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의문의 인물 청담
“왜 자꾸 귓속을 후비세요?”
유성탄이 자꾸 귓속을 손가락으로 후비자 철패가 물었다.
“누가 자꾸 내 얘기를 하는지 요새 귀가 자주 가렵다.”
“세수하실 때 귓속을 잘 안 닦는 거 아닙니까?”
“뭐야! 내가 너같이 지저분한 줄 알아!”
“아니면 됐습니다.”
‘이게 갈수록 마동파를 닮아가나. 왜 이렇게 은근히 개기지 씨! 한 대 때려줘?’
“참 대형! 아침에 황도검 허상돈 대협이 대형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는데 안 보실 겁니까?”
“허상돈? 허상돈이 누구냐?”
“저번에 시장통에서 싸웠던 분 있지 않습니까? 대형한테 다리뼈가 부서졌지 않습니까.”
“그 친구가 허상돈이야? 그런데 왜 나를 만나자고 할까?”
“어서 오시오. 모두 유성탄 대형이라고 한다지요? 하하하! 내 다리가 이러다 보니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려.”
허상돈은 자신의 방에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다가는 유성탄의 방문을 받자 싸움을 한 사람이라고 보기가 힘들 정도로 유쾌하게 웃으며 유성탄을 맞는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요?”
유성탄은 그저 할 일이 없어 왔을 뿐 허상돈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나 허상돈이 무림을 횡행한 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기는 처음이었소.”
“억울해서 찾은 거면 나은 다음에 다시 덤비시오. 도전은 언제든지 받아주겠소.”
“하하하!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나 허상돈은 자신을 압니다. 오 초 만에 패한 주제에 억울하다는 생각은 없고 다시 도전할 생각은 더욱 없소이다.”
“그럼 왜 찾은 거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청했습니다. 다리만 성했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물어야 했지만 다리뼈가 완전히 부서져버려서 걷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하더군요.”
유성탄은 허상돈이 묻는다는 말에 찝찝해지는 것을 느꼈다.
‘에이 씨 괜히 왔어. 이게 싸움에 졌다고 다른 걸로 나를 이기려고 하는 모양인데… 어려운 거 물으면 안 되는데…….’
유성탄은 허상돈이 글자나 고사성어 따위를 물으면 자신의 무식이 뽀록날 것이 약간 불안했다.
“우리가 싸울 당시 유성탄 대형께서는 나를 죽일 수도 있었소. 그런데 계속 살수를 쓴 나를 굳이 살려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이렇게 청했소이다.”
유성탄은 허상돈의 말에 안심이 된 듯이 커다랗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인데 어찌 싸웠다고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겠소. 나는 정말 인명을 중시하는 사람이오.”
‘솔직히 귀찮아서 안 죽였다고 말할 걸 괜히 말 잘못했나?’
유성탄은 허상돈이 자신의 말을 듣고는 뭔가 대답이 있기를 기다렸는데 허상돈의 대답이 없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허상돈을 쳐다본다.
“하하하!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려. 생명을 중시하는 무림인이라… 아주 신선합니다. 나 허상돈은 유성탄 대형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겠소. 언제든지 나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하십시오. 나 허상돈은 구명의 은인에게 모른 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뭐라고 합니까?”
“뭔 말인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좀 또라인가 봐. 나한테 맞아서 다리뼈가 부서져 놓고서는 나보고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나 뭐라나… 내가 분명 부순 것이 다리인데 그 와중에 머리도 어디엔가 부딪친 모양이더라.”
허상돈은 정파에 가까운 인물이기는 하지만 원체 빠른 쾌검을 사용하면서 상대를 말할 새도 없이 죽이는 바람에 무림인들은 그를 정사지간으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성격은 아주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대결에서 졌다고 원한을 갖거나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싸움 이후에 친분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치사한 행동을 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는 용서가 없었다. 유성탄은 상당히 그에게 무례하게 대했기 때문에 그는 단숨에 숨을 끊어놓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자신을 이기고도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으로 모든 싸움을 끝냈다.
허상돈의 상식으로 그런 살검을 받고도 상대를 용서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는 유성탄이 그가 살수를 썼는지 안 썼는지조차 몰랐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유성탄과 친해지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도 황도검 허상돈 대협이라면 무림에서 상당히 이름이 높은 사람인데 그냥 좋게좋게 지내시지 그러셨습니까?”
