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만류장
“강태웅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마효춘이 서찰을 하후란에게 넘기며 말했다.
“생각보다 큰 게 걸렸네요.”
서찰을 읽던 하후란의 음성도 심각해졌다.
“마룡방에 금모전 거기다 혈문까지…….”
하후란이 중얼거리는 말을 듣던 마효춘이 끼어든다.
“잘못하면 본문까지 망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아가씨! 만약 아가씨께서 계속 유성탄과의 관계를 고집하신다면 저로서는 문주님께 보고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좀 기다려봐요. 저도 생각 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강태웅의 서찰에는 유성탄이 이번 광산의 일을 끝까지 파헤칠 생각을 했으며 그 뒤에는 관부와 금모전 그리고 호북상단인 만류장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귀찮은 것은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 왜 이번에는 이러는 거야? 금모전도 만만치 않은데 관부라… 아니 관부는 더 건드리기가 어려운데… 거기다 만류장이면… 가만있자… 거기 아들이 무당의 속가제자에다가 무당에도 매년 엄청난 돈을 기부하는 곳인데… 잘못하면 무당과 척을 지는데… 정말 힘드네!’
강태웅은 도움을 바라지만 하후란으로서도 혼자 결정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특히 무당과 시비가 붙는다면 중원무림에서 살기는 애당초 틀리게 된다.
* * *
금모전 백은단 단주 위지월은 이미 하루가 넘게 기다렸지만 육조린이 나타나지 않자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보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호북과 강서의 경계였다. 무당이 알면 안 되기 때문에 경계는 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불안한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어찌된 걸까요? 육 부당주께서는 확실한 분인데요.”
대주 만가호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것이다.
“몸이 날랜 애들 몇 명을 변복을 시켜 광산으로 보내봐라.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전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명을 달라고 연락을 해라.”
“알겠습니다.”
* * *
“이게 그렇게 비싸단 말이냐?”
“그럼요. 아마 이 정도면 못해도…….”
다섯 대의 우차에 실린 동을 보며 유성탄이 뭔가 좋은 듯이 말하자 마동파가 아는 척한다.
“못해도? 왜 말하다 마냐?”
“하여간에 비쌉니다.”
“짜식 모르는구먼! 하여간에 잘난 체는……. 히히, 어쨌든 비싸단 말이지. 그리고 이제 이게 내 거란 말이렷다.”
유성탄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동을 쓰다듬었다.
“저기가 관부라는 데냐?”
장우왕과 황대산은 굉도에서 발견한 사람들을 의원으로 옮기기 위해 영호충 등 방도들을 모두 데리고 갔고 금모전의 무사들은 혈도를 짚어놓은 채 굉도에 사람들이 갇혀 있던 곳에 가두어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유성탄 일행은 우선 광산의 대리인을 정했다는 관청부터 조사하기로 했다.
표도행은 갇혀 있던 마을 사람들과 황대산이 기억하는 그 당시 일을 처리한 관원부터 알아보기 위해 어디론가 갔다. 어떻게 알아낼지는 유성탄은 알 수가 없었지만 하여간 표도행은 뭐든지 알아오는 데는 귀신같았다.
그리고 관부 앞 객잔에 앉아 관부의 문을 보던 유성탄이 물었다.
“예, 맞습니다. 뭐 이상한 점이라도……?”
강태웅이 유성탄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는 물었다.
“몰라… 그런데 이상하게 내 기억에 저런 문이 있네. 가만있어 봐, 저 사람들 누구냐?”
유성탄은 관부 안에서 나오는 포쾌를 보더니 물었다.
“포쾌 아닙니까? 도둑이나 소매치기를 잡는 사람들입니다. 마을의 치안도 담당하지요.”
“그래? 포쾌라…….”
유성탄이 충동을 나온 지 이제 겨우 육 개월이 되어간다. 용병생활을 약 삼 개월 정도 했고 여기까지 오는데 삼 개월이 지났다. 그러면서 산속을 헤맨 게 거의 두 달이 넘는 그는 아직 포쾌들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이상해? 왜 이렇게 저들이 친근해 보이지……?”
