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금모전의 혈투
“무슨 일입니까?”
기명우 옆에 내당 당주 여충락이 나타나더니 물었다.
이미 감숙에서 포쾌 하나가 왔다는 보고와 함께 기 장로가 심심하다며 나갔다는 말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자신의 일을 보던 여충락은 한 시진이 지나도록 아직 싸우고 있다는 말에 놀라 뛰어나온 것이다.
“직접 봐라! 아주 이상한 무공을 쓰는 놈이다. 벌써 제대로 무기에 여러 번 맞고 찔렸는데도 피 한 방울 안 난다.”
“대단한 외공을 익힌 모양이군요?”
“아니, 외공이 아니야. 내 절멸장에 제대로 맞았는데도 끄떡없이 일어난 놈이다.”
“그렇다고 저 정도의 공격에 쩔쩔매는 놈이 위협이나 되겠습니까?”
“여 당주 눈에는 저게 쩔쩔매고 있는 걸로 보이나?”
기명우는 유성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유성탄은 분명 보기에는 쩔쩔매는 것같이 보였다.
하지만 실지 결과는 다르게 나오고 있었다. 유성탄의 주먹에 한 대라도 스친 수하는 대단히 큰 충격이라도 받은 양, 뒤로 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기명우가 아는 바로는 주먹에 스친 정도로는 충격을 받을 그들이 아니었다.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던 기명우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장주팔의 부채를 간신히 피하고 있던 유성탄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에 놀라 앞으로 자빠지며 그대로 몸을 굴렸다. 그러자 유성탄이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는 구멍이 크게 파였다.
‘이씨! 저거 맞았으면 엄청 아팠겠다.’
유성탄은 기명우의 반대쪽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칼 몇 대 맞더라도 기명우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기명우는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는 역시 생각지도 않게 검과 도가 떨어지는 쪽으로 피하며 자신의 공격의 사정권을 벗어나는 유성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신기할 정도로 적절하게 피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저놈이!”
검과 도를 등으로 막은 유성탄은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전혀 짐작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말 웃기는 놈이구나. 이 상황에서 도망이라… 잡아라!”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던 기명우가 급히 소리치자 역시 잠시 어리둥절하던 수하들이 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유성탄은 정문을 지키던 문지기들을 때려 기절시키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니들 나 잘못 건드렸어! 오늘은 그냥 가지만 내일 다시 올 거야. 그때는 조금으로는 통하지도 않을 거다! 잉! 에이 씨! 거머리 같은 놈들!”
고개를 돌려 금모전의 정문을 보며 뜻을 알기 어려운 말을 내뱉던 유성탄은 자신과 싸우던 무사들이 쏟아져 나오자 욕을 한마디 내뱉고는 다시 줄행랑을 쳤다.
* * *
“그런 미친놈도 있다니… 하하하! 그래서 세상은 즐거운 것 아니겠냐?”
금모전의 전주 황금신마(黃金神魔) 사구치평은 총관 장주팔의 보고를 듣더니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그리 간단히 볼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일개 포쾌치고는 대단한 무공을 지녔습니다. 감히 금모전의 마당까지 들어왔다가 방법이야 어쨌든 살아서 도망갔습니다. 그놈이 진짜로 본 전을 조사하러 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근래에 일어난 일들은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내당 당주 여충락이 말했다.
“뭐가 그리 간단치 않은지 말해보게.”
금모전의 장로 중 하나인 적유신이 물었다. 그동안 전의 일에 거의 상관치 않은 터라 근래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잘 모르는 듯 했다.
“시작은 호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별 문제없이 진행되던 마약공급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놈들이 사고를 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관부와 제갈세가에서 조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금모전의 상당한 자금원이었던 광산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들어오기로 했던 동이 안 오고 내당 부당주인 육조린까지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조사에 들어가지 않고 뭐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게… 광산에 잡혀서 인부로 일하던 자들이 풀려나면서 관과 가까운 무관에서 조사를 나왔습니다. 이미 무당에서 만류장을 의심하는지 대정현으로 무당의 천성 진인이 직접 나와 조사를 하고 있다는 첩보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지금 호북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 이번에 상당히 많은 양의 약이 들어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뭔가 틀어진 모양입니다.”
