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제1장 화설군 (50/79)

제1장 화설군

“방주님, 아무 여인이나 쫓아가서 함부로 행동하면 음적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전화생이 마차 뒤를 쫓아가는 유성탄을 보며 소곤거렸다.

“무슨 소리야? 나는 포쾌야 포쾌! 누가 나를 음적으로 몰아! 걱정 마!”

“흥! 야! 전화생 말할 필요 없어, 말도 통할 사람에게 하는 거야!”

고화월이 우습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게 또! 에이 참자.’

샐쭉한 고화월의 얼굴을 보며 유성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실로 하나같이 너무 아름다운 여인들이 무려 십여 명이나 주루에 들어서자 술을 마시던 모든 남자들의 눈이 둥그레져서 그쪽을 쳐다보았다.

화려한 궁장 차림의 여인을 중심으로 두 명의 색다른 매력을 가진 여인 둘이 그 뒤를 따랐고 역시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아름답고 쭉쭉 뻗은 젊은 여인 열 명이 호위하듯이 사방을 둘러보며 따랐다.

“궁주님! 이곳 운하현에는 환락가로 볼 것도 없는데 무엇 하러 여기로 오셨습니까?”

“교 당주는 이곳 운하현의 창기촌이 우리 천요궁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몰라요?”

“압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이 더 싫습니다.”

“호호호! 그러지 말아요. 시작은 초라하나 그 끝은 화려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결과가 어떠냐에 따라 시작이 멋있어질 수도 초라해질 수도 있는 겁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궁장여인의 웃음소리는 약간 쉰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호호호! 역시 세상은 재미있네요.”

화설군은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듯 했다.

“주인장! 여기 술 갖고 와!”

갑작스런 외침에 화설군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유성탄이 그녀에게 눈을 찡끗한 것이다.

‘하여간에 어딜 가나 찌질대는 놈들이 하나씩은 꼭 있다니까.’

‘히히히! 역시 내가 멋있기는 멋있구나. 어떻게 저렇게 한눈에 뿅 갈 수가…….’

또 하나의 착각을 한 유성탄은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단숨에 꼬드길 생각을 하며 일어섰다.

[방주님! 뭘 하시려고요!]

고화월이 급히 전음으로 소리쳤다.

[방주님!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무공이 우리보다도 높습니다. 보통 무림여인들이 아닙니다.]

지정우도 급히 말했다. 하지만 유성탄은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뒤로 저으며 그대로 화설군의 앞으로 다가섰다.

“뭐냐!”

유성탄이 화설군의 앞으로 다가서자 주위에 시립하고 있던 호위하던 여인 중 둘이 앞을 가로막았다.

‘뭐야! 생긴 것은 괜찮은데 왜 이렇게 살벌한 거야?’

“나 포쾌거든!”

“그래서!”

“포쾌라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씨! 계집애들이 뭐 이래? 말이 안 통하네.’

“니들이 포쾌가 뭔지 모르는 모양인데, 포쾌라는 게 엄청 무서운 거야. 그러니까 좀 비켜라! 내가 지금 범인을 색출하느라 무지 바쁘다.”

목소리를 살짝 깐 유성탄이 그녀들을 손으로 밀며 가려고 하자 순식간에 그녀들의 검이 유성탄의 목에 겨누어졌다. 정말 빠른 손속이 아닐 수 없었다.

“어! 너……!”

검날이 목에 닿았는데도 전혀 거리낌 없던 유성탄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손가락을 들어 화설군의 옆에 서 있는 교미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교 당주, 아는 사람이에요?”

유성탄이 교미향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화설군이 의아하다는 눈으로 교미향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요! 전 처음 보는 자인데…….”

정자운을 납치하려고 할 때 그녀를 상대한 것이 유성탄이었지만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포쾌 모자를 쓴 지금의 그의 모습은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당연히 그녀가 못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에이 너 그러면 못써! 알지?”

유성탄이 가슴에 손을 대고 풍선모양을 만들자 교미향이 눈에 살기를 띠며 벌떡 일어섰다.

