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혈문의 살수
‘이게 무슨 꼴이냐?’
전화생은 살수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당해보는 우스운 꼴에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 그가 노린 자가 무림 백대고수 중의 한 명만 되어도 그러려니 하고 스스로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개 낭인들에게 혈문이 자랑하는 일급살수가 마치 포위당한 맹수 꼴이 된 것이다.
전화생은 품에서 그가 자랑하는 독거미를 꺼내려 했다. 그러나 곧 다시 날아온 유성탄의 돌을 얼굴에 맞고는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놈은 좀 아프게 맞아야 돼!”
유성탄은 앞으로 나서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전화생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놀랍게도 전화생의 품에는 주머니가 적어도 이십여 개 이상이나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게 뭡니까?”
언제나 호기심이 많은 표도행이 다가서며 말했다.
“몰라. 그런데 이놈이 자꾸 나한테 독거미를 던지더라고. 어제도 독거미를 던진 놈이 이놈이었어.”
“어제요?”
“내가 그랬잖아. 큰 거미가 너희들 잡아먹으러 왔다가 도망갔다고. 그런데 그게 거미가 아니라 이놈이었나 봐.”
“그럼 그 주머니에……?”
유성탄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전갈 다섯 마리가 유성탄의 손에 들려 나왔다.
“이놈들은 못 보던 벌렌데…….”
충동에서도 전갈은 본 적이 없었던 유성탄은 신기한 듯이 쳐다보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입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읍!”
갑작스런 유성탄의 행동에 하후란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돌아섰다.
‘하여간에 자식이……! 하는 짓마다 지저분하더니 이제는 별걸 다 입에 집어넣네! 에이, 드러운 놈!’
마효춘도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끼며 벌레 쳐다보듯이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흠! 이놈들은 이름이 뭐냐?”
유성탄은 순식간에 전갈 다섯 마리를 뚝딱 해치우더니 아우들을 보며 물었다.
“그거 전갈이라고 하는 건데요. 독이 많아서 먹으면 죽어요!”
말하는 아우들의 표정이 영 아니올시다인 데다가 마효춘의 인상도 껄끄럽자 유성탄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 밀고 나가기로 한다.
“독이 많은 것을 먹으면 살이 단단해진다. 나는 건강을 위해서 이런 것을 먹는다.”
‘전갈도 못 먹는 병신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 유성탄은 속으로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그거 어떻게 한 거냐?”
하후란이 전화생의 혈도를 짚어 꼼짝 못하게 하자 유성탄은 다른 무공은 몰라도 그것만은 배우고 싶었다. 굳이 힘들게 기절시킬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밧줄로 묶을 필요도 없이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해도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기술이 너무 마음에 든 것이다.
“자꾸 반말 할 거예요?”
“에이!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고 뭐고 가까이 오지 마요. 불결하니까!”
전갈을 먹는 모습을 본 하후란은 유성탄이 가까이 오기만 해도 깜짝 놀라 떨어지고 있었다.
‘이 씨! 한번 하는 것은 완전히 물 건너갔구나…….’
유성탄은 하후란의 반응에 절대로 여자 앞에서는 벌레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그따위 허접한 놈 하나 죽이는데 뭔 시간이 이렇게 걸리는 거야? 전화생 이놈 요새 일이 없다고 술만 처먹었나 보군.”
전화생이 오기를 기다리던 지정우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하자 고화월이 굳은 얼굴로 말을 받았다.
“아니야! 뭔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성공하건 실패하건 돌아올 시간이 지났어. 같이 합공을 했어야 하는 건데 실수한 것 같다.”
고화월이 전화생만 보낸 것은 낭인칠웅이 싸우는 것을 보고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낭인칠웅은 낭인치고는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관점에 따르면 내공이나 외공이 특출 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 자들은 솔직히 살수들이 상대하기가 가장 쉬운 자들이었다. 거기다 내공이 약하기 때문에 전화생같이 독을 사용하는 살수들에게는 거의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청부대상이었다. 간단하게 독물만 뿌려놓아도 죽일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화월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봐야 할 것 같다.”
고화월이 일어서며 말하자 지정우가 입술을 비틀며 말한다.
“가긴 어딜 간다는 거냐? 살수행 수칙을 잊지는 않았을 텐데!”
지정우의 말에 고화월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지금 우리 사이에서도 살수행의 수칙을 따진다는 말이냐?”
