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고리대금
“그러니까, 내가 이 망치로 얘를 쳐서 쓰러뜨리면 나한테 건 돈의 두 배를 준다 이 말이지?”
포구는 생각 외로 대단히 컸고 어시장이 발달해 있었다. 수많은 여인네들이 바구니에 장강에서 잡힌 여러 물고기들을 늘어놓고는 팔고 있었고 사방에서는 뱃사람들의 외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남녀 간 유별이 유난했던 시기였지만 신분이 낮은 여인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유성탄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엄청난 떡대는 진짜 대단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커다란 망치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내기는 간단했다. 망치를 들어 근육질의 배를 한 대 쳐서 근육질이 쓰러지면 건 돈의 두 배를 준다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한번 해보라며 바람을 잡던 오구칠의 눈이 살짝 찌그러졌다, 다짜고짜 반말로 지껄이는 유성탄의 입을 한 대 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 것이 분명했다.
“몇 번을 말해야 아시겠소?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가시오.”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얼마를 걸까 그걸 생각하는 중이야? 많이 걸어도 되는 거야?”
“많이라면 얼마를 말하는 거요?”
‘여기도 많이가 얼만지 묻는 놈이 있네.’
“금자 한 냥!”
오구칠의 눈이 커졌다. 이런 포구장터에서 금자 한 냥이라니……!
‘이거 분명 또라이거나 바보가 분명하구나. 금자 한 냥이 있으면 내가 뭐 하러 이 짓을 하고 있을까?’
오구칠은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는 행운이 자신에게 왔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희열에 가득 찬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합니다. 걸 수 있습니다.”
“그럼 만약 저 친구가 쓰러지면 금자 두 냥을 내게 준다 이거지?”
“당연합니다.”
유성탄이 지면 자기는 금자 한 냥을 번다. 만약 자신들이 져도 어차피 가진 게 없는 개털들이었다. 일이 커져봐야 관부에 가서 욕 몇 마디 듣고 나오면 끝인 것이다. 그의 대답은 아주 경쾌했다.
“그런데 만약 저 친구가 죽으면 어떡하지?”
오구칠의 눈이 다시 찌그러졌다.
‘엄청 짜증나는 놈이구나…….’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만약 저 친구가 병신이 되면?”
사내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금자 한 냥 소리만 안 들었어도 당장 욕을 해서 쫓아버렸을 그였지만 다시 한 번 참는다.
“진짜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책임이니 손님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만약…….”
“절대로 만약은 없습니다.”
유성탄은 잠시 오구칠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다시 물었다.
“만약! 절대로 만약은 없다는 말이 틀리면 어쩔 거냐?”
“가! 가, 자식아! 금자 백 냥을 건다 해도 너하고는 안 한다!”
오구칠은 결국 금자 한 냥을 포기했다. 그리고 유성탄의 한 방에 뻗어버린다.
“자식이 내가 누군 줄 알고 욕이야!”
근육질은 오구칠이 쓰러진 것을 보자 잠시 움찔했지만 유성탄에게 덤비지는 못했다. 이런 곳에는 왈짜패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유성탄이 그런 자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재수에 옴 붙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오늘은 장사를 파하기로 작정한 듯 오구칠을 업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씨! 몇 대 더 때려줄 걸 그랬나?”
한 대로는 욕을 먹은 분이 안 풀리는지 아쉬운 듯 중얼거린 유성탄은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금방 재미있는 것을 찾는데 성공한다.
“잔소리 집어치워! 네놈이 분명 여기에 수결했지? 그러니 이 계집은 우리 거다.”
‘분명 이 계집은 자기네들 거라고 했겠다…….’
유성탄은 급히 소리가 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가 미쳤습니다. 어떻게 딸년을 팔아먹을 생각을 하다니… 으흐흑! 돈은 곧 갚아드리겠으니 제발 제 딸년만은…….”
유성탄이 도착한 곳에는 이미 여러 명이 모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구경하고 있었다. 칠팔 명의 장한들에 둘러싸여 한 노인이 울며 사정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딸인 듯 보이는 여자가 한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채 울고 있었다.
“여보쇼, 어떻게 해서 저 여자를 저자들이 가졌다고 큰소리치는 거요?”
유성탄에게는 여자를 내 거니 니 거니 한다는 자체가 무척 신선했다. 그리고 이번에 방법을 알아가지고 자기도 여자 몇 명 자기 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성탄이 구경하고 있는 한 남자에게 묻자 그 남자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유성탄을 보더니 말했다.
“나도 아직 몰라요. 조용히 보다 보면 알게 될 거요.”