“이놈이 감히!”

“가만있어요! 이리 오시라고 해라.”

화설군이 교미향을 말리더니 호위여인들에게 명했다. 유성탄의 행동에 흥미가 동했던 것이다.

“거봐 나 안다니까.”

여인들이 물러서자 유성탄은 검이 닿았던 목을 한번 쓰다듬으며 화설군이 앉은 식탁의 앞으로 걸어가며 흰소리를 한다.

“보니까 여기 교 당주를 아시나본데… 어떻게 아시지요?”

온갖 방중술이며 남자를 꼬드기는 법을 수천 가지는 배운 그녀였지만 오로지 이론이었지 실기는 아직 한 번도 못 해본 화설군은 유성탄의 행동이 무척 흥미로웠던 것 같았다.

“궁주님!”

교미향이 급히 불렀지만 화설군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다른 말은 필요 없고 내 입이 저 여인의 엄청난 가슴에 닿았었다는 것만 말해주리다.”

남들 듣기에는 엄청 이상한 상상을 할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내뱉은 유성탄은 슬그머니 화설군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호위여인들이 놀라 다시 검을 뽑으려 했다.

“호호호! 아주 배짱이 좋으시네요. 포쾌 맞아요?”

유성탄의 끈적거리는 눈에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던 그녀로서는 뜻밖의 관심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데 혹시 알고 싶지 않으시오?”

비밀 하나로 반교련을 따먹은 경험을 살려 유성탄이 먼저 자신이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슬쩍 비쳤다.

“뭐 비밀 같은 거는 알고 싶지 않고요. 포쾌 맞냐구요?”

‘어! 이거 잘 안 통하네. 그럼 지위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그도 이제는 좀 알고 있었다. 돈과 명예 그리고 비밀, 비밀이 안 통하자 이번에는 명예를 이용해 꼬드길 생각을 한다.

“내가 엄청난 특수 포쾌거든! 황제하고도 맞먹어.”

슬쩍 말을 깐 유성탄의 말에 화설군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물었다.

“황제하고 맞먹건 말건 저하고는 상관없고요. 여기 교 당주는 어떻게 알아요?”

‘어! 이것도 안 통하네. 이거 참… 에이 어차피 진짜 줄 것도 아니고 입으로만 말하는 건데…….’

“내가 돈이 엄청 많거든. 얼마나 많냐 하면 돈을 쌓으면 태산 크기는 될걸.”

유성탄의 말에 화설군의 눈이 커졌다.

‘얘는 돈을 좋아하는 부류였군.’

“이 사람 갖다 묻어버려요.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 하고 세상에 참 짜증나는 사람도 많네요.”

화설군은 자신이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자꾸 딴말만 하는 유성탄이 귀찮아졌다.

“아 잠깐! 저 여자는 내가 어떻게 아냐면… 전에 저 여자가 정자운을 납치하려고 그랬거든. 그때 내가 정자운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었는데…….”

유성탄은 화설군이 자신을 갖다 묻어버리라는 말에 기겁을 해서는 급히 교미향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그러자 화설군의 눈이 반짝이더니 유성탄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정자운! 지금 신녀궁의 정자운을 말하는 거예요?”

“어! 자운이도 알아?”

‘자운… 이름자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부를 정도면…….’

유성탄의 뻥이 드디어 화설군에게 먹혀들기 시작했다.

“정자운이랑 아주 친하신가 봐요?”

‘잉! 요게 지금 무슨 의미일까?’

“하하하! 자운이랑 나랑은 뭐라고 할까… 미래를 약속한 사이라고나 할까!”

“뭐라고요? 정자운이 당신과 미래를 약속해요?”

유성탄은 정자운이 자신에게 다음에 신녀궁에 놀러오라고 한 말을 미래를 약속한 걸로 둔갑시켰다. 문맥상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의미가 아주 심각해진다는 것을 몰랐다.

