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흑혈신마 (13/79)

제4장 흑혈신마

“대형,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오셨기에 이렇게 급히 도망가는 겁니까?”

만나기로 약속한 주루에 도착한 유성탄은 아우들에게 무조건 나오라고 하고는 다급하게 소호를 벗어난 것이다.

“무슨 짓은 무슨 짓! 야 이거 봐라. 헤헤헤!”

어느 정도 한가한 곳에 도착한 유성탄은 요상한 웃음을 지으며 등에 짊어지고 있던 보자기를 펼쳤다.

“아니 대형! 어디서 이 많은 돈을? 설마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도망을 치시는 겁니까?”

마동파가 놀라 묻자 표도행이 받았다.

“대형, 설마… 이거 도둑질을……?”

“이 자식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유성탄이 신나서 설명을 하자 모두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신나던 유성탄도 공기가 이상해지자 모두의 얼굴을 왜 그러느냐 듯이 쳐다보았다.

“대형, 소호의 흑도문은 흑사파라고 아주 지독하고 잔인한 놈들입니다. 한번 원한을 맺으면 절대로 그냥 지나가는 놈들이 아니지요. 거기다 그 뒤에 마룡방이라고 엄청 강한 사파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정보통답게 표도행은 모르는 게 없었다.

“마룡방이 강하냐?”

“무림의 오대사파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용병으로 있던 남무림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강할 겁니다.”

“이 자식이! 괜히 겁주고 있어. 야! 남무림의 무사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것보다 강하다는 거야?”

“남무림은 중원 무림의 변방입니다. 중원에서는 알아주지도 않아요! 마룡방만 해도 중원 백대고수에 드는 사람이 세 명은 있는 걸로 압니다.”

“중원 백대고수? 그럼 뭐야 그 척 뭐시기 하는 노인 같은 자가 세 명이나 있다는 말이냐?”

“그렇다니까요! 이번은 아무래도 너무 강한 곳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유성탄의 얼굴에 걱정이 생기고 있었다. 어떻게 죽이기는 했지만 척지경은 정말 무서웠다. 한 대 맞을 때마다 아픔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가 세 명이라니! 유성탄은 세 명에게 맞는 상상을 하며 얼굴이 노래지고 있었다. 겁은 엄청 많은 유성탄이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적이 오면 상대하면 됩니다. 대형의 능력이면 누구도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거기다 대형의 몸은 칼도 뚫지 못하지 않습니까!”

강태웅이 의연하게 말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이 보아온 유성탄은 겁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겁내는 유성탄이 이해가 안 갔다.

‘저건… 아픈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도 모르고…….’

“하하하! 맞다! 나 유성탄에게 무서운 것은 없다. 너희들도 걱정 말고 나만 믿어라.”

유성탄이 속마음을 보이지 못하고 다시 큰소리치자 강태웅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 * *

누군가에게 끝없는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야! 그런데 나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게 신뢰와 존경을 보내는 거야. 그러니 내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하지만 나 유성탄은 꿋꿋하게 모든 사람의 존경에 걸맞은 행동을 했지.

* * *

“도망친 곳이 겨우 여기냐?”

유성탄과 아우들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세 명의 혈의를 입은 자들이 비릿한 웃음을 띠고는 유성탄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시기에 우리에게 도망쳤다고 하시는 겁니까?”

강태웅이 포권을 하며 점잖게 물었다.

“흥! 감히 소호에서 난장판을 까놓고 태연한 척한다고 용서가 되리라고 믿었느냐?”

혈의를 입은 자 중 하나가 등에서 검을 뽑으며 진한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나타났다. 유성탄의 재촉에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겨우 일 각 차이로 그들을 쫓아온 것이다.

“건방진 놈들. 우리가 너희들 따위를 무서워 도망쳤다고 생각했느냐? 나 장우왕은 누구를 무서워 도망가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장우왕이 커다란 도끼를 꺼내 들고는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 순간 검을 뽑은 자가 장우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대단한 쾌검이었다.

챙!

장우왕은 무의식중에 도끼를 휘둘러 검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가슴팍이 약간 갈라지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이런 치사한 놈이 있나!”

황대산이 장우왕의 가슴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대감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그러나 곧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혈의인의 검에 막히고 말았다. 곧 한 명의 혈의인에 두 명의 아우들이 달라붙어 싸움이 벌어졌다.

