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천요궁(天妖宮) (18/79)

제9장 천요궁(天妖宮)

“왜 자꾸 이래요?”

“유 소저도 한번 생각해 봐? 우리가 만난 지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가는데 손도 한번 잡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사랑을 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겠어?”

좌소백은 오늘은 굳게 결심한 게 있는지 계속 유성화에게 치근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랬잖아요. 우리 엄마가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고 했다고요! 나도 좌 공자가 좋지만 이건 아니라고요. 그렇게 손을 잡고 싶으면 우리 집에 청혼을 하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자꾸 시집보내려고 해서 뭐라고 말도 못 하고 나도 죽겠다고요.”

유성화의 말에 좌소백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감숙 제일의 무관의 아들인 그가 한주현 가난한 동네의 일개 포장의 딸과 혼인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니 그가 하고 싶다고 해도 허락할 부모님이 아니었다.

‘한 번 놀고 버리려고 했더니 엄청 까칠하게 구네. 이 좌소백이 한 달을 공을 들였는데도 함락시키지 못하는 계집애가 있다니 좌소백의 경력에 오점을 남길 수도 없고…….’

좌소백은 좋은 집안에 잘생긴 얼굴로 그동안 어떤 여자도 열흘 정도면 자기 마음대로 요리해 왔었다. 하지만 유성화는 좌소백의 감언이설에 생각보다 오래 버티고 있었다. 좌소백으로서는 상당히 피곤해 해야 했지만 이상하게 유성화가 밉지는 않았다.

“우리가 어차피 혼인할 사인데 뭐가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나만 믿으라니까…….”

“믿게 해줘야 믿지요! 누구만 나타나면 안면몰수하고 모른 척하기 일쑤면서 뭘 믿으라는 거예요?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누구에게라도 떳떳하게 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생각해 봐. 아직 부모님께 허락도 받지 못했는데 소문 먼저 나면 유 소저가 무척 가벼운 여자로 부모님께 낙인찍힐 수도 있다고. 그렇게 되면 정말 혼인은 물 건너간다니까!”

“그러니까 빨리 부모님께 허락부터 받아요. 그러면 되잖아요. 그리고 난 오늘 빨리 들어가 봐야 해요. 어제 너무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엄청 혼났다구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유성화는 말을 끝내자마자 꾸벅 인사를 하더니 그냥 뛰어서 사라져버렸다.

“유, 유 소저! 이대로 가면 어떡해? 언제 만날지 약속도 안 정했잖아?”

‘이것 참! 조그만 게 은근히 속 썩이네. 보면 귀엽기는 한데…….’

유성화가 그의 말에 대답도 없이 사라지자 좌소백은 약간은 의기소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만날수록 예뻐지는 그녀에게 잠깐 놀고 버릴 생각을 자꾸 잊어버리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여전히 유성화와 혼인할 생각은 없는 좌소백이었다.

“씨! 누가 모를 줄 알고… 나를 아주 바보로 알아요!”

후다닥 뛰어서 좌소백을 떠나온 유성화는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좌소백의 집안을 떠나서 그녀는 진짜 좌소백이 좋았다. 하지만 그녀도 알 만큼은 알고 있었다. 좌소백이 자신의 집안 때문에 혼인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 집에도 아주 대단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유성화의 소원이 이루어질지…….

* * *

“누구냐?”

오늘도 어떻게 백리빙을 야바위에 끌어들여 돈을 따든지 아니면 한번 주기로 하는 판을 벌이고 싶은 유성탄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밖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황대산의 외침에 유성탄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왜 이렇게 시끄럽냐?”

“이상한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상한 자? 도대체 어떻게 생겨야 황대산같이 이상하게 생긴 애가 이상하다고 하는 걸까?’

유성탄은 아주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좋아서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저게 뭐야?”

고개를 내민 유성탄은 눈이 동그래져 가지고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가씨! 뭔데 저 진상이 저리 급히 뛰어나갈까요?”

백리빙은 유성탄이 급히 나가자 궁금한 듯이 유성탄같이 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니! 저것들이……?”

