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치정살인
이미 청화루에는 가까운 곳을 순찰하던 포쾌들이 입구를 막고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비켜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유성탄을 보자 입구를 막고 있던 포쾌들이 급급히 피했다. 그들은 순찰 포쾌로 유성탄을 잘 알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유성탄은 그 좋은 코로 당장에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으악! 어떤 놈이 내 교련이를!”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급히 달려온 그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죽은 자는 반교련과 송삼구였다.
유성탄이 급히 반교련을 안아들고는 가슴에 귀를 대보았다. 하지만 이미 죽은 지 한 시진이 넘은 그녀의 몸은 차갑기만 했다.
“청화루의 루주입니다. 같이 죽은 자는 이곳의 총관으로 송삼구라는 자이지요. 시신은 내려놓으십시오. 잘못하면 증거인멸을 했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뭐야 이 자식은?’
“넌 누구냐?”
“전 운하현의 살인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고남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운하현에서 가장 유명하신 포천망쾌 나으리 아니십니까?”
“맞는데……?”
“지금 나으리께서 이번 사건의 제일 용의자 선상에 올라 있다 이 말입니다.”
‘잉?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너 내가 누군지 아냐?”
“방금 말했지 않습니까? 포천망쾌 나으리라고요.”
“그걸 아는 놈이 그따위 말을 해! 죽을래!”
“소문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나으리께서 저를 죽인다면 나으리께서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지위를 이용하여 하급관원을 죽인 자가 되는 겁니다.”
‘자식이 말을 무지 잘하네.’
그렇지 않아도 정자운과 백리빙을 그렇게 놓치고는 그래도 위안이라면 반교련이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비명횡사를 한 마당에 오히려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고 있자 짜증이 확 이는 유성탄이었다.
“너 내가 용의자 선상에 오른 이유를 정확히 말 못 하면 엄청 맞는다.”
“살인사건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이 묻지 마 살인사건으로 거의 범인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살인의 동기가 거의 없으니까요. 두 번째는 강도나 강간 살인 같은 뭔가 금품이나 여인의 몸을 노리고 벌이는 살인사건이 있는데 역시 검거율은 삼 할이 안 됩니다. 하지만! 이번 같은 치정 살인사건은 거의 범인을 다 잡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은 보통 범인이 여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태반이지요.”
“나 이 여자하고 안 가까운데.”
“위증을 하시면 죄가 가중됩니다.”
“내가 무슨 위증을 해!”
유성탄이 펄쩍 뛰며 위증을 한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여인 즉 반교련 피해자와 나으리는 내연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내… 뭐?”
“내연의 관계입니다.”
“그게 무슨 관곈데?”
“말 그대로 안으로 연결된 관계지요. 나으리와 피해여인은 모년모월에 같이 잤었지요?”
“난 이 여자랑 같이 잔 적 없는데.”
“증인이 수십입니다. 자꾸 이러시면 나으리께 불리해진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나으리와 이 여인이 수차례에 걸쳐 통정(通情)을 했다는 것이 다 밝혀졌습니다. 어제도 오셨더군요.”
‘이 씨! 이게 뭐야? 딱 두 번밖에 안 잤는데… 거기다 통정은 또 뭐야? 발음이 영 찝찝한데 에이 무조건 안 잤다고 우기는 거야!’
“분명히 말하지만 난 이 여자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까 자꾸 귀찮게 하지 마라.”
“그거야 조사를 해보면 알겠지요. 우선 나으리께서는 근래 삼 일간 행적을 적어서 현청에 제출해 주십시오.”
“그건 왜?”
“이 여인이 죽었을 때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왜 삼 일씩이나 적냐고?”
“이 여인의 죽은 추정시간이 삼 일 전부터 한 시진 사이에 죽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너 또라이 아니냐? 봐라, 난 척 봐도 죽은 지 한 시진도 안 된 걸 알겠는데 뭐 삼 일? 거기다 어제까지 살아 있었다매?”
“감식은 제가 합니다.”
* * *
“교련이가 죽어서 통곡이라도 할 상황인데 별 이상한 놈 때문에 슬퍼도 못 하고… 에이, 어떤 놈인지 범인을 빨리 잡지 않으면 내가 죄를 뒤집어쓰게 생겼네. 이 자식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찾지 말아야 할 때는 찾아와서 귀찮게 굴더니 막상 필요할 때는 보이지 않고 하여간에 쓸 데가 없어요.”
[방주님!]
“어디를 돌아다니는 거냐? 지금 내가 살인범으로 걸리게 생겼다.”
“살인범이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유성탄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지정우가 간단하게 말했다.
“고남보란 놈 가서 귀신도 모르게 목을 잘라올까요? 그러면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얘가 무서운 말만 골라서 하네? 야, 걔를 죽이면 당장 나를 의심할 거 아니냐?”
“의심하는 놈도 죽이면 됩니다.”
