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나타난 동창 (48/79)

제9장 나타난 동창

“방주님!”

“왜 아침부터 호들갑이야!”

유성탄은 마룡방의 무사들을 옥에다 가둔 후, 청화루에 다시 갈 이유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머리를 굴렸지만 결국 이유를 찾지 못하고 말았다. 고화월이 눈치를 채고는 사사건건 방해를 한 것이다.

결국 속으로 꿍얼대며 잠이 든 유성탄을 아침부터 오살이 들이닥쳐서는 깨운 것이다.

“방주님, 혈점사가 나타났습니다.”

“혈점사가 누군데?”

“혈문의 특급살수로 불리는 혈점사 말입니다!”

“그래서? 혈점사가 나타났는데 뭐 어쩌라고?”

“혈점사가 여기에 나타난 이유가 뭐겠습니까? 우리를 죽이러 온 겁니다.”

“뭐야! 감히 누가 유성방의 호법을 죽여! 이것들이 죽을라고… 어딨어, 그놈?”

유성탄이 갑자기 흥분하자 고화월이 인상을 콱 쓰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얘기할 때 뭘 생각하는 거야?’

“너 나보고 욕했지?”

“안 했어요.”

“느낌이 안 좋았는데…….”

“욕은 안 하고 불만은 좀 토했습니다.”

“무슨 불만?”

“방주님께서 너무 방도들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시는 것 같아서요!”

“내가 지금 이렇게 흥분하는 거 보면서 그런 말을 하냐?”

“처음에 혈점사가 나타났다고 하면 척 알았어야지요. 이미 혈점사에 대해 여러 번 말해 줬잖아요.”

“그거야… 내가 지금 꿈속에서 무지 즐거웠는데 니들이 깨워서 정신이 좀 없었던 것뿐이다.”

“기녀 생각만 했나 보군요.”

‘이게 눈치가 너무 빨라서…….’

“난 어떡하면 천하의 안녕을 위해 치안을 확실하게 지킬까만 생각했다. 기녀 생각 같은 것은 안 한다.”

유성탄이 엄숙하게 말했지만 오살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면서 그놈이 나타났다는 것은 어떻게 안 거야?”

“혈점사가 남긴 표식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딴 일로 왔을 수도 있잖아?”

“아닙니다. 분명 우리 때문에 왔습니다. 그가 남긴 표식은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흠… 어디서 기다린다는 거냐?”

“그걸 알면 우리가 이렇게 불안할 이유가 없지요. 우리가 먼저 그의 행적을 안다면 꼭 우리가 질 이유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의 행적을 모르고 그가 우리의 행적을 안다면 우리는 분명히 죽어요.”

“내가 뭘 했으면 좋겠는데?”

“저희들 곁을 떠나시면 안 됩니다.”

“뭐야!”

유성탄은 무슨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펄쩍 뛰었다. 오늘은 필히 반교련에게 가보리라고 결심을 꾹꾹 하고 잤는데 오살의 곁에 계속 있어야 한다면 반교련에게 가는 것은 또 물 건너간 것이 아니겠는가.

“꼭 그럴 필요가 뭐가 있겠냐? 그냥 서로서로 좋게 지내면…….”

“뭘 어떻게 서로서로 좋게 지내요? 지금 방주님은 우리가 죽어도 좋다는 거예요?”

‘에이 씨! 다 틀렸네…….’

“알았으니까 내 옆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마라.”

유성탄은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인생은 길고, 반교련은 언제나 청화루에 있는 거 아니겠어. 씨! 그래도 이제 시작인데…….’

“왜 그래요?”

고화월은 유성탄이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뾰로통해 있자 유성탄에게 물었다.

“내가 뭘!”

“지금 화난 것 같잖아요?”

“나 화 안 났어!”

“화 났는데 뭘!”

“맞먹어라… 응!”

고화월과 유성탄의 입씨름을 보며 나머지 사살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웃음을 모르고 살아온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차츰 웃음을 돌려주고 있는 유성탄이었다.

“아! 고놈 참 되게 시끄럽네!”

