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철권면장(鐵券免章) (58/79)

제9장 철권면장(鐵券免章)

“이런 지랄! 죽 쒀서 개 줬다는 말이 이거구나. 씨!”

장봉팔은 인근에서 아주 흉명이 높은 해적이었다. 그동안 군에서도 여러 차례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큰 피해만 입고 지명수배만 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유성탄이 장봉팔은 물론 그 수하 삼십여 명과 해적의 배까지 나포해서 잡아오자 환호성이 온 해안을 뒤덮었고 고자성은 유성탄에게 허리까지 굽히는 예를 보였다.

당연히 기분이 좋아야 할 유성탄의 기분이 지금 이렇게 나쁜 것은 바로 법 때문이었다.

장봉팔과 완벽한 거래를 끝내고 입이 커다래져가지고 해안으로 들어선 유성탄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적을 체포하여 생긴 수익이나 장물은 모두 나라에 귀속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장봉팔과 유성탄이 한 거래는 원천무효였다.

결국 백네 명의 금발여인과 되게 엄청 많은 돈을 포기한 유성탄은 이번에는 장봉팔의 몸에 걸린 현상금이라도 챙기려했다.

그러나 관이나 군에 속한 자에게는 현상금 지금을 안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군이나 관에 속한 자에게 현상금 붙은 자를 잡는 것은 의무이지 상을 줄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씨! 다음부터는 해적을 잡아도 절대로 안 데려온다. 씨!”

* * *

유성탄이 씩씩거리며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는 그 시간…

“빨리해라. 시간 없다.”

양정은 부하들을 독려하며 땅을 파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뒤에는 길다란 나무들이 늘어져 있었다.

땅 속에서는 동굴이 직선으로 뚫리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고, 거리 역시 측정이 확실치 않았다. 나무는 거리와 직진도를 가늠하기 위해 땅을 파면서 하나씩 이어가는 측량도구였다.

“일 장 정도 남았습니다.”

늘어져 있는 나무들의 수를 세어본 수하 하나가 말했다.

동굴 안은 파낸 흙을 열심히 실어 나르는 자들과 땅을 쉽게 파기 위해 뿌리는 물을 바가지에 담아 옮기는 자들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기다 동굴을 가득 메운 흙먼지는 입과 코를 천으로 둘러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들의 목과 코 속을 간질거리고 있었다.

* * *

“도저히 억울해서 못 살겠네. 이 유성탄이 손아귀에 다 넣은 떡을 이렇게 날린다면… 안 돼. 백 명도 아니고, 백한 명도 아니고, 무려 백네 명이나 되는데…….”

두 팔을 머리에 대고 벌렁 누워 끙끙대던 유성탄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금덩이라도 하나 챙겨야겠다.”

유성탄은 정말 위험한 생각을 한다. 황실의 금을 한 덩이 들고 올 생각을 한 것이다.

잡히면 큰일날 일이었지만, 황실에서 가로챈 자신의 돈이 황금 한 덩이보다는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철통 같은 경비를 하고 있는 안가를 아무리 유성탄이라 해도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포천망쾌의 이름은 대상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바다를 뛰었다는 그를 막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가 금덩이를 훔칠 생각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치 않았다.

“경비 중 이상무!”

황금을 지키는 군사들의 인사까지 받으며 금이 있는 창고에 도착한 유성탄은 한덩이 들고 나오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곧 알았다.

창고는 전체가 쇠만큼 단단하다는 철목으로 지어져 있었고, 지붕도 기와가 아닌 일자판으로 만들어져 살짝 구멍을 뚫고 들어가기가 힘든 구조였다. 거기다 지붕에조차도 두 명의 군사가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결국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문밖에 없었는데 그곳에는 정말 육중한 열쇠가 달려 있었다. 물론 열쇠는 성주가 가지고 있어서 성주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 수고한다. 아주 간뎅이 분 도둑님께서 황금을 훔치려한다는 첩보가 들어왔으니 각별히 경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유성탄은 마치 지 부하 대하듯이 어깨까지 툭툭 치며 격려를 하고는 창고의 뒤로 돌아갔다.

그러나 창고는 완전히 군사들이 빙 둘러싸고 있어서 들어 갈 구멍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씨! 그까짓 황금 누가 훔쳐간다고… 하여간에 있는 놈들이 더 하다니까.’

황금덩어리라도 하나 훔쳐 본전의 반의반이나마 메우려 했던 유성탄으로서는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콜록!”

정말 미약한 소리였다. 내공의 고수가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기침소리였지만 유성탄의 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으잉! 분명 창고 안인데?’

유성탄이 창고로 다가가 더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귀를 벽에 붙여보려고 했다.

그러나 즉시 제지를 당했다.

“뭐야! 나 몰라?”

“압니다.”

“뭔가 안에서 수상한 소리가 나서 알아보려고 그러는데, 왜 막는 거야?”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창고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어허! 나 포천망쾌라니까!”

“압니다! 하지만 저희들도 목이 걸려 있는 일입니다. 용서하십시오!”

막무가내인 유성탄이지만 목이 걸렸다는데 그것까지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로 이런 경비를 뚫고 창고 안으로 누군가 침입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식들! 엄청 비싸게 구네. 씨!”

‘에이, 방에서 잠이나 잘 걸 귀찮게 괜히 왔네.’

유성탄이 투덜거리며 돌아가려고 하는데… 유성탄의 귀에 이번에는 재채기 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분명하잖아! 어떤 놈이지……?”

두 번을 들었으면 분명했다. 유성탄의 귀는 두 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귀였다.

