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포쾌 유성탄
유성탄은 강추화와 유성화가 계속 잘생겼다고 치켜세워 주자 갑자기 자신의 잘생긴 모습을 만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에 빠졌다.
“엄마! 포쾌 옷이 있던데…….”
“엄마가 오빠 준다고 밤새워서 지었어요.”
“지금 입어볼까?”
“와아! 오빠가 아버지보다 더 멋있다.”
포쾌 옷을 입은 유성탄의 모습은 정말 잘 어울렸다.
“엄마, 나 좀 나갔다 올게요.”
“어딜 가려고? 저녁 먹을 때 다 됐는데…….”
“나가서 먹죠 뭐!”
“오빠, 나도 따라가면 안 될까?”
“따라와! 큰오빠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유성화는 저녁에는 거의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감숙은 거친 곳으로 저잣거리는 밤만 되면 무법천지로 바뀌었다. 그래서 밤에는 포쾌들조차도 혼자는 돌아다니지 않았다.
“좋아?”
유성탄이 북창부의 저잣거리에 나타난 것은 벌써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좋지요! 나 밤에 저잣거리에 나와본 적 한 번도 없어요. 친구들이 밤에 나가면 재미있다고 했는데, 엄마가 절대로 안 된다고 해서요.”
“엄마는 네가 걱정이 되서 그런 거지. 오늘은 이 오빠가 있으니까 마음대로 구경해라.”
처음에는 한주현의 중심가를 갔지만 가난한 한주현에 볼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유성탄은 북창부까지 내려온 것이다. 북창부는 감숙성에서는 가장 큰 네 도시 중 하나였다.
모자를 약간 삐뚤게 써서 멋을 낸 유성탄이 육모방망이를 건들건들 흔들며 유성화와 함께 북창부의 번화가에 나타날 때까지 아무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와~ 이거 예쁘다!”
유성화가 노리개를 하나 들어 몸에 대보며 좋아하자 유성탄은 이상하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줄까?”
“이거 비쌀 텐데…….”
유성화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유성탄이 큰소리친다.
“이 오빠가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거 얼마요?”
“은자 두 냥입니다.”
“은자… 몇 냥! 이런 날도둑놈이 있나. 감히 포쾌 나으리를 등쳐먹으려고 들어!”
유성탄은 가격을 듣자 소리를 빽 질렀다.
“너 포쾌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관아에 한번 잡혀가고 싶어?”
“세상에, 아니 물건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면 안 사면 되지 관아에는 왜 잡아갑니까? 요새 포쾌는 죄 없는 사람도 막 잡아가는 거요!”
가게주인도 지지 않고 덤빈다.
‘어! 개기네. 전에는 이러면 바짝 겁을 먹었는데… 씨 그냥 한 냥에 주겠다고 하면 될 걸 복잡하게 만드는데…….’
소리 한 번 쳐서 물건 값을 반으로 깎으려던 유성탄은 생각지도 않은 주인의 저항에 약간 생각에 잠겼다.
예전의 산적 같은 모습은 가게주인들에게 공포로 다가왔지만 일개 포쾌를 두려워할 상인은 감숙에 없었다.
그때였다!
“어이 진씨! 장사 잘되나보네.”
대여섯 명의 덩치들이 나타나더니 가게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유성탄에게는 기세등등하게 덤비던 가게주인의 행동이 확 달라졌다.
“아이구, 형편없어. 지금 겨우 개시를 하려고 그러는데 재수가 없으려니까 이상한 손님이 와서…….”
주인이 유성탄을 보며 말하자, 덩치가 유성탄을 힐긋 보더니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요새 포쾌들은 돈도 많아. 이렇게 비싼 노리개를 여자까지 데려와서 사고. 하하하!”
덩치들은 전혀 유성탄의 포쾌 복장을 꺼려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거 세상이 말세가 될라고 그러나 감히 포쾌한테 농담 따먹기를 하자고 드는 놈들이 있네!”
유성탄의 말을 들은 덩치들은 더 크게 웃어젖혔다.
“하하하! 아이구, 높으신 포쾌 나으리를 우리가 몰라본 것 같소이다 그려. 으악!”
빈정거리던 덩치는 갑자기 어깨에 떨어진 유성탄의 방망이에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리고 유성탄의 방망이는 다른 덩치들의 몸으로 날아갔다.
“이 자식들이 포쾌 무서운 걸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이래봬도 삼대를 포쾌를 한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거든? 그런데 니 놈들 같은 날파리들이 감히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리면 내가 어떻게 하겠냐?”