‘고놈 참? 아쭈, 분명 내게 한 말이렷다. 누군지 잘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안 좋던 유성탄은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풀이 대상을 만났다고 생각하고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렸다.

“어떤 놈이 감히 포쾌 어르신한테… 잉! 이 씨! 재수 옴 붙었네.”

유성탄은 말하다 말고 인상을 콱 찡그렸다.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거지가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늙은이는 어떻게 생겨도 진짜 거지같이 생겼냐? 에이, 저렇게 생겨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

유성탄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파리 쫓듯 손을 까딱대며 말했다.

“에이, 저리 가쇼! 난 거지하고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오.”

유성탄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의 머리를 뭔가가 딱! 때렸다.

“아이 씨! 누가 감히 이 어르신의 머리를……!”

유성탄이 다시 몸을 돌리자 거지 노인이 누런 이를 내놓고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늙은이! 당신이 친 거야?”

“거참! 어린놈이 진짜 싸가지 없네. 내가 세상을 살아온 지 벌써 백 년이 다 되어가고, 강호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건만 너같이 싸가지 없는 놈은 처음 본다. 이놈아! 네 애비가 어른한테 그따위로 막 하라고 가르치더냐? 앙! 네가 이러면 그게 네 부모한테 욕이 돌아간다는 것을 왜 몰라? 이 호래자식아!”

“아니! 이… 이… 노인장께서 왜 이러실까? 얼굴을 보니 며칠 굶은 상인데 밥이라도 먹으려면 부지런히 동냥을 하셔야지 여기서 노닥거리시면 안 되지요. 가보세요.”

놀랍게도 유성탄은 늙은이를 노인으로 바꾸더니 부드럽게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에이, 참자 참어…….’

딱!

“아이 씨! 자꾸 이럴 거요?”

유성탄은 머리에 뭔가 또 떨어지자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벌떡 일어서며 몸을 돌렸다.

“이놈아! 내가 너무 굶어서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이다. 포쾌라면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 아니겠냐?”

유성탄은 거지 노인의 얼굴을 보자 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노인장을 불쌍히 여겨 빨리 동냥을 가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잖습니까?”

“니가 친절하게 동냥을 주면 가장 간단한데 뭐 하러 다른 데로 동냥을 가라고 하냐?”

‘이 씨! 내 이럴 줄 알았어. 하여간에 거지는 만나면 안 돼!’

“하하하!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돈이 하나도 없소이다 그려. 하하하!”

유성탄은 말을 마치고는 다시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거지 노인이 소리쳤다.

“내가 니 몸을 뒤져서 한 푼이라도 나오면 그건 다 내 돈이다.”

‘이런 날도둑 같은 거지가…….’

“아니 노인장이 왜 남의 몸을 뒤진다는 거요?”

“니놈이 거짓말을 치니까 그러지!”

“내가 무슨 거짓말을 쳤다는 겁니까? 나는 태어나서 거짓말은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결벽(潔碧)한 사람이오.”

“햐! 그놈 참 별종이네? 방금 거짓말을 쳐 놓고는 어떻게 저런 말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나올까?”

“침은 발랐소!”

거지 노인은 유성탄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잠시 유성탄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침 발라서 좋겠다, 이놈아!”

“재수가 없을라니까… 에이!”

거지 노인은 유성탄과 입씨름을 벌이다가는 갑자기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유성탄은 살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 앉으며 구시렁댄다.

“방주님!”

“왜에!”

밥을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전화생이 부르자 유성탄이 신경질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저 거지 노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난 거지하고 안 사귄다.”

“방금 그 노인이 자신이 백 살 가까이 살았다고 했고,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건대, 틀림없이 개방의 태상장로라는 궁상개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궁상개? 하긴 생긴 것도 엄청 궁상맞게 생겼더라. 그런데 뭐! 개방?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개방인데…….”

“개방하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 왜?”

“개방을 제일 싫어하신다니까…….”

“개방이 거지 왕초라매? 거지하고 사귀어서 좋을 게 뭐가 있냐? 돈이나 뺏기지!”

“그냥 그 이유입니까?”

