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제1장 진수진 (59/79)

제1장 진수진

진수진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뼈 빠지게 가난한 집안의 딸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녀가 열다섯이 되던 날이었다. 우연히 저잣거리에 놀러 나갔던 그녀가 기룡왕부의 기룡왕의 아들인 교중 왕자의 눈에 띈 것이다.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처럼 예비 된 미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를 본 교중 왕자는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절강성과 복건성의 경계에 위치한 기룡왕부는 사방 약 이백여 리가 그의 영지였다. 현 황제의 사촌동생인 기룡왕은 영락제가 정변을 일으킬 당시 영락제를 지지하면서 군(君)에서 왕(王)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이후 봉토(封土)를 하사받은 기룡왕은 봉토에 자리 잡은 자신의 왕부에서 칩거하면서 조용히 지내왔다.

문제는 그의 아들인 교중 왕자였다. 아들이라 하여 젊은 나이는 아니었다. 이미 사십이 넘은 그는 벌써 두 번이나 혼인을 했다. 하지만 첫째 부인은 알지 못할 병에 걸려 죽었고 두 번째 부인은 자살을 했다. 이후 교중 왕자는 더 이상 혼인은 하지 않았다. 대신 젊고 예쁜 여인들을 하녀로 두어 그의 시중을 들게 했다.

그런데 그의 시중을 드는 하녀들도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거나 하여 죽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문제는 앓아 죽었다고는 하는데 그녀들이 무슨 병을 앓다가 죽었는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왕부에 흉흉한 소문이 돌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문도 곧 잠잠해졌다. 쓸데없는 얘기를 하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 일이 생기면서였다.

다른 곳이었다면 아무리 일하는 하인이나 하녀라 할지라도 그렇게 사라진다면 관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왕부와 봉건왕조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완전한 치외법권 지대였다. 감히 황제의 사촌동생이자 왕으로 봉해진 기룡왕부를 조사할 만큼 간이 큰 관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교중 왕자가 아무리 왕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진수진을 만난 곳은 기룡왕부의 영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영지가 아닌 곳에서 백주대낮에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무리 왕자라 해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었다. 그렇다고 양갓집 규수를 아무도 모른 곳에서 납치하는 식의 극한 방법은 누군가 뒤를 조사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교중 왕자가 생각해 낸 것이 인간시장이었다.

인간시장은 허승의 말대로 사람을 납치해서 노예로 파는 인간 매매시장이었다. 산 사람이나 판 사람이나 안전하기 위해서 보통은 다른 지역의 사람을 납치하여 상당히 떨어진 지역으로 가서 파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따금 특정한 사람의 납치를 청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시장의 규칙에는 맞지 않지만 그런 자들에게 돈은 어떤 규칙보다 앞서는 법이었다.

그런데 진수진의 경우는 더욱 특이했다. 교중 왕자가 납치해 왔는데 자살을 한다거나 말을 듣지 않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었다.

진수진 같은 어린 처녀를 무조건 납치할 경우 자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죽기로 반항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해 심한 구타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구타를 당한 여자는 보통 그 아름다움을 잃기 때문에 예쁜 여자를 구타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교중 왕자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계획이 시작되었고 석 달도 안 되어 진수진의 집은 망하고 말았다. 가게에 불이 나고 점원이 강도에게 죽는 등 끝없는 사건이 연속되었으니 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라고 할 것이었다.

결국 완전히 망하여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진 진수진의 가족은 빚쟁이를 가장한 인간시장의 조직에게 끝없는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는 그들은 뒤로는 부모들 몰래 진수진을 설득했다. ‘너만 희생하면 너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도 집안의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언제나 자상하던 아버지는 자포자기한 듯이 매일 술을 먹었고 어머니는 충격에 빠져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직 어린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로 죽어서도 안 되고 주인의 명령은 무엇이든 군소리 없이 듣는다는 조건에 서명을 하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물론 돈이 가족에게 전해졌고 만약 계약을 위반하면 가족들은 더 고통스런 생활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협박이 그 뒤를 따랐다.