고개를 내밀었던 백리빙이 급히 고개를 안으로 들이더니 흥분해서 소리쳤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정자운도 궁금한 듯이 고개를 내밀려고 했다.

“안 돼요! 아가씨는 보시면 안 돼요!”

백리빙이 급히 그녀를 만류하자 정자운은 더욱 궁금한 듯이 고개를 결국 내민다. 그러나 그녀 역시 곧 고개를 안으로 들였다.

“보시지 말라니까…….”

말하는 백리빙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면사로 가려 보이지 않는 정자운의 얼굴도 백리빙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듯 손으로 얼굴을 잡고 있었다.

“야! 저리 비켜!”

유성탄은 나가자마자 앞을 막고 있는 장우왕에게 비키라고 말했다.

“흐흐흐! 오늘 재수가 좋으려고 그러나 이게 웬 횡재!”

유성탄의 입이 째지고 있었다.

마차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십여 명의 여인들이 서 있었다. 척 보기에도 하나같이 미인들이었는데 옷을 거의 다 벗은 모습이었다. 유성탄으로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정말 이상한 곳이다. 그치?”

유성탄은 황대산을 쳐다보며 묻더니 이번에는 표도행에게 물었다.

“이 산 이름이 뭔지 꼭 알아놔라. 기분이 꿀꿀할 때 이따금 와서 눈요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대형,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표도행이 심각하게 말했다.

“이 자식이 미쳤나? 여자가 홀딱 벗고 앞에 서서 나 잡아잡수 하고 있는데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대형, 저 여자들은 천요궁(天妖宮)의 여자들입니다.”

“천요궁? 거기는 뭐 하는 데냐? 기루냐?”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여인네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표도행은 천요궁에 대해서 잘 아는지 약간은 겁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여자들? 나는 예쁘기만 한데…….”

유성탄은 표도행의 말에 다시 여인들을 자세히 쳐다보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표도행의 말을 모두 들었는지 아우들이 무기를 빼기 시작했다. 천요궁이란 무산의 신녀궁과 더불어 무림에서는 이궁(二宮)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신녀궁이 의술과 제약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한 것과는 달리 천요궁은 수많은 남자의 정혈을 뽑아 죽이거나 궁의 노예로 삼는 것으로 유명했다.

천요궁의 여인들은 옷을 거의 입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소문만 무성할 뿐 보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그녀들을 본 남자들은 거의가 다 죽거나 그녀들에게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씨! 벗으려면 다 벗지 저건 왜 붙어 있는 거야?’

유성탄은 갑자기 쪼그리고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들의 하체에 약간 붙어 있는 천 조각이 무척 기분 나빴다. 분명 조그만데도 이상하게 그녀들의 하체를 모두 가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가 쪼그리고 앉은 이유는 그러면 조금 더 위가 보일까 해서였다. 그러나 별로 눈에 더 들어오는 게 없자 다시 일어서는 유성탄이었다.

“호호호! 아주 재미있으신 분이네요. 혹시 우리와 더 친해지고 싶으신가요?”

드디어 천요궁의 여인들이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웬 떡이냐! 한 명도 아니고 열 명이나…….’

유성탄은 천요궁의 여인이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알자 금세 열 명의 여인과 으슥한 방에 있는 상상을 하며 몽롱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호호호! 아주 얼빠진 놈이구나. 환희마소에 이렇게 빨리 걸려드는 놈은 또 처음 보네.’

제일 앞에서 아주 요염하게 걸어오던 여인은 천요궁에서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교미향이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환희마소로 남자를 유혹하는 것이 특기였다.

그녀가 자신의 몸매를 살짝 보이면서 걸어가면 보통 남자는 잠시 집중력을 잃게 된다. 그때 그녀가 유혹이 깃든 목소리로 감미롭게 얘기를 걸면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무방비상태가 된다. 그때 그의 손을 잡아끌고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 살짝 황홀감을 맛보게 해주면 그대로 그녀에게 넘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수많은 남자를 유혹해 봤지만 유성탄같이 시작하자마자 넘어오는 남자는 처음인 것이었다. 넘어올 때가 아닌데 넘어오는 유성탄을 보며 교미향은 자신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저 쪼다. 여자만 보면 그저 좋아가지고…….’

