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사망회(死亡會)
“아버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유성우는 유정삼의 부름에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서 오너라.”
유정삼은 유성우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현령에게 수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을 벌이고 계신 것 같은데 나는 네가 계속 그 일을 돕는 것이 무척 불안하구나.”
“아버님, 저번에 제가 주워 온 흙속에서 뭔가 발견하신 것이 있으시지요?”
“왜 그리 생각하느냐?”
“그 날 이후 부쩍 아버님께서 제가 그곳에 가는 것을 싫어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아버님께서 그 흙을 그냥 버리신 것이 자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유정삼은 유성우의 말을 듣자 어찌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편을 발견했었다고 말하고 범죄의 의심이 드니 그만 손을 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가 아는 유성우의 성격은 오히려 발본색원(拔本塞源) 해야 한다며 더 깊숙이 들어가려 할 것이 틀림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유성우의 재촉에 유정삼은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준다.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로 분명 아편으로 보였다.”
“아편이라면? 양귀비에서 뽑아낸다는 마약이 아닙니까?”
“그렇다. 문제는 네가 본 것이 정말이라면 그 양이 너무 엄청난 것이라 믿기가 힘들었다.”
조그만 밥그릇에 꽉 찰 정도의 양만 해도 천여 명 이상에게 투약할 정도였다. 그런데 유성우의 말대로 커다란 창고에 꽉 찰 정도로 많은 양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뿌려진다면 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아버님, 그게 진짜라면 우리 일신상의 안전만을 위해 모른 척한다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유정삼의 짐작대로 유성우는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정삼은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시시한 뒷골목의 흑도 왈패들도 마약이 낀 사건이 벌어지면 엄청 잔인해지곤 했다. 보통 때는 포쾌를 만나면 그냥 피하거나 도망치지만 주먹만 한 양의 마약이라도 끼면 포쾌들에게까지 흉기를 휘두르곤 했던 것이다.
“성우야, 마약사범은 다른 일과는 다르다. 거기다 이번 일에는 현령님에 무림인들까지 끼어 있다. 잘못하면 나 혼자가 아니라 온 식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유정삼의 말을 들은 유성우는 눈이 커졌다. 정의사회의 구현과 불의에는 맞서야 한다는 책의 가르침만 생각했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족의 생명까지 담보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주위 분들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힘없이 나가는 유성우를 보며 유정삼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너무 힘이 없는 자신이 한탄스러웠던 것이다.
“물건이 얼마나 남았나?”
갈추산이 사망회(死亡會)에서 자신을 돕기 위해 나온 독안귀(獨眼鬼) 시우진을 보며 물었다.
“지금 감숙현 경계를 넘고 있는 물건만 들어오면 우선은 얼마간 더 이상의 유입은 없을 것입니다.”
한 쪽 눈을 안대로 가린 시우진이 한 쪽밖에 없는 눈알을 굴리며 대답했다.
“좀 급히 움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 중앙에서 무슨 눈치를 챘는지 검찰관(檢察官)을 파견했다는 말이 있네.”
“이미 회(會)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상당히 높은 자가 내려온다고 하더군요.”
“정보가 대단하군. 이번에 오는 검찰관은 무공도 높고 상당히 까칠한 자라고 하네. 성주까지 조심하고 있다는 말이 있어. 그 안에 빨리 물건을 옮기고 유정삼과 유성우에게 덮어씌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시우진의 얼굴에는 걱정이 전혀 없었다. 그가 받은 회의 서찰에 따르면 검찰관을 제거할 거라고 써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것까지 갈추산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들은 갈추산까지도 제거할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 * *
“대형, 하지만 이번 일은 대산 형님의 복수를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돈 때문에 방향을 완전히 틀고 만류장을 돕는다는 것이 조금은 찝찝한데요.”
표도행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자 유성탄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얘가 가난을 겪어보지를 않았구먼? 야 하여간에 너희들은 내가 없으면 분명 굶어 죽었을 거다. 나의 이 천재적인 머리에서 생각해 낸 계획을 들어봐라. 어차피 청담이란 놈은 잡아야 한단 말이다. 그러니까 순서만 바꾸는 거야! 먼저 청담을 잡고 금자 삼천 냥부터 번다. 그리고 나서 청담에게서 빼앗은 서류를 가지고 만류장을 협박해서 다시 금자 삼천 냥을 번다. 자, 그럼 벌써 금자 오천 냥이지!”