“성공했으면 돌아올 것이다. 만약 실패했으면 이미 스스로 자결을 했을 것이고. 그런데 우리가 가서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냐? 설마 살수행에 실패한 살수를 구하러 가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지정우는 혈문오살의 수좌였다. 고화월이 지정우의 명을 듣지는 않았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만약 전화생이 지금 위험한 상태라면 어쩔 것이냐?”
“전화생은 일급살수다. 최소한 잡혔다 해도 우리 일을 토설할 친구는 아니다. 살아 있다면 우리가 그놈들을 죽인 후에 구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화월에게 무시를 당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수좌는 수좌였다. 그의 판단이 틀린 것은 없었고 고화월은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살수예요.”
하후란의 말에 낭인칠웅은 모두 놀라 하후란을 쳐다본다.
“도대체 누가 살수를 고용해서 대형을 죽이려든단 말입니까?”
강태웅의 말에 하후란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룡방이라는 엄청난 세력을 건드리고 그저 그들의 세력만 벗어나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을 하신 것은 아니실 테지요?”
“그렇다면 마룡방에서……?”
“그 외 원한을 맺은 세력이나 사람이 있다면 그쪽도 생각해 봐야겠지요. 하지만 저 정도의 살수를 고용하려면 상당히 많은 돈을 줘야 할 거예요.”
“저런 바보 같은 놈을 살수라고 고용하면서 돈까지 줘야 하는 거냐?”
“저자의 품속에서 나온 주머니에는 수많은 독물들과 독약이 들어 있었어요. 그자의 몸놀림에다가 그 정도로 독을 잘 다루는 살수는 중원에 많지 않아요. 사람을 잘 죽이는 자가 훌륭한 살수니까요.”
“그럼 저자에게서 청부를 한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느 살수집단이지 알아봐야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대형을 납치했던 자들이 혈문이라는 살수집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성탄 대형을 납치해요?”
하후란이 표도행의 말에 흥미롭다는 듯이 반문하자 표도행은 유성탄의 눈치를 본다.
“어려서부터 너무 뛰어나다 보니 욕심내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유성탄이 점잖게 부언해 주자 하후란은 코웃음을 친다.
“현 무림에서 살수집단으로 마룡방의 청부를 받을 정도는 혈문(血門)과 자객단(刺客團) 그리고 살인전(殺人殿) 정도예요. 그중에서 자객단과 살인전은 집단 살행을, 혈문은 개인 살행을 많이 하는 편이지요. 저자 정도의 살수라면 일급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혈문의 살수일 확률이 많겠군요.”
강태웅의 말에 하후란은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가 저자에게서 알아낼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어떤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는 수련을 쌓은 자들이 살수니까요.”
그러자 모두 유성탄의 얼굴을 쳐다본다.
“왜 나는 쳐다보고 그러냐?”
“대형의 주먹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무섭지 않습니까? 누구도 대형의 주먹에 맞으면서 버틸 자는 없다는 데에 은자 한 냥 걸겠습니다.”
마동파가 돈까지 걸겠다며 유성탄을 부추긴다.
“나도 대형에게 은자 한 냥 걸겠습니다.”
장우왕도 맞장구를 치자 황대산이 말을 받는다.
“나도 대형께 걸기는 하겠는데 누구랑 내기를 하는 건가?”
아무리 내기를 건다 해도 상대가 없으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되는 법이었다.
“내가 받겠어요. 유성탄 대형이라 해도 알아내지 못한다에 금자 열 냥을 걸겠습니다.”
하후란이 크게 판돈을 올렸다.
“하하하! 금자 열 냥이라고? 그렇다면 나도 건다. 유성탄이 이기는데 금자 한 냥!”
유성탄은 크게 웃으며 자신에게 스스로 돈을 걸었다.
“이놈이 알아는 듣나?”
혈도가 짚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고 눈알만 떼굴 떼굴 굴리고 있는 전화생을 보며 유성탄이 하후란에게 물었다.
“듣고 보는 데는 지장 없어요. 물론 아픈 것도 느낄 수 있고요.”
“알았어.”
목을 한 번 움직여 뚝 소리를 낸 유성탄은 다짜고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그냥 때리는 주먹질이라 하후란이나 마효춘으로서는 별로 효과를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우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보기와는 달리 뼛속까지 파고드는 유성탄의 주먹이 얼마나 아픈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햐! 이놈 제법 질긴데… 이 정도 맞으면 보통은 살려달라고 하는데…….”
