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만류장의 제안
“엄마!”
강추화는 유성탄이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자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누군데 나보고 엄마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댁 같은 아들 둔 적 없어요!”
“아이 참! 엄마 나 유성탄이라고요!”
“뭐요! 당신이 유성탄이라고요? 말도 안 되는… 그럼 어렸을 때 어땠는지 말해봐요?”
“착하고…….”
“아니에요. 당신은 유성탄이 아닙니다.”
“엄마한테 좋은 아들이고…….”
“아니라니까요!”
“에이! 만날 말썽부려서 엄청 맞았잖아요!”
“아이고, 내 아들 성탄이가 맞나보구나.”
‘이씨! 쪽팔리게…….’
* * *
유성탄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객잔으로 돌아오자 만류장의 배득칠이 기다리고 있다가는 급히 다가와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한다.
“누구요?”
생전 처음 보는 배득칠이 다짜고짜 인사를 하자 유성탄은 누구냐고 묻는다.
“하하하! 저는 만류장의 총관인 배득칠이라고 합니다. 장주님의 명으로 장사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해서 왔습니다.”
“야! 태웅아.”
유성탄이 강태웅을 불렀다.
“예, 대형.”
“나는 지금 피곤하니까 네가 상대해라.”
유성탄은 귀찮다는 듯이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 감히 천하의 만류장의 총관을 어찌 보고…….’
배득칠은 처음 당해보는 모욕에 순간 화가 났다. 만류장의 총관이라면 여간한 문파의 장로들도 대우를 해주었는데 일개 시장통에서 행패나 부리는 낭인 주제에 무시를 하니 황당할 만도 했다. 물론 그들이 배득칠을 대우해 주는 것은 만류장이라는 간판과 대우를 해주면 들어올지도 모르는 돈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무시를 당한 적은 없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강태웅은 배득칠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선 자신의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대형, 저자가 왜 왔을까요?”
마동파가 유성탄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내가 아냐! 그런 거는 니들이 알아서 내게 알려줘야 되는 것 아니냐?”
“제 생각으로는 우리에게 더 이상 행패를 부리면 좋지 않을 거라고 협박을 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닐까요?”
“이것들이 감히 나를 협박해?”
유성탄이 벌떡 일어서자 말하던 표도행이 급히 잡으며 말했다.
“대형, 대형! 제 말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 협박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니야, 나도 아까 그놈의 상판대기를 보고는 협박을 하러 왔구나 하고 단박에 눈치 챘었다.”
“제 생각으로는 대형께 서로 잘 지내자고 회유를 하러 온 것 같던데요.”
황대산이 자신은 생각이 다르다며 말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황대산의 말을 들은 유성탄이 자리에 앉으며 동감을 표했다.
“대형, 조금 전에는 협박을 하러 온 것을 단박에 알았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철패가 표도행과 황대산의 말에 대한 유성탄의 대답이 완전히 다르자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철패야, 사람은 언제나 변하는 법이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것이 바로 세상사인데 서로 다른 의견에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오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냐?”
“그거야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건 하루도 아니고 한 시진도 아니고 바로 금방 말이 바뀌시니 하는 말입니다.”
“나는 보통사람과는 달리 빨리 변화하는 사람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유성탄을 보며 모두 피식 웃는다.
“그들이 협박을 하러 왔다면 어찌할지는 알겠는데 만약 구슬린다면 어찌하시렵니까?”
표도행은 유성탄의 반응을 보고는 협박을 하러 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구슬린다면 어찌할지 의견을 물었다.
“그거야, 그놈들이 어떤 성의를 보이느냐에 달린 거 아니겠냐?”
“성의요?”
“그래, 난 성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가 왜 이러느냐고요?”
“그렇소! 만류장은 작은 상단이 아니오. 가까이는 무당을 비롯하여 만류장과 친한 무림문파는 부지기수라는 말이오. 자꾸 이런 식으로 행패를 부린다면 그 후환을 어찌 감당하실 요량이신 게요?”
