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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칠우도(七友圖)의 비밀 (14/79)

제5장 칠우도(七友圖)의 비밀

“뭐야? 너 또 왜 왔어?”

무려 하루가 지나서야 유성탄은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하후란이 보이자 물었다.

“기억 안 나세요? 흑혈신마와 싸우다가 기절했잖아요?”

유성탄은 하후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나를 뭘로 보고!”

유성탄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 당시의 생각이 난 것이다.

“그 늙은이가 나한테 못 당해서 도망갔고 내가 피곤해서 잠깐 잠든 건데… 뭐야! 기절? 얘가 정말 웃기네? 이 유성탄을 어떻게 보고!”

곧 죽어도 기절은 아니었다고 큰소리치는 유성탄을 보며 모두는 고개를 저었다.

‘히히히! 대형, 나는 정말 대형을 존경합니다.’

아우들의 마음속에서 절로 나오는 존경의 감탄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잤다 치고요. 몸은 괜찮아요?”

“이게! 내가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진짜 끄떡없다구! 그 늙은이 다시 나타나면 이번에는 완전히 턱을 돌려버릴 거야! 그리고 너! 못 믿겠으면 한 번 줘봐! 내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줄 테니까!”

천하의 흑혈신마와 싸우고서 죽지 않은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건만 여전히 큰소리치는 유성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던 하후란은 마지막 말을 듣자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다시 한 번 그런 소리 하면 아예 뽑아버리고 말 테니 그리 아세요!”

모두의 눈이 둥그레져서 하후란을 쳐다보았다. 심지어는 귀면호리 마효춘마저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후란이 말한 것은 함부로 말하는 혀를 뽑아버린다는 뜻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것을 뽑아버린다는 의미로 들린 것이다.

“여자애가 말을 해도… 어떻게 그렇게 살벌한 말을…….”

유성탄도 달리 해석을 했는지 두 손으로 아랫도리를 가리며 깜짝 놀라 말한다.

“만사무불통녀께서 우리를 쫓아오신 이유를 알고 싶군요.”

유성탄이 완벽하게 끄떡없다는 것을 확인한 강태웅은 그제서야 궁금한 것을 다시 물었다. 하후란과 마효춘이 나타난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었다.

“강태웅 대형께서 보여주신 그림을 보다가 뭔가 생각난 것이 있었어요.”

하후란의 말에 강태웅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제가 몸을 담고 있는 문파에서는 정보를 사고파는 것이 아주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랍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지요. 특히 저는 정보를 담당하는 부서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요. 그 덕에 만사무불통녀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별명까지 붙었지요.”

강태웅은 하후란의 말을 듣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림의 비밀을 복사된 그림만으로 하후란이 알아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세요. 본문은 정보를 사고팔지만 남의 물건을 탐내는 그런 파렴치한 문파는 아니니까요.”

하후란은 강태웅의 변화를 금방 알아차리고는 우선 달래준다.

“그런데 강태웅 대형이 가져오신 그림에는 일곱 개의 봉우리가 보였어요. 예전에 무림에 한바탕 소란을 야기했던 무림칠괴의 칠우도(七友圖)가 갑자기 생각이 나더군요. 물론 확신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맞다면 강태웅 대형께서 이런 식으로는 절대 그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 드리고 싶군요.”

강태웅과 나머지 형제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감탄을 했다.

강태웅이 노인에게 받은 그림이 칠우도인지 아닌지는 강태웅도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오직 그림만 보고는 그런 것을 추리해 내는 하후란의 놀라운 머리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만사무불통녀께서는 찾으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강태웅으로서는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이 모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그림만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겠다는 것을 이번에 절감하고 있던 차였다.

“당연히 저도 제게 보여주신 그림만으로는 찾을 수 없어요. 하지만 원본을 보여준다면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도 않다고 생각되는군요.”

찾을 수 있다는 말인지 없다는 말인지 아주 모호하게 대답하는 하후란의 말에 강태웅은 결심한 듯이 그림을 꺼냈다.

“이것이 원본입니다. 제 사부께서 남겨주신 것이지요.”

하후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만족감이었다.

“이것만 봐 가지고는 당장 이것이 칠우도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네요. 제가 가지고 하루만 연구를 해봐도 될까요?”

“안 되오! 소저를 우리가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황대산이 나서며 커다랗게 외쳤다. 덩치와는 달리 의심은 무척 많은 황대산이었다.

“호호호! 이런 일은 서로 간에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법이에요. 물론 믿지 못하신다면 돌려드리겠어요.”

하후란이 그림을 돌려주며 말하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옆의 바위에 앉아 있던 유성탄이 나섰다.