그녀들의 모습에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워 상관하지 않고 낭인칠웅이 처리해 주기를 바랐던 백리빙은 들려오는 소리에 결국 다시 고개를 내밀고 말았다. 그리고 유성탄이 헬렐레하는 모습을 보자 괜히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야, 요녀! 너희들 왜 우리를 쫓아다니는 거야?”

유성탄이 그대로 그녀에게 당하게 생기자 백리빙은 어쩔 수 없이 마차 밖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그녀의 말로 미루어 천요궁이 나타난 것은 낭인칠웅 때문이 아니라 그녀들 때문인 듯했다.

“호호호!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무산의 신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오라는 궁주님의 명이 있었다.”

그녀의 말에 강태웅을 비롯한 아우들은 모두 경악했다. 설마하니 자신들이 경호하는 여인이 무산신녀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여인 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결하며 가장 강하다고 소문 난 여인이 아니었던가.

‘조거 때문에 되는 것이 없네.’

교미향이 거의 그의 품에 안기려고 하는 찰나, 나타나서 훼방을 놓은 백리빙이 은근히 얄미운 유성탄에게는 무산의 신녀고 뭐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성탄은 교미향의 환희마소에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다만 넘어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여자를 안는 순간이었는데 너무 아쉬운 유성탄이었다. 하지만 백리빙이 보는 앞에서 여자를 안을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달려든 교미향이 유성탄의 목을 감싸더니 목젖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고귀하신 신녀님께 잠깐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 게 어때? 만약 안 나온다면 이자의 목을 그냥 부러뜨리고 싶어질 것 같거든.”

백리빙은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살기를 띠며 소리쳤다.

“요녀! 너 내가 누군지 모르나본데…….”

“호호호! 내가 어찌 신녀궁의 별종 백리빙을 모르겠냐? 그러니까 이놈을 인질로 잡은 것 아니겠어.”

백리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놀리듯 말하는 교미향을 보며 백리빙의 얼굴에 곤혹의 빛이 나타났다. 이상하게 얄미운 유성탄이지만 그대로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은 보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빙아! 기다려라.”

마차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고운 자태를 나타내는 정자운을 보며 교미향의 입에서는 아주 사악한 미소가 퍼졌다.

“호호호! 역시 소문대로 신녀님의 모습은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님 같군요. 우리 같은 요녀는 절대로 따라하지 못할 고상함이 보여요. 호호호!”

“천요궁과 신녀궁은 그동안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정자운이 조용하게 물었다.

“호호호! 말이 이상하시네요. 저희들은 단지 신녀님을 저희 궁으로 초빙하고 싶어서 온 것이지 별다른 의도는 없어요. 그런데 마치 우리가 시비를 거는 듯이 말하시니 제가 무척 미안해지려고 하잖아요.”

교미향의 말을 들으며 유성탄을 자세히 살펴보던 정자운의 입에 미소가 나타났다.

유성탄은 교미향이 목젖을 쥐고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는 와중에 그녀의 가슴에 등을 착 붙이고는 여인의 감촉을 음미하고 있었다. 목젖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검에 찔리고도 끄떡없던 목젖이 가녀린 여인의 손에 부러질 리는 만무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교미향은 정자운과 대화를 나누다가는 이상한 감촉에 놀라 중얼거렸다.

지금 자신의 목숨이 자기에게 달려 있는 유성탄이 손을 살짝 뒤로하고는 자신의 몸을 주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 죽을래?”

교미향이 유성탄의 귀에 대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들이 남자를 유혹하고 관계까지 맺고 죽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죽이기 위한 방편일 뿐 천요궁의 여인들은 남자들을 대단히 싫어하고 있었다. 당연히 유성탄의 행동은 그녀의 비위를 거스르기 딱 좋았다.

‘에이 씨! 좀 살살 주무르는 건데… 조금만 더 갔으면 바로 거긴데… 다 틀렸네.’

유성탄은 아쉽지만 좋은 시절이 다 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감각이 교미향의 살기를 진짜라고 느낀 것이다.