“대형, 육천 냥인데요.”
철패가 끼어들었다.
“너 잘났다! 하여간 그리고 나서 만류장에게 우리가 일한 돈을 청구하는 거야. 그러면 순식간에…….”
갑자기 말을 멈춘 유성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리쳤다.
“너희들! 이 대형께서 끝까지 다 말해야겠냐? 이 정도 말하면 그 다음은 너희들이 말하는 정성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
‘이크! 대형께서 천 다음이 뭔지를 모르시구나!’
눈치 빠른 마동파가 급히 말을 받는다.
“맞습니다. 당장에 만 냥이 되는 겁니다.”
그때서야 모두 눈치를 챘다.
‘만이었구나! 설마 내가 몰라서 그런 걸 눈치는 못 챘겠지.’
유성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아우들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눈치 챈 것을 대형께서 눈치 채지 못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물건이 오는 곳이 사천이란 말입니까?”
낭인칠웅이 일을 맡아주기로 하자 사도진용은 생각보다 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가 그동안 청담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유성탄은 사도진용을 보고는 사실 많이 놀랐다. 겉보기가 참 선량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청담의 부탁으로 물건을 인수받았던 곳이 사천의 한 주루였습니다. 물론 그동안 계속 장소가 바뀌어왔지만 근래에는 계속 그곳에서 물건을 실었다고 하더군요.”
잠시 뜸을 들이던 사도진용은 마음먹은 김에 다 털어버리기로 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약 일 년 전부터 청담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호북에만도 적어도 세 군데에 거점을 마련했고, 사천과 안휘 그리고 호남과 절강까지 하면 못해도 이십 군데는 될 것입니다. 본 장에서 확인한 정보에 의하면 그가 만든 세력은 이미 무림 오대사파를 능가할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가 아는 걸로는 금모전뿐이지만 이미 오대사파 중 두 곳 이상과 연합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도진용의 말에 낭인칠웅은 경악을 하고 만다. 오대사파 정도의 세력만으로도 놀랄 정도인데 오대사파를 넘는 세력에 최소한 두 개의 오대사파와 연합을 하고 있다고 했다. 거기다 그들이 아는 청담은 말 한마디로 최소한 천 명이 넘는 낭인을 소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청담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니들 또 왜 쫄아서 그러냐? 내가 누구냐! 마질대형 유성탄이다. 걱정 붙들어 매놔라. 나만 믿어!”
“맞습니다. 어차피 우리야 대형만 믿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목숨도 이미 대형께 맡겨놨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황대산이 맞다는 듯이 소리치자 유성탄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씨! 또 이상하게 해석한다. 내가 언제 지들 목숨을 맡아놨다고? 저러다 죽으면 다 내 잘못이라고 할 거 아니냐? 또 코 낀 것 같네…….’
유성탄이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때 강태웅이 물었다.
“그렇다면 만류장에게 청담이 바라는 것이 뭡니까?”
“청담이 만들고 있는 세력이 모두 만류장의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남들의 눈에는 전부 상단에서 필요에 의해 구입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남에게 자신의 세력을 숨기는 데는 최고라고 할 수 있지요.”
“그거 관에서 알면 잘못하면 역도로 몰릴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관뿐이 아니지요. 무림의 구파일방에서 알게 되면 아마 만류장은 기와장만 남게 될 것입니다.”
사도진용이 괴로운 표정으로 말하자 유성탄이 또 끼어든다.
“그러게 왜 나쁜 친구를 사귀어가지고… 쯧쯧!”
“지금까지 옮긴 물건은 어느 정도 됩니까?”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부다 약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청담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십니까?”
“호남에 있는 금모전에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 사천으로 출발했을 것입니다.”
“태웅이 너는 청담이란 놈 얼굴 알지?”
“우리 전부다 알고 있습니다.”
“잘됐군. 지금 당장 사천으로 간다. 이렇게 여기서 얘기해 봐야 그놈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가서 찾는다. 그리고 사도 장주, 나는 언제나 일을 시작하면 선금을 받는 사람인데…….”
