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제1장 장강의 풍운 (19/79)

제1장 장강의 풍운

“아버지!”

유성탄은 크게 소리치며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누구세요!”

“너는 누구냐?”

“나는 이 집 딸이거든요. 누군지 말해 줘야 할 사람은 아저씨일 것 같은데요.”

“딸? 우리 집에 딸이 있었던가?”

“아저씨는 누구예요!”

“조그만 게 누구를 닮아서 목소리가 그렇게 크냐?”

“엄마 말씀이 큰오빠를 닮았대요.”

“어떤 놈인지 네 큰오빠라는 놈도 꽤나 시끄러운 놈인 모양이구나.”

“야! 저게 뭔 강인데 저렇게 크냐?”

유성탄이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경치를 구경하다가는 옆에 말을 타고 가는 철패에게 물었다.

“저거, 장강 아닙니까? 설마 장강 처음 보세요?”

“내가 충동에서 나와 처음으로 이렇게 다니는 건데 강을 언제 봐! 그런데 저렇게 큰 강을 어떻게 건너냐?”

“배를 타고 건너야지요.”

“배? 물위를 떠다니는 거 말이냐?”

“배도 못 보셨어요?”

“내가 살던 곳에는 강이라는 게 없었다. 그러니 배는 당연히 못 봤지. 배 타고 가면 재미있겠다.”

유성탄은 배를 탄다는 말에 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배 타는 거 별로 재미없습니다.”

안견은 수많은 배가 드나드는 대단히 큰 포구였다.

“뭐라고! 마차를 싣는데 그렇게 많이 달란다고!”

황대산이 그들을 실어 나를 배를 알아보고 와서는 가격을 얘기하자 유성탄이 깜짝 놀란다.

“마차 한 대면 사람 열 명 가격은 주어야 한답니다. 그뿐 아니라 말도 한 마리당 다섯 명 가격은 줘야 한다는군요.”

유성탄은 그런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마차를 판다. 그리고 말도 판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편했다. 낭인칠웅은 뛰는 칠웅이다.”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모두의 얼굴이 구겨졌다.

“대형, 그 돈은 제가 내겠습니다.”

“저도 보태겠습니다.”

황대산과 철패가 더 이상 뛰는 것은 지겨운지 자신들이 뱃삯을 내겠다고 나섰다.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니들 돈이 다 내 돈이나 마찬가진데 내가 왜 그 돈을 쓰냐? 잔소리 말고 가서 팔아 가지고 와!”

‘대형도 참! 돈 계산 이상하게 하시네.’

유성탄의 말에 아우들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어째서 자신들의 돈이 유성탄의 돈이 된다는 건지 알수 없었다.

유성탄은 뱃삯도 아까웠지만 그동안 아우들을 편하게 놔둔 것이 영 께름칙했다.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괴롭히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거기다 은근히 괴롭히는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고 비무도 재미있었다.

‘흐흐흐, 은근히 짭짤했어.’

마차와 말을 판 돈을 허리에 찬 유성탄은 묵직한 기분에 얼굴이 환했다.

강태웅은 장강을 타고 안휘를 거슬러 올라가 호북으로 가기로 여정을 정했다.

‘돈도 있고 이 강만 거슬러 올라가면 추적도 없다는데… 엄마하고 아버지만 찾으면 딱인데…….’

유성탄이 뱃전에 서서 강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고 강태웅과 아우들은 조금 떨어져 모여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태웅 형님! 만사무불통녀가 우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이튿날 만나기로 했지만 이미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것도 그녀가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산속을 통해 도망치느라 그랬으니 그녀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그녀의 능력은 솔직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확률이 많다. 우선은 기다려보자.”

“장강만 건너면 마룡방의 추격은 더 이상 없을까요?”

황대산이 물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더 이상의 추격은 없을 것입니다. 마룡방의 청룡대와 황룡대는 굉장한 전력이거든요. 더 이상 피해를 입는 것은 그들도 꺼려할 것입니다.”

표도행이 나름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하자 장우왕이 아니라는 듯이 말을 받았다.