진수진이 당장 기룡왕부로 인계되지는 않았다. 역시 뒤를 걱정한 교중 왕자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부자들이 인간시장에서 하인들이나 하녀를 구입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었고 관의 고위간부들도 많이 이용하는 곳이 그곳이었다. 분명 불법이기는 하지만 누구도 인간시장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조사해야 할 자들이 인간시장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중 왕자는 진수진을 인간시장에서 구입한 것으로 할 경우 때려죽여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예는 사유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직접 데려올 경우 그리고 데려올 때의 방법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수진도 처음에는 교중 왕자가 모든 일의 배후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산 주인 정도로 알았고 그의 시중을 드는 시녀가 된 이후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기룡왕부에 든 지 열흘쯤 지났을까. 갑자기 나타난 여인들이 그녀를 목욕을 시켰고 그녀는 교중 왕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그저 아프다는 느낌만 가지고 첫날을 보냈다. 만약 교중 왕자가 그런 식으로만 계속 지냈다면 진수진도 자신의 운명이니 하면서 지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교중 왕자는 점점 변했다. 그리고… 일 년여가 지난 지금 그녀는 몸과 마음이 다 황폐해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교중 왕자는 변태였다. 그런데 아주 악질적인 가학성 변태였던 것이다.

일 년 동안 진수진 그녀가 겪은 고통이란 이루 말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한 번은 일주일을 하혈하다가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고 갈비뼈가 세 대나 부러져 한 달을 끙끙 앓은 적도 있었다.

교중 왕자는 그녀가 아플 때는 진짜 정성을 들여 보살펴주었고 계속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이 낫기만 하면 사람이 갑자기 달라져서는 그녀를 끝없이 괴롭혔다.

그래도 진수진은 가족을 생각하며 견뎌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이유가 생긴다.

어느 날부터인가 진수진은 말이 없어져 버렸다. 언제나 멍한 눈으로 교중 왕자를 쳐다보았고 교중 왕자가 아무리 괴롭혀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너무 심한 고통에 그녀의 뇌가 모든 신경을 닫아버린 것이다. 아주 희귀한 일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그녀가 겪은 처절함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었다.

자살을 생각해 본 지 벌써 여러 번 그러나 그녀는 자살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죽으면 가족들에게 닥칠 고난이 그녀는 너무 무서웠다. 그러나 이제 겨우 열여섯이 된 그녀로서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 너무 괴로웠고 또 이런 고통을 언제까지 겪어야 할지 너무 두려웠다.

교중 왕자가 그녀를 찾을 때면 그녀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는 교중 왕자에게 갔다 와도 그 당시 일을 전혀 기억을 못하는 부분적이며 상습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어쩌면 그녀로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교중 왕자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건 아무런 반항이 없자 괴롭힘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그러나 그녀의 무반응이 계속되자 극단적인 충격을 주기 위한 방법을 택했다. 그녀에게 어떻게 해서 그녀가 기룡왕부에 오게 되었는지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걱정하는 그녀의 부모가 이미 죽었을 것이고 동생은 거지가 돼서 어딘가를 떠돌다 굶어죽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한 손에는 채찍을 한 손에는 이상하게 생긴 몽둥이를 들고 진수진을 쳐다보며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교중 왕자를 쳐다보는 진수진의 눈에는 원독이 가득 찼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의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뇌리에 박혔다. 자신의 신세를 저주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나름대로 위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교중 왕자의 사주에 의해 일어난 일이고 그녀가 떠난 후 부모님은 다시 거지가 되어 고생하다 죽었고 동생도 어린 나이에 떠돌다가 굶어죽었을 것이라는 말에 그녀는 반드시 이곳을 탈출하여 모든 사실을 밝힐 결심을 한다.

그녀가 기룡왕부를 탈출한 것은 교중 왕자가 사냥을 떠난 날이었다. 그녀는 탈출을 결심한 이후 교중 왕자의 일정을 은밀히 점검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찌됐건 왕부의 하녀였고 그녀가 왕부를 거니는 것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온 후 얼마간 그녀를 감시하던 눈길도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진 터였다.

한 달에 걸친 계획 속에 그녀는 왕부를 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룡왕부의 영지를 벗어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녀가 산속으로만 걸음을 옮겼고 실지로 그녀의 몸은 허약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런 몸으로 도망치는 발걸음이 빠를 리는 없었던 것이다.