덩치들을 모두 무릎을 꿇려 놓고 손을 들게 한 유성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게 장황하게 설교를 하더니 다시 몽둥이 타작을 시작했다.
“주인장, 그 노리개 말인데…….”
“헤헤헤! 제가 조금 비싸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냥 은자 한 냥만 주십시오.”
가게주인이 보란 듯이 덩치들을 때려서는 뻗게 만든 유성탄은 그때서야 느긋하게 가게주인을 보며 다시 흥정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자 이미 겁을 먹을 대로 먹은 주인은 알아서 기어버린다.
‘흐흐흐! 은자 한 냥 굳었다.’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은 유성탄이 돈을 지불하고 노리개를 유성화의 가슴에 달아주자 유성화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큰오빠가 최고예요!”
* * *
북창부는 황견파와 뱁새파 그리고 유성탄에게 맞은 덩치들이 속한 짝귀파, 그렇게 세 개의 흑도집단이 나누어서 밤을 다스리고 있었다. 물론 모두 사망회에 개별적으로 상납을 했다.
“뭐야! 수금을 나갔던 애들이 모두 인사불성이 되어서 돌아왔다고? 황견 놈들이 쳐들어온 거냐?”
한창 싸울 때 황견에게 귀를 물려 귀가 하나 떨어져 나가면서 짝귀로 불리는 채달보가 놀라 소리쳤다.
“그게… 아니라 포쾌한테…….”
“뭐야? 지금 시간이 몇 신데 포쾌가 우리 구역을 돌아다닌다는 거냐? 거기다 포쾌가 얼마나 많이 몰려왔기에 걔들이 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맞아!”
“한 명이랍니다.”
“이런 병신들!”
* * *
그러나 일이 생긴 것은 짝귀파만이 아니었다. 유성탄은 유성화의 최고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더욱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은 다 두들겨 패고 다니고 있었다.
이미 그에게 맞아 완전 정신을 잃은 놈들이 오십 명을 넘고 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흑도의 왈짜패들만 골라서 때리고 있었다.
“재미있었니?”
집으로 돌아가며 유성탄이 유성화에게 물었다.
“너무 좋았어요”
“무섭지 않았어?”
“오빠랑 있으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유성탄은 유성화의 말에 어깨를 쫙 폈다.
“그런데 그때 너 길거리에서 왜 울고 있었니?”
유성탄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게요…….”
“이런 나쁜 놈이 있나? 남자가 되어가지고 한번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그래서 사람은 어려운 일이 닥쳐야 진짜 좋은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다는 거다.”
‘청무관 놈들 찍혔어!’
유성화에게 좌소백과 청무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유성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아직 정식 포쾌가 된 것도 아닌데 북창부 밤거리를 완전히 쑤셔놓고 갔답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은 순식간에 북창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런데 유성탄 혼자서도 저렇게 다 때려잡을 수 있는 흑도를 왜 관부에서는 그냥 놔둔 것일까요?”
“그냥 잔챙이들 좀 때려눕힌 것뿐입니다. 없애면 또 생기고 하는 게 독버섯 같은 흑도들이다 보니 그들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거기다 실지로 관리들조차도 그들의 돈을 받아먹으니까요.”
연 소주, 아니 주소연은 팔지신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싱긋 웃었다.
“곧 유성탄의 진가가 나오겠군요.”
팔지신타는 주소연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 듯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 *
다음날 유정삼의 가족은 한주현 현청으로 이사를 했다. 정식으로 현령의 위를 받은 것이다. 동시에 유성우 역시 판관의 지위를 받고는 북창부로 출근을 했다.
“엄마, 너무 좋다!”
아직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유성화로서는 갑작스런 변화에 너무 행복하기만 했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그녀 자신의 방에 하녀까지 딸렸으니 마치 자신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나도 너무 좋구나! 내 평생에 이런 호강을 할 때가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정말 내일 당장 죽어도 소원이 없을 것 같구나…….”
“성탄아, 이제부터 정식 포쾌가 되었으니 우리 집안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아무에게도 네가 내 아들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포쾌들과 친해지고 포쾌의 임무를 익히고 나면 그때 네가 내 아들이라고 말할 것이니 너도 그렇게 알거라.”
“걱정 말라니까요? 아우들이 나보고 천재라고 했어요. 이까짓 포쾌 임무 정도는 단 하루면 다 익힐 테니 염려 마세요.”
