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혈문오살의 패배
“이게 무슨 꼴이냐?”
암습이 전문인 조황은 날이 밝자마자 고화월의 청으로 유성탄 일행이 머무는 객잔으로 숨어들었다. 역시 점소이 복장을 한 조황은 은밀히 안을 살피다가는 모두 방 안에서 뭔가를 얘기하고 있자 전화생이 쓰러져 있는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빨리 나가자. 너도 알다시피 살수는 구하러 오는 것이 아니지만 고화월이 난리를 쳐서 지정우 모르게 온 거다.”
조황은 전화생의 혈도를 풀어주면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들은 운이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방파를 만드는데 실패한 유성탄은 하후란과 마효춘까지 일찍 어디론가 나간 후 돌아오지 않자 홀로 심심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전화생이랑 혈문에 대한 얘기나 나눠볼 생각을 하고는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너무나도 좋은 귀 덕에 조황이 전화생에게 하는 소리가 다 들린 것이다.
‘아쭈! 한 패가 있었다, 이거지……!’
유성탄은 소리 안 나게 문 앞으로 다가갔다. 벌레를 잡을 때 무지 빠른 놈들은 살살 다가가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빠른 놈들일수록 그 감각이 무섭게 발달되어 있어서 정말 소리 없이 다가서야 했다. 벌레의 감각까지 속이던 유성탄의 행동을 아무리 일급살수라고는 해도 인간의 감각을 가진 조황이나 전화생으로서는 알아낼 수 없었다.
“잡았다, 이놈!”
너무 오랫동안 혈도가 막혀 있었고 유성탄에게 맞은 후유증과 마음에 받은 상처로 말미암아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전화생을 부축해서 조심스럽게 문을 나오던 조황은 갑작스럽게 얼굴을 강타하는 유성탄의 주먹에 뻗어버린다.
흑혈신마와의 싸움 이후 엄청 강해진 유성탄이었지만 그 스스로는 알 수가 없었다.
전화생은 암습이 특기인 조황이 오히려 유성탄의 암습으로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가는 것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뭘 봐, 마! 좋게 말할 때 안으로 들어가라. 괜히 맞지 말고.”
유성탄의 말에 전화생은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는다.
“자식이 맷집이 좋네.”
유성탄의 주먹에 뻗었던 조황이 금방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유성탄은 발로 배를 한 대 더 찼다. 그러자 조황은 비명을 지르며 전화생이 앉아 있는 방 안으로 날아갔다.
“으으윽!”
조황은 내장을 흔들다 못해 완전히 찢어버리는 듯한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애달픈 신음성을 냈다. 그리고 전화생은 조황의 신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짜식들이 살수라면서 엄청 엄살도 심해요.”
“무슨 일입니까?”
조황의 비명소리에 아우들이 방문을 부수듯이 열면서 튀어나왔다.
“너희들은 나 없었으면 벌써 다 죽었다. 살수 놈들이 아침부터 들어와서 동료를 구해 가는데도 모르니 얘들이 너희들 잘 때 들어와서 목을 따간다고 알 수 있겠냐!”
유성탄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큰소리쳤다.
“조황은 어디 간 거냐?”
지정우는 합동 살수행을 위한 계획을 짜기 위해 모두를 불렀다. 그러나 나야종과 고화월만 나타나자 조황은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다. 집단 살수행에 나서면 수좌가 어디서건 이름만 부르면 즉시 나타날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조황은… 전화생을 구하러 갔다.”
고화월은 어쩔 수 없이 조황이 간 곳을 말했다.
“네가 시켰냐?”
“조황에게 명을 할 권한이 나에게 없다는 것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사실 조황이 나타나지 않자 나름 당황하고 있던 고화월이 신경질적으로 답하자 지정우는 인상을 썼다. 지정우의 성격상 고화월이 아니라면 당장 목을 날려버릴 상황이었지만 더 이상 뭐라고 더 말하지는 않았다.
“계획을 바꾼다. 오늘 밤 그놈들이 묵는 객잔으로 들어가서 다 죽이고 나온다.”
고화월은 지정우의 말을 들으며 낭인칠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상해. 분명 싸움은 잘했지만 무공이나 내공이 높은 자들은 아니었는데… 어찌하여 전화생에 이어 조황까지?’