‘자식들이! 가만히 있기나 하지 왜 나서가지고 끼어들기도 힘들게 만드는 거야?’

유성탄은 자신이 당장 때려잡으면 될 걸 아우들이 먼저 끼어들어 싸우자 짜증이 났지만 생각 외로 아우들이 잘 싸우자 우선 두고 보기로 했다.

‘저런 바보 같으니라고! 저럴 때는 옆으로 피하면서 발로 차야지. 에이…….’

유성탄은 아우들이 싸우는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약점과 공격을 스스로 생각하며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가장 위험하게 싸우는 표도행과 마동파의 상대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발로 땅을 팍 차며 쏜살같이 달려든 유성탄은 혈의 무사가 놀라서 휘두르는 검을 그대로 팔로 막으며 머리로 가슴팍을 받아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검에 맞은 팔은 옷까지도 찢어지지 않았고 머리에 받힌 혈의 무사는 그대로 피를 토하며 날아가 버렸다.

마동파와 표도행은 어리둥절해서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갈수록 강해지는 유성탄에게 감탄을 넘어 경악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혈의 무사들의 무공은 일류 이상이었던 것이다.

“야, 이 자식들아 이런 피라미들한테 그렇게 끙끙대면 어떡하냐? 하여간에 아우들이라고 어떻게 이런 것들이 걸렸는지 모르겠어?”

한 명을 간단히 처리한 유성탄은 나머지도 간단하게 처치하고는 어깨에 힘을 팍 주고는 아우들을 타박했다. 하지만 막말을 하는 유성탄이었지만 아우들은 유성탄이 자신들이 다칠까 봐 급히 끼어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강태웅만 빼놓고는 전부 위험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기연인지 뭔지 그것부터 찾기는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러다가는 형인 나보다 너희들이 먼저 죽겠다.”

‘이씨! 괜히 한날한시에 죽겠다고 맹세한 것 같아.’

유성탄은 그냥 의형제만 맺고 죽는 것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기로 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 * *

항산에 도착한 유성탄 일행은 묻고 물어 하후란이 말했던 그림에 그려진 것과 아주 흡사한 봉우리를 찾았다. 하지만 비슷하기는 했지만 그 크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강태웅 형님! 무조건 찾기에는 너무 큰 것 같은데요. 지도에 단서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요?”

황대산의 말에 강태웅이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지도를 꺼내보았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단서가 지금 본다고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비슷하기는 한데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마동파가 그림과 봉우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맞다. 아주 흡사하기는 한데 확실히 몇 군데가 다르다.”

강태웅도 동감하는지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만사무불통녀 역시 비슷하다고 했지 바로 그곳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림만 보고 이렇게까지 비슷한 봉우리를 찾아낸 그녀의 능력이 놀랍기는 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좀더 뒤져는 봅시다.”

철패가 우직하게 말하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와서 그림과 좀 다르다고 그냥 돌아서기에는 뭔가 좀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산속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아가씨 말대로 여기가 목적지였군요. 어찌 아셨습니까?”

마효춘이 신기하다는 듯이 하후란을 보고 물었다.

마효춘은 강태웅이 하후란에게 그림이 있는 장소를 물어보았다는 것을 모르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것은 다음에 설명해 줄 테니 우선은 저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따르세요. 제 짐작이 맞다면 우리는 재미있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몰라요.”

마효춘은 하후란이 말하는 의미가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흔들며 몸을 날렸다. 낭인 따위를 쫓아서 재미난 것을 볼 것이 있다는 말이 그는 믿기지 않았다.

찾을 것이 확실히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은 우선 동굴이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보이면 무조건 뒤져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시진도 안 되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단서가 있어야 찾는 재미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런 단서도 없고 사실 이 산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뒤지는 것은 신명이 안 나는 법이었다.

“하여간에 미련하다니까… 기연이라는 게 아무한테나 생기면 그게 무슨 기연이야 우연이지.”

다들 뭔지도 모를 것을 찾아 산을 헤매고 있을 때 유성탄은 그늘이 있는 곳에 놓인 넙적한 바위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혼자 제일 편하시네요?”

‘으잉? 이게 웬 여자 소리?’

유성탄은 갑자기 들려오는 하후란의 목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뭐야! 저번 그 여자잖아?”

“기억나세요?”