“필요없다. 가서 니가 잘 조사해 보고 진짜 기연이 있는 거면 알려줘라.”

“대형, 보물은 함부로 돌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표도행이 유성탄의 말에 토를 달았다.

“내가 그랬지! 우리 주제에 무슨 기연이냐고! 그런 행운 바라지 말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따르기만 해라. 그럼 니들이 원하는 대로 강해질 테니까! 그리고 너 만약 그 그림 가지고 도망가거나 잃어버리면 나 한 번 줘야 한다.”

끝까지 하후란과 한 번 하고 싶은 유성탄이었다.

그리고 유성탄을 노려보며 몸을 돌린 하후란의 입에 의미 모를 웃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 *

내가 얼마나 여자들한테 인기가 좋으냐 하면 나만 보면 모두 한 번 주겠다고 난리를 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안 된다. 남자에게도 지조는 있는 법이다 하면서 매일 도망 다녔다는 거 아니겠어. 하여간에 너무 잘생기게 태어난 것도 죄라니까.

* * *

“뭐라고? 도박장이 완전히 부서지고 흑사파의 흑의군이 다 죽었다고?”

“그뿐이 아닙니다. 추격해 갔던 혈의군까지 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소호의 도박장을 운영하던 흑사파의 후견인 격인 무림 오대사파의 하나인 마룡방의 외당 당주 조운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보고하는 자를 쳐다보았다.

“흑사파의 흑의인과 혈의인은 우리가 직접 훈련을 시켜준 흑사파의 정예가 아니냐?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당했다면 같은 흑도의 놈들 짓은 아닐 터! 천하에 감히 본 방에 혼자서 시비를 걸 만한 놈은 없다. 분명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놈이 분명할 터, 구룡회건 상관세가건 본방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놈들은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우선 증거가 필요하니 황룡대를 보내 그놈을 필히 사로잡아 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조용하던 무림에 파문을 던진 유성탄의 행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마룡방이 자랑하는 사대무력집단 중 하나인 황룡대가 유성탄을 잡기 위해 마룡방을 빠져나왔다.

“그자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분명 일류의 무공을 지닌 자였습니다. 우연한 시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도박장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습니다. 일부러 한 행동이 분명합니다.”

구룡회의 순찰영주 임기만의 보고를 듣던 총관 유불곡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으로는 어느 세력에서 흔들어보려고 일부러 일으킨 일이다 이 말이냐?”

“분명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상관세가에서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움직일 데야 우리 아니면 상관세가인데… 상관세가에서 그렇게 무리하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상관세가의 자금 사정이 안 좋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돈이 필요했겠지요. 그리고 소호라면 한 달에 적어도 황금 만 냥은 벌어다 줄 시장입니다.”

“우선은 우리가 너무 깊숙이 끼어들 필요는 없다. 회주님께는 내가 직접 보고를 할 것이니 너는 그놈을 놓치지 말고 잘 감시해라. 그리고 분명 마룡방에서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상관세가와 마룡방이 싸운다면 우리로서는 나쁠 이유가 전혀 없다.”

“알겠습니다.”

“네 말은 구룡회의 짓은 분명 아니다. 그 말이냐?”

상관세가의 가주 상관노룡은 소호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하는 상관무청을 보며 물었다.

“제가 보기에는 분명 아닙니다. 구룡회의 회주 저만우는 의심이 많고 조심성이 극히 심해 아는 길도 물어서 간다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뻔히 자신이 의심 받을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네 생각은 그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설마 진짜로 야바위꾼이라고 믿는 것은 아닐 것 아니냐?”

상관무청의 형이자 상관세가의 소가주인 상관무웅이 물었다.

“야바위꾼으로 보기에는 너무 강합니다. 흑사파의 도박장에는 흑의군과 혈의군, 거기다 오십여 명이 넘는 무사들이 있었습니다. 강호의 일류고수라 해도 버거웠을 것입니다. 그런 곳을 순식간에 다 때려 부순 자가 야바위꾼일 리는 없습니다만…….”

상관무청은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쩌면 진짜 야바위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고를 그렇게 했다가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으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마룡방에서는 구룡회와 우리 상관세가를 의심할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대한 대책은 세워놓았느냐?”

“아버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자와 우리는 분명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룡회에서는 우리를 의심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생각지도 않은 싸움이 일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범인이 아닌 이상 그들이 우리를 오해해서 건드렸건 이번 기회를 기화로 일부러 싸움을 걸었건 그들의 도발을 받아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명분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마룡방은 간단한 상대가 아닙니다. 솔직히 단독으로 싸운다면 우리로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명분이 우리에게 있으면 다른 정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흠! 무웅이 네 생각은 어떠냐?”