“자운이 걔가 백리빙이라고 아주 깜찍하게 생긴 애랑 같이 다니는데 걔도 나랑 아주 친해!”

‘무산독봉 백리빙까지 안다면… 진짠가?’

화설군이 미심쩍은 얼굴로 교미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교미향이라고 유성탄의 정체를 알 리 만무했다.

“그 당시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는 말인가요?”

교미향이 화설군의 눈치를 받고는 물었다.

“어어? 기억 안 나? 그때 네가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닥쳐요!”

유성탄의 말이 이상한 데로 흐를 것 같자 교미향이 급히 외쳤다. 그러자 화설군이 손을 들어 교미향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계속 말해봐요.”

“얘기가 좀 야한데 괜찮을까?”

“얘기해봐요.”

‘요게 탁 보기에 색골 같더니 역시… 히히! 딱 내 취향이라니까…….’

“옷을 벗는데… 우아! 이렇게 보면 빈약해 보이는데 벗으니까 완전 소젖이더라고!”

유성탄의 말에 교미향의 얼굴색이 확 변했고 동시에 화설군의 교소가 터져나왔다.

“호호호호호! 소젖! 호호호! 맞아. 교 당주가 좀 크긴 크지요.”

“궁주님!”

“왜요? 난 부럽기만 하던데… 호호호! 그래 그래서 교 당주의 가슴에다가 입을 댔어요?”

“그게 무슨……?”

“그냥 댔느냐 아니면 빨았냐 이 말이에요?”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해지며 유성탄까지 약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적극적인게 나한테 나쁠 게 없기는 한데… 젊은 처녀의 입에서 나올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유성탄은 천요궁에서는 이런 대화가 아주 일상적이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래 정자운과는 어떤 약속을 하셨어요?”

화설군은 유성탄의 다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또 물었다.

‘왔다! 히히히, 비밀을 미끼로 또 하나 엮자.’

“그게 남들이 알면 안 되는 비밀인데…….”

“그래도 저한테는 얘기해 주실 수 있잖아요?”

화설군이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눈초리에 눈웃음을 가득 담고 말하자 사방이 갑자기 훤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위에 싸늘한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요거 예쁜 것 좀 봐라! 날로 먹어도 하나도 안 비리겠다.’

“너무 엄청난 비밀인데… 알고 싶으면 어때 우리 단둘이 으슥한 방에 가서 얘기하면?”

유성탄이 약간 끈적한 기운을 머금고 나직하게 말하자 화설군의 눈에 재미있다는 표정이 나타났다.

“지금 하시는 거 삼류 왈패들이 창기들 꼬드길 때 쓰는 방법 아닌가요?”

“그게 무슨 소리! 내가 이 방법을 얼마나 연구해서 찾아낸 건데……!”

“여자 꼬드기려고요?”

“아니지! 범인을 색출할 때 쓰려고 그러는 거야.”

“그런데 왜 말이 짧아졌지요?”

“응! 아 그거야 서로 사이가 돈독해지다 보면 말도 놓고 그러는 거지 뭐?”

“우리 사이가 언제 돈독해졌지요?”

“지금 이게 돈독해진 거 아닌가?”

말하던 유성탄은 살기가 점점 진해지자 옆을 슬쩍 쳐다보았다. 화설군은 누구하고나 스스럼없이 별의별 얘기를 다하곤 했다. 물론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주위에서는 듣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싼 호위들이 완벽하게 소리를 차단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누군가와 처녀로서는 하기 힘든 얘기를 할 때면 그것은 상대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죽이지 않을 상대에게는 그녀는 실로 요조숙녀가 따로 없다 할 정도로 고상하고 지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유성탄같이 찌질거리며 여인을 희롱하려는 남자를 만나면 방금같이 음담패설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곧 그 대화를 한 남자는 싸늘한 시체로 변해버리는 것이었다.

이미 호위를 하고 있던 천요궁의 제자들은 유성탄이 소젖 얘기를 꺼내고 화설군이 그 말에 동조하면서 이미 유성탄을 죽일 준비를 시작했다.