유성탄이 감탄스럽다는 듯이 전화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안 되겠다. 표도행 너 나가서 커다란 몽둥이 하나 가져와라.”
“몽둥이로 때리시게요?”
“아니! 충동에서 아주 약 올리는 벌레들은 내가 항문에다가 긴 풀을 꽂아 넣었거든. 그러면 그놈이 비실거리다가 픽 쓰러진다고. 이놈 한 시진만 더 때려보다가 그래도 말 안 하면 몽둥이를 항문에 박아서 휘두르려고 그런다.”
유성탄의 말에 하후란이 다시 손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밖으로 뛰어나갔고 마효춘의 인상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정말 상종을 못 할 놈이구나. 어떻게 말하는 것마다 전부 다 에그…….’
그러나 더욱 놀란 것은 전화생이었다. 전화생은 지금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고문 수련도 받아보았지만 유성탄의 주먹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한 시진을 더 때리고 말 안 하면 이제는 완전히 자신을 벌레처럼 고치를 꿰서 휘두른다지 않는가! 듣다듣다 처음 듣는 고문 방법에 진저리가 났지만 문제는 유성탄이 아직 자신의 아혈을 풀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놈아! 아혈을 풀어줘야 뭔 얘기를 하건 사정을 하건 할 것 아니냐!’
표도행이 몽둥이를 구하러 나가자 팔을 한 번 휘두른 유성탄은 다시 패기 시작할 태세로 전화생에게 다가갔고 전화생의 눈은 공포에 싸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르고 맞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맞고 싶지 않았다.
“이제 한 시진만 더 때릴 거다. 만약 그래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 몽둥이가 어디로 들어가게 될지 알 거다.”
유성탄의 말에 전화생의 눈이 바삐 움직였다.
“도대체 아혈도 풀어주지 않고 말 않는다고 때리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마효춘이 보다 못해 앞으로 나서더니 전화생의 입 안을 조사하더니 아혈을 풀어준다. 살수들은 어금니에 독단을 물고 있다가 자결하는 경우가 많아서 검사를 한 것이다.
유성탄은 마효춘이 하는 행동을 보다가 소리쳤다.
“영감! 누구 마음대로 아혈을 풀어주는 거요? 말을 안 하니까 마음껏 때려서 좋던데!”
아혈을 풀어준다는 생각은 조금도 못 해놓고는 마치 알면서 그랬다는 듯이 말하는 유성탄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전화생에게 더욱 큰 공포로 다가왔다.
‘이 미친놈이 나를 때려죽일 생각이었구나. 죽일 놈!’
“나는 네가 계속 말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말하지 말고 그냥 맞아라.”
유성탄은 말과 함께 세게 옆구리를 한 대 쳤다. 여간해서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일급 살수인 전화생의 입에서 아까 맞을 때 내뱉지 못했던 비명까지 합친 듯한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악!”
“영감! 이놈 아혈인지 뭔지 말 못하게 하는 혈도를 다시 짚으시오. 시끄러워서 못살겠네.”
“뭘 알고 싶은 거요?”
“내가 물으면 가르쳐 줄 거야?”
“들어봐야 알 것 아니오. 으아악!”
전화생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유성탄의 주먹이 다시 날아갔다.
“내가 물으면 말해 줄 거야?”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으아악!”
“내가 물으면 대답할 거야?”
“뭐든지 말해 주겠소.”
전화생의 입에서 완전 굴복에 가까운 말이 튀어나오자 모두의 얼굴에는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저놈! 어찌 됐건 비위는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안 되겠구나.’
마효춘은 유성탄과 되도록 부딪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름이 뭐냐?”
“전화생이오.”
“전화생? 이름하고는……. 하여간에 이름이 이상한 놈치고 똑바른 놈이 없다니까. 어디 소속이냐?”
“혈문의 살수요.”
“혈…문!”
유성탄의 입에서 감격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으하하하! 드디어 혈문을 찾았구나. 혈문은 어디에 있냐?”
“혈문이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도 모르오.”
전화생의 말에 유성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성탄의 감각에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혈문의 살수라면서 혈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면 그게 무슨 혈문의 살수냐?”