벽에는 귀를 못 대게 하자 유성탄은 이번에는 귀를 땅에다 갖다 댔다. 그리고는 귀를 댄 채 창고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당연히 창고를 지키던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번 해적을 소탕한 일이 없었다면 모두 미친놈이라 생각하고도 남을 행동이었다.

‘요것 봐라. 분명 벌레는 아니고… 그렇다고 두더쥐도 아니고… 분명 사람이다!’

땅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분석하던 유성탄은 계속적으로 들리는 헛기침소리와 무엇인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발소리까지 다 듣고는 분명히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야야! 저거 봐!”

유성탄이 땅을 파더니 순식간에 안으로 사라지자 경비를 서던 군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유성탄이 무슨 짓을 벌이려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책임자는 날피리 하나를 꺼내더니 힘차게 불었다.

삑!

황금이 있는 창고에 일이 생겼다는 신호다. 곧 주변을 경계하던 경비병과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전체 경비를 감독하던 허승이 피리소리에 놀라 검을 들고는 뛰어왔다. 그리고 유성탄이 땅 속을 파고 사라졌다는 말에 모두에게 비상경계령을 내리고는 다시 밖으로 급히 나갔다.

사건의 진상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분명 황룡패의 주인인 유성탄이 허승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허승은 유성탄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는 윗사람을 부르기 위해 나간 것이다.

이 각도 안 되어 차동수가 허승을 비롯한 이십여 명의 무사들과 같이 들어왔다.

“포천망쾌가 왜 왔다는 말이냐?”

차동수는 오자마자 경계를 서던 경비병들에게 물었다.

“모릅니다. 그냥 오더니 우리를 격려한다고 하면서 어깨를 툭툭 쳐주는 정도였습니다.”

차동수는 허승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허승이라고 아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잠시 후 땅속에서 유성탄의 고함과 함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그들에게 동굴을 어느 정도 파고, 어디쯤에서 올라가면 될 거라는 정보를 준 자는 창고를 만들 때 일했던 일꾼이었다.

일 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는지 황금이 있는 창고의 바닥 밑까지 굴을 연결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창고의 바닥을 뚫고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쌓여 있는 금의 무게가 원체 무거웠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를 해도 동굴이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창고의 바닥을 뚫는 것은 지지부진하자 초조해하던 양정은 갑자기 땅이 무너지며 밖으로 나가는 길이 연결되자 급히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뚫은 굴 바로 옆에 쌓여 있는 금을 보고는 자신도 조그만 소리로 환호를 했다.

그런데 환호를 하느라 벌린 입이 문제였다. 뭉게뭉게 올라오던 흙먼지가 목으로 들어가 순간 기침을 한 것이다.

다행히 작게 한 덕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수하들을 올려 보내고, 자신은 내려와 금의 운반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헌데, 갑자기 동굴의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던 양정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야 이 소리는? 꼭 그때 그놈이 나타날 때 들린 소리와 비슷한데…….”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중얼거렸다.

“세상에 아무리 재수가 없기로서니 여기서 그놈을 또 만날라고?”

그리고 양정은 세상에서 제일 재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 씨! 뚫을려면 제대로 뚫든지…….”

갑자기 천장을 뚫고 나타난 유성탄은 옷의 흙먼지를 털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더니 소리쳤다.

“어? 너! 와~ 오랜만이다 야! 하하하! 우리 둘이 인연은 있나보네.”

양정을 오랜만에 보자 진짜 반가운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양정의 외침이 뒤를 이었다.

“죽여라!”

* * *

“지금 포천망쾌는 어디 있죠?”

“대상진에 흑도파가 여섯 개가 있습니다. 원체 떨어지는 것이 많은 동네다 보니 더러운 놈들도 많지요. 그런데 이미 네 개가 포천망쾌에 의해 괴멸됐고 두 개가 남았는데, 그 두 군데까지 뿌리 뽑으러 가겠다며 나갔습니다.”

주소연은 그의 앞에 허리를 굽히고 서있는 조강계의 보고를 듣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군요. 원래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난장판이나 치라고 보낸 것인데, 그런 대공을 세웠다니 말이에요.”

주소연은 오른쪽에 시립하고 있는 팔지신타를 보며 말했다.

“이미 이곳 대상진과 운하현에서는 그의 영향력이 절강성주의 영향력보다 더 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래, 황궁에 연락한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이번 그의 공은 거의 반역의 무리를 잡아낸 것과 같은 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그동안 그가 벌인 공로까지도 같이 장계를 올렸으니 큰 상을 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공로도 있나요?”

“대상진에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대상진의 양민들이 너무 살기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군요.”

잠시 생각하던 주소연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황궁에서 황상의 명이 내려오면 제게 연락을 먼저 하세요. 제가 직접을 상을 내리고 싶군요.”

* * *

유성탄이 땅굴을 파는 양정 일당을 일망타진 한 것은 대상진은 물론 절강성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미 바다를 달렸다는 전설적인 행위 하나로 이미 대박을 터뜨리고 있었다. 헌데 갑자기 안가에 금덩이 하나 훔치려고 간 것을 미래를 보는 예지력이 있어 간 것이라고 소문이 더해졌고, 양정 일당을 우연히 기침소리를 듣고는 발견한 것은 땅속을 꿰뚫어 본다고 말이 더해지면서 어쩌면 신인(神人)이 나타난 건지도 모른다는 소문으로 부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팔자에 없는 신인이 된 유성탄은 양정 일당이 금덩이를 훔치러 왔고, 유성탄만 아니었다면 금덩이를 모두 훔쳐가는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는 땅을 치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

모른척하고 조금만 더 두고 보다가 그놈들이 금을 다 훔친 후에 때려잡았으면 그 금이 다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그가 자발적으로 대상진의 흑도를 완전히 뿌리뽑아주겠다고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이번 공으로 황제에게 큰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면서부터였다.