“거 이상하네?”

유성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화설군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는 물었다.

“뭐가요?”

“얘들이 누굴 죽이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누굴 죽이려고 하는지 아무도 안 보여서 말이야.”

“호호호! 일개 포쾌가 그런 것도 알아요?”

“내가 특수 포쾌라니까!”

“이거 알아요?”

“뭐?”

“당신은 오늘 여러 가지로 실수를 했어요.”

“무슨……?”

“첫째 제 수하인 교 당주를 희롱한 죄예요.”

“그거야… 희롱이라기보다는 서로 친해지다 보면…….”

“둘째 정자운과 미래를 약속할 정도로 친하다는 것도 실수의 하나예요.”

“정자운과는 그리 친하지…….”

“그리고 감히 천요궁의 궁주인 나 화설군에게 반말을 한 죄예요!”

“그게요… 이따금 제가 혀가 짧아서 실수를 하거든요.”

유성탄이 갑자기 존댓말로 바꾸어 희한한 변명을 하자 화설군의 눈에서 미소가 사라져버렸다.

“정말 역겹네요. 그래도 사내대장부라면 죽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살아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싶은데요.”

유성탄의 비굴한 말을 들은 화설군은 더 이상 얘기도 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네 개의 검이 유성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으악!”

놀라 일어서던 유성탄은 네개의 검이 그대로 그의 머리를 가격하자 커다랗게 비명을 지르더니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그대로 식탁 위로 엎어졌다. 그런데 그 손이 교묘하게 정면에 앉아 있던 화설군의 가슴을 움켜잡은 것이다.

“악! 이놈이……!”

화설군은 놀라서 그대로 걷어찼고 식탁과 함께 유성탄의 몸은 주루의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놈이 감히 아무도 만지지 않은 내 가슴을……!”

화설군은 눈에 살기를 띠며 소리쳤다.

“당장 내려가서 오체분시(五體分屍)를 해버려요!”

화설군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여인들이 곧장 창문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러나 이미 유성탄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곧 화설군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 * *

급히 쫓아온 고화월이 물었다.

“도대체 뭐라고 하셨는데 그 난리가 난 거예요?”

유성탄이 창밖으로 날아가더니 곧장 일어나 부리나케 도망치자 오살은 이유도 모른 채 같이 뒤를 따라 도망쳤다.

“암 말 안 했어!”

“또 희롱한 거 아니에요?”

“아니야, 얼마나 건전한 얘기만 했는데… 남녀가 만나면 자연적으로 나누는 이야기였어.”

유성탄이 열심히 뛰면서도 깐죽깐죽 대답을 하자 고화월의 얼굴이 삐죽거린다.

* * *

“당장 잡아와! 이놈을 내 그냥……!”

“지금 이화(二花)가 쫓아갔으니 곧 잡아올 겁니다.”

교미향이 온몸을 바르르 떨며 울상을 하고 있는 화설군을 급히 달랬다.

‘사부님께서 몸은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허락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양아치 같은 놈이 감히 내 청정한 몸에 손을 대!’

화설군이 자신의 성질을 참지 못하고 한번 울고 나더니 눈에 표독한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성탄이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 * *

“도대체 혈점산지 하는 이놈은 어디에 있는 거야?”

어느 정도 안정권까지 도망친 것 같자 나무그늘 밑에 털썩 주저앉은 유성탄이 오살을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 혈점사 얘기만 나오면 고화월이 꼼짝을 못하자 툭하면 혈점사 얘기를 꺼내는 유성탄이었다.

‘햐! 고거 참 손에 딱 잡히던데… 큰 거보다는 손에 착 감기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이제 취향을 바꾸자!’

입으로는 혈점사 얘기를 꺼내고 속으로 딴 생각을 하는 유성탄이었다.