낭인칠웅이 묵고 있는 것은 분명 보통 객잔이었다. 경계가 심한 무림세가에 들어가서도 상대를 죽이고 나오는 그들이 왜 보통 객잔에서 사라지는지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또 한 명이 들어와서는 동료를 구하려 했다는 말인가요?”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하후란은 전화생과 함께 혈도를 찍힌 채 누워 있는 조황을 보며 강태웅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행히 대형께서 발견을 하시고는 잡아놓으셨지만 우리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하후란은 강태웅의 말에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 저들의 습격이 있을 것 같네요. 저자의 말대로 이들이 혈문의 오살이 분명하다면 오늘 밤에 습격할 자들은 세 명이 될 겁니다. 이자들은 어떻게 잡았지만 그들이 준비를 철저히 한 상태에서 습격을 한다면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은 없어요. 아니 이긴다 해도 몇 명은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셔야 할 거예요.”
“우리 형제들은 한 명도 희생당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야 간신히 도약을 준비하는 아우들이 피지도 못하고 지는 것을 저는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하후 소저께서 이 난관을 피할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강태웅은 거리낌 없이 도움을 청했다. 혈문오살이라면 그들이 유성탄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자들이었다. 만약 남은 세 명이 습격한다면 유성탄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첫 번째 방법은 지금 당장 이들을 죽이고 빨리 피하는 것입니다.”
하후란은 전화생과 조황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망치는 방법은 최선이 될 수 없습니다. 마룡방과는 달리 이들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 쫓아올 것입니다. 오늘 결판을 내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호호호! 역시 태웅 장사께서는 생각하시는 것이 다르시군요. 그래요, 도망치는 것은 당장은 모면이 되지만 하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좋아요! 그럼 제가 여러분께 무공을 하나 가르쳐드리겠어요. 물론 여섯 분이서 펼치는 진법을 가미한 격투무예(格鬪武藝)예요. 유성탄 대형도 배울 수는 있지만 제 생각으로는 없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네요.”
여러 명이 합심하여 펼치는 검진 같은 합공무예는 협동과 일사불란함이 가장 중요했다. 하후란은 유성탄에게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그녀가 가르쳐줄 무공은 방어진이었다. 살수를 때려잡을 사람은 결국은 유성탄이었다.
“영감! 쟤들 지금 뭐 하는 거요?”
유성탄은 아우들과 하후란이 합공진을 배우는 장면을 보며 마효춘에게 물었다.
‘에이, 더러운 놈! 코딱지를 어디다 튕기는 거야?’
유성탄이 코에서 빼낸 코딱지를 손가락으로 튕기는 장면을 직통으로 본 마효춘은 유성탄 옆에 서게 된 것을 무척 후회했다.
“영감! 귀가 안 좋소?”
‘이놈 누가 좀 안 때려주나? 도대체 귀신은 이런 놈을 안 잡아가고 뭐 하는 거야?’
“이제 보니 벌써 귀신에게 잡혀갈 나이가 되신 모양이오. 혼자서 중얼거리는 폼이 망령난 노인네 같소이다.”
“너는 무공을 배우기는 한 거냐?”
마효춘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나는 그런 거 안 배워도 다 이기는데 뭐 하러 어렵게 그런 걸 배운단 말이오?”
‘에이, 말을 말아야지…….’
“지금 저들은 살수들이 나타났을 때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진을 배우고 있지 않느냐!”
“저게 방어진이란 말이오? 내가 보기에는 왼쪽으로 빨리 돌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면서 따라오는 놈의 발을 걷어차면 그냥 무너질 거 같은데……?”
마효춘은 유성탄의 말을 듣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후란이 가르치는 무공은 사람은 많지만 무공은 약한 그들이 몸담고 있는 문파에서는 아주 중요한 무공이었다. 그리고 마효춘은 당연히 그녀가 가르치는 합공진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놈이 정말 무공을 모르는 거 맞나? 아니면 아가씨 말대로 무식해서 그렇지 진짜 천재인가……?’
무공이 강하지 않은 자들을 위한 방어진이다 보니 하체 쪽에 큰 단점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연습하는 장면만으로 그것을 알아낸다는 것은 여간한 고수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진이 바로 지금 그들이 연습하고 있는 무공이었다.
“하여간에 재미는 없구만. 영감이나 잘 구경하시오. 나는 들어가서 잠이나 자려오.”