“하하하! 말을 참 이상하게 하십니다. 천하의 어느 고을을 가도 흑도의 왈짜패는 있는 법입니다. 무림문파에서 그런 작은 흑도까지 상관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거기다가 우리는 흑도의 왈짜패도 아닙니다.”
“보통은 그렇지만 우리 같은 상단의 요청이 있으면 얼마든지 상관을 합니다. 지금 대정현에 어떠한 흑도도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오.”
“그렇다면 무림문파에 우리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을 하시지요. 어떻게 되나 한번 봐야겠습니다.”
강태웅은 전혀 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약간 엄포를 넣고는 만류장의 식객이 되라고 구슬릴 생각이었던 배득칠은 강태웅의 반응에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겁을 먹어야 몸값이 떨어지는 법인데 이렇게 나오면 비싼 값을 제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만류장과 각을 세울 이유가 뭡니까? 그냥 서로서로 좋을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채택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떻소? 돈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당신들을 고용하는 게? 거리에서 힘 빼면서 푼돈 뜯는 것보다는 후하게 지불하겠다는 장주님의 분부가 있었소이다.”
강태웅은 배득칠의 말을 듣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의 시작이 돈 때문에 시작한 것이 아니니 돈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해결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는 속담같이 아예 만류장 안으로 들어가서 기회를 보는 것이 더 좋을지 당장 감이 안 오는 것이다.
“나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제가 대형과 의논을 한 연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강태웅은 우선 하후란과 의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소! 만류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테고… 결정이 나는 대로 연락을 주시오. 대신 결정을 할 때까지는 상점들을 괴롭히는 행위는 잠시 중단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것 역시 제 소관이 아니군요. 하지만 대형께 건의는 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자기들의 장으로 들어와서 살라 이 말이냐?”
“그런 거지요.”
강태웅이 배득칠의 제안을 말하고는 하후란을 만나러 나가자 유성탄이 아우들을 보며 물었다.
“이것들이 나를 낭인으로 아나… 용병을 하라는 말 아니야? 안 그래?”
“전쟁터를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거지요.”
“간단히 말해서 지들을 지키는 호위무사나 용역 같은 일을 해달라는 거지요.”
“그냥 가서 다 때려 부술까?”
“그랬다가는 우리만 관에 쫓길 겁니다.”
“관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마도로 몰려 무당에서 우리를 잡겠다고 몰려 올 겁니다.”
마동파의 말에 표도행이 부언하자 유성탄이 고개를 삐딱하게 눕히더니 물었다.
“전부터 무당, 무당 하는데 거기가 그렇게 무서운 데냐?”
“무서운 데는 아니지만 마두로 찍히면 무지 무서운 데가 될 수도 있는 곳이지요.”
“그럼 마룡방하고는 어떠냐?”
“마룡방은 지금 무림 오대사파로 불리는 엄청난 세력을 가진 문파니까 무당이라고 해도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천하의 누구도 마룡방과는 시비를 붙어도 무당하고는 시비를 붙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뭐야? 그럼 마룡방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뭘 저렇게 복잡하게 말하는 거야?’
“그럼 장의사 영감하고는 어떠냐?”
“흑혈신마는 무림의 십대고수 중 하나로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 중의 한 명이기는 하지만 무당에도 무림 십대고수가 한 명 있습니다. 거기다 백대고수에 드는 사람이 무려 네 명이나 있으니 흑혈신마도 무당은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그럼 무당이 제일 센 거냐?”
“그게 그렇지는 않은데요.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천하에서 제일 세지는 않지만 누구도 그들과는 시비를 걸려고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요.”
유성탄의 머리에 무당이 무섭다고 각인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문파가 무려 아홉 개나 있습니다.”
“뭐야! 그렇게 무서운 데가 그렇게 많은데 뭐 하러 무림에서 살려고 그러냐? 니들 정말 이상하다.”
“무서운 곳은 아니라니까요? 시비만 안 붙으면 천하에서 제일 안 무서운 데가 거기예요.”
“어쨌든 시비가 붙으면 제일 무서운 데가 된다는 말이잖아?”