관부에서 나온 두 명의 포쾌는 방망이를 건들거리며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그때 왈패의 패거리 정도로 보이는 덩치 하나가 포쾌들을 보며 인사를 하는 장면이 유성탄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유성탄은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다!”
“대형! 아버님을 보셨습니까?”
아우들도 모두 일어서며 창가를 쳐다보며 놀라 물었다.
“아니!”
“그럼?”
“이 천재적인 머리가 그렇게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내고 있다. 나나 되니까 기억하지 너희들 같으면 평생 기억 못 했을 거다.”
“뭘 기억해 내셨는데요?”
철패가 물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기억해 냈다. 나 유성탄의 아버지의 직업은 바로 포쾌였어. 분명해!”
“어떻게 아셨는데요?”
“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아버지와 같이 관청에 간 적이 있었다. 그게 내게는 무척 신기했었는지 저기 관부하고 포쾌를 봤더니 생각이 난다. 하하하! 대단하지 않냐? 이런 식으로 하나씩 기억해 내다 보면 아마 곧 찾을 수 있을 거다.”
“여섯 살이요? 전 네 살 때 일도 기억하는데요! 솔직히 여섯 살 일곱 살 때 일도 기억 못 하면 좀 미련하다는 소리 듣는 것 아닙니까?”
철패가 느낀 대로 말한다. 그리고 유성탄의 눈치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낀 마동파가 급히 수습에 들어갔다.
“대형, 철패 이놈 말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려서 맞고만 자라다 보니까 그게 머리에 생생하게 박혀서 그런 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홉 살 은 되어야 그때 일을 기억하지요.”
“동파 형님, 전에 저한테 세 살 때 일도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그랬잖아! 난 좀 특별났었다고, 보통은 아홉 살이다.”
“그렇다면 나도 특별난 거군요.”
‘이것들이 대형을 놔두고 완전 바보를 만들고 있네, 그냥 한 대씩…….’
“대형! 찾았습니다.”
그때 표도행이 뛰어 올라왔다.
“그러니까 그때 업무를 봤던 자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주 욕심이 많기로 유명하더군요. 현령과 인척관계에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현령이 끼지 않고 혼자서 한 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잡아서 족쳐보자.”
듣던 유성탄이 나섰다.
“관원을 마음대로 잡아서 족치는 것은 무림의 큰 사파들도 함부로 하지 않는 일입니다. 잘못하면 평생 쫓겨 다닐 수도 있습니다.”
“거참! 더러운 법이구나.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서 한 마을이 완전히 절단이 났는데 관원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관원은 관원만이 조사할 수 있습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유성탄이 일어서더니 말했다. 하지만 누가 족쳤는지 모른다면 아무 일 없을 것 아니냐?”
“그렇기는 하지만 모르게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납치해서 멀리 끌고 간 다음에 알아낼 것은 알아내고 땅에 묻어버리면 되는데… 아야!”
말하던 표도행의 뒤통수를 유성탄이 손바닥으로 세게 쳤다.
“하여간에 이따금 너희들 얘기하는 것 보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그랬는지 숨길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철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해 봐.”
“우선 잡아서 족치는 겁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얼굴을 두건 같은 걸로 가려서 정체를 보이지 않습니다.”
철패는 유성탄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족쳐서 알아낼 것을 알아내고는 어디 가서 말하면 온 집안을 완전히 피바다로 만든다고 협박하는 겁니다. 만약… 그래도 정체가 알려진다면 제가 맷집이 좋으니까 저 혼자 한 일이라고 하고서 잡혀 들어가는 겁니다. 알아낼 것은 알아내고 대형에게는 피해가 안 가는 방법입니다.”
“말하는 것도 피바다니 뭐니 해서 수상스럽더니 생각하는 것도 꼭 지 같은 생각만 해요. 에그!”
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었지만 유성탄에게는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이는 것도 싫지만 내가 걸리기 싫다고 아우를 잡혀 들어가게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보니까 무림세력들도 채무관계가 걸리면 끼어들지 않는다고 하던데 관원들도 마찬가지냐?”
유성탄의 말에 표도행이 대답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채무관계여야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놈을 내 야바위 판에 끌어들여라!”
“예~ 에?”