철패는 유성탄의 말투에서 허상돈에게 그리 친절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슬쩍 물었다.
“야! 다리병신과 친하게 지내봐야 돈이나 달랄 텐데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냐? 너도 좀 머리 좀 써라. 엄마가 말하기를,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사람은 절대로 사귀지 말라고 했다.”
“도움이 될 텐데…….”
유성탄이 말을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가자 철패는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강태웅에게 보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자세히 알아봤어요?”
하후란은 강태웅으로부터 청담과 만류장 그리고 금모전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말에 마효춘에게 즉시 알아보라고 명을 내렸었다.
“그게 참 이상합니다. 만류장에서 모든 용역을 청담에게 조달받더군요. 그런 것이 이미 오 년이 넘었더군요.”
“상단에서 용역을 쓰는 것은 당연한 건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요?”
영락제가 사병을 극도로 싫어하면서 상단 역시 자체적으로 자신들을 경호하는 무사를 삼백 명 이상 키울 수 없었다. 무림문파는 황제의 명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황제도 무림은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공공연히 삼백 명 이상의 제자나 무사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관부의 비위를 거스르지 못하는 상단은 삼백 명 이상의 무사를 고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지로는 무림문파보다 상단이 더 많은 무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실정이었다.
물건의 운반은 표국을 많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용역을 고용하는 것이 표국보다 더 쌀 경우가 많았다. 결국 많은 상단이 용역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많은 낭인을 거느린 대형급의 낭인들은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었다.
“십 년 전 호북에는 만류장과 맞먹는 대형상단이 두 개가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담이 만류장의 용역을 전담하면서 두 상단이 몰락을 했는데 그 와중에 두 상단의 주인들이 모두 피살되었습니다. 물론 용의선상에 만류장주가 제일 먼저 올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요. 그리고 지금 만류장은 호북제일상단이 된 겁니다.”
“흠! 냄새가 나기는 하는군요. 그렇다면 금모전은 어떻게 된 거지요. 만류장이나 청담이 아무리 배짱이 좋기로 무당을 속이고 금모전과 작당을 했다는 것을 무당에서 알면 그들의 모든 기반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잖아요? 만류장의 장주는 아주 이익에 밝고 모든 일은 아주 조심스럽게 행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위험을 자초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네요.”
“만류장이 두 상단을 몰락시키고 호북제일상단이 된 데에는 그 상단의 주인들의 죽음 말고도 만류장의 공격적인 경영이 아주 주효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만류장에서 그렇게 공격적인 경영을 하는데 들어간 자금의 출처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마효춘의 말을 들으며 하후란의 고개가 계속 끄덕여지고 있었다.
“계속 뒤져보세요. 분명 뭔가 큰 것이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게…….”
“왜요?”
“만류장이나 청담 모두 우리가 건드리기에는 너무 거물들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청담은 놀랍게도 천하의 낭인의 팔 할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는 낭왕(狼王)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거기다 금모전은 우리로서는 더 이상 파고들 수는 없습니다. 더 들어갔다가 우리의 정체가 들키기라도 하면 우리로서는 감당을 못합니다.”
“어차피 아버님께서도 승낙을 하셨어요. 이제 와서 우리가 빠진다면 낭인칠웅은 당장에 고립무원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것은 기호지세(騎虎之勢)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낭인칠웅이라는 호랑이의 등에 탔어요. 내리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활에 맞거나 아니면 우리를 태우고 있던 호랑이의 이빨에 물리게 될 겁니다.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조심해서 알아보세요. 이제는 유성탄 대형의 능력을 믿는 수밖에는 더 이상의 선택은 없어요.”
“알겠습니다.”
하후란의 다부진 말에 마효춘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나간다.
“마 영주님의 고심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우리도 양지로 나가 큰소리치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싶어요.”
* * *
“청담 대형의 말씀은 낭인칠웅에게 이번 물건의 경호를 맡기자는 말입니까?”
“그렇소. 청호산과 팔달산을 통하는 길을 이용하여 물건을 옮기게 하는 겁니다.”
“그 산들에는 녹림십팔채 중에서도 아주 잔인한 놈들이 진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이번 물품을 빼앗긴다면 손해가 엄청납니다.”