상관노룡은 결정이 어려운지 먼저 상관무웅의 의견을 물었다.

“지금 본 세가의 사정이 안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맞닿는 사 방 중 세 방향의 다른 세력은 모두 정파입니다. 우리로서는 고개를 내밀기가 어렵습니다. 소호만이 우리가 손을 뻗칠 수 있습니다.”

“본가의 문제는 우리의 주수입원인 표국사업이 부진해서 그렇다. 만약 마룡방과 싸움이 벌어진다면 물주들이 더욱 불안해서 사업에 더 지장이 올 수도 있다. 그것은 감안해 보았느냐?”

“소호를 우리의 영역 안에 넣는다면 다른 손해를 얼마든지 감수할 만합니다.”

상관무웅의 말을 상관무청이 받았다.

“문제는 구룡회와 마룡방이 싸우기 전에 우리가 먼저 시비가 붙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구룡회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무청이 네가 그런 머리는 잘 도니까 대책을 마련해 보아라. 우선은 마룡방과의 전쟁이 일어날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도 좋다.”

상관노룡의 허락이 떨어지자 상관무웅과 상관무청이 힘있게 소리쳤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 형제가 반드시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유성탄의 분탕질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세파의 뇌관이 터지고 있었다.

* * *

“대형! 그런데 우리가 계속 여기서 시간을 보낼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왜?”

하후란이 지도를 가져간 후 유성탄은 다시 아우들의 무공을 높여준다는 이유로 모두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자 표도행이 잠깐 쉬는 사이에 말했다.

“흑혈신마는 잔인하기로 천하에 이름 높은 자입니다. 무공도 무림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는 인물이고요. 그자가 왜 그냥 갔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거기다 소호와 여기는 겨우 이백여 리밖에 안 됩니다. 마룡방이라면 곧 우리의 흔적을 찾아 추격을 시작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빨리 도망을 쳐야 하지 않을까요?”

표도행의 말은 조리가 있었고 상황도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모두의 고개가 끄덕였다.

“야! 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야? 도망이라니! 내가 뭐가 무서워서 도망을 쳐! 이것들이 훈련하기 싫으니까 엄살은……!”

유성탄은 표도행의 말이 비위에 맞지 않은 듯 벌떡 일어서며 과장된 몸짓으로 큰소리쳤다. 유성탄의 자존심상 도망이란 있을 수 없었다.

“전부 일어나! 그따위 소리 하려면 수련이나 똑바로 해!”

말을 마친 유성탄은 모두 일어나자 똑바로 줄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소리쳤다.

“지금부터 신법수련을 한다. 북쪽을 향하여 최대한의 속도로 뛴다. 뒤에 처지는 놈은 나한테 맞는다. 시작!”

그러자 아우들은 쏜살같이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흑혈신마가 사라진 남쪽의 반대쪽이었고 산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을 타고 달리는 것이었다.

‘빨리 도망치자! 이러다가 그 늙은이가 다시 돌아오면 골치 아프다.’

훈련을 핑계로 도망치는 유성탄은 아우들이 아무도 눈치 못 챌 거라고 믿었다.

‘하여간에 결국 도망칠 거면서 큰소리는…….’

‘이게 수련이냐… 도망이냐… 그것이 헷갈리는구나.’

‘어찌 수련이 도망치는 느낌이 들까?’

달리는 아우들의 머리에서 일어난 생각들이었다.

어차피 하후란은 그들이 어디로 가든 자신이 찾아오겠다고 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 * *

“이쪽으로 간 것 같습니다.”

마룡방의 황룡대는 유성탄 일행이 떠난 지 두 시진도 채 안 되어서 항산에 도착했다. 대단히 빠른 추격이었다.

조장인 여필수의 말을 들은 황룡대주 견준구는 유성탄과 흑혈신마가 싸웠던 공터를 유심히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여기를 봐라. 엄청난 고수가 손을 쓴 듯한데… 피도 없고…….”

흑혈신마의 장에 휩쓸린 바닥과 유성탄이 거의 땅에 처박히다시피 했던 흔적 등 여러 가지 격렬한 싸움의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그와 상대를 한 자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정도의 고수가 혼자서 지랄을 했을 리는 없는데…….”

흑혈신마가 들었다면 당장 목을 부러뜨릴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견준구는 신경이 거슬리면서도 그 상황과 도박장을 부수고 돈을 주워 담아 도망쳤다는 괴한과 연결을 시킬 수는 없었다.

