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청화루의 춘풍(春風)
“처음부터 이렇게 성의를 보였으면 내가 왜 그렇게 했겠냐! 하여간에 고맙게 먹겠소.”
송삼구에게 알 것을 다 알아낸 유성탄은 기루를 계속하고 싶으면 포쾌한테 뭔가 성의를 보여주면 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송삼구은 급히 그를 큰 방으로 모시고 가서는 예쁜 기녀 둘을 붙여주었다. 당연히 유성탄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흐흐흐! 이제부터는 기루를 집중적으로 괴롭혀야겠구나…….’
유성탄의 양손이 각각 두 기녀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있었고 기녀들은 계속 유성탄에게 술을 입에 넣어주었다. 유성탄으로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청담님을 찾는다고요?”
“예, 아주 무지막지한 놈입니다.”
“이유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이라면 들어오자마자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겠지요.”
“그 소란을 피고는 적진의 심장부일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버젓이 기녀를 데리고 술을 먹는다 이 말이죠? 흠… 무공만 높은 바보이거나, 아니면 속을 알 수 없는 대단한 머리를 가진 자라는 말인데…….”
유성탄을 방으로 집어넣은 송삼구은 청화루의 루주인 반교련에게 급히 일어난 일을 알렸다.
반교련은 나이가 이미 삼십대 후반인 여자였다. 하지만 어떻게 피부관리를 했는지는 몰라도 겉보기에는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거기다 그 미모가 천하절색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자를 좋아한다고요……?”
“예, 거기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돈도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진짜 포쾌라면 아주 악질적으로 부패한 놈입니다.”
“호호호! 그런 자가 우리로서는 다스리기가 쉬운 법이지요.”
반교련의 입에서 아름다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대체 속셈이 뭘까요?”
“저도 그걸 모르겠습니다. 그놈의 주먹이 어찌나 아픈지 무서워서 말을 붙이지도 못했습니다.”
“청담님은 어디에 계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이라도 다시 올지 모르니 송 총관이 밖을 보고 있다가 혹시 청담님이 오시면 즉시 이곳의 상황을 알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송삼구의 대답을 들은 반교련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자는 제가 직접 만나보겠어요.”
“진짜 무식한 놈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호호호! 아직 반교련은 늙지 않았어요.”
* * *
유성탄은 가슴을 주무르다가는 뭔가 부족한지 기녀들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뭐 하는 거예요?”
“여기까지 왔으면 한 번 해야지! 내가 하룻밤에 백번을 하는 사람이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여기는 그런 데가 아니에요.”
“어쭈? 좋아, 총관 불러!”
“호호호! 무슨 일인데 포쾌 나으리께서 이리 화가 나셨나요?”
유성탄이 큰소리를 치는데 문이 열리며 반교련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아니! 이렇게 예쁜 게 어디 있다가 지금 나타난 거야? 이리 와 여기 앉아라.”
유성탄은 반교련을 보자 눈이 확 커졌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야! 너희들은 나가!”
유성탄은 방금까지 질척대던 여자들에게 관심이 사라졌는지 나가라고 했다. 그러자 기녀들도 지겨웠다는 듯이 좋아서 급히 나갔다.
“해해해! 저것들이 벌써 나한테 반해가지고 무척 나가기를 싫어하네…….”
‘이 놈은 정말 여자에 대해서 모르나? 어떻게 저렇게 나가는 애들을 보고 나가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 거지?’
반교련은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어째 자신이 잘못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앉으라니까… 내가 너무 잘생겨서 얼이 빠졌나본데 내가 아침에 보면 더 잘생겼다.”
‘미친놈! 내가 지를 아침에 볼 일이 뭐가 있다고!’
반교련은 속마음과는 달리 미소를 지으며 유성탄의 옆에 앉았다.
“정말 잘생기셨네요. 이렇게 잘생기신 분이 무공까지 강하시고… 그런데 왜 여태 포쾌밖에 못하셨어요?”
반교련이 교묘하게 유성탄에게 물었다.
“나? 하하하! 난 특수포쾌라니까 내가 한번 뜨면 세상이 벌벌 떨지. 너도 내게 잘 보여라. 내가 뒤를 봐주면 세상에 무서운 게 없을 거니까! 하하하!”