“너무 갑자기 일이 많이 어긋나는군. 전주님, 이럴 때는 잠시 활동을 접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적유신은 여충락의 말을 듣다가는 사구치평을 보며 말했다. 수십 년을 같이한 그들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상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해도 좋은 결과를 가진 적이 없었다.
사구치평은 적유신의 말을 듣자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적유신의 말이 맞습니다. 오늘 온 포쾌 놈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 놈이 반역이라는 금지어까지 사용했습니다. 그 청담이라는 놈이 진짜 반역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당장 그놈과 손을 끊어야 할 것입니다.”
기명우가 다시 사구치평을 향해 고언을 했다.
“장로님들의 조언은 알아듣겠습니다만 그게 만만치 않습니다. 청담이라는 놈이 며칠 전 이곳에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감히 마약을 판매한 것을 가지고 우리를 협박하더군요. 자신은 얼마든지 빠질 수 있지만 금모전은 몽땅 죄를 뒤집어쓸 수 있다고 말입니다.”
“뭐라고! 일개 낭인 대장인 놈이 감히 금모전을 위협했는데 그걸 그냥 보냈다는 말이냐?”
적유신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협박과 함께 아주 달콤한 꿀을 같이 갖고 왔더구나.”
사구치평이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꿀이요?”
“금모전이 절강성에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갔다. 물론 그 놈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사구치평의 말 한마디는 금모전에서는 법이었다. 그의 심중을 나타내는 한마디에 모두 함구하고 말았다.
* * *
“뭐야? 그놈이 또 나타났다고?”
회의를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장주팔은 갑자기 포쾌 놈이 다시 나타났다는 말에 놀라 일어섰다.
“당장 백은단의 단주에게 일러라! 사로잡을 수 있으면 사로잡고 안 되면 죽이라고!”
* * *
“내가 바로 삼대가 포쾌 집안인 뼈대 있는 가문의 포천망쾌다. 내가 한번 눈독들이면 누구도 못 도망간다. 조사를 받든지 아니면 뭔가 성의를 보이든지 해야 할 것이다!”
“저 자식 뭐라고 그러는 거야?”
유성탄이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고 멀리서 커다랗게 내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문지기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자식들이 성의만 좀 보이면, 청담만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그냥 갈랬더니 점점 성질나게 만드네…….’
소리치던 유성탄은 금모전의 무력집단 중 하나인 백은단이 쏟아져 나오자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몽둥이를 굳게 잡았다.
* * *
“뭐야? 또 도망갔다고? 이 자식이 정말 사람 약 올리는 놈일세!”
장주팔은 백은단이 쫓아나갔는데도 잡지 못하고 또 놓쳤다는 말에 성질을 벌컥 내며 일어섰다.
“도망갔다고 보기도 어렵소!”
백은단의 단주인 위지월이 대주인 만가호와 같이 들어서며 말했다.
“위지 단주!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장 총관! 적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무조건 나가서 잡으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소! 지금 삼십여 명이 넘는 백은단의 단원이 병신이 되거나 중상을 입었소. 도대체 이 손해를 어찌하실 것이오?”
위지월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장주팔과 위지월은 서로 명령을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총관은 전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적이 나타나면 무력집단에 알려 출동하게 할 수는 있었다.
이번에도 장주팔의 침입자가 있다는 말에 가볍게 생각하고 부하들을 내보냈다가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일개 포쾌라고 하더니, 장 총관 당신은 그 놈이 진짜 일개 포쾌라고 생각한 것이오!”
장주팔은 위지월의 말을 듣자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그게는 무슨 그게요! 어제 기 장로님까지 합세한 상황에서도 도망간 자였다고 합디다! 내 확실하게 이번 일을 보고할 것이오.”
위지월은 장주팔의 변명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말이 끝내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 * *
“이번에는 꼭 죽여라!”