“그럼!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 있으면 대봐!”

오살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유성탄의 얼굴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이 자식들이… 저 기분 나쁜 썩소는 무슨 뜻이지? 그냥 한 대씩 패줘? 에이, 찝찝하게 씨!’

오살의 웃음에서 이상하게 찝찝함을 느낀 유성탄은 갑자기 더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유성탄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밖으로 나오자 지정우가 물었다.

“우리가 언제 갈 곳이 있었냐? 이렇게 헤매고 다니다 보면 분명 뭔가가 걸릴 거야. 그때! 전광석화같이 때려잡는 거지.”

“아무것도 안 걸리면 어떡하실 겁니까? 계속 이런 식으로 시간만 보낼 수도 없고…….”

“틀림없이 걸려! 걱정 마라.”

“만약 안 걸리면 어떡하려고요?”

고화월이 결국 못 참고 끼어들었다.

“내가 이 천재적인 머리로 연구를 했는데 육감이 딱 왔거든. 그러니까 걸리지!”

“천재적인 머리하고 육감하고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데요?”

“나는 있어!”

‘하여간에 말도 안 되는 억지는…….’

“다 먹었냐?”

유성탄 일행이 밖으로 나오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궁상개가 곧 따라붙었다.

“아까 무지 바쁘시게 가시더니 벌써 왔어요?”

“응,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더라고. 그리고 요새 내가 무지 심심했거든!”

궁상개가 다시 누런 이빨을 내보이며 씩 웃었다.

“이빨을 다 금 이빨로 해 넣으시면서 왜 궁상맞게 거지를 하십니까?”

“금 이빨?”

궁상개는 반문을 하더니 때가 꾸덕꾸덕 묻어 있는 손가락을 입 안에 넣더니 이빨을 손톱으로 긁었다.

“이거 금이 아니고 오랫동안 안 닦아 색깔이 좀 변한 거야.”

궁상개는 말을 하면서 이빨을 긁었던 손가락을 유성탄의 코에 갖다 댔다.

“우악!”

유성탄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뒤로 비칠비칠 물러섰다.

“세상에 어떻게 인간의 입에서 이런 악취가… 노인장은 세상에 무서운 게 없겠습니다.”

“왜?’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가 빼기만 해도 모두 도망갈 거 아닙니까?”

“생각보다 잘 안 도망가.”

“그래요? 안타까운 얘기군요.”

유성탄은 뭐가 안타깝다는 것인지 고개까지 끄덕이며 안됐다는 듯이 말하더니 갑자기 인사를 했다.

“갑자기 웬 인사?”

“이제 노인장과 헤어질 시간이 된 듯해서요.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유성탄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몸을 돌리고는 뛰듯이 걸음을 빨리해서는 앞으로 나갔다.

“우잉!”

앞으로 가던 유성탄의 발이 딱 멈췄다. 궁상개가 어느새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자꾸 이러면 나 화낼지도 몰라요.”

유성탄이 그의 특기를 살려 눈에 살기를 띠며 궁상개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놈아! 눈에 힘 빼라. 그런다고 무서워할 나도 아니지만, 너도 포쾌 신분으로 죄 없는 거지를 죽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난 치안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욕도 다 감수할 채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노인장이 자꾸 이런 식으로 치안유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나로서는 욕을 먹더라도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무슨 치안유지에 반하는 행동을 했는데? 말해봐라!”

“전부 답니다.”

“전부 다 뭐!”

“전부 다라니까요!”

“그러니까 말해보라니까?”

‘에이 씨! 호래자식이 되더라도 그냥 작살 내버려 말아? 아 진짜 죽겠네…….’

궁상개는 유성탄의 모습을 보더니 씩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왜 자꾸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냐?”

“잠자는 사자는 무슨!”

“자, 그러지 말고 잠깐 대화나 좀 나누자.”

‘이 씨! 드디어 본론이 나오는구나. 에이, 동전 한 문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은데…….’

궁상개의 말을 듣자 유성탄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묶어 놓은 돈 꾸러미를 만졌다.

“말해보쇼!”

