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장 비련의 남자 (65/79)

제7장 비련의 남자

“무슨 일인데 이 난리냐?”

“백리 총사님, 큰일 났어요!”

백리빙은 신녀궁의 정문을 지키는 여자 무사가 호들갑스럽게 뛰어들며 소리치자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신녀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했지! 뭔데 그래?”

“엄청 흉악하게 생긴 자들이 무려 일곱이나 나타나서는 무조건 궁주님이나 총사님을 만나러 왔다고 난리예요. 하나같이 어떻게 그렇게 생겼는지… 그 중 한 명은 좀 괜찮게 생겼는데 어찌나 무식한지 방명록에 제 이름자도 못 쓰면서 말도 안 되는 큰 소리는 어찌나 치는지…….”

“한마디로 시비를 걸려고 온 거다 이 말이지! 어떤 자식들이 감히 신녀궁에 와서 시비를…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찝찝해서 영 개운치 않았는데 이것들 잘 만났어! 무산 독봉이 왜 독봉인지 보여주지!”

백리빙은 소매를 걷으며 정문으로 달려 나갔다.

“아, 글쎄 신분 확인도 안 된 사람은 궁내에 못 들어간다니까요!”

“무슨 소리야? 신녀궁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개방한다고 들었는데 왜 우리는 안 된다는 거야!”

포쾌 모자를 삐딱하게 쓴 유성탄은 발을 건들거리며 윽박지르듯이 여인에게 소리쳤다.

“그거야 아픈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지요. 당신들은 전혀 이상이 없잖아요.”

여자 무사는 말이 안 통하자 답답하다는 듯이 유성탄을 아래위로 쳐다보았다.

“아 진짜 말 안 통하네. 나 지금 무지 아프다니까! 가슴 좀 만져봐. 얼마나 쿵쿵대는지! 거기다 여기 콧속이 엄청 부었어!”

“내가 왜 당신의 가슴을 만져요! 하여간에 당신은 척 보기에도 멀쩡하니까 걱정 마세요. 적어도 백 살은 사실 거예요.”

“이봐 낭자! 거참 대형께서 아프시다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은 거요 앙! 내가 굳이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자꾸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이 개기는 수밖에 없소!”

장우왕이 점수를 딸 기회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유성탄 앞으로 나서며 개기기 시작했다.

“뭘 어쩔 건데요?”

“옷을 다 벗고 정문에 누워 대형이 안에 들어갈 때까지 버틸 거요.”

‘에이 무식한 놈! 하여간에 개기는 방법도 지저분하기는…….’

장우왕의 말을 들은 유성탄의 얼굴이 구겨졌다. 장우왕의 개기는 방법이 영 마땅치 않았다. 남자들에게 쓰는 방법을 여인 문파에서 사용하면 대형인 자신의 체면이 어찌 되겠는가. 이미 자신이 체면은 완전히 깎아먹은 것을 모르는 유성탄이었다.

“어떤 자식들이 감히 신녀들이 모여 사는 성스러운 곳에서 난장판을 치는 거야! 눈알 뽑히고 싶냐!”

유성탄은 소리만 듣고도 곧 백리빙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았다. 눈알을 뽑는다고 하지 않는가.

‘히히히, 계집애 하여간에 귀엽다니까…….’

눈알을 뽑는다는데 뭐가 그렇게 귀여울까. 하여간 유성탄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돌리며 두 손을 활짝 펴고 소리쳤다.

“하하하! 빙아야, 나 왔다!”

“에그머니나! 당신이 왜 여기에 와 있어요?”

당장 물고를 낼 듯이 달려들던 백리빙은 유성탄을 보자 깜짝 놀라서는 급히 서더니 물었다.

“에그머니나는 무슨? 저번에 우리 헤어질 때 나보고 놀러오라고 했잖아!”

“내가 언제요!”

“에이, 내 코를 주먹으로 쳤잖아?”

“그래요. 쳤어요.”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 하고많은 데를 두고 왜 하필이면 코를 쳤을까? 그리고 내 천재적인 머리로 분석한 결과, 그건 빙아 네가 나더러 신녀궁에 오라는 뜻이란 것을 곧 알아차렸다.”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때렸다는 말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고요.”