아우들과 다니며 어쩔 수 없이 무림인이 되기는 했지만 언제나 무림인이 하는 행동이 싫었던 유성탄은 오히려 포쾌가 된 것이 더 신명이 났다.
어깨에 힘을 주며 관청의 마당을 지나는데 세 명의 포쾌가 앉아 뭔가 얘기를 나누다가는 유성탄을 불렀다.
“어이, 이리 오시게.”
유성탄이 다가서자 그들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새로 온 포쾌인 듯한데 인사나 합시다. 나 장삼이오.”
“난 홍두표요.”
“전 단수홉니다.”
“난 유성탄이요.”
“이제 같은 한솥밥을 먹게 되었으니 친하게 지냅시다.”
그리고 유성탄의 뻥이 섞인 장황한 얘기가 시작되었다.
* * *
“낭인칠웅이라는 놈들이 사라졌다고?”
사망지존은 북창부에 나가 있던 밀정들의 보고를 받고는 차갑게 말했다.
“분명히 밤을 타고 북창부를 떠난 것까지는 확인이 되었습니다만…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 돕는 자들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내당 당주 호령기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은 일개 낭인들의 집단이었습니다. 방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면면을 보면 무림에 이름이 난 자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자들이 감숙 땅에서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사망지존은 호령기의 말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의 눈을 속이고 무려 이십 명이 넘는 놈들을 감숙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력이 어디냐?”
사망지존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입을 닫았다. 그럴 수 있는 세력이 감숙에서는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호령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개방이 가장 유력합니다.”
“개방은 아니다.”
사망지존은 호령기의 말을 딱 잘랐다. 개방이 정파이기는 하지만 사망회와의 전면전을 불사할 리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북창부의 약들은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
“북창부의 경계가 너무 심합니다. 무림인들은 모두 조사를 받고 있고 북창부의 전 군사와 근처의 모든 무관의 무사들이 와서 경계를 서고 있어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미 안에 있는 밀정들이 몇 명 있지만 무공이 약해서 도움이 안 되고 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사망회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혈심귀(血心鬼)가 들어왔다.
“소집을 한 게 언젠데 지금 오느냐?”
사망지존은 약간 못마땅한 어투로 말했지만 질책하지는 않았다. 혈심귀만이 받는 신임이었다.
“그동안 들어온 정보를 전부 다 분석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말해봐라!”
“약 삼 년에 걸쳐서 청담이란 자의 마약을 운반하면서 우리 사망회에서 얻은 이익은 실로 막대합니다. 그런데 사천의 경계까지 운반한 후에 그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무당과 제갈세가가 합동으로 호북과 호남을 잇는 마약의 운반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유성방이라는 떨거지 방파가 나타나더니 사방을 휘젓고 다니고 있는데 뜬금없이 감숙에는 거의 오지 않던 검찰관이 나타나서는 북창부를 장악했고 한주현에 모아놓았던 마약을 모두 압수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모든 것이 맞지를 않습니다. 유성방의 주축은 낭인칠웅이라는 낭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안남과의 전쟁에서 만난 용병들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낭인 사이에서 이름이 좀 나기는 했지만 무림의 고수 소리를 듣기에는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방파가 마룡방을 건드리고, 사망회를 건드렸습니다. 그리고 알맞게 황궁에서 검찰관이 나왔는데 이 검찰관이 다른 검찰관들과는 달리 대단한 권한을 지니고 나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망지존의 얼굴이 찌그러진다. 분명 결과를 말하라고 했는데도 게속 장황하게 늘어놓는 혈심귀의 말이 귀찮았던 것이다.
“감숙 지방에 역모의 기운이 움트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유성방이 관에서 급조한 가짜 방파일 확률이 다분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미끼입니다.”
혈심귀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른 것과는 달리 반역이라는 두 글자는 무림의 방파라 하여 빠질 수 없는 위험한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유성방과 낭인칠웅은 우선 그냥 두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잘못 건드렸다가 사망회가 반역에 연루되었다는 오해라도 받는다면 정말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을 절감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듣던 사망지존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또 다른 의견은?”
“우리와 청담과의 계약에 마약을 잃었을 경우 반은 물어준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이번 마약의 양이 엄청납니다. 반이라고 해도 그동안 우리가 번돈 보다 더 큽니다.”
내당 당주 호령기가 의견이라기보다는 사후대책을 물었다.
“언제 우리에게 계약이 통용된 적이 있었습니까? 이미 반역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더 이상의 마약운반은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어 줄 이유가 뭡니까? 청담이란 자가 따질까봐 걱정입니까? 그렇다면 죽여버리면 됩니다.”
