말을 들은 고화월은 추적을 당하는 와중에 주운 상대 살수의 무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둥그런 모양에 세 개의 날이 날카롭게 뻗어 있는 그들의 암기는 회전을 하며 날아가서는 상대의 몸을 순식간에 뚫어버리는 아주 강력한 무기였다.
“음! 혈문에서 공부를 할 때 책에서 이런 무기를 쓰는 살수에 대해서 본 적이 있다.”
“그래? 도대체 어느 살수문이 이런 무공을 쓴다더냐? 내 반드시 이 놈들을 그냥 안 놔둘 거다.”
“중원의 살수문이 아니다. 그 책에 써 있기로는 동영의 인자들이 이런 무기를 사용한다고 했다.”
“동영의 인자라면… 하지만 우리가 본 자들은 동영인 같지 않았잖냐?”
“그거야 중원인들이라고 동영의 인자술을 배우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느냐. 거기다 동영인들이나 우리나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점이 없다고 되어 있었다.”
“만약 그 놈들이 동영인이라면 감히 왜놈들이 중원에 발을 들여놨다는 얘긴데 그자들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까?”
“동영의 인자도 중원의 살수문처럼 돈만 주면 얼마든지 청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라 이거다.”
“그건 뭐야?”
“내 가슴에 박힌 것을 뺀 거다.”
고화월은 지정우가 내민 물건을 받아서는 요리조리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꼭 중들이 사용하는 염주 같은데……?”
“그래 염주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양끝에 조그만 침이 나와 있을 거다.”
“그래 보인다.”
“바로 서역의 밀교에서 적을 암살할 때 사용했다는 염주환이다.”
지정우의 말을 들은 고화월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렇다면 설마… 또 새외의 침입?”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다분한 것 같다.”
“새외의 대침공으로 중원무림이 초토화되었던 것이 겨우 일 갑자 전인데… 거기다 새외의 세력을 중원에서 몰아내면서 그들도 쉽게 회생하기 힘들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러니까 아직은 추측이라는 거다. 하여튼 어떡하든지 이곳을 빠져나가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나저나 나야종과 조황은 무사히 피했는지 걱정이구나.”
“몸을 피하는 데는 우리보다 더 조예가 깊으니 잘 피했을 거다.”
그러나 말하는 고화월도 자신의 말이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하후 소저에게 연락은 갔을 거다. 조금만 견디면 곧 원군이 올 거다.”
지정우는 묘 밖을 주시하며 말했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들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무인이 하후 소저에게는 없다. 거기다 우리도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쉿!”
말하던 지정우가 손가락을 입에 대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고화월도 뭔가를 느낀 듯 곧 몸을 숨겼다. 혈문이 자랑하는 잠행술 중 최고라고 하는 은신술이었다.
고화월과 지정우가 몸을 숨기고 반 각도 안 되어 시커먼 그림자들이 지정우와 고화월이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관제묘에 나타났다.
“여기서 상처를 치료하고 떠난 것 같습니다. 떠난 시간은 일 각이 채 안 됩니다.”
온몸을 흑의로 감싸고 머리까지 흑두건을 쓴 흑의인 중 하나가 지정우가 상처를 싸맸던 장소에 손을 대보고 냄새를 맡고 하더니 가운데에 왜소한 몸집을 한 흑의인에게 급히 보고를 했다.
“일 각이 채 안 되면 아직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대단한 살수들이니 세 명씩 짝을 지어 근처를 유심히 조사해라. 이미 이 근처는 완전 포위가 되어 있으니 떠났다 해도 곧 다른쪽에게 잡힐 것이다.”
‘정말 대단한 놈들이다.’
고화월은 그들의 대화를 다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은신술을 펼치고 있었다. 그것은 더 멀리 가서 은신술을 펼칠 지형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고화월은 완벽한 은신을 하고 있으니 그들을 속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지정우였다. 한 놈이 코를 킁킁대는 것이 냄새까지 이용하는 것 같았는데 지정우가 몸에 배인 피냄새를 얼마나 빨리 지웠을지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흔적으로 보아 반경 이십여 장 안에 있습… 윽!”
보고를 하던 자는 갑자기 나직한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즉사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지정우의 칠비도가 정확히 그의 심장을 관통한 것이다. 그리고 순간 흑의를 입은 자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자신들의 일행이 눈앞에서 죽었는데 전혀 당황함이 없이 몸을 숨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혹독한 수련을 쌓은 자들인지 느낄 수 있었다.
[지정우! 미쳤냐? 지금 우리로는 저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몰라!]
갑작스런 지정우의 공격에 한 명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화월은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화월! 저놈들이 뒤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곧 들킨다. 거기다 난 피를 흘렸기 때문에 금방 들킬 수밖에 없다. 내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 너라도 도망가라.]