‘무서운 놈! 누가 살수 출신 아니랄까 봐. 내가 이놈들하고 같이 다니다가 벼락이라도 맞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런 것 보다는 우리가 빨리 범인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오살 다 불러서 청담보다 반교련을 죽인 놈부터 찾으라고 해라.”
“지금 다른 친구들은 청담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그자의 무공이 너무 강해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 떨어져서 뒤를 따르고 있는데 방주님께서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얘들이 왜 자꾸 나대는 거야? 내가 그랬지. 청담을 찾아도 내가 없으면 그냥 모른 척하라고! 에이… 어디로 갔냐?”
강태웅에게 청담이 얼마나 무서운 자인지 들은 적이 있는 유성탄은 오살이 혹시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이 됐다. 죽음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였지만 오늘 반교련의 죽음을 보자 자신과 가까운 사람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이 길 맞냐?”
“맞습니다. 내 귀에도 안 들리는데 너는 어떻게 잘도 찾아간다.”
“살수들에게는 서로의 위치를 가르쳐주는 암호가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그들이 가는 길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유성탄은 지정우의 말을 듣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무런 다른 것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수들의 암호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잘 안 보입니다. 다음에 설명을 드릴 테니 빨리 움직이시지요.”
“알았다!”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유성탄이 발을 구르자 놀랍게도 그 속도가 지정우를 초월하기 시작했다.
‘참! 어이가 없구나. 그냥 뜀박질로 신법을 쓰는 나보다 빨리 달리다니…….’
유성탄이 사용하는 것은 신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혈점사 정일호와 싸우면서 유성탄은 바람을 이용하는 방법을 체득했다. 유성탄은 지금 바람을 이용하여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의식적으로 사용을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선천지기가 상황에 맞춰 알아서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내공의 고수가 공력을 사용하는 것 같은 효과도 보고 있었다.
“오살이다!”
달리던 유성탄이 갑자기 소리쳤다. 유성탄의 감각에 오살의 기운이 잡힌 것이다. 운하현을 나온 지 무려 두 시진이 지난 후였다.
“넌 천천히 와라!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유성탄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지정우에게 말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뭐야? 그럼 지금까지 봐주면서 뛰셨다는 거 아니야. 도대체 저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 거야?”
지정우는 오살 중에서도 가장 빨랐다. 살수의 기본이 빠른 몸이었으니 지정우의 몸놀림은 거의 백대고수에 맞먹을 정도였었다.
그런데 유성탄의 지금 빠르기는 그 차원이 달랐다.
“방주님이 저렇게 다급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어쨌건 지정우는 언제나 느긋한 유성탄이 처음으로 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자 자신도 마음이 다급했는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 * *
유성탄이 오살의 기척을 느낀 곳에서 멀지 않는 산길을 가마 하나가 달리고 있었다.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사인(四人) 가마였는데 가마를 메고 있는 네 명의 모습이 상당히 기괴스러웠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러싼 그들은 다리를 쪽 편 채 달리고 있는데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가마는 계속 달리고 있는데 그 옆에 한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놀랍게도 그자는 옆걸음으로 가마를 따르며 가마 안의 인물에게 뭔가를 보고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처리했느냐?”
“예, 아마 치정살인으로 처리가 될 것입니다.”
“아까운 애였는데…….”
청담은 반교련의 웃는 얼굴을 생각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자님과 너무 깊이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를 은밀히 따른 자들도 청화루에서부터 꼬리를 잡은 것으로 압니다.”
“우리를 따르는 놈들이 누군지 알았느냐?”
“그게… 혈문이라는 살수집단의 일급살수인 혈문오살이란 놈들이었습니다.”
“혈문이라는 살수집단? 일개 천한 살수 따위가 감히 내 뒤를 밟았다! 이유는 알아냈느냐?”
“지금 광밀단에 그놈들을 사로잡으라 했으니 곧 배후가 밝혀질 것입니다.”
“포천망쾌란 놈의 정체는?”
“그놈이 영 알 수가 없습니다. 원래는 가짜 포쾌가 아닌가 해서 알아봤는데 분명 가짜는 아니었습니다. 운하현의 현령이 몇 번에 걸쳐 지부에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부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확인은 되지 않고 있지만 동창의 인물들을 현청 안에서 개 패듯이 때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만약 가짜라면 벌써 사단이 나도 한참 전에 났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놈이 반교련을 통해서 알고자 했던 것이 뭐였단 말이냐? 설마 그냥 놀려고 한 거라면 반교련을 처치한 것이 너무 성급했던 것 아니냐?”
“어차피 오살이란 놈들이 사자님의 뒤를 쫓는 거나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무리가 우리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것이나 모두 청화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반교련을 그냥 두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했습니다.”
“포천망쾌란 놈의 능력은 어느 정도로 짐작하느냐?”