‘하필이면 왜 조용히 봐야 하는 거지? 난 이런 거는 떠들면서 봐야 재미있던데…….’
조용히 들어보니 얘기는 누구나 다 아는 통속적인 고전이었다. 노인이 도박을 했고 순간적으로 미쳐서 딸을 담보로 돈을 빌린 것이다. 그리고 돈을 다 잃고 나니까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다 끝난 후였고 시간이 좀 지나 돈을 갚을 시기가 지나자 인상 드러운 놈들이 살이 뒤룩뒤룩 찐 놈들을 데리고 와서 노인이 수결한 종이를 보이면서 딸을 데려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노인은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하는 중이었다.
“에그, 불쌍해라.”
보고 있던 중년 여인 하나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안타까워했다.
“저게 왜 불쌍한 건지 모르겠네?”
유성탄의 말에 모두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생긴 것도 꼭 산적같이 생긴 놈이 저놈들과 똑같은 부류구나. 시비 붙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구경꾼들은 유성탄과 살이라도 닿을까 불안한 듯 유성탄의 곁에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저 늙은이 분명 오늘 딸이 무사하면 딴 놈들에게 또 딸을 담보로 돈을 빌릴 자라니까! 저런 늙은이는 호된 맛을 봐야 된다고!”
유성탄이 또 시끄럽게 외치자 구경꾼들은 한걸음씩 더 유성탄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러자 노인을 윽박지르던 덩치들도 유성탄을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옳지! 딱 걸렸어.’
유성탄은 덩치들의 미소를 보자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야! 너 왜 나보고 웃었어?”
갑작스런 유성탄의 말에 모두의 눈이 유성탄에게 향했다.
“야 자식아! 왜 나를 보고 웃었냐고!”
“지금 우리한테 하는 말이냐?”
덩치 하나가 그때서야 유성탄이 자신들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리고 날아온 유성탄의 주먹에 그대로 날아가서는 뻗어버린다.
“이것들이 어른을 몰라본단 말이야!”
노인을 윽박지르며 노인의 수결이 찍힌 종이를 흔들어대던 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는 토룡방의 사람들이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이 근처에서 토룡방의 행사를 방해한다면 신상에 좋지 않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오. 지금 일은 모르고 하신 것으로 하고 그냥 돌아가신다면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겠소이다.”
말한 자는 안휘와 호북의 접경에 위치한 토룡방이라는 조그만 사파에 묻어 우리도 토룡방입네 하면서 악질적인 고리대금업을 하는 단두파라는 흑도의 두목으로 이름은 홍두령이지만 얼굴에 박힌 큰 점 때문에 점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자였다. 하지만 그의 앞에서는 점박이의 점 자도 꺼내지 못했다. 말을 꺼내는 순간 골로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룡방? 이것 봐라…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는데…….’
도박장 하나를 잘못 건드려서 팔자에 없던 긴 도망자 신세가 된 지금 또 다른 사파와 원한을 맺는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은 눈치 없는 유성탄도 알 수 있었다.
“좋다! 나 역시 토룡방과 시비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왜 나를 보고 썩은 미소를 지었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겠다.”
유성탄은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알 것은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썩은 미소를 보냈다는 겁니까?”
점박이는 단 한 방에 덩치 하나를 날려버린 유성탄과 당장은 시비를 붙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웃었다는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유성탄에게 짜증이 나는 것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저놈, 저놈, 그리고 저놈! 전부 다 나를 보고 비웃는 웃음을 지었다.”
점박이는 유성탄이 가리키는 자들을 보다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이 가리키는 대로라면 우리 아이들이 모두 당신을 보고 웃었다는 것인데 좋소! 웃었다 칩시다. 그게 또 무슨 시빗거리가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길 가다가 누구나 웃으면 다 이렇게 시비를 겁니까?”
“응!”
유성탄의 짤막한 대답에 점박이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점박이는 슬쩍 부하 한 명을 쳐다보았다. 삐딱하면 유성탄에게 덤비라는 신호였다.
“알겠소. 그럼 내가 사과하겠소. 그럼 됐지요?”
“사과를 한다고? 하하하! 그렇다면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 이 말이렷다.”
유성탄의 말에 점박이의 얼굴은 더 구겨진다. 빨리 일을 처리하려고 한 말인데 그것을 잘못을 인정해서 하는 말로 바꾸는 유성탄에게 슬슬 살기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누가 내게 잘못을 하면 사과를 받지 않고 돈으로 받는다. 어차피 네가 잘못을 인정했으니 금자 스무 냥만 주면 그냥 돌아가마.”