“우선 금자 오백 냥을 지불하겠습니다.”
“하하하! 원래는 다 받아야 하는데 내가 원체 사람이 좋으니 우선 그것부터 받아주겠소. 하하하!”
금자 열 냥이라도 받으면 되겠다 싶어 그냥 한 말인데 오백 냥이나 준다는 말에 유성탄의 입이 찢어지고 있었다.
* * *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십사는……?”
유성탄 일행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혈문오살이 찾아왔다.
“십사는 성공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아마 혈문에서 알게 되면 이제 혈점사를 보내겠지요.”
“혈점사라면?”
“혈문 최고 살수예요. 말은 들어봤을 거예요. 아마 그가 온다면 우리 전부 다로서도 막지 못해요.”
“고화월!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 놈이 온다 해도 나 혼자서 해치울 수 있다.”
지정우가 고화월의 말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니들 지금 같이 자란 십사란 애들을 다 죽였다는 말이냐?”
유성탄이 오살의 말하는 것을 듣다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럼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말이냐? 우리도 설득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거절했다.”
“그래도 죽이는 방법밖에 없었냐? 난 정말 무림인이라는 사람들의 머리구조를 이해를 못하겠다. 어찌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밖에 모르는 거냐? 나 봐라. 돈도 벌고 아무도 죽이지도 않고. 에이, 내가 니들 같은 냉혈한(冷血漢)들과 무슨 얘기를 하겠냐? 전부 나가라! 난 잠이나 잘란다.”
유성탄은 보기 싫다는 듯이 손짓을 하고는 그대로 눕더니 돌아누웠다. 그러자 강태웅의 눈짓이 신호가 된 듯 모두 나갔다. 혈문오살도 유성탄과 나가는 아우들을 번갈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라 나갔다.
‘에잉! 도대체 저놈들은 저렇게 사람을 벌레 죽이듯 죽이다가 그 죄를 어떻게 받으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에이 못마땅해서…….’
“이제 다섯 분을 우리 유성방의 호법으로 봉하겠습니다. 더 이상은 살수가 아닙니다. 양지로 나와서 방주님을 지근거리에서 보호하십시오. 물론 보호하실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 잠시 같이 지낸 것은 인정하지만 이제부터 똑바로 방주님으로서 대우를 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다른 방으로 옮긴 강태웅은 혈문오살을 정식으로 유성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실지로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호법이라면 어느 정도의 지위와 권한을 가질 것인지 알고 싶네요.”
“방주님을 빼고는 누구의 명도 받으실 필요 없습니다. 단, 부방주인 제 말은 명령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따라주셔야 할 것입니다. 물론 낭인칠웅의 아우들 역시 여러분의 부하는 아니니 서로간에 존중을 해주셔야겠지요.”
이미 오살도 강태웅이 유성방의 실질적인 실세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방주의 아우들까지 수하로 부릴 생각은 없었으니 그의 제안은 별로 불만스러운 것은 없었다.
“이제부터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역시 고화월이 가장 빨리 적응했다.
강태웅은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는 사람이었다. 잘못하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지만 그 덕에 그를 한번 알게 된 사람은 누구나 강태웅을 진실로 믿게 하는 원천이기도 했다.
“아주 재미있겠군요. 전화생 넌 좋겠다.”
강태웅으로부터 모든 일의 전말을 들은 고화월이 전화생을 보며 말하자 아우들이 모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고화월이 웃으며 부언했다.
“뭐든 찾아내는 게 이 친구 특징이거든요.”
“그래요? 하하하! 여기 우리의 막내인 표도행도 뭘 찾아내거나 알아내는 게 특기인데 친하게 지내셔야겠습니다.”
장우왕이 크게 웃으며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냐?”
대정현에서 사천의 경계까지는 삼 일 거리였다. 그리고 경계에서 사도진용이 말한 주루가 있는 사천의 탄계현까지는 오 일이 걸렸다.
감숙성의 경계에 가까이 위치한 탄계현에 도착한 유성탄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 우선 청담이 있는지부터 알아보고 주루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물건이 이미 들어와 있는지 그리고 물건이 오는 장소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배제를 못하니 만류장의 지부로도 한 명이 갔다.