유성탄은 소리를 지르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거 아무래도 쟤들하고 엮이는 것이 아니었어. 이러다가 엄마하고 아버지를 찾기도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구나…….’
유성탄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만류장에서 제법 머리를 썼군요. 그래 어찌하실 생각이신가요?’
“그게 무엇이 좋을지 저로서는 감을 못 잡겠어서 하후 소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우선 낭인칠웅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확실하게 정하시는 게 좋겠네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냥 복수를 원하시는 건지 아니면 모든 일을 밝히실 것인지 그것을 묻는 것입니다.”
강태웅은 하후란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시작은 분명 황대산의 복수를 위해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하니 진짜 복수를 할 대상이 누군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얽힌 세력이 많았다. 만류장 역시 그 얽힌 세력 중의 하나로 복수할 대상의 하나일 뿐이었다.
“어떻게 다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복수를 원하신다면 이 정도에서 그치고 원래 계획대로 유성방의 세력을 키우는데 집중하시기를 권하고 싶어요. 이번 광산에는 너무 거물급들이 끼어 있어요. 만류장이 비록 상단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돈을 받는 문파가 너무 많아요. 잘못하면 그 많은 문파를 모두 적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더 이상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우리까지 멸문을 당할 수도 있는 모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미 금모전을 건드렸고 많은 낭인들이 우리를 보았기 때문에 정체를 숨긴다는 것은 애당초 틀린 마당입니다.”
“그래요. 이미 금모전을 건드렸고 수많은 낭인들이 여러분의 정체를 아니 손을 떼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돈이 필요한 금모전으로서는 동만 돌려주고 금모전이 끼어 있는지는 몰랐다고 한다면 그들도 호북까지 들어와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을 무당에게 들키기 싫어서라도 크게 문제를 삼지 않을 거예요.”
강태웅은 하후란의 말을 들으며 일이 자신의 예상을 넘어 너무 심각하게 번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복수가 아닌 일의 진상을 밝힌다면 조금 달라져요. 광산을 빼앗기 위해 용역을 동원하고 동을 빼돌려 자신들의 잇속을 챙긴 거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을 감금하여 동을 캐게 하면서 계속 사람들을 납치하여 모자란 일꾼을 충당한 것은 분명 무림제파가 안다면 무림공적으로 단죄할 수 있는 천인공노할 일이에요. 하지만 증거가 없어요.”
“거기서 일하던 일꾼들은 우리가 데리고 있습니다. 거기다 금모전의 무사들이나 거기에 모였던 낭인들까지 증인은 많습니다.”
“그런 증인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후란의 반문에 강태웅이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증거가 안 됩니다. 아마 잘되면 광산의 대리인을 바꾸는 정도로 일이 끝날 거예요. 그리고 그 대리인 역시 그들이 세우는 사람이 다시 되겠지요.”
하후란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것이 없었다. 돈과 권력이 있는 그들을 몇 명 힘없는 사람의 증언으로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금모전의 무사들은…….”
“참 순진하시네요. 누가 만약 낭인칠웅 중 한 명을 잡아넣고는 이자가 이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태웅 장사께서는 인정하시겠어요? 아마 음모라고 하실 거예요. 그들도 마찬가지로 음모라고 한다면 누구의 손을 사람들이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세요?”
강태웅의 입에서 짧은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러니 그런 어설픈 증인이 아니라 그들이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를 잡아 금모전이나 만류장의 개입사실을 밝힐 수만 있다면 이후에 어떤 행패를 벌이신다 해도 무림제파에서는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속 나가신다면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고 지금 그만두시고 급히 이곳을 떠난다면 살 가능성은 있다는 말이지요. 물론 모든 것은 유성탄 대형께서 얼마나 강하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어차피 마룡방과 시비가 붙었고 이번에 다시 금모전과 이렇게 되었습니다. 도망만 친다면 우리는 영원히 일어선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끝까지 해볼 것입니다.”
“태웅 장사의 생각이 그러시다니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우선은 만류장의 제안을 수락하세요.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씩 알아내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낭인들에게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려주셨으니 만류장에서도 곧 광산에서 있었던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무조건 유성탄 대형과 낭인들의 사적인 싸움이었다고 밀어붙이세요. 그리고 그곳을 곧 떠났다고 하세요.”