삼 일 만에 왕부에 돌아온 교중 왕자는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진수진을 잡아오라고 펄펄 뛰었다.

그리고 이백여 명이 넘는 장한들이 진수진의 초상화를 들고는 왕부에서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곳저곳에 도망친 노예라며 방을 붙여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천하의 죽일 놈을 봤나! 아니 괴롭힐 사람이 없어서 여자를 괴롭혀! 걱정 마라. 내가 바로 천하인이 존경하는 포천망쾌거든?”

수시로 벌벌 떨기도 하고 괴로웠던 기억에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말하는 진수진을 인상을 콱 쓰고 듣고 있던 유성탄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흥분하여 소리치다가 말을 멈췄다.

“내가 포천망쾌라니까?”

두 번째 강조를 했지만 진수진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이런 죽일놈이 있나! 이 자식이 감히 거룩한 포천망쾌라는 이름까지 듣지 못하게 했단 말이지? 죽었어… 씨!”

근래 좀 뜨자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던 유성탄은 자신의 이름을 진수진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듯이 행동하자 교중 왕자가 더 괘씸해졌다.

“우선 자라!”

유성탄은 진수진이 미음을 다 먹자 그가 아는 단 하나의 점혈수법인 목의 수혈을 눌러 그녀를 잠들게 했다. 기절한 상태에서도 계속 악몽에 시달리는지 몸을 떨고 고통에 찬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본 유성탄은 그녀가 편하게 한잠 자게 해줄 생각이었다.

뒷짐을 진 자세로 방망이를 건들대며 방안을 왔다 갔다 하던 유성탄의 입에서 짜증스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세상에 벌레보다 못한 놈들이 뭐가 이렇게 많아?”

유성탄은 생전 처음 뭔가를 심각하게 생각을 했다.

충동에서 나온 후 유성탄은 무조건 세상이 좋았다. 거기다 운이 좋으려니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아우들까지 만났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 싶던 부모님을 찾았고 덤으로 너무 예쁜 여동생과 자신이 봐도 너무 똑똑한 동생까지 얻었다.

유성탄에게는 수많은 나쁜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세상은 참 행복하고 좋은 곳이었다. 그가 언제나 모든 것을 장난같이 처리한 것도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고 한 명도 죽이지 않은 것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성탄에게는 가장 원수라 할 수 있는 혈문조차도 굳이 찾아다니지 않았다.

다만 언제나 유성탄을 짜증나게 한 것은 거지들과 가난한 양민들이었다. 그에게 못되게 구는 놈들보다 불쌍한 사람을 보는 것이 유성탄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진수진의 말은 유성탄에게도 충격이었다. 열여섯이면 유성화보다도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 그녀가 당한 일은 유성탄의 생각으로는 그가 충동에 빠진 일 다음으로 끔찍했다. 뭐든지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진 유성탄은 끔찍한 일을 당한 것도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내일 당장 관아에 가서 모두 잡아들이라고 해야지…….’

유성탄은 아직 이번 일을 무척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아직 못 찾았어요?”

주소연은 유성탄을 한 대 때린 후 곧장 양정을 심문하러 위지휘사 군부로 갔었다. 청담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양정은 수많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불지 않고 있었다. 결국 양정에게서 무엇인가를 알겠다는 것을 포기한 주소연은 우선 양정이 처음 굴을 파기 시작한 폐가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폐가를 산 사람이 양정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추적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열흘간의 추적은 곧 벽에 부딪치고 그녀는 다시 대상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유성탄에게 맡겼으면 금방 모두 불었을 것인데 그것까지는 그녀도 모르고 있었다.

폐가를 산 사람은 유령인물이었다. 거기다 그와 접촉한 자들이 묘사하는 인상도 모두 제각각이어서 전혀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직접 유성탄과 함께 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상진에 돌아온 주소연은 유성탄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자 놀라 유성탄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진송현이라는 곳에서 유성탄의 행적을 발견했습니다.”

“진송현이요? 거기는 또 왜 갔데요?”

“글쎄요? 원체 어디로 튈지를 알 수가 없으니…….”