유성탄은 마효춘이 놀라건 말건 상관없이 기지개를 켜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마효춘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방은 모두 다섯 개다. 여기 왼쪽의 세 곳을 내가 맡겠다. 고화월 너는 가운데를 맡고 나야종 너는 오른쪽 끝을 맡아라.”
지정우는 유성탄이 묵는 객잔의 독채의 그림을 그려가며 말했다.
“흥! 잘난 체는…….”
고화월은 지정우가 세 곳을 맡겠다고 하자 같잖다는 듯이 콧소리를 냈지만 그의 명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지정우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전부터 잘 알고 있던 고화월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일이 어긋나려니까 그는 다른 여자를 좋아했다. 살수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금기사항이었지만 살수들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지정우의 첫 여자가 바로 고화월이었다. 물론 고화월에게 지정우는 첫 남자가 아니었다.
“자식들 왔는데.”
지정우 일행이 객잔의 담을 넘기도 전에 침상에 벌렁 누워 자고 있던 유성탄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들이 오히려 떠들썩하게 왔다면 유성탄은 그들이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지만 그들은 은잠술을 써서 다가오고 있었고 이미 은잠술을 한번 경험한 유성탄은 자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유성탄을 하후란이 쳐다보더니 물었다.
“진짜예요?”
하후란에게는 전혀 어떤 기척도 들리지 않은 것이다.
“대형께서 잠귀 밝은 것은 알아줘야 합니다.”
황대산이 유성탄 대신 대답해 주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뭔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조차도 감지하지 못한 기척을 자던 사람이 알아냈는데 그걸 잠귀 밝은 걸로 치부가 되나?’
“알았어요. 그럼 모두 준비하세요. 혈문오살은 모두 특기가 달라요. 오늘 오는 자들은 암기와 비도의 달인이에요. 특히 여자가 하나 있는데 상당히 예쁘다고 들었어요. 여자 좋아하는 사람은 그녀에게 걸리면 다 죽었다고 들었어요.”
말하던 하후란은 잠시 유성탄을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가르쳐준 진을 형성하고 있다가 암기나 비도가 날아들면 막도록 하세요. 갑자기 등 뒤에서 날아드는 암수가 무서운 거지 이미 준비하고 있으면 그리 무섭지는 않은 것이 살수기예니까요.”
‘조게… 왜 여자 얘기를 하고는 나를 봤을까?’
유성탄은 하후란이 여자 살수 얘기를 하다가 자신을 쳐다본 이유가 무척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이럴 때 그런 것을 묻는 것은 바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 유성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만사무불통녀라고는 하시지만 어떻게 살수들의 특기까지 알고 계십니까?”
강태웅이 하후란의 말을 듣고는 물었다.
“제가 그러지 않았나요? 저는 정보를 사고 파는 사업을 한다고 말씀 드린 걸로 아는데요.”
“정보도 사고 파냐?”
유성탄이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이지요. 좋은 정보는 상당히 비싼 편이에요. 살수들의 특기 따위는 그리 비싼 정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정보가 돈이 된다고? 호오! 그렇다면…….’
유성탄은 정보도 돈이 된다는 말에 좋은 사업구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럼 제가 말해 준 계획대로 준비하세요.”
하후란의 말이 떨어지자 유성탄만 남겨두고는 모두 밖으로 나갔다.
‘저게 꼭 계획을 짜도 나만 혼자 남는 계획을 짜고…….’
홀로 남은 유성탄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침상에 눕혀놓은 전화생과 조황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고화월은 지정우가 금방 자신에게 오자 전음으로 물었다.
[방이 전부 비었다.]
[저쪽도 비었다.]
나야종이 나타나며 말했다.
그들은 가만히 가운데 방을 쳐다보았다.
[혹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기다린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그들이 싸우는 것은 이미 봤다. 정면으로 붙는다 해도 우리한테는 안 된다.]
지정우의 말에 고화월은 꺼림칙하면서도 반박은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낭인칠웅의 무공 정도면 자신 혼자라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당장 비도를 날리려던 지정우는 누워 있는 사람들이 전화생과 조황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라 소리쳤다.
“살아 있다! 단지 혈도만 점해져 있을 뿐이야.”
급히 다가간 고화월은 조황과 전화생의 혈도를 풀어주려고 했다.
“거기까지!”
갑자기 들리는 유성탄의 음성에 지정우는 보지도 않고 소리가 들린 쪽으로 비도를 날렸다. 정말 빠른 손속이었다.