흔적만으로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고수가 나타났었다는 것은 짐작이 갔지만 그것과 유성탄이 한 행동과는 너무 큰 괴리가 있었다.

“그쪽이면 산길을 따라 갔다는 말이냐?”

더 이상 신경을 쓸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견준구는 여필수가 말한 방향을 보며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산길을 추적하는 것은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힘든 일이었다. 잠자리는 물론 먹는 것과 싸는 것 모두가 불편했다.

“정말 신경질 나게 만드는 놈이구나! 빨리 추격해라. 시간을 끌면 우리만 피곤하다.”

견준구의 말에 사십여 명의 황룡대는 급히 몸을 날렸다. 모두가 일류에 가까운 무공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 * *

“아가씨, 그 지도가 분명 칠우도가 맞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분명해요.”

“무림칠괴라면 그다지 별 볼일 있는 자들도 아니지 않습니까?”

“대단한 이름을 가졌었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나름대로 한 방면에서는 대가 소리를 듣던 자들이었지요.”

“그런가요? 제가 알기로는 상대해서는 안 될 괴상한 자들이라고 들었는데요. 거기다 이 칠우도도 무림에 나타났을 때 아무도 탐내지 않아서 서로 가지라고 권했다 해서 ‘웃기는 비도(秘圖)’라고 불렸잖습니까?”

“호호호! 그랬었지요. 나름대로 큰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엄청난 기연이 기다린다고 소문까지 났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왜 그들에게는 진짜 큰 기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신 것입니까?”

“그자들의 눈을 보셨어요? 모두 여기서 큰 기연이라도 얻기를 바라는 눈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유성탄 그 사람하고 연결고리도 필요했고요.”

하후란의 말에 마효춘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물었다.

“유성탄 그놈에게 그런 말을 듣고도 아직 그놈에게 미련을 못 버리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직접 보시고도 그런 말을 하세요? 흑혈신마의 흑혈단혼기를 부러뜨렸어요. 그리고도 아직 살아 있습니다. 우리라면 지금 살아 있을 수 있을까요?”

“그거야… 우리라면 이미 시체가 되었겠지요. 흑혈신마의 비위는 구파일방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이러는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나요?”

“하지만 제어가 안 되는 아군은 적보다 더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다 무슨 기연으로 그렇게 단단한 몸을 지니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맷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놈 큰소리는 치지만 어쩌면 이미 뼛속까지 골병이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계속 부정적으로 말하는 마효춘을 보며 하후란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다시 말했다.

“도대체 마 영주님께서는 유성탄 대형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그렇게 많으신 거예요?”

“억하심정이 아니라, 그놈과 대화만 나누면 자신도 모르게 화가 머리 끝까지 납니다. 사람 약올리는 데 타고난 재주를 가진 놈입니다.”

“호호호! 그래서 더 재미있잖아요.”

* * *

“대형! 좀 쉬었다 갑시다. 정말 이러다 죽겠습니다.”

계속 뒤로 처지던 장우왕과 황대산 그리고 철패가 드디어 견디지 못하고 뻗어버렸고 그 와중에 장우왕이 간신히 한마디 한다.

“하여간에 덩치는 산만 한 놈들이 더 빌빌거린다니까. 에이, 좀 쉬자!”

강태웅은 가장 잘 버텼고 마동파와 표도행도 날씬한 몸매답게 상당히 잘 뛰었지만 역시 덩치가 큰 세 명은 지구력이 가장 낮았다.

입에 거품까지 무는 그들을 보자 유성탄도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쉬기로 했다.

“대형! 그런데 대형은 숨도 안 차십니까?”

표도행이 그렇게 달리고도 여전히 고르게 숨을 쉬는 유성탄을 보며 신기한 듯이 물었다.

“난 숨이 차다는 게 뭔지 모른다.”

‘존경하는 대형! 역시 큰소리치는 것 하나는 정말 일품이시라니까.’

마동파가 유성탄의 큰소리를 들으며 감탄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대형, 그럼 비무나 하시지요.”

유성탄은 비무를 하는 동안 사정을 봐주지 않고 때렸다. 그래서 다른 아우들은 유성탄과 비무하는 것을 질겁을 했지만 강태웅만은 유성탄의 주먹의 아픔을 알면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비무를 원했다.

강태웅은 유성탄과 비무를 하면서 자신이 무척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표 아우!”

“예.”

“강태웅 형님께서 무척 는 것 같지 않아?”