“네가 어제 마룡방의 방도들을 현청의 옥에 가두었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뭐냐?”

“이유가 뭐가 있겠소? 자식들이 몰려다니며 치안을 불안하게 하기에 타이르려고 했는데 덤비니까 공무집행방해죄까지 더해서 가둔 것뿐이오.”

“무림과 관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말을 듣자니 네가 아주 높은 곳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설마 황제의 뜻이더냐?”

“세상에는 여러 법이 있소. 그 중에 유성탄의 법은 무엇보다도 우선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오. 나는 유성탄의 법을 시행하는 중이오.”

“유성탄의 법? 유성탄이 누구냐? 설마… 너는 아니겠지?”

“사람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보면 안 되는 것이오. 내가 너무 착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종종 내가 엄청 과격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소. 하지만 난 정말 무서운 사람이오.”

“그놈 참… 그렇게 안 봤는데 과대망상증 환자였군. 어쨌든 순전히 니 마음대로 하는 행동이라는 말이니 우선 안심은 된다만, 너 그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이 늙은이가 좋게 대해줬더니만 악담을 하고 지랄이네 씨!’

“노인장도 고렇게 촐랑대다가는 어디서 뒈지게 맞아 죽을 수 있으니 조심하시오.”

“뭐어? 촐랑? 거기다 뒈지게 맞아 죽어? 나 궁상개가 수십 년을 무림을 횡행했지만 너 같이 버릇없는 놈은 정말 처음이다.”

“나도 무림을 횡행한 지… 상당히 오래됐지만 노인장같이 사람을 귀찮게 하는 사람은 처음이오.”

“허허허! 정말 별종이구나, 별종. 나 궁상개 앞에서 이렇게 한마디도 안 지는 놈은 처음 봤다.”

“노인장이야말로 운이 좋은 줄 아시오. 너무 궁상맞아 보여 내가 그냥 봐주는 중이오.”

궁상개는 유성탄을 자세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보고 사람들이 정말 짜증나는 놈이라고 안 그러더냐?”

“웃기지 마시오. 나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나한테 반해서는 전부 사귀고 싶어 죽을려고 해서 도망 다니는 중인 사람이 나요.”

‘하! 이놈 참……. 성질 같아서는 아주 혼을 내주고 싶은데… 잘못했다가는 내가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단 말이야…….’

궁상개는 이미 유성탄이 마룡방의 무사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보았었다. 그리고 유성탄의 무공에서 괴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황궁에서 무림을 견제하기 위해 내보낸 고수는 아닌가 의심했었다.

하지만 유성탄과 대화를 나눠보고는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유성탄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절대로 황궁에서 보낸 고수로 보기에는 너무 무식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우리는 여러 가지로 닮은 점이 있는 것 같구나. 자주 봐야 할 것 같구나. 오늘은 이만 가마.”

“저 영감이 미쳤나? 저 꼴로 어떻게 나같이 잘생긴 사람하고 닮았다는 거야? 하여간에 나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라니까…….”

유성탄의 독백을 들으며 오살이 다시 피식 웃는다.

‘정말 제멋에 사는 사람이야…….’

‘후후후! 저렇게 살면 진짜 걱정이 없겠군. 세상이 전부 다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분 같으니…….’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면 저렇게 착각을 진짜로 알고 살 수 있을까?’

오살이 무슨 생각을 하건 말건 유성탄은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궁상개에게 몇 푼은 뜯길 줄 알았다가 아무런 손해가 없었으니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유성탄이었다.

* * *

“병신 같은 놈들이 마룡방의 이름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마룡방의 정예라는 놈들이 일개 포쾌한테 얻어터지고 현청의 옥에 갇힌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 총단에서 알면 당장 내 목부터 치겠다.”

마룡방의 운하현 지부의 지부장인 황음마(荒淫魔) 독고표종은 구룡회의 무사가 운하현의 외곽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출동시킨 지부의 무사들이 가던 도중 유성탄에게 모두 얻어터지고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자 불같이 화를 냈다.

“보통 포쾌가 아니라 특수포쾌랍니다. 포천망쾌라고 한다던데요.”