“헤헤헤, 네가 쑥스러워서 그러나본데 코를 때려 콧속이 많이 부었거든. 그러니 신녀궁에 와서 치료를 받아라 그거 아니냐? 그러니 꼭 오라는 말이지.”

“뭔가 미련한 머리로 분석을 하다 보니 오해가 생긴 모양이군요. 제가 코를 때린 것은 한방에 작살낼 생각이었고요. 여자만 보면 침부터 흘리는 그 면상을 아예 묵사발을 만들려고 한 거거든요. 이제 알았으면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백리빙!”

유성탄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소리치자 백리빙이 움찔하며 쳐다보았다.

“한 번만 더 나보고 가라고 하면 다시는 너 안 찾는다. 그 말은 더 이상 너를 귀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허! 웃기지도 않네. 누가 당신에게 귀여워해 달라고 했어요? 헛소리하지 말고…….”

“분명히 말했다. 한마디만 더하면 이제 너는 나랑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다.”

유성탄이 백리빙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눈을 부릅뜨며 다시 소리쳤다.

“내가 언제 당신과 무슨 관계……?”

“좋아! 이제부터 너는 내 머리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거다.”

‘저게… 다시 또 코를 한 방 쳐버려… 씨!’

백리빙은 전에 한번 당한 방법이었는데도 대응할 방법을 아직 못 찾았는지 유성탄의 마지막 말에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여자 무사를 보며 말했다.

“객청에 방을 준비해 드려라.”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

말을 마친 백리빙은 인상을 구긴 채 자신을 탓하며 그대로 안으로 몸을 날려 사라져버렸다.

“봤지! 내가 빙아하고 보통 사이가 아니라니까.”

방을 구해주라는 말을 마치자 급히 사라지는 백리빙을 보며 유성탄이 크게 웃어 젖혔다. 그리고 유성탄의 말을 당연히 뻥이라고 생각했던 유성탄의 아우들은 물론 백리빙에 대해 잘 아는 정문을 지키던 여자 무사들까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뭔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총사님께서 저런 자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유성탄 일행을 여자 무사 하나가 안내해 들어가자 남은 여자 무사들의 귓속말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총사님께서 여자치고는 특이한 데가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저렇게 예쁘게 생기셔 가지고 저런 자하고… 아니야…….”

“그건 모르지! 총사님께서 생각 외로 눈이 되게 낮으실 수도 있고, 그리고 저 성격에 저렇게 뭔가 좀 미련한 남자가 아니면 누가 총사님을 쫓아다니겠니?”

대화를 나누던 두 여자 무사는 아무 말 없이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다른 여자 무사를 툭 치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생각해 보니까… 저 사람… 총사님만이 아니고 궁주님도 자기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했었어.”

세 여자 무사들은 경악한 얼굴을 하고는 유성탄이 사라진 쪽을 쳐다보았다.

객청의 방을 세 개를 배정받았지만 모두 유성탄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유성탄 앞에 앉더니 유성탄을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니들 왜 그래? 무섭게…….”

유성탄은 아우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약간은 거만한 얼굴로 흰소리를 했다.

“대형께서 무서운 게 어디 있어요? 그런데 대형… 언제 백리 낭자는 꼬드겼습니까?”

마동파가 아주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나보고 뻥이라고 하던 놈들이 이제야 내 말을 믿겠냐?”

“저희가 언제 대형 말씀을 뻥이라고 했다고 그러십니까? 어쨌든 대형과 백리 낭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면 신녀궁의 여인 중에서 우리 여자들도 조금… 헤헤헤!”

“우리 여자? 얘들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맹물부터 들이키네. 야! 남자가 적어도 나 정도는 생겨야 그래도 여자가 따르는 거지 니들 얼굴로는 힘들어!”

“그러니까 누가 천하절색을 원한다고 했습니까? 그저 치마만 입었으면 그리고 요리나 좀 잘하면…….”

유성탄은 아우들의 존경의 눈빛과 부러워하는 말투에서 오랜만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자운이가 음식도 잘하고 정말 여자답지 않냐? 그리고 백리빙은 심심할 때 같이 말싸움 하면 재미있을 거고. 그리고 니들은 모르지만 화설군이라고 있는데 얘가 또 몸이 빵빵해요! 걔는 안으면 진짜 푹신할 거야.”