“이것들이 주무르지도 못하게 할 거면서 왜 옷은 벗고 나타나서 지랄이야?”

목젖을 잡히면 당연히 말을 못 한다. 거기다 머리에 피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 저항은 전혀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소리친 유성탄이 다짜고짜 목젖을 쥐고 있는 교미향의 손을 잡더니 그대로 비틀어 간단하게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어어……!”

너무 뜻밖의 반전에 교미향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유성탄을 놓치고 말았다.

“니들 빨리 꺼져! 미친년들도 아니고 옷을 벗으려면 다 벗든지! 왜 조금씩만 남겨가지고 사람 흥분시키는 거야? 가라, 가.”

마치 파리 쫓듯 손을 휘젓는 유성탄을 보며 교미향이 살기를 뿜으며 달려들었다. 그녀의 긴 손톱이 유성탄의 얼굴을 할퀴어 왔다.

그런데 유성탄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녀의 공격을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이!”

그녀의 손톱이 유성탄의 얼굴을 훑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미 오관이 다 너덜거릴 정도의 신랄한 공격이었지만 유성탄은 마치 자살하려는 사람처럼 그 공격을 그대로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얼굴을 그녀의 가슴에 묻어버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공격에 당해서 앞으로 쓰러진 것 같았지만 교미향은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유성탄의 혀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리 못 떨어져!”

교미향의 손톱이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유성탄의 목을 그대로 찔렀다. 하지만 유성탄의 얼굴은 떨어지지를 않았다. 결국 그녀의 주먹이 사정없이 유성탄의 몸에 떨어졌고 그녀의 무릎이 유성탄의 가슴을 쳤지만 유성탄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안은 채 얼굴을 가슴에 묻고 있었다.

“떨어지지 못해요!”

보다 못한 백리빙이 교미향이 적이라는 것도 잊은 채 소리치고 말았다.

‘저게 왜 또 간섭이야? 한 번 줄 것도 아니면서…….’

유성탄은 풍만한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싶지 않았지만 백리빙의 고함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떨어진다.

“아이고, 내 얼굴! 나 죽는다!”

교미향에게서 떨어진 유성탄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는 죽겠다고 소리쳤다. 얼굴을 공격당해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지만 이미 그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단한 호위무사를 두셨군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어요. 하지만 신녀님을 궁으로 모셔오라는 궁주님의 명이 있었으니 다시 찾아봬야 할 것 같군요.”

교미향은 잠깐의 공방이었고 싸움 같지도 않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유성탄이 엄청난 고수라고 생각하고는 우선 후퇴하기로 한 것이다.

“가자!”

신기할 정도로 교미향이 유성탄과 실랑이할 때도 가만히 있던 옷을 벗은 여인들이 교미향의 말 한마디에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만 엄살 부리고 타요!”

아직도 얼굴을 감싸고 연극을 하고 있는 유성탄을 보며 백리빙이 소리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후다닥 마차에 오르는 유성탄이었다.

“대형, 좋았을까요?”

“좋았겠지… 가슴 봤지? 엄청 크더라……. 나도 한번 그런 가슴에 얼굴을 묻어봤으면……”

표도행이 옆에 있는 철패에게 묻자 철패가 부러운 듯이 말했다.

* * *

“직접 방도들을 끌고 그놈들을 사천까지 쫓아가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셨다. 잘못하면 정사대전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럼 그놈들을 이대로 놔둔다는 말입니까?”

“그거야 안 될 말이다. 그래서 살수를 사용하기로 하셨다.”

“살수요?”

“그렇다. 방주님께서는 혈문에 의뢰해서 그놈들을 모두 제거하라고 하셨다.”

“혈문이라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혈문 정도가 아니라면 그놈들을 죽일 만한 살수가 있는 집단은 없을 것이다.”

“그럼…….”

“그래, 네가 수고해야겠다.”

“알겠습니다.”

마룡방 외당 당주 조운리의 명령에 소양도는 혈문을 향해 떠났다.

* * *

“유 대형께는 본의 아니게 속인 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마차가 다시 움직이자 정자운은 유성탄을 보며 자신의 신분을 먼저 말하지 않은 데에 대하여 사과를 했다. 별거 아니면 아닌 일이었지만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응! 뭘……?”