“물론 물건을 잃는다면 상당한 피해가 예상은 되지만 그놈들이 지금 숨기고 있는 동과는 비교가 안 되는 액수요. 하지만 만약 제대로 운반을 한다면 상당한 이익이 보장되기도 하지요.”
청호산과 팔달산을 통해 호남으로 빠지는 길은 다른 길에 비해 최소한 십 일 이상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움직이는 물품에 소금과 상당한 양의 약재가 포함되어 있으니 빨리 운반하면 할수록 이익이 커진다. 하지만 두 산의 산적들은 잔인하기로 유명하여 표국들도 그쪽으로의 운반은 처음부터 거절하거나 상당히 높은 요율의 표물비를 원하는 곳이었다.
사도진용은 잠시 생각하더니 청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무사히 두 산채를 지난다 해도 호남에 들어가는 즉시 금모전의 공격을 받을 것이니 우리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들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을 제거하면 동은 어디서 찾습니까?”
“이미 내가 그들이 여기까지 온 행적을 완벽하게 알아두었으니 그놈들만 제거한다면 동을 찾는 것은 간단할 것이오.”
* * *
“삼 일 후에 표물 운반을 해 달라는군요?”
강태웅이 배득칠을 만나고 와서는 유성탄에게 보고했다.
“표물?”
“옮기는 물건을 말합니다.”
표도행이 유성탄이 표물의 뜻을 모르는 듯하자 설명해 준다.
“무슨 물건?”
“그거야 저도 모르지요.”
표도행이 말하며 강태웅을 쳐다보았다.
“소금하고 약재 그리고 약간의 소비재가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보고 가라고 그럴까?”
유성탄이 눈알을 위로 올리며 생각하듯이 말했다.
“물건을 빨리 옮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답니다. 요즘은 날씨가 축축해서 소금은 빨리 창고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좋다고 하고, 약재들도 상할 수가 있나 봅니다. 그리고 안 상하더라도 신선할수록 값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래서 지름길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길이란 것이 청호산과 팔달산을 지나야 한다는군요.”
“산길? 산길을 걷는 거야 우리 특기이니 뭐 어려울 것도 없겠네.”
유성탄이 간단하게 생각하고는 답을 하자 장우왕이 말을 받는다.
“대형,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청호산과 팔달산은 녹림십팔채에 드는 산채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다 제가 들은 바로는 상당히 잔인한 놈들이라 물건을 고이 바치면 모르지만 반항을 하면 전부 죽이는 놈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왕의 말이 맞습니다. 거기다 물건이 가야 하는 곳이 바로 호남입니다. 호남은 우리가 광산에서 싸웠던 놈들이 속해 있는 금모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게 중요한가?”
유성탄이 아직 심각성을 모르고 묻자 표도행이 펄쩍 뛰며 말을 받았다.
“당연히 중요하지요! 분명 저들이 우리를 제거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으로 물건을 싣고 청호산과 팔달산을 지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 그곳을 지났다 해도 금모전이면 마룡방과 맞먹는 무림 오대사파의 하나이니 우리가 호남으로 들어가는 것은 호랑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라 이 말입니다.”
표도행의 말을 들은 유성탄은 그때서야 말을 알아들었는지 표도행보다 더 펄쩍 뛰며 흥분해서 소리쳤다.
“감히 나를 호랑이 입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이 말이지? 내 이것들을!”
유성탄이 당장 밖으로 뛰어나가려 하자 옆에 있던 철패가 급히 유성탄의 몸을 잡으며 소리쳤다.
“대형, 잠시만 참으십시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철패가 허리를 안고 막자 유성탄이 우뚝 서더니 철패를 보며 말했다.
“철패야, 손 풀어라. 내 몸은 여자만이 안을 수 있다.”
“출발 날짜가 삼 일 후입니다. 그때까지 대산 아우와 동파 아우가 무슨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면 우리로서는 이번 표행이 호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유성탄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자 강태웅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만약 좋은 소식을 못 가져오면?”
“대형은 만약이 없다면서요?”
표도행이 유성탄의 말에 꼬리를 잡는다.
“나는 언제나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다.”
그러자 유성탄이 간단하게 꼬리를 끊어버렸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힘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야겠지요.”
강태웅의 말을 들은 유성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물었다.