“아야! 이게 봐주려고 했더니……!”
비도는 그대로 날라 유성탄의 가슴에 박혔다. 유성탄으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고 비도는 그대로 유성탄의 가슴에 박힌 것이다. 그리고 유성탄에게는 또 하나의 경험이 생겼다.
‘아야? 이게 무슨 소리야?’
자신의 비도에 맞은 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로 보기에는 이상했는지 지정우는 후속 공격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간의 방심은 지정우에게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순식간에 달려든 유성탄의 주먹이 무차별하게 지정우의 몸에 쏟아진 것이다.
“이놈이!”
이미 지정우에게 전음을 날린다는 생각 같은 것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혈문에서 자랑하는 오살의 수좌답게 그는 비도술만이 아니라 근접전에서 단도를 휘두르는 무예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상대가 달랐다. 적어도 십여 번은 유성탄의 몸을 그의 단도가 그어댔지만 유성탄의 주먹은 잠시도 쉬지 않고 지정우의 몸에 떨어졌고 일 각이 지나기도 전에 지정우의 얼굴은 피투성이로 변해버렸다.
“죽어라!”
당연히 지정우의 도에 유성탄이 곧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으로 예상했던 고화월은 지정우의 얼굴이 유성탄의 주먹에 망신창이가 되어가자 살기 띤 음성으로 소리치며 자신의 채대를 빼내더니 그대로 유성탄의 목을 감아갔다.
“이건 뭐야!”
지정우를 치던 유성탄은 이상한 것이 자신의 목을 감더니 조여 나가자 목을 감은 채대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채대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유성탄의 힘에도 끄떡이 없었다. 거기다 채대의 사이사이에는 아주 날카로운 사금파리가 박혀 있었다. 평상시에는 반짝거려서 채대의 아름다움을 빛내주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목을 그대로 잘라버린다.
유성탄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 이번에는 지정우가 기회를 잡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지정우의 비도는 유성탄의 몸을 수십 번을 그었지만 유성탄의 몸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이제 보니 괴물 같은 몸을 가진 네놈 때문에 마룡방이 그렇게 당한 것이었구나!”
지정우는 베는 것으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소리를 치더니 비도를 유성탄의 심장에 그대로 박아 넣었다.
“에이 씨! 죽지는 말아라.”
유성탄은 지정우의 단도가 그의 가슴에 들어오자 전에 알아낸 것같이 살을 파고든 지정우의 도를 피부로 잡았다. 동시에 지정우의 가슴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날렸다.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되도록이면 약하게 치던 그의 주먹이 상당히 강하게 지정우의 가슴을 강타했다. 고화월의 채대 때문에 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자 어쩔 수 없이 죽을지도 모르는 힘으로 때린 것이다. 지정우는 유성탄의 심장에 박은 도가 깊이 박히는 느낌이 들자 됐다는 생각에 다시 방심을 했고 순간 자신의 도가 움직이지 않자 도를 뽑기 위해 잠시 멈춘 것이 화근이었다.
지정우는 이번 주먹은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너 예쁘게 생겨서 봐줄 테니까 이거 풀어라.”
지정우를 쓰러뜨린 유성탄은 고화월의 채대를 손으로 잡고는 말했다.
여자까지 때리고 싶지는 않은 유성탄이었다.
“닥쳐라! 곧 죽을 놈이 큰소리는……!”
고화월은 지정우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당황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채대를 믿었다. 어떤 고수라 할지라도 지금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채대가 목을 감으면 오래 견디지 못했었다. 고화월은 진기를 채대에 집어넣으며 강하게 잡아당겼다.
“에이! 엄마가 여자는 때리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개구쟁이 시절 사방에서 애들을 때리고 다녔던 유성탄에게 강추화는 절대로 여자는 때리는 게 아니라고 교육을 시킨 적이 있었다.
“으윽!”
고화월은 채대를 잡아당기는 순간 유성탄의 목이 잘려서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성탄은 잡아당기는 힘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고화월의 가슴까지 다가서더니 고화월의 배를 세게 쳤다.
그리고 그 한 방에 고화월은 신음소리와 함께 채대를 놓치고 말았다. 엄청난 고통에 견디지 못한 것이다.
“한 방이면 가는 게 큰소리는……!”