* * *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

유성탄이 있는 곳에서 거의 백오십 장 이상 떨어진 곳에 숨어 유성탄 일행을 보던 혈문이노 중 한 명인 십보추혼 맹반규가 미소를 짓고 있는 정일호를 보며 물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오대사파 중 하나인 마룡방의 방도들을 마치 개 때려잡듯 때려서는 관아로 데려가던 사람이 이번에는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지 않습니까? 전혀 그렇게 도망갈 상대도 아닌 것 같은 데 말입니다. 그런데 지정우를 비롯한 오살은 그 뒤를 싱글거리고 쫓아가고 말입니다.”

“그렇게 보니 재미있다기보다는 이상하긴 하군. 지정우 쟤가 여간해서는 웃는 아이가 아닌데…….”

“오살이 굴복했다 해서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결과는 협박이 아니라 스스로 따르고 있는 듯합니다.”

“상관없지 않느냐? 언제까지 이렇게 쫓아다닐 수도 없고 빨리 시작하는 것이 어떠냐?”

야살 황이중이 정일호를 보며 말했다.

“사실 저도 시작하려고 몇 번 기회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살행을 시작하려고만 하면 저 포천망쾌란 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알고서 저를 본 건지 아니면 우연히 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번번이 살행의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저놈을 유인해보겠다. 그때 네가 오살을 처치해라.”

“저자만 유인하신다면 반 시진 안에 전부 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인이 될지 모르겠군요.”

“우리만 믿어라.”

맹반규는 수십 년을 살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했었다. 당연히 청부대상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수 옆에 있는 경우도 경험했었다. 거기다 그들이 본 유성탄은 무식했고 또한 즉흥적이며 단순했다. 그런 상대를 유인하는 것은 강아지를 유인하는 것보다 더 쉬운 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 *

“궁주님!”

“닥쳐! 그놈을 오체분시하기 전에는 나는 여기 안 떠나!”

유성탄을 잡으러 갔던 호위들이 빈손으로 나타나자 화설군은 유성탄을 잡기 전에는 운하현을 떠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궁을 떠난 지도 꽤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나자고 한 정자운도 안 나오겠다고 거절한 마당에 우리만 계속 강호를 떠돌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정자운 고 계집애가 나하고 미모를 견주는 것이 무서워서 못 나온다는 거 나도 다 알아! 그래서 운호만 잠깐 구경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감히 그놈이 아무도 손을 안 댄 내 가슴을 그냥 댄 것도 아니고 꽉 잡았단 말야! 난 그냥 못 가! 그냥 이대로 돌아간다면 내가 화설군이 아니지!”

말하는 화설군의 눈에는 살기가 번득였다.

“그놈이 포쾌 복장을 한 것으로 보아 이곳의 관아를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호위여인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았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추 당주가 몇 명 데리고 가서 그놈이 있으면 잡아오고 없으면 어디 있나 알아가지고 와.”

“궁주님, 가서 잡아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이곳은 바로 마룡방의 세력권입니다. 마룡방에서 자신들의 세력권에서 관부 사람과 시비를 붙은 것을 안다면 우리에게 책임추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화설군은 교미향의 말에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천요궁이 무림의 이대 궁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여인들의 문파라는 특이성 때문에 불리는 것이지 진짜 세력이 대단해서 불리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타 파에 쉽게 밀릴 정도는 아니지만 오대사파라면 그들로서는 어려운 상대였다.

“좋아! 그럼 그냥 이곳저곳 구경하는 척하면서 그놈을 찾아! 그놈 상판대기로 미루어 절대로 가만히 어디 박혀 있을 놈이 아니야. 분명 지금도 어딘가를 쏘다니며 여인들의 엉덩이를 구경하고 있을 거야. 나가자!”

* * *

‘쟤는 엉덩이가 좀 처진 것 같은데…….’

화설군의 말대로 육모방망이를 건들거리며 여인들의 엉덩이를 감상하며 걷던 유성탄은 아까부터 자꾸 화설군의 가슴 감촉이 떠올라 잊지 못하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뭐야? 영감! 좀 똑바로 보고 다녀!”