“그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운하현이 그놈의 수중에 떨어지다시피 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거의 매일 싸움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계속 주시했지만 무공의 연원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따금 팔쾌장이나 태극권 같은 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무공을 썼습니다만 위력이 너무 강해서 그것도 확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지밀단의 판단으로는 최소한 백대고수의 상위급이거나 어쩌면 십대고수와 맞먹지 않겠는가라고…….”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 정도로 강한 놈이 하늘에 뚝 떨어지듯이 갑자기 나타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황궁에서 특별히 키웠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동창과 싸웠다면 동창에서 모르는 자란 말인데… 현 황궁에서 동창도 모르는 그런 고수를 키울 수는 없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포천망쾌 그자와 사자님께서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북밀천의 지밀단은 북밀천의 두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들이 유성탄의 그동안의 행적을 종합한 결과는 청담보다 그가 더 강하니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내가 알아본 바로 아주 특이한 놈이라고는 들었지만 지밀단에서 나보다 그놈이 강할 것으로 판단을 했다니 뜻밖이구나.”
“죄송합니다.”
“됐다! 첫 번째 거사일이 얼마 안 남았다. 거기에 대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하고 양정이 이끄는 놈들의 땅 파는 실력은 좀 늘었느냐?”
“기대에는 좀 못 미칩니다만, 그럭저럭 조심한다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놓치면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확실히 성공시켜야 할 것이다. 가봐라!”
계속 허리를 숙인 채 옆걸음으로 가마를 쫓던 지밀단의 단주 채지공은 청담의 말이 끝나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계속 달려가는 가마의 뒤에 대고 다시 한 번 예를 갖추고는 몸을 날렸다.
* * *
“이놈들! 니들 죽었어!”
유성탄은 오살 중 사살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눈이 확 돌아서는 당장 몽둥이를 빼 들고는 달려들었다.
십여 명의 복면인과 싸우고 있는 사살의 몰골은 형편없었다. 특히 전화생은 한 팔이 잘린 채 이미 쓰러져 있었다.
유성탄은 흥분하자 그 움직임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전화생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고화월을 비롯한 다른 셋도 온몸이 피투성이이니 흥분할 만도 했다.
딱!
“으악!”
복면인들의 무공은 분명 오살보다 뛰어났다. 그들이 사로잡으려 하지 않았다면 이미 시체로 변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흥분한 유성탄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무려 여섯 번의 검을 몸에 맞았지만 그대로 달려들어 몽둥이로 머리를 내리치는 유성탄의 공격을 그들은 받아내지 못했다.
“이 자식들! 감히 내 부하의 팔을 잘라! 죽었어! 씨!”
모두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자 유성탄은 후다닥 전화생에게 달려갔다.
“괜찮냐?”
“으윽! 이 정도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피를 상당히 많이 흘렸는지 말하는 전화생의 목소리는 힘이 전혀 없었다.
“전화생!”
지정우가 그때서야 도착하고는 유성탄의 품에서 축 늘어져 있는 전화생을 보자 커다랗게 외쳤다.
“내가 니들에게 그랬지? 내가 없을 때는 함부로 나대지 말라고! 에이!”
언제나 농담조에 오살에게 타박만 하던 유성탄의 진심이 느껴지자 오살의 고통스럽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정우, 너 얘들 데리고 하후란에게 가봐. 아마 걔한테 가면 약 줄 거다. 우선 모두 몸을 추스르면 나 찾아와라. 하후란 걔라면 내가 어디에 있건 알 거야.”
“어찌하시려고요?”
“이 자식들 저쪽으로 갔어. 나한테 냄새를 풍긴 이상 도망 못 가! 이 자식들 나한테 죽었어. 내가 왜 마질대형인지 이제 알게 해줄 거야.”
유성탄은 청담의 가마가 지나간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유성탄은 오살에게 누구에게 당한 건지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묻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런 이유가 전혀 필요 없었다. 자신의 가족인 오살을 이렇게 만든 것 하나만으로도 죽일 놈이었고 유성탄에게 찍힌 것이다.
* * *
“괜찮을까?”
어깨에 커다란 자상을 입은 고화월이 어깨를 부여잡고는 창백한 얼굴로 지정우를 보며 물었다.
“괜찮고 자시고가 뭐가 있나? 흑혈신마에게 그렇게 맞고도 안 죽었다는 방주님인데 세상에 누가 그분을 죽일 수 있겠냐. 너희들 몸이나 걱정해라. 전화생은 내가 업고 갈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와라.”
* * *
한참을 달리던 유성탄은 땅에다 귀를 대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괴상한 냄새를 풍기는 놈들인데… 어째서 소리가 안 나냐고?”
보통 사람과는 달리 후각이 엄청 발달한 유성탄의 코에는 진한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산 하나를 넘어가던 유성탄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야! 이놈들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 숨어 있는 여러 명의 기운을 느낀 유성탄은 멈춰 섰다.
[저자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을까요?]
[단주님께서 무조건 사자님을 쫓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제거하라고 하셨다.]
[저자는 그동안 본 단에서 여러 번 흑도인 척 가장하고 제거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자입니다. 우리로서는 힘듭니다.]