“여기 음식은 전부 좀 매운 것 같아?”
주루 안으로 들어선 유성탄은 우선 음식과 술 한 병을 시켰다. 그의 앞에는 호법을 맡은 오살 중 지정우와 고화월이 앉았다.
“사천의 음식은 맵기로 유명합니다.”
지정우는 뜻밖에도 공손하게 유성탄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방주의 대우를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도 냄새가 나!”
고화월이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하게 말했다. 주루는 상당히 컸고 낮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당연히 점소이 역시 열 명이 넘는 듯했는데 그중의 반이 넘는 수가 무공을 아는 것 같았다. 점소이가 무공을 안다는 자체가 이미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음식에서 냄새가 난다고? 그럼 상한 거야?”
“음식 얘기가 아닙니다.”
“무엇이건 주루에서 냄새가 난다면 아주 좋은 시빗거리다.”
유성탄은 음식 값을 굳힐 생각을 한다.
“야! 점소이! 이리 와봐!”
“뭐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갑자기 유성탄이 점소이를 부르자 고화월이 놀라 물었다.
“냄새가 난대며? 그렇다면 음식 값을 못 낸다고 해야지?”
“음식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이 아니라니까요?”
“상관없어.”
“부르셨습니까?”
“내 친구가 코가 엄청 좋거든. 이렇게 보면 코가 아주 예쁘지? 그런데 별명이 개코야! 얘 말이 냄새가 난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점소이는 유성탄의 말을 듣자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이곳은 다른 곳과 달라서 이유 없이 시비를 벌이시려고 한다면 큰 후회를 하시게 됩니다.”
보통 주루의 점소이들과는 그 반응이 달랐다. 만약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음식 값을 떼어먹으려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의미가 역력했다. 그리고 점소이는 유성탄의 한 방에 구석으로 날아가 뻗어버린다.
“짜식이 손님이 냄새가 난다고 하면 무조건 사과하고 음식 값은 안 받겠습니다 하면 되지 뭔 말이 많은 거야?”
“감히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점소이 한 명이 쓰러지자 곧 다른 점소이들이 무기를 들고는 유성탄 일행을 에워쌌다.
“여기가 주루야, 산적소굴이야? 음식에서 냄새가 난다고 그냥 조용히 물어본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 죄없는 손님을 때려 죽일려고 드는 주루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 * *
“어찌 됐나?”
“약간의 변수가 생겼지만 현재까지는 별 문제 없이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절대자의 기도를 보이고 있는 중년인은 그의 앞에 부복을 하고 있는 복면인의 말을 들으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복면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사망회에서 물건의 운반을 맡고 있습니다. 이미 감숙의 한주현에 물건이 거의 다 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달 보름이면 모든 물건이 사천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거기서 오분지 일이 사천에 퍼지고 나머지는 호남으로 옮기면 금모전에서 판매를 담당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너무 많은 양이 금모전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냐?”
“어차피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돈이 필요합니다. 광산에서 나오는 돈과 만류장에서 나오는 돈이 상당부분 금모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번 약의 양이 많다고는 하지만 우리를 배신하는 것이 길게 봐서 손해라는 것 정도는 그들도 알 것입니다.”
“무당의 눈치가 좀 이상하다고 보고가 들어왔다. 그것에 대한 방비책은?”
“호남에서 약이 퍼지자 제갈세가에서 조사를 들어갔고, 약의 출처가 호북이라고 판명나자 무당에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무당에서 급히 청오라는 말코도사가 제갈세가로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다. 무당에서 또 다른 도사들이 대정현에 들어갔다. 그런데 개방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당에서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지밀단(智密團)의 분석이다.”
“무당이 조사에 들어갔다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물건은 보름 안에 들어올 것이고 한 달 후면 천하에 퍼지고 있을 것입니다. 상당수의 지역에 약이 퍼져 있습니다. 이미 그들이 뭔가 대책을 세우기에는 늦었습니다.”
“변수란 무엇이냐?”
“낭인 중에 좀 특별한 자가 나타났습니다. 생각보다 고수인지 마룡방의 이개 무력집단을 부수고 청호산과 팔달채의 산적들까지 모조리 때려잡았습니다.”