‘이것 봐라! 물건이 건너간 게 벌써 열흘은 지났을 텐데 아직까지 돈을 안 보낸다 이거지… 이것들이 우리를 핫바지로 보나!’
호북성 장도현의 주부직을 맡고 있는 양호준은 만류장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자 심기가 무척 불편했다. 하지만 만류장에 직접 찾아가서 돈이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에이! 돈이 들어올 때가 됐다고 너무 많이 헤프게 쓴 것 같구나. 이걸 어쩐다.’
양호준은 두 달이나 세 달에 한 번씩 광산에서 빼돌린 동을 금모전에 넘기는 즉시 만류장으로부터 돈을 받아왔었다. 그가 다 가지는 것은 아니고 모두 현령에게 바쳤다. 물론 그중 떡고물로 십분지 일은 자신의 전낭으로 들어갔다. 말이 십분지 일이지 액수가 크다 보니 그것도 만만치 않은 돈이었다. 현령도 알고는 있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모든 것을 덮어쓸 양호준이기에 눈감아주었다. 그런데 양호준이 근래에 장도현의 제일 큰 홍루인 운하루의 기생에게 폭 빠져 있었다. 장도현이 현치고는 상당히 큰 현이다 보니 기루도 그 값이 큰 도시에는 미치지 않아도 일개 주부가 다니기에는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만류장 말고도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돈이 많은 양호준은 기루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렸다. 양호준이 생기는 돈이 꽤 많다고는 하지만 부자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돈을 썼지만 갈수록 들어오는 돈보다 기루에서 나가는 돈이 많다 보니 점점 돈이 궁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곧 돈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는 급전으로 돈을 빌려 쓴 것이 있었다. 그런데 돈이 안 오자 다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건방진 놈들! 일개 고리대금이나 하는 흑도 놈이 감히 관원인 나를 협박해! 돈만 갚고 나면 두고 보자.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개털을 만들어 버릴 테니…….’
혼자 중얼거리며 걷던 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가면 다시는 안 옵니다. 한 푼을 가면 열 푼, 한 냥을 가면 열 냥, 천 냥을 가면 만 냥을 줍니다. 세상에 너무 쉬운 대박의 기회! 오늘은 내가 돈을 잃어주려고 왔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로 호객을 하는 유성탄의 외침이 그의 귀에 들린 것이다. 돈에 궁한 사람에게는 뭐든지 돈이 된다면 솔깃해지는 법이다.
“뭐야! 야바위잖아!”
가서 흘낏 쳐다본 양호준은 야바위 판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돌아서려고 한다. 어차피 속임수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으아악! 손님, 우와! 땡 잡으셨습니다. 금자 백 냥입니다.”
양호준은 금자 백 냥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돌리던 걸음을 멈췄다. 거기에는 표도행이 유성탄으로부터 금자 백 냥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야바위 판에 그것도 유성탄이나 표도행의 모습에서 금자 백 냥이 왔다 갔다 한다면 당연히 의심이 가야 하는 법이지만 양호준은 돈이 급했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달랑 동전 이십 문만 남아 있었다.
“하하하! 세상에 이런 운이! 동전 열 문으로 금자 백 냥을 만들다니… 하하하! 정말 운이 좋구나!”
양호준이 들으라는 듯이 커다랗게 말하는 표도행을 보며 옆에서 바람을 잡던 철패가 말했다.
“야! 나도 동전 열 문만 있으면 오늘 팔자 고치는 건데 너무 아쉽구나.”
너무 어색한 몸짓에 어눌한 말이었지만 양호준의 눈에는 표도행이 받는 금자만이 들어왔다. 그런데 금자를 꺼내는 유성탄의 전낭 안에는 아직도 금자가 수북한 것이 보였다.
“그게 진짜 금자요?”
“그럼 진짜지 가짤까 봐 그러시오. 못 믿겠으면 보시오.”
유성탄이 금자 한 냥을 꺼내서 양호준에게 주었다. 그리고 양호준은 분명한 금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그리고 돈을 돌려받은 유성탄은 다시 패를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요!”
“나는 여기!”
왼쪽에 표도행이 금자 열 냥을 다시 걸었고 가운데에는 하후란이 은자 두 냥을 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표도행은 금자 열 냥을 잃었고 하후란은 은자 이십 냥을 받았다.