“믿을까요? 누가 봐도 동을 가로챈 것이 우리라는 것이 눈에 보일 텐데요.”
“믿든 안 믿든 어차피 그들은 여러분들을 믿지 않아요. 단지 지금 소란스러우니까 회유하려는 생각일 뿐이지요. 안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다른 문파의 이목을 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류장을 완전히 장악해 버리세요.”
“장악이요?”
“예, 장악이에요.”
“그것은 안 됩니다. 우리는 정의를 표방하는 방을 세우고 싶은 것인지 남의 재물이나 빼앗는 사파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만류장은 호북 제일의 상단이에요. 힘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천하의 모든 상단은 무림세력에서 접수했을 거예요. 그들이 못 하는 이유는 그들이 빼앗아봐야 경영을 못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장악하라는 것은 빼앗으라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장악이에요. 만류장 안의 모든 무사들을 휘하로 만드시고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꼬드겨서 편을 만드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그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저녁 무렵 유성방의 방도들이 방문 앞을 경계하고 낭인칠웅은 방에 모여 강태웅이 가져온 하후란의 의견을 어찌 할지 의논하고 있었다.
“하후란 걔는 왜 만날 숨어서 너하고만 숙덕거리는 거냐?”
유성탄이 의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부터 꺼냈다.
“아직은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서는 안 된답니다.”
“걔나 그 여우영감이나 숨길 정체가 있기나 한 거냐?”
유성탄의 반문에 모두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후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고 강태웅은 그러마 했다. 하지만 유성탄이 묻는다면 강태웅으로서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아는 아우들로서는 유성탄의 흥미를 다른 데로 돌릴 생각을 한다.
“대형, 그것보다 만류장 일이 더 급합니다.”
마동파가 슬쩍 다른 데로 운을 뗐다.
“만류장 일? 그게 뭐가 급한데? 나는 때려 부수니까 재미만 있던데.”
“그래도 대산 형님의 복수를 하려면 빨리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대산의 복수? 대산의 복수가 중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대산의 복수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너희들, 동굴에서 삐적 말라가지고 골골대던 사람들 봤지?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들이 사람을 동굴에 가두는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난 이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맞습니다. 이제는 대산 아우의 일이라고만 하기에는 우리도 너무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죽기 살기로 모든 것을 파헤쳐야만 할 것입니다.”
‘태웅 저거 또 죽기 살기 나온다. 죽으려면 자기나 죽지 왜 남들까지 자꾸 죽는데 끌어들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유성탄이 강태웅을 흘깃 쳐다보자 표도행이 말을 받았다.
“어차피 우리는 대형을 모시면서 목숨 따위는 전부 대형께 맡겼습니다. 대형께서 끓는 기름솥에 들어가라 명하시면 그대로 들어갈 것이고, 도산검림(刀山劍林)에 몸을 던지라면 던질 것입니다. 명만 내리십시오!”
‘얘는 또 왜 이래? 뭔 말만 하면 먼저 앞으로 나가는 통에 말을 못하겠다니까…….’
유성탄의 눈이 이번에는 표도행을 향했다. 그러자 장우왕이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대형! 명을 내려주십시오. 우리에게 죽을 자리를 정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형뿐입니다.”
유성탄의 눈썹이 좁아졌다.
‘얘들이 미쳤나? 전부 짠 것같이 왜 이러는 거야? 사람 곤란하게…….’
유성탄의 눈이 장우왕을 향하려고 하는데 마동파의 입이 열렸다.
“맞습니다.”
“그만! 거기까지! 내가 뭘 어쨌다고 갑자기 모두 비장해져서 이러는 거냐? 난 심각한 거 싫다.”
“그러니까 만류장으로 우선 들어가자 이거지?”
“그렇습니다. 돈도 후하게 주겠다고 했지만 그거야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대충 얼마 달라고 하고는 만류장 안으로 들어가서 하후 소저의 말대로 만류장을 장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후하게 준다고 했단 말이지…….”