유성탄이 최대한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누구를 찾으신다고 하시던데……?”
“누구우?”
“여기 와서 총관까지 때리면서 사람을 찾으셨다면서 벌써 잊으셨어요?”
“아, 그거! 별거 아니야. 내가 쫓는 놈들이 한둘이어야지. 시시한 놈 하나가 내 정보망에 걸렸는데, 여기 있다는 첩보가 들어와서 찾아왔는데 없다네. 굉장한 비밀인데 말이야!”
유성탄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이 말하고는 끝말은 굉장히 중요한 듯이 끝내자 반교련은 더욱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나! 나 비밀 좋아하는데…….”
반교련이 손으로 앞머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고혹스러웠는지 유성탄의 눈이 멍해진다.
“야! 진짜 예쁘다!”
‘이 자식, 완전히 나한테 갔어! 아직 나 반교련 안 죽었다니까…….’
“무슨 비밀인지 한번 얘기해 봐요.”
“그게 너무 엄청난 비밀인지라…….”
“아이! 우리 둘만 있는데 어때요. 저 입 무거워요.”
“음… 가슴 한번 만지면서 얘기하면 안 될까?”
‘질긴 놈! 끝까지 질척대네. 그래 엄청난 비밀이라는데 가슴만 한번 만지게 해주자.’
“그래요. 대신 비밀을 말해줘야 돼요?”
“알았다니까! 내가 얼마나 입이 무거운 사람인데… 여자들이 한 번 주지 않으면 절대로 비밀 같은 거 말 안해!”
‘뭔 말을 하는 거야? 정말 짜증나는 놈이네…….’
‘우악! 대박이다. 우후후후, 이렇게 풍만한 가슴이라니… 보기는 가냘픈 애가… 베개 삼아 베어도 되겠네.’
유성탄은 반교련의 가슴에 손을 넣어보고는 입이 더 벌어졌다.
“계속 주무르기만 할 거예요?”
“그럼 가슴에 손을 넣으면 주무르려고 넣은 거지 가만히 있으려면 뭐 하러 가슴에 손을 넣어.”
“그 말이 아니잖아요? 비밀~”
“아! 그 비밀, 그거 황제하고 나밖에 모르는 비밀인데…….”
“뭐예요! 손 빼요! 나는 한 입 갖고 두말하는 사람을 제일 경멸합니다. 나갈 거예요.”
“아이 참, 누가 말 안 한다고 했나? 이쪽 손이 너무 심심해서 그렇지!”
“그래서 어쩌라고요?”
“이 손은 거기 좀 만지면 안 될까?”
‘거기? 이 자식이 미쳤나… 거기가 어디라고!’
반교련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유성탄을 바라보다가는 일어서려고 하는 찰나, 그녀의 코에 신비한 냄새가 맡아졌다.
‘응? 이게 무슨 냄새지? 하는 짓은 엄청 진상인데… 어떻게 이런 달콤한 냄새가…….’
유성탄의 몸에서 너무나도 달콤한 냄새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에이! 남자들이 한두 번 만진 것도 아니고… 인심 한번 쓴다.’
“좋아요! 대신 잠깐만 만져야 돼요. 그리고 우악스러운 짓 하면 안 되고요.”
“걱정 마. 내가 얼마나 부드러운 사람인데. 내 별명이 솜사탕이야.”
유성탄은 부드럽게 말하고는 반교련이 혹시 마음이 변할까 두려운지 즉시 손을 밑으로 넣었다.
“자, 이제 말해봐요.”
“뭘… 말해……?”
‘이 자식 진짜 짜증나게 만드네.’
“황제하고 둘만 안다는 비밀이요!”
유성탄이 양손을 부지런히 놀리면서 또 딴소리를 하자 반교련의 목소리가 약간 찢어졌다.
“아 그거! 내가 입에다 얘기해 줄게.”