[미친 소리 마라. 내가 이십 년을 생사고락한 너를 놔두고 그냥 갈 것 같으냐! 좋다, 한번 해보자.]
고화월은 자신까지 떠나면 지정우는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같이 있는다고 해서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수들의 싸움에서도 뒤를 봐주는 우군이 있는 것과 홀로 싸우는 것은 그 차이가 컸다.
혼자서는 둘을 못 당해도 둘이는 다섯을 감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우리는 못 당한다. 잔소리 말고 빨리 떠나라! 그리고 고화월 나 정말 너 좋아했다.]
지정우의 말을 들은 고화월은 가슴이 복받쳐오는 것을 느꼈다. 지정우가 자신을 좋아한다 것을 눈치 못 챈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첫사랑은 정일호였고 그녀가 몸을 처음으로 준 남자는 그들의 손에 죽은 십사 중 한 명이었다. 지정우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깊이 간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번의 지정우의 한마디는 그녀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 말이 그렇게 하기 어려워서 죽어갈 때가 되어서 겨우 하냐? 바보 같은 놈!]
[언제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이제 죽을 자리를 찾고 보니 용기가 났다. 고화월! 부탁이다. 도망가라!]
[말했지! 난 너 두고 안 간다고! 그리고 이제는 더 못 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거야!]
“하여간에 꼴값들을 해요. 일을 하라고 보냈더니 한다는 짓이 겨우 연애질이나 하고. 하여간에 내가 니들을 호법이라고 데리고 다니니 오히려 내가 호법이나 서고 그러지. 아, 유성탄 너 정말 인복 없다. 인복 없어.”
지정우와 고화월은 갑자기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
“방주!”
“방주님!”
지정우와 고화월은 유성탄이 방망이를 건들거리며 나타나자 반가워서 소리치고는 곧장 유성탄의 옆에 바짝 붙었다.
“얼씨구… 야, 호법은 내가 아니고 너희들이야! 방주를 봤으면 호위를 설 준비를 해야지 오히려 내 뒤에 숨는 호법이 어디 있냐?”
“대단한 자들이에요. 이럴 때는 방주가 부하도 보호하고 그러는 거지 호법이라고 그냥 죽으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이것들이 연애질만 하고 있더니 뚫린 입이라고 할 말은 다하네. 에그! 가자!”
“적들이 사방에 숨어 있다구요!”
“니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닭살 돋는 대화를 나눴는지는 아냐? 그래 어떤 놈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정담을 나누는데 가만히 보고 있다더냐?”
지정우와 고화월은 유성탄의 말에 벌써 유성탄이 흑의인들을 다 처리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언제 벌써?”
“니들 내가 겸손해서 말을 안 해서 그런데 내가 한 번 마음만 먹으면…….”
“알아요.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게 없다는 거, 제가 인정은 해 드리는데 제발 그 겸손이라는 말은 빼고 해 주세요.”
‘에이 씨! 실수다… 고화월 이건 고생을 좀 더 하게 놔뒀어야 하는 건데… 그랬으면 내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 걸…….’
“그런데 방주님, 여기는 어떻게 알고……?”
“하후란 고게 사람 찾는 데는 귀신이잖냐? 나보고 빨리 오라고 하더니 중간에 갑자기 이리로 가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고화월이 우는 것 좀 보고 나타나려고 했는데 니들이 닭살 돋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밥 먹은 게 올라와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났다.”
유성탄의 말에 얼굴이 잠깐 붉어졌던 지정우가 급히 물었다.
“조황과 나야종도 위험할지 모릅니다.”
“걔들이 와서 니들이 어디에 있다고 가르쳐주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빨리 온 거야! 상처는 많이 났는데 죽지는 않겠다고 하더라. 가만히 보니 걔들이 니들보다 나은 것 같아. 니들은 서로 유언을 말하고 있었지만 걔들은 벌써 빠져나왔으니 말이다.”
“그건 우리가 죽음을 무릅쓰고 조황과 나야종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여기를 지켜서 그런 거예요.”
“고화월, 못하면 그냥 못하다고 그래라.”
“저기냐?”
유성탄은 지정우가 피를 좀 흘리기는 했지만 그리 큰 상처는 아니자 그들이 갔었다는 장원으로 직행했다. 감히 유성방의 호법들에게 상처를 입힌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거기다 지정우와 고화월이 많이 벗어나지를 못한 탓에 장원까지는 반 시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터였다.
“그런데 침입자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데 아직까지 그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침입자? 누가 침입했는데?”
“저들에게는 우리가 침입자잖아요?”