유성탄은 돈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듯이 말을 받았다.
“그들이 우리가 낭인칠웅이라는 것을 아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광산에 나타나서 행패를 부린 것이 우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우리 스스로 범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표도행이 만류장에 들어가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범의 아가리가 위험한 거냐?”
“당연하지요. 범의 아가리에 물리면 단숨에 잘려집니다.”
“그래… 범이라……?”
“대형, 범이 뭔지 모르세요?”
“들어는 봤는데 보지는 못했다.”
다시 대화의 초점이 흐려지자 강태웅이 다시 말했다.
“도행 아우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은 어떠냐?”
“태웅아! 만약 이 일에 청담 형님이 끼어 있다면 어쩔 거냐?”
장우왕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물었다. 강태웅이 얼마나 청담을 존경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대형은 한 분뿐이다. 만약 청담 그분이 대형의 반대편에 선다면 우리에게 그분은 더 이상 형님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낭인이었고 청담은 낭인들에게는 전설 같은 인물로 누구도 대형으로 인정하는 사람이었지만 강태웅은 낭인칠웅에게는 오직 유성탄 이외에는 누구도 대형이 아니라는 것을 아우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우선 만류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안으로 들어가서 뒷일을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황대산도 만류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찬성을 했다.
“나는 그들이 한 달에 금자 백 냥을 준다면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들어간다.”
유성탄이 끼어들며 자신은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우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미친놈들. 금자 백 냥이 무슨 애들 이름도 아니고…….”
배득칠은 일찍 찾아온 강태웅으로부터 만류장을 돕는 대가로 한 달에 금자 백 냥을 원한다는 말을 듣자 화가 나서 구시렁거리며 장주인 사도진용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그가 결정을 하기에는 너무 큰돈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금자 백 냥? 하하하! 정말 배짱 한번 두둑하구나! 우리가 제법 큰 문파에 주는 돈이 일 년에 금자 백 냥이라는 것을 알기나 하고 그런 요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배득칠의 말을 들은 사도진용은 어이가 없는 듯이 웃어젖혔다.
“어찌할까요?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주느니 아예 아는 무관에 얘기해서 싸그리 제거해 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황도검 허상돈을 간단히 이긴 놈을 어느 무관에서 건드리려고 할 것 같은가? 지금 저놈을 제거하려면 무당에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무당이 끼어든다면 우리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올 수도 있어.”
사도진용은 장사꾼이었다. 금자 백 냥이란 무척 큰 돈이었지만 유성탄이 자꾸 말썽을 피울 경우 생기는 손해와 그 와중에 변수가 생겨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에 생길지도 모르는 뜻밖의 상황까지 계산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준다고 해라. 단, 우리가 시키는 일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들어준다는 조건을 붙여라.”
사도진용은 손익계산이 나왔는지 금자 백 냥을 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배득칠은 놀란 눈으로 사도진용을 쳐다보다가는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우리한테 뭘 시키려고 그런 조건을 붙였을까?”
강태웅의 말을 들은 유성탄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뭔가 엄청 어려운 일을 시키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이 조건을 수락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찝찝한데요.”
황대산이 더러운 인상을 더 구기며 말했다.
“맞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나쁜 일이라도 시키면 괜히 우리만 나쁜 놈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습니다. 돈을 좀 적게 받더라도 이 조건은 수락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장우왕도 이런 조건을 받아들여서 좋은 일이 생긴 적이 없다는 경험에 입각하여 반대를 했다.
“돈은 물론 선금이겠지?”
유성탄은 그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강태웅에게 물었다.
“글쎄요?”
“무조건 선불로 해라. 우선 받아놓고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안 한다.”
“그래도 약속인데요.”
“맞습니다. 비록 우리가 낭인 출신이지만 아직까지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니들은 약속을 지키라니까, 난 약속이 밥먹여 주지 않는다는 말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사람이다. 난 내 마음대로 한다. 단, 돈은 다 내 거다.”
유성탄이 모두가 걱정하는 일을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
* * *
“야 이 자식들아! 조심해!”