‘흐흐흐! 명색이 황제란 말이야. 그래도 황제의 상이라면 최소한 금덩이 한 마차 정도는…….’

요즘 유성탄은 너무 좋아서 얼굴에 히죽거림을 붙이고 다녔다.

“나으리!”

“왜?”

“부로 들어오시랍니다.”

“부로? 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성주님도 오셨고, 연경에서 높은 분도 내려오셨다고…….”

휘익!

말은 전하던 자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유성탄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성주와 연경의 고관!

유성탄은 그가 손꼽아 기다리던 황제의 상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정청 안은 조용했다. 놀랍게도 부주는 물론 위지휘사인 조강계까지도 서 있었고, 가운데 태사의에는 화려한 궁장을 한 여인 하나가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그것도 모자라 섭선을 대고는 앉아 있었다.

유성탄은 약간 놀라 좌우를 보다가는 가운데 앉은 여인을 쳐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도대체 내 눈은 뭐가 잘못되어서 예쁜 여자가 이리 많은 것인고.’

유성탄이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정자운도 예쁘고, 화설군도 예쁘고, 백리빙은 귀여워서 죽겠다. 그런데 여기 앞에 앉아 있는 고귀한 여인도 예쁜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자신은 취향이 이렇게 각양각색인지 스스로 놀란 것이다.

‘저게 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거지?’

주소연은 유성탄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섭선을 조금 더 위로 올렸다. 면사에 섭선까지 들어 가렸으니 절대로 자신의 얼굴이 보일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유성탄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무엄하오! 포천망쾌! 공주마마님이시오. 빨리 예를 갖추시오.”

‘공주마마? 뭐야 그럼 날샌 거잖아. 에이, 좋았다 말았네.’

유성탄은 공주마마라는 말에 꼬드겨보려고 했던 생각이 쑥 들어가 버리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인사를 했다.

옆에 있던 대신 하나가 예가 잘못되었다고 소리치려고 하자 주소연이 손을 들었다. 유성탄에게서 저 정도의 인사면 엄청난 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이번에 포천망쾌께서 엄청난 공을 세우셨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황상께서 그 공을 치하하여 큰 상을 내리셨으니 더욱 더 황실에 충성을 바치도록 하세요.”

주소연은 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리고는 눈짓을 했다. 그러자 커다란 함을 높이 들고 있던 관복을 입은 자가 유성탄에게 다가가더니 함을 내밀었다.

‘우와! 저게 다 금인가보네. 히히히!’

유성탄은 커다란 함을 보자 너무 좋아 그대로 냉큼 받았다. 그러자 함을 가져온 신하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주소연을 쳐다보았다.

황제가 내리는 상이었다. 당연히 거기에 걸맞는 예를 갖춰 함을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유성탄이 ‘이거 내거’ 하는 식으로 날름 받아버리니 어찌할 바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소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대로 물러났다.

“함을 열어보세요.”

누구 뺏어갈 사람도 없는데 함을 꼭 안고 있는 유성탄을 보며 주소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황제의 상은 받은 즉시 열어보고 그 내용품을 확인해야 했다.

‘보나마나 금일 텐데 뭐 하러 여기서 열어보라는 거야? 남들 봐봐야 배만 아프지.’

속으로 중얼거린 유성탄은 함을 내려놓고는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금일 줄 알았던 함 안에는 천에 싸인 어떤 물건이 들어 있었다.

‘뭐야 이건? 함만 크고 물건은 작잖아! 쩨쩨한 황제 같으니라구. 아니지. 황금보다 더 비싼 보석이…….’

유성탄은 생각보다 물건이 작자 인상이 변하다가는 그래도 하는 생각에 보자기를 풀었다.

“어! 이건?”

보자기 안에는 유성탄이 좋아하는 황금도 보석도 아닌 이상한 철권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황금색 붓글씨로 철권면장(鐵券免章)이라고 써 있었다.

“들어보세요.”

주소연의 말에 유성탄이 철권을 들어 보이자 갑자기 모든 사람의 입에서 커다란 경탄이 터져 나왔다.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이 섞인 그들의 경탄에 유성탄은 분명 이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황상께서는 이번 포천망쾌의 공을 개국공신의 공과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다고 보셨습니다. 이에 철권면장을 내리니 포천망쾌는 더욱더 황실에 충성을 바쳐 철권면장을 받은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유성탄은 주소연의 설명을 듣자 확실히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다시 기대가 올라왔다. 이런 좋은 것을 주면 그 다음에 금전적인 상이 따르는 법이 아니던가!

유성탄은 이제 이에 따른 부상이 나올 차례라는 생각을 하며 주소연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주소연은 금방 유성탄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 챘다.

‘아휴… 저 진상! 철권면장이 어떤 건데…….’

유성탄은 이미 철권면장에는 흥미를 잃었는지 탁자 옆으로 치워놓고 다음에 나올 것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철권면장은 그 면장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반역에 준하는 죄가 아닌 이상 어떤 죄도 한 번에 한해서 벌을 주지 않겠다는 면소장이에요. 당금 천하의 주인이신 황상께서 직접 내리신 면장이니만큼 그 권위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것이군요.”

한마디 던진 유성탄은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었다.

“포천망쾌는 이제 돌아가셔도 돼요.”

주소연의 이어지는 말에 유성탄의 얼굴색이 변했다. 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란 말인가? 그동안 얼마나 기대를 했는데 겨우 거무죽죽한 철판 하나 주고 온각 생색을 다 내고는 그게 끝이라고 하지 않는가?

“세상에 이런 벌레 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 씨! 뭐야! 이따위 철판 하나 주고… 포천망쾌고 뭐고 다 때려치울란다. 에이 씨!”