‘이것 봐라! 판이 엄청 큰데…….’
양호준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전 열 문으로 금자 백 냥을 만들었다는 표도행의 전설을 자신도 만들어 보기로 한다.
“이거 오늘 왜 이러지? 야바위 고수만 오늘 만났나 아니면 내가 재수가 없는 거야, 에이!”
유성탄이 금자 두 냥을 양호준에게 건네주며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으하하하! 이것 봐라! 일 각 만에 금자가 두 냥이면… 흐흐흐!’
양호준은 정말 금자 두 냥이 들어오자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금자 이십 냥을 만들 생각으로 두 냥을 모두 걸었다.
“아이고! 제가 이겼습니다. 후우, 손님 눈썰미가 어찌나 좋으신지 열 판 만에 겨우 한 판 이겼네요.”
유성탄이 두 냥을 쓸어갔다. 그러는 동안 표도행도 금자를 오십 냥 가까이 잃었다.
양호준은 멍한 눈으로 판을 쳐다보더니 쓸쓸히 발을 돌렸다. 한 판에 다 잃어버린 것이다.
“여보시오.”
표도행이 돌아서는 양호준을 불렀다.
“왜 그러시오?”
“보아하니 야바위 패를 아주 잘 보시던데 돈만 좀 있으면 금방 엄청 버실 텐데 왜 그냥 가시오?”
“돈이 떨어졌수다.”
양호준이 약 올리냐는 듯이 짜증난 목소리로 말하자 표도행이 금방 말을 받았다.
“그래도 실력이 아깝네. 그럼 내가 돈을 빌려줄 테니 따서 갚으시겠소?”
“돈을 빌려준다고요? 아니 처음 보는 나한테 왜?”
“방금 보니까 실력이 엄청 좋던데 뭐가 걱정이겠소. 내가 운이 좋아 금자 백 냥을 벌었는데 금방 오십 냥을 잃었소이다. 더 이상 했다가는 다 잃을 것 같고 그냥 가기에는 너무 기회가 좋고 하니 내가 돈을 빌려줄 테니 대신 따면 반은 날 주시오.”
양호준은 표도행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방금까지 분명 열 판을 계속 이기지 않았던가. 그래서 동전 이십 문으로 금자 두 냥을 일 각 만에 만들었었다. 그렇다면 금자 오십 냥이면 일 각 안에 금자 천 냥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금자 천 냥이면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평생 기루만 다니며 살 수 있었다.
“좋수다. 빌립시다.”
표도행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돈을 들었다. 그러나 다시 돈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금자 오십 냥이나 오가는데 문서는 작성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는 조그만 종이를 하나 꺼내더니 문서를 작성했다.
“세상에! 하루에 두 배라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오?”
“하루까지 빌릴 이유가 어디 있겠소. 이 판만 끝나면 계산하고 헤어질 텐데, 안 그렇소?”
양호준은 표도행의 말에 그건 그렇다는 생각을 하고는 수결을 한다. 그러자 표도행은 하후란을 보며 증인을 서 달라고 부탁했고 하후란의 수결도 받았다.
“자, 됐으니 이제 돈 좀 많이 법시다.”
‘으아악!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관청에 들어선 양호준은 계속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자신이 미쳐도 어떻게 그렇게 미쳤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뻔한 속임수였는데 내가 어찌 홀려도 그렇게…….’
양호준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가 금자 오십 냥을 잃는 데는 반 각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성탄은 겨우 본전을 찾았다며 오늘은 재수가 없는 것 같아서 그만 하겠다면서 판을 걷어 사라졌다.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양호준의 목덜미를 잡아챈 표도행은 당장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관원이라는 것을 밝히고 하루의 시간을 번 양호준은 하루 종일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양호준 이놈은 모든 것을 현령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했습니다. 현령은 만류장과 결탁을 했고 금모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군요.”
양호준은 금자 오십 냥이 하루 만에 금자 백 냥으로 변하자 모두 술술 불었다. 빚을 탕감해 준다는 조건이었다.
“현령을 족칠 수는 없지만 만류장을 조사해서 현령이 지은 비리의 증거를 찾으면 현령도 잡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류장으로 간다.”
유성탄이 간단하게 결정했다.