“혈문은 어디 한 곳에 본거지를 두지 않았소. 우리들은 각기 정해진 곳에서 생활하다가 청부가 들어오면 청부대상에 대한 정보만 받아서 살행을 할 뿐이오.”
“이상한데? 분명 내가 어렸을 때 혈문이라는 곳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유성탄의 중얼거림에 전화생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더니 물었다.
“혈문에서 새로운 문도를 받은 것이 약 십칠 년 전이오. 그 당시 훈련을 받았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소.”
“무슨 소리야! 내가 그때 거기서 훈련을 받으면서 얼마나 질시를 받았는데!”
“당시 훈련을 받은 문도가 약 오십여 명이었소. 그중 수련 중에 죽은 자들이 좀 있었고… 하여간에 당신이 그곳에서 수련을 받았다는 말은 믿기 힘드오.”
“좋다! 그럼 그 수련을 받은 곳이 어디냐?”
“정확한 위치는 우리도 모르오. 거기는 수련만을 하기 위한 곳으로 우리의 살수 수련이 다 끝나면 밖이 보이지 않는 마차에 태워져서 각기 정해진 곳으로 옮겨지오. 우리가 그곳을 나온 지 거의 칠팔 년이 되어가지만 그곳에 다시 간 적은 없었소. 윽! 말해 주고 있는데 왜 때리는 거요?”
“이 자식은 쓸데가 하나도 없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묻는 재미가 있지! 이거 바보 아니냐?”
듣던 유성탄이 전화생의 머리를 탁 치더니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청부자는 누구고 청부대상은 누구요?”
가만히 듣고 있던 강태웅이 나서며 물었다.
“청부대상은 낭인칠웅이오. 하지만 청부자는 우리도 모르오.”
“너 죽을래? 난 척 들으면 네가 거짓말을 치는지 아니면 진짜를 말하는지 금방 알아! 지금까지는 진짜라서 봐줬지만 지금 말은 분명 거짓말이야.”
유성탄이 주먹을 쥐며 말하자 전화생이 놀란 눈으로 유성탄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마룡방이라고 생각했소.”
전화생은 유성탄이 자신이 하는 말을 다 믿어주는 것 같자 은근슬쩍 거짓말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유성탄이 자신의 거짓말을 알아채자 포기한 듯이 술술 불었다. 솔직히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기에는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이었다.
“혼자 살행에 나온 것이오?”
강태웅의 다음 물음에 전화생은 잠시 멈칫했다. 이번 물음은 진짜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이 자식이 잔머리를 굴리네!”
유성탄은 전화생의 대답이 멈칫하자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꾀를 부리는 놈에게는 생각할 틈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을 용병시절 어느 정도 체득한 유성탄이었다.
“모두 다섯이오!”
말할 새도 없이 무수히 구타당한 전화생은 더 이상 머리를 굴릴 생각도 못 하고 입을 열고 만다. 그것을 보던 마효춘과 다시 안으로 들어온 하후란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아는 혈문의 살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로 자신들의 살수행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대형한테 한번 맞아보면 저놈이 저렇게 술술 부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표도행이 슬쩍 마효춘과 하후란에게 귀띔해 준다. 만약 자신들을 배신하면 어떻게 될지 알라는 은근한 협박이 가미된 것이었다.
“혈문오살이 직접 나서다니 낭인칠웅이 벌써 무림절정고수 대접을 받는군요.”
전화생의 말을 듣자 하후란이 곧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고는 말했다. 그리고 혈문오살이라는 말에 유성탄을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확 변했다. 혈문의 혈점사와 혈문오살은 일개 낭인들이었던 그들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살수들이었다.
“이자가 진짜 혈문오살 중 한 명이라면 우리는 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겠군요.”
마동파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진담 반 농담 반처럼 말했다.
“혈문오살이 척지경 그 늙은이보다 유명하냐?’
“비교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척지경보다야 유명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강태웅이 말하자 표도행이 나선다.
“아닙니다. 척지경이 비록 무림 백대고수에 들기는 하지만 안남 변두리에서 활동을 했고 혈문오살은 비록 살수이기는 하지만 중원에서 활동했습니다. 아마 중원에서는 혈문오살을 더 많이 알고 있을 겁니다.”
“하여간에 사람을 죽이는 데는 이력이 난 놈들이라는 말인데… 그런데 왜 이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그럴까?”