“이 새끼! 죽여버려!”
터무니없는 이유로 시비를 걸더니 금자 스무 냥을 주면 돌아가겠다는 유성탄의 말에 점박이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일 각도 안 되어 모두는 손을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게 된다.
“도대체 왜 말로 하면 안 듣고 꼭 주먹을 쓰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유성탄은 점박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이름이 뭐냐?”
“홍두령입니다.”
점박이도 싸움으로 이골이 난 자였다. 하지만 유성탄의 주먹은 그가 맞아본 수많은 주먹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점박이는 더 이상 맞고 싶지 않았다.
“홍두령? 점박이가 아니고?”
유성탄의 입에서 점박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의 눈이 살짝 찢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너 얼굴에 있는 그 점은 원래부터 있는 거냐?”
점박이가 가장 싫어하는 점에 대한 이야기부터 묻는 유성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래, 너 그 점 때문에 죽고 싶었던 적 많았겠다.”
다시 이어지는 유성탄의 말에 점박이의 눈에 살기가 잠시 지나갔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지만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말을 골라 하는 유성탄에게 순간적으로 살의를 느낀 것이다.
“보통 너 같은 얼굴에 못생긴 점이 그것도 커다랗게 붙어 있으면 점박이라고 불리는데… 점박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면 화 많이 나지 않냐?”
계속 부하를 돋우는 유성탄의 말에 점박이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제 얼굴 점에 뭐 보태주신 것 있습니까? 왜 자꾸 점 갖고 그럽니까!”
“자식이, 점에 대해서 엄청 열등감이 있었구나. 쯧쯧……!”
유성탄은 점박이가 소리치자 안됐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그대로 주먹이 날아갔다.
“으아악!”
“짜식이 좋게 말하니까 금방 겁을 상실하네? 니가 지금 나한테 소리칠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점박이는 유성탄의 주먹에 비명을 지르다가는 간신히 사정조로 말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우리는 토룡방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알아,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토룡방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우리를 이렇게 두들겨놓고서 토룡방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왜? 너희들 때리면 꼭 토룡방과 싸우게 되는 거냐?”
“우리가 토룡방 사람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소?”
유성탄은 손으로 턱을 만지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갑자기 땅에 떨어져 있던 쇠몽둥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덩치들 중 하나가 들고 유성탄에게 덤볐던 무기였다.
“그렇다면 너희들 모두 머리통을 부셔서 죽여버리면 되겠구나. 얼굴이 박살나면 누군지 알 수 없을 거고 알게 된다 해도 나는 한참 먼 곳에 있을 테니 그때는 싸우고 싶어도 못 싸우겠지 뭐!”
말을 마친 유성탄이 쇠몽둥이를 들어 올리자 점박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하하! 우리 따위를 때렸다고 어찌 토룡방과 원수가 되겠습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응? 너희들을 때려도 토룡방과는 상관없다 이거야?”
점박이는 유성탄의 얼굴과 쇠몽둥이를 번갈아 보며 어찌 대답해야 할지를 열심히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은 우선은 살고 보자였다.
“당연합니다. 저희들 정도는 때려도 토룡방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지요.”
“하하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토룡방 걱정에 너희들을 제대로 때려주지 못했거든.”
말을 끝내자마자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점박이의 머리통에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발이 덩치를 향해 날아갔다.
“으아악! 살려주십시오. 더 이상 맞으면 저는 죽습니다.”
“그렇다면 잘못을 사과해야지.”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평생 다시 웃지 않겠습니다.”
“니들이 웃는지 안 웃는지 내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감시하라는 말이야 뭐야! 이게 나를 힘들게 하려고!”
유성탄의 주먹이 다시 점박이의 머리를 때리려 하자 점박이가 황급히 말했다.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원하는 거? 왜 내가 원하면 뭐든지 다 해줄 거냐?”
“그건 아닙니다만… 악!”
“짜식이 아닌데 왜 묻는 거야!”
점박이의 머리를 다시 한 대 때린 유성탄은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노인을 불렀다.
“영감! 이리 와봐.”
“전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유성탄의 무지막지함에 자신을 구해줬다는 생각보다는 겁부터 난 노인은 황급히 말했다.
“잘못이 없어! 이게 나이 좀 들었다고 봐주려고 하니까!”
유성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노인은 머리부터 감쌌다.
“도박은 왜 했어? 거기다 딸까지 팔아먹으려고 한 게 잘못이 없어!”
“도박을 한 것은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빌린 돈은 달랑 은자 한 냥이었습니다.”