얼마나 기대가 컸으면 유성탄은 자신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내 이럴 것 같더니… 에그 저 몰상식한 놈!’

주소연이 굳이 황상이 보내오는 상을 자신이 주겠다고 나선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황상이 상을 줄 경우 황금이나 돈으로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황제에게 상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가 바로 돈이었다.

주소연은 감숙에서 마약범을 잡은 후 상이 적다고 투덜대던 유성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분명 황제의 상을 받으면 뭔 짓을 할지 불안했다.

그녀는 유성탄이 상을 받다가 벌을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고를 치고 마는 유성탄이었다.

“철권면장은 엄청 대단한 상이에요.”

“이따위 철판은 갖다 팔아도 은자 한 냥 받기 힘들다는 거 아쇼? 하여간에 세상물정을 알 리가 없지.”

‘죽일놈! 너나 좀 세상물정 좀 알아라!’

주소연은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욕이 목 끝까지 나온 것을 억지로 참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뭘 잘 모르시는군요. 철권면장은 황상께서 보장하신 면장이에요. 당신이 돈이 필요하면 중원 제일의 부자를 찾아가 마음대로 돈을 갈취하고 그걸 내밀면 죄가 아니에요. 누가 밉다 그럼 가서 죽이세요. 그리고 그걸 내밀면 그것 역시 죄를 안 받아요. 한마디로 철권면장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엄청난 돈도 벌 수 있고, 권력도 가질 수 있는 여의주 같은 물건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요.”

유성탄은 주소연의 말을 들으며 눈이 둥그레졌다.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여의주 같은 물건이라지 않는가!

“아니! 하늘같으신 황제폐하께서 내리신 물건을 누가 싫다고 한다는 말입니까? 저는 철권면장이 너무 좋습니다. 전 이것만 있으면 다른 상은 절대로 필요 없어요!”

‘에라! 치사한 인간아! 왜 사니 정말…….’

후다닥 달려와서 철권면장을 품속으로 집어넣는 유성탄을 보며 주소연의 입이 찌그러졌다.

도저히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얄미운 행동을 하는 유성탄이었다.

“그래요. 그럼 정식으로 철권면장이 포천망쾌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럼 이제 포천망쾌의 철권면장을 회수합니다.”

‘잉! 이건 또 무슨 개새끼 닭다리 뜯는 소리?’

유성탄이 갑작스런 주소연의 말에 눈이 동그래지자 주소연이 부언한다.

“철권면장을 가진 포천망쾌는 오늘 감히 황상을 모욕하는 설화(舌禍)를 자행했습니다. 원래라면 능지처참을 해야 할 대죄이지만 철권면장의 주인이기 때문에 한 번에 한해서 모든 죄를 사해줄 수 있습니다. 하여 그 죄를 사하고 철권면장은 회수합니다.”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에 유성탄은 눈만 껌뻑대더니 급히 소리쳤다.

“내가 언제 하늘같은 황상을 모욕했다는 말입니까? 내가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아는 사실입니다.”

‘저것도 변명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주소연은 섭선을 한번 접었다가 다시 펴서 얼굴에 대더니 말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포천망쾌 그대도 알지 모르지만 그대가 황상을 모욕했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목격자에 의해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목격자가 누굽니까? 말해보십시오. 나라에는 법이 있고, 나는 그 법을 지켜야 하는 포쾌입니다. 목격자가 누굽니까? 만약 목격자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발설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그자를 때려죽일 것입니다.”

눈에 살기를 띠는 것은 유성탄의 특기 중 하나였다. 살기 어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소리치는 유성탄을 보며 모두는 등골이 오싹해 옴을 느꼈다.

“좋아요. 그럼 직접 알아보지요. 여기 계신 분들 중 포천망쾌가 황상을 모욕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신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 주세요.”

주소연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서로의 눈치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주부벼슬을 하는 한 명이 멈칫거리며 손을 들려고 하였다.

“잠깐! 내 한마디만 더하는데 삼 년 전에 나를 무고한 자가 있었소. 그때도 이런 식으로 증인은 손을 들라고 했고 한 명이 손을 들었소이다. 그자가 어찌 됐는지 아시오? 내가 무려 삼 년을 너 증인했지 하며 쫓아다녔소. 화장실에서 응아 눌 때도, 밥 먹을 때는 탁자 밑에서, 잠잘 때는 천장 위에서 그랬더니 결국 해골처럼 삐쩍 말라가지고 미쳐버립디다. 난 분명한 증인은 인정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증인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멈칫거리던 그자의 손은 사라져버렸다.

‘아휴! 완전 날강도 같은 놈! 내가 너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 유성탄의 행동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고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든지 유성탄을 모함하는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일이었다.

주소연으로서는 모두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는 확언을 받아 두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이후 이 문제가 불거진다면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고 증언을 해줄 것이었다.

물론 이미 있었던 일이 이런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말을 바꾼다는 것은 정치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 * *

‘그러니까 이것만 있으면 내 마음대로라 이거지… 이제 누구든 까불기만 해라. 다 죽었어!’

철권면장을 품에 고이 간직한 유성탄이 기분 좋아 나오는데 누군가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넌 언제 왔냐?”

“눈치도 빠르다.”

“너도 까불면 이제 죽어!”

“뭐 좋은 거라도 생긴 모양이지?”

“넌 몰라도 된다.”

‘진짜 진상이야… 잘났다.’

주소연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물었다.

“안에서 누구 만났냐?”

“별 볼일 없는 치들하고… 공주인가 뭔가 하는 깐깐한 여자 하나가 있더라.”

‘이 자식이! 죽을 걸 억지로 살려줬더니… 뭐? 깐깐?’