마동파가 비무를 하는 강태웅을 보며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맞습니다. 부러울 정도입니다. 강태웅 형님은 매일 느시는 것 같은데 저는 거의 발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보기에는 아우도 무지 늘었던데… 안 늘기는 내가 안 는 것 같던데…….”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형님도 무척 많이 느셨던데……?”

막상 유성탄과 비무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얼마나 늘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특별히 배운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수련으로 근력과 지구력이 늘은 것은 어느 정도 느꼈지만 실력은 늘었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니들 많이 늘었다. 아니 우리 모두가 엄청 많이 강해졌다.”

장우왕이 어느 정도 숨을 고르고는 일어서며 말했다.

“대형의 수련이 분명 효과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비무가 도움이 많이 된다.”

낭인들에게는 나름대로 퍼져 있는 말이 있었다.

한번을 죽었다 살아나면 실력이 배로 늘고 다섯 번을 죽었다 살아나면 여간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십 번을 죽었다 살아나면 누구와도 한 번 해볼 만한 실력이 된다는 것이다.

죽었다 살아난다는 말은 자신의 전력을 다해 싸우는 생사지결(生死之決)을 말한다.

어떠한 비무도 생사지결이 될 수는 없으며, 한 번의 생사지결은 천 번의 비무보다 더한 실력향상을 준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유성탄과 거의 생사지결에 가까운 비무를 하고 있었다. 다치지 않는 유성탄이기에 가능한 비무였다.

그리고 그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강태웅이 나가떨어지자 장우왕이 나섰다. 그리고 장우왕이 떨어지자 황대산이 나선다.

결국 모두가 유성탄의 주먹에 다 쓰러지고 나서야 비무는 끝났다.

그러나 여섯 명과 계속 싸우고도 전혀 지치지 않는 유성탄이었다.

“태웅 형님, 이제야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사지를 마음대로 널브러뜨리고 자는 유성탄이 깰세라 여섯 명의 아우들은 살며시 일어서더니 한쪽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도 그동안 내가 익힌 무공에 무슨 결함이 있는지 좀 알 것 같다. 정말 이런 식으로만 간다면 굳이 다른 기연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마동파의 말에 강태웅이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연은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시시한 심법이라도 하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표도행이 그래도 기연은 필요하다며 끼어들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대형의 신기한 힘의 원천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몸에 무기가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힘도 대단합니다. 내가 딴 것은 몰라도 완력만은 자신 있는데 대형의 완력에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입니다.”

황대산의 말에 마동파가 말을 이었다.

“그 빠르기는 어떻고요! 나도 빠르기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대형의 빠르기에는 당할 재간이 없더라고요.”

“인간이 아니시다. 하루 종일 뛰고 우리와 계속 죽기 살기로 비무를 하셨는데도 지치지도 않으셨다. 강태웅의 말대로 대형은 정말 신인이시다.”

장우왕의 이어지는 말을 듣던 강태웅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는 정말 과분하신 대형이니 우리가 빨리 강해져서 대형을 어느 정도까지는 보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오히려 대형의 짐만 되고 있다.”

‘강태웅 저거는 하는 말마다 옳은 말만 한단 말이야. 그래서 더욱 찝찝하단 말이야.’

자는 척하면서 모두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던 유성탄은 코를 찡긋거렸다.

믿음직은 하지만 뭔가 마음대로 하기 힘든 강태웅 때문이었다.

유성탄은 모든 것이 강태웅이 만들어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 것이 싫었다.

“저놈들인 것 같습니다.”

마룡방의 황룡대 조장 여필수는 모닥불을 하나 피워놓고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 강태웅 일행을 보며 견준구에게 말했다.

“나타난 놈은 한 놈이라고 했는데 저놈들은 여러 놈들인데……?”

“그런 엄청난 짓을 한 놈이 했다고 했을 때부터 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로 저놈들이 한 패일 것입니다.”

“한 패건 아니건 상관없다. 전부 다 잡아들여라! 만약 반항하면 몇 명 정도는 죽여도 된다.”

견준구가 보기에 그들은 흔히 보이는 낭인들이었다. 그로서는 흑사파의 혈의인과 흑의인들이 그들에게 죽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저거… 산적들인가요?”

서서 망을 보던 철패가 다가오는 무인들을 보자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다. 산적들이라면 저런 식의 몸놀림을 보일 수가 없다.”

강태웅이 급히 일어서며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모두 일어서며 각자의 무기를 손에 쥐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자들은 산적으로 보기에는 척 보기에도 절도가 있는 모습들이었다.

“너희들이 소호의 도박장에서 난장판을 친 놈들이냐?”

“형님, 흑사파에서 나온 모양인데요.”