유성탄은 노인의 말을 듣자 점박이를 확 째려보더니 말했다.
“이런 천하의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겨우 은자 한 냥에 여자를 자기 거로 만들려고 해?”
“아닙니다. 저자가 빌린 것은 은자 한 냥이지만 오랫동안 갚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도 돈을 빌려줄 때는 거기에 생기는 이익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정말 악덕채무자입니다.”
“나는 무식한 말은 무지 싫어한다. 채무자가 뭐냐?”
“돈을 빌려간 사람을 말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저 노인이 악덕 돈 빌려간 사람이다 이 말이구나. 흠…….”
잠시 생각을 하던 유성탄이 노인을 보며 소리쳤다.
“돈을 빌려갔으면 빨리 갚아야지 저놈들은 어디서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알아!”
“갚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갚으러 간 날 만나지를 못했고 그 다음날 갔더니 은자 두 냥이 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두 냥을 마련해서 갔더니 이번에는 네 냥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제 형편으로는 갚은 수가 없게 된 겁니다. 그러더니 금자 열 냥이 되었다고 못 갚을 거면 죽든지 딸을 담보로 하라고 해서 으흐흑! 제가 죽을 놈입니다.”
‘은자 한 냥이 두 냥이 되고 두 냥이 네 냥이 되고 그러다가 금자 열 냥으로 변했다고?’
유성탄의 눈이 반짝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돈벌이를 발견한 것이다.
“너, 이 영감 말이 맞냐?”
“저희같이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있어 이자는 아주 중요한 수입원입니다.”
“그럼 은자 한 냥이 금자 열 냥 되는데 얼마나 걸렸냐?”
“열흘 걸렸습니다. 하루에 두 배씩 늘어나는 걸로 계약을 했었습니다.”
‘열흘 만에… 으하하하! 대박이다. 히히히!’
유성탄은 엄청난 것을 알고는 입이 쫙 찢어졌다.
“내가 니들을 오늘 아주 죽여놓으려고 했는데 기분이 좋아서 한 번 봐준다. 하지만 이 노인하고 한 채무관계는 오늘로 끝이다. 알았냐? 대신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그만큼 돈을 빌려주마.”
유성탄의 뜬금없는 말에 점박이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가는 유성탄의 속셈을 눈치 채고는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이놈 아주 바보로구나! 좋다. 돈을 빌려주마. 그리고 돈을 찾으러 오는 순간 너는 완전 고깃덩어리를 만들어주겠다.’
“얼마나 가지고 계신데요?”
“원하는 만큼 말해 봐.”
“저 노인에게 받을 돈이 모두 금자 열 냥이었습니다. 그러니 금자 열 냥만 빌리겠습니다.”
“남자가 쩨쩨하게 금자 열 냥이 뭐냐, 금자 한 냥 빌려주마.”
금자를 온몸에 두르고 있는 유성탄은 쩨쩨하다며 말하고는 전낭에서 금자 한 냥을 빼서 점박이에게 주었다.
“그러면 가봐라.”
점박이는 유성탄이 가라는 소리에 옆에서 떨고 있는 노인과 딸을 쳐다보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우선은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금자 열 냥을 달라는데 쩨쩨하다며 한 냥을 주는 바보 같은 놈에게 내가 이게 무슨 꼴이냐! 두고 보자! 오늘만 날이 아니다.’
“야! 이 영감이 수결했다는 종이는 줘야지!”
‘완전 바보는 아니구나.’
점박이는 채무서류를 유성탄에게 넘기더니 부하들을 데리고 후다닥 뛰어가면서 슬쩍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유성탄은 그때까지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분명 머저리 같은 놈인데… 완전 모양 구기는구나.’
사실 노인의 딸을 어디에 판다 해도 금자 한 냥 받기도 힘든 게 사실이었다. 또한 어차피 노인에게 돈을 받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힘들게 몇 대 맞기는 했지만 큰돈을 벌었다면 번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성탄을 그냥 놔둘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점박이는 유성탄이 자신의 생애에 만난 놈 중 가장 짜증나는 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감! 저 놈들이 어디 사는지 알지?”
“모르는데요.”
“몰라? 그럼 돈은 어떻게 빌렸어?”
“도박을 하는 곳에서…….”
“도박장?”
“도박장은 아닙니다. 그냥 여러 명이 모여서 패나 돌리는 곳이 있습니다.”
‘패나 돌린다고? 생각보다 여기 재미있는 게 무지 많네!’
유성탄은 패를 돌린다는 말을 듣자 자기도 가서 야바위 패나 돌려볼 생각을 한다.