만류장이 있는 대장현은 상당히 큰 도시로 관청도 현이 아닌 지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도현에서는 겨우 반나절 거리였다.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상점들은 거의가 다 만류장 것이라는 말이냐?”
“그렇다고 합니다.”
강태웅이 대답했다. 모든 정보는 하후란에게서 받고 있었다.
하후란은 일이 너무 커질 듯싶자 고심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이 달성되려면 어느 정도 모험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유성탄의 능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 이후는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양호준이 처한 상황이나 현령에 대한 정보도 하후란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곳에는 어디나 있는 흑도의 왈패들도 없답니다. 관부도 완전히 만류장을 위해서 존재한다 할 정도로 모든 업무를 만류장에 맞춰 이루어진답니다. 거기다 무당에서 나온 도사들이 장에 상주하면서 장주를 지켜준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런 놈들이 뭐가 부족해서 가난한 산골 마을까지 쑥밭을 만들면서까지 더 돈을 벌려고 하냐? 이런 놈들이 산적보다도 더 나쁜 놈들이다.”
“어찌하시렵니까?”
강태웅이 물었다.
“계획 같은 것은 없다. 내 식대로 하련다.”
“저희들은 대형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대장현의 대로에 유성탄 일행이 나타난 것은 점심이 시작되기 전인 오시 초였다.
“그러니까 딴 말 말고 한 달에 은자 한 냥씩만 내라고. 그러면 우리가 완벽하게 보호해 줄 테니까. 알았어!”
대로의 첫 가게에서부터 시작된 유성탄의 행패는 중간에 있는 주루에 도착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정확하게 만류장에 속해 있는 상회들만 골라가며 유성탄은 보호비를 달라고 했다. 물론 그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 감히 대장현에서 그것도 만류장의 상회만 골라가며 협박을 하는 유성탄은 누가 봐도 세상물정 모르는 양아치였다.
“이거 왜 이렇게 맛이 없는 거야!”
비싼 것만 잔뜩 주문한 유성탄은 전부 한 점씩만 맛보더니 맛없다며 옆에 탁자를 엎어버렸다. 당연히 안에 있던 손님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모두 나가버렸다.
“연락했냐?”
“예!”
주인은 점소이에게 만류장에 연락했냐고 물었다. 그러나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이미 상회의 주인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만류장의 무사들이 오고 있었다.
주루 안으로 들어서던 장소림은 잠깐 멈칫했다. 철모르는 왈패들이 대장현에 흑도파가 없자 멋도 모르고 자리잡겠다고 나타난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것을 느낀 것이다. 탁자에 앉아 맛없다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유성탄의 뒤에 아우 여섯이 서 있었고 그 주위를 다시 십여 명의 방도들이 둘러서 있었다. 그 모습이 자못 유성탄을 거물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어디서 온 자들이기에 대장현에서 행패를 부리는 건가? 이곳이 만류장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정말 몰라서 이러는 것이냐?”
“만류장! 그게 뭐 하는 곳인데?”
유성탄은 입에 음식을 맘껏 넣고는 씹던 음식을 밖으로 튀기며 소리쳤다.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구나. 여봐라, 저놈들을 모두 제압해라. 만류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보여줘야겠다.”
“무슨 일이냐?”
만류장 총관 배득칠은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축 늘어져서 실려 들어오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상한 놈들이 나타나서는 보호비를 달라며 행패를 부린다는 말을 듣고 나갔는데 오히려 당하고 온 모양입니다.”
“쯧쯧, 돈은 엄청 받는 놈들이 일개 왈패 놈들에게… 처음부터 장소림을 보내지 그랬냐?”
“장소림이 갔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뻗어서 왔습니다.”
배득칠의 눈이 커졌다.
“장소림이 당했다면 보통 놈들이 아니란 말인데… 아무래도 장주님께 보고를 드려야겠다.”
“이 자식들이 아직 무서운 맛을 보지 못한 모양인데. 야, 철패야, 부순다는 것이 뭔지 좀 보여줘라.”
“예!”
철패의 커다란 몸이 움직이자 상점 안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여기에 난 손해는 만류장에 청구해라.”