“그럼 기억나지! 언제 봤다고 벌써 잊어버렸을까봐. 그런데 네가 여기 웬일이냐?”

말하던 유성탄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마… 내가 전에 말한 것 때문에 한 번 줄려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유성탄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하후란은 “흥!” 콧소리를 한번 치고는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야무진 생각을 하실 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여인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정말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랍니다. 잘못하면 강호의 음적으로 몰려 쫓기다 죽을 수도 있는 큰 죄라고요! 아시겠어요?”

‘씨!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되지 웬 협박!’

“그럼 왜 여기까지 쫓아와서 귀찮게 구는 거냐? 가라, 여자애들하고 나는 더 이상 안 논다.”

유성탄이 귀찮다는 듯이 파리 쫓듯이 손을 흔들고는 다시 바위에 눕자 하후란의 얼굴에 살기가 잠깐 나타났다. 그녀에게 유성탄같이 함부로 구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강태웅 대형께서 말하시기를 혈문을 찾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혈문을 찾는다는 말에 유성탄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찾을 수 있는 거야?”

“호호호! 제가 만사무불통녀예요. 당연히 마음만 먹으면 찾지요.”

“그럼 좀 찾아주라.”

유성탄이 그때서야 무척 흥미가 동한지 그녀에게 얼굴까지 들이밀며 친절하게 말했다.

“그런데 유성탄 대형께는 마음을 먹고 싶지가 않네요.”

“왜?”

“뭔가 필요한 사람은 부탁을 할 때 당연히 애원을 해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유성탄 대형께서는 마치 명령하듯이 말하고 있어요. 유성탄 대형께서는 사람 사는 법을 조금 더 배우셔야 할 것 같네요.”

“야! 우리 사이에 복잡하게 뭘 그런 걸 따지냐? 그냥 가르쳐주라.”

하후란은 유성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요?”

“나는 한 번 달라고 그랬고 너는 안 준다고 그랬잖아? 그런 사이면 된 거 아니냐?”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군요. 혈문을 찾고 싶다면 예의부터 배워야 할 거예요.”

그때였다.

“아가씨! 빨리 피하십시오.”

마효춘이 날듯이 나타나더니 하후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우선 피하고 얘기하겠습니다.”

하후란은 마효춘의 다급함에 우선 피하기로 했다. 남들은 모르지만 마효춘은 그녀가 몸담은 문파에서는 그리 많지 않은 고수였다. 그리고 그녀는 오히려 마효춘보다 더 강했다. 그걸 잘 아는 마효춘이 이렇게 허겁댄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들이 당할 수 없는 자가 나타났다는 것이 된다.

“다시 얘기해요.”

하후란이 잊지 않고 유성탄에게 말했다.

“아마 다시는 보기 힘들 겁니다.”

그러나 하후란과 같이 급히 몸을 날리며 마효춘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대형! 빨리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급합니다.”

하후란과 마효춘이 사라진 지 반 각도 안 되어 같이 산으로 올라갔던 강태웅과 다섯 명의 아우들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뛰어왔다. 그리고는 강태웅이 마효춘과 마찬가지로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이따가 얘기하고 빨리 뛰십시오.”

유성탄도 뭔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벌떡 일어나 뛰려고 했다. 그러나 모두의 발길이 멈췄다. 아우들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몸까지 떠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뭔데 그래?”

유성탄이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보자 깃발 하나가 보였다. 그다지 크지 않은 삼각 깃발에는 시뻘건 핏빛의 천이 달려 있었고 그 안에는 시꺼먼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아까까지는 없었던 것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뭔가 이상함을 느껴야 정상이지만 유성탄은 그런 것에 의문을 느끼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 자식들은 겨우 깃발 하나 보고 그렇게 겁을 내고 지랄들이냐!”

유성탄은 겨우 깃발 하나 보고 얼어 있는 아우들을 보며 우습지도 않다는 듯이 앞으로 걸어가더니 깃발을 잡아 뽑았다. 그리고는 몇 번 흔들더니 그대로 부러뜨려 버렸다.

“무슨 놈의 깃발이 재수 없게 생겼어.”

정신이 없어 유성탄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깜빡 몰랐던 아우들의 얼굴이 이제는 아예 하얗게 질려버렸다.

“대형, 그 깃발은 만지면 안 됩니다!”