“저… 저희 아버님께서는 나이가 많으십니다. 그런데 장사님께서 너무 무례하게 말하시는 것 같습니다.”
노인의 옆에 붙어 있던 노인의 딸이 계속되는 유성탄의 반말이 거슬렸는지 한마디 한다. 무섭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유성탄에게는 자신들을 괴롭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나도 어른 공경할 줄은 알거든!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나같이 예의바른 아이는 없다고 했었다고. 하지만 자기 죽겠다고 딸을 팔아먹으려고 하는 아버지한테까지 예의를 지킬 생각은 없다.”
유성탄은 말을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멋있게 얘기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긴 것과 전혀 안 맞는 말을 하는 유성탄의 말을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생긴 것과 다르게 자신의 돈을 털어서 불쌍한 노인과 딸을 구해준 유성탄에게 모두는 감탄을 하고 있었다.
물론 유성탄의 속셈을 그들이 알 리 없었다.
“한 건 잡았고… 일주일만 버티면 금자 500냥을 받는단 말이지. 진짜 돈 벌기 쉽구나!”
유성탄은 자신의 금자 한 냥이 새끼를 쳐서 엄청 불어 올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건 그렇고 여자 하나 갖는데 금자 열 냥이면 된다는 말인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여자를 사면… 우와 백 명! 야… 하루에 한 명씩만 해도 백 일이 필요한데… 가만있자… 그런데 여자를 백 명이나 먹여 살리려면 도대체 야바위 패를 얼마나 돌려야 되는 거야? 에이 안 되겠다.”
유성탄은 먹여 살리는 것이 싫어서 여자를 사는 것은 간단히 포기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중얼거렸다.
“누구 나보고 미소 짓는 놈 또 없나?”
* * *
산중턱, 조그만 오두막 안에 두 명의 장한이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개 낭인이라면서 우리까지 나설 필요가 있을까?”
혈문오살 중 지정우가 풀잎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권태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어쩌겠어?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우리니…….”
나야종도 상당히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전화생이 지금 쫓고 있지?”
“그놈은 그게 특기니까.”
“빨리 처리하고 미향이나 안고 쉬고 싶은데…….”
지정우는 혈문오살 중 수좌 격이었다. 혈문에서 십팔 년 전 납치해 온 아이들 중 현재까지 살아 있는 아이는 모두 십여 명 정도였다. 그 당시 모두 오십여 명을 납치해 와 수련 중 무려 이십여 명이 죽었다. 그 중 한 명은 완전 고문관으로 너무 말을 안 듣다가 충동에 던져졌고 나머지는 거의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하다가 심한 상처를 입어 죽은 것이다. 이따금은 그대로 즉사한 경우도 있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실전에 투입된 것은 약 오 년 전이었다. 그리고 오 년간의 살행 중 다시 이십여 명이 죽었다. 이제 살아남은 십여 명은 혈문의 최고의 살수가 되어 혈문의 이름을 높여주고 있었다.
“연락이 왔다!”
역시 혈문오살 중 한 명인 조황이 전서구를 한 마리 들고서는 안으로 들어왔다.
“읽어봐라!”
지정우는 조황의 말을 듣고도 귀찮다는 듯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우리의 목표물이 지금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탔다고 한다.”
“정말 귀찮은 놈이군. 그럼 어디서 내릴지는 알아놨냐?”
살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이 선상(船上)이었다. 살수는 은밀한 곳에서 가장 유리한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단숨에 상대의 목숨을 끊어야 한다. 만약 첫 공격이 실패한다면 거의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만약 실패하고서 정면으로 싸웠는데 살수가 이긴다면 잘못된 살수 배정이 된다.
그런데 선상은 살수들이 숨을 곳이 거의 없었다. 물론 비좁은 곳이니 살짝 곁으로 다가가 검 같은 것으로 찌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상대가 실력이 비슷할 때 얘기였다. 살수문에서 청부를 받고 살수를 보낼 때는 정면대결로는 언제나 청부대상보다 약한 살수를 배정하는 법이었다.
“수적이 나타나는 바람에 잠시 포구에 내렸다고 하는데 곧 다시 배를 타고 떠날 거라고 한다.”
“내린 곳이 어디냐?”
“여기서 이틀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어쩔 수 없다. 우선은 그곳으로 출발한다. 이후는 거기서부터 다시 추적을 하도록 한다.”
지정우의 말에 나야종과 조황은 말없이 따라 나간다.
* * *
“대형, 갑자기 왜?”