“그런 일이야 무림에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일이지 않느냐?”
“그런데 그놈들이 우리가 운영하는 동 광산을 쳐들어와서 일 년 가까이 모아놓은 동을 훔쳐갔습니다. 거기다 무슨 생각인지 만류장이 있는 대정현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만류장에서 돈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는 만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유는?”
“그게 아직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놈들의 일행들이 모두 제가 아는 낭인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일과 관계가 있는 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대업을 위해서는 이번 일은 무척 중요하다. 이번 일이 실패하면 우리는 어려운 길을 돌아서 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라.”
“이미 제 목숨은 천주님께 바쳤습니다. 목숨을 걸고 대업을 이루겠습니다.”
“고맙다. 너무 오랫동안 너만 고생을 시키는 것 같구나. 하지만 대업이 이루어지는 날 그 보답을 천 배 이상 할 것이다.”
“보답 같은 것은 제게는 상관없습니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겠다.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일 년 안에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다음을 기약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천주란 자가 돌아가자 부복하고 있던 자가 일어서더니 얼굴에 쓴 복면을 벗고는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복면 안에서 나타난 얼굴은 뜻밖에도 청담이었다.
“사천에 지금 누가 나가 있느냐?”
“단주인 윤장도의 지휘하에 광밀단 단원 백여 명이 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일이 생기면 칼받이를 시킬 낭인들 백여 명이 따로 나가 있습니다.”
“사망회에서는 연락이 있었느냐?
“물건 일부를 이미 사천으로 보냈답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도 이번 보름까지는 확실하게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사천의 움직임은?”
“아직까지 사천에는 물건을 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천의 문파들은 조용한 편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청담은 갑자기 유성탄 일행이 걸렸다.
“낭인칠웅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느냐?”
“지금 호북과 사천 서쪽지방으로 마질대형이란 이름이 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협객 중의 협객이 나타났다고 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악질이니 절대로 상대하면 안 될 자라는 상반된 소문도 같이 퍼지고 있어서 정파인지 사파인지 아직 정확하게 성향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따위 말은 필요 없다. 그놈들이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라.”
“죄송합니다. 그들은 지금 만류장에서 무엇인가 일을 시켜서 그 일을 수행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알고 있다니? 그렇다면 그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냐?”
“그게…….”
“이런 병신 같은 놈들! 내가 분명 그놈들의 행적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라고 말했거늘…….”
청담이 크게 화난 듯 소리쳤다.
“사천으로 간다. 준비해라.”
“존명!”
수하는 청담이 많이 화난 것 같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 * *
“장사란 게 한번 웃어주면 두 번을 오고, 한번 음식 값을 안 받으면 열 번은 더 오는 법인데 너희 같은 점소이들이 손님에게 그렇게 무섭게 하면 누가 여기에 다시 오겠냐? 그러면 여기 주루 주인은 왜 장사가 안 되는지도 모르면서 망할 텐데 너희들은 주인이 불쌍하지도 않냐? 주인은 어디 있어?”
십여 명의 점소이들을 무릎 꿇려놓고 말도 안 되는 장사철학을 늘어놓던 유성탄은 갑자기 주인을 찾았다.
“저…를 찾으셨다…고?”
약간 살이 조금 찐 주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리 오시오. 이런 점소이를 데리고 장사를 하려니 얼마나 머리가 아팠겠습니까?”
“뭐 별로…….”
“허허허! 저놈들이 얼마나 주인장에게 무섭게 했으면 말도 제대로 못하시는구려.”
유성탄은 무릎 꿇고 있는 점소이들을 발로 한 번씩 더 세게 찼다. 그러자 비명소리가 주루 안에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유성탄이 상당히 세게 쳤는지 그 비명소리가 너무 구슬프게 이어졌다.
“주인장, 이들이 주인장을 너무 괴롭혔지요?”
“예……! 아 예.”
“그럼 이놈들을 잘라버리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까?”
“이따금 있기는 했지만…….”
“누가 이놈들을 여기에 취직시켜 준 겁니까?”
“누가 시켜준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유성탄의 주먹이 점소이들을 갈겼다. 그리고 다시 곡소리가 울려나왔다.