교미향의 가슴의 감촉을 잊어버릴세라 열심히 생각하던 유성탄이 정자운의 말에 대답을 하다가는 백리빙이 도끼눈을 뜨자 말을 바꾼다.

“뭘요? 이름이 정자운이라고 안 했나? 여기는 백리빙이고…….”

“호호! 이름은 맞아요.”

“그럼 된 거지 뭘 속였다는 건지 모르겠네.”

정자운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반응에 신선한 듯 유성탄의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저희들 신분을 속인 거는…….”

“내가 언제 신분 물어봤나…요?”

다시 말이 짧아지고 있는 유성탄이었고 다시 도끼눈을 뜨는 백리빙이었다.

“속인다는 것은 뭔가 말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닐 때 속였다고 하는 거거든…요. 하여간에 배웠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보다 더 몰라…요.”

‘아유! 저 주둥이를 그냥……!’

백리빙은 열린 입이라고 또 아무렇게나 주절대는 유성탄을 보며 한 대 치고 싶은 욕망에 빠지고 있었다.

“호호호! 맞았어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오늘 유 대형께 정말 많이 배우네요.”

‘왜 나를 부를까?’

호북의 중간 정도 크기의 마을에 도착한 유성탄 일행은 객잔을 아예 통째로 빌렸다. 모두 방에 들어가 쉬려고 하는데 백리빙이 오더니 정자운이 강태웅을 찾는다는 전갈을 가지고 온 것이다.

“들어오세요.”

정자운의 말에 강태웅이 무척 황송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무산의 신녀라면 여간한 무림의 장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신분이었다. 하물며 강태웅 같은 낭인에게는 실로 하늘의 신녀를 만나는 것이나 진배가 없었던 것이다.

“내일부터는 더 이상 여러분의 호위가 필요 없을 듯합니다.”

정자운의 뜻밖의 말에 강태웅의 고개가 들렸다.

“저희들이 무슨 실수라도……?”

“아니에요. 어느 정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우리가 여러분을 호위무사로 채용한 것은 유 대형 때문이었어요. 솔직히 청룡대와 여러분이 싸우는 장면을 보았지요.”

강태웅은 그녀의 말에 아하! 하는 표정과 의아하다는 표정을 같이 지었다.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뭡니까?”

“초청장이에요.”

“예?”

“유 대형에게 신녀궁의 사위가 되는 경합에 초청하라는 거랍니다.”

“예에? 그게 정말이십니까?”

“제가 보기에 유 대형은 대단하신 분이에요. 하지만 너무 세상을 모르시더군요. 다행히 강 소협 같은 분이 보필하는 바람에 나쁘게 빠지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일 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분명 유 대형의 이름이 천하를 울릴 거라고 믿어요.”

“직접 대형께 전해주시지 어찌……?”

“호호호! 유 대형께서는 아마 그거 받으면 코를 풀어 버리실 분이더군요. 그래서 직접 전해주지를 못했어요. 기회를 봐서 강 소협께서 전해주세요.”

정자운의 말이 끝나자 강태웅은 벌떡 일어서며 포권을 했다.

“신녀님의 배려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책임지고 일 년 후 대형이 신녀궁을 찾도록 설득하겠습니다.”

“빙아! 잘 잤어?”

아침에 일어난 유성탄은 백리빙을 보자 반갑게 뛰어가서는 인사를 했다.

“이 작자가 정말 미쳤나! 누구보고 빙아라고 하는 거예요?”

“이름이 백리빙 아니야?”

“그건 맞아요.”

“그러니까 빙아 맞잖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알면서도 그러는 거예요?”

“뭘?”

“저는 여자예요. 그것도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자라고요. 그런데 함부로 이름을 부르는 것은 무척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란 말이에요!”

“그럼 상관있는 여자가 되면 되지 않을까?”

백리빙은 유성탄의 말에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한 번 치더니 내뱉듯이 말했다.

“뭐 말이 통해야지 말을 하지!”

“나도 안 통하기는 마찬가지다, 빙아!”