화설군과 청화루의 반교련에 대한 공상으로 생각 없이 걷던 유성탄은 자신의 어깨를 콱 잡는 노인의 얼굴을 보며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구! 포쾌 나리, 저 좀 살려주십시오.”

‘에이 씨! 그냥 갈 걸 괜히 말 걸었네.’

유성탄은 노인의 말에서 당장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모른 척할 것을 괜히 말했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라고 했다. 유성탄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은 무척 다급한 표정이 역력했다.

“포쾌 나리, 지금 우리 식구가 전부 죽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영감, 저쪽으로 쭉 가면 관청이 나와요. 거기 가면 포쾌들 많거든요! 거기 가보세요.”

유성탄이 손으로 관아 쪽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아이구! 포쾌 나리께서 여기에 계신데 뭐 하러 거기까지 간단 말입니까? 나리께서 도와주십시오.”

노인의 얼굴은 아주 울상이었다.

‘아이 씨! 오늘은 청화루에 가야 하는데…….’

“어디요? 내 이놈들을… 당장 갑시다.”

[방주! 어디를 가신다는 겁니까? 생각 좀 하세요?]

유성탄이 또 생각 없이 승낙하자 고화월이 급히 전음을 날렸다.

“생각은 무슨 생각! 지금 가족이 다 죽는다잖아?”

유성탄이 고화월을 흘겨보며 소리치고는 노인을 따라 움직였다.

[왜 그래?]

지정우가 고화월의 표정이 이상하자 물었다.

[함정이야. 이 큰 운하현에서 아무리 우연이라도 이런 식으로 부딪칠 수는 없어.]

[상관있냐? 어차피 누구든 부딪쳐야 뭔가를 잡든지 할 거 아니야. 방주님도 아마 그런 생각일걸.]

[그래서라면 나도 이러지 않는다. 방주님 얼굴 좀 봐라. 저게 생각이 있는 얼굴인가!]

[언제 생각하면서 일을 처리하신 분이더냐? 닥치는 대로 헤쳐 나가자.]

지정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장 몸을 날려 유성탄의 뒤를 따랐다.

“어디까지 가는 거요?”

그렇지 않아도 느린 노인의 발걸음을 쫓기에 짜증나던 유성탄은 노인이 끝없이 걷자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운호(雲湖)에 있는 송림(松林)에 제 집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송림은 운호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 숲으로 연인들의 밀회장소로 이름이 높았다.

하지만 그만큼 무뢰배들도 많아 사고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노인이 유성탄 일행을 데려간 곳은 약간은 폐가(廢家)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낡은 고택(古宅)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았수?”

유성탄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노인에게 안됐다는 듯이 물었다.

그 모습을 본 고화월이 급히 나섰다. 너무 뻔해 보이는 함정으로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미 유성탄은 안으로 들어갔고, 순간 문이 닫혔다.

“고화월! 피해라! 이들이 노린 것은 방주가 아니라 우리다!”

지정우는 고화월의 이마를 향해 날아가는 뻘건 선을 보자 소리쳤다. 혈점사의 살수비기인 혈점홍이었다.

당한 사람은 고통도 모르고 죽는다. 그리고 남는 것은 이마에 남은 빨간 점 하나!

바로 혈점사의 등장이었다.

고화월은 이미 틀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혈점사 정일호의 혈점홍은 그녀가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받아내기 힘든 수법이었다. 하물며 지금 같은 무방비상태라면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었다.

“아야! 이씨! 되게 아프네.”

갑작스런 유성탄의 목소리에 고화월의 눈이 동그래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유성탄이 어느새 고화월의 앞을 가로막았는데 혈점홍이 유성탄의 얼굴에 맞은 것이다.

유성탄은 이미 오면서 노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유성탄의 감각에 그 노인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잡힌 것이다.