“공주? 공주라면 천하오미 중 하나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던데…….”

“조금 예쁘기는 하더구먼.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것도 없어.”

주소연은 유성탄의 말에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니가 얼굴을 보기는 했냐?”

“봤지 그럼! 내가 눈이 얼마나 좋은데. 눈이 크더라고, 그리고 코는 오똑하고, 또… 어, 이상하네?”

“뭐가?”

“말하다 보니 너 닮은 것 같다야!”

주소연은 유성탄의 말에 찔끔하여 급히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별로란 말이냐?”

“너는 아직 어려서 여자에 대해 몰라! 여자는 첫째 남자에게 순종적이어야 해. 둘째, 남자 앞에서는 귀여운 짓을 해야 하고. 셋째, 무조건 예뻐야 하는 거야.”

“공주는 안 그렇다는 말이냐? 혹시 공주라고 겁먹은 거 아니야?”

“겁? 얘가 나 유성탄을 뭘로 보고? 야, 공주는 앉아서 오줌 안 눗는다더냐? 벌려보면 다 똑같은 게 여자야. 공주건 뭐건 이 유성탄의 매력에 빠지면 그냥 골로 가는 거지 뭐.”

‘이 천하에 무식한 놈이! 감히 공주에게 오줌이 어쩌고 뭐! 벌… 에이, 지저분한 놈. 이거나 한 대 맞아라!’

퍼억!

“아야! 이게!”

갑자기 주소연에게 배를 정통으로 한 대 맞은 유성탄이 정신을 차려 앞을 바라보자 주소연은 벌써 담을 넘고 있었다.

“연 소주 이 자식! 너 다음에 보면 죽어! 이 씨! 이게 왜 갑자기 치고 가는 거야!”

* * *

소로를 가마 하나가 달리고 있었고, 그 옆을 옆걸음을 치며 한 명이 쫓아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다 옆걸음으로 따라가는 자는 고개까지 숙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포천망쾌란 놈이더냐?”

“그렇게 소문이 났습니다.”

채지공도 어이가 없는지, 아니면 자신을 잃었는지 확답을 못하고 소문이 낫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날 분명 해적들이 해안에서 시위를 하기로 되어 있었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포천망쾌가 바다를 뛰어 해적을 소탕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양정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창고에 가까워지자마자 포천망쾌가 뛰어들어 모두를 제압했다고 합니다.”

잠시 마차 안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채지공.”

“예.”

“북밀천 안에 간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청담의 말에 채지공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능히 짐작이 가기 때문이었다.

“말하라.”

“저희 지밀단에서는 본 천의 인물들에 대한 감시를 한시도 소홀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간세로 추정되는 인물도, 간세로 잡힌 자도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가 지밀단의 단주의 이름으로 확언하건대 본 천에 간세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담은 분명 간세가 없다고 확언한다면서도 끝에 여운이 느껴지자 계속 말하라는 듯이 재촉했다.

“간세가 없다면 모든 것이 우연이라는 말인데, 그럴 확률은 전무합니다. 소문대로 그자에게 진짜 예지력이 있거나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합니다만, 그런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마약을 천하에 뿌리고, 황실의 금을 탈취하여 황실의 재정을 뒤흔든 다음 천하를 엎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어이없이 이렇게 계획이 무너지다니. 진정 하늘이 우리를 돕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사자님! 죽여주십시오.”

청담의 절규에 가까운 말을 듣자 채지공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만약 지금 삼단계의 계획에 돌입하면 성공확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일단계와 이단계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삼단계의 성공확률은 거의 십 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오 할 정도로 예상됩니다.”

“민심을 동요시키고, 황실을 흔들고, 그 다음에 무림을 뒤집어놔야 그게 맞는 순서인데…….”

말끝을 잇지 못하고 침묵으로 들어간 청담은 거의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정도가 되도록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채지공도 그대로 가마의 옆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채지공.”

“예.”

“삼단계에 들어간다. 모두에게 준비하라고 일러라.”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채지공은 걸음을 멈추었고 가마는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그 뒤를 언제나처럼 채지공이 허리를 굽히며 배웅했다.

* * *

‘연 소주 이게 왜 나를 치고 갔을까?’

유성탄은 팔베개를 하고는 벌렁 누워 있다가는 몸을 일으켰다.

“그건 그렇고… 내가 왜 여기 계속 있는 거지?”

유성탄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리던 황금은 콩고물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물품대급으로 지불되어 사라졌고, 물품불하가 끝나자 남은 물건을 싣고는 차동수와 허승도 떠나버렸다.

부주와 위지휘사 조강계 그리고 고자성이 유성탄이 불편해 할까 봐 신경을 무지 쓰고는 있지만 유성탄은 무지 불편했다.

거기다 대상진의 껄떡대는 놈들을 모조리 옥에 잡아넣고 보니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박수를 쳐주는데,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그것도 갈수록 불편하기만 했다.

“뭔가 덤비는 놈이 있어야 재미가 있는데, 전부 나만 보면 좋아하니… 인기가 좋은 것도 그리 즐거운 것은 아니란 말야.”

거기다 오살은 유성탄이 이곳에 온 지 꽤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하후란이 아니더라도 지금 같으면 자신이 대상진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었다.

“아! 이럴 때 마동파라도 있으면 장기라도 둬서 돈이라도 따 먹을 것인데…….”

다시 벌렁 뒤로 누운 유성탄은 천장을 가만히 보더니 눈을 비볐다.

“이상하네. 왜 천장에 자운이하고, 설군이하고, 빙아가 교대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지? 눈이 잘못됐나?”