객잔으로 돌아온 유성탄은 다짜고짜 그곳에서 일주일은 더 머무르겠다고 말했다. 하루가 급한 판에 일주일이나 볼 것 없는 포구마을에서 머물겠다는 이유를 모르는 아우들이 유성탄에게 물었다.
“내가 엄청난 사업을 구상했는데 그 결과를 보려면 일주일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이미 뱃삯까지 다 지불했습니다. 지금 안 타면 손해가 막심할 텐데요.”
유성탄의 성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마동파가 슬쩍 말했다. 두 눈 뜨고 손해는 못 본다는 유성탄이 아니던가.
“이미 가서 나머지는 다 받아왔다.”
“예?”
뱃삯은 절대로 물러주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런데 유성탄은 이미 나머지를 받아왔다고 한다. 유성탄은 그곳에 머물 생각을 하자 곧 뱃삯부터 생각했다. 그는 분명 호북까지 가는 뱃삯을 냈고 그가 내린 곳은 아직 안휘였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거센 뱃사람인 그들도 돌을 던져 수적의 배를 침몰시킨 유성탄의 돈을 물어주지 못한다고 버틸 수는 없었다.
“대형, 그러다가 마룡방 놈들이라도 쫓아오면 어쩌시려구요?”
“야! 이 넓은 천지에 우리가 배까지 타고 떠났는데 어떻게 찾냐? 걱정 마라. 절대로 못 쫓아온다.”
“그래도 만약 찾으면…….”
“나 유성탄의 인생에 만약이란 없다.”
계속 만약을 찾다가 죄 없는 사람 하나 때려눕힌 것이 반나절도 안 되었건만 벌써 잊어버린 듯한 유성탄이었다.
“그놈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봤냐?”
“예, 포구 앞 어육집에 묵고 있었습니다.”
점박이는 근처에서는 제법 날리는 흑도인이었다. 물론 무공이 대단히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성격이 잔인하고 집요해서 여간한 사람들은 다 두려워했다. 원한을 맺은 자에게는 어떤 수단방법을 다 써서라도 꼭 복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내 이놈을 반드시 살가죽을 벗겨버릴 것이야.”
“그런데 거기에 그놈 일행이 있었습니다.”
“일행이? 몇 명이나?”
“모두 일고여덟은 돼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인상들이 더러운 것이 아무래도 오늘일이 우연이 아니라 다른 파에서 우리 구역을 먹어치우려고 일부러 시비를 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박이는 두복만의 말을 듣더니 벌떡 일어났다.
“맞았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바보 같은 놈이 싸움을 너무 잘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토룡방에 사람을 보내서 도움을 청해야겠다.”
“돈이 좀 들 텐데요.”
“지금 돈이 문제냐! 여기서 쫓겨나면 우리는 잘못하면 완전 거지가 될 수도 있다. 여기가 작기는 해도 의외로 짭짤한 곳인데…….”
“가서 보고하고 뭐 하고 그러다 보면 일주일은 걸려야 사람을 보내줄 겁니다.”
“우선은 그놈들을 자극하지 말고 놔둬라. 그리고 토룡방에서 고수들을 보내주면 그때 작살을 낸다.”
“알겠습니다. 곧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대형은 몸 안 푸십니까?”
일주일을 더 머물기로 한 후 낭인칠웅은 객잔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아직 마룡방의 추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되도록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유성탄이 전혀 무공연습을 안 하고 있었다. 솔직히 무공연습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아우들에게 배운 무공들을 열심히 연습하던 그였기 때문에 강태웅으로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무공연습을 안 하기로 했다.”
“대형! 대형 정도면 연습을 안 해도 충분히 강하시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흑혈신마 같은 초강자를 만나면 크게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연습은 충분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강태웅은 유성탄의 마음에 혹시 자만심이 든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한마디 했다.
“정자운이라는 여자가 나보고 무공을 익히면 죽는다고 그랬다. 어차피 무림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는데 죽는다고까지 하니 더 이상 무공을 연습하기가 싫어지더라.”
“신녀께서 그런 말을 했습니까?”
“내 손을 한번 만지고 싶은지 손목을 좀 달라고 해서 줬더니 내 손을 한참 만지작거리더라고. 그래서 나도 좋다 하고 놔뒀지. 그랬더니 다 만지고 나서 무공을 익히면 죽을 수 있으니 무공을 익히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강태웅은 유성탄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정자운이 왜 유성탄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공은 싸움을 떠나서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무공을 익히면 죽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요? 이상하군요. 신녀께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거야 내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일찍 죽으면 안 된다 생각해서 그런 거지! 너는 척 보면 모르겠냐?”