“진송현이 어디죠?”

“그게… 절강성 동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복건성의 경계와 만납니다. 그 경계를 넘으면 제법 큰 현이 나오는데 거기가 진송현입니다. 그런데 약간 문제가…….”

“문제요? 왜요? 벌써 사고를 쳤나요?”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고를 칠 위험이 좀 있습니다.”

팔지신타는 약간 걱정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말해 보세요.”

“진송현 근처에 기륭왕부가 있습니다.”

“뭐라고요! 아니 하필… 도대체 그 자식은 왜 그렇게 나댄데요!”

기룡왕은 사적으로는 주소연에게 사촌 작은 할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기룡왕은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몇 년 전 현황제인 영락제의 생일날 기룡왕이 그 아들인 교중 왕자와 황궁에 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허허로운 눈에 전혀 속을 알아볼 수 없었던 기룡왕이나 조카뻘인 자신을 뭔가 알 수 없는 스멀거리는 기분 나쁜 눈으로 쳐다보던 교중 왕자나 다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기룡왕은 홍무제 주원장의 셋째 동생인 주원호의 아들이었다. 주원호는 주원장이 명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누구에게도 권력을 나누어 주지 않는 주원장의 특성상 친아우인 그도 숨을 죽이고 운신을 무척 조심하며 여생을 보냈다.

이후 건문제가 황위를 이어받은 후 그들은 더욱 권력의 핵심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황실의 어른으로서의 권위는커녕 자신의 목숨까지 걱정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호기가 찾아온 것은 영락제의 정변이었다. 영락제가 군사를 일으키자 가장 먼저 영락제를 지지한 그들은 군사까지 모집하여 영락제를 도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주원호가 노환으로 죽는다.

정국을 장악한 영락제 역시 권력욕은 주원장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주원장과는 달리 자신을 도왔던 자들을 무차별 숙청하지는 않았고 권력을 나눠주는 대신 여생을 편안하게 살도록 기반을 주는 방식을 취했다.

기룡왕은 황제의 사촌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왕의 칭호를 받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영락제는 그에게 왕호를 내리고 영지를 주었다. 파격적인 대우라고 할 수 있었지만 대신 중앙의 권력은 하나도 나누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기룡왕은 그의 영지를 떠나지 않았고 특별한 황실의 일이 있을 때만 연경에 이따금 들러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곤 했다. 처음에 몇 년간은 기룡왕부도 동창의 특별감시대상에 들어 있었지만 그에게 권력욕이 없다는 결론이 난 이후부터는 감시가 느슨해져 있었다.

“기룡왕은 조용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설마 유성탄이 아무리 막무가내라지만 조용한 왕부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게 그렇지 않아요. 할아버지께서 예전에 제게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그리고 유성탄 그게 왕이 뭔지나 알지 그것도 걱정이구요.”

주소연은 영락제가 그녀에게 했다는 말이 무엇인지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 * *

“에이 씨! 뭔 별이 저렇게 반짝거리는 거야?”

창가에 서서 하늘의 별을 쳐다보던 유성탄은 죄도 없는 별의 반짝임을 가지고 시비를 걸더니 갑자기 지붕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정일호! 심심한데 얘기나 하자!”

일 각 정도 아무런 대답이 없더니 그림자 하나가 창문 앞에 섰다.

“알고 계셨소?’

“당연히 알지! 나는 누구든 한번 기운을 읽으면 절대로 안 놓치는 사람이거든!”

잘난 체하는 유성탄을 잠시 쳐다본 정일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했다.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나를 부른 이유가 뭐요?”

“심심하잖아!”

“그게 이유요?”

정일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자 유성탄이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얘가 심심한 게 얼마나 무서운 건데… 내가 충동에서 있을 때 얼마나 심심했었는지 알아? 그거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거야. 하기야 충동에 들어가 봤어야지 알지!”

“충동은 뭐요?”

정일호는 아직 유성탄이 충동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건 다음에 가르쳐주고, 너 나 쫓아다니면서 나를 호위하는 것은 좋은데 내가 여자들 만날 때는 근처에 얼씬도 마라.”

“당신이 여인네들을 만나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소.”