강태웅의 외침은 무려 두 박자나 늦어버렸다. 외치기도 전에 이미 만지는 정도가 아니라 부러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모두가 입을 닫았고 유성탄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듯 부러뜨린 깃발만 쳐다보았다.

“흐흐흐흐! 본좌가 무림을 횡행한 지 일 갑자가 넘었지만 감히 나의 흑혈단혼기(黑血斷魂旗)를 부러뜨린 놈은 처음 보는구나.”

갑자기 들려온 귀신이 우는 듯한 목소리에 유성탄은 고개를 들어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아우들을 보며 소리쳤다.

“야! 여기 귀신이 있나 보다. 도망가자!”

“크하하하하! 정말 웃기는 놈이구나. 감히 흑혈단혼기를 부러뜨리고는 도망을 가겠다고!”

유성탄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약간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앞에 검고 붉은 무늬가 가득한 옷을 입을 노인이 하나 나타났다. 그런데 노인의 얼굴은 정말 귀신 같았다.

‘뭐야? 정말 귀신인 거야, 아니면 미친 늙은인 거야?’

속으로 짤막하게 중얼거린 유성탄은 노인의 발밑을 보고는 그림자가 있자 안심한 듯이 웃어젖혔다.

“하하하하! 이런, 생긴 것도 꼭 귀신같이 생긴 늙은이가 사람 깜짝 놀라게 하고 있어. 야야야! 가짜 귀신이야. 겁먹을 거 없어. 그림자가 있잖아!”

유성탄은 아우들이 귀신이 나타난 줄 알고 겁을 먹어 얼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우들은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진중한 강태웅까지 얼어 있는 것으로 보아 나타난 자가 어떤 인물인지 알 만했지만 유성탄은 여전히 눈치가 없었다.

나타난 자는 흑혈신마라는 자였다. 무림에는 사마(四魔)라고 불리는 천하제일의 마두들이 있다. 물론 무림의 십대고수에 드는 자들이었다. 흑혈신마는 사마 중의 한 명이었다.

흑혈단혼기는 흑혈신마가 뭔가 일을 저지를 때 주위에 꽂아놓는 독문영기였다. 나 흑혈신마가 여기에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였고, 만약 그 경고를 무시했다가는 인간으로서는 견디지 못할 악형을 받게 된다. 문제는 그러고 살려주냐 하면 절대로 살려주지도 않았다.

강태웅과 아우들이 흑혈단혼기를 발견하고 도망을 쳤지만 이미 그 경계를 넘은 상태였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흑혈단혼기는 너희들이 감히 내 법을 어겼으니 꼼짝 말고 있다가 처분이나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유성탄은 그 기를 부러뜨려 버린 것이다.

“늙은이, 당신 까불지 말고 저리 가! 나 무서운 사람이야!”

흑혈신마는 유성탄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멍하니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이 진짜 뭐가 있어서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거야? 아니면 너무 몰라서 그러는 거야?’

흑혈신마가 흑혈단혼기를 만든 이유가 바로 그 기를 보고 사색이 되어 벌벌 떠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유성탄이 전혀 무서워하지를 않자 단숨에 죽이기가 싫어졌다.

‘이놈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서 벌벌 떨 때 때려죽여야지. 이대로 죽인다면 분이 안 풀린다.’

“이놈! 네가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바로 흑혈신마다. 이제 네놈은 엄청난 고통을 겪다 찢겨 죽을 텐데 무섭지 않느냐?”

“흑혈이고 백혈이고 내 알 바 아니고, 보아하니 나이도 많은 것 같고 삐쩍 마른 게 엄청 굶은 모양인데 여기서 귀신 놀음 하지 말고 집에 가서 누워나 있으시오! 그리고 어디 다닐 때는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이 어떻겠소? 남들이 보면 귀신 나타난 줄 알고 기절하겠소.”

“이놈! 죽어라!”

유성탄의 말에 흑혈신마는 자신을 알려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때려죽여야겠다고 결정했다.

“히익! 엄마야!”

유성탄도 이제 제법 많은 싸움을 했다. 그중에는 상당한 고수인 대월인이나 무림 백대고수라는 척지경도 있었다. 그러나 흑혈신마는 그 차원이 아예 달랐다. 유성탄도 날아오는 흑혈신마의 장풍에 오금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찾은 것이다.

꽝!