독고표종의 최측근인 상민채가 급히 부언했다.

“포쾌면 포쾌지 특수포쾌는 또 뭐야? 그런 포쾌가 있었나?”

“대주 이하 이십여 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현청까지 끌고 갔다는 자체가 심상치 않은 자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봅니다. 혹시 관에서 우리 마룡방을 견제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총단에서 먼저 알고 우리에게 지시가 떨어졌을 건데, 전혀 그런 말이 없었다.”

“사실은 방금 전 도착한 보고인데, 황궁의 동창의 인물들로 보이는 자들이 운하현에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동창? 동창이 왜 여기까지 와? 아무래도 황궁에서 뭔가 수상한 짓을 하려는 것 같은데… 안 되겠다. 총단에 전서를 날려라. 자세한 상황을 쓰고 지시를 내려달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전서는 지급을 요하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날리지 않았다. 그만큼 전서구가 귀했기 때문이었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전서구를 날리면 견책의 사유가 될 수 있을 정도였다.

* * *

운하현 현령의 집무실, 현령 여본청이 납작 엎드려 있었고, 그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는 머리가 하얗고 수염이 하나도 없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으며, 그 옆으로는 십여 명의 같은 복장을 한 남자들이 죽 서 있었다. 신기한 것은 모두 수염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분을 확인하지도 않고 현청의 옥을 내줬다는 말이냐?”

무림에 파견된 동창의 삼 개 대의 대주 중 한 명인 조은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추궁하듯이 여본청에게 물었다. 그러자 심약한 여본청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고위직인 종사품까지도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동창에서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여본청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몸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그그게… 아주 높은 곳에서 나온 트트트특수포쾌라고 해서…….”

“아주 높은 곳 어디!”

“그그그그건… 물어보았는데… 나라의 비밀을 알려고 하다가는 다친다고 해서…….”

“어이가 없군. 동창에서도 모르는 나라의 비밀을 일개 포쾌가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아주 재미있는 놈이로군.”

조은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지금 사람을 보내서 그 놈에게 네가 이곳으로 들어오라고 했다고 시켜라.”

“어디에 이이…있는지를……?”

“지금 시장통에 있다.”

조은은 이미 유성탄의 행동반경을 다 꿰뚫고 있는 듯했다.

* * *

“수상한 놈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시간은 안 가고…….”

시장통의 구석에 놓여 있는 탁상에 앉아 있던 유성탄의 입에서 한탄조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간이 빨리 가면 좋은 게 있나요?”

고화월이 물었다.

“밤이 되잖냐! 난 이제부터 밤을 좋아하기로 했다.”

‘하여간에 밝히기는…….’

유성탄은 그 와중에도 사방을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뭔가 특별한 기운을 가진 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어쭈! 저 놈 봐라?”

유성탄이 두리번거리다가는 갑자기 오 장쯤 떨어져 있는 주루를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창가로 잘생긴 청년 하나가 그들을 보고 있다가는 유성탄의 눈과 마주친 것이다. 그런데 유성탄이 눈을 깜빡거린 사이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뭐 보셨어요?”

유성탄의 중얼거림을 들은 고화월이 유성탄의 눈길이 이어지는 곳을 쳐다보았다.

“아주 괴상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놈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기분이 무지 나쁘게 생긴 놈인데…….”

잘생긴 사람만 보면 다 기분 나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유성탄의 말에 고화월의 얼굴색이 약간 변했다. 직감적으로 혈점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혹시 아주 잘생기지는 않았어요?”

“그 정도가 잘생긴 거면 나는 무지 잘생긴 거다.”

표준을 어디다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유성탄은 괜히 심통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오살은 그 자가 무지 잘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혈점사가 드디어 모습을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 놈은 겉멋만 들어서 살수행을 하기 전에 상대에게 한번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놈 엄청난 실수한 거야. 나는 한번 느낀 기운은 천리 밖에서도 감지하거든.”

유성탄이 잘난 체를 하자 오살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어렸다.