“알아, 만약 그랬다면 내가 벌써 죽도록 팼지.”

정일호가 유성탄을 밀착 추격하기 시작한 것은 유성탄이 관도의 간이 시장에서 야바위패를 돌리면서부터였다. 그전에는 그저 유성탄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 유성탄을 멀리서 따라다니고 있었다.

“으응…….”

갑자기 진수진의 신음이 들려왔다. 잠을 자면서 몸을 뒤척이며 내는 소리였다.

“어쩌실 작정이시오?”

정일호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진수진을 한번 쳐다보더니 물었다.

“뭘?”

“저 처자 말이오.”

“왜? 저애한테 흥미 있냐?”

꼭 저 같은 생각만 하는 유성탄이었다.

“저 아이가 연관된 곳이 기룡왕부라고 했소.”

“그래서?”

“기룡왕이 누군지 아시오?”

“기룡왕? 왜 내가 아는 사람이야?”

정일호는 유성탄의 되물음에 실소를 터트리고는 다시 말했다.

“그거야 내가 알 리 없지 않소. 그리고 내 말은 당신이 기룡왕을 개인적으로 아느냐 모르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고 기룡왕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느냐 그것을 묻는 것이오.”

“그 말이 그 말이지! 하여간에 너도 고민 많겠다.”

뜬금없는 유성탄의 말에 정일호가 무슨 말인지 몰라 유성탄을 보자 유성탄이 말을 잇는다.

“그렇게 자기표현을 못하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무지 어려울 거잖아. 쯧쯧!”

“뭐! 나는 그래도 그럭저럭 다 통하오.”

“그런데 내가 기룡왕이라는 놈을 알아야 하는 거야?”

정일호는 그제서야 유성탄이 기룡왕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아챘다.

“기룡왕이란 나라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은 지방의 대단한 권력자요. 휘하에 적어도 일만의 군사를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상당한 사병을 키우고 있다고 알고 있소. 거기다 왕이란 실질적인 신분을 따지면 황제 바로 다음으로 누구도 죄를 묻지 못하는 치외법권적 존재라는 말이오.”

유성탄의 눈이 동그래졌다.

‘왕이 그 왕이었어? 씨… 나는 성이 기씨고 이름이 룡왕이라는 줄 알았는데… 이런 재수가 없는 일이… 모른 척 하고 그냥 갔어야 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재수없는 일만 생기는지 모르겠네… 에이 씨!’

유성탄의 얼굴에 ‘나 지금 후회가 막심해’ 하고 속으로 떠드는 것이 그대로 나타났다.

유성탄은 상대가 많으면 무조건 피하고자 하는 욕망에 빠졌다. 무서워서도 아니고 그냥 겁이 나서도 아니었다. 그냥 많은 사람을 때리는 것이 싫었다.

“그럼 니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지금 적인 내게 묻는 거요?”

“니가 내 적이었어? 나는 그런 생각한 적 없는데?”

유성탄의 대답에 정일호는 어이가 없는지 피식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세 가지 길이 있소. 하나는 저 아이를 그냥 여기 놔두고 혼자 떠나는 것이오.”

‘어! 이 자식 봐라. 누가 살수 아니랄까 봐 엄청 치사하네…….’

“야 저렇게 불쌍한 애를 어떻게 그냥 놔두고 혼자 가냐?”

유성탄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정일호가 다시 말했다.

“두 번째는 저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는 거요.”

‘이 자식이 사나이 유성탄을 어떻게 보고…….’

“나 유성탄에게는 도망이란 없다.”

“그렇다면 기룡왕부와 싸우는 방법밖에 없소이다.”

“하여간에 너도 참 안 돈다. 도망도 안 치고 저 아이도 구하고 그러면서 싸우지도 않는 그런 방법을 말해보라고!”

“머리가 안 도는 내게 묻지 말고 직접 생각을 하시면 될 거 아니오?’

“내가 생각만 하면 엄청 좋은 수가 금방 떠오르지! 하지만 오늘은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 * *

조금은 괴기한 그림과 조각들이 즐비한 커다란 방안에 얼굴이 하얀 사십대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에 장한 하나가 뭔가를 보고하고 있었다.