[힘들다고 명을 어길 수는 없다. 준비해라!]
광밀단의 단주 윤장도는 유성탄이 청담을 찾는다는 말에 부하들을 흑도의 왈패들인 척 변장시켜 유성탄을 공격하게 해 보았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련을 쌓은 광밀단원들은 유성탄에게 어이없다 할 정도로 간단하게 제압당하여 현청옥으로 직행하곤 했다. 결국 유성탄을 공격하는 것은 우선 중단한 상태였다.
당연히 광밀단원인 그들은 유성탄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유성탄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유성탄은 좌우를 둘러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야 이 자식들아! 덤빌 거면 빨리 덤비고 안 덤빌 거면 빨리 도망가라!”
그리고 유성탄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오살을 공격했던 자들과 같은 복장을 한 복면인들의 공격이 유성탄의 몸에 떨어졌다. 기습을 할 예정이었던 광밀단원들은 더 이상 숨어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자 처음부터 살수를 쓰며 덤빈 것이다.
“이 자식들! 니들이 감히 내 부하를 건드려!”
유성탄의 몸놀림은 갈수록 달라져갔다.
충동에서 벌레들과 하던 놀이들은 실지로 무림의 고수들과의 싸움보다도 더 어렵다고 볼 수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기다 몸을 운신하기도 쉽지 않은 좁은 동굴에서 빠르게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오로지 감각만으로 잡고 피하던 유성탄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온 후 유성탄은 그 놀이를 싸움에 사용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싸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유성탄은 그 놀이를 싸움에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다 근래에 싸움을 끝낸 후 그 싸움을 반추하며 스스로 어떻게 해야 맞지 않나를 연구하면서 그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분을 하면서 선천지기까지 움직이는 법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유성탄은 청담의 뒤를 따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옮길 수 있게 되자 참 신기했다. 달리면서 다리 쪽으로 힘을 보내자 자신의 몸이 공중에 뜨는 것을 느꼈고 간간이 손가락에 힘을 보내어 뿌려보았더니 나뭇가지들이 쉽게 부러졌던 것이다.
유성탄에게 덤벼들었던 광밀단원 십여 명은 너무나도 어이없게 머리통들이 깨지며 다 쓰러져버렸다. 전에는 아파서 쓰러졌지만 유성탄이 선천지기를 몽둥이에 담기 시작하자 골 자체가 흔들리며 거의 정지 상태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한 명도 죽지 않을 정도로 때리고 있으니 정말 놀랄 일이었다.
“어이 씨! 좀 더 때려줘야 하는데 뭐가 이렇게 쉬워?”
유성탄도 스스로 좀 놀라고 있었다. 십여 명의 광밀단원들의 무공은 절대로 약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간단하게 처리한 것이다.
쓰러진 자들의 다리를 밟아 그대로 부서뜨린 유성탄은 다시 코를 벌름거리더니 냄새를 쫓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밀단의 공격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씨! 도대체 이놈들이 몇 명이나 되는 거야?”
벌써 유성탄에 의해 다리병신이 된 놈들이 백여 명에 달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공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처치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점점 냄새가 흐려지고 있는 것이 더 짜증나고 있는 유성탄이었다.
* * *
“사자님! 아무래도 이동방법을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살을 심문해 청담을 쫓는 이유를 알기 위해 길을 돌아가던 채지공은 유성탄이 추격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최대한 추적을 막으라 명을 내렸지만 피해는 계속 가중되는데도 불구하고 유성탄의 발길을 잡지 못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유성탄은 직선으로 청담을 쫓고 있었다. 그런데 채지공은 유성탄이 어떻게 청담의 뒤를 그렇게 정확하게 쫓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청담의 이동방법을 바꾸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자 다시 청담을 쫓아온 것이다.
“멈춰라!”
채지공이 다시 나타나서는 다짜고짜 이동방법을 바꾸어야겠다고 외치자 청담이 가마를 세우라고 명했다.
“무슨 일이냐?”
“지금 포천망쾌 그놈이 사자님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추격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가마에서 내려 길을 나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내 뒤는 광밀단이 호위하고 있지 않느냐?”
“이미 백여 명 이상이 전투능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놀랍게도 한 명도 죽이지 않으면서 모두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피해가 가중되다 보면 광밀단 자체가 없어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광밀단주 윤장도가 최후의 저지선을 형성하고 있지만 제 짐작으로는 그들도 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윤장도까지 당한다면 너무 피해가 크다. 윤장도에게 연락해서 더 이상 포천망쾌 그자의 앞을 막지 말라고 전해라. 그리고 나는 알아서 갈 것이니 거기서 보도록 하자.”
채지공이 허리를 굽히고는 즉시 사라지자 청담이 가마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포천망쾌… 도대체 그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청담은 조그만 빨대 같은 것을 꺼내더니 입에 물고는 살짝 불었다. 그러자 가마를 맨 채 움직임이 없던 네 명의 가마꾼들이 가마를 내려놓더니 가마 앞에 일렬로 섰다.