혈심귀가 호령기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하자 더 이상의 다른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우선 유성방과 마질대형이란 놈의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우선 두고 본다. 패존에게는 잠시 참으라고 해라.”
이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사망패존은 자신이 어이없이 당한 것에 흥분을 하여 당장 유성탄을 죽이러 간다고 방방 떴었다.
* * *
“수고하셨어요.”
북창부의 기루에서 기다리던 하후란은 유성방의 인물들이 속속 들어서자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다.
“이 장우왕이 지금까지 별의별 직업을 다 전전했지만 기녀로 분해 기녀의 가마를 타기는 처음이오.”
“호호호! 그냥 기녀의 가마를 타신 거지 기녀로 분하시지는 않으셨잖아요?”
“딴 사람들은?”
“거의 다 오셨어요. 아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거예요.”
“정말 대단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소이다.”
장우왕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는 밖으로 나오던 강태웅이 감탄의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태웅이 너는 뭘로 분해서 왔냐?”
장우왕이 강태웅을 보며 반갑다는 듯이 물었다.
“글쎄? 솔직히 말하기가 좀 창피하구나. 나는 송장이 돼서 관에 실려 왔다.”
“하하하!”
* * *
‘흐흐흐! 저 존경의 눈빛 좀 봐라. 이제 곧 한주현의 포쾌들도 나만 보면 대형이라고 부르겠구나.’
얘기를 마친 유성탄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선임 포쾌인 장삼이 입을 열었다.
“자네 정말 얘기꾼이네 그려. 그래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나?”
유성탄은 장삼의 말을 듣자 눈을 깜빡이며 장삼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들었냐니?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어디로 들은 거요?”
“그럼 설마하니 영명이 높은 천하인이 존경하는 대형이 자네라는 말은 아닐 것 아닌가?”
“당연히 나지요!”
“그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포쾌를 해? 이게 얼마나 힘든데… 난 금자 열 냥만 있어도 이거 벌써 집어치웠을 거네.”
유성탄의 장황한 과거를 들은 세 명의 포쾌는 유성탄의 말을 그냥 이야기로 치부할 뿐 믿지는 않았다.
“지금 뭐 하세요, 여기서?”
갑자기 다른 포쾌 하나가 뛰어오더니 소리쳤다.
“왜?”
장삼이 즉각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물었다.
“공 부자 집에 살인사건이 났답니다.”
“살인!”
모두 놀라 벌떡 일어섰다.
‘뭐야? 무림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나가더구먼 겨우 살인사건 하나에 왜 이렇게 깜짝 놀라는 거야?’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던 유성탄으로서는 살인사건이라는 말에 놀라는 그들이 이해가 안 되었다.
“빨리 출동해서 사건에 대해 알아보라는 포장님의 명입니다.”
“알겠다.”
일어날 때는 놀란 듯이 일어난 그들이었지만 막상 움직임은 무척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흠! 그러니까 이 자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 범인을 잡는다 이 말이오?”
사건현장에 도착한 유성탄은 범인을 잡는다는 말에 흥미를 느꼈다.
무림인들은 죽이고는 그대로 시체를 놔둔 채 떠나면 그만이었다. 이후 그 시체의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바 아닌 것이다.
그런데 포쾌는 그 시체를 조사해서 범인을 잡는다지 않는가.
‘요거 재미있겠는데…….’
공 부자는 자신의 방에서 목에 단검이 박힌 채 죽어 있었다. 발견한 시각은 아침에 하녀가 물을 떠다 갖다 주면서 발견했다고 했다.
킁! 킁!
“자네 뭐 하나?”
장삼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고있는 유성탄을 보며 물었다.
“범인의 냄새를 찾는 거요.”
“자네가 갠가! 무슨 살인사건의 범인을 냄새로 잡나! 초보면 초보답게 우리 하는 거나 보고 잘 배우게.”
‘이 씨! 이게 내가 누군 줄 알고… 에이, 참자!’
유성탄은 장삼이 자기를 마치 부하 취급을 하자 열이 확 받았지만 아버지를 봐서 참기로 한다.
밖으로 나온 유성탄은 마당에 서 있는 하인들을 보다가는 갑자기 자신의 육감에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자 하인들에게로 다가갔다.
“너 이리 와봐!”
유성탄이 가운데에 건장한 젊은 하인 하나를 불렀다.
“저… 말입니까?”