“내가 무림인에 대해 좀 아는데 절대로 그냥 포기할 놈들이 아니다. 안 되면 다른 세력을 꼬드겨서라도 우리를 죽이려고 할 거다.”

호북이나 사천에도 정파의 세력이 강해 함부로 날뛰지는 않지만 사파는 존재했다. 그리고 사파들끼리는 서로 간에 돈이나 또는 다른 이권을 조건으로 자신의 세력권에 들어온 자들을 대신 죽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무리 마룡방이라 해도 호북이나 사천의 마도를 설득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같은 사파지만 그쪽은 정파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마룡방과 친하게 지내는 것조차도 조심할 겁니다.”

표도행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무당이야 누구나 두려워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사천은 커다란 문파가 셋이나 있습니다. 사파를 없애려면 벌써 없앴을 겁니다. 그런데도 놔두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표도행의 반문에 모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지 대답을 못 하고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사파가 있어야 자신들이 그곳에 있는 당위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랍니다. 어이가 없는 말이지만 까놓고 말해서 사파가 나쁜 짓을 해야 자신들이 그들을 제압하면서 우리가 있으니 너희들이 이렇게 편하게 사는 거다 하고 큰소리를 친다는 거지요.”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냐?”

황대산이 재미있다는 듯이 물었다.

“제 특기가 그거 아닙니까? 헤헤!”

표도행이 웃으며 대답한다.

“야! 저거 뭐냐?”

그들이 하는 대화에 끼지 않고 생전 처음 보는 뻥 뚫린 사방을 보며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있던 유성탄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아우들에게 물었다.

“뭐 말입니까?”

“저기 끝에 배 말이다. 꼭 산적같이 생긴 놈들이 타고 있는데 우리 배를 가리키며 뭐라고 하고 있거든. 우리한테 올 것 같은데…….”

“저게 보인단 말입니까?”

아우들은 그들의 눈에는 간신히 배라는 것 정도밖에 알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있는 것을 마치 앞에 있는 듯이 말하는 유성탄을 보며 몰라서 물었다.

“뭐야! 그럼 너희들은 저게 안 보인단 말이야? 이것들이 몸만 약골인 줄 알았더니 눈까지 안 좋구나! 그래서 내가 그랬지? 벌레를 먹어야 한다고! 말들을 안 들어요.”

“대형, 산적같이 생긴 놈들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혹시 돛대에 무슨 깃발 같은 것이 있습니까?”

유성탄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강태웅이 물었다.

“깃발? 가만있자… 흠, 깃발이 있기는 있는데 삼각형인데……. 자식들이 어찌나 지저분한지 깃발도 엄청 더럽다.”

강태웅은 삼각 깃발이라는 말에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표 아우! 가서 선주에게 물어보게. 삼각 깃발을 단 배가 우리를 쫓아오는 것 같은데 아는 게 있냐고!”

“알겠습니다.”

표도행이 대답을 하더니 쏜살같이 배 후위로 뛰어갔다.

“태웅 형님, 뭐 수상한 거라도 생각난 게 있으십니까?”

마동파가 이마에 손을 대고 열심히 유성탄이 말한 배를 쳐다보았지만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자 포기하고는 강태웅에게 물었다.

“여기가 장강이 아니냐! 삼각 깃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산적같이 생긴 자들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장강의 수적들이 생각나서 그런다.”

모두는 장강의 수적이라는 말에 얼굴이 확 변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수적보다는 산적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산적은 반항을 하지 않아도 죽이는 경우가 많았고 여자라도 있으면 꼭 끌고 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적들은 돈만 빼앗으면 더 이상의 해코지는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림인들은 수적을 더 꺼려하는 편이었다. 당연히 유성탄의 아우들도 수적을 무서워했다.

“뭐야? 수적이 그렇게 무섭냐? 마룡방보다 더 무서운 거야?’

유성탄이 아우들의 반응에 찜찜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적 따위하고 마룡방하고 어떻게 상대가 되겠습니까? 수적들은 마룡방이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이면 싸그리 죽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겁들을 내는 거야?”

“그게 육지라면 모르지만 이런 강상(江上)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자들이 수적입니다. 뭐 고수들이야 물위를 걸어 다닌다니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 같은 보통 무사들은 물에 빠지면 힘을 전혀 못 쓰게 됩니다.”

