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아우들과의 재회 (61/79)

제3장 아우들과의 재회

“안에 있는 놈은 당장 밖으로 나와라! 만약 안 나오면 전각에 불을 지를 것이다.”

밖에서 지휘하던 자는 수하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족족 비명을 지르며 잠잠해지자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수하들에게 전각을 포위하라고 하고는 안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자식들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불장난을 하려고 그러는 거냐? 하여간에 덜 떨어진 놈들이 하는 짓을 보면 무모한 짓만 골라서 한다니까.”

귀가 하나 없는 놈을 어깨에 메고 밖으로 나온 유성탄은 우선 족제비상을 마당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내가 여간해서는 화를 안 내거든! 그런데 오늘은 화가 많이 난단 말이야.”

유성탄은 정말 화가 많이 났다. 그들이 팔든 여인들의 나이가 거의 자신의 여동생인 유성화와 비슷했던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직 어린 여자들이 폭력에 의해 사고 팔리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죽여라!”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유성탄을 에워싸고 있던 장한들이 무기를 들고 덤비려고 했다.

“웃기는 놈들이네. 감히 대형께 덤비다니.”

“그러게 말이야! 이놈들이 아직 대형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대형 어떻게 할까요?”

“니들 왔으면 빨리 와서 이 대형을 도울 것이지 잘못하면 불고기가 될 뻔했잖아!”

유성탄은 누군지 당장 알아차리고는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도 흰소리를 했다.

“으아악! 아이구!”

낭인칠웅의 아우들은 유성탄과는 달리 손속에 사정이 없었다. 아니 사정을 두면서 싸울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몰랐다.

‘저 자식들이 엄청 달라졌네?’

유성탄은 아우들이 싸우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기운이 너무 달라져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잘 됐네. 그럼 이놈이나 우선 작살을 내고…….”

유성탄은 아우들이 얼마든지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자 잘됐다는 듯이 족제비상을 발로 차서는 깨웠다.

“웬 놈이냐? 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족제비상은 정신이 들자마자 유성탄에게 큰소리를 쳤다.

“아이 참 피곤한 놈일세. 어떻게 상황 돌아가는 것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냐? 에그… 하여간에 미련한 놈은 맞고 시작하는 게 제일 편하지 암!”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안 좋던 유성탄은 마음껏 매타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족제비상의 울부짖음이 장 안의 모든 비명소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네가 판 여자들 중에 진수진에 대해서 말해보란 말야.”

“정말입니다. 우리는 물건을 팔고 살 때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물건? 에따 그래 물건이다, 이놈아!”

잠시 매타작을 멈추고 심문에 들어갔던 유성탄은 족제비상이 사람을 물건이라 칭하자 빙정이 상했는지 냅다 한 대 쳐버렸다.

“아이구! 제발 살려주십시오. 더 때리시면 전 죽습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 절대로 안 죽게 할 거니까.”

유성탄은 몽둥이로 족제비상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하더니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물었다.

“네가 내 말을 영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 같은데, 내가 말하는 여자는 저기 있는 애들이 아니고 일 년 전에 네가 진가촌에서 한 집안을 풍비박산내면서 어린 여아 하나를 데려왔잖아. 그 여자애를 말하는 거야. 알았어?”

“정말 전 그런 적 없습니다.”

“나한테 이 정도 맞고도 안 부는 놈은 니가 정말 처음이다. 칭찬해 주마.”

족제비상은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버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 그만 때릴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정말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칭찬은 했으니 이제부터 열 배로 맞아보자.”

족제비상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끝난 것이 아닌 것이다.

“이 놈들 어떻게 더 잔인해져 가지고 나왔냐?”

“대형도 참! 그럼 저 놈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있으라는 말입니까?”

마동파가 오랜만에 유성탄과의 대화가 즐거운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는 말했다.

“그래도 저건 너무 많이 죽였다.”

“대형, 저놈들은 죽어도 싼 놈들입니다. 안에 갇혀 있는 여인들이 거의 오십여 명에 달했습니다. 시장이 한 번 열릴 때마다 그랬다면 저들이 그동안 팔아먹은 처자가 적어도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이 될지도 모릅니다. 봐줄 필요가 없는 놈들이었습니다.”