“요즘 이상한 자들이 자주 나타났지요?”
“글쎄요? 이상한 자는 모르지만 이상한 분들이 오늘 왔습니다.”
유성탄은 주인장의 말을 듣자 자신의 계획대로 되었다고 느꼈다. 아우들보다 먼저 한 건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걱정 말고 말하세요. 제가 책임질 겁니다.”
“요즘 오신 손님 중 가장 이상하신 분은 무사님이신데요?”
‘이씨! 나였어…….’
“아니 지금 은밀하게 행동해도 저들의 꼬리를 잡을까 말까 한데 그렇게 대놓고 행패를 부리면 그들이 금방 눈치 채고 다른 곳으로 물건을 옮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원하던 대로 밥값은 공짜로 때운 유성탄은 그럭저럭 만족한 표정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고화월이 성질을 냈다. 너무 대책 없이 나댄 유성탄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그러지 말라고. 나도 계획이 있었거든.”
“무슨 계획인데요?”
“만류장 주인 말대로라면 이 주루에서 뭔 일이 벌어질 거라는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오늘 저지른 일 때문에 분명 어떤 움직임이 있을 거야. 그걸 숨어서 보고 있다가 덜미를 잡는 거지.”
유성탄은 고화월이 타박을 하자 당장 모면하기 위해 되는 대로 지껄였다.
“그것 참! 들어보니 좋은 방법이네요. 지정우 니 생각은 어때?”
“나도 들어보니 좋은 방법 같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주루를 감시할 테니까 우선 너는 방주님과 함께 어디에 들어가 있어라. 무슨 변동사항이 있으면 즉시 연락하겠다.”
누구에게 들키지 않고 하는 감시는 오살의 특기라고 할 수 있었다.
‘뭐! 되는 대로 지껄였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었어? 흠…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생각하지 말고 되는 대로 지껄여야 되겠구나.’
* * *
“물건이 삼 일 후면 다 도착합니다. 저 유성우라는 아이 너무 많이 아는데 죽여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안 되네. 그래도 그 아비가 포장이야. 능력은 없지만 뒤를 캐는 데는 실력이 있어. 우선 유성우의 아비인 유정삼부터 엮어서 관직부터 뺏고 옥에 가둔 후에 유성우를 처리하는 것이 순서일 게야. 잠시 기다리게. 무림하고는 달라서 관부는 조금 복잡하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떠나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 * *
“아버지! 저 정말 그 아이가 좋아요.”
“계속 고집 부릴 거냐?”
“아버지, 꼭 혼인을 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우선 좀 사귀어보고…….”
“닥쳐라! 지금 네게 엄청난 집안에서 혼사 얘기가 나왔다. 꼭 그 아이를 곁에 두고 싶다면 이번 혼사가 끝난 후에 첩으로 들이든지 해라. 내 말을 거역하고 다시 또 그 아이를 만나거나 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좌무성은 좌소백의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보며 성화용을 불렀다.
“화용이 너는 절대로 소백이가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사부님.”
* * *
“이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돌아다니며 만난 낭인이 벌써 오십이 넘습니다. 우리와 안면이 있는 자들도 여럿 보았습니다.”
황대산이 먼저 자신이 알아낸 것을 보고했다.
“만류장에는 아직 다른 명은 없었답니다.”
“수상하게 보이는 장사꾼들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청담으로 보이는 사람은 찾지 못했습니다.”
“철검보에서 같이 있던 사팔이도 여기에 있더군요.”
모두 한마디씩 하자 철패도 자기도 하나 알아낸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사팔이? 아, 눈알이 둘 다 가운데로 몰려 있는 놈! 그게 여기에 와 왔어? 가만있자… 철패 너 그놈 좀 잡아올 수 있냐?”
“어디 있는지 알아놨으니 잡아올 수는 있지만 같이 있는 놈들이 여럿이 있습니다. 만약 그놈이 반항하면 시끄러워질 수도 있는데요.”
“마동파, 너도 같이 갔다 와라. 너라면 시끄럽지 않게 데려올 수 있겠지?”
“걱정 마십시오. 제가 누굽니까. 마동파 아닙니까? 제가 가서 조용히 데려오겠습니다. 철패, 가자!”