“대형도 참! 마룡방에서 청부를 했다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대형께서 도박장에서 난장을 친 것이 지금 일이 이렇게 확대된 겁니다.”
마동파의 말에 유성탄은 도끼눈을 뜨고는 마동파를 노려보았다.
“내가 분명히 그랬지. 사내대장부가 과거를 가지고 자꾸 얘기하면 못 쓴다고!”
‘과거가 아니라 진행형이라니까 괜히 그러시네.’
마동파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목을 움츠렸다.
“속으로 구시렁대면 맞는다.”
“그런데 대형 말대로라면 어렸을 때부터 특출 나셔서 충동에 던져졌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저자는 전혀 대형을 기억하지 못할까요?”
전화생의 아혈을 다시 점한 그들은 객잔의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황대산이 유성탄을 보며 물었다.
“나같이 특출 난 사람을 저렇게 미련한 놈이 어찌 알겠냐? 나도 저런 놈은 기억 안 난다.”
곧 죽어도 큰소리치는 유성탄을 보며 아우들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혈문에서 수련을 시키는 곳이 호남성에 위치한 어떤 산이란 것은 알았으니 찾을 구역은 많이 좁혀진 셈입니다.”
“아니야. 굳이 내가 찾을 필요가 없어. 혈문 놈들은 한번 청부를 받으면 반드시 죽인다며?”
“그렇지요.”
“그렇다면 오는 놈들만 때려잡다 보면 언젠가는 그놈들 전부를 때려잡게 되겠지.”
유성탄의 말에 아우들의 눈이 커졌다. 유성탄이 드디어 생각을 한 것이다.
“대형,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충동에서 배가 너무 고파서 어떻게 하면 벌레를 많이 잡나 연구를 많이 했는데 방법이 내가 미끼가 되는 거였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이놈들이 온몸에 달라붙거든 그럼 그때 온몸을 훑어서 입에 집어넣기만 하면 됐다. 그거랑 비슷하지 뭐!”
아우들은 온몸에 벌레가 붙은 유성탄이 한 움큼씩 벌레를 먹는 장면을 연상하자 다시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배를 살살 만졌다.
“그런데 저번에 말씀하시기는 벌레를 잡으려면 하루 종일 뛰어야 했다고 안 하셨습니까?”
마동파가 전에 들었던 얘기와 좀 다르자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나도 이상하더라고.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벌레들이 나한테 안 달라붙고 계속 도망을 치는 거야. 아마 내가 무서워진 모양인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더라고.”
지룡봉의 기연 이후에 그에게서 지룡봉의 달콤한 냄새가 나면서부터 그렇게 된 것을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아가씨, 유성탄 저놈과 같이 다니는 것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마룡방에 혈문이면 우리로서도 감당이 안 됩니다. 생각을 바꿔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효춘은 하후란과 둘만 남자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문파는 그 세력의 방대함으로는 남들에게 꿇릴 게 없었지만 무력으로는 대단히 약한 문파였다. 마효춘 정도가 가장 무공이 강한 십여 명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마룡방이나 혈문과 대적하는 낭인칠웅은 굉장히 위험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시시한 자였다면 아예 시작도 안 했어요. 그리고 지금 저들이 어려울 때 우리가 도와야 다음에 우리도 저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잘하면 우리 문에 끌어들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나 몰라라 해놓고 위험에서 벗어난 다음 다시 접촉한다면 저들과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저들은 낭인 출신이에요. 그리고 저들은 의리를 중시하고요.”
“하지만 아가씨, 잘못하면 본문의 존폐까지도 걱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놈하고는 흑혈신마까지 얽혀 있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더 잡아야지요. 저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흑혈신마가 저들을 죽이지 않고 그냥 갔다는 데에 점수를 더 주고 싶어요.”
하후란과 마효춘은 간발의 차이로 유성탄과 흑혈신마가 싸우는 광경을 다 보지 못했다.
“상쾌한 아침입니다.”
철패가 우람한 웃통을 내보인 채로 몸을 씻다가는 방에서 나오는 유성탄을 보며 인사를 했다.
“너 왜 옷은 벗고 난리냐?”
“씻는 중인데요?”
“씻더라도! 여자가 있잖냐? 그러다가 나오면 어쩔려고 그렇게 예의도 없이 그러냐! 빨리 입어!”