노인이 유성탄을 문으로 안내하자 유성탄은 안으로 들어가는 척하다가는 노인의 손을 잡아당겨 노인을 안으로 밀어 넣고 그는 살짝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고는 살기가 고화월을 향해 날아가자 생각할 시간도 없이 고화월의 몸을 육탄으로 막은 것인데 하필이면 유성탄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설명은 길었지만 문이 닫히고 유성탄이 고화월의 앞을 막기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찰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유성탄은 이마를 문지르더니 곧장 몸을 날렸다. 충동에서 날아다니는 벌레를 잡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야! 이씨!”

“아야!”

유성탄이 사방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데 계속적으로 그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유성탄은 시간을 주면 오살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정신없이 정일호를 몰아치기 시작한 것인데 충동의 벌레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벌레는 빠르기는 했지만 그냥 도망을 칠 뿐이었지만 정일호는 몸을 계속 움직이면서 유성탄을 향해 혈점홍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성탄은 던지는 대로 맞고 있었다.

‘이씨! 쪽팔리게… 이상하게 피하지를 못하네?’

유성탄은 정일호가 오살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앞을 막아가며 달려들었고 그 와중에도 그가 던지는 혈점홍을 다 보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피하려고 하면 이미 맞곤 하는 것이었다.

‘저놈의 움직임이 다 보이는데 피하지를 못한다면… 그래 움직이기 전에 던진다는 얘긴데… 좋아!’

정일호는 살수들의 은잠술 중 가장 어렵다는 은신술과 환영술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도 사물을 보는 유성탄의 눈에는 그의 움직임이 다 보이고 있었다.

‘옳지! 하나 피했고… 아야! 에이 씨…….’

“세상에……?”

오살은 검을 빼들고 원형진을 만든 채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을 유인해 온 노인의 예로 보아 정일호 혼자만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좌충우돌하던 유성탄의 움직임이 갑자기 현란해지자 놀라고 만다.

“지정우! 저거 허허보(虛虛步) 아니야?”

“허허보는 아닌데… 허허보네…….”

나야종의 물음에 지정우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 그가 아는 허허보는 아니었다. 그러나 움직임이 너무 허허보와 닮았다.

허허보는 공중을 박차고 뛰어오른 후 계속 공중의 공기를 발로 차며 움직이는 보법이었다. 물위에 떠 있으려 해도 발을 잠시 가만히 있지 못하는 판인데 하물며 공중에 뜬 몸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빨리 발을 움직여야 할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성탄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유성탄은 허허보라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다만 정일호의 혈점홍을 피하기 위해 동굴에서 언제나 하던 벽차기를 무의식중에 공중에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일호는 싸울수록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던지는 혈점홍은 사실 암기였다. 쇠털같이 가늘고 그 길이조차 아주 짧아서 어떤 호신강기라도 뚫고 들어가는 효능이 있었다.

다만 너무 가늘고 작다 보니 위력이 약해서 반드시 급소에 맞추어야 하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혈문에서도 혈점홍을 완벽하게 익힌 사람은 거의 없다 할 정도였다.

하지만 급소에 맞추면 즉시 혈류를 타고 심장으로 들어가 구멍을 내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혈점홍에 여러 번 맞고도 계속 덤비는 유성탄에 놀라기도 했지만 특이한 외공을 익히고 있나 보다 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던지는 대로 혈점홍에 맞는 유성탄을 보며 계속 던지다 보면 결국 조문을 맞출 것이고, 그러면 아무리 괴상한 외공을 익혔다 해도 결국은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유성탄의 몸놀림이 빨라지더니 이제는 거의 모든 혈점홍을 피하고 있었고, 그의 주먹이 자신의 몸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안 되겠다. 우선 피하고 봐야겠구나.’

정일호는 우선 피할 생각을 했다. 그때 전음이 들려왔다.

[혈점사! 우리가 동시에 저놈을 기습할 테니 너는 그 순간에 오살을 죽여라.]

혈문이노 중 야살 황이중의 전음이었다. 맹반규가 유성탄을 장 안으로 유인하면 야살과 같이 유성탄을 공격하고 그사이에 정일호가 오살을 죽이기로 했는데 문을 닫고 보니 유성탄은 들어오지 않고 맹반규만 들어온 것이었다.