이번에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눈을 감았는데도 그 셋의 얼굴이 나타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이게 이제 보니 빨리 가서 걔들을 따먹으라는 하늘의 계시인거 같아. 그래, 하늘의 계시를 안 따르면 벼락 맞는다고 누가 그러던데. 걔들이나 따먹으러 가야겠다.”

보고 싶은 마음에 나타난 환영을 지 마음대로 하늘의 계시를 만들고는 진중한 구도자의 얼굴을 하며 하늘의 계시를 따를 준비를 한 유성탄은 몸을 일으키더니 아무에게도 인사도 하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 * *

“포천망쾌가 대상진을 떠났습니다.”

“드디어 나섰군! 몇 명이나 나왔느냐?’

“이번에는 열 명입니다.”

“백마 열 명이면 십대고수만 아니라면 누구하고도 해볼 만한 전력이다. 저번에는 오히려 기습을 당해 어이없이 당했다고 하니 이번에는 조심해서 상대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백마 중 상위자가 나서게 된다. 뭔가 잘못됐어.’

백마 서열 십오위로 절강성을 책임지고 있는 그로서는 포천망쾌에 대한 새로운 소문이 들릴 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백마성의 전통은 한번 청부를 받은 자는 끝까지 쫓는다였다. 당연히 그들에게도 청부를 받으면 안 되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무림 십대고수와 각파의 장문인을 비롯한 수뇌부, 그리고 백대고수 중 상위 열 명이었다.

그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백마성의 존립까지 거는 것이 되는데, 그렇게까지 위험한 청부를 받을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삼십 년 전의 악몽이 또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오십 년 전 무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이 나타났었다. 그자는 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얇은 도를 사용했는데, 나온 지 일 년도 안 되어 천하를 경악에 몰아넣었었다.

스스로를 북천존자라고 칭한 그자는 천하의 모든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도전을 했고, 무려 백여 번이 넘는 결투에서 한 번도 지지 않는 신화를 남겼다.

백 번의 결투가 신화가 된 이유는 그 백 명이 바로 그 당시 무림의 백대고수였기 때문이었다.

천하를 울리던 백대고수 중 무려 반이 넘는 수가 그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공적으로 몰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같이 정당한 결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조용했지만, 그에 의해 죽은 고수들의 친지나 문파에서는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중 한 곳에서 백마성에 청부를 했고 백마성에서는 자세한 조사도 하지 않고 승낙을 했다.

그리고 나타난 결과는 백마성의 삼십 년 봉파(封派)였다. 백마가 전부 죽었으니 백마성이라는 이름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삼십 년의 절치부심 후에 새로 문을 연 백마성은 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해져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백마성주에 오른 철립마륜 형준혁의 덕이었다.

현 무림의 십대고수이기도 한 형준혁은 타고난 무재로 백마성의 백마의 무공을 모두 익히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오대사파 중의 하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아직도 백마성의 백마들은 오십 년 전의 치욕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오십 년 전의 치욕을 생각나게 하는 놈이 나타난 것이다.

* * *

유성탄은 우선 무산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행인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상진에서 무산까지는 약 사백여 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뛰면 하루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유성탄은 언제나 아버지 유정삼이 그랬던 것처럼 방망이를 건들대며 약간은 불량해 보이는 걸음으로 걷는 것을 좋아했다.

“저건 뭐냐?”

한 고을 지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사람들 사이를 파고든 유성탄의 눈에 띈 것은 알아보기 힘든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방이었다.

“저게 뭐요?”

유성탄이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에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은 옆에 쓰인 글을 이해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포쾌가 맞소?”

“보면 모르오?”

“그런데 포쾌가 글을 모른단 말이오?”

“글을 모르는데 어찌 포쾌가 될 수 있겠소?”

“그럼 직접 읽으시면 되겠네!”

“지금 나는 글을 읽지도 못하면서 읽을 줄 아는 척하는 죄인을 잡으러 다니는 중이오. 솔직히 말하시오. 당신 저 글 못 읽지?”

유성탄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행인은 유성탄을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못 읽습니다.”

따악!

“으악!”

“짜식이 읽지도 못하면서 고개는 왜 끄덕이는 거야 씨!”

“약이 오른 유성탄이 살짝 한 대 치자 그자는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그대로 기절한다. 그래도 큰 죄가 없으니 살짝 친 것이다.

“저기 뭐라 쓰여 있소?”

유성탄이 또 한 명을 쳐다보며 말했다.

“글을 못 읽습니다. 그래서 포쾌님께 물어보려든 참이었는데요.”

“당신은?”

‘이런 사기꾼 같은 놈들이 있나?”

무려 열 명을 물어봤지만 한 명도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 슬슬 장 앞을 떠나기 시작했다.

“너! 이리 와봐.”

유성탄이 참지 못하고 한 명을 잡았다. 유성탄은 글도 모르면서 왜 방 앞에 이렇게 많이 모여 있었는지, 그리고 왜 전부다 머리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꼭 알아야 했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어쨌든 이유를 알고 싶었다.

“넌 도대체 방을 왜 보고 있었냐?”

“사람 얼굴 봤는데요.”

“그런데 왜 고개는 끄떡였는데…….”

“안 그러면 나만 글을 모르는 것 같잖아요?”

“그럼 모르면 그냥 가면 되잖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궁금해서 어떻게 그냥 갑니까?”

‘이씨! 전부 나랑 똑같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 마을에는 하나같이 글을 모르는 사람뿐이냐?”

“여기만이 아니라 다 그래요. 부자집이나 양반들 빼면 누가 공부나 시켜주나요. 저도 글을 읽고 싶어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돈은 없고, 돈이 있다 해도 당장 먹을 게 없는데 양식을 사야지요.”

“가봐!”