배를 잡고 창백한 얼굴로 유성탄을 노려보는 고화월에게 한마디 뱉은 유성탄은 그녀의 목을 잡더니 그대로 비틀듯이 눌러버렸다. 하후란이 혈도를 짚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해 본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고화월은 몸이 마비되면서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히히! 쉽네. 가만있자… 이 방법을 사용하면 여자 따먹기가 너무 쉽겠는데…….”
그사이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유성탄이었다.
밖에서 망을 보던 나야종은 갑자기 나타난 낭인칠웅의 육형제의 공격에 안의 상황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나야종은 일지검(一指劍)이라는 특이한 무기를 사용했다. 마치 송곳같이 뾰쪽한 그의 검에 찔린 상대는 신음도 못 지르고 그대로 죽어버린다. 하지만 낭인칠웅 육형제의 진을 가미한 공격은 그의 일지검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고 있었다. 역시 살수검으로는 위력이 대단했지만 이런 집단전에서는 찌르기만 해야 하는 그의 일지검은 위력이 반감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고 있던 하후란이 던진 비녀에 견후혈을 맞고는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같은 편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에요.”
혈문오살을 생각보다 쉽게 제압하자 강태웅은 자신의 생각을 하후란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하후란은 취지는 찬성하지만 어려울 거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려울 거라는 것은 알지만 우리만으로 어떤 세력을 만든다 해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금 대형이 없는 낭인칠웅은 솔직히 어디다 이름자도 내밀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힘이 될 만한 자들을 규합해야 하는데 저자들 정도면 아주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들은 살수예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자들이 어쩌면 저들일 수도 있어요. 등 뒤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사람들을 뒤에 세워놓고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까요?”
“저희들도 사람들이 믿지 못한다는 낭인들입니다. 살수나 낭인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 분명하다면 그들도 지금의 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입니다.”
하후란은 강태웅의 말을 들으며 향후 무림에 무서운 세력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제가 도울 것이 무엇인가요?”
“하후 소저께서는 분명 저희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책임지고 저희들의 능력이 닿는 한 하후 소저께서 원하는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희들이 세력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십시오.”
“전 다른 문파에 몸을 담고 있어요. 다른 세력을 구축하는 일에 깊이 관여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관여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세력구축을 하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조직은 어떻게 편재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가르침을 좀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강태웅의 말을 들은 하후란의 면사에 가린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정도라면 제가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겠네요. 그럼 언제부터 시작하실 생각이신가요?”
“대형께서 설득을 해주셔야 합니다.”
하후란과 구체적인 계획을 의논한 강태웅은 유성탄에게 혈문오살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재들 살수라매? 도대체 쟤들은 뭐 하러 끌어들이려고 그러냐? 괜히 칼침 맞지 말고 그냥 쟤들은 놔두자.”
“대형의 말씀대로라면 저들도 어려서 혈문에 납치된 가엾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해준다는 의미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엽기는 내가 가엽지 왜 그놈들이 가여워? 그놈들이 호의호식할 때 나는 벌레를 먹으며 살았어!”
“당연히 대형께서 더 가여우시지요. 하지만 대형과 그들은 다르지 않습니까? 대형께서는 그 어린 나이에도 불의에 대항하시다 충동에 가셨지만 저들은 그저 무서워서 그들을 따랐을 뿐입니다. 대형 같은 영웅과 보통 사람을 같이 평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 *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나? 나는 정말 특별나게 태어나서 특별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영웅이 되기 위해 힘들게 알을 깨고 나오는 산통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
* * *
“태웅 형님, 그렇다면 이곳에서부터 시작하실 겁니까?”
“그러려고 한다.”
“하지만 호북에는 무당이 있는데 우리가 세력을 모으는 것을 그냥 두고 볼까요?”
표도행이 약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무당이 비록 호북에 있다고는 하지만 북쪽 끝에 치우쳐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고고해서 우리가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낭인들이 하는 짓까지 참견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우왕이 무당의 도사를 만난 적이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시렵니까?”
마동파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하후 소저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그래서 우선 방의 이름부터 정한다. 당연히 방주는 대형이 맡으실 것이고 우리는 각기 재주에 맞는 직책을 맡는다. 또한 한 명 당 약 오십여 명의 부하가 배정이 될 것이다.”
“한 명 당 오십여 명이오? 그렇다면 삼백여 명인데 어디서 그런 부하를 구합니까? 거기다 우리는 총단도 없으니 계속 떠돌아야 하는데 그 많은 수가 돌아다닌다면 분명히 관부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황대산이 놀라서 말하자 표도행이 말을 잇는다.