‘얘들 또 이상한 웃음을 짓는 걸 보니까 천리는 너무 뻥이 컸나보구나…….’

“그래서… 나보고 오라고?”

“예, 현령님께서 아주 중요한 일이시라고.”

“그래? 뭔 일일까? 혹시……?”

운하현 현령 여본청이 보낸 포졸은 시킨 대로 시장으로 달려왔다가는 정말 쉽게 유성탄을 발견하고는 여본청의 지시를 전달했다. 그리고 유성탄은 여본청이 어제는 성의를 표하지 않은 것이 꺼림칙해서 다시 성의를 표하려고 그러나보다 하고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며 현청으로 갔다.

‘으잉?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현령의 집무실에 도착한 유성탄은 여본청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고 기분 나쁘게 생긴 자들이 죽 서 있자 순간 괜히 왔다는 생각에 다시 몸을 돌리려 했다.

“재미있는 놈이군! 보자마자 뭔지 알아보려고도 안 하고 돌아 나가려고 하다니… 네가 포천망쾌냐?”

‘포천망쾌냐? 이 자식이 생긴 게 재수 없이 생겨서 그냥 가려고 했더니 오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너 지금 나한테 물은 거냐?”

유성탄이 몸을 돌리며 묻자 주위에 있던 동창의 고수들의 얼굴에 살기가 나타났다.

“하하하! 그동안 네놈의 행적을 보고받으면서 약간 미친놈은 아닌가 했는데 이제 보니 약간이 아니라 완전히 미쳤구나! 감히 내게!”

“하하하! 생긴 게 재수 없이 생겨서 조금은 이상한 놈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완전히 이상한 놈들이었구나. 나한테 까불다가 맞아 죽은 놈이 쌓아놓으면 산을 이룬다. 쪽수 좀 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가 본데 까불지 마라! 그러다 맞는다.”

조은은 유성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큰소리치는 자에게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이미 유성탄이 저지른 짓들을 봐도 뭔가 없이는 하기 힘든 행동을 했었다.

“너 우리가 동창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그렇게 떠드는 거냐?”

“동창? 나는 감숙에서 온 사람이다. 그건 알고 있었냐?”

한마디도 안 지는 유성탄이었지만 하는 말마다 억지가 다분했다.

‘뭐야, 이거? 바보 아냐? 동창이라는데 감숙은 무슨…….’

조은은 옆에 서 있는 부하를 한 명 쳐다보았다. 동창이 뭔지 설명해 주라는 뜻이었다.

“너는 포쾌의 신분으로 감히 동창의 대주님을 보고도 예를 올리지 않았다. 동창이란 황궁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시시한 관원은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는 곳이다. 정말 동창에 대해서 모르고 그런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자로서 상부의 명을 지키는 예의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거야?’

유성탄은 솔직히 동창의 대원이 하는 얘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기가 죽을 유성탄이 아니었다. 유성탄에게는 전가의 보도인 억지가 있지 않은가.

“너희들 내가 특수포쾌거든. 특수포쾌는 동창보다 더 높은 거야! 니들이 모르는 것 같아서 설명해 주겠는데 동창보다 내가 더 높은 거야. 알았어!”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거냐! 특수포쾌라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한 지위다.”

“그건 내가 하는 일이 너무 특별한 일이고 비밀을 요하기 때문에 너희들같이 지위가 낮은 놈들은 알 리가 없지.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 말을 믿어라. 난 분명 동창보다 높은 사람이다.”

유성탄의 말을 듣던 조은의 눈가가 실룩거렸다.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는 놈이구나! 짜증스런 놈이다. 먼저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다시 얘기해야겠다. 우선 무릎부터 꿇려라.”

“예!”

대답과 함께 주위에 서 있던 동창의 무사들이 유성탄을 향해 달려들었다.

“에이 씨! 힘 빼면 안 되는데…….”

유성탄은 반교련을 다시 만날 때까지는 더 이상 싸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반교련에게 뭔가를 보여주려면 힘을 비축해야겠다 생각한 것이었다.