“자운이면 무산신녀님을 말하시는 거고 백리 낭자는 알겠는데… 화설군은 또 누굽니까?”

표도행이 너무나도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걔 니들 보면 깜짝 놀란다.”

“왜요?”

“진짜 예쁘게 생겼어. 거기다 그 가슴하고… 흐흐흐, 벗은 모습은 더 예쁘다. 그리고 그 입술은… 아이고, 죽겠다.”

유성탄은 빨리 신녀궁의 일이 끝나면 천요궁에 놀러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벗은 모습을 벌써 보셨다는 말입니까? 거기다 입술은……?”

황대산이 혀로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니들은 몰라도 돼! 여기 일 빨리 끝나면 내가 가서 보여줄게.”

“여기 일이 뭔데요?”

장우왕이 도대체 신녀궁에는 왜 왔는지 알 수가 없던 차에 마침 유성탄이 말하자 잘됐다는 듯이 물었다.

“니들 지금까지 내가 말해준 거 다 제대로 안 들었구나? 내가 벌써 몇 번이나 말해줬잖아!”

유성탄의 말에 아우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거야…….”

“설마 진짜로……?”

“대형, 정말 그 이유란 말입니까?”

전부 놀라 한마디씩 한다.

“그럼 그 이유 아니면 내가 왜 여기 산구석에 뭐 하러 와?”

“대형, 그건 안 됩니다!”

마동파가 소리쳤다.

“대형, 정말 그것만은 안 됩니다. 여기서 그랬다가는 저희 낭인칠웅은 강호공적으로 찍힐 겁니다.”

“맞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다.”

“서로 좋아서 그런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대형께서는 이미 치정살인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인데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이게… 왜 다 끝난 일을…….”

“대형, 그거 아직 안 끝났어요. 지금 진행형이에요. 진범이 잡히기 전에는 계속 대형의 뒤를 쫓아다닐 걸요.”

‘이것들이… 단체로 나를 물 먹이려고 그러는 거야 뭐야? 아까까지는 존경하는 눈으로 보더니…….’

“대형, 어떤 일을 벌이시건 대형이 하시는 일이면 저는 다 대형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대형 생각에 절대로 남을 해치거나 울리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은 있으셔야 할 겁니다.”

듣던 강태웅이 입을 열었다.

‘얘는 진짜 피곤해. 따른다는 말이야, 안 따른다는 말이야.’

아우들이 모두 질겁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무산에 오면서 아우들이 왜 거기에 가냐고 할 때면 정자운과 백리빙이 자신을 초대했는데 이번 기회에 둘 다 먹고 올 생각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무림인들이 신성시하는 신녀궁에 들어가서 신녀궁의 궁주와 신녀궁을 지킨다는 총사를 둘 다 먹고 나온다는 유성탄의 말을 아우들은 아예 제대로 듣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 백리빙의 약간은 이상한 행동과 유성탄의 성격상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스쳐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뒷일은 뻔했다. 그들의 눈에는 강호음적으로 몰려 도망 다니는 유성탄의 모습이 그려진 것이다.

‘저것들이 왜 자꾸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야? 에이 정말 이상하게 되어버렸네.’

여인들만의 문파답게 유성탄과 백리빙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 순식간에 궁내에 퍼져버렸다. 딴 사람이었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대화였지만 상대가 백리빙이라는데 문제였다. 그녀들이 아는 백리빙의 성격상 그런 말을 듣고 참았다는 것도 수상했지만 방을 내주라는 것은 더욱 수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백리빙은 유성탄 일행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결국 정자운과 의논을 하기 위해 내궁으로 가는데 궁도들이 그녀를 보면서 소곤거리는 것이 아닌가.

보통 때 같으면 당장 잡아 무슨 일이냐며 치도곤을 했겠지만 뭔가 찝찝한 그녀로서는 참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히히히! 백리빙은 이제 내 거가 된 것 같은데… 정자운을 어떻게 한다? 걔는 조금 비련의 남자를 좋아할 것 같은데… 비련의 남자라…….’