마동파는 그렇지 않아도 특별하게 알아온 것이 없어서 뭘 말하나 고민 중에 유성탄이 자신을 신뢰하듯이 말하자 신이 나서 크게 소리치고는 일어났다.
‘저게 갈수록 나를 닮아가나? 뭔 뻥은… 마동파가 어쨌다는 거야. 씨!’
나가는 마동파를 쳐다보며 유성탄은 괜한 찝찝함을 느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아직 물건이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강태웅이 종합한 정보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말야… 굳이 그들이 주루로 귀찮게 물건을 옮길 필요가 뭘까? 만류장주 말대로 결국 물건이 호남으로 갈 거라면 이곳을 거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꼭 이곳을 거칠 이유가 있다 해도 주위에 빈집 하나 사서 거기로 옮겨놓으면 사람 눈도 걱정 안 하고 더 쉬울 것 같은데…….”
“호호호! 정말 놀랍군요. 유성탄 대형께서 이렇게까지 똑똑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네요.”
갑작스런 하후란의 등장에 모두 깜짝 놀란다. 아무도 눈치를 못 챈 것이다.
“넌 왔으면 빨리 들어오지 그렇게 쥐새끼처럼 엿듣고 있냐?”
유성탄만은 이미 하후란이 온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엿들은 게 아니에요. 저절로 들린 거지!”
삐딱하게 말하는 유성탄에게 역시 뾰쪽하게 대답하는 하후란이었다.
“현 황제는 지금 나라 전반을 완벽하게 잡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물건이든 어디에서 어디를 거쳐 왔는지를 관에 알리지 않는다면 물건을 안까지 조사하게 하고 있어요. 그것은 상단의 물건 역시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만류장의 물건이라는 증명서를 가지고 있다 해도 예외는 없지요.”
“그까짓 거야 거짓으로 말하면 되지 않나?”
유성탄이 그다운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돼요. 하지만 거짓이라는 것이 판명되면 곧 추격에 들어가겠지요. 만류장을 한 번 쓰고 버릴 거라면 몰라도 계속 쓰려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 물건을 주루로 옮기고 관으로부터 성을 넘어간다는 통행증을 받아야 하는 거지요. 만류장이 으슥한 집에 물건을 놔둔다면 관에서 먼저 의심할 거예요.”
“그럼 이곳에 있는 만류장 상단지부에 두면 되잖아?”
“그들은 물건이 무엇인지 만류장에서 아는 것조차 원치 않아요. 그래서 만류장 지부가 없는 이곳을 택한 거고요.”
“여기 지부가 있다고 한던데……?”
유성탄이 만류장 지부에 다녀온 황대산을 보며 말했다.
“거기는 지부가 아니라 그냥 연락만 하는 연락소예요. 창고 같은 곳이 없어요.”
“되게 복잡하네! 그런데 너는 어디에 있다가 툭하면 나타나는 거냐?”
“알 필요 없어요!”
“이 씨!”
* * *
“그놈이 누군지 알아봤느냐?”
“알 수가 없습니다. 그자의 모습에 대해서 수소문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일이 순전히 밥값을 떼어먹기 위해 벌인 일이란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무공이 아깝다. 치사한 놈!”
“그래도 우선은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는데요.”
“그러는 것이 좋겠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가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고 언제쯤 물건이 다 도착할지 정확한 시간을 알아봐라. 그때에 맞춰 관(官)에서 나오도록 하겠다고.”
“알겠습니다.”
[나온다.]
지정우 혼자 주루를 감시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오살은 그들의 일이 끝나자 모두 주루로 와서 사방에 포진한 채 쥐새끼 한 마리가 움직이는 것까지 눈여겨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전화생이 고화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틀림없냐?]
[믿어라!]
주루에서는 단 몇 시진이었지만 수십여 명의 사람이 드나들었다. 그런데도 전화생은 딱 한 명을 택해 나온다고 한 것이다. 고화월도 전화생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라고 확신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화생은 그자가 나오면서 주위부터 훑어보고 몇 발자국을 옮기는 순간에 눈알을 열 번 이상 굴리는 것을 보고는 극히 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