유성탄은 입에다 어떻게 얘기해 준다는 건지 자신의 입을 반교련의 입술 가까이 댔다. 그러자 반교련은 더욱 진한 달콤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선 유성탄의 얼굴은 악동의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잘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랬잖아! 여자가 한 번 주기 전에는 절대로 입을 안 여는 무지 무거운 사람이 나라고.”
[고화월! 알아봤냐?]
유성탄의 명으로 수상한 자들이 기루에서 나오는 것을 살피던 오살은 유성탄이 묘시가 넘도록 나오지 않자 고화월에게 안에 한번 들어가 보라고 했다.
살수 훈련을 받은 그들에게 몇 시진의 기다림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유성탄이 너무 안 나오자 혹시 무슨 함정에라도 빠진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 것이다.
[아! 정말 짜증난다.]
지정우의 전음을 받은 고화월이 성질난다는 듯이 말하자 지정우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왜?]
[계집 하나 안고는 열심히 밤일 중이시다.]
[그래? 아무런 이상도 없는데 그럼 나도 들어가 볼까?]
[죽을래!]
* * *
“너무 무지막지한 놈이라 루주님께 무슨 해코지라도 하지 않았나 걱정했었습니다.”
송삼구은 반교련이 점심이 다 되어서야 집무실에 나타나자 급히 물었다.
“걱정도 팔자네요. 내가 누구예요? 절강의 모든 고관대작들과 젊은 공자들의 가슴을 태우게 했던 반교련이 나예요. 저 정도도 요리 못한다면 죽어야지요.”
“그럼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송삼구의 말에 반교련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밤새도록 괴롭히는 유성탄을 상대하다 보니 막상 알아내야 할 것을 알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확실한 정체는 아직 몰라요. 하지만 다루기는 무척 쉬운 자예요. 오늘 밤에도 올 것 같으니 막지 말고 제게 보내세요. 얼마간은 구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송삼구을 보며 반교련이 아미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그런 양아치하고… 그래도… 냄새가…….”
“재미 있으셨습니까?”
유성탄이 나오자 지정우가 슬쩍 다가오더니 물었다.
“재미? 얘들이 미쳤나?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정보를 캐다 왔는데 재미라는 말을 하냐? 니들은 편하게 기루를 감시만 했지만 나는 정말 힘들게 일하다 왔다.”
“흥! 그러시겠지요. 그래, 그럼 알아 오신 게 뭔지 한번 말해보시지요?”
고화월이 유성탄의 말에 코웃음을 치더니 빈정대듯이 물었다.
“너 방주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못쓴다.”
“안 그럴 테니까 알아 오신 게 뭔지 말해보라니까요?”
“여자를 꼬드길 때는 내가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해야 된다. 명심해라.”
유성탄이 말을 마치고는 앞으로 휙 걸어나가자 오살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그게 알아 오신 정보란 말인데… 그걸 어디다 써먹지?”
반교련과의 하룻밤은 유성탄에게 절강까지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반교련은 초앵과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초앵은 사실 마지못해 유성탄을 상대한 면이 많았고 실지로 짜증남을 노골적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교련은 정말 유성탄에게 성의를 다해 상대를 해 주었다. 그만큼 화류계 생활을 많이한 그녀는 남자를 유혹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여자였다.
그런데 먼저 깨어난 유성탄이 슬그머니 옷을 입고는 뺑소니친 것이다. 당연히 한 푼도 놔두지 않고 사라졌다.
초앵 때의 경험으로 보아 돈을 달랠 것 같았고, 일어나서 비밀을 말해 달라고 하면 말할 비밀이 없다는 것이 당장 뽀록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다시 한 번 하려면 최대한 비밀이 없다는 비밀을 그녀가 일찍 알아서 좋을 것이 없었다.
* * *
“포천망쾌? 분명 감숙에서 내려온 특수포쾌라고 했단 말이냐?”
“양정의 말은 그랬습니다.”
“땅을 순식간에 파고 들어왔다고? 우리의 계획에 꼭 필요한 기술을 가진 놈이긴 한데… 그런데 그놈은 아이들을 때리기만 하고 그냥 갔다는 거냐?”
“갑자기 천장에서 떨어지더니 자신이 누구라는 말을 하고는 다짜고짜 때리더랍니다.”