그 모습을 보던 청담은 검미를 찌푸리더니 다시 빨대를 힘껏 불었다. 그리고는 훌쩍 몸을 날리더니 가까운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더니 나뭇가지를 밟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청담이 사라지는데도 가마꾼들은 전혀 미동도 없이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이놈들 이제야 잡았구나!”
유성탄은 자신의 진로를 방해하던 자들의 습격이 갑자기 사라지자 잘됐다는 듯이 냄새를 쫓아 힘껏 달렸다.
“뭐야… 이건 또?”
시체 썩는 냄새가 진해지자 유성탄은 드디어 잡았다는 생각에 그대로 돌진하다가는 가마를 뒤에 두고 일렬로 서 있는 네 명의 가마꾼을 보자 걸음을 멈추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가마꾼들의 몸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짜식들 묘하게 생겼네?”
언제나 생각보다 호기심이 먼저 일어나는 유성탄은 가마꾼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들의 얼굴 앞에 손을 대고는 흔들었다.
그러나 가마꾼들은 유성탄의 손이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데도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이 자식들이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별 짓을 다하는구먼. 뭔 시체를 세워놓고 나보고 겁먹으라고 그런 모양인데, 짜식들이 사나이 유성탄에게는 겁이란 것이 없다는 것을 몰랐을 거다.”
가마꾼들이 듣건 말건 혼자 중얼거린 유성탄이 그들의 뒤에 있는 가마로 가까이 가는데…
“아야!”
갑자기 가마꾼 중 한 명이 유성탄의 목을 손으로 잡아갔고, 방심을 몸에 달고 사는 유성탄답게 그대로 가마꾼의 손에 고스란히 목을 잡혔다.
그런데 문제는 가마꾼의 손톱이었다. 팔을 내리고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유성탄의 목을 잡은 그자의 손톱은 마치 독수리의 발톱같이 길고 뾰족했던 것이다.
손톱은 그대로 유성탄의 목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엄살 많은 유성탄의 입에서는 짤막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 자식이… 안 놔!”
유성탄은 손에 든 몽둥이로 자신의 목을 잡은 자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쳤다.
팍!
유성탄은 상대를 공격할 때 몽둥이 또는 주먹으로 전해오는 반탄력에 따라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반탄이 약하면 공격이 약해졌고, 반탄이 강하면 공격도 강해졌다.
지금까지 그렇게 상대의 머리를 몽둥이로 치거나, 주먹으로 무차별 가격하면서도 아직껏 한 명의 사람도 죽이지 않았던 비결이었다.
그런데 가마꾼에게서는 전혀 반탄이 없었다. 그리고 그자의 머리를 가격한 몽둥이는 마치 쇳덩이라도 친 듯이 강하게 울렸다.
“세상에 나보다 더 돌머리도 있었다니? 니들은 그런 머리 가지고 어떻게 사냐?”
지금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도 모르는지 유성탄은 상대의 처지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손은 놔라! 아무리 불쌍해도 나 화나게 하면 니들 다친다.”
유성탄이 말로 구슬리려고 하는데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다른 가마꾼들이 손톱으로 유성탄을 공격해왔다.
그들 역시 손톱이 길고 날카로운 것이 마치 송곳 같았다. 거기다 덤벼드는 위세가 어찌나 맹렬한지 거기에 걸리면 그대로 온몸이 찢어질 것이 분명했다.
유성탄은 나머지 셋까지 공격해 들어오자 급히 자신의 목을 잡은 자의 팔을 잡고는 그대로 돌려 쳤다. 한 번의 방심으로 목을 잡히기는 했지만 두 번째는 그 대응이 사뭇 빨랐다.
유성탄의 목을 잡고 있던 가마꾼을 그대로 들어 올려 마치 몽둥이 휘두르듯 나머지를 쳐나가자 이번에는 철판 긁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유성탄을 공격하던 자들의 손톱이 자신의 동료인 유성탄의 목을 잡고 있는 자의 몸을 긁은 것이다.
“이 자식들 이거 사람이 아닌 것 같네?”
그때서야 유성탄도 뭔가 이들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야압!”
유성탄이 기합을 주며 자신을 목을 잡고 있는 자의 팔을 벌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팔이 벌어지지를 않고 아예 부러져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두 팔이 부러진 그자는 비명 한마디 없었다.
퍽!
유성탄의 발이 팔 부러진 자의 가슴을 그대로 차자 그자는 결국 유성탄의 몸에서 떨어졌다. 물론 유성탄의 발에 차이고도 여전히 신음소리 하나 없었다.
“어이 씨… 이상하게 무섭네…….”
뒤로 후다닥 물러선 유성탄은 방금 자신은 겁이란 것을 모른다고 큰소리친 것을 벌써 잊어버렸는지 진저리까지 치면서 겁먹은 얼굴을 했다.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귀신이니 도깨비니 하는 것을 무서워했던 유성탄이었다. 자신이 지금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는데도 여전히 이상한 그들의 행태는 유성탄에게 겁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무림에서 제조를 금하는 강시였다.