청년을 보낸 유성탄은 다시 방을 쳐다봤다.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방, 그리고 그 옆에 써 있는 글…

“에이 씨. 뭐야? 왜 저 사람을 그려놓고 여기에 붙여놨냔 말이야! 난 궁금하면 잠을 못 자는데… 씨!”

중얼거리는 유성탄의 얼굴에 모종의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 * *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현령은 아시오?”

“저 같은 것이 어찌 포천망쾌님 같은 분이 생각하시는 것을 따르겠습니까?”

포천망쾌의 이름은 이제 절강성에서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유성탄이 현청에 도착하여 포천망쾌다 하니 현령은 신발이 벗어지는지도 모르고 뛰어나와서 맞았다. 그런데 대뜸 꺼내는 첫마디가 알 수 없는 말이었으니…….

하지만 이곳 현령은 비비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교묘하게 대답을 하는 현령을 보며 유성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요것 봐라. 은근슬쩍 내 대답에 빠져나간다?’

“요즘 세상은 아는 것이 힘인 세상이오.”

“맞습니다.”

현령은 무조건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마을 사람들이 너무 무식해!”

“예, 그것도 맞습니다.”

“그렇다면 현령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저 같은 것이 어찌 포천망쾌님 같은 분이 생각하시는 것을 따르겠습니까? 그저 하명만 하십시오.”

‘어라? 또?’

무슨 생각이 있어서 꺼낸 말도 아니고 그에게 하명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현령 정도 됐으면 먹물도 좀 묻혔을 것이고, 뭐든 얘기를 꺼내면 생각할 예정이었던 유성탄으로서는 말이 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생각인데, 현령이 직접 나서서 마을 사람에게 글을 가르치면 어떻겠소?”

현령의 눈이 떼굴 굴렀다. 머리를 굴린다는 증거였다.

“저 같은 것이 어찌 감히 포천망쾌님께서 생각하신 일에 이견을 내겠습니까? 그저 하명만 하십시오.”

‘뭔 말을 하는 거야 씨! 하겠다는 거야? 안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이곳에 서당을 짓고 학사 한 명 불러서 마을 사람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 현령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야 오로지 포천망쾌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그럼 당장 시행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서당을 지어주시고 학사를 데려오셔야…….”

‘엥! 이건 또 무슨 개떡같은 소리?’

“이봐, 현령!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어디로 들은 거요? 현령에게 하라고 하지 않았소?”

“예, 명을 따라야지요. 다만 저희 현은 너무 가난하고, 사람도 적어서 돈이 없습니다. 포천망쾌님께서 서당을 지어주시고, 학사를 초빙하신 후에 학사에게 들어갈 돈을 주셔야 저도 명을 받들어…….”

현령은 말하는데 유성탄이 사라지자 허리를 굽히며 공중을 향해 말했다.

“신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시더니 진짜 신인이 맞으신 모양입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유성탄이 세운 모종의 계획이란 것이 바로 각 고을마다 서당을 지어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실지로 현령들의 봉급은 아주 적었다. 그리고 그것이 부패한 현령이 생기는 주된 이유였다.

거기다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을 은근히 막고 있었다. 이유는 똑똑한 놈들이 많아지면 황실에 반기를 든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글을 못 읽는 것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유성탄이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글을 못 읽자 무지하게 불쌍하게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유성탄은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자신이 배우려고만 하면 배울 수 있었지만 그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에이… 아무래도 이 문제는 내 머리로는 안 될 것 같고 다음에 생각해야겠다.’

속마음은 자신의 돈이 나갈 것이 불안해서 내린 결정인 것을 다른 이유가 있는 듯이 말하는 유성탄이었다.

* * *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군. 천민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려고 하다니… 어려서 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웠으면 대단한 인물이 될 사람이었는데. 후후! 하긴 지금도 대단한 사람이야.”

정일호는 유성탄의 뒤를 따르면서 점점 그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혈문이 명하면 사람을 죽이던 그였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자신도 사람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살수를 하다 보니 놀랍게도 세상의 존경을 받는 정파인이 뒤로는 자신의 적을 심지어는 친지들까지도 죽여 달라고 청부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가 사람을 믿지 못하던 이유였다. 생각보다 그는 못 볼 것을 많이 본 것이다.

그런데 유성탄은 자신의 본능대로 행동하면서도 절대로 나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전혀 가식이라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일호 역시 유성탄의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성탄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신하기 시작했다.

* * *

“거참 생각하면 할수록 그놈의 현령놈에게 꼭 당한 것 같단 말이야.”

현령이 간신 같은 행동을 하고는 있었지만 유성탄은 현령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리고 돈이 없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유성탄이 억지를 쓰지 않고 도망쳐버린 이유였다.

혼나서 꿍얼거리며 걷던 유성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뭐야! 이리 나와 봐!”

유성탄이 나무 뒤에 누군가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숨어 있던 자는 유성탄이 자신을 발견한 것을 알자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 굶어 힘도 없는 다리로 유성탄이 이미 부른 이상 도망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 감히 포쾌가 부르는데 도망을 쳐!”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다시 잡혀가면 전 죽습니다.”

유성탄에게 목덜미를 잡힌 청년은, 아니 소년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이 앳된 표정의 남자는 손을 싹싹 빌며 유성탄에게 사정했다.

“어라? 너! 맞았어! 방에 붙어 있던 얼굴이 바로 너야. 솔직히 불어라. 무슨 죄를 졌어?”

“저 죄 없어요. 너무 힘들어서 도망을 친 것뿐입니다.”

“그게 죄지! 일이 조금 힘들다고 도망친 것은 정말 큰 죄인 거야.”

“일이 힘들었으면 참을 수 있어요.”