여필수의 말에 황대산이 조그맣게 강태웅에게 물었다. 흑혈신마가 나타난 것에 비해서 덜 위험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 파에 계신 호걸들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강호의 동도로서 다짜고짜 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싶소이다.”

강태웅이 앞으로 나서며 점잖게 말하자 여필수의 얼굴이 찌그러진다.

“이놈이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주둥아리를 놀리느냐! 당장 무릎을 꿇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여필수로서는 일개 낭인 놈들이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것조차 불쾌했다.

“이런 호랑말코 같은! 이봐 당신이 누군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강태웅의 옆에 부를 들고 서 있던 장우왕이 부를 어깨에 걸치며 소리쳤다.

예전 같으면 할 수 없는 담대한 행동이었지만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크크크! 정말 미치겠구나. 언제부터 마룡방의 황룡대가 호랑말코 취급을 받기 시작했는지 모르겠구나.”

견준구의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그리고 강태웅을 비롯한 아우들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한 것은 불문가지였다.

흑사파라면 몰라도 마룡방의 황룡대라면 얘기가 달랐다. 유성탄이 있기는 했지만 몸 하나 단단한 거 빼면 무공은 정말 보잘 것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머지는 고스란히 불귀의 객이 되기 십상이었다.

원망이 가득한 모두의 눈이 장우왕에게 쏠렸다. 알아보지도 않고 개기기부터 한 장우왕에 대한 질타였다.

“천하에 이름이 높은신 마룡방의 대호걸들께서 어찌 우리 같은 천박한 낭인들을 윽박지르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어쨌든 아우가 성질이 급해 순간적으로 마도의 영웅들을 몰라 뵙고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릴 터이니 그만 화를 푸시지요.”

강태웅이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자세를 잡으며 되도록이면 좋게 끝내려고 공손하게 사과했다.

“하하하하! 네가 뭔데? 너까짓 게 뭔데 네 사과로 화를 풀라는 거냐! 아주 웃기는 놈들이군. 야! 모두 제압해라! 만약 반항하면 살가죽을 벗겨버려라!”

견준구는 강태웅의 말에 더 화가 나는지 드디어 부하들에게 공격을 명했다.

“아 그 새끼! 잠도 못 자게 되게 떠드네!”

갑작스런 욕지거리에 견준구의 눈이 주섬주섬 일어나고 있는 유성탄에게로 향했다.

“지금 너… 너, 내…내게 한 소리냐?”

견준구가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그 새끼 시끄럽기만 한 게 아니라 말까지 더듬는 병신이었군.”

유성탄의 이어지는 말에 견준구가 참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부하들에게 시킬 정신도 없는 듯했다.

빠악!

견준구의 주먹이 그대로 무한의 얼굴에 작렬하려고 하는 순간, 무한의 발이 먼저 견준구의 복부를 강타했다. 누구나 발은 팔보다 긴 법이다.

“으으윽!”

단 한 방이었지만 견준구는 그대로 복부를 감싸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갑작스런 돌발사태에 여필수가 놀라 견준구를 부축하려고 하는데 다짜고짜 달려든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여필수의 코를 때렸고, 그 다음은 닥치는 대로 견준구의 몸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주위에 서 있던 황룡대원들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견준구는 절정고수였다. 그런 견준구가 어이없이 복날에 개 터지듯 터지고 있으니 그들로서도 덤빌 엄두가 안 났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거기다 견준구가 없으면 대신 그들을 지휘해야 할 여필수마저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견준구로서는 천추의 실수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본신무공으로 유성탄과 싸운다면 이기지는 못해도 이렇듯 어이없이 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성탄을 너무 얕보았고 순간적으로 욕지거리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복부를 맞는 순간 자신의 자세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아아악!”

대책없이 터지던 견준구의 입에서 드디어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유성탄의 주먹에 그의 인내심이 드디어 바닥이 난 것이다. 그리고 황룡대원들도 비명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유성탄의 아우들이 무기를 꺼내 들고 견준구를 때리고 있는 유성탄의 앞을 막고 있었다.

“만약 공격을 한다면 저자는 이 자리에서 그대로 죽고 만다.”

강태웅이 검을 황룡대원들에게 겨냥하며 협박하듯이 소리치자 황룡대원들로서는 공격을 하기가 어려웠다. 덤비면 직속상관인 견준구를 죽인다는데 어찌하겠는가.

“니들도 덤비고 싶어?”

견준구가 쌍코피를 흘리며 기절하자 유성탄이 손을 탁탁 털며 황룡대원들에게 물었다.

견준구를 때리던 유성탄의 모습은 정말 악귀나찰 같아서 그들로서는 감히 덤빌 생각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모두 고개를 젓자 유성탄은 아우들에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수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뛴다!”