유성탄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했지만 강태웅은 어차피 한쪽 귀로 흘려듣고 있었다.
‘그래! 분명 신녀께서 그런 말을 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은 조르지 말고 놔둬보자.’
강태웅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자운이 그런 말을 한 데는 분명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태웅은 우선은 유성탄이 무공연습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두고 보기로 한다.
“대형, 뭐 하십니까?”
강태웅은 뭐 좀 알아본다고 밖으로 나갔고 표도행은 점박이가 어디에 사는지 혹시 도망은 안 갔는지 알아보라는 유성탄의 명에 역시 알아본다고 나갔다. 그런데 유성탄이 방에 쪼그리고 앉아 야바위 패를 혼자 넘기고 있자 아우들이 이상해서 물었다. 야바위 패를 돌리는 연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하하하! 내가 이 천재적인 머리로 야바위 점을 개발했지 않겠냐? 그래서 지금 점을 치고 있는 중이다.”
“야바위 점이요? 어떻게 하는 겁니까?”
장우왕이 얼굴을 디밀며 물었다.
“저리 가라 부정 탄다. 지금 엄숙한 상황인데 그 커다란 면상을 어디다 디미는 거냐?”
“대형도 참!”
“여기 봐라. 여기 한 장에 점이 있지 이제 세 장을 막 섞어 그 다음에 아무거나 펴는 거야. 그래서 모두 아홉 번을 펴서 다섯 번이 점이 나오면 그날은 재수가 좋은 날도 아니고 나쁜 날도 아닌 그저 그런 날인 거야. 그리고 여섯 번부터 재수가 좋은 날이 시작되는 거고, 다섯 번째 밑으로는 재수가 나쁜 날이 되는 거다.”
“그게 맞기나 하겠습니까?”
황대산이 물었다.
“그런 식으로 패를 가지고 점을 보는 거는 많이 있습니다. 천재적인 거는 아니지요.”
마동파도 한마디 거든다.
“이것들이 내가 요새 계속 이걸로 점을 봤는데 하루도 틀린 적이 없었다.”
유성탄의 큰소리에 장우왕이 물었다.
“그런데 왜 다섯 번이 중간이 된 겁니까?”
“그러니까 내가 천재라는 거야! 아홉 번을 뒤집잖아. 그러니까 다섯 번이 딱 가운데잖냐!”
뻔한 말이었지만 아우들은 감탄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홉 번이 다 맞으면 엄청 재수가 좋은 날이겠군요?”
“당연하지! 한마디로 그 말은 대박 나는 날인 거야. 엄청나게 돈 많은 여자가 있는데 얼굴도 무지 예쁜 거야. 그런데 그 여자가 내게 다가와서는 자신의 돈을 다 나한테 주고 그것도 한 번 주겠다고 하는 거야. 어때?”
“불가능한 이야기로군요. 아홉 번은 영원히 안 나올 것 같은데요.”
황대산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맞습니다. 어느 정도 가능해야 말이 되는데……. 그럼 여덟 번 맞으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마동파가 동조하며 다시 물었다.
“무지 예쁜 여자가 있는데 돈이 조금밖에 없어. 그런데 그 여자가 조금이지만 이 돈이라도 받아주세요 하고는 한 번 주는 날이지.”
“흠! 그것도 역시 어렵겠군요.”
마동파는 유성탄의 말을 듣더니 역시 어렵겠다는 듯이 말했다.
“어려운 데가 아니라 불가능이지. 미친년이면 모를까…….”
장우왕이 고개를 살랑살랑 저으며 역시 심각하게 말했다.
“그럼 일곱 번 나오면 돈은 하나도 없는 예쁜 여자가 한 번 주는 날이겠군요?”
마동파가 다음 말을 잇자 유성탄은 눈을 크게 뜨더니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 내가 전에 말해 준 적이 있었냐?”
‘혹시나 해서 말한 건데 진짜 그거로군.’
아우들은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모두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동안 몇 번 맞춘 것이 최고였습니까?”
오랜만에 철패가 물었다.
“지금까지 네 번 맞춘 것이 최고였다. 그래서 나같이 재수가 좋은 사람이 왜 이런가 생각해 봤더니 재수 없는 너희들하고 다녀서 그런 것 같더라. 아마 니들하고 같이 다니는 한 나에게 행운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대형!”
“왜?”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우리보다는 대형께서 더 재수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철패가 상황파악을 못 하고 솔직히 말하자 유성탄의 인상이 구겨졌다.
“내가 너희들보다 더 재수가 없다…고……!”