벌써 삼 일째 유성탄은 금모전의 정문에 나타나 소리를 치다가는 금모전의 고수가 나타나면 맘껏 싸우다가 도망갔다.
물론 추적대를 구성하여 추격도 했고, 고을 전체가 금모전의 말이라면 벌벌 떠는 상황인지라 고을 속으로 숨은 것도 아니었는데도 유성탄을 잡지 못했다.
그것은 유성탄이 충동에서 나오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판 덕이었다. 그는 도망치는 즉시 땅을 파고는 속으로 기어들었다. 먹는 것은 사방에 벌레가 있으니 좀 양은 적지만 견딜 만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되고… 그때 등으로 검이 들어왔단 말이야… 그래, 그때는… 음음!’
유성탄은 땅속에 누워서는 싸움을 반추하며 나름 연구를 하고 있었다.
평상시의 유성탄의 성격이라면 이런 짓까지 하면서 굳이 금모전과 계속 싸울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성탄은 자신이 이번 일을 잘 처리하면 아버지 유정삼은 계속 현령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동생인 유성우의 앞길도 탄탄대로가 될 것이라는 주소연의 말을 건성으로 들은 것같이 하면서도 속에다 깊숙이 집어넣고 있었다.
유성탄은 아버지 유정삼이 현령이 되었다는 말과 유성우가 판관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강추화가 좋아서 뒤로 넘어가던 광경을 잊지 않고 있었다.
* * *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그냥 죽여도 안 된다. 반드시 사로잡아서 살을 찢고 기름에 튀겨 죽일 것이다.”
금모전의 외당 당주 포덕술이 기명우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아무리 미련한 놈이라도 삼 일 동안 같은 행동을 했는데… 우리가 당연히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걸 모를까요?”
“그놈 정말 미련해! 분명 똑같은 시간에 다시 나타날 거야.”
내당 당주 여충락이 포덕술을 보며 장담하듯이 말했다.
* * *
‘계속 비슷한 시간에 연장 나타났으니 그놈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는 분명 뭔가 준비를 할 게 뻔한데… 아니야, 사파 놈들은 머리가 없다니까 아직은 눈치 못 챘을지도 몰라. 오늘을 마지막으로 내일부터는 저녁시간을 택해서 쳐들어가야지.’
여충락의 말대로 유성탄은 미련했다.
금모전을 오르는 길의 주위는 조용했다. 하지만 사방에 무려 삼백여 명이 넘는 무사들이 금모전의 두 무력집단인 백은단과 은형단의 지휘하에 유성탄에게 안 들킬 정도로 멀찌감치 숨어 있었다.
그러나 유성탄이 언제나처럼 소리를 지르면 곧장 사방을 포위할 것이었다. 그들이 맡은 일은 유성탄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유성탄이 도망을 못 치도록 막는 일이었다.
유성탄을 잡는 역할은 금모전 역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장로와 금모전 최고의 고수들로 이루어진 황금단이라는 무력집단이 맡기로 했다.
‘조용한데? 어째 좀 으스스하네…….’
나무 뒤에 숨어 금모전의 동정을 살피던 유성탄은 어제와는 달리 너무 조용한 금모전의 정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어제는 내가 나타나면 당장 죽일 듯이 수십 명이 정문 뒤에 숨어 있더니 오늘은 왜 이리 조용한 거야? 나한테 겁먹었나?’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유성탄 자신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뿌우우!
유성탄이 정문 앞에 서자 갑자기 뿔피리소리가 금모전에서 울려 퍼져 나왔다. 유성탄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저건 또 뭔 소리야? 영 기분이 안 좋은데…….”
유성탄은 피리소리가 마음에 걸렸는지 뒤를 한 번 쳐다보았다.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걸렸구나!”
유성탄 앞에 기명우가 떨어져 내려왔다.
‘이 씨! 하필 왜 이 늙은이가 먼저 나오는 거야? 오늘은 그냥 가?’
유성탄이 찝찝한 표정으로 기명우를 보며 도망칠까 말까로 잠시 갈등을 일으키는데…
“도망칠 생각은 아예 버려라.”