유성탄이 뜬금없이 예의까지 찾자 철패는 급히 벗어 놓은 윗도리를 입었다.
‘짜식이… 몸이 너무 좋단 말이야. 저런 모습을 하후 계집애가 보면 안 돼. 나하고 비교가 된단 말이야.’
쪼잔한 유성탄다운 생각을 하는데 하후란이 문을 열고 나왔다.
“유성탄 대형님! 댁이나 예의 좀 차리시지요.”
하후란은 유성탄이 철패에게 하는 말을 안에서 다 들었는지 톡 쏘듯이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쟤는 일어나서 변소도 안 가나?’
하후란이 변소를 가면 쫓아가 볼 생각이던 유성탄은 그녀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기연인지 뭔지를 찾지 말고 세력부터 만들자 이 말이냐?”
강태웅은 아침을 먹자마자 아우들을 모두 데리고는 유성탄의 방으로 들어오더니 향후 계획을 말했다.
“기연을 안 찾는 게 아니고 찾으러 가면서 세력을 만들자는 겁니다.”
“그게 될까?”
장우왕이 좀 어렵지 않겠냐는 듯이 물었다.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에게는 상당히 많은 돈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가 낭인칠웅이라는 이름이 제법 나 있고 솔직히 강태웅 형님과 우왕 형님은 전국구가 아니십니까? 두 분이 기치를 들고 돈을 좀 쓰면 상당히 큰 세력을 금방 만들 수 있습니다.”
마동파가 강태웅의 의견에 찬성한다는 듯이 부언했다.
‘뭐야! 이것들이 대형을 앞에 앉혀놓고 호구를 만들고 있잖아?’
마동파의 말을 들은 유성탄은 기분이 안 좋아지려고 하고 있었다.
“거기다 이미 낭인을 떠나 무림의 신진 고수로 이름을 날릴 대형이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유성탄은 이어지는 마동파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낭인들만 모아가지고는 관부나 무림문파의 견제나 받지 세력이라고 하기도 힘들잖겠습니까?”
표도행이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미 낭인칠웅의 이름이 제법 알려진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높아졌다고 본다. 내 생각으로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야 태웅아!”
“예, 대형!”
“세력을 만들어서 뭘 하려고 그러는데? 사람들 죽이려고?”
유성탄은 강태웅이나 다른 아우들이 굳이 세력을 만들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남아로 태어나서 무림에 몸을 담았으면 한 번쯤 큰소리를 쳐봐야지요. 굵고 짧게 사는 것도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아무리 굵어봐야 짧게 살면 뭐에 쓰겠냐? 난 솔직히 가늘어도 길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대형, 세상은 생각처럼 흘러가지를 않습니다. 대형께서는 누군가 대형을 때리면 그냥 맞고 참으시겠습니까?”
“누가 때리는데 왜 참아! 당장 반쯤 죽여버려야지.”
“누군가 대형의 돈을 빼앗아서 가져가도 그냥 주시렵니까?”
“어떤 놈이 감히 이 유성탄의 돈을 빼앗아 가! 그런 놈은 완전히 거지로 만들어버린다.”
“바로 그겁니다. 대형께서 아무리 가늘게 살고 싶으셔도 참지 못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세력을 만들어서 누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스스로 보호하려는 것뿐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마룡방을 피해 달아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세력이 커지면 마룡방에서 우리를 피하는 때도 옵니다.”
“맞습니다. 거기다 대형께서 앞에 서고 우리가 뒤에 서고 우리 뒤에는 수십 명의 부하가 따른다면 얼마나 뽀다구가 나겠습니까?”
마동파가 유성탄이 좋아하는 말을 꺼내자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유성탄이었다.
“거기다 부하들이 많아지면 부모님 찾기도 쉬워질 것입니다.”
황대산의 말은 결정타가 되었다.
“세력을 키우자! 무지 많은 부하를 만들어서 모두 엄마하고 아버지를 찾는데 투입하는 거다. 좋다, 시작하자.”
드디어 유성탄의 허락이 떨어졌다.
“우선 혈문의 살수부터 처리해야 한다.”
유성탄은 세부적인 사항을 의논하는 자리에는 끼지 않았다. 어차피 끼어봐야 방해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대형이 아우들이 하는 허드렛일에 관여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죽여버릴까요?”