“찾기는 했다는 말이냐?”

중년인은 눈을 감은 채 보고를 듣다가는 뭔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다만 포쾌 복장을 한 놈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데 상당히 셌는지 갔던 아이들이 그냥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감시를 붙여놨으니 이제 도망은 가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아끼는 아이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데려오너라. 그리고 굳이 너희들이 힘을 쓰지 말고 관아에 가서 왕부에 속한 노예 여자를 포쾌 놈이 유혹해서 달아났다고 신고해라.”

“알겠습니다.”

장한이 나가자 중년인은 눈을 뜨고는 천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니들이 가서 같이 감시를 해라. 되도록이면 정체를 나타내지 말고 은밀하게 아이를 데려올 수 있도록 돕기만 해라. 그리고 그 포쾌란 놈은 죽여라!”

말을 마친 중년인은 다시 눈을 감고는 중얼거렸다.

‘뭔가를 들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감히 본 왕자의 여자의 몸에 손을 댄 것이 더 큰 죄이다.’

* * *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던 유성탄은 갑자기 뭔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웬 놈들이 아침부터 이렇게 떠드는 거야?”

기지개를 편 유성탄은 먼저 진수진이 누워 있는 침상을 쳐다보았다. 수혈이 찍혀 잠들었다 해도 보통은 여섯 시진 안에는 깨어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수진은 그동안 도망을 다니느라 거의 잠을 못 잤고 먹은 것도 거의 없다시피 했었기 때문에 피곤이 온몸에 꽉 차 있었는지 아직도 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애 깨겠네? 이 자식들을 그냥……?”

쾅쾅!

“문 열어라!”

유성탄은 갑자기 자신의 방을 두드리는 소리에 중얼거림을 멈추더니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냐!”

“나는 진송현 현청의 포장 교두보라고 한다. 여기에 죄를 지은 죄인이 있다 해서 잡으러 왔다.”

“포장? 이름하고는… 교두보가 뭐야!”

유성탄이 문을 열자 갑자기 유성탄의 머리로 포쾌들의 몽둥이가 떨어졌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갑작스런 공격에 몸이 저절로 반응하기 시작한 유성탄이었다.

“아이구! 아악!”

공격은 포쾌들이 먼저 했는데 비명은 공격을 한 포쾌들의 입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어느새 유성탄의 몽둥이가 그들의 머리에 떨어진 것이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어떻게 맞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것들이 감히! 니들 가짜 포쾌지?”

포장이라고 한 자는 유성탄이 몽둥이로 자신의 배를 쿡 찌르며 말하자 얼굴색이 하얘져 가지고 소리쳤다.

“닥쳐라! 너야말로 감히 포쾌 옷을 입고 포쾌를 사칭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냐? 힘 좀 쓰는 놈인 모양인데 관부의 포쾌에게 저항하는 것은 그 죄가 가중처벌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중처벌? 흠, 좋은 말인데… 써먹어야지.’

“네놈들이 감히 특수포쾌인 나 포천망쾌를 공격한 것은 반역에 준하는 죄라는 것은 알고 있냐? 거기다 너희들 포쾌이기 때문에 가중처벌 된다.”

금방 배운 것을 써먹는 똑똑한 유성탄이었다.

“포천망쾌! 정말 포천망쾌 나으리십니까?”

“그래, 내가 바로 포천망쾌 나으리시다. 이제야 니들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알겠지.”

기룡왕부의 노예인 처녀와 도피행각을 하고 있다는 포쾌가 있다는 기룡왕부의 신고에 이번 기회에 기룡왕에게 점수 좀 따볼 요량으로 새벽부터 이십여 명의 포쾌를 출동시켰던 진송현의 현령 추형수는 그들이 잡으러 갔던 포쾌가 포천망쾌라는 말에 질겁을 해서는 유성탄이 머무는 객잔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추형수를 보자 일부러 몽둥이를 눈앞에서 건들거리는 유성탄을 보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미 포천망쾌에 대한 소문은 절강을 넘어 복건성까지 퍼지고 있었다. 경계에 있는 진송현의 현령이야 당연히 포천망쾌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감히 일개 현의 현령이 특수한 임무를 띠고 특수한 일을 하고 있는 특수한 포쾌인 나를 특수한 방법으로 공격을 했단 말이야? 그것이 얼마나 특수한 죄인지는 아나?”