“그런데 어떤 소식이 좋은 소식이냐?”
모두의 눈이 유성탄을 향했다.
‘이 씨! 내 이럴 줄 알고 그냥 아는 척할려고 그랬는데…….’
전부 쳐다보자 유성탄은 또 자신만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은 소식은 무당이 우리의 말을 믿고 조사단을 파견해 주는 것입니다.”
* * *
“어찌 됐느냐?”
사도진용이 배득칠을 보며 물었다.
“어찌 되긴 뭐가 어찌되겠습니까? 그들도 우리와 약속한 게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해야지요.”
옆에 앉아 있던 사도진철이 배득칠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유성탄이 금자 백 냥을 원하면서 시키는 일은 다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부장주님 말씀대로 순순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음! 다행이구나. 원체 짐작을 할 수 없는 놈들이라 약속 같은 것은 헌신짝처럼 취급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남자라 이거로군. 그런데 그 유성탄이라는 놈은 아직도 반응이 없느냐?”
“그게… 참 이상합니다. 그때 분명 맛있다고 혀로 술잔까지 핥아먹었는데 어떻게 전혀 이상이 없으니 말입니다.”
“당장 당가에 연락해서 돈 물러달라고 해라.”
사도진용이 화가 나서는 말했다.
“그게 좀 어렵습니다. 그 독은 당가의 비전이라고 절대로 밖으로 유출시킬 수 없는 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당가에 따지면 누구에게 독을 구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잘못하면 우리가 당가에게 몰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판 놈을 찾아가면 되지 않느냐?”
“그게… 우리에게 판 자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병신 같은 놈들! 도대체 무슨 장사를 그따위로 하는 거냐! 에잉!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나가봐라!”
“뭐 때문에 냉철하기로 유명한 사도 장주님께서 이리 화가 나셨습니까?”
배득칠이 나가자 곧 어디선가 청담이 나타나더니 빙글거리며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불쑥 들이닥치는 것은 내가 아주 불편하오. 다음부터는 앞에서 왔다고 알리고 들어와 주시오.”
“하하하! 사도 장주께서 내가 함부로 들어와서 기분이 많이 상한 모양이군요. 지금이야 비상시니까 좀 무례를 저지르고 있지만 일이 끝나고 조용해지면 다음부터는 꼭 아랫것들에게 알리고 들어오겠소이다. 하하하!”
사도진용은 청담이 커다랗게 웃자 이상하게 간담이 서늘해 오는 것을 느꼈다.
* * *
“사도 장주의 만류장은 매년 상당히 많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해 왔네. 거기다 솔직히 본 파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고 빈도가 아는 바로는 주위의 평판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알고 있네. 지금 자네들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만류장에서 사파인 금모전과 결탁을 하여 호북의 광산을 탈취하고는 불쌍한 양민들을 납치해서 일꾼으로 사용했다는 것인데 만약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면 자네들은 정파무림의 공적이 될 수도 있음이야. 그래도 자네들의 얘기를 끝까지 맞다고 주장할 생각인가?”
무당의 장로 중 한 명이며 천성 진인의 사부이기도 한 청무 진인은 천성 진인이 데리고 온 낭인무사들의 말을 듣고는 심각한 얼굴로 재차 다짐을 받고 있었다.
“저희들의 목을 걸겠습니다. 여기 계신 대산 형님께서 그 마을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 쳐들어온 용역들에게 아내를 잃고 얼굴까지 이렇게 되셨습니다. 이번에도 꼭 복수를 위해서 그곳에 간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떤 자들이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알기 위해 갔다가 우연히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마동파가 목까지 걸겠다고 나오자 청무 진인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만류장의 사도 장주의 아들이 무당의 속가제자였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되도록이면 황대산과 마동파의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자네들 말이 광산에서 금모전의 육조린이라는 자와 싸웠다고 했는데 내가 아는 육조린은 대단한 고수인데 어떻게 자네들이 이겼다는 말인가?”
“저희들은 이길 수 없는 상대지만 저희들의 대형께서는 대단한 고수이십니다.”
“사부님, 이들 말이 자신들이 지금 마룡방의 두 개 무력집단을 무너뜨렸다고 이름이 자자한 낭인칠웅 중 넷째와 다섯째랍니다.”
천성 진인이 옆에 시립해 있다가는 부언해 주었다.