말을 하던 소년은 복받치는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어라? 너 계집애네?”

소년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눈치가 없는 유성탄은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눈치 챘을 것을 그녀가 울기 시작하면서 여자와 같은 성향을 보이자 그때서야 알아챈다.

“밤마다 너무 괴롭혔어요. 너무 힘들어서…….”

말하던 그녀는 오랜 굶주림으로 지친 몸을 끝내 가누지 못하고 기절을 하고 말았다.

‘에이 씨! 그냥 갈 걸.’

언제나 이런 상황만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또 유성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에이! 빨리 가서 자운이랑 빙아를 봐야 하는데…….”

유성탄은 여아를 등에 업더니 말과는 달리 급히 마을로 뛰어갔다.

* * *

“괜찮소이다. 어디 아픈 게 아니고 그냥 굶어서 탈진한 것뿐이라오.”

유성탄이 간 곳은 의원이었다. 돈을 먼저 주기 전에는 진맥을 할 수 없다는 의원의 말에 벌벌 떠는 손으로 동전 열 문을 내놓은 유성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 성질이 났다.

“닷 문은 돌려주시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으니 열 문은 너무 많다 이 말이오!”

“이보시오, 포쾌 양반! 열 문은 무조건 진맥을 하면 내가 받는 돈인 거요. 당신 말대로라면 이 아이가 많이 아팠다면 돈을 더 내놔야 한다는 논리인데, 만약 그랬다면 돈을 더 내놓으셨을 것 같소?”

‘씨! 글도 못 읽는 무식한 마을에 말 잘하는 놈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결국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유성탄은 구시렁대며 객잔으로 향했다. 의원 말대로 여아를 푹 쉬게 하고 가벼운 음식부터 먹일 생각이었다.

“딱 보니 우리 성화 나인데… 아 그러고 보니 성화가 보고 싶구나.”

유성탄이 침상에 눕히고 자세히 보니 여아는 생각보다 무척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도 착해 보이고…….”

유성탄이 중얼거리는데 그녀가 눈을 떴다.

“여기가……?”

“깼냐?”

여아는 유성탄의 목소리를 듣자 자신의 옷을 잡고는 가슴부터 가렸다.

“아쭈, 꼴에 여자라고. 야야! 나 유성탄을 어떻게 보고, 밖에 나가면 쭉쭉빵빵한 미인들이 나 좋다고 줄을 섰어. 너 같은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애송이는 내 취향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유성탄이 그릇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좀 식었지만 먹어둬라. 의원 말이 너 너무 많이 굶었다고 하더라.”

“감사합니다.”

“흠! 내가 감사 받을 일을 많이 하기는 하지.”

그녀는 유성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킥 웃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 겁에 질린 얼굴로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혹시 웃은 것으로 혼이나 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름이 뭐냐?”

“진수진이에요.”

“진수진? 무슨 이름이 그렇게 촌스럽냐? 앞으로도 진수진 거꾸로 해도 진수진.”

그때였다.

쾅쾅!

“어떤 자식들이 감히 내가 있는 방을 저렇게 두들기는 거야?”

유성탄이 인상을 콱 쓰고는 문으로 다가갔다.

“열지 마세요!”

“왜?”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절실해서 유성탄은 묻고 말았다.

“저 잡으러 온 사람들일 거예요. 그 사람들 너무 무서워요.”

“난 또! 너 내가 누군지 알아? 포쾌야, 포쾌! 걱정 마라.”

유성탄이 문을 열자 갑자기 십여 명의 장한들이 유성탄을 밀치며 뛰어 들어왔다.

“네 이년! 네가 감히 도망을 치면 안 잡힐 줄 알았더냐?”

뛰어든 장한 중 하나가 진수진을 보더니 다짜고짜 욕부터 했다 그리고는 침상으로 다가가더니 그녀의 머리를 잡으려 들었다.

“어쭈구리! 나 유성탄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니놈들같이 겁 없는 놈들은 처음 본다.”

장한은 진수지의 머리를 잡아가던 자신의 손을 어느새 유성탄이 잡자 눈에 살기를 띠고는 유성탄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느 현 소속의 포쾌요?”

“어느 현? 왜 어딘지 말해주면 돈 줄래?”

“나! 기룡왕부의 하인이오.”

“그래서?”

“나 기룡왕부의 하인이란 말이오!”

“그래서!”

“포쾌라서 좀 봐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먼. 얘들아! 반병신 만들어 놔라.”

장한이 같이 온 장한들을 보며 말을 하는데 유성탄의 주먹이 그의 입을 그대로 쳤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는 무려 열 대가 넘는 이빨이 쏟아져 나왔다.

“하여간에 너 같은 놈은 이빨이 없어야 돼. 어디서 건방지게 이빨을 까는 거야?”

빠악!

“컥!”

한 방에 완전 합죽이가 된 장한을 훌쩍 던져버린 유성탄은 감히 덤비지는 못하고 주먹을 쥔 채 엉거주춤해 있는 다른 놈들을 보며 소리쳤다.

“안 꺼져! 니들도 이빨 다 뽑아줄까?”

장한들은 단 한 주먹이었지만 유성탄이 보통 포쾌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지 살기 띤 눈으로 유성탄을 한번 노려보더니 쓰러진 장한을 업고는 사라졌다.

“빨리 도망쳐야 돼요.”

“내가 포쾌라니까? 저놈들이 도망을 쳐야지. 포쾌는 잡는 사람이지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저들은 정말 무서워요.”

진수진은 말을 마치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진수진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유성탄은 그녀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리고 한참을 머뭇대던 그녀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허승에게 들었던 인간시장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뭐? 인간시장!”

「포천망쾌」 7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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