약 사백 년 전 무림에 사신교(死神敎)라는 사교가 나타났었다. 죽음의 신을 신봉한다는 교로 세상에 나온 지 삼 년도 안 되어 그 교세가 놀라울 정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시는 당 말엽으로 조정이 극도로 문란하고 사방에서 반란이 창궐하던 시기로 나라에서 마교로 낙인을 찍었으면서도 소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교세가 커지다 보니 결국 무림과의 마찰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무림공적으로 몰려 철저하게 말살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무림 역시 엄청난 피해를 당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사신교에서 제조한 강시 때문이었다.
사신교는 무림 세력이 아니었고 당연히 무림에게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지 수백 구의 강시를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강시란 죽은 시체를 사용하여 만든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강시의 행동이 시체와 거의 같아서 와전된 것이었다.
물론 강시가 되고 나면 거의 시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미 시체가 된 사람으로 움직이는 강시는 만들 수 없는 법이었다. 거기다 스스로 자원하거나 충성심이 강한 자가 아니면 강시로 만든 이후 통제가 어려웠다.
그런데 사신교에서는 죽음을 신봉하는 교리에 맞춰 스스로 죽겠다는 충성스런 수백의 신자가 있었다. 강시를 제조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환경을 가졌던 것이다.
강시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철산액(鐵酸液)이라는 물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연으로 존재하는 철산액은 그 양도 적지만 채취하기도 무척 어려웠다. 철산액은 사람 몸을 녹일 정도로 강한 산에 철이 녹아 함유된 액체를 말하는데 화산지대의 땅 속 깊은 곳에서 이따금 소량이 발견되곤 했다.
그런데 사신교에서는 베두인을 통하여 철산액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 다량으로 철산액을 만들었다.
철산액이 준비되면 상처를 치료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지닌 약초들을 섞는다.
그중 유성탄이 만났던 지룡봉의 꿀이 소량이라도 들어간다면 아주 좋은 강시가 만들어지지만 수백 구의 강시를 만들 정도로 많은 양의 지룡봉의 꿀은 나라의 재산으로도 살 수 없을 만큼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신 천산에서 자생한다는 천엽초를 사용했다.
준비가 되고 나면 미혼약으로 정신을 잃은 사람들의 입에 대롱을 하나씩 물린 후 철산액 속에 담근다. 살이 녹는 고통이란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이고, 대롱은 액 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하기 위한 도구였다.
철산액 속에 들어간 사람은 철산액 속에 함유된 강한 산에 의해 살이 녹고 조직 안으로 철이 스며든다. 그러면 첨가한 약초는 녹은 살을 다시 아물게 한다.
하지만 아문 살은 다시 독한 산에 의해 다시 녹고 또 철이 스며들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철산액과 약초만 충분하다면 오래 담가놓을수록 완벽한 강시가 된다.
물론 만들어진 강시는 볼 수는 있지만 말하도 듣지도 못한다. 그래서 강시가 되기 전에 먼저 신호를 가르치는데 바로 청담이 떠나기 전 사용했던 얇은 빨대가 그 신호음을 내는 도구였다.
그 빨대에서 나는 소리는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막이 완전히 망가진 강시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연히 강시가 된 자들은 그 신호음을 내는 사람의 명만을 듣게 된다.
지금 유성탄을 공격하는 자들은 강시는 강시지만 초벌강시라고 할 수 있었다.
철산액에 담가 백 일 만에 꺼낸 강시를 초벌강시라고 하는데, 완전히 몸이 아문 후에 더욱 강한 철산액에 담가 다시 이백 일을 보내면 더욱 완벽한 강시가 된다.
온몸이 철골로 변한 강시는 도검이 불침하고 몸 자체가 아예 무기화되기 때문에 무공을 몰라도 여간한 무림고수와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사신교에서 만든 강시들은 거의 다가 보통 사람으로 잘못된 교에 현혹되어 스스로 영생을 얻는다는 강시가 되겠다고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강시는 방어를 하는데도 좋지만 공격을 하기에는 큰 효용이 없었다. 너무 느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무림세력들은 사신교를 없애야 했기 때문에 강시가 우글거리는 사신교의 총단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좁은 사신교 총단에서 무공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수백의 무림인들이 죽은 것이다.
사신교의 강시들의 공격법은 너무 단조로웠었다. 그저 달려들어 상대를 안아서는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 다였다.
넓은 평원이었다면 무공을 사용하는 무림인들이 그렇게 많은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겠지만 사신교의 총단에 들어갔던 무림 고수들은 좁은 통로에서 강시들의 포위를 당하고는 속절없이 그들의 손에 잡혔고 잡히는 순간 무공의 고하를 불문하고 죽어갔었다.