천성 진인의 말을 들은 청무 진인은 눈을 감고는 잠시 도호를 외더니 결심을 한 듯이 눈을 떴다.
“아무리 만류장이 무당에 많은 금전적 도움을 주었고 그 자제가 무당의 속가라 하지만 양민들을 납치하여 일꾼으로 사용하고 그 처우가 열악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천성아, 네가 일대제자인 태자배와 이대제자인 현자배 중 몇 명을 데리고 대정현에 나가 은밀하게 조사를 해봐야겠다.”
“알겠습니다.”
“거기에 가면 운종이 지관을 책임지고 있을 것이니 운종의 도움을 받는다면 조사가 쉬울 것이다.”
말을 마친 청무 진인은 황대산과 마동파를 보며 다시 다짐을 하듯이 말했다.
“만약 조사결과 그들에게 아무런 죄도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그대들은 물론 낭인칠웅 전체가 무당을 농락한 것으로 알고 그 죄를 물을 것이다.”
청무 진인의 말을 들은 황대산과 마동파의 얼굴에 약간 불안한 기색이 나타났다. 하지만 배짱으로 살아온 그들이었다. 그 정도의 엄포에 주눅이 들 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진인, 저분은 누구십니까?”
천성 진인과 방을 나온 황대산이 그때서야 한숨을 크게 쉬며 물었다. 청무 진인의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그들이었다.
“빈도의 사부이신 청 자 무 자를 쓰시는 분입니다.”
황대산과 마동파는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란다. 청무 진인이라면 무당의 십대장로 중 한 명이자 무림 백대고수 중에서 최상위에 올라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백대고수의 최상위면 실지로는 무림 십대고수와 싸운다 해도 그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 * *
대정현에서 가장 큰 객잔에 십여 명의 무인이 찾아든 것은 유성탄 일행이 표행을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모두 검정 옷을 입은 그들은 처음에는 한 명이 객잔에 들었다. 처음 나타난 자가 별채를 얻었고 한 명씩 별채에 찾아들기 시작하더니 열 명이 된 것이다.
“오살의 소식은 없나?”
눈이 마치 승냥이의 눈과 같이 생긴 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 계속 표식을 남겼으니 살아 있다면 분명 봤을 텐데……. 설마 그들이 모두 죽었을까?”
“오살은 개개인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살수들이다. 다섯 명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있었으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혈문에서 오살에게서 연락이 끊어지자 혹시를 몰라 도움을 주라고 보낸 혈문의 십사(十死)였다.
“오살을 도우라고 했는데 오살의 행방조차 알 수가 없으니 어떡하지?”
유성탄과 같이 납치되었던 아이들 중 살아남은 이십여 명 중의 열 명이 바로 십사였다. 그들 역시 일급살수이기는 했지만 혈점사나 혈무오살에 비해서는 약간 손색이 있었다. 하지만 열 명이 협공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합공살수는 혈문에서는 최고라는 말을 듣는 자들이었다.
“혈문사자께서 우리에게 오살을 도우라고는 했지만 오살의 연락이 끊겼으니 우리끼리라도 살수행을 해야 하는 거 아니겠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승냥이 눈을 가긴 자가 다시 말했다.
“목표물은 이곳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모였으니 일은 처리하고 가자는 말이다. 우리가 언제나 오살의 밑이라는 말을 들을 수는 없다. 만약 오살이 실패했고 그래서 어디선가 상처를 치료하거나 죽었다면 당연히 우리가 그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다! 우리가 하자.”
십사는 지금 지옥으로 스스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 * *
“태웅아, 얘기는 했냐?”
“예, 가장 좋은 준마 네 필과 가장 튼튼한 마차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만류장에서도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험준한 산이라서 그런지 쉽게 그러마 하더군요.”
“그래 잘됐군. 그럼 하후란에게 내가 좀 만나고 싶다고 전해라.”
“언제 만나시겠습니까?”
“오늘 만나지 뭐!”
저녁 무렵 강태웅이 유성탄을 안내한 곳은 대정현의 색주가였다. 사방에 홍루와 청루가 섞여서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그곳을 강태웅은 여러 번 와봤는지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야, 강태웅, 너 이제 보니 나는 고리타분한 만류장에서 혼자 독수공방하게 해놓고 너 혼자 매일 재미 본 거 아니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후란을 만난다면서 왜 이런 곳을 오는 거냐?’