유성탄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는 꼬랑지가 빠지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가히 전광석화 같았다.

그리고 유성탄 일행이 떠난 자리에는 견준구와 누런 이빨들이 널려 있었다. 최소한 열 대는 빠진 것 같았다.

“후아! 아이고, 죽겠다.”

황대산이 제일 먼저 주저앉고 만다. 하긴 무려 한 시진이 넘게 전력질주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황룡대는 모르고 있었지만 유성탄의 아우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했지만 만약 그대로 덤볐다면 낭인칠웅은 사라지고 야바위꾼 유성탄만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니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아이고, 내 팔자야. 아우들이 생기면 좀 편할 줄 알았는데…….”

유성탄의 감각은 초인적이었다. 황룡대는 충분히 강했고 견준구나 여필수도 그의 기습이 아니었다면 그리 쉽게 처치하기는 힘들었다.

“죄송합니다, 대형!”

“하여간에 니들이 빨리 강해지든지 아니면 모두 나 모르는 데서 죽어버리든지 해야지 니들 때문에 나까지 도망다니는 거 지겨워서 더 이상 못 하겠다.”

“대형, 솔직히 우리 때문에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 아닙니다.”

마동파가 유성탄의 말에 슬쩍 토를 달았다.

“그럼 나 때문이란 말이냐?”

“대형께서 도박장에서 난장만 치지 않았다면 저들이 우리를 추격해 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도박장을 박살낸 것은 이미 며칠 전 일이다. 지금 너는 과거를 가지고 책임소재를 따지자는 거냐?”

“그게 무슨 과겁니까? 제가 보기에는 아직 현재 진행인데요. 안 그래요?”

마동파가 강태웅과 장우왕을 보며 동조를 구했다.

“현재 진행? 좋다. 뭐가 현재 진행인지 내가 너에게 보여주마.”

유성탄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치자 그때서야 마동파도 분위기가 파악이 됐는지 양손을 올리며 소리쳤다.

“맞습니다. 대형에게는 대형의 법이 있지 않습니까? 대형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지요. 무조건 대형의 말씀이 옳습니다.”

“짜식이… 까불어.”

마동파의 익살에 유성탄이 다시 앉자 모두의 입에서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그놈이 누구지?”

항산 중턱의 조그만 동굴 안, 흑혈신마는 운기조식을 마치자 유성탄의 얼굴을 생각하며 누구인가를 기억해 보았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없는 얼굴이었다.

“나의 흑혈신장을 그렇게 맞고도 죽지 않다니……. 금강불괴라 해도 있을 수 없다. 어쨌든 나의 흑혈단혼기를 부러뜨린 놈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흑혈신마는 무림의 열 명의 절대고수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였다.

다른 고수들과는 달리 자신의 세력 없이 혼자서 독불장군으로 떠도는 그였지만 누구도 그를 무시하는 문파는 없었다.

한마디로 일인문파 같은 자였다. 그의 비위를 거스른다는 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용서가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유성탄과 그가 맞닥뜨린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호북에 급한 일이 생겨가던 그는 며칠을 계속 달리면서 운기조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는데 그곳이 하필이면 항산이었다.

운기조식을 하게 되면 아무리 고수라 해도 조심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흑혈신마는 언제나 자신의 흑혈단혼기를 근처에 세워놓고 운기조식을 하곤 했다.

그런데 운기조식을 시작하려는데 낭인칠웅이 흑혈단혼기를 보지 못하고 경계 안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비록 며칠을 잠도 자지 못하고 쉬지 않고 신법을 사용해서 오느라 기운이 빠지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유성탄 정도를 일장에 죽이지 못한 것은 그로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흑혈신마는 당연히 자신의 이름에 오점을 남긴 유성탄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는 유성탄에게 한기가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강한 호신강기라 해도 그렇게 정통으로 수십 대를 맞고 견딜 수는 없다. 들어보지 못한 무공인데 반드시 무슨 무공인지 알아내야겠다.’

흑혈신마는 우선은 유성탄을 죽이는 것보다 그 무공을 알아내는데 주력을 다할 생각을 했다.

만약 유성탄의 무공을 알아내기만 하면 자신이 무림제일고수가 되는 것은 여반장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 *

“바보 같은 놈들! 내가 그렇게 당하고 있으면 빨리 달려들어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겁에 질려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유성탄이 아우들을 데리고 수련을 핑계로 사라진 지 한 시진이나 지나서야 견준구는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이빨이 다 나가 바람 새는 목소리로 부하들을 질타하고 있었다.