유성탄은 부서진 상점 안을 슥 한번 보더니 다른 상회로 걸음을 옮겼다.
“왜 이렇게 시끄럽냐?”
밤새 상점과 기루를 부순 낭인칠웅과 유성방의 방도들은 가장 큰 객잔을 하나 골라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한 시진도 안 되어 유성탄은 잠에서 깨어났다. 객잔을 포위하는 사람들의 기척을 느낀 것이다.
유성탄이 나오자 이미 아우들과 방도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 안 잤냐?”
“저희들은 대형 같은 배포가 없습니다.”
강태웅이 유성탄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배포 좀 키워라.”
말을 마친 유성탄은 객잔 밖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만류장의 호위장 태강룡이다. 네놈들이 감히 만류장의 상회를 부수고 무사들까지 부상을 입힌 흑도 놈들이냐?”
콧구멍을 후비며 태강룡의 외침을 듣던 유성탄은 이번에는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 자식 목소리 한번 크구나. 그런데 너 이거 아냐?”
유성탄이 묻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태강룡이 잠시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난 목소리 큰 놈이 싫다.”
유성탄은 태강룡보다 더 크게 소리치며 순식간에 태강룡의 앞까지 달려왔다. 보법을 구사한 것도 아닌데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유성탄이었다.
“으윽!”
호위장이라고는 하나 결국은 호위무사들 중 강한 자일 뿐이었다. 무공만으로 치자면 마룡장의 견준구에게도 비하지 못할 실력인 태강룡으로서는 유성탄의 기습을 막을 수는 없었다.
“쳐라! 죽이지는 마라!”
단 한 방에 태강룡을 기절시킨 유성탄이 아우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태강룡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식이 목소리만 커가지고…….”
“장주님, 아무래도 사파의 무림인들 같습니다. 새벽에 갔던 호위장 태강룡도 기절해 실려 왔습니다.”
만류장의 장주인 사도진용은 묘시(卯時)면 언제나 일어나서 집무를 시작했다. 그의 그런 부지런함이 지금의 만류장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서류를 검토하던 그의 집무실에 총관 배득칠이 뛰어 들어오다시피 와서는 급히 보고를 드렸다.
“사파의 무림인?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여기는 무당산이 지척인 대장현이다. 그런데 천하의 어느 사파가 여기에 나타나서 행패를 부린다는 말이냐?”
“하지만 일개 흑도인으로 보기에는 너무 강합니다. 어젯밤에만도 스물이 넘는 가게가 부서졌습니다. 안에 손상된 물건들까지 합치면 하루 만에 은자 오백 냥 이상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상인인 사도진용은 다른 말보다 손해라는 말에 특히 민감했다.
“태강룡까지 한 수에 당했다면 보통 인물들은 아닐 것이다. 호위무사들 말고 식객으로 머물고 있는 무림인들에게 부탁해 봐라. 황도검 허상돈이라면 아마 쉽게 그들을 처리할 것이다.”
황도검 허상돈이라면 무림 백대고수에 가까운 실력을 지녔다는 고수였다. 배득칠은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흠! 이상하게 일이 한꺼번에 터지는군. 기분이 안 좋아, 기분이…….’
광산에 보냈던 낭인 용역들이 고수에게 걸려 모두 마을을 도망쳐 왔다는 보고를 이미 청담에게 들은 그였다. 그리고 금모전에서는 아직 동을 받지 못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만류장의 본장이 있는 대장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사도진용은 아직까지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말대로 지척에 있는 무당파라는 거대세력을 믿는 마음에서였다.
“응! 저놈은 다른데…….”
유성탄이 다시 대장현 대로에 나타난 것은 진시(辰時)가 막 지난 사시(四時) 초엽이었다. 다시 상점들을 돌며 보호비를 걷을 생각이던 유성탄은 대로 가운데에 서 있는 한 명의 무인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우리가 쫓아버릴까요?”
얼마 전 금모전의 육조린을 이긴 후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마동파가 나서며 물었다.
“아서라, 니들 나서면 죽는다.”
유성탄은 까불지 말라는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더니 몽둥이를 어깨에 걸치더니 앞으로 걸어나갔다.