강태웅의 말에 황대산이 말했다.
“살수 놈들은 살려줘 봐야 고마운 것도 모른답니다. 죽여버리는 것이 후환을 없애는 일일 겁니다.”
마동파도 찬성한다는 듯이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잘만 구슬리면 우리 편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태웅 네 생각은 어떠냐?”
장우왕이 자신은 생각이 다르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우왕이와 같은 생각이다.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토설한 자다. 아마 자신도 살수로서는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냥 풀어줘도 스스로 자결할 자다.”
“하지만 살수를 어떻게 믿습니까?”
“어차피 우리가 세력을 키우는데 사람을 고를 처지가 아니다. 그리고 낭인들 역시 믿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돈만 많이 주면 언제든지 배신을 때리는 것이 낭인이 아니더냐!”
강태웅의 말에 모두 동감을 한다. 낭인들은 지금의 낭인칠웅처럼 인간적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에게는 의리를 지키지만 그 이외는 돈에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낭인들끼리는 그것을 그러려니 하고 그대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번 얘기나 해보지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배신의 기미가 보인다면 가차 없이 제거해야 합니다.”
표도행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혈도가 풀리지 않은 전화생은 눈을 감은 채 멍하니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혈도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었다. 하지만 유성탄에게 당한 후 그에게는 허탈감만 남아 있었다. 어려서 납치당한 후 거의 세뇌교육에 가까운 고련으로 처음에 가졌던 부모에 대한 그리움도 혈문에 대한 원망도 다 잊어버렸다. 그 후 그에게는 최고의 살수가 된다는 꿈만이 목표가 되었었다. 그리고 그는 거의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혈점사와 같은 오살들이 있기는 했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그들을 모두 추월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유성탄에 의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나름 가지고 있던 살수로서의 자존심까지 다 뭉개버린 유성탄의 주먹은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맞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에 전화생은 눈을 떴다. 그리고 들어온 강태웅을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우선 유성탄이 안 들어온 것에 안심과 함께 자신에게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다음은 뻔한 것이었다.
‘드디어 죽는가……?’
어차피 시간의 문제일 뿐 살수로서 전화생은 죽음을 언제나 끼고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 때건 자결할 준비도 다 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성탄에게 맞은 후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 오히려 살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살수로서의 삶이 좋으시오?”
갑작스런 강태웅의 질문에 전화생은 다시 눈을 떴다. 강태웅은 전화생이 눈을 뜨자 아혈을 풀어주었다. 낭인칠웅 중 혈도를 점하고 풀 수 있는 사람은 강태웅뿐이었다. 혈도를 점하려면 손가락으로 정확히 혈맥을 찾아 강하게 눌러 혈기의 운행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저 강하게 누르는 것만으로는 혈도를 짚었다고 할 수 없었다. 인간의 몸은 탄력이 있기 때문에 손을 떼는 순간 다시 풀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공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진기를 이용하여 혈맥을 오래 막아 놓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내공이 약 십 년 내공이었는데 낭인칠웅 중 십 년 이상의 내공을 가진 사람은 강태웅밖에 없었다.
“무슨 뜻으로 묻는 것이오? 만약 나를 희롱할 생각이라면 그런 말을 묻지 말고 그냥 죽여주시오.”
“우리가 낭인칠웅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를 아시오?”
강태웅의 말에 전화생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낭인 출신이기 때문이오. 낭인이나 살수나 무림인들에게는 대접을 못 받는 존재이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소? 거기다 대형의 말에 의하면 당신들은 모두 혈문에 납치를 당해서 살수가 되었는데 굳이 혈문에 충성을 바치는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것이오.”
“그렇게 따지면 혈문이 분명 우리에게는 원수가 되오. 하지만 살수교육을 받는 동안 우리는 그저 혈문이 우리의 집이고 가족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소.”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시오?”
“모르겠소. 언젠가부터 가족도 고향도 모두 잊었소. 그저 최고의 살수가 되려는 생각만이 우리의 뇌리를 지배했소.”
“우리 역시 부모형제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 출신이 반이 넘소. 낭인으로 용병을 나가면 죽음을 언제나 안고 살았고 용역을 나가면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해야 했소. 우리는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하오. 그동안 솔직히 거의 불가능이었소. 우리 같은 낭인 따위가 감히 세상에 고개를 내밀려 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났으니 말이오. 하지만 대형을 만나고 나서는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소. 그러나 아직은 우리의 힘이 부족하오.”