“우리 약속이 사천까지 보호하기로 했는데 왜 여기서 헤어지자는 거요?”

“갑자기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사천은 다음 기회에 가야 할 것 같네요.”

이미 자신의 남편을 구하는 초대장이 무림에 열 장 가까이 전달되었다. 신녀들은 초대장이 발송된 후 자신이 원한다면 그들을 찾아가서 은밀하게 한 번씩 보고 올 수가 있었다. 정자운도 자신의 낭군 후보들이 누군지 보고 싶어 무림에 나온 것이었지만, 천요궁이 자신을 노렸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일이 있다니 어쩔 수 없지만 한번 받은 돈은 다시 안 돌려주는 게 유성탄의 법이오.”

“호호호! 저도 그 정도는 아니까 걱정 마세요.”

‘하여간에 밉상이라니까…….’

정자운의 청아한 웃음을 들으며 백리빙이 인상을 썼다.

“그런데 그 예쁜 얼굴을 왜 면사로 가리고 다니는 거요? 나 같으면 훤히 내놓고 자랑하고 다니겠구먼.”

하후란도 그렇고 정자운도 얼굴을 면사로 가린 것이 못내 궁금했던 유성탄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제 얼굴이 예쁜지 아닌지 어떻게 아세요?”

정자운은 예쁘다는 말이 그리 싫지는 않은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보이니까 알지 안 보이면 어떻게 알겠소?”

“지금 제 얼굴이 보이신다는 말인가요?”

정자운이 가리고 있는 면사는 천잠사로 만든 것으로 아주 얇으면서도 촘촘해서 절대로 인간의 눈으로는 뚫어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이오. 왼쪽 뺨에 아주 조그만 검은 점까지 다 보이는구먼…….”

정자운은 유성탄이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가 점 얘기를 듣고는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의 점은 무척 작아서 면사가 없다 해도 자세히 봐야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유성탄이 그것을 말했으니 보인다는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안 것이다. 옆에 있던 백리빙까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어라? 점 있다는 말이 아주 중요한 말인가 보네. 그렇다면…….’

유성탄은 둘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아주 중대한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다음부터 여자를 꼬드길 때는 여자의 얼굴에 점이 있나 없나를 반드시 보고 얘기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무도 면사를 뚫고 제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어요.”

“하하하! 내가 바로 유성탄이오. 나는 눈을 감고도 다 볼 수 있는 사람이오!”

오랜만에 뻥이 아닌 진실을 말했지만 여전히 뻥처럼 말하는 유성탄이었다.

“빙아! 다음에 보자!”

정자운과 백리빙은 마차와 말까지 모두 유성탄에게 주고 떠났다. 그리고 유성탄은 뭐가 아쉬운지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유 대형이 네가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정자운이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는 유성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웃기는 작자라는 거예요. 도대체 상식이 통하지를 않잖아요. 세상에 아가씨하고 저를 놔두고 저를 좋아하는 바보가 어디 있어요? 아가씨 얼굴까지 다 보인다면서…….”

“너도 충분히 예뻐.”

“저도 알아요. 그래도 아가씨와 저 중에 저를 택할 정도는 아니지요.”

분명 겸손이었지만 자꾸 정자운과 자기 중에 자기를 택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백리빙의 말에 정자운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고 백리빙의 얼굴에는 흐뭇한 웃음이 나타나고 있었다.

‘분명 밉상인데 밉지가 않단 말이야. 다음에 만나면 손 한 번은 잡게 해줘야지.’

아직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유성탄을 보며 백리빙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형?”

“왜?”

“백리 소저가 그렇게 마음에 드십니까?”

“귀엽잖아!”

“그래도 신녀가 훨씬 멋있지 않습니까? 저는 신녀가 더 좋던데…….”

마동파가 특이한 취향을 자랑하고 있는 유성탄을 보며 신기한 듯이 물었다.

“야, 정자운도 예쁘기는 한데 굉장히 신분이 높다며? 처음 볼 때부터 내 눈에도 고상한 게 보이더라.”

“여자가 고상까지 하면 금상첨화 아닙니까?”