“나도 다 안다. 고화월 니가 아나 모르나 보려고 물어본 것뿐이다.”
“흥!”
고화월이 코웃음을 날렸다.
“보통 무림인들이었다면 저희가 그렇게까지 고전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안에 경계를 서는 자들이 거의 다 대단한 살수들이었습니다. 거기다 우리가 추격을 했던 자들 중 몇 명은 정말 대단한 고수였습니다.”
지정우가 다짜고짜 뛰어들려는 유성탄을 말리며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래서?”
“예?”
“그래서 어쩌라고?”
“조심하라고…….”
“내가 겸손해서 잘 말은 안 하지만…….”
“알았으니까 들어가 보세요.”
“니들은 아까 거기로 돌아가서 아우들이나 데려와라!”
유성탄은 다시 한 번 큰소리 칠 기회가 고화월에 의해 무산되자 입술을 툭 내밀고는 한마디 내뱉더니 안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도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걱정 마. 내가 보기에 완전 괴물이 되었어.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자들을 전부 제압해 놓은 것 봐라. 아무래도 우리가 판단을 잘한 것 같다. 천하에서 가장 좋은 주군을 모시게 된 것 같아.”
고화월은 입술을 툭 내밀고 들어가던 유성탄의 모습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자, 우리는 부방주님과 당주님들을 부르러 가자.”
지정우와 고화월이 위험하다는 말에 아우들보고 뒤에 오라고 하고는 유성탄만 먼저 달려온 터였다.
쾅!
“이게 무슨 소리요?”
유성탄이 들어간 장원에는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빈청에 모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침입자 때문에 조금 다급해지기는 했지만 당장 떠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원을 경계하는 살수들의 실력을 믿는 것도 한 이유였다. 모두 조용히 앞에 놓인 음식을 집어 먹으며 술잔을 홀짝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모두 일어서며 장원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아무래도 또 다른 침입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도대체 완전 극비로 진행되는 일에 무슨 침입자가 이렇게 자주 나타난다는 말이오. 이러면 우리는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소이다.”
머리에 방갓을 쓴 노인 하나가 딱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걱정 마십시오. 청담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살수들과 무사들은 아주 특수한 훈련을 받은 자들입니다. 절대로 안전할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방금 들여온 소리로 판단하건대 여간한 고수가 아닌 것 같은데 그 말 믿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야 이 자식들아! 니들이 감히 유성방의 호법들을 때려! 아주 죽으려고 악을 쓰는구나.”
대문을 그대로 부수며 들어온 유성탄은 우선 기선제압용 엄포부터 터뜨렸다.
“웬 놈인지는 모르지만 죽으려고 환장한 놈은 바로 네 놈이다.”
삐쩍 마른 자가 앞에 나타나더니 유성탄을 향해 소리쳤다. 그사이에 유성탄의 주위를 은밀하게 포위하는 자들이 수십이 있었다.
“뭐야 이건? 꼭 어디서 해골바가지 같은 것이 감히 나 마질대형에게 큰소릴 쳐! 이걸 그냥! 한 대 치면 다 부러질 것 같아 지치도 못하겠고…….”
유성탄의 말에 삐쩍 마른 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 이곳에 침입한 놈들이 바로 유성방이란 곳에 소속된 놈들이었더냐?”
“그렇다! 대유성방의 별 볼일 없는 호법들이긴 하지만 누가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는 내 부하들이다.”
“그렇다면 넌 누구냐?”
“하하하! 내가 누군지 말해줄 테니 귀부터 뚫고 잘 들어둬라. 내가 바로 그 유명한 유성방의 방주님이신 마질대형 유성탄 대형이시다.”
삐쩍 마른 자는 유성탄이 너무 큰소리를 치자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
‘차림새는 포쾌 같은데… 포쾌가 방주인 방이 있었나? 거기다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큰 소리를 치는 거지? 혹시……?’
삐쩍 마른 자는 어쩌면 유성탄은 미끼에 불과하고 다른 조력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몇 명은 나가서 다른 자들이 있는가 알아봐라!”
삐쩍 마른 자의 명에 몇 개의 그림자가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다른 놈들과 같이 온 모양인데, 참 미련한 놈이로구나.”
“뭐? 미련한 놈!”
“자기가 미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죽을 자리에 들어와서는 아직도 똥오줌 분간도 못하고 있는 네놈이 미련하지 그럼 똑똑하다고 생각했느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자식? 미끼하고 똥오줌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하여간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놈들이 꼭 남을 미련하다고 한단 말이야…….’
“삐쩍 마른 게 너무 불쌍해 보여서 좀 봐주려고 했는데 말하는 게 너무 싹수없어서 안 되겠다. 우선 좀 맞고 시작하자.”