방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는 눈을 감고 열심히 공상의 나래를 펼치던 유성탄은 눈을 번쩍 뜨더니 벌떡 일어났다.

“아이구, 깜짝이야! 대형,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자기들의 방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유성탄의 옆에서 얘기를 나누던 마동파가 놀라 물었다.

“악몽 꾸셨어요?”

표도행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니들 준비해.”

“예! 뭘요?”

“하늘이 나를 돕는다.”

뜬금없는 소리를 한 유성탄은 갑자기 봇짐을 뒤지더니 얼마 전 기룡왕부에서 싸우면서 찢어진 포쾌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갑자기 다 떨어진 옷은 버리지도 않으시더니 왜 지금 입으세요?”

“이제 곧 여기에 무슨 일이 생길 거야. 그때 내가 나서서 그 놈들에게 엄청 터질 거거든. 대신 그 놈들 힘은 내가 빼 놓을 테니까 니들이 그놈들 쫓아내라. 알았지?”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좀 자세히 설명 좀 해보세요.”

“오늘 유성탄이 비련의 남자가 되는 거다.”

“도대체 무슨 일이신데 이러시는 겁니까?”

“조용히 말할 때 궁주에게 나오라고 해라.”

경비를 서는 여자 무사는 안색이 변했다. 오전 중에도 유성탄 일행 때문에 정문이 좀 시끄러웠지만 유성탄 일행은 하는 짓이 좀 이상했을 뿐 위협은 느끼지 않았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우호적인 느낌을 받았던 그녀들이었지만 지금의 이들은 달랐다. 몸에서 풍기는 것이 당장 피를 부를 태세였던 것이다.

“총사님께 연락해라!”

“예!”

여자 무사 하나가 급히 내궁으로 뛰어 들어가자 책임자인 듯한 여인이 정중하게 말했다.

“안에 연락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흐흐흐! 우리는 분명 궁주를 나오라고 했다. 지금 너는 우리 말을 간단하게 씹은 것을 아느냐!”

“궁주님은 본궁의 지존이세요. 아무나 나오라고 한다고 덥석 나올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선 총사님을 만나본… 악!”

말하던 여인도 신녀궁에서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런 상대의 손속에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났다.

“감히 신녀궁에 와서 다짜고짜 암수를 펼치다니 무림의 공분을 사는 것이 두렵지도 않느냐!”

여인들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검을 뽑아든 그녀들은 상처를 입은 여인의 앞을 막아서며 당차게 소리쳤다.

“정파무림의 보호를 받는다고 우리가 무서워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우리가 누군지 아직도 감을 못 잡는 모양인데 우리가 바로 흑수칠흉이다.”

경비를 서던 여인들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흑수칠흉이라면 절강성 동쪽의 봉화일대에서 대단한 흉명을 떨치는 마두들이었다. 그들의 대형과 넷째가 무림백대고수의 상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무공이 높았는데 그 잔인함이 너무 지나쳐서 봉화에서는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우는 아이가 울음을 그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야, 흑수칠흉이 유명한 놈들이냐?”

아우들을 데리고 벌써 정문 근처에 나와 숨어서 보고 있던 유성탄이 아우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자 물었다.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들입니다.”

“강태웅! 네가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우린 할 수 있어! 알았어? 자, 따라해 봐. 우린 할 수 있다!”

“대형, 흑수칠흉이라면 대형 도움 없이는 우리가 이길 수 없습니다. 두 명이나 백대고수에 든 자들입니다. 저 비련의 남자는 다음에 하시고 이번에는 그냥 원래대로 하시면 안 될까요?”

마동파가 슬쩍 유성탄에게 물었다. 아우들 말마따나 전 같았으면 그들 모두가 덤벼도 흑수칠흉의 한 명도 당하기 힘들었다.

“이것들이 왜 이렇게 겁이 많은 거야? 내가 느끼기로는 니들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니까. 걱정 마. 한두 명밖에 안 죽을 거야. 그러니까 한두 명 안에 들어가지 않도록 열심히 싸워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유성탄이었다.

“신녀궁도들이 위험할 것 같은데 빨리 손을 쓰셔야지요?”