동창의 무사들 개개인의 무공은 분명 마룡방이나 금모전의 무사들보다는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주급보다 강한 정도는 아니었다. 당연히 유성탄에게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내가 그랬지. 맞고 후회하지 말고 말로 할 때 들으라고!”

유성탄의 외침이 터지고 유성탄의 막 주먹이 시작되었다. 동창의 무사들은 유성탄의 주먹을 맞고도 조그만 신음만 내뱉을 뿐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그것은 동창이 되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수련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물러나라!”

조은은 싸움이 시작된 지 이 각도 안 되어 벌써 십여 명의 무사들이 쓰러지자 싸움을 멈추게 했다.

“역시 한 수를 숨겨둔 게 있는 놈이었구나. 하지만 동창에게 덤비면 평생을 관에 쫓겨다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내가 포쾌인데 누가 나를 쫓아온다는 거냐?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너나 조심해라!”

말을 마친 유성탄의 몸이 쏜살같이 조은의 몸 가까이 다가섰다. 보통 고수들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은 기의 흐름을 느껴서이지 눈으로 보아서는 늦는 법이었다.

조은 역시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비하여 언제든지 몸을 날릴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성탄의 공격은 전혀 기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고, 그 빠르기가 실로 대단했다.

빠악!

“으윽!”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조은의 턱을 갈겼고 조은의 입에서는 피와 함께 이빨 몇 개가 튀어나왔다. 조은으로서는 한 번도 당해보지 못했던 치욕이었다.

“이놈!”

유성탄의 주먹에 이빨이 나갈 정도로 세게 맞은 조은이었지만 잠시 멈칫했을 뿐 당장 반격이 들어왔다.

“우이 씨! 옷이 또 찢어졌네! 깎지도 못하고 제 값 다주고 산 옷인데! 너 죽었어 씨!”

유성탄은 자신의 주먹이 정통으로 조은의 턱을 갈기자 끝났다고 생각하고는 잠깐 방심한 사이 조은의 장이 자신의 가슴을 치고 맞은 곳의 옷이 연기를 내며 까맣게 변하자 열이 받아 소리쳤다.

조은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흑멸장(黑滅掌)은 황궁의 무공 중에서도 독랄하기로 유명한 무공이었다. 여간한 고수는 일장에 즉사하거나 반신불수가 될 것이고 초절정고수라 할지라도 유성탄처럼 정통으로 맞았다면 상당한 내상을 입어야 마땅했다.

“뭐 하느냐! 당장 저놈을 죽여라!”

조은이 입으로 피를 튀기며 커다랗게 소리치자 잠시 멍했던 동창의 무사들이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으악!”

“으윽!”

그러나 공격해 들어오던 동창의 무사들이 갑자기 비명과 함께 쓰러지기 시작했다. 은잠술로 숨어 있던 오살이 살수행을 한 것이다. 평상시라면 절대로 건드려서 안 되는 자들이 동창이었지만 이미 유성탄에게 충성을 맹세한 마당인지라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심해라! 살수다!”

유성탄도 오살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는 소리쳤다.

“너희들은 끼어들지 마라! 너희까지 옷 버리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참 요상한 이유를 대는 유성탄이었다.

이미 유성탄에게 십여 명의 무사가 맞고는 뻗어 있었고 오살에게 순식간에 일곱 명이 당했다. 물론 일류고수들답게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피해 죽지는 않았지만 이미 전력은 상실한 상황이었다.

‘실수구나. 공주가 보냈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인데… 너무 놈이 바보 같아서…….’

조은은 계속 입 안에 고이는 피를 꿀꺽 삼키고는 유성탄을 노려보았다.

“야! 너 수염도 없는 이상한 놈, 내가 그랬지. 까불다 맞는다고. 아픈 게 안 아파지는 게 아니라고! 너 때문에 내 옷을 다 버렸거든. 이게 무려 금자 열 냥을 주고 산 옷이야.”

“네놈 옷은 모두 금으로 만들었더냐? 금자 열 냥짜리 옷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뻥이 좀 심했나?’