말을 마친 유성탄은 순식간에 삐쩍 마른 자 앞에까지 달려가더니 손에 든 몽둥이로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빡!
‘으잉? 소리가 이상한데……?’
분명 유성탄의 몽둥이에 맞은 머리에서 경쾌한 소리가 나오지 않고 마치 돌을 친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나자 공격을 잠시 멈추고 삐쩍 마른 자를 쳐다봤다.
“죽어라!”
놀랍게도 삐쩍 마른 자는 유성탄의 몽둥이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도 끄떡없이 서 있다가는 그대로 유성탄의 가슴을 장으로 후려쳤다.
“아쭈! 제법인데?”
진짜 전광석화 같은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피한 유성탄의 몽둥이가 다시 그 자의 어깨를 후려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까와 같은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삐쩍 마른 자는 이상 없다는 듯이 다시 유성탄을 쳐왔다.
“야 너 정말 불쌍하구나. 세상에 아무리 미련하기로 머리만이 아니라 온 몸이 돌인 놈은 처음 본다.”
“흐흐흐, 고목신공(固木身功)이란 것이다. 무기도 소용없는데 그따위 몽둥이 따위로는 내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한다.”
유성탄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얼굴에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세상에 나만 이상한 몸을 가진 줄 알고 조금 불안했는데, 나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구나. 하하하! 반갑다. 우리 손이나 한번 잡아보자.”
‘미련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아예 미친놈이었군.’
“좋다, 한번 잡아봐라.”
삐쩍 마른 자는 손을 내밀고 있는 유성탄의 앞으로 가까이 가 유성탄의 손을 잡아갔다. 잡는 즉시 그대로 부러뜨려 버리고 유성탄의 목을 비틀어 버릴 속셈이었다.
“윽!’
유성탄의 손을 잡은 그의 입에서 짤막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자기가 꺾어버리려고 했는데 유성탄이 먼저 그의 팔을 꺾어온 것이다. 삐쩍 마른 자의 눈이 점점 커졌다. 고목신공이란 약물과 무공을 병행해서 만드는 특이한 외공이었다. 한번 펼치기 시작하면 온몸이 아예 강철같이 변해버려 어떤 힘도 파괴해버릴 수 있는 악랄한 무공이었다. 그런데 유성탄의 손을 잡자마자 유성탄이 손을 비틀어 온 것이다.
얼굴에 비웃음을 흘리며 힘주는 유성탄의 팔을 비틀려고 했는데 놀랍게도 유성탄의 힘에 자신이 밀리는 것이 아닌가.
“이… 놈이 치사하게…….”
삐쩍 마른 자는 자신의 팔이 꺾이자 놀라 소리쳤다.
“나 원래 치사해.”
말을 마친 유성탄은 그대로 선천강기를 끌어내더니 팔을 부러뜨려 버렸다.
“으아악!”
완전히 딱딱해진 팔이 꺾어지자 그 고통은 보통 사람의 뼈가 부러지는 것보다 몇 배나 컸다. 그리고 그자의 비명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그들로서도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비명이 유성탄의 입에서 나올 줄 알고 공격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그들이었다.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엄청난 고수가 침입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걱정 말라고 큰소리치던 장원의 경비책임자가 얼굴이 노래져 가지고 들어와서는 외치는 소리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 그들 역시 대단한 고수인지라 침입자가 있다고 해서 무서워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중원에 들어온 것을 다른 세력이 아는 것을 극구 피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닦달을 했던 것인데 결국 최악의 경우를 맞게 된 것이다.
“짜식들이 까불어!”
상대를 눕히고 나면 언제나 나오는 유성탄의 십팔번이 터져나왔고 곧 유성탄에 의해 발을 밟힌 흑의인들의 처절한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대형! 괜찮으십니까?”
그때 낭인칠웅의 아우들과 지정우와 고화월이 급히 뛰어들었다. 모두 무기를 손에 들고 살기등등한 것이 나름 크게 싸울 생각을 하고 급히 온 것이었다.
“어떻게 니들은 내가 만날 끝내놓으면 그때 나타나냐?”
“우리가 늦은 게 아니라 대형께서 너무 빨리 끝내셨습니다.”
“듣기 싫고! 안에 여러 놈 있으니까 니들이 가서 때려잡아라.”
“알았습니다!”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유성탄의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이것 봐라? 이거 분명 청담이라는 놈의 기운인데… 요새 돈이 궁해서 죽겠다 싶었더니 금자 삼천 냥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구나.”
유성탄은 갑자기 느껴지는 청담의 기운에 오늘 재수가 무척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포천망쾌」 8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