“하후 소저께서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뭐! 하후란이 사는 곳이 여기였어?”
몸을 숨기고 있다는 말을 사는 곳으로 둔갑시킨 유성탄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나타났다.
‘흠! 고게 그렇고 그런 여자였다 이 말이지. 그렇다면 오늘 혹시…….’
강태웅의 말을 듣자 혼자 공상에 빠지는 유성탄이었다.
“무슨 일이시지요?”
하후란은 유성탄을 만나자 싸늘하게 말했다. 이상하게 안 보면 궁금하고 그런데 보면 화가 나는 이유를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사이에 오랜만에 만났으면 손도 잡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뭘 그렇게 쌀쌀 맞게 굴고 그러냐?”
유성탄이 다시 유들유들하게 말하며 하후란의 옆으로 가서 앉으려고 하자 하후란이 급히 일어서서 옆으로 비키며 말했다.
“도대체 만날 우리 사이 우리 사이 하면서 실없는 소리만 하지 말고 온 이유나 말해봐요?”
‘이씨!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네. 에이!’
유성탄은 하후란의 행동에서 오늘도 한 번 하기는 틀렸다고 생각하고는 포기한다.
“알았다. 네가 정말 그렇게 나온다면 이제 다시는 너한테 찝쩍거리지도 않을 거고 오늘 이후에는 너랑 만나지도 않을 거다.”
유성탄이 삐쳐가지고 지키지도 못할 큰소리를 치자 하후란의 안색이 약간 딱딱해졌다.
“온 이유나 말해봐요.”
“얘기는 잘되셨습니까?”
“잘되기는 뭐가 잘돼! 에이, 간만에 머리를 썼더니 배만 고프다. 가자!”
유성탄과 하후란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유성탄은 뭔가 아쉬운 듯이 그녀가 머무는 청루를 떠났고, 남은 하후란은 미소를 지으며 그런 유성탄의 뒷모습을 창을 통해 보고 있었다.
“하여간에 치사한 머리는 엄청 잘 도는 것 같지요?”
“잘 도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머리는 천재입니다. 그렇지만 저렇게 약속도 안 지키고 나쁜 데로만 머리가 도는 놈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효춘이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호호호! 귀엽잖아요.”
“저게 귀여워요? 아가씨도 참 취향이 독특하십니다.”
‘조금만 진지하게 대해주면 나도 친절하게 해줄 텐데…….’
하후란은 유성탄이 자신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장난처럼 대하고 자신을 마치 술집여자들로 취급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정말 자신을 좋아하고 조금만 진지하게 대해준다면 눈 딱 감고 한 번 대줄 생각도 해본 그녀였고, 유성탄이 자신을 보자고 하자 나름 무척 반갑기까지 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유성탄의 첫 마디를 듣자 이상하게 화가 났다.
* * *
“낭인칠웅이라는 놈들이 지금 만류장에 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식객인지 아니면 용역으로 들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한 점은 만류장에 들어가기 전에 만류장이 장악한 이곳 대정현의 시장상가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는 것이다.”
잠시 나가서 혈문의 정탐군을 만나고 온 신기전이 십사가 모인 자리에서 낭인칠웅의 동정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말썽을 피운 놈들이 오히려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긴 하군. 하지만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우선 만류장 안까지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만류장 안에서 사건을 만든다면 혈문의 처지가 어려워진다. 언제 그놈들이 밖으로 나올지 그것은 알아봤다더냐?”
“내일 표물을 호송하기 위해 멀리 떠날 예정이라 한다.”
“그래 아주 잘되었군.”
그런데 표물 호송 같은 것은 상단에서는 비밀로 할 텐데……?”
“이유는 모르지만 소문이 쫘악 퍼져 있다더라.”
* * *
“소문이 쫘악 퍼졌습니다. 표물의 액수가 상당히 크다는 것까지 알려졌으니 청호산이나 팔달산의 산적들이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청호산이나 팔달산의 산적들도 우리에게는 암 같은 놈들이었으니 둘 중 누가 죽든지 상관없겠지. 그놈들은 떠날 준비는 하고 있더냐?”