유성탄의 말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강태웅이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는 유성탄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정자운이 나타날 때까지는 너희는 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자운이 나타나고 내가 정자운 앞에 비통스런 모습으로 쓰러지면 그때 니들이 나타나서 저놈들을 처리하면 되는 거야. 알겠지?”

“알기는 알겠는데… 이거 여자들 꼬드길 때 사용하는 고전적인 수법이긴 한데 조금 방법이 이상합니다. 맞는 것이 아니라 두들겨 패주는 것이 고전적인 방법인데요?”

철패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넌 대형께서 말하실 때 뭐 한 거냐? 비련의 남자가 되신다잖냐! 하여간에 말 귀를 못 알아들어요.”

장우왕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하자 유성탄이 요상한 눈으로 장우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이거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거지?”

“우리 대형께서 벌써 여러 차례 너희에게 경고했었다. 그런데도 니들이 감히 경고를 무시하고 그 놈들을 고쳐주었어. 그리고도 우리가 신녀궁이라고 봐줄 줄 알았다면 너희들이 흑수칠흉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흑수칠흉은 오대사파들이 서로 간에 세력을 키우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절강에서 약간은 한적하고 큰 상권이 없는 봉화지역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독자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사파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잔인함의 도가 너무 지나쳐 세력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얼마간 수하들을 모은 적도 있었지만 비위에 거슬리면 가차 없이 목을 쳐 버리니 수하들은 더 이상 모집이 안 되고 있는 부하들도 도망쳐 버린 것이다. 결국 자신들만으로 영역을 지키다 보니 더욱 상대에게 잔인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오대사파에게 흑수칠흉이란 그리 큰 위협은 아니었다. 하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다른 쪽에 붙으면 곤란한 적만 만든 꼴이 되고 봉화 자체가 그리 탐나는 지역도 아니었으니 그냥 두고 볼 뿐이었다.

그러나 오대사파가 그냥 두고 본다고 다른 세력까지 겨우 일곱밖에 안 되는 흑수칠흉에게 봉화를 그냥 맡기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탕비당(蕩匕黨)이라는 정사 중간에 있는 문파가 봉화에 진출했고 이후 흑수칠흉과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졌다.

문제는 흑수칠흉이 사용하는 무기에 있었다. 흑수칠흉은 자신들의 무기에 독을 발라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신녀궁에서 그 독을 해독하는 약을 탕비당에 준 것이 사단이 되었다. 이후 흑수칠흉은 여러 경로로 신녀궁에 다시 또 탕비당에 해약을 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다. 하지만 신녀궁이 그런 협박이 무서워 환자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면 이미 그것은 신녀궁이 아니었다. 결국 얼마 전 탕비당이 흑수칠흉을 당하지 못하고 철수를 하자 흑수칠흉은 당장 신녀궁으로 달려온 것이다.

“아 씨! 자식들 말 되게 많네!”

갑작스런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뭐야 저건! 별 거지 떨거지 같은 놈이 감히 우리에게 그따위 소리를 지껄인 거냐?”

흑수칠흉 중 한 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니들 바보냐? 여기에 자식들이 너희들밖에 더 있냐? 하여간에 미련한 놈도 세상엔 참 많아.”

유성탄의 이어지는 말에 흑수칠흉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들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욕설이 아닐 수 없었다.

“아야!”

말하던 유성탄이 갑자기 얼굴에 날아든 도를 간발의 차이로 피했으면서도 마치 맞은 듯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이 자식들이 생긴 것도 치사하게 생겼다 했더니 하는 짓도 완전 치사네! 야 이 자식들아! 공격을 하려면 공격합니다 하고 말은 해야지!”

분명 얼굴에 도를 맞은 듯이 얼굴을 감싸고서도 입은 계속 놀리는 유성탄을 보면서 흑수칠흉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두 유성탄에게 달려들더니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뭐? 유 대형이 여기를……?”

“그렇다니까요. 하여간에 어찌나 얄밉게 구는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빈청에 방을 마련해 주라고 했어요.”

백리빙의 말에 정자운은 미소를 살며시 짓더니 물었다.

“얄밉다면서도 방은 주었구나.”

“그럼 어떻게 해요! 그래도 몇 날을 같이 보낸 정이 있는데… 거기다 낭인칠웅이라는 형제들도 다 왔더라고요.”