“거기다 삼백여 명이면 한 달에 은자 두 냥씩 육백 냥에 매일 먹여주고 재워줘야 할 것이고… 지금 우리가 가진 돈이 꽤 되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인원이라면 석 달을 버티기 힘들 겁니다.”
“당연히 가진 돈을 쓰기만 한다면 그렇겠지만 돈을 벌면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오십여 명이라는 숫자는 완전히 방이 체계가 잡혔을 때의 인원이지 지금 당장 그런 인원을 끌고 다닌다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 호북에는 낭인들이 거의 없어서 사천이나 가야 충당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돈을 법니까?”
“하후 소저와 의논한 결과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해 놨다.”
하후란은 정말 쉬운 방법을 강태웅에게 가르쳐주었다. 어차피 낭인들이 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이 용병이지만 용역이라는 아주 치사한 일도 낭인들이 주로 맡아서 했다. 용역이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낼 때 많이 쓰는 일꾼들을 말한다.
원래는 흑도의 왈패들이 일은 더 잘하는 편이지만 너무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하고 이따금은 여인들까지 건드려서 크게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얼굴인지라 사건이 커졌을 때 잡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낭인들은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었고 문제가 생겨도 모른다고 발뺌하기가 좋아서 용역 일은 낭인들을 많이 썼다.
“저는 용역 같은 것은 못 합니다. 용병이야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재수 없으면 죽으면 끝이지만 용역을 나가면 가난한 양민들을 괴롭혀야 하는데 저는 못 합니다.”
용역과 싸우다 고향을 등진 후 낭인이 된 황대산이 반대의 뜻을 표했다.
“나도 그런 용역은 못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후 소저께서 다른 용역 일을 가르쳐주셨다. 뭐냐 하면 용역을 하는 놈들을 때려잡는 용역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세상에 정의로운 집단으로 각인이 되어 정파에서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해서 어떻게 돈을 법니까? 용역이 투입되는 곳은 거의가 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자들이 용역비를 줄 수 있겠습니까?’
“하후 소저는 용역을 의뢰한 놈들을 찾아가서 용역 때문에 다쳤다고 하며 위자료를 받으면 짭짤할 거라고 하더구나.”
“아이구! 형님도 참! 우리가 낭인 아닙니까, 저도 딱 한 번 용역을 나가본 적이 있는데 용역을 나가는 놈들은 돈이나 받고 투입될 뿐이지 의뢰인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마동파가 어림없다는 듯이 말했다.
“용역을 책임지고 인솔하는 놈들은 의뢰인을 반드시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절대 말 안 할걸요.”
“그렇겠지. 그런데 하후 소저께서는 그러더라. 대형이 있는 이상 못 알아낼 것이 뭐가 있겠느냐고.”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혈문오살의 입까지 열게 만드는 유성탄이라면 낭인들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각 고을을 돌아다니면서 사설 도박장이 보이면 대형을 그곳에 집어넣으라고 하더구나. 아마 그러면 백해무익한 도박장도 때려 부수고 돈도 많이 주워서 나올 거라고 말이다.”
“만약 그런 짓을 계속한다면 마두로 찍혀 무림의 공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동파가 급히 말했다.
“아니, 하후 소저의 말로는 가장 빠르게 대형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될 거라고 하더라. 곁들여서 우리가 세울 문파까지도 이름이 날 거라고.”
“그거야 하후 소저의 얘기지요. 도박장을 건드리면 사파건 정파건 다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관까지도 추격을 할지도 모르지요.”
표도행도 그것은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후 소저가 그러더라. 아무리 마두를 만들고 싶어도 여론이 호의적이면 정파나 관은 손대지 못한다고 말이다. 하후 소저는 자신의 문파를 이용해서 대형이 세상의 악을 없애고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을 돕기 위해서 하는 협행이라고 소문을 내준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문파가 소문을 낸다면 개방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여론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난 하후 소저를 믿기로 했다.”
“도대체 하후 소저는 어느 방파의 사람이랍니까? 어제 살수와 싸우는 것을 보니까 분명 우리보다는 몇 단계 높은 무공을 지닌 것이 틀림없던데요.”