그런데 지금 유성탄이 만난 강시들은 무공을 알고 있는 강시였으니 그 위력이 사신교가 사용하던 강시보다 다섯 배는 더 강한 강시라고 할 수 있었다.
‘우선 작전상 후퇴를 할까?’
팔이 부러지고 발에 차여 고꾸라지기 하고도 아무런 비명 없이 다시 일어나는 자와 다시 손톱을 곧추세우고 유성탄에게 다가서는 다른 세 명의 강시를 보며 유성탄은 습관적으로 도망을 칠까 말까 고민을 했다.
아무도 없는 지금 도망친다고 쪽팔릴 일도 없으니 예전의 유성탄 같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미 도망을 쳤을 것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이미 그가 가족으로 여기는 오살이 죽을 뻔한 것이다. 거기다 가장 유성탄의 말에 순종적이던 전화생이 팔을 하나 잃었다. 이미 쪽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놈들! 어디 언제까지 그렇게 귀신 흉내를 내는지 보자!”
스스로 용기를 북돋기 위해 크게 소리친 유성탄은 그대로 돌진을 하더니 몽둥이와 주먹을 무차별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상대를 봐주지 않고 마음껏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유성탄은 갑자기 선천지기가 분수 뿜듯이 온몸으로 발산되는 것을 느꼈다.
“씨! 별 것도 아니었잖아?”
무공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이지가 없는 강시들이다 보니 무공이 아닌 막싸움으로 덤비는 유성탄에게 그들도 막싸움으로 덤볐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성탄의 선천지기가 곁들여진 몽둥이와 주먹에 힘없이 머리가 터지더니 모두 움직임이 멈춰버린 것이다.
방금까지 그의 몽둥이와 발차기에도 끄떡없던 자들이 순식간에 머리가 터지며 쓰러지자 유성탄도 처음에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가진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이따금 우연히 나오고 했는지 알았다.
“내가 상대를 봐주려고 하니까 이게 확실하게 나오지를 못한 거구나.”
간단하게 쓰러진 강시를 보며 유성탄은 자신의 힘이 그대로 나오면 거의 다가 즉사라는 것을 느끼자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씨! 내 힘인데도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겠구나. 하여간에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지 몰라.”
말도 안 되는 불평을 투덜거리던 유성탄은 가마를 발로 차서 부서뜨리고는 사방을 향해 코를 벌름거렸다.
“이 씨! 놓쳤나본데. 가만있어.”
유성탄은 손가락을 콧속으로 집어넣고는 코를 후비기 시작했다. 콧속을 청소하면 더 냄새가 잘 맡아지지 않을까 해서였지만 공중으로 나무를 타고 사라진 청담의 냄새가 맡아질 수는 없었다.
* * *
‘여기는 어디야?’
청담을 놓친 유성탄은 산속을 한참 헤매다가는 한밤이 되어서야 마을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인지 사방이 어둡기만 했다. 어두운 거야 유성탄에게 문제가 될 수는 없었지만 어디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응! 이건 누군가가 목욕을 하는 소린데…….”
유성탄의 좋은 귀에 그가 좋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분명 여자가 목욕하는 소리 같은데…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여자 목욕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잖아! 맞아! 사람은 모든 걸 다 경험해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안 되지.’
유성탄은 자신이 청담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도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는 것도 다 잊어버렸는지 자기 합리화를 하더니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햐! 부잔가 보네. 이런 곳은 빌리려면 상당히 비쌀 텐데…….’
소리가 난 곳은 상당히 큰 객잔의 별채였다. 오로지 경험을 쌓는다는 일념으로 객잔의 담을 간단히 넘은 유성탄은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이층 창문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몸을 날렸다. 흥분을 해서 그런지 선천지기가 더욱 잘 받쳐주어 몸은 정말 소리 하나 없이 잘 떴다.
창가를 손으로 잡은 유성탄이 살살 창 안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으와! 정말 예술이구나. 흐흐흐, 역시 난 재수가 좋아! 어떻게 무조건 왔는데 저런 예쁜 것을…….’
아까까지 재수가 없다고 하더니 순식간에 말이 바뀌는 유성탄이었다.
안은 아주 화려했는데 방 안 한가운데 간이 욕탕이 놓여 있었고 여인 하나가 욕탕 안에서 밖으로 다리를 걸친 채 누워 있었다. 빙기옥골의 살결에 군더더기 없이 쫙 빠진 여인은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탁 보기에도 무지 아름다울 것 같았다.
유성탄이 침을 흘리며 쳐다보는데 갑자기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간이 욕탕이 좀 작은지 양옆으로 다리를 걸치고 있던 여인이 그대로 몸을 일으키자 적나라하게 그녀의 모든 것이 유성탄의 눈에 들어왔다.
‘읍! 심봤다!’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한 유성탄이 너무 황홀한 나머지 잠시 방심을 한 결과 약간의 인기척을 내고 말았다.
“너 이 자식! 또!”