강태웅이 심각한 얼굴로 침울하게 말했다.

‘저건… 아직도 꼭 나를 가르치는 말투란 말야.’

“그런데 니들은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왔냐?”

“하후 소저께서 대형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더군요.”

“하후란이? 고 계집애는 어떻게 내가 어딜 가든 다 아는지 몰라?”

“그거야, 대형께서 원체 특이하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표도행이 나섰다.

“특이? 하긴 나같이 멋있는 사람도 없지.”

특이를 멋으로 순식간에 바꾸는 순발력을 발휘하는 유성탄을 보며 아우들은 드디어 유성탄을 만났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칠우도에 진짜 기연이 있었냐? 니들 정말 많이 달라졌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천고의 기약이 있었습니다.”

“그래? 하하하! 역시 난 운이 좋아! 천고의 기약이라… 정력에도 좋겠구나.”

유성탄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해서 유성탄을 쳐다본다.

“요새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보약을 좀 지어 먹을라고 그랬거든! 그런데 천고의 기약이면 보약보다는 좋을 것 아니냐?”

보약을 짓는데 쓸 돈이 아까워서라고는 말을 하지 않는 유성탄이었다.

“뭐 하냐? 가져온 게 있으면 좀 내놔야지.”

그러나 모두는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설…마? 니들끼리만 다 먹은 것은 아니겠지? 이 씨! 니들끼리만 먹었구나! 치사한 놈들…….”

“대형, 기룡왕은 당대의 권력자입니다. 그가 중앙정부에 아무런 직책도 없고 실지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없지만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왕자를 일개 흑도인의 진술만으로 엮을 수는 없습니다. 잘못하면 대형께서 뒤집어쓸 수도 있습니다.”

족제비상은 결국 유성탄의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교중 왕자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불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그의 진술일 뿐 증거로 사용할 아무런 문서도 없었다. 강태웅은 그런 진술만으로는 증거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유성탄에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놈들이 종이로는 전혀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는데 어쩌냐?”

“교중 왕자란 놈을 잡아다가 족치면 불지 않을까요? 대형께서 족쳐서 안 부는 놈이 없지 않습니까?”

철패가 어눌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자 유성탄이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 잡아다가 족치면 돼!”

유성탄의 반응을 본 아우들이 모두 철패를 노려보았다. 왕자를 잡아서 족친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유성탄에게 가르쳐 준 철패를 탓하는 눈초리였다.

“대형, 그것보다는 아예 이번 기회에 인간시장을 여는 놈들을 전부 제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다 보면 어쩌면 꼬리를 잡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왕자를 잡아 족치는 방법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강태웅의 말에 유성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아 그리고 초실이란 여자애는 찾았냐?”

“예, 다행히 잡혀간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잡혀 있는 여자들 중에서는 가장 멀쩡했습니다. 그래서 분부하신 대로 은자 열 냥과 함께 그 꼬마의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황대산이 보고를 했다.

“잘했다. 그런데 하후란을 만났으면 오살에 대해서 들은 거 뭐 없냐? 그놈들 많이 다쳤었는데…….”

“전 호법은 팔이 잘려서 아직 요상 중이더군요. 상처가 커서 아직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호법들은 하후 소저의 부탁으로 뭔가를 조사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후란 그거 되게 웃기는 계집애야? 내 호법을 왜 지 마음대로 일을 시키고 그런 데냐?”

“청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뭔가 다른 것이 발견되었는데 살수교육을 받은 호법들이 조사하는데 가장 적격이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대형께 허락을 구하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대형께서 그새를 못 참고 사라지셨다고…….”

“자발없이 너무 돌아다니신다고 뭐라고 하던데요.”

강태웅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마동파가 마무리를 했다.

‘이것들이 좋은 거는 지들끼리 다 먹고 와서는 뭐? 자발… 다시 강한 수련으로 들어가? 말아?’

주루에 나타난 유성탄과 아우들이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있었다.

“정말 얼마나 힘들었는지 대형께서는 짐작도 못 하실 겁니다.”