황도검 허상돈은 껄렁거리며 걸어오는 유성탄을 보며 절로 혀를 찼다. 유성탄 정도의 허접한 무인에게 박살난 만류장의 호위무사들이 어이가 없어서였다.
“뭐 하는 놈인데 거기 떡 버티고 서서는 공포분위기 조성하는 거냐?”
허상돈은 유성탄이 떠드는 말을 듣고는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걸어올 때부터 느꼈지만 입까지도 너무 걸기 때문이었다.
“어린놈이 싸움에서 몇 번 이겼다고 너무 안하무인이구나. 아무래도 내가 세상이 얼마나 큰지 가르쳐줘야 할 것 같구나.”
허상돈은 말을 끝내자 등에 매고 있던 자신의 검을 뽑았다.
“무식한 놈! 세상에 아직도 세상이 넓다는 것을 모르는 무식한 놈이 여기에 있었구나. 이놈아, 두 달간 꼬박 걸어도 끝에 도착하지 못할 정도로 큰 게 바로 세상이다. 좀 배워라!”
허상돈은 유성탄의 말에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우물 안의 개구리란 뜻을 이상하게 해석해서는 허상돈을 무식한 놈으로 만든 유성탄은 어깨에 걸친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선방이었다. 실지로 몽둥이와 유성탄의 주먹을 따진다면 맞는 사람으로는 유성탄의 주먹을 더 무서워했다. 하지만 유성탄이 몽둥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버지를 닮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몽둥이를 사용하면 팔보다 더 길게 상대를 맞출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빠르기는 하지만 공격에 초식이 없었다. 피식 웃음을 지은 허상돈의 검이 빠른 속도로 유성탄의 미간을 찔러왔다. 그런데 그 빠르기가 어찌나 빠른지 유성탄은 피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뭐야! 이게…….”
허상돈은 분명 유성탄의 미간을 맞춘 검이 뭔가에 튕기는 듯한 탄력을 느끼며 놀라고 만다. 하지만 놀라기는 유성탄도 마찬가지였다.
‘이놈 이제 보니 엄청 빠르구나.’
허상돈의 무공을 굳이 비교한다면 안남에서 유성탄과 처음 붙었던 비월문의 장로였던 대월인과 맞먹는 고수였다. 아우들과의 비무로 유성탄도 이제 싸움경험이 많이 늘었지만 그들의 속도와 허상돈의 속도는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컸다.
“이놈이 치사하게 말도 없이…….”
유성탄은 미간을 찌르고는 급히 뒤로 물러서는 허상돈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자기가 먼저 선방을 날린 것은 이미 잊어버린 그였다.
‘미간은 그 자체로 수련이 안 되는 곳인데 어떻게 나의 검을 미간으로……?’
미간으로 호신강기를 펼쳤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 허상돈은 잠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곧장 자신의 다리를 쳐오는 유성탄의 몽둥이에 생각할 여유를 잃고는 다시 검을 찔러왔다.
‘이런 놈들은 피해가며 싸워봤자 이기지 못한다.’
유성탄은 그 상황에서 다시 쾌검을 구사하는 허상돈의 몸놀림에 감탄하며 찔러오는 검을 그대로 가슴으로 받으며 공격의 고삐를 풀지 않았다.
“이놈이 자살하려고 이러는 거야 뭐야?”
허상돈은 가슴을 자신의 검에 열어주며 달려드는 유성탄의 공격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다고 당황할 사람은 아니었다. 유성탄의 몽둥이는 짧은 육모였고 자신의 검은 긴 장검이었다. 몸에 닿아도 자신의 검이 먼저였다. 거기다 자신의 몸에는 호신강기가 펼쳐 있어서 몽둥이 따위로는 충격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검은 가슴을 뚫는 순간 상대는 그대로 죽을 것이었다.
“으악!”
허상돈은 자신의 호신강기를 믿었다. 거기다가 유성탄의 몸에서는 내공의 흔적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다리에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허상돈의 검은 유성탄의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검이 마치 나무에라도 박힌 듯 꿈쩍하지 않자 허상돈은 순간 당황했다. 처음 경험하는 기사(奇事)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든 유성탄은 몽둥이로 허상돈의 다리를 그대로 쳤다. 유성탄의 힘에 허상돈의 다리 정도면 내공이 깃들지 않은 몽둥이는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러져 나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허상돈의 다리에 몽둥이가 닿는 순간 강한 반탄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의 선천강기가 몽둥이로 흘러 들어갔다.