유성탄이 젖 먹던 힘까지 내며 간신히 피하자 흑혈신마의 장은 유성탄이 서 있던 땅을 그대로 후려쳤다. 그러자 꽝 하는 폭음소리와 함께 그곳에는 거의 일 장에 가까운 큰 구멍이 파여져 버렸다.

‘이이이… 노인이 누구야? 저거 맞으면 정말 죽는다!’

유성탄은 파헤쳐진 땅을 보고는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그런데 그의 눈에 사색이 되어 있는 아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왜 저렇게 얼었는지 눈치 챘다.

‘이씨! 내가 이래서 아우 같은 거 안 둘려고 했는데…….’

유성탄은 대형으로서 아우들을 놔두고 혼자만 뺑소니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의형제를 맺은 것을 엄청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것을 어찌하랴.

“노인장! 제가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전에 우리 동네에 살던 장의사하고 너무 닮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잠깐 혼동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용서하시고 그냥 가시던 길로 가시지요.”

유성탄 딴에는 달래본다고 꺼낸 말이었지만 흑혈신마의 화만 더 돋우고 말았다.

“이놈이 감히 나 흑혈신마를 장의사와 비교를 해! 한 번은 어쩌다 운이 좋았지만 이번에 아주 작살을 내주마!”

흑혈신마는 이번에는 장만 휘두르지 않고 몸까지 날렸다. 장에서 검은 연기까지 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성명절기인 흑혈마장이 분명했다.

“으악!”

연기가 보이자 무슨 불장난을 하나? 하고 보던 유성탄은 어느새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오는 무시시한 기운을 느끼고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충동에서 벌레와 놀면서 쌓아온 실력을 백분 발휘하고 있었다.

다시 또 유성탄은 구르기부터 시작하여 두 발로 뛰기, 팔짝뛰기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흑혈신마의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괴상했지만 척지경보다 훨씬 강한 흑혈신마를 상대로 생각 외로 시기적절하게 잘 피하고 있었다.

‘뭐 이런 놈이 있어? 뇌려타곤을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사용하다니… 무인 맞아?’

흑혈신마는 무림사마의 한 명으로 잔인은 하지만 나름 자존심도 무척 센 자였다. 그는 유성탄이 자신의 공격을 벌써 몇 수나 피하고 그 피하는 방식도 무림인들이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한다는 뒹굴고 기기 등 허접한 방법으로 피하자 더 화가 났다.

“이놈! 내가 완전히 가루를 만들어주마!”

흑혈신마는 그냥 하던 공격을 바꿔 자신의 절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흑혈신마의 신형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유성탄의 움직임으로는 피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으아악!”

흑혈신마의 흑혈장이 유성탄의 가슴을 그대로 강타했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땅에 처박힌 유성탄을 다시 발로 짓이겼다. 그러자 유성탄의 몸이 땅속으로 박혀버렸다.

“이렇게 쉽게 죽이면 안 되는 건데… 에잉!”

흑혈신마는 유성탄의 몸이 땅속으로 박히자 너무 쉽게 죽인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중얼거리더니 강태웅 쪽을 쳐다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강태웅을 비롯한 아우들은 유성탄이 너무도 간단하게 처참하게 죽어버리자 지금까지 두려워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복수의 원한에 사무친 얼굴로 무기를 뽑아 들었다.

“아우들, 우리는 한날한시에 죽기로 맹세했다. 대형을 죽인 원수와 우리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비록 우리가 상대가 안 되어 죽는 한이 있어도 대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목숨을 다해 덤비자.”

강태웅은 더 이상 겁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우들도 모두 무기를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우리도 대형과 같이 죽자!”

흑혈신마는 강태웅과 아우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십 년을 무림을 횡행했지만 자신을 보면 누구나 벌벌 떨었다. 그런데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버러지만도 못한 무공도 약한 놈들이 덤비는 꼴이 우습기만 했다.

‘에이 씨! 이대로 죽은 척하면 그냥 돌아갈 텐데. 저놈들은 왜 저렇게 흥분들을 하는 거야?’

흑혈신마의 두 방은 정말 아팠다. 척지경보다 열 배는 더 아픈 것 같았다. 유성탄은 땅속으로 박히자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죽은 척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를 부러뜨린 것은 자신이었으니 아우들은 그냥 놔두고 갈 줄 안 것이다. 하지만 흑혈신마를 그는 너무 몰랐다. 어차피 아우들을 살려줄 흑혈신마가 아니었다.