표도행이 약간은 뻥을 곁들여 얘기를 꺼내자 유성탄이 맞받았다.

“니들이 힘든 게 뭔지 아직 모르는구나. 내가 이번에 무림에 나와 힘들었던 거를 말로 하려면 몇 년은 걸려야 할 거다.”

“당연하겠지요. 나으리께서 그동안 저지른 만행을 다 말로 하려면 정말 몇 년이 걸려도 모자를 것입니다.”

‘이 씨! 이 자식은 왜 또 나타나는 거야?’

아우들과의 오랜만의 회포를 푸는 장소에 나타난 고남보의 말은 순식간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망쳐놓기에 충분했다.

“대형! 이 놈 누굽니까? 생각하는 거하고는… 야, 저리 가!”

마동파가 고남보를 보며 파리 쫓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범인 은닉죄나 아니면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음을 먼저 공지하는 바입니다.”

“대형, 이놈도 대형만큼 웃기는 놈인데요. 겁도 없고.”

‘이 자식은 말을 해도 괴상하게 하네.’

표도행의 말에 유성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인사해라. 고 뭐시기라고 조금은 모자란 포쾌인데, 내가 지금 제일 유명한 범인이 되었다고 이렇게 쫓아다닌다.”

“고남보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범인이 아니라 용의자라고 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아, 그러고 보니까 대형께 치정살인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인다는 놈이 이놈이군요! 그런데 이 자식이 감히 여기까지 대형을 범인이라고 하면서 귀찮게 따라다닌다 이 말입니까?”

‘옳지! 개기기 잘하는 장우왕이 일어났구나. 그래 너 한 번 믿어보자.”

장우왕은 먼저 등에 맨 커다란 도끼부터 빼서는 손에 들었다. 개기기 전에 기선제압은 필수였다.

“니가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대형을 괴롭혀! 어디 나도 괴롭혀봐라!”

장우왕이 큰 머리를 고남보의 가슴팍에 대며 개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장우왕을 유성탄이 아주 흡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관인을 협박하는 것은 정말 큰 죄라는 것을 모르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대형! 관인을 협박하는 것이 아주 큰 죄라는데요.”

장우왕이 유성탄을 보며 어떻게 할까요? 하는 식으로 묻자 마동파가 일어서며 말했다.

“우왕 형님, 어차피 큰 죈데 그냥 도끼로 머리를 부숴버리시지요?”

“그럴까?”

장우왕이 도끼를 위로 들어 올리며 고남보를 쳐다보자 어느새 고남보는 주루를 내려가고 있었다.

“대형, 보셨지요. 저런 놈은 이렇게 대해야지 조금이라도 사정을 봐주면 지가 대단해서 그런 줄 알고 기어오릅니다.”

‘씨! 정말 간단한데 괜히 지금까지 속을 끓였잖아.’

“그런데 대형, 굳이 기룡왕부와 척을 질 필요가 있을까요?”

“왜?”

“지금 대형께서 하실 일이 얼마나 많은데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어서 앞길을 험난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그럽니다.”

“표도행 니 생각도 그렇지? 나도 그래서 고민이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인데 말야…….”

유성탄은 마치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치듯이 말하고는 아우들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계속 진수진의 일을 어디까지 봐줘야 할지 아직까지도 갈등하고 있었던 유성탄으로서는 표도행의 말이 너무 반가웠다.

“솔직히 천하에 어려운 사람은 사방에 깔려 있습니다. 대형께서 명만 내리시면 진수진 그애보다 더 억울하고 비참한 사람, 한 마차는 당장 데려올 수 있습니다.”

황대산도 그런 여자 하나 때문에 왕부와 척을 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 듯이 말했다.

‘하긴 그래… 진수진 그 계집애가 나한테 밥을 한 그릇 주었나 그렇다고 돈을 집어준 것도 아니고… 그래 이번 일은 포기하자. 남아 대장부가 살다보면 말을 바꿀 때도 있는 거지 뭐!’

속으로 중얼거린 유성탄이 마음을 굳힌 듯이 입을 열었다.