“야! 내가 마누라를 데리고 오면 시켜먹어야지 내가 시중들 일 있냐? 백리빙 쟤는 만만해서 마음대로 시켜먹기 좋게 생겼지만 정자운 쟤는 데려오면 내가 밥을 지어서 바쳐야 할지도 모르잖아. 난 그런 여자 피곤해서 싫다.”

“그러니까 싫지는 않은데 피곤할 것 같아서 싫다 이 말 아닙니까?”

“너도 참 말 되게 못 한다. 싫지 않은데 싫은 게 뭐냐?”

“어쨌든이요.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이 있는데요.”

“구더기 무서워… 왜 장을 못 담아?”

“장을 만들면 구더기가 생기잖아요. 장은 꼭 필요한데 구더기가 싫어서 장을 못 담그는 걱정 많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에요. 지금 대형께서는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그럴 것이다 하고는 피하는 거잖아요.”

“구더기를 왜 무서워해? 쩝쩝! 씹으면 얼마나 부드럽고 맛있는데 많이 집어넣으면 입안에서 막 돌아다닌다. 얼마나 재미있다고.”

유성탄과 마동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우들의 얼굴이 확 변하고 손으로 급히 입을 막았다. 속에서 올라오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성탄이 외쳤다.

“구더기도 못 먹는 병신들!”

‘무조건 여자가 높아 보인다고 겁내지 말라는 말인데…….’

유성탄은 마차에 누워 코를 후비며 마동파의 말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어차피 여자 한 명에게 목을 맬 유성탄은 아니었고 돈이건 뭐건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신봉하는 그에게 여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하긴… 어디 누구 모이는 데는 정자운을 데리고 가서 무게 잡고, 심심할 때는 백리빙하고 놀고 뭐 복잡한 일 생기면 하후란에게 시키면… 진짜 뽀다구 날 텐데…….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하후란 그게 하루만 지도를 빌려보고 가져온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가져오고 있단 말이야. 흐흐흐! 약속하기를 하루 만에 안 갖다 주면 한 번 주기로 했었지.’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서 여러 가지 국물만 벌컥벌컥 들이켜는 유성탄이었다.

* * *

“마룡방에서 청부가 들어왔습니다.”

“마룡방? 마룡방이면 자체 살수가 있을 텐데……?”

“노리는 자들이 자신들의 구역을 벗어난 모양입니다.”

“노리는 놈들이 누구냐?”

“낭인칠웅이라는 낭인들인 모양입니다.”

“낭인들……?”

혈문사자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우리 혈문을 움직이려면 얼마나 비싼지 그들이 모르지는 않을 텐데 겨우 낭인 따위를 죽이려고 대마룡방에서 우리에게 청부를 했다는 말이냐!”

“보통 낭인들이 아니랍니다. 우리가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그자들의 손에 마룡방의 황룡대와 청룡대가 몰살당했답니다.”

혈문사자는 청부사자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황룡대와 청룡대라면 견준구와 창평추가 이끄는 마룡방의 사대무력집단이 아니냐?”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도 특급살수가 맡아야 할 일인데… 그런데 어째서 그자들에 대한 신상명세가 우리에게 없는 거냐?”

“지금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마 강호초출인 듯합니다.”

“강호초출이라… 흐흐흐, 그렇다면 일이 생각보다는 쉬울 수도 있겠구나. 청부액은 일급에 준해서 청구해라. 그리고 그들을 제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두 달이라고 말해라. 모두 일곱이라니 이 일만 끝나면 어느 정도 자금사정이 풀리겠구나.”

“누구를 보낼까요?”

“혈점사를 보내면 확실은 하겠지만 강호초출인 놈들에게 굳이 그까지 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혈문오살을 보내라. 그들 다섯이면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문도들의 충당과 교육을 담당하던 혈문사자는 그동안 지위가 올라 혈문의 청부를 맡는 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그로서는 자신이 충동에 던지라고 한 유성탄이 낭인칠웅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다섯 명의 혈문의 일급 살수들이 낭인칠웅의 뒤를 쫓아 안휘로 떠났다.

「포천망쾌」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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