“그래? 하긴 무작정 냉정하게 대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이지. 거기다…….”

말하던 정자운의 입이 닫혔다. 불현듯 전에 강태웅에게 유성탄이 원하면 무산 신녀봉으로 보내라며 초청장을 주었던 것이 기억이 난 것이다.

“어쨌든, 온 이유가 뭐라더냐?”

“못 알아봤어요.”

“무슨 소리야? 총사가 직접 나가서 방까지 준비해 줬다면서 왜 왔는지 이유도 모른다는 거냐?”

“그게…….”

“호호호! 유 대형답구나. 호호호!”

정자운은 백리빙에게 유성탄이 한 말을 전해 듣고는 깔깔대며 웃었다. 이상할 정도로 유성탄에 대한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웃음이 저절로 터져나오는 그녀였다.

“이제 어떡하죠?”

백리빙이 고민이라는 듯이 말하자 정자운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백리빙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걸 내게 물으면 어떡하니? 네 손님이니 네가 알아서 해야지.”

“아가씨! 진짜 그 바람둥이가 그저 내 손님으로 왔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응.”

“아가씨!”

“알았어, 그래 같이 의논은 해줄게.”

백리빙은 마치 제삼자처럼 말하는 정자운을 보며 자신의 가슴을 쳤다.

“궁주님!”

그때 갑자기 궁주 방을 지키는 여자 무사로부터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지금 정문에서 일곱 명의 사악하게 생긴 자들이 나타나 궁주님을 찾으며 시비를 걸고 있다고 합니다. 경비무사가 급히 총사님을 찾는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일곱!”

“예, 일곱 명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일곱하고 무슨 원수가 진 날인가! 유성탄도 일곱이었는데…….”

백리빙이 조그맣게 중얼거리더니 벌떡 일어섰다.

“제가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백리빙의 말을 듣자 정자운도 같이 일어서더니 말했다.

“나도 가보겠다. 그리고 너는 파파들께 정문으로 와 달라고 한다고 전해라.”

“예!”

“죽여라, 죽여! 니들이 오늘 나 못 죽이면 오늘이 니 놈들 제삿날인 줄 알아라!”

흑수칠흉에게 게속 맞으면서도 유성탄의 입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있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말하는 것은 완전 뒷골목 양아치에다가 무공 같지도 않은 무공만 펼치는데 왜 이렇게 안 죽는 거야?’

흑수칠흉의 대형은 자신을 백대고수 중 상위 자리에 올려준 자신의 흑수장을 언제나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순식간에 사라질 정도의 충격을 지금 받고 있었다. 이미 여러 대의 흑수장이 유성탄의 몸을 가격했지만 유성탄은 여전히 죽는다고 비명은 질러대면서도 죽지 않고 있었다. 거기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는데 별 수를 써도 떨어지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다.

유성탄도 아우들의 실력이 꽤 늘기는 했지만 흑수칠흉을 이기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로는 한두 명만 죽으면 된다고 했지만 이미 자신의 친 혈육같이 생각하는 아우들이 다치는 것은 그도 바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세운 계획이 맞으면서 무공이 제일 강한 한 놈을 무력화 시킨다는 것이었다.

유성탄이 계속 맞기만 하면서도 별로 공격다운 공격을 못하자 방심하고 있던 흑수칠흉의 대형은 갑작스럽게 달려든 유성탄에게 허리를 잡혔다. 물론 잡혔다고 해서 당황할 정도로 만만한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곧 그는 당황하고 만다. 허리를 감싼 유성탄이 주먹으로 그의 배를 무차별적으로 가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대고수의 상위 자리는 사기 쳐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이 갑자는 되어야 펼칠 수 있다는 반탄지기를 형성한 그는 유성탄의 주먹을 견디며 유성탄을 떼어내기 위해 엄청 힘을 썼다. 그러나 갈수록 느껴지는 고통에 깜짝 놀라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내가 이런 막 주먹에… 안 되겠다!’

그는 품에서 중검(中劍)을 하나 꺼내더니 그걸로 유성탄의 백회혈을 찔러갔다. 그러나 교묘하게 팔을 낀 유성탄은 주먹으로 찔러오는 그의 팔목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으윽!”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검을 놓치고 말았다.