“그래 니들 말을 듣다 보니까 굳이 나같이 바쁜 특수포쾌가 전혀 특수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은 나라로 보나 천하로 보나 굉장한 손해라고 생각한다. 고로…….”

“그런데 대형, 기룡왕부가 엄청 부자라고 그러더라고요. 잘만 하면 왕창 뜯어낼 수도 있는 기횐데…….”

뜬금없이 초를 치는 철패를 모두 살기를 띠고 쳐다보자 철패의 목소리가 죽어들다가는 멈춰버렸다. 그러나 이미 유성탄은 들을 말은 다 듣고 말았다.

“고로… 나는 이번 일을 끝까지 파헤칠 생각이다. 끝!”

‘한몫 잡고 그때 손을 떼는 거지 뭐… 히히히!’

유성탄의 말을 들은 아우들은 모두 양손으로 머리를 잡았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린 것이다.

“하여간에 눈치 없는 놈은 어딜 가나 말썽이라니까!”

마동파가 먼저 머리에서 손을 떼고는 철패를 향해 살기 띤 눈을 보내며 소리쳤다.

“니들 왜 그래? 내가 결정한 거랑 철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야. 원래부터 그러려고 한 거라니까… 그리고 좋은 것은 니들끼리만 먹고 와서는 큰소리치면 안 되지.”

얘기의 화제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유성탄이었다.

“대형께서 정하신 이상 우리로서는 따라하는 수밖에는 없다. 표도행 너는 마동파와 같이 나가서 인간시장을 여는 놈들에 대해서 더 알아 와라. 어제 그 정도로는 그런 시장을 열기는 힘들다. 분명 뒤를 봐주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황대산 너는 철패를 데리고 진수진이라는 아이가 살았다는 곳에 가서 그 집 식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소상히 알아 와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왕이 자네는 나와 같이 가 볼 곳이 있네.”

“저것들 또 어디를 몰려 나가는 거지?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오랜만에 대형을 만났으면 어떻게 하면 대형을 즐겁게 해 줄 것인가 그것부터 생각 않고 어디를 쏘다니는 거야. 하여간에 아우도 다 필요 없다니까. 인생은 결국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거. 이렇게 살다 이렇게 죽는 거지 뭐.”

아쭈구리! 철 좀 들었나보구나. 심오한 인생론까지 펼치는 걸 보니.”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왔소?”

“야, 이놈아! 개방이 하는 일이 뭐냐? 그저 봉 한번 잡았다 하면 뽕을 뺄 때까지 쫓아다니는 게 바로 거지의 미덕이라는 거다.”

“미덕은 무슨… 그건 됐고 저번에 내게 사기친 돈이나 갚으시오!”

“사기? 무슨 사기?”

“저번에 가짜 황금을 자지고 진짜라고 해서 나한테 밥값 떼어먹지 않았소? 그건 갚아야지.”

“그게 왜 가짜야? 난 분명 네게 진짜 황금을 줬다. 혹시 너… 니가 떼먹고 나한테 덤터기 씌우려고 하는 짓이라면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난 거지야! 아무리 그래봐야 나한테는 나올 게 없어.”

“아이 씨! 정말 이 방망이에 맞고 옥에 갇히고 싶소?”

“때리려면 때려라. 하지만 그 순간 너는 다시는 삼대가 포쾌를 한 뼈대 있는 가문 소리는 못하게 될 거다.”

“그건 또 무슨 신발 비트는 소리요?”

“생각해봐. 어느 뼈대 있는 가문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거지영감을 몽둥이로 때려서 옥에 가둔다더냐! 만약 그런다면 아비 어미도 없는 호로자식이지.”

‘씨 또 얘기가 어떻게 호래자식으로 넘어가는 거야 에이!’

“내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서라는 것을 해줄 테니 더 이상 내 앞에서 알짱대지 말고 가시오.”

“알짱대려고 왔는데?’

“아 정말!”

“내가 아주 좋은 정보를 가지고 왔다. 얼마나 비싼 정보냐 하면 아마 이 정보를 남에게 팔기만 해도 황금 천 냥은 거뜬히 받을 걸.”

정보가 돈이라는 말은 이미 배운 유성탄이었다. 그리고 황금 천 냥이라면 어떤 상황도 참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그였다.