얼굴에 사선으로 칼자국이 나 있는 자는 물건을 나르던 자들이 서로 부딪치며 물건을 떨어뜨리자 얼굴색이 확 변해서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물건을 나르던 자들도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며 후다닥 물건을 주워 다시 어깨에 멨다. 하지만 한쪽의 물건은 귀퉁이가 조금 찢어지며 안의 내용물이 약간 새어나왔다.
“이런 병신 같은 놈들!”
칼자국이 난 사나이는 그 모습을 보자 당장 달려오더니 찢어진 짐을 빼앗더니 찢어진 곳을 묶었다. 그리고는 떨어진 내용물들을 손으로 주워 호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발로 흙을 비비더니 짐꾼의 뺨을 세게 쳤다.
“이 자식아!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맞은 자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반항은 생각도 않고 당장에 잘못했다고 빌기 시작했다.
“또 한 번 실수하면 그때는 죽는다.”
칼자국의 사나이는 살기 띤 목소리로 한번 소리치더니 다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유성우는 물건이 나가는 것을 장부에 적다가는 그 광경을 우연히 보고 말았다. 하지만 짐에서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곧 칼자국의 사나이의 눈길이 사방을 훑자 급히 고개를 돌려 모른 척했다.
“아이고!”
물품반입이 끝나고 유성우는 가도 좋다는 말에 인사를 올리고는 걸어가다가는 무엇엔가 걸린 듯 마당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짐을 나르던 사람들도 모두 돌아갔고 칼자국의 사나이와 그의 부하로 보이는 십여 명의 무사들만 서 있다가는 유성우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소리쳤다.
“조심하게! 젊은 친구가 그렇게 하체가 부실해서야 어디 남자구실이나 제대로 하겠나? 하하하!”
한 명이 주섬주섬 일어나는 유성우를 보며 농담을 건네자 모두 웃었다. 일어난 유성우도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다시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주먹에는 넘어지면서 움켜쥔 흙이 가득 들어 있었다. 유성우는 칼자국의 사나이가 발로 비벼버린 그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가는 넘어지는 척 하며 흙을 집은 것이었다.
‘분명 이상한 가루가 떨어진 것 같았는데…….’
약간 올이 듬성듬성한 천에다가 자신이 가져온 흙을 채를 떠본 유성우는 그다지 보이는 게 없자 혼자 중얼거렸다.
“가만있자… 그래, 여기 보인다.”
자세히 보니 고운 흙가루 사이에 약간씩 하얀 것이 보인 것이다. 그러나 유성우는 실망한다. 너무 조금이라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 하고 있는 거냐?”
유정삼은 나갈 준비를 하다가는 이른 아침부터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는 유성우를 보며 물었다.
“아버님, 나가십니까?”
유성우는 유정삼을 보자 급히 일어서며 아침인사를 했다.
“어젯밤 일하느라 무척 늦게 들어온 것 같은데 이른 아침부터 거기서 뭐 하는 거냐?”
유성우는 별거 아니라고 하려다가는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고는 자신이 채를 뜬 가루를 내밀며 말했다.
“사실은 어제 현령 어르신 명으로 반입되는 물품들의 장부를 정리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짐들 중의 하나가 찢어지면서 이상한 가루가 땅에 떨어졌기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집어왔습니다. 그래서 채를 떴는데 이게 그겁니다.”
“흙가루 같은데……?”
유정삼은 유성우가 건네는 가루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 것은 아니냐? 내가 보기에는 그저 흙가루 같구나.”
“어제 분명 흰 가루가 떨어졌습니다. 거기도 보시면 흙가루들 사이에 듬성듬성 허연 게 보일 겁니다.”
유정삼은 유성우의 말을 듣고는 자세히 보다가는 코로 가져가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다. 그리고는 그 가루를 그대로 땅에 버리고는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내 눈에는 흙가루밖에 안 보이는구나. 아무래도 네가 너무 힘든 것 같구나. 오늘 현령 어르신께 이제 그만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내가 보기에 네가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진 것 같다. 이제부터는 일 나가지 말거라.”