즉시 둘이 밖으로 나왔지만 정일호는 어느새 유성탄과 싸움이 붙었고 오살은 원형진을 편 채 경계를 하는데 그들의 실력으로는 오살을 죽이기는 어려웠다. 기회를 엿보던 그들은 유성탄을 기습해서 정일호에게 오살을 죽일 기회를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야! 오살! 저기에 숨어 있는 두 놈이 나를 기습하고 그사이에 혈점사보고 너희들 죽이라고 그런다. 조심해라!”

유성탄의 벌레 움직이는 소리까지 듣는 청각이 전음을 들었다. 그리고는 커다랗게 오살에게 주의를 주었다.

당연히 혈문이노와 정일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성탄이 특별한 외공을 익혀 쉽게 공략이 안 된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전음을 엿듣는다는 것은 외공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 이런 식의 정면대결이 된다면 불리한 것은 우립니다.]

정일호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혈문이노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딜 도망가려고! 계속 나만 맞고 나는 한 대도 못 때렸는데! 너 오늘 죽었어! 나한테 걸려서 도망간 놈은 한 명도 없었다.”

또다시 유성탄이 전음을 듣고는 커다랗게 외치자 정일호는 유성탄이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라고 오해를 하고 만다.

‘남의 전음을 마음대로 듣는 자라면 적어도 내공이 삼 갑자 이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공력이 무림 십대고수와 맞먹는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나는 이길 수 없다.’

정일호는 여간해서 사용하지 않는 자신의 최후의 절초를 펼치기로 결정했다.

“어쭈! 이건 또 뭐야?”

유성탄은 드디어 정일호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를 잡고는 맘껏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 번쩍하는 검 빛과 함께 유성탄의 가슴을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살수무공 외에 정일호가 아는 단 하나의 초식인 환비섬(幻飛閃)이 펼쳐진 것이다.

환비섬은 사백 년 전 환객(幻客)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전설의 승부사가 남긴 초식이었다. 천하제일이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았지만 실전무공으로는 아주 효과가 높은 검식이었는데 우연히 혈문에서 입수한 것이었다.

혈문의 역사 동안 수많은 살수를 배출했고 환비섬을 익히려 한 자는 상당히 많았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사용할 정도로 익힌 자는 아무도 없었다.

유성탄은 환비섬이 자신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됐다!’

정일호 역시 자신의 검이 유성탄의 목을 잘랐다고 생각을 하고는 약간 방심한다. 그리고 그는 얼굴에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에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고문을 견디는 수련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정일호는 유성탄의 주먹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았는데도 즉시 고개를 한번 떨치고는 뒤로 급히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충동에서 유성탄이 박쥐라 불렀던 벌레는 그 움직임이 실로 빨랐었다. 날다가도 그냥 서고 심지어는 뒤로도 가고 직각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었다. 그런 벌레도 결국 유성탄에게 잡혔었다.

할 일 없던 유성탄으로서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그 벌레를 잡는 것이었다.

“으윽!”

그런 유성탄의 손에 한번 걸린 이상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정일호가 나름 충격에서 벗어나 빨리 피한다고 피했지만 유성탄의 순발력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무수히 떨어지는 유성탄의 주먹에 정일호는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검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우하하하! 잡았다!”

유성탄의 득의의 웃음이 들리고 곧 이어 혈문이노의 공격이 뒤를 이었다. 정일호가 갑자기 몸의 균형을 잃고 유성탄에게 죽을지도 모를 상황이 되자 그들로서도 어떤 것이 좋을지 판단하지 못하고 정일호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것이다.

하지만 모습을 나타낸 순간 오살의 공격이 그들에게 퍼부어졌다. 혈문이노가 비록 그들을 가르친 교관 출신이기는 했지만 혈점사 정일호와 오살의 실력은 이미 그들의 실력을 능가했었다.

오살의 비기가 유성탄을 향해 달려드는 혈문이노에게 쏟아지자 혈문이노는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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