“앉아서 알짱거려 보시오.”

“너 지금 기룡왕부와 싸우려고 한다며?”

“그건 또 어디서 들었소?”

“어떤 미친놈이 기룡왕부와 한탕 뛰려고 준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 그리고 지금 여기에 그런 정신없는 생각을 할 미친놈이 너밖에 없잖냐?”

‘이! 궁상맞은 거지가 은근히 나를 미친놈으로 몰아가잖아? 아흐, 그냥 미친 척 한 번 해? 말아?”

“너 지금 미친 척하면 진짜 미친놈 되니까 좀 참아라.”

‘어! 이 늙은이가 점쟁이였나? 내 속마음을 어떻게 알지?’

“내가 점쟁이가 아니고 니 얼굴에 다 써 있다. 무림을 다니려면 어느 정도는 속마음도 감출 줄 알아야지. 그렇게 나 이런 생각 하고 있소! 하고 표정으로 다 가르쳐주면 남들한테 만날 사기만 당한다.”

“궁상만 떠는 줄 알았더니 귀신같은 영감일세. 영감만 아니면 누구한테도 사기 안 당하니까 걱정 말고 천 냥짜리 정보나 말해보시오.”

“그런데 이 정보로 돈을 벌면 나한테는 몇 할이나 줄 거냐?’

“그거야 정보를 들어보고 결정해야지 듣지도 않고 무슨 몇 할을 따지는 거요? 하여간에 늙어가지고 그렇게 돈만 좋아 못씁니다.”

“넌 참 안면 철판신공이 아주 경지에 든 것 같구나. 세상에 먼저 말해주고 이익 따지는 정보가 어디 있냐? 이미 얘기 다 들었는데, 나라도 당연히 돈 안 주겠다.”

‘생긴 것은 완전 궁상맞은 게 엄청 미련한 것 같은데 그런 눈치가 있다니! 에이, 그럼 조금만 주자.’

“일 할 주리다.”

“일 없네. 천 냥을 벌어준다는데 겨우 일 할? 그만두세. 난 다른 데나 가보겠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나이에 뭔 욕심은 그렇게 많소? 내가 노인장 나이였다면 돈 같은 것은 욕심 안 냈을 거요. 젠장 죽을 때 돈을 싸가는 것도 아닌데…….”

“그럼 너는 죽을 때 돈을 싸 가냐?”

“나는 안 죽소!”

“너 잘났다. 하여간에 말하는 거 하고는… 네놈은 정말 싸가지가 없어. 그럼 난 간다.”

“영감! 정보는 가르쳐 주고 가야지!”

떳떳하게 말하는 유성탄을 보며 궁상개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평생을 남을 약 올리며 살아왔지만 유성탄은 정말 일 갑자에 하나 나올까말까 하는 진상이 분명했다.

“내가 왜 돈 되는 정보를 네게 가르쳐주냐?”

“그럼 그만두시오! 나 유성탄 인생 그렇게 안 살아왔소! 두 눈 뜨고 일 할 이상 누구에게 줘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바로 나요.”

“내가 살다 살다 너같이 지독한 놈은 처음 본다. 좋다, 일 할만 받지. 너 청담 알지?”

“영감이 청담은 어떻게 알아?”

“니 놈이 운하현에서 청담을 찾아다니지 않았냐?”

“그거 극비 중의 극빈데…….”

“미친놈! 극비 중의 극빈데 그렇게 사방을 돌아다니며 청담이 어디 있냐고 떠들며 다녔냐?”

‘씨! 내가 그랬나……?’

“그래서 어쨌다는 거요?”

“청담이 지금 기룡왕부에 있다. 어때, 굉장한 정보지?”

“그런데 그게 무슨 돈 버는 정보라는 거요?”

“나는 모르지! 하지만 분명 너에게는 돈을 버는 정보일 게 분명해. 네놈 성격에 돈도 안 생기는데 그렇게 찾아 다닐 리가 없지 않냐? 하여간에 생기는 돈에 일 할은 내 거다.”