양정은 자신이 유성탄에게 다 불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마 그랬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찾아온 건지도 모르고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도대체 짐작이 안 가는 놈이 있다니…….”
“어제 청화루에서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청화루는 또 왜?”
“그게… 포천망쾌란 놈이 나타나서는 대형을 찾는다며 행패를 부린 모양입니다.”
“또 포천망쾌냐? 그냥 포쾌는 아닌 모양인데…. 공팔! 네가 가서 어떤 놈인지, 그리고 목적이 뭔지 자세히 알아보고 와라. 만약 진짜 포쾌라면 죽여버리고… 아니! 아니다! 우선은 그냥 놔둬라. 아무래도 뭔가 흉계가 있는 게 분명한데…….”
청담은 근래 심기가 무척 불편했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몇 년에 걸쳐 진행해 온 중원에 마약을 뿌리는 일에 차질이 생기면서 그동안의 모든 계획을 다시 정리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금모전과의 약속대로 절강에 그들의 거점을 만들어 주는 일도 갑작스런 마룡방과 구룡회의 전면전으로 만만치 않게 되어 버렸다.
* * *
유성탄은 할 일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목적은 우연히라도 청담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이었지만 혹시라도 예쁜 여자라도 하나 꼬드기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방주,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청담 찾잖아.”
“청담이 이런 곳에 있겠습니까?”
“왜?”
“돌아다니시는 데가 전부 여자 패물집 아니면 옷집이잖아요! 청담이 왜 이런 곳에 있냐구요!”
고화월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방주한테 그렇게 소리치는 거 아니다.”
‘씨 만날 방주는 엄청 찾으면서…….’
“너는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는 말을 아냐?”
유성탄이 오랜만에 유식한 말을 했다.
“그래서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등 밑에 서 있으면 밝지 않다는 말인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뭘 그렇게 힘들게 해요?”
“어쨌건… 청담이란 놈이 그것을 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런 곳에 있을지 누가 아냐?”
“좋아요. 그렇다면 집안의 동정이나 주인들에게 수상한 점이 있나 없나를 봐야지 왜 여인네들 엉덩이만 보냐구요?”
“얘가 생사람 잡네! 대놓고 집안의 동정을 살피면 금방 눈치 챌 거 아니냐! 그러니까 여인의 엉덩이를 보는 척 하면서 사실은 집안을 살펴본 거다.”
‘말이나 못 하면…….’
“그런데 저 놈들은 뭐냐?”
유성탄이 대로의 가운데를 거침없이 걸어가는 장한들을 보며 물었다.
“저 놈들… 마룡방 놈들인데요?”
“마룡방? 저놈들이 왜 백주대낮에 저렇게 몰려 다니는 거야?”
유성탄은 마룡방이라는 말에 밸이 꼴린 듯 내뱉었다.
“요즘 마룡방과 구룡회 간에 충돌이 잦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구룡회는 또 뭐냐?”
“오대사파 중에 하납니다.”
“정말 지겹네. 어떻게 다섯 개밖에 없는 것들이 가는 데마다 나타나는 거지?”
오대사파의 세력은 천하에 안 깔린 곳이 없다 할 정도로 넓게 퍼져 있었다. 당연히 유성탄이 가는 곳마다 그들과 안 부딪칠 수는 없었다.
“어쨌건! 저 놈들 잘 걸렸어!”
“뭐 하시려구요?”
“저 놈들 봐라. 모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자신들이 전세라도 낸 듯이 완전히 차지하고 걷잖냐! 그러니 사람들은 겁이 나서 도망치느라 난리고…….”
“그래서요?”
“치안을 담당하는 포쾌로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냐?”
“너무 일이 커지면 우리 본래의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지정우가 마룡방과의 충돌은 아무래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말렸다.
“우리의 목적이 바로 천하의 안녕을 위하여 나쁜 놈들을 모두 잡는 거다. 나는 지금까지 이 한 가지 좌우명을 철칙으로 알고 살아왔다. 나쁜 놈은 감옥으로!”
유성탄이 자신이 금방 생각해낸 말을 좌우명으로 둔갑시키더니 마룡방의 무사들이 걸어오는 대로의 가운데에 딱 섰다.