“조장님도 기절해 계시고 그놈은 우리가 덤비면 대장님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는 통에 우리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대원 중 선임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변명을 했다.

“이런 병신 같은 놈! 너희는 대마룡방의 황룡대다! 그런 놈들이 내 목숨 따위에 연연해서 적을 그냥 보냈다는 말이냐!”

견준구는 이빨이라도 바드득 갈고 싶었지만 갈 이빨이 없었다.

“으으윽! 나 견준구가 그런 놈에게 이렇게 당하다니… 내 반드시 이놈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갈아 마시고 말겠다. 뭐 하는 거냐! 당장 추격을 시작해라!”

견준구는 자신이 너무 방심하다가 순간적으로 당한 것이 더욱 억울했다.

“대형! 아무래도 그자들이 곧 추격을 다시 시작할 겁니다. 이런 식으로 도망가다가는 얼마 못 가 잡힙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태웅이나 나머지 아우들은 마룡방의 사대 무력집단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번 문 먹이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자들이었다.

견준구가 비록 어처구니없이 된통 당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포기할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책? 무슨 대책? 나타나면 도망가고 또 나타나면 또 도망가고 그러면 됐지 무슨 대책이 더 필요하냐?”

간단한 유성탄의 대답에 마동파가 못 참고 나선다.

“아니 대형! 우리야 그렇다 치지만 대형께서 뭐가 무서워서 도망을 친단 말입니까? 우리가 걱정이 되시는 모양인데 우리는 이미 목숨 따위는 뒷간에 내다버린 낭인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좋으니 대형께서는 떳떳하게 그놈들을 상대하십시오.”

충정 어린 마동파의 말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지랄하네. 야! 속 보이는 소리 그만둬라!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거기다 형제의 의를 맺을 때 죽을 때는 같이 죽기로 해놓고는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하여간에 연극을 해요 연극을…….”

유성탄이 웃기지 말라는 듯이 말하자 마동파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도 마 동생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도망친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잡히게 될 것이고 그놈들 등쌀에 제대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밥 먹을 시간도 없게 괴롭힐지도 모릅니다.”

황대산이 아무래도 도망만 치는 것은 좋은 대책이 못 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그의 말에 유성탄이 절대로 참지 못할 핵심적인 얘기가 들어 있었다.

“뭐라고? 밥… 먹을… 시간도 없게… 괴롭힌다고? 이놈들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유성탄이 분노의 음성을 보이자 표도행이 급히 나선다.

“고정하십시오. 아직은 밥 먹을 때 나타난 적은 없습니다.”

“인마! 이미 나타나면 늦는 거잖아. 나는 밥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한데… 안 되겠다. 마룡방이 어디 있냐?”

갑작스런 유성탄의 말에 모두가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본다.

“마룡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서 어쩌시려고요?”

강태웅이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가서 도박장에서 주워온 돈 전부 돌려주고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안 될까?”

가서 사생결단을 내자고 할 줄 알았던 유성탄의 말에 아우들의 얼굴에 실망과 안도감이 같이 교차하고 있었다.

“마룡방은 정파가 아니고 사파입니다. 아마 돈을 돌려주고 사과하기도 전에 죽이려고 덤벼들 겁니다.”

표도행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하자 황대산이 거든다.

“죽이기나 하면 다행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가죽을 벗겨서 나무에 매달아 놓을 공산이 큽니다.”

황대산의 말에 유성탄의 얼굴이 변했다. 쫄은 것이 분명했다.

“에이 설마! 그 정도에 가죽까지 벗기려고…….”

“아닙니다. 제가 아는 사람 하나는 사파하고 시비가 붙은 다음에 가죽만이 아니라 팔하고 다리까지 잘렸었습니다.”

마동파가 이왕 겁주는 김에 왕창 줄 생각으로 덧붙이자 유성탄이 분연히 일어섰다.

“사파란 놈들이 아주 나쁜 놈들이구나! 나같이 착한 사람이 정당하게 받을 돈을 좀 받은 것뿐인데…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어쩔 수 없다. 나 유성탄은 사파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유성탄의 말도 안 되는 분개 어린 절규에 아우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박수는 왜 치냐?”

“대형의 의기에 감탄한 것입니다. 얼마나 용기 있으신 행동이십니까? 저희는 대형을 죽음으로 보필할 것입니다.”

강태웅의 말에 유성탄의 얼굴에 썩은 미소가 어린다.

‘씨! 이거 자꾸 수렁에 빠지는 느낌인데… 천하제일의 야바위꾼이 되는 게 내 꿈인데… 이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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