‘이거 봐라. 뭔가 이상하네? 청담을 잡으면 내게 금자 삼천 냥이 생기는데… 왜 내가 저 늙은이 말 몇 마디 들었다고 일 할이나 줘야 하는 거지? 씨! 이가 아무래도 또 사기를…….’

“대형! 그런 정보를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사방을 돌아다니며 나름대로 인간시장을 여는 조직에 대해 알아보고 돌아온 아우들은 유성탄에게 뜻밖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그렇게 찾아다니던 청담이 기룡왕부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천리안이거든. 그냥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세상을 관조하다 보면 모든 것이 저절로 내 머리에 떠오른다.”

“대단하십니다, 대형!”

“존경합니다, 대형!”

“대형은 정말 신인이십니다.”

아무도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우들밖에 없었다. 당장 찬탄의 목소리가 마동파와 표도행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왔고 잠깐 틈을 두고 황대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들은 대형 말을 안 믿냐?”

여전히 한 발 늦는 장우왕과 철패를 보며 유성탄이 물었다.

“대형, 저는 천리안이신 대형께서 분명 다 아시리라 믿고 마음속으로 이미 감탄했습니다.”

철패가 급히 말했다. 유성탄으로서는 인정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대답을 하지 못한 유성탄이 마지막 남은 장우왕을 쳐다본다.

“태웅이도 아무 말 안 하고 있는데요.”

뭐라고 비위를 맞출지 말을 생각해 내지 못한 장우왕이 강태웅을 물고 들어갔다.

“태웅이 너는 왜 가만 있냐?”

“대형의 능력이야 이미 말로 칭찬할 경지가 지나셨지요. 저는 그저 인정할 뿐입니다.”

‘짜식이 또 요상하게 대답하네. 뭘 인정한다는 거야?”

유성탄은 강태웅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의 귀에는 이상하게 뻥 친 걸 인정한다는 소리로 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시장의 뒤를 봐 주는 자들은 상상외로 다양했습니다.”

강태웅이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시장은 사람을 납치해오는 조직과 사는 조직 그리고 파는 조직이 모두 달랐다. 거기다 점 조직으로 되어 있어 이번에 유성탄에 의해 작살 난 자들도 그저 여자를 인계받아 그날 판 것뿐 더 이상 아는 것이 없었다.

“연계된 조직을 열거하면 해적, 산적, 수적, 뒷골목의 흑도들 거기다 무림의 사파조직과 관부까지 손이 안 뻗친 곳이 없었습니다.”

“제가 전에 용역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가 인간시장이었습니다. 아마 그때 움직인 돈이 금자 만 냥은 넘은 걸로 압니다. 한마디로 엄청난 장사지요.”

“마동파! 너 용역도 했었냐?”

“처음 낭인이 되었을 때 먹을 게 없어서 잠시… 죄송합니다.”

“진수진이라는 애의 집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더군요. 진수진이라는 애가 팔려간 후 잠깐 다시 재기하는 듯 했지만 결국 다 말아먹고 부모는 다 죽고 동생은 어딘가로 사라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말아먹은 것도 누군가가 뒤에서 망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죽일 놈들!”

유성탄의 입에서 죽인다는 말이 나왔다. 가족을 제일로 치는 그에게 가정을 완전히 몰락시킨 놈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었다.

“저는 우왕이와 함께 그 날 인간시장에 물건을 사러 온 자들을 찾아봤습니다. 이미 여러 명은 급히 도망을 친 후였고 몇 명을 잡아서 족쳤는데 그들 역시 거간꾼이었습니다. 즉 몸통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내가 직접 기룡왕부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군.”

말을 듣던 유성탄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조금이라도 힘들겠다 싶으면 도망부터 치려고 하던 유성탄이 변한 것이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세상을 경험해 보니까 위험할수록 생기는 게 많더라고…….”

유성탄의 말을 들은 아우들은 그때서야 유성탄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저씨!”

정일호와 같이 있던 진수진은 유성탄이 나타나자 반가워서는 달려왔다.

유성탄은 진수진이 가까이 오자 아우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 얘들 아냐?”

“예에? 제가 어떻게 이분들을 알아요. 오늘 처음 보시는 분들인데…….”