“물에 빠지면 그렇게 위험한 거야?”

“그럼요! 대형께서 한번 숨을 멈추고 있어 보십시오. 아마 반 각도 못 견디고 죽겠다고 하실 겁니다. 그런데 물에 빠지면 숨을 못 쉬게 된다는 말입니다.”

마동파가 당연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성탄이 답답한지 손으로 목까지 잡고는 숨이 막히는 행동을 취하며 설명했다.

“그렇다면 수적들도 같은 조건인데 우리만 그들을 무서워할 이유가 뭐냐?”

“그게요, 수적들은 수공을 배운 자들이고 우리는 수공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잖습니까?”

유성탄은 수공이 뭔지 물에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물에서 놀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물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된다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할 리가 없는 것이다.

‘숨을 쉬지 말고 꾹 참아보라고?’

유성탄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에 아우들 모르게 살짝 숨을 멈춰보았다.

‘뭐야? 쉽잖아?’

마동파의 말과는 달리 유성탄은 반 각 이상 숨을 멈추어보았지만 그다지 힘든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유성탄의 폐활량은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당연히 보통 사람보다 거의 열 배 이상의 시간을 숨을 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하여간에 마동파 저거는 입만 열면 뻥이라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숨이 차오는 것을 느꼈을 유성탄이었지만 반 각이 지나자 그만두고 만다. 결국 유성탄은 숨이 찬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수적을 맞게 된다.

“태웅 형님! 삼각 깃발이면 이 근처를 잡고 있다는 동호채의 깃발이랍니다.”

“동호채! 그럼 수적이 맞는 거냐?”

“그렇다는데요.”

둘이 얘기를 나누는데 후위에서 배의 방향만 잡아주며 잡담을 나누던 선주와 선원들이 갑자기 부지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유성탄이 말한 배가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선원들은 멀리서 보이는 배의 모양만으로도 수적들이라는 것을 확신한 듯 급하게 돛을 올리고는 양옆으로 붙어 노까지 젓기 시작한 것이다.

“동호채라면 어디 속한 수적이라더냐?”

황대산이 표도행에게 물었다.

장강은 그 길이가 수만 리였다. 당연히 장강수로채라고 하는 커다란 수적들의 집단이 있었지만 그 이외에도 자잘한 수적들이 엄청 많았던 것이다. 만약 작은 수적들이라면 그들이 검을 들고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물러갈 공산이 컸다. 하지만 장강수로채에 속해 있는 큰 수채의 수적들이라면 무림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장강수로채에 속해 있는 아주 잔인한 놈들이라는데요.”

하지만 표도행의 대답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갔다.

“그런데 저놈들 배는 엄청 빠르다.”

유성탄은 뱃전에 팔을 얹고는 그 팔 위에 턱을 걸친 상태로 동호채의 수적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성탄이 탄 배도 나름 도망치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를 저었지만 그 멀리 있던 수적의 배는 순식간에 그들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놈들 배는 쾌속선이라고 아주 가볍게 만든 배입니다. 밑바닥을 뾰쪽하게 하고 앞면도 날씬하게 건조해서 물의 저항이 거의 없게 만들었지요.”

장우왕이 배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지 대답했다.

“수적들이 저렇게 빠른 배를 사용하면 이 배도 그렇게 만들지 왜 이렇게 느리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에 미련한 놈들이 세상에는 참 많아!”

“미련해서가 아니라 이 배는 사람과 물품을 나르는 화물선입니다. 당연히 속도보다는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게 만들다 보니 바닥을 넙적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물의 저항이 심해서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야! 장우왕 너 보기보다는 많이 안다. 나도 다 알고 있는 거지만 너도 알 줄은 몰랐다.”

“제가 어려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선박 만드는 일도 한 삼 년 했었고 대장간에서 공구 만드는 일도 이 년 했었지요.”

“그런 좋은 재주를 가지고 뭐 하러 험악한 낭인이 된 거냐? 나 같으면 그냥 대장간이나 하나 차려서 잘살 텐데…….”