“내게는 말해 줬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하후 소저가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고 나는 승낙했으니 너희들이라 해도 말해 줄 수 없다. 그리고 대형께도 아직은 말하지 말아라. 대형께서 묻는다면 말할 수밖에 없는데 시작부터 신의를 잃는다면 어찌 하후 소저가 우리를 믿겠느냐?”
“그러니까 네가 혈문에서…….”
유성탄은 혈문오살을 포섭하라는 강태웅의 청에 그들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을 보다 보니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고화월의 얼굴이 약간은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 결과 혈문에서 무공을 배울 때 완전 왕따였던 유성탄에게 그래도 가장 친절하게 대해주던 여자아이가 고화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의 모든 것을 잊고 지내던 그의 기억에 남았다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유성탄의 친구였고 괴롭히지 않았던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참 너도 너다! 그렇게 느려가지고 무슨 살수를 하냐? 그 이야기를 빨리 했으면 나한테 한 대 맞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
유성탄은 기분이 좋은지 당장 고화월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런 얘기를 할 사이나 있었냐? 그런데 네가 정말 혈문 오십호였단 말이냐?”
그 당시 혈문에서는 모두에게 이름이 아닌 번호를 붙여주었는데 가장 말썽을 피우고 진도가 느리던 유성탄은 가장 낮은 번호로 받았었다.
“그것은 기억도 안 나고, 언제나 귀신탈을 쓰고 다니던 놈만 생각나! 그게 누군지 아냐?”
“혈문사자를 말하는구나.”
“혈문사자! 그놈이 바로 혈문사자였단 말이지.”
아버지의 얼굴까지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유성탄이었지만 혈문사자의 귀면탈만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내 반드시 그놈만은 내 손으로……!’
유성탄은 속으로 원한이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끝말을 잇지는 못했다. 아직 어떻게 할지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 친구들도 좀 풀어줄 수 있겠니?”
고화월이 자신의 특기인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은근하게 말하자 유성탄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부터 바보스럽더니 여전하구나. 두고 봐라. 이들만 풀어주고 나면 네놈의 사지를 잘라서 개에게 먹이리라.’
솔직히 고화월에게 유성탄은 그리 기억이 많이 남는 아이가 아니었다. 언제나 울음이 많았고 말을 지지리도 안 들었다. 그러다 보니 맞기도 많이 맞았고 주위에 친구도 거의 없었다. 그 당시 고화월은 그냥 불쌍해서 동정심으로 조금 잘해 주었었다. 어쨌든 그녀는 여자였고 그 당시는 어렸으니까.
지정우를 먼저 풀면 다짜고짜 유성탄에게 덤벼들 수도 있었기 때문에 고화월은 나야종부터 시작하여 초황과 전화생을 풀어주었다. 아무래도 한 명보다는 전부 다 합세해서 유성탄을 제거하는 것이 일을 쉽게 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유성탄이 바보여서 그러라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유성탄은 한번 싸워본 사람의 능력을 단숨에 알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다섯이 다 덤빈다 해도 얼마든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지정우, 말 잘 들어! 내가 혈도를 푸는 즉시 저 바보 놈을 단숨에 목을 꺾어버릴 거니까 준비해라. 급하게 행동하지 말아라,]
지정우는 고화월의 말을 듣자 알았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데… 내가 아우나 친구들은 좀 봐주는데 만약 나한테 덤볐다! 그리고 졌다! 그러면 평생 나한테 맞아가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한테 맞으면 무지 아프다. 그냥 알아두라고.”
유성탄이 전화생과 조황을 쳐다보며 지나가듯이 말했지만 그들에게는 엄청난 협박으로 들려왔다.
고화월은 유성탄의 말에 전화생과 조황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자 순간 자신이 마지막으로 맞았던 유성탄의 주먹이 생각났다.
‘그런 주먹을 평생 맞아야 한다고?’
고화월은 아직 시간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지정우, 이놈이 우리에게 방심을 한 이상 기회는 얼마든지 올 것이다. 아직 청부 날짜까지는 두 달 이상 남아 있으니 좀더 기다리자.]
고화월의 전음을 떠나 지정우도 유성탄과 싸우면서 맞았던 주먹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당시는 그래도 억지로 참아가면서 싸웠다. 아마 지기 싫어하는 지정우의 성격이 어느 정도 버티게 해준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혈도가 짚여 누워 있으면서 지정우는 싸움 당시의 그 괴로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고 있었다. 그 역시 유성탄에게 평생 그런 주먹을 맞고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