“그래 자식아! 이리 와봐.”
하인은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비적거리며 유성탄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그자의 배를 강타했다.
“아이구!”
무림인도 한 방 맞으면 견디지 못하는 유성탄의 주먹에 맞은 하인은 아예 사색이 되어 마당을 뒹굴었다.
“왜 죽였어! 솔직히 얘기하면 이 정도로 끝나지만 거짓말을 치거나 하면 더 맞는다.”
“누구를 죽였다고 제게… 으아악!”
한마디 하던 하인은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유성탄의 주먹에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고 그 소리에 안에서 조사를 하던 장삼과 홍두표가 급히 뛰어나왔다.
“유 포쾌! 뭐 하는 짓인가?”
장삼이 커다랗게 소리치며 달려왔다.
“이 놈이 범인이요!”
마당을 뒹굴고 있는 하인을 가리키며 유성탄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포쾌가 되자마자 한 건 한 것이다.
“그건 어떻게 알았나?”
“내 육감이오!”
장삼은 유성탄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허거리더니 물었다.
“내가 만약 육감으로 자네가 범인이라고 하면 어쩔 건가?”
“장씨 육감은 못 믿지만, 내 육감은 확실하오.”
말을 마친 유성탄은 조금 고통이 가셨는지 꿈틀거리는 하인에게 다가서며 다시 물었다.
“왜 죽였냐?”
하인은 살짝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였다고 했다가는 자신도 죽은 목숨이었고, 아니라고 했다가는 유성탄에게 또 맞을 텐데 그것은 죽는 것보다 더 싫었다.
“으흐흑! 주인님께서 제 아내를 욕보이셨습니다.”
“뭐!”
“제가 얼마 전에 혼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를 주인님께서 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며칠 전 저를 심부름을 보내서 다녀왔더니 제 아내가 목을 맸습니다. 다행히 사전에 발견을 해서 목숨은 건졌지만 도저히 주인님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그만… 으흐흑!”
장삼은 하인이 스스로의 죄를 자백하자 얼굴이 환해졌다.
‘이게 웬 떡이냐! 저 친구가 봉사 문꼬리 잡듯이 찍은 것이 유연히 맞은 모양인데… 흐흐흐.’
유성탄이 잡은 하인이 범행을 자백하자 장삼은 자신이 받을 포상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목을 칼로 찌르면서 피가 옷에 묻었을 텐데 옷은 어디다 놔두었느냐?”
장삼이 마치 자기가 잡은 듯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제 방 천장에 숨겨 놓았습니다.”
“찾았습니다!”
장삼의 눈짓에 후다닥 하인의 방에 갔다가 온 홍두표가 피가 묻은 옷을 들고 뛰어나왔다. 증거물까지 발견된 이상 하인은 더 이상 빠질 수 없게 됐다.
“왜 이러는 거요?”
달려오던 홍두표는 갑자기 유성탄이 자신이 들고 오던 피 묻은 옷을 빼앗아 그대로 찢어버리자 놀라 소리쳤다.
“유 포쾌, 자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증거물을 없애다니?”
“내가 실수했소! 오늘 아침에 점칠 때 재수가 없게 나오는 바람에 내가 기분이 무척 안 좋았소. 그러다 보니 오늘 육감이 영 틀렸소. 이 친구는 범인이 아니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방금 자백도 받았고 증거물까지 찾았는데!”
장삼이 소리치자 유성탄이 장삼을 쳐다보더니 조용하게 말했다.
“난 말 짧게 하는 놈을 제일 싫어한다.”
“뭐? 으악!”
“업어!”
장삼을 한 방에 기절시킨 유성탄이 홍두표에게 명했다. 홍두표는 포쾌 중 가장 센 장삼을 한 방에 기절시킨 유성탄의 말에 후다닥 쓰러진 장삼을 업었다.
“여기 공 부자는 할 일 없이 놀다가 제풀에 심심해서 자살했다. 그러니 더 이상 범인은 없다. 만약 헛소리가 나오면 그 놈이 범인이라 생각하고 잡아갈 것이다. 알았냐!”
“예! 공 부자는 자살했습니다.”
“아니 어찌된 겁니까?”
단수호가 공 부자 집에 갔던 유성탄 일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맞으러 나오다가 장삼이 홍두표의 등에 업혀 있는 것을 놀라 물었다.
“내가 사건을 단숨에 해결했더니 너무 놀라 기절하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유성탄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때서야 홍두표가 장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되게 무겁네…….”