또 한 명의 장로인 양이중이 손에 판관필을 들고는 유성탄의 뒤로 뛰어내리며 내공이 깃든 목소리로 커다랗게 외쳤다.
유성탄이 눈치가 무척 빠르다고 판단한 금모전에서는 기명우와 양이중만이 정문 근처에 숨어 있고 나머지는 좀 멀찍이 떨어져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유성탄의 퇴로를 막는 순간 즉시 달려 나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신호는 양이중이 내뱉은 내공이 깃든 소리였다.
‘저 늙은이도 거의 이 늙은이와 같은 실력인데… 안 되겠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유성탄은 양이중을 보자마자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채고는 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양이중의 신호를 받은 삼십여 명의 중년인들이 이미 유성탄의 주위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유성탄은 그들을 보자 움찔했다. 기명우와 양이중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려 삼십여 명이나 되는 자들이 상당히 가까이 있었는데 유성탄이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이것 봐라? 준비를 좀 한 모양인데… 안 되겠다. 달래자…….’
“하하하! 그동안 제가 실례를 많이 했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래서 오늘로서 이곳에 오는 것은 그만하고 떠나려 합니다. 해서 인사차 들른 건데요.”
유성탄의 말을 들은 기명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놈! 감히 금모전을 건드리고 제대로 살아간 놈이 없었다. 그런데 뭐! 인사차 들렀다고? 괘씸한 놈! 잡아라!”
기명우의 고함소리와 함께 삼십여 명의 황금단원들이 유성탄을 짓쳐 들어갔다.
“내가 여간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자꾸 이러면 포쾌를 죽이려고 한 죄를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유성탄은 곧 죽어도 큰소리를 한번 쳐봤다.
하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무림 오대사파란 이름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두 명의 장로, 거기에 황금단 단주 표화석은 무림백대고수에 드는 자들이었다. 거기다 금모전 최고의 무력집단인 황금단의 무력은 지금까지 유성탄이 만났던 어떤 세력보다도 강했다.
“아이구! 아야!”
싸움이 계속되면서 유성탄의 비명이 끝없이 울려 퍼졌다. 누구라도 당장 피 떡으로 변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계속 비명을 지르면서도 유성탄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이놈 정말 이상한 놈이오! 죽질 않네!”
양이중이 이미 자신의 판관필로 유성탄을 여러 번 가격했는데도 유성탄이 비명만 지를 뿐 전혀 쓰러질 기색이 없자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기가 막히기는 듣는 기명우나 표화석도 마찬가지였다.
“이 씨! 니들 다 죽었어! 감히 나 유성탄을 건드리고 마음 편히 산 사람이 없었다!”
유성탄은 이미 버린 몸이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도망칠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모든 초식을 다 사용하며 싸우고 있었다. 모두가 낭인들이 사용하는 간단한 초식이었지만 방어를 도외시한 그의 공격에 황금단의 무사들도 한 명씩 쓰러지고 있었다.
“멈춰라!”
갑자기 들리는 웅혼한 목소리에 싸움이 멈춰졌다. 대단한 공력이었다.
‘이 씨! 장의사 영감만큼 강한 늙은이네. 에이, 안 되겠다 도망쳐야지!’
유성탄은 금모전의 전주인 사구치평의 공력이 깃든 외침에 당장 그의 실력이 흑혈신마에 못지않다는 것을 당장 느끼고는 다시 도망칠 생각을 했다.
“정말 놀랍군…….”
싸움이 무려 두 시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구치평은 놀라서 직접 나왔다. 지금 유성탄이 싸우는 전력이면 무림 십대고수라 해도 해볼 만한 전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그를 어이없게 하고 있었다.
싸움이 길어지고 자꾸 쓰러지는 무사들이 많아지면서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무사들까지 합세한 상황이었는데도 이미 쓰러져서 끙끙대는 황금단의 무사들이 이십여 명이 넘어가고 있었고, 그 외에도 오십여 명이 넘는 무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성탄은 옷이 걸레쪽같이 너덜거리기는 했지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감숙에서 왔다는 포쾌냐?”