“니들 잠깐 나랑 얘기 좀 해야겠다.”
몰려오던 마룡방의 무사들은 서로 눈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뭐냐?”
“나는 천하의 안녕을 위해 모든 곳의 치안을 지키는 포천망쾌라는 어른이다.”
“포천망쾌? 이름도 괴상하군. 그래서?”
“니들 지금 양민들에게 공포를 조장하고 다닌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쨔샤!”
“하하! 복장이 포쾌라서 봐주려고 했더니 입이 아주 시궁창인 놈이구나! 너 지금 누구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거냐?”
“왜? 마룡방은 무슨 치외법권이라도 된다더냐?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유성우가 언젠가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치외법권이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멋있다고 생각했던 유성탄은 반드시 사용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유식하게 말했다.
“치외법권?”
“무식한 놈들…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설명해 주랴?”
유성탄의 말이 떨어지자 마룡방의 무사들의 얼굴에 살기가 나타났다.
“안 되겠다. 시간 없으니 다리 하나만 부러뜨려서 던져버려라. 그래도 포쾌니 죽이는 것은 좀 시끄러워질 수 있다.”
그들 중 지휘자인 듯한 중년인의 말에 두 명의 무사가 유성탄을 향해 달려들었다.
빡! 빠악!
“으윽!”
두 명의 무사는 유성탄 앞에 서자마자 순식간에 날아오는 육모방망이에 머리통을 맞고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맞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른 손속이었다.
뒤로 물러서던 무사들은 손으로 자신들의 이마를 만져보더니 손에 피가 묻어나자 어리둥절한 눈으로 유성탄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무너지듯 쓰러져 버렸다. 너무 빠른 손속에 충격이 그때서야 전해진 것이다.
“아니 저놈이! 전부 다 공격해라!”
마룡방의 무사들은 그때서야 유성탄이 보통 포쾌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지 무기를 빼 들고는 덤벼들었다.
‘이거 참 이상하네. 갈수록 싸움이 왜 이렇게 시시해지는 거지?’
유성탄은 이십여 명이나 되는 마룡방의 무사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그들의 움직임이나 공격의 위력이 참 약하다고 느꼈다.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는 자신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 * *
“저거 뭐냐?”
현청의 문은 따로 문지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포졸과 포쾌들이 교대로 지킨다. 그날의 당번인 포쾌 소삼은 포졸인 육손이를 보며 물었다.
“글쎄요?”
포졸 육손도 처음 보는 광경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빨리 가! 자식들아!”
온몸이 망신창이가 된 마룡방의 무사들은 피를 철철 흘리며 쩔뚝거리는 걸음으로 현청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유성탄이 육모 방망이를 어깨에 걸치고는 그들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뭐요?”
소삼이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유성탄을 보며 물었다. 운하현의 포쾌 일을 한 지 이미 오 년이 된 그는 마룡방의 무사들의 옷차림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특수포쾌 포천망쾌인데 이 놈들이 치안을 어지럽히고 있어서 잡아왔소. 우선 감옥으로 안내하시오.”
“이 사람들은 마룡방 사람들인데요?”
“그래서 뭐가 잘못됐소?”
“무림인은 현청에 가두지 않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소?”
“그동안 계속 그래 왔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바꾸시오!”
“그게 저희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현령 나오라고 하시오.”
소삼은 유성탄의 말에 다시 한 번 유성탄의 모습을 훑어봤다. 일개 포쾌가 감히 현령을 나오라 마라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현령 나으리는 너무 높은 분이라…….”
“에이 씨! 말 많네 정말!”
유성탄의 말이 거칠어지자 소삼은 고개를 움츠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가서 아뢰는 보겠습니다.”
소삼은 말을 하고는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십여 명의 포쾌를 거느린 운하현의 현령이 뛰어나왔다. 소삼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내가 운하현의 현령인 여본청이오. 어느 기관에서 나오신 분이신지……?”
여본청은 온몸이 피투성이인 마룡방의 무사들을 보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문사 출신인 그는 무척 심약한 사람이었다.