“이놈 아주 지독한 놈이네!”

흑수칠흉 중 셋째가 혀를 내두르며 소리쳤다. 대형의 허리를 감싼 채 계속 도는 바람에 대형이 다칠까 무서워 무기는 사용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던 그들은 대형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나오자 더욱 열이 받아 유성탄의 몸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는 대형은 절대로 아우들 앞에서 신음소리 같은 것을 낼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안 되겠다! 잡아서 떼어내자!”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그들이 몽땅 달려들어 유성탄을 잡았다. 그사이에 유성탄은 흑수칠흉의 대형이란 자의 다른쪽 팔까지 팔꿈치로 세게 찍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무릎으로는 사타구니를 쳐 버렸고 가랑이의 약한 근육 쪽도 사정없이 손가락으로 찔러댔다.

한 번은 순간적으로 신음을 흘렸지만 이후는 입만 꾹 닫은 채 계속 유성탄의 등을 때려대던 그의 온몸에서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억지로 참고는 있었지만 계속되는 고통에 몸이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유성탄은 그의 진기의 흐름이 확연하게 느려진 것을 느끼자 이번에는 자신의 옆구리를 잡고는 때리면서 잡아당기던 넷째의 허리를 잡았다. 그가 다음으로 무공이 강한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었다. 대형이란 자는 그런 데도 거기에 끼지 못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운기조식을 할 준비를 했다. 유성탄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몸에 느껴지는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웬 놈들이냐!”

유성탄은 백리빙과 정자운이 같이 오는 기운을 느끼자 더욱 열심히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소리에 놀란 정자운과 백리빙은 더욱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더니 완전 옷이 누더기가 된 채 맞고 있는 유성탄을 보더니 우선 커다랗게 소리를 쳤다.

“태웅 형님, 우리 차롄데요.”

“나가자!”

“그런데 도행아, 니가 보기에 대형이 비련의 남자로 보이냐? 내가 보기에는 그냥 웃기는 남자로밖에 안 보이는데…….”

강태웅이 몸을 날리자 뒤를 따라 차례로 뛰어나가며 마동파가 표도행에게 소곤거렸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주책 맞은 남자로 보입니다. 남자가 어디 저렇게 방정맞게 비명을 지른답니까!”

철패가 마동파의 말을 듣고는 표도행보다 먼저 말을 했다.

그리고…….

‘이 자식들 이따가 두고 보자. 씨! 내 귀가 얼마나 좋은지 알면서도 그따위 말을 한다는 것은 나보고 들으라고 한 말이렷다. 죽었어. 씨!’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다 들은 유성탄은 비명소리를 조금 점잖게 바꾸더니 흑수칠흉의 넷째의 허리를 힘없이 풀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정자운의 앞으로 굴러갔다.

“이 놈들 감히 낭인칠웅의 대형을 완전히 묵사발을 만들어. 니들 오늘 죽었어!”

장우왕이 외침과 동시에 도끼로 흑수칠흉을 쳐갔다.

‘묵사발? 이것들이 단체로… 장우왕 너도 죽었어. 씨!’

정자운의 앞으로 굴러 간 유성탄은 비련의 신음성을 발하면서 장우왕의 말에 발끈했다.

“세상에……?”

완전 누더기가 된 유성탄의 옷을 보더니 정자운이 급히 유성탄의 상반신을 안았다.

“유 대형! 유 대형! 정신 차리세요!”

정자운의 고운 목소리가 유성탄의 귀를 간지를 때 이미 낭인칠웅과 백리빙은 흑수칠흉과 손속을 나누기 시작했다.

“오! 자운 소저… 쿨럭쿨럭! 신녀궁을 위해 내 한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소. 그래도 자운 소저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목소리라도 한 번 듣고 죽는다 생각하니 전혀 내 한 몸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드는구려.”

무지 아픈 척 기침까지 쿨럭대는 유성탄을 보며 정자운은 급히 유성탄의 맥을 짚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행동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정도는 유성탄도 알고 있었다.

“쿨럭! 쿨럭! 아, 이제 나도 곧 죽는구나. 자운 소저 죽기 전에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소?”

기침을 하는 척하며 그녀가 맥을 못 잡게 몸을 비틀은 유성탄은 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 보세요.”