‘윽! 무슨 놈의 목소리가…….’
유성탄은 갑자기 귀를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느낌에 깜짝 놀랐지만 순간 몸에서 선천강기가 일며 귀로 파고드는 살기를 막았다. 유성탄의 몸에 위험이 닥치면 저절로 움직이는 힘이었다.
“내가 바로 포쾌 중의 포쾌! 포천망쾌요! 지금 금모전에서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아시오? 이제는 여간한 성의로는 무마하지 못할 것이오!”
그 순간에도 도망칠 기회를 엿보면서 입으로 큰소리를 치는 유성탄을 보며 사구치평의 눈에 놀라움이 나타났다.
‘내 팔 성의 공력이 깃든 살음강기(殺音剛氣)를 간단히 받는다?’
속으로 중얼거린 사구치평은 수십 년을 무림을 횡행한 능구렁이답게 유성탄의 말에서 뭔가를 느꼈다.
“허허허! 그럼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면 무마할 수 있겠나?”
유성탄은 사구치평의 대답에 얼굴에 화색이 나타났다.
“하하하! 드디어 말이 통하는 분을 만났구려. 하지만 이제는 보통 포쾌한테 하는 성의 정도로는 안 될 거요.”
‘이놈… 아주 부패한 관원인데, 이런 놈과 왜 이렇게 싸운 거야? 바보 같은 놈들……!’
사구치평은 사방을 둘러보며 어이가 없다 못해 분노가 일었다.
“처음 그대와 만난 자가 누구인가?”
“나도 모르오. 총관이라고 하던데, 내가 분명 살짝 언질을 줬는데 무조건 죽이려고 합디다.”
유성탄의 말투에 주위의 금모전의 제자들의 얼굴에 살기가 다시 감돈다. 감히 그들의 신과 같은 사구치평에게 하는 말투치고는 너무 껄렁했기 때문이었다.
“장주팔! 여기 이 친구가 처음에 너에게 뭐라고 했더냐?”
사구치평은 부하들의 반응을 알고는 손을 들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신호를 하고는 장주팔에게 물었다.
“감히 본 전의 장부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단지 그 말뿐이었느냐?”
“자기는 특별한 포쾌이기 때문에 어떤 외압이나 적은 뇌물은 통하지 않는다고…….”
장주팔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온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병신 같은 놈! 분명 적은 뇌물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면 얼마든지 돈으로 무마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말이 아니더냐?”
사구치평에게서 나오는 살기는 장주팔의 온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이미 안색이 뻘개진 장주팔은 일 각만 더 가면 그대로 터져 죽을 상황이었다.
[전주님! 뇌물을 달랜다고 덥석 준다면 금모전이 어찌 지탱이 되겠습니까?]
내당 당주인 여충락이 재빨리 전음을 날렸다. 장주팔은 금모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그런 그를 이런 식으로 죽게 둘 수는 없었다.
순간 사구치평의 살기가 사라졌다. 맞는 말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놈이 포쾌랍시고 나타나 뇌물을 주면 안 건드린다는 협박을 했는데 그냥 뇌물을 준다면 무림 오대사파 중 하나인 금모전의 위신이 안 서는 일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했더라면 이런 심각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치솟은 것이었다.
“잠깐 들어오겠나?”
사구치평의 말을 들은 유성탄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정말 독 안에 든 쥐 꼴이 될 것이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 나보고 사람들이 금모전의 전주라고 부르네.”
유성탄은 흠칫 놀랐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문파의 대가리라면 분명 그 무공이 대단할 것은 분명했고, 유성탄의 육감도 이미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 함정이 있다 그러면 난 그대로 꼴까닥 할 것 아닙니까? 전주님 생각에 제 머리가 너무 좋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정말 똑똑하군. 하지만 나는 금모전의 전주라네. 내가 한 말은 믿어도 될 것이네.”
사구치평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헤헤! 그 정도로 신용이 있으시다면 공명정대하다는 말인데, 어찌 사파의 우두머리가 되셨습니까?”