“너는 싸구려만 입어서 모르는 모양인데 내 옷은 금자 열 냥이거든! 지금이라도 옷값을 물어주면 내가 아주 쪼끔은 봐줄 생각이 있는데… 어때? 죽도록 맞을래, 옷값을 물어주고 여기서 찢어질래?”

조은은 유성탄의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방금까지 죽기 살기로 싸운 상대에게 지금 금자 열 냥을 주면 그만 돌아가겠다는 말이 아닌가.

조은은 잠시 갈등하다가는 품속에서 금덩이 하나를 꺼내서는 유성탄에게 던졌다. 자존심상 허락지 않았지만 이미 전의를 잃은 조은으로서는 더 이상의 치욕을 당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금자 열 냥의 가치는 넘을 것이다.”

유성탄은 금덩이는 처음 보는지 눈이 둥그레져서 금덩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조은을 쳐다보며 물었다.

“설마 가짜는 아니겠지?”

“나는 가짜 같은 것은 안 가지고 다닌다.”

“혹시 이런 거 더 갖고 있냐?”

조은은 유성탄의 물음에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지금 유성탄의 작태는 감히 동창의 대주를 상대로 삥땅을 치는 악동 같았기 때문이었다.

“없다!”

“그래… 짜식 좀 더 가지고 다녔으면 한 대도 안 때리고 갔을 텐데…….”

조은은 유성탄의 말을 듣자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즉시 방어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미 유성탄의 몽둥이가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빡!

“으윽! 이 비겁한 놈…….”

머리가 띵해지며 골이 왕왕 울리는 상태에서도 조은은 아까와 같이 당장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유성탄은 싸움에서만은 같은 실수를 두 번 한 적이 없었다. 슬쩍 몸을 돌려 자신의 가슴으로 날아오는 조은의 장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후 주먹으로 조은의 팔을 쳤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팔이 부러지다 못해 박살이 날 위력이었지만 흑멸장을 익힌 조은의 팔은 마치 쇠와 같았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았다 뿐이지 아픔까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부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고통은 더 심할 수도 있었다.

“으아아악!”

조은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팔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서는 조은의 배를 유성탄의 발이 그대로 차자 결국 견디지 못한 조은은 기절하고 만다.

“너희들도 때려줄까?”

손을 탁탁 턴 유성탄이 아직 남아 있는 네 명의 동창의 무사를 보면서 말하자 그들의 고개가 자신들도 모르게 저어졌다.

“방주님! 동창을 건드린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인데, 괜찮을까요?”

“동쪽에 난 창을 왜 겁내냐?”

“동창이란 동쪽에 난 창이 아니고 황제의 직속 감찰기관입니다.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그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곳?’

유성탄은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깜짝 놀란다.

“동창이 그렇게 무서운 곳이었냐?”

“동창에 한번 밉보이면 중원에서는 살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보면 됩니다.”

“야! 그런 이야기를 지금 해 주면 어떡하냐?”

“저희들은 방주님께서 다 알고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에이 씨! 진짜 재수에 옴 붙은 날이네. 어떡한다?”

유성탄의 말을 들은 오살은 유성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가슴이 서늘해져 오고 있었다. 동창에게 걸리면 소림이라 할지라도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법이었다. 유성방 정도는 방패막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가서 잘못했다고 빌면 봐줄까?”

“가서 빌면 더 우습게 봐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이렇게 밀고 나가는 거예요. 방주님도 상당한 뒷배경이 있잖아요.”

고화월의 말을 들은 유성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쳐다보더니 뭔 말이냐는 듯이 고화월을 쳐다보았다.

“그런 뒷배경 말고요! 연 공자가 그랬다고 했잖아요. 방주님이 가지고 계신 금패를 보이면 성주도 설설 길 거라고요. 내가 알기로는 아무리 동창이라 해도 각 성의 성주까지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어쩌면 연 공자가 동창을 막아줄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금패를 보이면 성주도 설설 긴다는 말은 어디서 들었냐?”

유성탄이 희망이 보인다는 듯이 물었다.

“방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준 말이잖아요? 그럼 그것도 뻥이었어요?”

‘이 씨! 내가 해 준 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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