“하하! 잘살았다면 뭐 하러 낭인이 되었겠습니까? 참 사연이 많습니다. 결국 피땀 흘려 번 돈은 다 빼앗기고 완전 거지로 쫓겨나다시피 도망 나왔지요. 그때가 스물이 막 되려는 때였는데… 다행히 타고난 힘이 있어서 낭인이라도 하면서 굶지는 않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장우왕은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다. 그 덕에 동네에서 온갖 험한 일을 어린 나이부터 해야 했다. 대신 다른 사람보다 곱절은 일을 하니 품삯은 많이 받았다.

그의 말대로 선박 만드는 일부터 집 짓는 일, 대장간 등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열다섯 살 때 부역에 걸려 군에 잡혀가게 되었다. 나이상 아직 일 년은 더 있어야 했는데 동네 유지의 아들 대신에 그가 가게 된 것이다. 물론 장우왕은 지금도 그 속사정은 모르고 있었다.

군에 간 장우왕은 가장 많이 죽는다는 북벌군에 소속이 되었고 아직 그 힘이 만만치 않던 북원의 용사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하게 되었다. 원체 힘이 장사였던 그는 그 당시 그가 속해 있던 백호장에게 무공을 배우게 되었다.

죽을 고비도 몇 번을 넘기고 사 년이 흘러 장우왕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보니 집은 이미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모은 돈으로 차렸던 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자신의 가게는 동네 유지의 소유가 된 지 오래였다.

동네 유지로서도 장우왕이 살아 돌아온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북벌군에 배속되는 군인은 거의 다 죽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우왕은 자신이 돌아왔으니 당연히 가게를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들은 것은 욕뿐이었다. 장우왕의 아버지가 빚을 지고 죽었는데 가게로도 그 돈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오히려 돈을 더 갚으라고 적반하장 격으로 나온 것이다.

장우왕은 실의에 빠져 술을 먹다가 이웃에게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빚을 졌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고 장우왕이 떠난 후 가게가 잘되자 별의별 이유를 다 붙여서 괴롭히는 바람에 화병으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장우왕은 커다란 도끼 하나를 들고는 동네 유지의 담을 넘었다.

그날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이 모두 일곱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장우왕을 그곳에서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 떠돌던 그는 군에서 배운 무공을 밑천으로 낭인이 되어 용병을 원하는 곳은 어디라도 갔었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불화살을 날릴 거다!”

장우왕이 잠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을 머리에 그리는데 이미 바짝 다가온 동호채 수적의 배에서 족제비수염을 기른 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커다란 목소리로 협박을 했다.

“저건 또 왜 저렇게 생긴 거야?”

유성탄은 소리친 자의 얼굴을 보고는 한마디 내뱉더니 그 뒤에 도를 꺼내 들고 서 있는 자들을 차례로 훑어보며 생각했다.

‘세상은 진짜 요지경이구나. 어떻게 생겨도 하나같이 저렇게 색다르게 못생겼을까?’

분명 못생긴 것을 알겠는데 하나같이 다르게 생긴 것이었다. 유성탄은 그게 참 신기했다.

“우리는 동호채의 호걸들이시거든! 이렇게 말하면 우리가 왜 굳이 이 먼 길을 노를 저어왔는지 알겠지?”

족제비수염을 기른 자가 말하는 것을 들으며 배에 탄 손님들은 모두 불안한 얼굴로 구석에 모였다.

“너 거기 이상하게 생긴 놈!”

다른 사람들은 전부 겁을 먹고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데 이상하게 생긴 놈 하나가 뱃전에 턱을 대고는 마치 자기를 원숭이 쳐다보듯 하자 족제비수염은 빈정이 상했는지 크게 불렀다.

“이상하게 생긴 놈! 내가 부르는 소리가 안 들리냐?”

유성탄은 족제비수염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상하게 생긴 놈이 이상하다고 부르는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야! 뒤돌아보지 말고! 너야 너!”

유성탄이 자신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고개를 돌리자 족제비수염이 화가 난 듯 커다랗게 소리쳤다.

‘저게 설마 나보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유성탄은 설마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족제비수염을 쳐다보았다.

“그래! 너 인마!”