“아버님!”
겨우 잡은 증거일지도 모르는 가루를 그냥 버리는 유정삼을 보며 유성우가 깜짝 놀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예 일을 그만두라는 유정삼의 말에 입을 닫았다.
‘분명 아편인데… 어떻데 현령께서 아편을 운반하는 자들과 아는 거지?’
유정삼은 유성우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하고는 심각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유정삼은 포쾌 생활 이십 년이 넘는 나름 경험 많은 포장이었다. 그는 유성우가 내미는 흙가루를 보자마자 아편인 것을 눈치 챘었다. 하지만 유성우가 이 일에 더 이상 끼어드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는 가루를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조사를 진행해 봐야 할 것 같구나.”
관으로 향하는 유정삼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다.
* * *
낭인칠웅이 열 명의 방도들을 이끌고 만류장으로 들어서자 만류장의 무사들이 모두 흉흉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낭인들이야말로 인상 쓰고 쳐다보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었으니 같이 그들에게 인상을 쓰자 모두 고개를 돌린다.
“하하하! 이것 참 천하의 황도검 허 대협을 이긴 기인이라 하여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인 줄 알았더니 이리 젊으신 분들일 줄은 생각도 못했소이다 그려.”
장주인 사도진용의 아우이자 부장주의 직을 맡고 있는 사도진철이 직접 마중을 나와서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유성탄을 맞았다.
“안으로 드시지요. 나 사도진철이 비록 무공 하나 모르는 상인이지만 천하의 영웅호걸을 사귀는 것은 밥 먹는 것보다도 더 좋아합니다.”
유성탄은 사도진철의 과분한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게 뭐냐? 아주 맛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대단한 진수성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호북제일상단답게 나오는 음식이 완전히 달랐다. 유성탄은 연신 음식을 입에 집어넣으며 아우들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어댔다.
“장주님께서 여러분들이 만류장의 식구가 된 것을 환영한다고 직접 명을 내리셔서 준비한 음식입니다. 많이 드시고 내일부터는 만류장을 위해서 힘을 써주십시오. 만류장은 절대로 혼자만 잘되려고 남을 배신하고 하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돕는다면 우리 역시 최상의 대우로 그 보답을 할 것입니다.”
상이 물러가자 사도진철은 유성탄에게 세상에 한 잔밖에 안 남은 특별한 술이라며 술을 한 잔 권했다. 당연히 유성탄은 단숨에 꼴까닥 삼키고는 입맛을 다셨다.
“어떻게 됐느냐?”
“아주 맛있게 먹더랍니다. 먹고는 입맛까지 다셨다는군요.”
“음! 약이 효과를 나타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삼 일 정도 지나면 온몸에 고통이 일어날 것입니다. 듣기로는 그 고통이라는 것이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해약을 준다고 하면 혀로 발바닥을 핥으라고 해도 핥을 거라고 했습니다.”
“감히 만류장을 건들였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절대로 금방 해약을 주지 말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면 그때 해약을 주도록 해라.”
“걱정 마십시오.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런데 해약을 먹고 나면 어느 정도까지 버티느냐?”
“길면 석 달 짧으면 한 달 안에 다시 고통이 온다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진용은 사도진철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놈에게 사용하려고 한 것인데 정말 이상한 놈에게 사용하고 나니 좀 아깝기는 하구나.”
낭인칠웅에게 사용한 독은 세상에 구하기 힘든 만성독약이었다. 아예 해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증상을 완화하는 완화제만이 있을 뿐이었는데 아끼고 아끼다 유성탄에게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청담이 내일 이곳에 온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청담이 왜?”
배득칠의 말을 들은 사도진용은 무척 놀란다. 말투로 보아 청담을 무척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또 돈이겠지요!”
사도진철도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말했다.
“퓨후! 나 사도진용이 지금까지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청담 그놈을 알게 된 것은 정말 후회가 된다.”
사실 사도진용이 당가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독약을 구한 이유가 바로 청담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담을 알면 알수록 너무 위험한 자라는 것을 느끼고는 독약을 사용할 계획을 포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