그런데 유성탄의 귀에 강태웅과 아우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상하게 유성탄은 그 소리에 가슴이 찡해오는 것 같았다. 그냥 두었다가는 아우들이 다 죽게 생겼는데 계속 죽은 척할 수는 없었다.

“귀신같은 늙은이가 엄청 세네!”

흑혈신마는 강태웅과 아우들을 단숨에 죽이려고 하다가는 뒤에서 뭔가 일어나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가 유성탄의 목소리에 눈이 동그래졌다.

“이 늙은이야! 내가 유성탄 대형이다. 이 정도에 죽으면 내가 유성탄이 아니다!”

흑혈신마의 눈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에이 씨! 무슨 놈의 늙은이가 눈이 저렇게 무서운 거야? 내가 저놈들이 기연이니 뭐니 할 때부터 재수 없을지 알았어. 에이 씨!’

하지만 유성탄은 자신에게 아우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놈이……!’

흑혈신마는 싸우면 싸울수록 놀라고 있었다. 유성탄의 몸놀림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고 어쩌다 한 번씩 흑혈신마의 장에 부딪치는 유성탄의 주먹은 보기 드물게 강력했다. 물론 유성탄의 주먹이 흑혈신마에게 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흑혈신마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놈의 늙은이 주먹이 왜 이렇게 맵냐? 한 대 맞을 때마다 머리까지 흔들리는 것 같네.’

흑혈신마의 장과 권은 계속적으로 유성탄의 몸을 가격했다. 하지만 유성탄도 이제는 그냥 날아갈 수는 없었다. 억지로 고통을 참아가며 유성탄은 점점 흑혈신마의 공격을 받아내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었다.

‘이놈이 무공을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무슨 신공이기에 나의 장을 밀어내는 거지?’

흑혈신마는 자신의 장이 유성탄의 몸을 가격할 때마다 이상한 반탄력이 자신의 장을 밀어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다 흑혈신마의 흑혈장에는 인독(人毒)이라는 보기 드문 극독이 함유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간한 고수도 흑혈장을 직접 상대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유성탄은 독에도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강태웅과 아우들은 흑혈신마와 싸우는 유성탄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흑혈신마가 누구인가… 천하에서 감히 그 앞에서 말대꾸라도 할 만한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강태웅 형님! 대형 몸놀림 좀 보십시오. 세상에 저렇게 빠를 수가 있나요? 분명 사용하는 것은 제가 가르쳐준 오행보인데요.”

표도행은 칠웅 중 가장 빨랐다. 특히 그의 오행보는 강호의 일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삼류보법도 아니었다. 그래서 표도행이 가장 자랑하는 절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오행보에 저런 빠르기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흑혈신마의 공격을 다 피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너무 대단했다.

“육합권은 어떻고? 세상에 육합권을 저렇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철패도 자신이 가르쳐준 육합권에 저런 위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육합권이 아니다. 도저히 인간의 육체로는 움직일 수 없는 방향으로 권이 움직인다. 육합권을 기본으로 하기는 했지만 육합권이 아니다.”

강태웅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나름대로 분석을 하고 있었다.

무려 한 시진이 지났다. 흑혈신마와 유성탄이 나눈 초수는 이미 이백여 초가 넘고 있었다. 천하에 흑혈신마의 이백 초를 받아낸 고수가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그리고 유성탄이 흑혈신마에게 맞은 주먹과 장은 무려 팔십여 번은 되었다. 땅에 박아도 완전히 허리를 꺾어버려도 오뚝이같이 발딱 일어나서 다시 죽어라 하고 덤비는 유성탄에게 천하에서 가장 잔인하고 독해서 천하인이 다 피한다는 흑혈신마도 질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뭔 망신이냐? 이 흑혈신마가 저런 놈을 아직까지 작살내지 못하고.’

하지만 온몸을 샅샅이 두들겨 팼지만 약점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 도대체 무슨 무공을 익혔기에 죽지를 않는 거야! 조문이 없는 외공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 늙은이 한 대만 제대로 걸려라! 턱을 돌려버릴 테니까!”

줄곧 맞으면서 유성탄의 입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흑혈신마는 유성탄의 목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졌다.

“진짜 시끄러운 놈이구나. 오늘 완전히 곤죽을 만들어놔야 하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오늘은 내가 이만 가겠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걸리면 그때는 아예 목을 뽑아버릴 것이니 다음에는 내 이름만 들려도 십리 밖으로 도망가거라!”