유성탄은 족제비수염이 부른 것이 자기라는 것이 확실하자 열이 받아 소리쳤다.

“이게 어디서 꼭 족제비같이 생긴 놈이 감히 나 유성탄 대형에게 이상한 놈이라니!”

유성탄은 자신이 무척 잘생겼다는 착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듣다듣다 처음 들어보는 이상하게 생겼다는 말에 그대로 몸을 날렸다.

배가 가까이 다가오기는 했지만 여간한 신법으로는 건너기 힘든 십 장이 넘는 거리였다. 수적들은 절대로 먼저 배에 오르는 법이 없었다. 무림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넘어오지 못할 거리에서 우선은 활을 가지고 협박을 먼저 했다. 다행히 모두 별 볼일 없다 싶으면 그때서야 느긋하게 배를 대고는 올라와서 수금을 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성탄이 그 거리를 정말 날듯이 뛰어넘는 것이 아닌가!

“활을 쏴라!”

족제비수염은 유성탄이 설마하니 그 거리를 뛰어넘을 정도의 고수라고는 생각지 못하다가는 깜짝 놀라 활을 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은 활을 쏠 필요가 없었다. 유성탄의 신형이 갑자기 중간에서 뚝 떨어져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열이 받아 몸을 날린 유성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천강기를 내공을 사용하듯이 몸을 날리는데 이용했었다. 하지만 중간쯤 넘어가면서 자신의 몸이 하늘을 날자 순간 어리둥절해서는 주위를 보다가 선천강기가 다시 몸속으로 들어간 것을 몰랐다.

* * *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 하면 무려 백 장을 단번에 날아간 거야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는 하늘의 신장이 나타났다고 감탄을 하고 하하하! 유성탄의 신화가 시작되는 날이었지. 거기다 수공이라는 거 난 그냥 물속에 들어가니까 저절로 되더라니까! 어찌나 빨리 헤엄을 치는지 장강의 수적들이 나를 보고는 용왕이 나타났다고 경배를 하더니 후다닥 도망을 치더라고.

* * *

물속에 빠진 유성탄은 갑자기 다리가 쑥 들어가 버리자 당황하고 말았다. 순간 입으로 물이 들어가자 자신도 모르게 손을 후다닥 움직였지만 다시 꼬르륵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물속으로 사라졌던 유성탄이 다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것은 정확히 반 각이 지나서였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수적들은 다시 얼굴을 내민 유성탄을 보며 막 웃기 시작했다.

“으악! 아푸, 아푸, 사람 살려! 유성탄 살려라!”

유성탄이 마구 헤부작대면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기 때문이었다.

유성탄의 몸은 조직이 완전하게 변하면서 생고무 같은 탄력과 함께 물에서 몸이 떠오르는 체질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됐는데 살겠다고 손을 움직이는 것이 잠수를 할 때 식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몸은 떠오르려고 하는데 손은 자꾸 물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 형국이었다. 거기다 유성탄의 몸에는 도박장에서 주워 온 돈부터 시작해서 마차와 말을 판 돈까지 모두 몸에 두르고 있었다.

거의 금자로 몇 백 냥은 되는 돈의 무게는 여간한 사람은 들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걸 온몸에 두르고 있으니 생각보다 쉽게 몸이 안 뜨는 것은 당연했다.

강태웅과 아우들은 수적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만약 그들을 보고 무림인이라 생각해서 그냥 활로만 공격을 한다면 위험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배로 건너올 때까지 숨어 있을 예정이었으나 유성탄의 살려달라는 외침에 모두 급히 뛰어 뱃전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대형 저러다 죽겠다! 이봐 어떻게 좀 해봐.”

마동파가 허우적대는 유성탄을 보며 급히 선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건장한 선원이 하나 뛰어나오더니 밧줄을 유성탄을 향해 던졌고 생존본능이 유난히 강한 유성탄은 금방 밧줄을 잡았다.

“야 너희들 물에 들어가면 쑥 들어간다는 말 왜 안 했어! 이것들이 대형을 죽일라고!”