* * *
“형님.”
“왜?”
“얘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은 큰 죄입니다.”
“그래서?”
“그 하인이 범인입니까, 아닙니까? 확실히 말해주셔야 합니다.”
“아니라니까.”
“정말입니까?”
“성우야, 네가 이 형하고 같이 있었던 시간이 짧아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거짓말을 치는 거다. 믿어라!”
유성탄이 당당하게 소리치자 유성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을 믿겠습니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애 늙은이 같은 거야! 동생인데도 함부로 하기가 힘드니… 에이, 성화한테나 가서 놀까? 아참! 내가 잊은 게 있었구나.’
유성탄은 나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멧돼지 같은 놈이 우리 가게를 다 부수었단 말입니다.”
“돈을 안 갚았다면서요?”
“동전 두 문 빌린 것을 하루 만에 은자 한 냥을 달라는 놈이 어디 있어?”
나가는 유성탄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냐?”
노인과 얘기를 나누던 단수호가 바짝 기합이 들어서 말했다.
“한주현에서 옷가게를 하시는 분인데 동지육이라는 놈이 자꾸 괴롭힌다고 민원을 하는 중입니다.”
“그럼 가서 도와주면 되지 뭐 하는 거야?”
“가봐야 잡아오지도 못해요.”
“왜?”
“법에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이 노인이 돈을 빌린 것은 분명하고…….”
“됐다! 말 안 해도 알 만하다.”
‘흠! 가만히 보아하니 한주현부터 깨끗이 청소를 해야 아버지가 편하게 다스리겠구먼…….’
“노인장, 가보시오. 내가 내일까지 다 처리해 드리겠소.”
“정말이오?”
“애들 다 어디 갔냐?”
유성탄은 한적한 곳으로 가더니 나야종을 불렀다.
“북창부에 들어왔답니다.”
“그럼 가서…….”
유성탄이 뭐라고 조그맣게 얘기하자 나야종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재미있겠네요.”
쾅!
“뭐야 저거!”
사범을 따라 열심히 형(形)을 따라하던 청무관의 제자들이 문을 부술 듯이 발로 차며 들어서는 포쾌 복장을 한 유성탄을 보며 놀라 쳐다보았다.
“이번에 거대한 범죄조직이 관에 걸려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이곳! 청무관이 연루되었다는 증좌가 나타나서 조사를 하러 왔으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잘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
다짜고짜 들이닥쳐서는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유성탄을 보며 사범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외쳤다.
“이곳은 청무관이오. 정파를 표방하는 청무관에 와서 이 무슨 해괴한 망발을 하는 거요? 범죄에 연루됐다니!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함부로 행동하다가는 당장 그 잘난 포쾌 자리까지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어쭈! 방금 내가 협조해 달라고까지 했는데… 공무를 방해하시겠다 이 말이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우리가 언제 공무를 방해했다는 것이오? 똑바로 알고 오라고 한 것뿐이오.”
“그러니까… 그게 공무집행방해라니까? 공무집행방해가 뭐 특별한 거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그거 그렇게 복잡한 거 아니야. 지금같이 말대꾸나 또박또박하고 조사를 하려는데 방해를 하면 그게 바로 공무집행방해라는 거야. 알겠어?”
“말대꾸를 한다고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는 없소! 거기다 우리가 언제 조사를 방해했다는 것이오. 꼭 조사를 하고 싶으면 부주의 명령서를 가지고 와서 조사를 하시오.”
‘명령서? 그건 또 뭐야? 에이, 하여간에 똑똑한 놈들도 참 많아! 그냥 내가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하면 될 텐데…….’
“끝까지 방해를 하겠다 이건데… 그렇다면 법을 집행해야겠군!”
말을 하던 사범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딴소리만 하는 유성탄의 말에 유성탄이 진짜 포쾌이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당신 포쾌가 맞기는 맞는 거요?”
“오호! 이제는 공부집행방해도 모자라서 포쾌 사칭까지? 아주 큰 죈데 그거…….”
“포쾌 사칭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할 때 포쾌 사칭이 되는 거요! 뭘 좀 알고 말하시오!”
‘잉!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이 씨!’
“그래 니 똥 굵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유성탄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대로 사범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바로 앞에까지 도착하고서도 때리지는 못했다.
젊은 사범은 유성탄이 무려 이 장 가까운 거리를 순식간에 다가와 자신의 앞에 서자 놀라 뒤로 급히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유성탄이 자신을 공격하려고 했다면 자신이 결코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