“대형이라는 유성탄이라는 놈만 탱자 탱자 놀고 있고 나머지 놈들은 뭐가 바쁜지 매일 어디론가 쏘다니고 있습니다.”
“청담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그 날 이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진용은 배득칠의 말을 들으며 치를 떨었다.
약 육 년 전 우연히 그 당시 낭인들의 대형으로 군림하던 청담을 만난 것은 그의 생애에 가장 운이 나쁜 날로 기억되고 있었다.
‘늑대 같은 놈!’
청담의 큰 도움을 받았고 거기에 더해 청담의 요설(妖說)에 넘어가 친분을 맺은 후 만류장은 호북제일상단이라는 이름을 얻기는 했다. 어쩌면 자신이 가장 원하던 일을 이룬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이어지는 청담의 협박은 그로서는 하루하루가 악몽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도 그가 청담과 함께 저지른 일 때문에 누구에게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었다. 잘못하면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금모전의 일을 돕게 된 것도 청담의 협박 때문이었다.
* * *
“수고했다.”
강태웅은 물건을 운반하기 직전에 알맞게 돌아온 황대산과 마동파로부터 무당에서 자신들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자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유성탄의 말마따나 재수가 없는 인생인지 언제나 하는 일마다 꼬이던 낭인 생활이었는데 요즘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형, 다녀왔습니다.”
황대산과 마동파가 방안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유성탄에게 귀환했다고 보고를 했다.
“니들만 재미있게 돌아다니고 그러면 못쓴다.”
“우리 재미있게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니들이 아무리 그래봐야 내가 보기에는 놀다 온 것밖에 안 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대형도 참 방안에서 편히 쉬고 계시면서 고생했다고 하면 남들이 욕합니다.”
“니들도 계속 방안에서 뒹굴어 봐라. 얼마나 힘든가!”
유성탄의 말을 들은 황대산과 마동파는 유성탄의 말이 약간은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했다.”
만류장을 감시하던 혈문의 십사 중 한 명인 동규가 급히 돌아와서는 말했다. 그러자 모두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일어서더니 검을 등에 매고는 머리에 흑립을 썼다. 검은 옷에 흑립은 어두운 밤에는 그들의 모습을 완전히 감춰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살수인 그들이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말을 못 타는 유성탄은 표물을 실은 마차 위에 턱 앉았고 방도들은 마차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주위를 아우들이 말을 타고는 호위하는 진형으로 마차는 출발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흉악하게 생긴 놈들 몇이 따르고 있었다.
녹림십팔채에 들 정도의 산적들은 그들이 말하는 은어대로 손님이 우연히 그들의 아가리에 들어와 주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사방에 정보원을 풀어 놓고는 어느 상단의 물건이 어느 길로 가는지 알아보고는 그 길목을 지키곤 한다.
상단의 물건이 움직이는 행로는 따라가면서 짐작으로 연락을 하게 되지 먼저 알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 상단들이나 표국도 산적들이 자신들의 앞을 기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동쪽으로 가는 척하다가는 남쪽으로 움직이고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만류장에서 움직인다는 물건은 어느 길로 얼마만큼의 물건이 움직인다는 것이 사방에 짜하니 소문이 나 있었다.
“금자 오백 냥 가치의 물건이 움직인다고 했는데 호위하는 무사들의 수가 좀 적은 것 같지 않아?”
청호채의 정보원인 황삼이 자신의 동료에게 조그맣게 물었다.
“글쎄, 저들이 아무리 고수라고는 해도 저 정도의 수로 감히 청호산을 넘을 생각을 하다니 배짱이 대단하군.”
청호채의 산적들의 수는 무려 오백 명을 상회했다. 그 중에서는 무림에 나가도 일류고수 소리를 들을 만한 자가 열 명이 넘었고 채주를 비롯한 수뇌부 몇 명은 초절정고수와 싸울 만한 실력을 가졌다. 이십 명도 안 되는 자들로 그곳을 지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저들 중에 무림 백대고수에 드는 고수가 끼어 있다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그 정도의 고수가 움직인다면 산적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정도의 고수라면 이긴다 해도 그 피해가 대단할 것이었고 그런 자들은 보통 대단한 자들을 친인으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후환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이는 유성방의 방도들은 낭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햐 산세가 대단하구나.”