배로 다시 올라온 유성탄은 잠시 대자로 누워 헥헥대더니 엄한 아우들에게 소리쳤다. 자신이 생각해도 엄청 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에 들어가면 쑥 들어간다는 말을 꼭 해야 하나요? 그거 상식 아닙니까?”

마동파가 유성탄이 멀쩡한 듯 싶자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상식이야! 세상에 그렇게 중요한 말을 빼먹다니 니들 육지에 도착하면 죽을 줄 알아!”

“하하하하! 저놈 생긴 것만 이상한 게 아니라 웃기기까지 하는 놈이구나. 완전 희극을 보는 것 같구나. 하하하!”

갑자기 수적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유성탄의 인상이 구겨졌다. 쪽 팔리는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 나가고 있다고 혼자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적들의 비웃음으로 틀렸다는 것을 안 것이다.

유성탄은 좌우를 둘러보다가는 마치 맷돌같이 생긴 커다란 돌을 발견했다. 선원들이 수시로 칼을 갈거나 녹이 슨 용품을 문질러 녹을 떼는 돌이었다.

“이놈들, 감히 나 유성탄을 놀려! 이놈들아, 내가 바로 마질대형이니라!”

후다닥 돌로 달려가 가볍게 들어 올린 유성탄은 수적들의 배를 향해 던졌다.

“저거 미친놈 아니야? 저 큰 돌을 어떻게 여기까지 던진다는 거야?”

족제비수염은 유성탄이 돌을 던지자 웃긴다는 표정으로 보다가는 점점 눈이 커다래졌다.

“피해라!”

유성탄이 던진 돌은 정말 그 거리를 넘어 수적들의 배를 그대로 강타한 것이다. 거기에는 분노가 담긴 유성탄의 힘까지 섞여 있어서 마치 포탄을 맞은 것같이 배에 구멍이 그대로 나 버렸다.

“자식들이 까불고 있어!”

한 방에 배가 부서져버리고 수적들이 급히 장강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그때서야 자신의 쪽팔림을 상쇄했다는 생각을 한 유성탄이 만족한 듯 손을 탁탁 털더니 다시 뱃전에 턱을 대고는 물속에 빠진 수적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일을 처리하고 다시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멋있게 보인다고 착각하는 양아치 근성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유성탄이었다.

“빨리 배를 움직여라! 빨리 포구로 돌아간다.”

잠시 어안이 벙벙해 있던 선주가 정신을 차린 듯 소리치자 선원들의 손길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체면은 차린 건가. 이씨, 살려달라고 엄청 소리쳐 댔으니 아우들에게 이게 무슨 쪽이냐……. 거기다 이게 뭐야? 완전 물에 빠진 생쥐 꼴이잖아.’

의연한 모습을 보이면서 팔 사이로 슬쩍 뒤를 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유성탄을 향해 아우들이 다가오더니 찬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럴 때는 칭찬이 유성탄에게는 직효약이라는 것을 아우들도 알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세상에 그 거리를 돌을 던져 한 방에 배를 침몰시키다니! 아마 대형이 아니면 세상의 누구도 할 수 없는 쾌거였습니다.”

무림의 고수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황대산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근사한 미사여구를 사용해 가며 유성탄을 칭찬했다. 그리고 유성탄은 쾌거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역시 낭인칠웅의 대형다우셨습니다. 곧 마질대형이라는 이름이 천하를 울릴 것입니다.”

여간해서는 안 나오는 강태웅의 칭찬은 유성탄의 기분을 더 풀어주었다.

가까운 포구에 도착한 선주는 동호채의 습격을 관부에 가서 신고를 했다. 근래에 이런 식의 습격은 별로 없던 터인지라 선주도 시껍을 한 듯했다. 결국 배는 하루 포구에서 머물고 난 후 그 다음날 출발하기로 한다.

“야! 가까운 강가로 좀 가자.”

유성탄은 아까의 상황이 영 꺼림칙한지 아우들과 함께 포구에서 가까운 강가로 자리를 옮겼다.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물도 튕겨보고 하던 유성탄은 갑자기 물속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무릎이 차는 데까지 들어갔다.

“대형께서 지금 뭐 하시는 걸까요?”

표도행이 유성탄이 하는 행동을 보다가 강태웅에게 물었다.