유성탄의 요상한 웃음과 함께 나온 말은 다시 장내를 살기가 감돌게 만들었다.
‘이크! 말을 잘못 한 모양이구나…….’
속으로는 찔끔했지만 유성탄의 똥고집은 그렇다고 기가 죽을 수는 없었다.
“지금 공기의 흐름을 보니 다시 한 번 붙어보자는 것 같은데 난 아직 힘이 남아도니까 한 번 더 하려면 합시다. 하지만 그럴수록 죄는 무거워지고 단가는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주님, 저놈이 신기한 외공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아주 썩을 대로 썩은 놈입니다. 아예 살살 구슬려서 우리 편으로 만든다면 쓸 데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금모전의 머리 역할을 하는 여충락의 전음에 사구치평은 눈에 안 띄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성탄을 보고는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 듯하네. 요 위로 조금 올라가면 정자가 하나 있네. 거기서 얘기를 나누기로 하세.”
유성탄에게 말을 마친 사구치평은 여충락을 보며 말했다.
“아주 좋은 음식과 술을 준비해라.”
“그리고 장 총관은 이 친구를 정자로 안내해라.”
“존명!”
“그러게 내가 뭐랬소? 내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바른 소리만 하는 게 나요. 다음부터는 나 같은 사람이 오면 무조건 친절하게 맞이하시오.”
유성탄의 앞에 서서 정자로 안내하던 장주팔은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유성탄의 목을 당장 자르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정자에는 어느새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큰 문파가 다르기는 다르군!”
유성탄은 그동안 벌레만 먹어서 그런지 음식을 보자 식욕이 동했다.
“먹으면서 기다려라.”
장주팔의 입에는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음식에는 엄청난 독들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사구치평은 마지막으로 독을 사용해보고 그것까지 통하지 않는다면 유성탄과 화해를 모색하기로 했다.
“뭐 하고 있더냐?”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벌써 거의 다 먹었다고 합니다.”
사구치평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아무도 따라오지 마라.”
“하하하! 맛있게 먹었나?”
“금모전에는 아주 좋은 요리사가 있는 모양이오?”
“내가 음식에 신경을 좀 쓰기는 하지.”
사구치평은 유성탄이 음식에 독이 있는 것 자체도 눈치를 못 챈 것 같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내공의 고수가 독에 영향을 안 받는 것은 내공의 힘으로 독의 기운을 누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러기 위해서는 몸 안에 독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수라도 독이 몸에 들어온 것을 모르고 다 퍼진 다음에 알아챈다면 내공으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독한 독이 많은데도 몸에 다 퍼질 때까지 눈치를 못 채게 하는 무형지독이 최고의 독으로 불리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제 얘기 좀 들어볼까? 마질대형 유성탄!”
유성탄은 사구치평의 말을 듣자 깜짝 놀란다.
“어떻게 아셨소?”
“아무리 무림이 괴상한 곳이라 해도 자네 같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 둘씩은 있을 수 없겠지.”
“그건 엄청난 비밀이오. 절대로 혼자만 알고 계시오.”
“하하하! 자네는 그게 비밀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어쨌든 내 입으로는 말하지 않도록 하겠네.”
“역시 대가리끼리 얘기해야 말이 잘 통하는군요. 나도 유성방의 방주 아닙니까. 하하하!”
‘대가리? 무식한 놈이라고 하더니… 어른을 보고 하는 말하고는…….’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금모전은 반역의 무리들과 내통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소이다. 그 누명을 벗고 싶으면 제게 청담이라는 놈의 근거지를 가르쳐주셔야겠습니다. 물론 내가 이번에 고생한 데에 대한 피해보상이랄까… 아니면 여비조로 어느 정도 성의는 표해 주셔야… 헤헤헤!”
“자네는 자네 할 말만 하는군. 그렇다면 자네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나?”
“금방 말했지 않습니까? 반역의 도당으로…….”
“그 정도는 얼마든지 내가 처리할 수 있네. 그것보다는 확실한 뭔가를 내게 약속해주어야 나도 이번에 입은 손해를 만회할 것 아닌가? 내가 알기로는 자네의 유성방이 호북의 광산에서도 금모전의 일을 방해해서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고 보고받았네.”