유성탄의 표행은 이틀 만에 청호산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잠시 쉬면서 나무그늘에 모여 앉자 유성탄이 감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오백 명이 넘는 산적이 웅크리고 있다더니 정말 산세가 대단히 험악해 보였다.
“천하에 오악이나 하는 대단한 산들이 맞지만 여기처럼 이름은 없어도 험준한 산도 무척 많습니다.”
표도행이 또 아는 척한다.
“난 저런 데 들어가는 거 안 좋아하는 거 알지?”
유성탄은 마룡방을 피해 다니면서 거의 몇 달을 산속에서 생활했으면서도 여전히 산만 보면 싫다고 했다. 충동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그를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주 좋은 생각을 했거든.”
유성탄의 말에 모두는 요상한 눈으로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유성탄이 뭔가 행동을 취하면 꼭 일이 생겼었다. 이번에는 아예 생각까지 했다고 하니 더욱 불안한 그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강태웅이 나지막이 물었다. 말이 나온 김에 알아놔야 대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직은 비밀인데 한 가지만 가르쳐주마. 너희들이 다치지 않을 방법이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장우왕이 감탄의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천재거든. 진짜 비밀인데 한 가지만 더 말해주지.”
유성탄은 장우왕의 목소리에 고무됐는지 한 가지 더 말해준다.
“아예 저 산속에 안 들어가는 방법이다.”
“햐 진짜 그렇게 된다면 굳이 산적들과 마주칠 이유도 없고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황대산이 역시 존경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네 생각도 그렇지? 하하하! 비밀이지만 한 가지 더 말해주마.”
황대산의 존경 어린 얼굴에 우쭐해진 유성탄이 한 가지 더 말해준다.
“그러면서 돈까지 번다.”
“우와! 이런 상황에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생각을 하시다니 역시 대형이십니다.”
마동파가 늦을세라 맞장구를 쳤다. 유성탄에게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아우들은 다 알고 있었다. 하나씩 맞장구를 치다보면 곧 다 알게 될 것이었다.
“뒤에 죽음의 그림자들이 따라다니는데 아주 한가하구나.”
조금만 더 지나면 유성탄의 좋은 생각을 다 알게 될 상황이었는데 갑작스런 목소리가 대화를 끊어버렸다.
“왔으면 빨리 나타나서 왔다고 말하지 뭘 숨어서 따라다니고 그러냐?”
나타난 자는 뜻밖에도 혈문오살의 홍일점인 고화월이었다. 전혀 눈치를 못 채던 아우들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경계를 하자, 유성탄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눈치 챘었냐?”
“나는 한번 느낀 기운은 절대로 안 잊는다. 딴 놈들도 나오라고 해라. 만날 뭐가 무서워서 그렇게 땅바닥에 바짝 붙어 다니는 거냐?”
살수들의 특성상 언제나 상대에게 다가갈 때는 어디엔가 바짝 붙어간다. 고화월만 모습을 나타냈지만 유성탄은 오살의 나머지가 뒤에 돌, 나무 그리고 땅바닥에 딱 붙어 숨어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유성탄의 말을 들은 고화월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손을 들었고 그러자 나머지 네 명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결심을 하셨습니까?”
강태웅이 그들의 모습을 보자 곧 그들이 왜 나타났는지 감을 잡고서는 반갑게 물었다.
“생각은 많이 해보았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이 남았더군요.”
“말씀하십시오.”
“유성방이라는 것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화월의 말을 들은 강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대로 그들은 낭인칠웅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다 알고 계시는군요.”
“우리의 대우는 어떻게 해주실 생각이신가요?”
고화월은 역시 현명했다. 그녀는 마음을 먹는 것은 먹는 것이고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이익은 이익대로 차지하고 싶었다.
“솔직히 방을 세우기는 했지만 대형을 방주님으로 모신 것 이외에는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와 합류를 하신다면 최소한 우리들의 밑의 자리는 아닐 것입니다.”
고화월은 강태웅의 말을 들으며 유성탄을 노려봤다. 그녀도 이미 유성방의 모든 것은 유성탄 하나의 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도 이미 유성탄의 윗자리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강호에서의 이름으로 보나 그들의 무공으로 보나 다른 낭인칠웅의 아랫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강태웅도 그들의 생각을 인정한다는 듯이 그들의 처우가 절대로 낮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