“뭔지 모르지만 대형께서 물에 대해서 알아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유성탄이 하는 행동은 그저 어린애들이 물가에서 노는 것과 그리 다른 것은 없었다. 하지만 강태웅은 유성탄이 말이나 행동과는 달리 생각보다 똑똑한 것을 여러 번 느꼈었다.

유성탄은 비무를 하거나 무공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뭔가 마음먹은 대로 안 되면 혼자서 열심히 연구를 하고는 자신에게 묻곤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마 이번에 물에 빠져본 후 처음 당하는 경험에 물에 대해 연구를 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야 이거 봐라!”

갑작스런 유성탄의 외침에 모두는 강 쪽을 보고는 모두 경악을 하고는 급히 달려갔다.

“으하하하! 역시 나는 대단해!”

유성탄은 물에 들어가서 잠시 걷다가는 이상하게 몸이 물에 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의 몸에 칭칭 두른 금자만 아니었다면 이미 저절로 떴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너무 무거운 금자의 무게 때문에 저절로는 뜰 수 없었다.

그러나 유성탄이 뜰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그의 선천강기가 발로 움직였고 그러자 너무나도 쉽게 떠오른 것이다.

흑혈신마에게 맞은 이후로 그의 선천강기가 마치 내공처럼 온몸을 돌아다니며 그가 생각하면 저절로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한다는 생각은 아직 못 하고 있었다.

“세상에……!”

강태웅을 비롯한 아우들은 유성탄을 보며 어이가 없는지 입만 벌리고 있었다. 무림에는 초상비(草上飛)니 등평도수(登平渡水)니 해서 절정의 경공대가가 풀 위를 날아다닌다거나 물위를 뛰어 건넌다거나 하는 놀라운 얘기가 세간에 회자되곤 했다. 하지만 유성탄은 뛰는 것이 아니라 물위에 그대로 떠 있었다.

어떤 고수라 해도 물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냥 떠 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로서는 유성탄의 몸의 조직이 모두 물위에 뜰 수 있을 정도로 탄력 있게 변한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대형,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객점에 돌아오자마자 마동파가 놀라서 존경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짜식들! 놀라기는 물까지도 나를 경배하는 것 아니겠어?”

유성탄은 목소리까지 깔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유성탄은 자신도 어떻게 뜬 건지 알지 못했다.

* * *

내가 누구냐 하면… 하늘이 낸 신인이었다는 거 아니겠어. 갈수록 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데 이건 내가 봐도 정말 인간의 능력이 아닌 거야! 그래서 내가 생각했지, 만약 내가 종교 하나 만들어서 이런 능력을 보여주면 금방 엄청난 돈을 벌 텐데 하고 말이야.

* * *

“아우들도 느꼈겠지만 대형의 능력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이 말은 우리가 빨리 강해지지 않으면 대형께 누만 끼치는 못난 동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는 잠도 줄이고 쉬지 않고 수련에 임하기로 한다.”

저녁을 먹은 후 강태웅은 아우들을 모아놓고는 심각하게 향후 그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수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형은 어디 가셨지요? 아까부터 안 보이시던데…….”

강태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표도행이 약간은 불안한 듯이 물었다.

“아까 보니까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하시면서 산책이나 가신다며 나가던데…….”

저녁을 먹은 후 마지막으로 유성탄의 모습을 보았던 장우왕은 말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끝맺지 못한다.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유성탄이 소화가 안 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형님도 그걸 진짜 믿으셨어요?”

“그때는 생각도 못 했지. 그냥 나가시면서 그러시니까 그런가 보다 한 거지. 지금 생각하니까 이상하긴 하네.”

“이상하지요? 솔직히 위험해도 우리가 더 위험하지, 대형이야 뭐 걱정될 것이 없는 분인데… 왜 대형이 나가시기만 하면 마음이 이렇게 불안할까요?”

마동파의 말에 모두는 동감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나가서 찾아볼까요?”

표도행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철패도 일어서며 말한다.

“저도 같이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가보는 건 좋은데, 대형이 뭘 하건 방해는 하지 말아라. 우리가 그분을 대형으로 모신 이상 그분이 하는 일을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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