말을 마친 흑혈신마는 유성탄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더니 훌쩍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뒤로 유성탄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혈신마가 싸우던 상대를 죽이지 않고 놔두고 갔다. 흑혈신마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늙은이! 내가 마질대형 유성탄이다. 다음에 만나면 내 필히 니 턱을 부셔놓을 거야!”

“오늘 꿈을 꾼 것 같습니다.”

마동파도 흑혈신마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다. 솔직히 자신들이 그를 만나고 살아났다는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유성탄은 무려 이백 초가 넘게 싸운 것이다.

유성탄은 흑혈신마가 떠나자마자 그대로 기절했다.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사력을 다해 버틴 것이다. 지룡봉의 기연은 유성탄을 거의 불사조로 만들었지만 흑혈신마는 너무 강했다.

“강태웅 형님! 대형이 이상합니다.”

철패의 말에 모두 놀라 누워 있는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유성탄의 몸이 이상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몸에서 이상한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유성탄의 몸속에서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았다.

“저게 뭐지요? 마치 뱀이 몸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요?”

황대산이 꿈틀대는 유성탄의 피부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대산 형님! 손대지 마세요!”

표도행의 갑작스런 외침에 황대산의 손이 급히 돌아왔다.

“왜 그래? 놀라게…….”

“대형 몸이 좀 이상한데 괜히 손 대셨다가 큰일 나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저거 봐요!”

유성탄의 몸을 계속 보고 있던 마동파가 소리쳤다. 유성탄의 몸이 완전히 비비 꼬이더니 온몸에서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계속 들린 것이다.

“아이구! 우리 대형 이러다가 죽으시겠네! 태웅 형님, 뭔가 손 좀 써보세요!”

마동파가 호들갑스럽게 소리쳤지만 강태웅이라고 처음 보는 현상에 무슨 뾰쪽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성탄의 몸은 풀렸다가 다시 꼬이고 풀렸다가 다시 꼬이고 하며 계속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건드리지 마세요!”

이미 떠난 줄 알았던 하후란이 나타나 소리쳤다. 뒤에는 귀면호리 마효춘이 따르고 있었다.

“아니! 마 영감이 여기는 어떻게……?”

강태웅은 하후란과 마효춘을 번갈아 보며 경계하는 말투로 물었다.

“지금 유성탄 대형께서는 뭔가 몸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 유성탄 대형께서는 알지 못할 기연을 만났던 것 같아요. 저분의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몸이 그걸 증명하는 것이지요.”

하후란은 강태웅의 경계하는 말에는 대답 없이 유성탄에 대한 말만 했다.

“그렇다면 대형의 몸에 이상은 없겠소?”

유성탄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애를 태우기는 강태웅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후란이 뭔가를 아는 척하니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하는 강태웅이었다.

유성탄은 충동이라는 공간에서 그를 계속 괴롭히는 벌레들과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 그리고 부족한 산소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벌레는 잠시만 쉬면 그의 몸을 간지럽히고 따갑게 하며 그를 괴롭혔다. 결국 그는 벌레들이 몸에 달라붙지 못하도록 계속 움직이거나 뛰어야 했다.

그런데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지열은 계속 뛰는 그에게는 또 다른 괴로움이었다. 하루에 그가 흘리는 땀은 실로 대단한 양이었던 것이다. 계속 뛰니 언제나 배가 고팠고 땀을 흘리니 언제나 목이 말랐다. 그리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유성탄은 잠시도 쉬지 않고 벌레를 먹어야 했다.

거기에 부족한 공기를 보충하기 위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전호흡을 해야 했다. 숨과 숨 사이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길어졌고 폐활량도 엄청 커져 있었다.

달마대사가 심법이라는 것을 처음 만든 것은 언제나 참선을 하는 중들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내공을 기르는 심법이나 신공의 기초는 바로 단전호흡이었고 긴 숨이었다. 숨과 숨 사이가 길수록 내공은 강해졌다. 물론 무조건 단전호흡만 하고 숨만 길어진다고 내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알맞은 수련과 섭생도 중요했다.

그런데 벌레들은 가장 좋은 기초음식이었고 계속적인 뜀박질과 지열에 의한 혈액의 끊임없는 순환은 그에게 선천적인 강기를 터무니없게 올려주었다.