유성탄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는 철패를 성토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만약… 내가 너희들보다 재수가 없었다는 이유를 하나라도 말하지 못하면 너는 오늘 밤새도록 나하고 비무를 해야 한다.”
유성탄의 목소리에 살기가 들어갔다.
“저희들은 그래도 편안히 자랐습니다. 하지만 대형은 충동에서 자라셨다면서요? 그렇다면 누가 봐도 우리가 더 재수가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직해서 미련해 보이지만 전혀 미련하지 않은 철패의 대답에 유성탄은 주섬주섬 야바위 패를 품에 집어넣더니 밖으로 나갔다.
‘씨! 열 가지를 말하라고 했어야 하는 건데…….’
유성탄은 순간적으로 한 가지만 대라고 말한 것을 무지 후회했지만 대형 체면에 이제 와서 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패는 세 개고 점은 하나였다. 유성탄은 공평하게 다섯 번을 맞추면 그냥 평범한 날이라고 정했지만 확률적으로 세 번이 나와야 보통이었다.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유성탄은 평생을 재수 없는 날로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 * *
유성우는 물품을 조사하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동안은 현령의 명으로 물품에는 손을 대지 않고 수량과 그들이 가르쳐준 물품이 가는 장소만 장부에 적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슬쩍 물품을 들어본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가볍지?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
유성우는 한 개 뜯어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곧 나타난 경비무사 때문에 포기하고 나갔다. 그리고 창고를 나가는 유성우를 무사는 야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님!”
유정삼은 방에 앉아 있다가는 유성우가 밖에서 부르자 문을 열며 말했다.
“왔느냐? 오늘은 많이 늦었구나.”
“예, 오늘 여러 물품이 들어와서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가서 쉬거라.”
“아버님,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의논? 허허허! 성우가 내게 의논할 일이 있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들어오너라.”
유성우는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였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유정삼과 강추화가 걱정을 할 일은 전혀 하지 않았고 당연히 순종만 했지 의논이라고는 전혀 몰랐다. 물론 속을 썩이지 않는 착한 아들이기는 했지만 어린데도 함부로 하기 힘든 아들이 바로 유성우였다. 그런 유성우의 의논이라는 말에 유정삼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니까… 현령님께서 들여오는 물건들이 좀 이상하다 이 말이냐?”
“예,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물품들은 전혀 관의 장부에는 기재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들여오는 것도 언제나 밤에 들어오고 물건을 놔둔 창고를 지키는 무사들도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거냐?”
“어쩌다 한 번씩 저를 쳐다볼 때면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눈에 살기가 흘렀습니다. 말로만 듣던 무림인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유정삼은 무림인이라는 말에 안색이 변했다. 양민이고 관인이고 무림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금기였다. 원체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족속들이다 보니 정파건 사파건 상관없이 가까이 하면은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령님이 왜 무림인들과 관계를 맺고 계실까? 네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니냐?”
“아닙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이 또한 수상합니다. 부피가 상당히 큰데도 상당히 가벼웠습니다. 완전히 봉해놔서 안을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물건이 분명했습니다.”
유정삼은 유성우가 경솔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그렇다면 분명 수상하기는 하구나. 하지만 현령님이 끼어 있는데 내가 함부로 나설 수도 없고…….”
현령은 유정삼의 목을 아무 때나 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수상하다고 조사를 한다는 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잘릴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벼슬도 좋지만 나는 네가 위험한 일에 연루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내일이라도 현령님을 만나뵙고 더 이상 네가 돕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해야 할 것 같구나.”
유정삼은 현령을 조사하는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는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위험에서 유성우를 빼내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닙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는 일이니 제가 좀더 조심스럽게 알아보겠습니다.”
“아니다. 무림인들까지 왔다 갔다 한다면 나는 불안해서 네가 더 이상 그곳에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구나.”
“아버님, 이 일이 그냥 잘못된 판단이라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한 현령님께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남자는 자신이 부여받은 일은 확실하게 마무리를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만약 제 짐작이 맞아서 뭔가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것 역시 파헤쳐서 고쳐 나가야지 위험하다고 다 피한다면 누가 잘못된 것을 고치겠습니까? 우선은 확실하게 알기 전까지는 아버님께서도 그냥 모른 척해 주십시오.”
유성우는 유정삼이 걱정을 하자 확실하게 알기도 전에 먼저 말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분명 뭔가 잘못이 있는데도 자신 한 몸의 안위를 걱정해서 쉬쉬 넘어가는 것은 군자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유정삼은 유성우의 말이 구구절절 옳자 더 이상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자신도 현령이 뭘 하는지 은밀하게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