요즘 그가 제일 좋아하는 특수란 말을 마음껏 남발하는 유성탄이었다.

‘특수한 것은 알겠는데… 특수한 방법으로 공격은 뭐고 특수한 죄는 또 뭐야?’

추형수는 유성탄의 말을 듣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유성탄을 흘낏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다가는 유성탄의 눈과 마주치자 급히 허리를 굽히며 아첨한다.

“저희들은 신고가 들어왔기에 그저 신고에 따라…….”

“현령! 당신은 신고만 받으면 누구한테나 가서 몽둥이를 휘두르라고 명령하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머리가 터져 쓰러졌을 거야.”

“용서하십시오.”

“신고한 놈이 누구야?”

“그게…….”

“얘기 안 해!”

유성탄의 몽둥이가 당장 머리에 떨어질 것 같자 추형수는 급히 입을 열었다.

“기룡왕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같은 현령 따위는 신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감히 왕부의 명을 어기지는 못합니다.”

‘기룡왕부? 이것들이 가만히 있어도 내가 봐줄까 말까 한 판에 왜 자꾸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리려고 하는 거지. 진짜 이 자식을… 항문에 이 몽둥이를 박아줘!’

정일호에게 기룡왕부가 무엇인지 설명을 들은 유성탄은 사실 자기 전에 약간의 고민을 했었다. 진수진에게 말을 들었을 때는 당장 가서 교중 왕자인지 교태 왕자인지 그 변태를 변태적인 방법으로 때려잡으려 했었다. 그러나 군사가 만 명이 넘고 고수들도 여간한 방파보다도 더 많다는 말을 듣고는 ‘에이,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에이 씨! 무서워서 피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진수진만 도망칠 수 있게 해줄 생각을 했었다.

“현령, 내 말 똑바로 들어! 포천망쾌는 왕부의 왕도 잡아넣을 수 있는 사람이야. 무슨 말인고 하니 내 말을 안 듣고 기룡왕이니 뭐니 하는 작자의 편을 들려고 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알지?”

손으로 목을 자르는 흉내를 내며 살기 띤 눈으로 말하는 유성탄을 보며 추형수의 얼굴은 노랗다 못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기룡왕은 이 근처에서는 황제나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추형수 같은 현의 현령 정도는 그의 말 한마디에 목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기룡왕을 유성탄은 편들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왜? 편들겠다고?”

추형수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대답을 못하자 유성탄이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아니라… 저 같은 현령의 신분으로는 기룡왕 전하를 편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만약 왕부에서 명이 떨어지면 듣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기룡왕부에서 나를 체포해라 그러면 체포하러 오겠네?”

“포천망쾌 나으리께서는 이미 절강성 성주님과 위지휘사의 조 대장군님께서 인정하신 분인데 설마 그런 명을 내리시겠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뭔가 오해가…….”

“그럼! 왜 아침부터 내가 자는 객잔 방을 두들기고, 보자마자 몽둥이를 휘둘렀는데? 엉!”

유성탄은 추형수의 말을 듣자 잘못하면 포쾌와 싸우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머리로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유성탄은 추형수를 바짝 겁주고 그 이야기가 근처의 모든 현령에게 들어가게 할 생각을 했다.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서로 간에 약간의 오해가…….”

“왕부의 왕자란 자가 원래부터 노예도 아닌 양가의 처자의 집안을 몰락시켜 가지고는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반역에 준하는 죄를 졌는데 그게 무슨 오해야 오해는!”

유성탄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너무 똑똑하게 말하는 것 같자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너무 말의 수위가 높았다.

“기룡왕 전하는 황상폐하의 사촌아우이십니다.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을 하시면 죽습니다.”

추형수는 진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지만 감히 닦지도 못하고 급히 말했다. 분명 말을 한 사람은 유성탄이지만 이 말이 밖으로 퍼지고 그가 들었다는 말이 기룡왕부에 전해지면 아무 죄도 없이 자신까지 골로 갈 수 있었다. 황족의 추문이나 입에 담기 힘든 죄에 연루되었다는 말은 듣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잉? 죽어? 씨… 말을 잘한 줄 알았더니 잘못한 거였나 본데…….’