다리가 완전히 박살난 허상돈은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고꾸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고수답게 기절하거나 전의를 잃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그 와중에도 유성탄의 가슴에 박힌 검을 비틀고 있었다. 유성탄의 가슴을 완전히 헤벼 놓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은 여전히 꼼짝도 안 했고 이어지는 유성탄의 주먹을 면상에 맞고는 그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유성탄은 그저 하던 대로 한 명을 때려눕힌 것이었지만 이 일은 유성탄이 초절정고수를 쓰러뜨림으로써 정식으로 무림에 이름을 내는 첫 번째 계기가 된다.
“빠르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유성탄이 언제나처럼 손을 탁탁 털며 한마디 하자 아우들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유성탄을 번쩍 안았다.
“대형, 정말 대단하십니다.”
“야야야! 내려놔라. 어지럽다.”
“봤지요? 세상에 황도검 허상돈을 저렇게 쉽게…….”
숨어서 싸움 광경을 보던 하후란이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마효춘에게 말했다.
“정말 놀랍군요! 몇 달 전만 해도 얻어터지기만 하던 놈이…….”
유성탄과 사사건건 입씨름을 하던 마효춘도 가슴이 서늘해 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서운 놈! 갈수록 세지는 것 같은데… 이거 이제 겁나서 함부로 하지도 못하게 생겼잖아.’
“운종아! 저 아이가 누군지 아느냐?”
객잔 이층 창문으로 유성탄을 보고 있던 청오 진인은 자신을 시종하고 있던 운종에게 물었다. 운종은 대정현을 책임지고 있는 무당지관의 책임자였다. 무당은 다른 곳과는 달리 호북지역에는 여러 개의 지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직 누군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제부터 상당히 많은 말썽을 부리고 있어서 예의 주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만류장의 직할 상회만 건드리고 있는데 그냥 보호비나 뜯으려고 하는 흑도인은 아닌 듯싶습니다.”
역시 무당답게 이미 유성탄의 행적을 하루 만에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대단한 아이야……. 황도검이면 무당의 일대제자라도 이기기 힘들 것인데 어찌 저리 쉽게…….”
무당의 장로인 청오 진인은 무림 백대고수 중에서도 상위에 속해 있는 자였다. 호남의 제갈세가에 가던 그가 대정현에 들르자 지관장이던 운종이 식사대접을 하겠다며 객잔의 식당으로 그를 안내했고 가벼운 소채와 만두로 끼니를 때우던 그의 눈에 유성탄과 허상돈의 대결이 보인 것은 우연이었다.
“저 아이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에 전혀 사기가 없다. 아주 어린아이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어. 운종아! 내가 시간이 없어 일단 그냥 떠나지만 만류장의 요청이 있더라도 우선은 저 아이를 건드리지 말도록 해라. 그리고 저 아이의 행적도 잘 주시하고.”
“알겠습니다.”
아우들과 몰려다니며 큰소리치고 있는 유성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청오 진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뭐라고 허상돈이 당해!”
“예, 본 자들의 말에 의하면 십 초 만에 기절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아니 일개 흑도파라는 놈이 허상돈을 십 초 만에 쓰러뜨렸다면 그놈이 그럼 무림 백대고수에 들기라도 하는 놈이란 말이냐?”
“그게…….”
배득칠은 사도진용의 말에 뭐라고 답할 수가 없었다.
“허상돈이 당했다면 싸우기보다는 어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 정도의 고수라면 우리 편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이 더 이익일 것이야.”
말을 한 사도진용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 정도의 고수가 보호비를 걷는다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배 총관 자네가 직접 가서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만약 진짜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 아예 우리 장에서 먹고 자고 하라고 해봐라. 그렇지 않아도 곧 큰일이 일어날 텐데 무당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일이고 해서 약간은 불안했는데 그 정도의 고수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대로의 상점 십여 개가 새로이 부서지고 있었다.
유성탄은 만류장이 황대산 마을의 광산으로 번 돈만큼은 손해 보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포천망쾌」 4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