“나는 무지 높은 기관에서 나온 특수포쾌 포천망쾌요. 이 놈들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다니기에 조금 징치하고는 옥에 가둘 생각인데 현청에서는 무림인을 가두지 않는다고 하더이다. 그런 법이 언제 생긴 거요?”
“법이… 있는 게 아니고… 관과 무림은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가 되어 있어서 그냥 관례적으로…….”
“그럼 됐소. 관례라면 새로 만들면 그게 관례지 뭐! 안 그렇소?”
유성탄이 되묻자 여본청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포장을 쳐다본다. 하지만 포장이라고 무슨 뾰쪽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무지 높은 기관이라면 어디를 말하는지요?”
결국 현청의 감옥에 마룡방의 무사들을 가둔 여본청은 유성탄에게 다시 한 번 슬그머니 정체를 물었다.
“그냥 무지 높은 곳이라고만 알고 계시오. 괜히 더 알려고 들다가는 다칩니다.”
유성탄의 말에 여본청이 황급히 황송하다는 듯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겠지요. 제가 뭐 의심스럽다거나 그래서 물은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이미 오해했소이다.”
여본청은 유성탄의 말에 깜짝 놀라며 다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제가 감히 결례를 했으니 오해를 푸시지요.”
“생각 좀 해 봅시다.”
일 각 정도 둘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현령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에그!’
유성탄은 여본청이 성의라며 주머니 하나 주면서 오해를 풀었다고 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여본청은 영 알아채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여러모로 돈도 많이 들고 요즘은 물가도 비싸져서 여간한 돈으로는 지내기도 만만치 않더군요.”
“그러시겠지요. 저도 이해합니다.”
여본청이 급히 대답을 하고는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유성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짜 눈치 없네! 이 정도 말하면 나도 눈치 챘겠다. 씨!’
“세상에 무림인을 현청에 가두시는 분이 어디 있어요?”
유성탄이 나오자 고화월이 어느새 유성탄의 옆으로 붙더니 쏘아붙였다.
“너는 왜 자꾸 방주한테 대드냐?”
“대드는 게 아니에요. 지금 자꾸 쓸데없는 시비를 만드시니까 걱정이 돼서 그래요.”
“여자의 밴댕이 속으로 어찌 바다같이 넓은 남자의 뜻을 알겠느냐? 두고 보면 안다.”
유성탄은 짐짓 뭔가 대단한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운하현이라고 했지! 저 놈 현령 일 년 안에 쫓겨난다에 금자 백 냥 건다 씨!’
결국 여본청은 한 푼도 안 내놨고, 유성탄은 여본청이 오래 현령질을 하기는 어렵다는 데에 돈을 걸었다. 이기건 지건 빼앗길 게 없으니 통 크게 많이 걸었다.
* * *
“호호호!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군요.”
주소연은 팔지신타의 보고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금모전에 들어가 그런 난장을 쳤다면 나라도 살아나오지는 못했을 겁니다.”
“우리가 사람을 잘 만난 거지요. 운이 좋았어요. 그런데 동창에서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나요?”
“이미 삼 개 대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럼 곧 유 대형을 찾아가겠군요.”
“그들의 능력이라면 곧 유성탄의 존재를 눈치 챌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유성탄이 공주님의 명을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유성탄을 죽이려 들 것입니다.”
“그러겠지요. 유 대형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암중으로 반역의 도당들의 실체를 어느 정도 밝혀나가는 중이에요. 유 대형이 지금까지처럼 잘 해나간다면 동창의 눈길을 계속 잡아 놓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유 대형이 절대로 동창에게 죽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요.”
“그런데… 문제가 좀…….”
“뭔데요?”
“유성탄이 너무 뇌물을 밝히는 모양입니다. 절강까지 가는 동안 현청마다 들러서는 공갈 협박을 일삼고는 성의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고 있다는 말이 들어왔습니다.”
“호호호! 하여간에 진짜 별종이군요. 우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금자 천 냥 이상을 썼다고 들었는데, 호호호! 두고 보지요 뭐.”
* * *
“태웅 형님! 비급입니다. 우하하하! 드디어 기연이 우리에게도 왔습니다.”