죽는다는 말에 유성탄은 은근히 쫄았다.

“어쨌든! 나는 이 일을 조사할 생각이니까 성주에게 연락을 하든 아니면 부주한테 연락을 하든 내 일을 방해하면 내가 가만 안 놔둔다고 했다고 전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가봐!”

추형수는 유성탄이 가라는 말에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급히 객방을 나갔다.

“포쾌 아저씨.”

“왜?”

진수진은 고을의 현령에게 큰소리를 치고 협박까지도 막무가내로 하는 유성탄을 보며 대단히 높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녀가 비록 교중 왕자의 처소에서 꼼짝 못하고 있기는 했지만 왕부에서 일 년의 시간은 그녀에게 관부의 생활에 대해 많이 알게 해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고 교중 왕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관에 신고를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아직까지 신고를 못한 이유였다.

“굉장히 높으신 분이신가 봐요?”

“으하하하! 내가 좀 높기는 높지! 솔직히 내가 겸손해서 아무에게나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누가 봐도 이 정도 잘생긴 얼굴에 떡 벌어진 허우대. 거기다 머리는 얼마나 좋은데! 내가 겸손하지만 않았으면…….”

“호호호!”

유성탄이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으려고 하는데 진수진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잃어버린 지 이미 일 년이 넘은 그녀에게 단숨에 웃음을 찾아주는 유성탄의 능력은 확실히 탁월했다.

‘에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웃음소리네…….’

유성탄도 그가 말하는 와중에 누군가 웃으면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눈치 챘다.

“죄송해요. 계속 하세요.”

진수진은 유성탄의 얼굴이 변하자 놀라 급히 사과를 했다.

“안 해!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유성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는 일어서더니 창가로 갔다. 그리고는 포쾌들을 인솔하고는 부리나케 사라지고 있는 추형수를 쳐다보았다.

“아저씨, 삐꾸셨어요?”

유성탄의 귀에 진수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 * *

“뭐라고! 포천망쾌? 포천망쾌라면 이번에 바다를 뛰어서 해적을 잡았다고 소문난 포쾌 놈이 아니냐?”

유성탄의 숙소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히 보고 받은 교중 왕자의 검미가 좁아졌다. 포천망쾌라면 일이 수습하기 만만치 않게 커질 수도 있음이었다.

“그놈은 지금 절강성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언제 그리고 왜 복건성으로 들어왔다는 말이냐?”

“아직은 이유를 모릅니다. 하지만 그자가 포천망쾌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현령들이 모두 포쾌와 포졸들을 불러들이는 등 이 일에 끼어들려고를 하지 않습니다.”

“뭐야! 현령 따위가 감히 본 왕부의 신고를 묵살한단 말이냐!”

“황상의 황룡패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령들은 그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황룡패의 주인이라면 실제로 왕부라 할지라도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라에서는 황제의 명을 직접 전달하거나 황제가 어떤 사건에 흥미를 느낄 때 황룡패를 가진 자들이 궁에서 나오는 경우가 이따금 있어 왔다. 물론 황룡패의 권한이 너무 크기 때문에 황실의 인척이거나 아니면 황제가 진짜로 신임하는 신하만이 황룡패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황룡패의 권한이 왕부까지 조사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해도 황제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은 사람을 실지로 조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잘못하면 황실에 피바람이 불 수도 있었고 후일 황제의 신임이 떨어진 이후에 왕들의 보복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권한은 있지만 왕부의 왕에게 그것을 사용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흥! 동창도 우리는 뒤지지 못했다. 나는 그놈이 황룡패를 가지고 있다 해도 감히 본 왕부를 조사할 배짱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제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라고 들었습니다.”

교중 왕자의 심복이자 머리이고 그러면서 호위까지 맡고 있는 조상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중 왕자의 성격이 이상한 것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교중 왕자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버릇이 된 그였다.

“내궁의 무사들에게 도움을 청해봐라. 내 명이라고 하면 움직여 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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