“그런데 금방 아저씨라고 했잖냐? 너 혹시… 설마… 나보고…….”

유성탄은 아저씨란 말에 충격을 먹은 듯했다.

“그럼 뭐라고 해요?”

“포쾌 오라버니, 멋있는 공자님, 젊은 오라버니, 찾으려면 얼마나 나한테 맞는 호칭이 많은데 쟤들 부르는 호칭을 나한테 쓰면 어떡하냐?”

“풋! 그럴게요, 포쾌 오라버니.”

“야 정일호! 이리 와봐라.”

이상하게 진수진의 호위를 맡았던 정일호는 유성탄을 보자 그만 떠나려고 하다가는 다시 유성탄에게 잡히고 말았다. 마치 부하 부르듯 정일호를 부른 유성탄이 그를 아우들에게 소개했다.

“인사해라. 여기는 혈점산지 뭔지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정일호, 그리고 여기는 나 유성탄의 가장 소중한 아우들이다.”

여섯 명의 아우들은 유성탄의 말을 듣자 깜짝 놀라 정일호를 쳐다보았다. 중원 제일의 살수라는 혈점사라면 그들도 여러 차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유성탄 대형을 모시는 낭인칠웅이라고 합니다.”

강태웅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정일호요.”

살수의 가장 금기사항이 자신의 진면목을 사방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성탄 때문에 자꾸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게 된 정일호는 무척 불편한 얼굴이었다.

“대형, 정말 대단하십니다. 중원제일의 살수까지 친분을 가지시다니요.”

장우왕이 처음으로 가장 먼저 유성탄을 추켜세운다고 입을 열었다.

“친구? 아닌데… 얘 지금 나 죽인다고 내 근처를 배회하는 중이야. 그래서 내가 나 죽이기 전에 진수진이나 좀 봐달라고 부탁한 거고.”

유성탄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정일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일호라고 특별하게 설명해 줄 말이 있을 리 없었다.

“대형께서 교중 왕자를 잡아서 나오기도 힘들겠지만 나온신다고 해도 그들의 추적이 대단할 것입니다. 우선 더 신중하게 생각을 하시는 게 어떨까요?”

강태웅이 아무래도 유성탄 혼자 기룡왕부로 보내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지 계속 설득을 했다.

“교중 왕자를 내가 왜 잡아? 나 안 잡아.”

“그럼 뭐 하러……?”

“기룡왕부에 청담도 있다잖냐? 그러니까 교중 왕자의 죄에다가 청담까지 합치면 적어도 금자 만 냥은 안 생길까?”

“대형, 지금 이 일은 엄청난 모험입니다. 돈 때문에 감수하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돈이 꼭 목적은 아니야 하지만 생길 수 있는 데 굳이 피한다는 것은 유성탄의 성격과는 안 맞는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결국 돈이 목적이라는 말씀이시잖습니까?”

마동파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돈 싫어?”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돈 때문에 목숨까지 거는 것은 좀…….”

“그러니까 나 혼자 들어가겠다는 거 아니냐? 분명히 얘기하지만 내가 한 몫 잡아 나온 다음에 대형 어쩌구 하면서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생각을 하지 마라. 니들도 좋은 거는 니들끼리 다 먹었으니까.”

“하여간에 대형은 다 좋으신데 끝이 너무 길어요. 그게 언제 얘긴데 과거는 묻는 게 아니라고 하셔 놓고…….”

“그게 왜 과거냐?”

“그 약을 우리가 먹은 게 벌써 석 달도 전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지요.”

“웃기지 마. 내가 보기에 그 약들 아직도 니들 피 속을 돌아다니고 있어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여간에 니들이 그 약들을 완전히 흡수해서 사라질 때까지는 난 계속 말할 거다.”

“역시 대형이십니다. 저희들보고 쉬지 말고 정진해서 빨리 고수가 되라는 말이라는 거 다 압니다. 대형은 정말 대형이십니다.”

강태웅이 감탄의 목소리로 말하자 유성탄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또 이상하게 해석하는 강태웅의 말에 찝찝해진 것이다. 더 이상 약에 대해서는 말하기 힘들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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