“죽기 전에 소저의 몸을 한번 으스러지도록 안아보고 싶구려.”

눈을 감고 인상을 죽상을 한 채 요상한 말을 하는 유성탄을 정자운은 고운 아미를 찌푸리고는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죽는데 굳이 저를 꼭 안아보시려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응? 생각한 반응이 아닌데… 그런 거 묻지 않고 그냥 그래요 죽기 전에 안아보세요. 그래야 정상인데…….’

하지만 눈을 떠서 볼 수는 없었다.

“나의 소저를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의 의지라고 생각해 주시오.”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인 유성탄의 말에 정자운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는 다시 물었다.

“그 말을 진정으로 지키실 자신이 있으신가요?”

“물론이요. 나 유성탄 이래봬도 태어나서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왔음을 하늘을 두고 맹세할 수 있소이다.”

“그럼 백리빙은 어쩌실 건데요?”

‘이게 또… 요상한 질문을……? 이 상황에서 빙아는 왜 묻는 거지? 아이 씨… 곤란하게 만드네…….’

“백리빙은… 백리빙은… 으으으, 숨이 막혀온다. 으으으…….”

유성탄의 숨이 막혀온다는 말에 정자운은 유성탄의 목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최대한 가슴을 편하게 하세요. 그리고 너무 빨리 숨을 쉬지 마시고 운기조식할 때처럼 천천히 깊이 들이마시세요.”

말을 마친 정자운은 유성탄의 얼굴을 착잡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다시 물었다.

“전… 솔직히 유 대형께서 진짜로 저를 사랑해서 이러시는 건지, 단지 저를 좀 데리고 놀 생각으로 이러시는 거는 아닌지 두렵습니다. 그냥 제 몸이 탐나서 그러시는 거라면 오늘 밤 제게 오세요. 유 대형이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유성탄은 정자운의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뭔가가 떨어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을 뜨고 말았다.

“에이, 그냥 잠깐 장난친 건데… 눈물까지…….”

유성탄은 눈을 뜨자마자 눈물이 가득 담긴 정자운의 눈과 그대로 마주치자 더 이상 연극을 할 수가 없었다.

유성탄은 떨리는 손으로 정자운의 얼굴로 손을 가져가더니 그녀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저는 다만 유 대형께서 조금만 더 솔직해지시고 조금만 더 담백해지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그러면 그러라고 하면 되지 눈물까지 흘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그러게요. 바보같이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네요.”

말을 마친 정자운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안겨 있던 유성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버렸다.

“아이구! 머리 깨졌다.”

“어머!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당연히 괜찮지! 세상에서 내 머리보다 단단한 것은 없을 거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유성탄이 잘난 체를 하자 정자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직 눈에 눈물이 그득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자 마치 그 모습이 이슬을 머금은 백합 같았다.

“아 저것들 언제까지 싸우고 있을 거야!”

잠깐 멍하니 정자운의 얼굴을 쳐다보던 유성탄은 정자운의 눈과 마주치자 겸연쩍은 듯이 얼굴을 돌리더니 아직도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는 싸움판으로 뛰어들었다. 신녀궁 최고의 고수인 백리빙이 합세했고 가장 강한 두 명이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아우들의 무공만으로는 그들을 쉽게 제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유성탄이 끼어들자 싸움은 너무 허무하게 끝난다.

유성탄이 끼어들며 간단하게 싸움이 끝난 후 정자운과 백리빙은 신기할 정도로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갔고, 유성탄과 마동파 그리고 표도행만이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강태웅은 장우왕과 황대산 그리고 철패만 데리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흑수칠흉을 끌고는 신녀궁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네?”

남은 경비무사 여인들이 강태웅이 흑수칠흉의 사지를 아무 데나 잡고는 그대로 끌고 나가자 멍하니 있다가는 갑자기 정신이 든 듯이 옆의 여인에게 말했다.

“나도 그래… 어떻게 그렇게 맞고 다 죽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강해져 가지고 순식간에 다 때려눕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뭐 하러 그렇게 맞은 거지? 거기다 흑수칠흉이라면 엄청난 고수들인데 저 사람들 몇 명이서 저자들을 다 처리한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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