칠괴의 비동으로 들어간 낭인칠웅의 아우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연을 만났다. 칠괴들은 각자의 독문무공을 비급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거기다 신투로 불리던 도괴(盜怪)는 자신이 그동안 훔쳐놓았던 소림의 소환단 세 알과 무당의 태청신단 두 알, 그리고 천년성형하수오 두 뿌리와 만년삼왕 한 뿌리를 남겨놓았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기연이 진짜 그들 앞에 나타나자 모두는 실감이 안 나는지 처음에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하후란도 생각지 못했던 칠괴의 유물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기 서찰이 있네요.”
양피지로 만든 두루마리 서찰을 발견한 하후란이 먼저 서찰을 펴서는 읽더니 강태웅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공짜는 아니네요.”
<우리는 강호에서 칠괴라 불렸다. 우리는 나이 사십이 넘어서 서로 만났고 서로의 개성이 뚜렷했는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수십 년을 사귄 사람들같이 순식간에 의기투합을 하여 곧 형제의 의를 맺었다.
우리는 각 개인은 천하고수라 하기 어려웠지만 나름 한 분야에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이십 년 넘게 칠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수많은 일화를 남긴 우리는 조그만 장원을 하나 사서는 그곳에 칩거를 시작했다.
은거를 하기에는 좀 이른 나이였지만 무림인의 우리에 대한 질시를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림인들을 놀라게 할 제자를 키우기로 작정했다. 서로의 무공의 장점을 모아 새로운 무공을 만들고 도괴가 모아놓은 영약을 이용하여 최고의 내공을 가진 고수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 칠괴의 재산은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우리는 그 돈을 이용하여 기존의 무림제파(武林諸派)를 능가할 방파를 만든다는 계획까지 잡았다.
그러나 사람은 일을 도모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에 달렸다는 말대로 우리의 계획은 생각지도 않은 암초를 만나게 되었다. 대원이 송을 무너뜨리고 중원의 패자(覇者)가 된 것이다. 그들을 따라 중원에 들어온 새외무림의 세력들은 중원무림을 말살시키려고 들었다. 그 와중에 우리의 존재가 드러났고 결국 우리는 제 이(二)의 은거 장소로 정해 놓았던 이곳 북천산까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자도 방파를 세우는 일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뜻을 받아줄 사람을 찾기로 하고 칠우도를 세상에 내보냈다. 무려 백 장의 칠우도를 내보냈지만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구나, 우리가 낸 문제가 너무 어려웠던 것인지… 하지만 새외의 세력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어렵게 문제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뜻을 이어주려면 보통 사람들보다는 똑똑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죽는다. 나이는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법,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뜻을 이어줄 아이라면 충직하고 예의가 반듯해야 함을 느끼고는 다른 장치를 하나 더 해놓았다. 무지한 자들은 외동에 있는 보물 몇 점을 좋다고 가져갈 것이고 현명한 자는 이 서찰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남겨놓은 우리의 유품을 기반으로 우리의 염원을 꼭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공짜는 아니지만 어차피 우리의 뜻과 선배님들의 뜻이 같으니 주신 선물은 기꺼이 받겠습니다.”
강태웅이 다시 한 번 칠괴의 위패 앞에 무릎을 꿇더니 절을 하자 다른 아우들도 모두 무릎을 꿇고는 절을 했다.
* * *
그리 크지 않은 정청 안에 둥그런 탁자가 놓여 있고 다섯 명의 여인이 둘러앉아 있었다.
“도대체 자꾸 도발하는 이유가 뭘까요?”
정자운이 고운 아미를 찌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천요색화(天妖色花) 화설군이 궁주님께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녀궁의 장로인 활인파파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화설군이 내게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당연히 있지요! 고게 얼굴로도 아가씨에게 딸리고 인기도 딸리고 거기다 아가씨는 성녀로 추앙받지만 그 계집은 요녀로 낙인이 찍혔으니 열등감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요.”
백리빙이 흥분해서 말하자 세 명의 장로가 백리빙을 쳐다본다.
“빙아! 너는 그렇게 말했는데 아직도 궁주님께 아가씨라고 하느냐!”