‘이놈의 늙은이 보기하고는 달리 욕심도 많네. 원하는 게 뭐가 이렇게 많아!’
“내가 머리가 좀 안 좋아서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우선 성의를 먼저 보이신 다음에 다시 얘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로 간에 흥정이라는 것이 먼저 주고 하는 법은 없다네. 솔직히 자네는 옷만 찢어졌지만 우리는 많은 아이들이 부상을 입었어. 그렇다면 이미 손해는 내가 보고 들어가는 것인데 거기다 먼저 성의를 보이라면 그거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유성탄이 스스로 머리가 안 좋다는 말까지 꺼내며 먼저 받아 챙기고 다음은 어떻게든 개겨볼 생각을 했지만 사구치평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솔직히 그렇게 큰소리칠 입장은 아니실 텐데요?”
“만약 이번 흥정이 결렬된다면 이제 자네는 나까지 같이 상대해야 할 것이네. 그러고 싶은가?”
“하하하! 맞습니다. 흥정이 그런 게 아니지요. 원하시는 게 뭔지 말해보시지요.”
“절강에 가면 마룡방과 구룡회라는 것이 있네. 세상에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하는 놈들이 그놈들이지. 자네가 포쾌라니까 그들을 좀 잡아가게.”
“하하하! 제가 절강에 가게 되면 그놈들의 비리를 찾아내지요. 하지만 절강에 갈 일이 없어서…….”
“아니 절강에 가게 될 걸세.”
‘이 늙은이가 점쟁인가? 내가 어디 갈지를 나도 모르는데 지가 어떻게 안다는 거야?’
“모르셔서 그러시는가 본데 내가 절강을 무지 싫어합니다. 절대로 안 갈 걸~요.”
유성탄의 똥고집이 나오기 시작했다.
“청담이 절강에 있네.”
‘이 씨! X 됐네!’
* * *
“왜 그냥 보내셨습니까?”
기명우가 유성탄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있는 사구치평에게 물었다.
“무려 스무 가지의 독을 먹고 입맛을 다시는 놈이다. 거기다 오늘 저놈을 죽이려다 얼마나 커다란 전력손실을 봤는지 아느냐?”
“하지만…….”
“괴물 같은 놈이다. 그러나 무지 단순한 놈이기도 하지. 저놈을 잘 이용하면 우리가 절강성에 입성하는 일이 더욱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사구치평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어렸다.
* * *
“에이 씨! 어째 돈은 두둑하게 받아서 좋기는 한데 꼭 손해 본 느낌이네. 하여간에 청담 이놈을 빨리 잡아서 집에 가야지 귀찮아 죽겠어. 성화하고 놀면 재미있는데…….”
“방주님!”
“시간은 정확히 맞춰서 왔네! 그래, 알아보란 것은 알아봤냐?”
“가보기는 했는데 이미 오래 전에 떠났는지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 그놈들이 고생해서 마련한 장원을 왜 그리 쉽게 포기했을까?”
“제 생각이 맞다면 뭔가 큰일을 획책하기 위하여 인원이 필요해서 소집을 했을 것 같습니다. 장원의 크기로 보아 상당한 수가 움직였을 것이 분명하니 주위를 수소문해 보면 뭔가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단서는 무슨 단서? 그놈들 절강으로 갔어.”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천리안이거든!”
‘하여간에 뻥은!’
‘그래 그럴 때는 이렇게 하면… 그런데 이따금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이는데 그걸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진짜 멋있을 텐데…….’
유성탄은 어디에 앉기만 하면 금모전에서의 싸움을 반추하곤 했다. 그동안 그가 싸웠던 것은 이번 금모전의 싸움과 비교하면 다 장난 같았던 것이다.
물론 흑혈신마와의 싸움이 가장 치열하긴 했지만 그때는 맞느라고 어떻게 싸웠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어 왔습니다.”
조충이 보따리를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얼마 들었냐?”
“동전 오십 문 들었습니다.”