강태웅이 말을 멈추자 전화생은 강태웅이 하는 말의 진의가 이해 안 가는 눈으로 강태웅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새로운 방파를 만들려고 합니다. 당신이 우리와 합류한다면 더 이상은 살수의 삶이 아닌 무림인으로서 살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거절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소. 그 이유는 당신이 더 잘 알 것이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더 묵을 생각이니 하루의 시간을 주겠소. 내일 이 시간까지 당신의 생각을 말해 주시오.”
강태웅은 자신의 말을 끝내자 다시 전화생의 아혈을 점하고는 나가버렸다.
‘후후후! 이미 살수로 완전히 정해진 나에게 정상적인 무림인으로서의 삶을 살라고… …. 웃기는 제안이로군.’
전화생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눈을 감고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우님들 뭐 하시나?”
방에서 한참 숙의 중이던 강태웅의 방에 유성탄이 들어서며 점잖게 말하자 모두 수상하다는 얼굴로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이것들이 예의 좀 차리려니까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네!’
아우들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유성탄은 한번 봐주기로 한다.
“내가 방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세력을 만들려면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
유성탄의 말에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마동파가 제일 빠르게 움직였다.
“대형 말이 맞습니다. 낭인칠웅은 우리의 이름이지 세력의 이름이 될 수는 없지요. 역시 대형의 머리는 우리가 따를 수가 없군요.”
‘한발 늦었다! 그래도 두 번째는…….’
“당연한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름을 잘 지어야 사람도 모이는 법이지요, 역시 대형다우신 생각이십니다.”
표도행이 뒤질세라 맞장구를 쳤다.
“대형은 역시 머리가 좋으십니다. 그런 놀라운 생각도 못 하는 저의 머리는 맞아도 쌉니다.”
황대산이 급히 자신의 머리를 때리면서 유성탄을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니들은 내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냐?”
생각은 빠르지만 입 밖으로 말을 내는 데에는 느린 장우왕과 생각 자체가 느린 철패는 유성탄의 물음에 급히 뭔가 한마디를 던지려고 하는데…….
“대형께서 생각해 두신 이름이라도 계십니까?”
강태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했는데…….”
유성탄은 곰곰이란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모두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성탄파! 어떠냐?”
유성탄의 말에 모두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로 생각하는 척한다.
“성탄파는 뒷골목의 삼류 흑도들의 이름과 비슷합니다. 좀 무게가 없지요.”
강태웅이 총대를 멨다.
“대형도 아시잖습니까? 도박장에서… 그놈들 이름이 흑사판가 그랬을 겁니다.”
“제가 듣기에도 조금은 이상한 것 같은데요.”
‘이것들이 내 이름이 들어간 거하고 어디서 무식한 놈들이 쓰는 이름하고 같이 도매금으로 취급을 하다니……!’
유성탄은 그러나 한 번 더 참는다.
“그럼 성탄방은 어떠냐?”
“그거는 좀 괜찮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발음이 무림방파로 보기에는 좀 이상하군요.”
“성탄보!”
“보는 정말 비쌉니다.”
“성탄장!”
“장원이라도 한 채 가졌다면 생각해 보겠지만…….”
“성탄교!”
“에이, 우리가 무슨 사이비 종교단체도 아니고 교란 말을 쓸 수는 없지요.”
“성탄문!”
“이하동문인데요.”
“성탄맹!”
“맹이란 여러 문파의 연합체를 말하는 겁니다. 당연히 우리가 만드는 세력의 성격과는 맞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내 이름이 들어갔는데도 전부 다 반대를……. 그냥 한 대씩 때리고 다시 시작해.’
유성탄은 모두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마동파가 위험한 신호를 느끼고는 급히 말을 받았다.
“대형, 사실 문파에 대형의 이름을 넣으면 안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말할 때 ‘철검보 자식들’ 또는 ‘마룡방 놈들’ 이러지 않습니까 만약 성탄파를 쓰면 성탄파 놈들, 성탄파 새끼들 이럴 거고, 그럼 계속 대형의 이름이 욕을 먹게 되는 겁니다.”
마동파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성탄은 욕먹는 것을 싫어했다.
“니들이 지어라.”
유성탄은 결국 곰곰이 생각했던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