소리에 놀라 창가를 쳐다보던 여인은 벌리고 있던 다리를 급히 오므리며 크게 소리쳤다.
“이 씨! 또 너야? 에이……!”
유성탄의 눈에는 너무나도 예쁜 화설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유성탄도 깜짝 놀라며 창가를 잡은 손을 놓치고는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 자식을 내가 오늘은…….”
후다닥 옆에 놓인 천을 잡아당긴 화설군은 온몸을 천으로 휘감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옷을 입은 모습으로 변했다.
“너 거기 안 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던 유성탄은 급히 일어나더니 후다닥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화설군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경계를 서던 호위여인들과 교미향이 급히 쫓았다. 그녀들로서는 화설군이 갑자기 뛰쳐나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고 계집애 되게 끈질기네. 히히, 어쨌든 전보다 더 자세히 봤다.”
고개를 뒤로 돌려 쫓아오는 화설군을 힐끗 쳐다본 유성탄이 만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 안 서면 내가 평생을 쫓아다니며 괴롭힐 거다.”
‘잉!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던데… 저게 평생을 저런 식으로 쫓아다니면 안 되지. 나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달리던 자세 그대로 몸을 돌린 유성탄이 거꾸로 달려갔다.
죽어라 유성탄의 뒤를 따르던 화설군은 당연히 계속 도망갈 줄 알았던 유성탄이 갑자기 몸을 달려들자 관성력에 의하여 몸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읍!”
또다시 그대로 유성탄의 품으로 뛰어든 꼴이 되어버린 화설군의 입술을 유성탄의 입이 다시 덮었다.
일 각이 흘렀을까? 굉장히 긴 입맞춤이 이어졌고 곧 이어 뺨맞는 소리와 함께 화설군의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짝!
“이 음적 같은 놈! 감히 내 입술을 또……!”
뺨을 정통으로 맞은 유성탄이 뒤로 주춤 물러서더니 소리쳤다.
“씨! 일 각이나 입맞춤했으면 서로 간에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나라의 법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뭐야! 이 날 도둑놈!”
“얘가? 내가 포쾌야 포쾌! 세상에 포쾌한테 날도둑이라고 하는 무식한 여자는 너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내가 강제로 했으면 당장 입술을 떼야지 왜 그렇게 한참 동안 나를 안고 있었는데?”
유성탄의 반문에 화설군의 얼굴이 변했다. 그러고 보니 유성탄의 몸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치사한 놈! 포쾌나 된다는 놈이 미혼약이나 사용하고!”
화설군은 유성탄의 몸에서 난 냄새가 미혼약이라고 단정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을 순간적으로 그렇게 홀릴 수는 없었다.
“너! 다른 사람 같으면 포쾌를 모함하는 반역에 준하는 죄를 지은 걸로 간주해서 너 죽었어! 하지만 너무 예쁘고… 그리고 내가 거기를 본 인연도 있어서 한번 봐준다. 히히히!”
다시 아까의 화설군의 모습이 뇌리에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요상한 웃음소리를 낸 유성탄은 그대로 몸을 뽑아 사라져버렸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화설군이 따라올 정도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전력을 다했고 너무 빠른 움직임에 화설군은 쫓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궁주님! 괜찮으세요?”
그리고 교미향과 호위여인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녀들이 오는 낌새를 눈치 채고 갑자기 도망친 것이었다.
화설군은 원래 유성탄을 잡기 전에는 운하현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궁의 주인이었고 고집과 함께 책임감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 들를 곳이 많은데 한 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다는 교미향의 재촉에 눈물을 머금고 운하현을 떠난 화설군은 반드시 다시 와서 유성탄의 몸을 오체분시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한 후 마음을 좀 다스리려고 홀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유성탄이 나타나서는 또다시 이상한 광경을 연출하게 되었으니 화설군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당장 궁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나의 혼인 초청장은 모두 무효화 시키고 천요궁의 모든 전력을 저놈을 잡는데 총동원하도록 해요. 반드시 잡아서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예요.”
“궁주님, 저자를 죽이려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니까요.”
교미향의 말을 들은 화설군의 얼굴에 약간의 갈등이 나타났다.
하지만 유성탄의 하는 꼴이 분명 자신의 알몸을 본 것을 사방에 자랑하고 다닐 확률이 많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남자들의 술안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죽이지 못하면 내 낭군을 삼으면 돼요!”
교미향은 화설군의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가는 요상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드디어 궁주님의 짝을 만난 것 같아서 그럽니다.”
“누가 내 짝이라는 거예요?”
* * *
“고거 참 예쁘기는 정말 예쁘단 말이야. 정자운을 오른팔에 끼고 쟤는 왼팔에 끼고 백리빙은 등에 업고 다니면 진짜 뽀따구 날 텐데……. 그런데 걔들 너무 먹지나 않아야 할 텐데… 돈이 많이 든단 말이야…….”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요상한 공상을 하면서 그 와중에 돈 걱정까지 하는 유성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