“깎았냐?”
“안 깎아주던데요.”
“에이, 바보!”
유성탄은 포쾌 옷 두 벌을 가지고 나왔었다. 그런데 벌써 두 벌이 다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조충에게 포쾌 옷 몇 벌을 지어 오라 시킨 것이다.
* * *
유성탄이 떠난 지 겨우 보름 남짓 지났을 뿐인데 한주현은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었다.
원래부터 털털한 편이던 유정삼은 현령이 된 후에도 툭하면 고을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놀기를 좋아했고, 그 와중에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계속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관청으로 돌아오면 들은 얘기를 유성우에게 했다.
그리고는 밤새 유성우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인지를 연구했다.
한주현 사상 처음으로 양민을 위하는 현령과 판관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니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유성우는 자신의 직책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동안 그가 보고 느꼈던 여러 가지 부조리를 자신의 역량이 통하는 데까지 고쳐볼 생각이었다.
* * *
“여기가 분명해요. 저 산과 이 그림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요.”
하후란은 칠우도와 북천산의 봉우리를 비교하더니 확신하듯 말했다.
“저만 따라오세요.”
하후란은 그림을 보며 그 옆에 써져 있는 수수께끼 글들을 속으로 읽으면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갔다. 그동안 그녀가 상당히 많이 연구를 했었다는 증거였다.
“햐! 기가 막히는군요. 이게 이 시간 때가 아니면 이 골짜기를 절대로 발견하기가 힘들었겠는데요?”
마동파가 하후란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글귀는 산봉우리를 발견한 후 가는 길을 설명한 것이었다.
하후란은 만사무불통녀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게 글귀와 주위 지형을 잘 비교해 가며 그들을 인도했다. 그러더니 한 곳에 도착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니 잠시 기다리자고 했다.
그리고 한 시진쯤 기다렸을까? 해가 방향을 바꾸면서 지어진 그림자에 그냥 낭떠러지라고 생각했던 곳에 길이 나타난 것이다. 교묘하게 그림자가 지면서 보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서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면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이분들이 무림에서 그리 존경을 받던 분들은 아니었지만 실로 재주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네요. 아무런 진이나 기관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은밀한 곳을 만들어내다니 말이에요.”
하후란도 약간은 놀란 듯 강태웅을 보며 말했다.
“저도 놀라고 있습니다. 제법 글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옆에 쓰인 글귀가 의미하는 바를 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후 소저께서는 너무 쉽게 모든 것을 발견하시네요.”
하후란은 강태웅의 말에 미소로 답했다.
“태웅 형님,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요?”
안으로 먼저 들어갔던 황대산과 철패가 뛰어나오며 말했다.
제법 긴 동굴을 지나자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황대산의 말대로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누가 이미 들어왔다 나갔거나 다른 비밀통로가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 같네요.”
하후란이 광장의 벽들을 조사하며 말하자 나머지도 모두 벽들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관에는 문외한인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분들인가……?’
강태웅은 광장의 정면 벽에 여러 개의 위패가 벽에 박혀 있는 것을 보더니 그쪽으로 가까이 가서는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칠우도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냈다는 칠괴(七怪)의 이름들이 나란히 쓰여 있었다.
가만히 위패를 쳐다보던 강태웅이 갑자기 절을 올렸다.
칠괴 역시 무림에서는 주류가 아니었다. 도둑의 조종(祖宗), 사기꾼의 대가(大家), 도박의 천재 등등… 무림인들에게는 천시를 받는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힘을 갖기 위해 서로 형제의 의를 맺고 나름 무림에 이름을 알리기는 했지만 결국 칠괴라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것이다.
강태웅은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고 생각이 들자 갑자기 예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그긍!
갑자기 뭔가 움직이는 소리에 모두 놀라 태웅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태웅이 예를 올렸던 위패가 박혀 있던 벽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놀랍군요! 칠괴 선배들의 재주가 신인에 가깝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자신에게 예를 올리는 사람에게만 문이 열리게 장치를 해 놓다니…….”
하후란이 감탄의 소리를 내뱉고는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