백리빙은 열혈파파의 말에 혀를 쏙 내밀더니 배시시 웃었다.
“버릇이 돼서 그래요.”
“그래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깍듯이 궁주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여간에 화설군이 자신도 신랑을 구한다고 수많은 무림 후기지수들에게 초청장을 보낸 것은 완전히 물타기예요. 만약 우리가 초청장을 보낸 사람들중에 여기에 오지 않고 천요궁으로 가는 자들이 생긴다면 우리로서는 체면이 엄청 깎이는 일이 될 거고, 거기다 이번에 아가씨, 아니 궁주님을 납치하려고 한 것도 그냥 누가 예쁜지 견줘보기 위해서라니 완전 또라이잖아요!”
천요궁은 창기들의 모임에서 시작된 방파였다. 그녀들은 몸을 주는 대가로 무공초식을 원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림세력으로 커질 수 있었다. 이후 아름다운 여인들을 키워내면서 고수들까지 유혹하기에 이르렀고 작금에 와서는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여인만의 방파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공을 넘긴 많은 사람들이 사문으로 부터 큰 벌을 받는 일이 생기면서 점점 상대해서는 안 될 문파로 낙인이 찍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요궁이 무공을 가져간 데에 대해 직접적으로 추궁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천요궁에서 몸을 준 대가로 받은 것이지 훔친 것은 아니었고 그 무공을 그대로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자신의 문파의 제자가 여인에게 홀려 사문의 무공을 넘겼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 문파로서도 치욕적인 일이었으니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천요궁에 무공이 넘어갔다고 천명한 문파는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무림에는 또 하나의 여인만의 문파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무산신녀궁이었다. 두 세력은 모든 것이 반대였다.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의술을 바탕으로 세워진 신녀궁은 의술을 돕는 의녀들이 모여서 세운 방파였다.
실질적으로는 의원보다 더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의원 대접을 못 받고 의녀로서만 지내는 것이 한이 되었던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녀들이 모여서 그들만의 의방(醫房)을 세웠고, 보통 의원들이 꺼려하는 무림인들을 전문적으로 고치기 시작했다.
고마움을 느낀 무림문파에서는 자신들이 유출해도 되는 무공들을 자진해서 신녀궁에 넘겨주었다. 이유는 무림인을 상대로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횡액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녀들은 자신들의 의학지식을 무공에 가미하여 색다른 무공을 창안한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커오던 신녀궁과 천요궁이 부딪치기 시작한 것은 사십 년 전 우연한 무림의 모임에서였다. 여인만의 문파인 그녀들은 만나자마자 불꽃 튕기는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천요궁은 완전 패배를 하고 만다.
그녀들의 싸움은 여인들답게 무공싸움이 아닌 무림 제 문파의 관심을 누가 더 받느냐였다. 물론 서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분명 그것이었다. 그리고 관심은 똑같이 받았지만 그 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천요궁에서 느낀 것이다.
신녀궁의 제자들에게는 예의 지키고 함부로 하지 않는 남자들이 천요궁의 제자들은 무시하고 마치 지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들이라는 듯이 대한 것이다. 그리고 천요궁의 궁주는 이상하게 굉장한 모욕감을 느끼고 궁으로 돌아갔다.
이후 천요궁의 궁주는 가장 아름다운 여아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다 뒤지다시피 했는데, 그리하여 구한 사람이 현 궁주인 화설군이었다.
화설군은 정말 아름답게 자랐고 그 재지나 그 요염함이 정말 우물이라고 할 정도로 커왔다. 그리고 천요궁은 이번에야말로 신녀궁을 누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운이 없으려니 신녀궁에서도 사상 최고의 미인이 궁주로 등극한 것이다. 그녀가 바로 현 무산신녀인 정자운이었다.
천하는 무림오미 중 그녀를 가장 미인으로 쳤고, 화설군은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어찌 보지도 않고 정자운이 자신보다 예쁘다고 공인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스스로 판가름을 내기로 하고는 신녀궁의 궁주를 납치하려고까지 한 것이었다.
무림의 제패가 아닌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누구인가를 판가름 내고자 하는 여인들의 싸움이었지만 생각 외로 치열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