선천강기란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내공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힘은 수련해서 얻은 내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유성탄은 수련으로는 늘릴 수 없다는 선천강기를 온몸에 가득 채운 것이다.

아마 유성탄의 수련법을 무림인들이 알게 된다면 자신들도 선청강기를 늘리기 위해 충동에 스스로 들어가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막상 유성탄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거기다 벌레들이 자신을 보자 경배했다고 뻥을 치는 유성탄에게서 누구도 정확한 수련방법을 알 수는 없었다.

문제는 지룡봉의 기연이 없었다면 선천강기를 온몸에 가득 채우기 전에 이미 유성탄은 충동에서 죽었을 것이었다. 인간의 몸이 담을 수 있는 선천강기는 그 한계가 있었다. 끝없이 늘어나는 선천강기는 아마 유성탄의 심장과 단전 그리고 모든 혈맥을 터트려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룡봉의 기연은 유성탄의 몸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온몸의 조직이 상상할 수도 없는 탄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 끝없이 늘어나는 선천강기까지도 그의 몸을 부수지는 못했다.

무림인들이 말하는 내공은 전혀 갖지 못했기에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가 가진 선천강기를 내공의 경지로 말한다면 천하에 유성탄과 견줄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담은 선천강기는 탄력 있는 그의 조직에 갇혀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내공심법을 몰라 만들기만 했지 사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온몸에 포화된 힘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흑혈신마의 공격이 그것을 뚫어준 것이었다.

꼭 갇혀 있던 선천강기는 구멍 뚫린 둑을 빠져나오는 강한 물줄기처럼 그의 온몸을 시원하게 돌기 시작했다. 어차피 모든 혈맥이 커다랗게 닦여 있던 유성탄이었으니 거침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 유성탄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무림인들이 말하는 탈퇴환골과 비슷한 현상이었지만 그것과는 완연히 다른 것이기도 했다. 온몸의 조직이 완전히 달라진 그에게 탈태환골은 일어날 수 없었지만 그가 가진 힘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 * *

“엄마!”

“다 큰 계집애가 엄마가 뭐냐? 이제 좀 조신하게 어머니 해봐라.”

“엄마는 괜히…….”

유성화는 엄마 강추화를 불렀다가는 본전도 못 찾자 입을 삐쭉 내밀고는 나가려 했다.

“불렀으면 얘기를 해야지!”

나가는 유성화를 강추화가 부르자 다시 돌아선 유성화가 물었다.

“엄마, 아주 잘생기고… 아주 멋있고… 돈도 무지 많고… 집안도 굉장히 좋은 공자가 나보고 좋다고 하는데 어떡할까?”

강추화는 유성화의 말을 듣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꿀밤을 한 대 먹였다.

“말만 한 계집애가 요리나 배우면서 시집갈 준비나 하라니까 그따위 꿈같은 공상이나 하고! 그런 공상 할 시간 있으면 오빠 옷이라도 하나 꿰매라!”

“아야! 씨… 엄마는 괜히……!”

머리를 어루만지면 유성화는 선머슴애같이 뛰어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애 성화야, 곧 저녁 먹어야 하는데 어디 나가?”

강추화가 펄쩍펄쩍 사슴같이 뛰어나가는 유성화를 급히 불렀지만 그녀는 이미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에그! 계집애가 하는 행동이 어찌 지 큰오빠를 꼭 닮았을꼬…….”

밥을 푸며 갑자기 유성탄 생각이 난 강추화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에그머니나! 눈물이 밥에 들어갔네.”

급히 눈물을 닦았지만 이미 한 방울 떨어진 눈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눈물은 누가 먹게 될까?

“여기 숨어서 뭐 해요?”

유성화는 자신과 만나기로 한 좌소백이 나무 뒤에 숨어 있자 다가가서는 물었다.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내가 좋아 죽겠다면서 무슨 오해를 한다고 그래요?”

“좋은 거 하고 오해하는 거하고는 다르잖아.”

유성화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아무래도 좌 공자님 말하는 게 수상해요. 혹시 저를 우습게보고 가지고 놀다가 헌신짝 버리듯 버릴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정신 차리세요. 제 아버지가 한주현의 포장이라는 것 아시죠? 만약 그럴 생각을 했다가 아버지 아시면 뼈도 못 추려요.”

좌소백은 감숙성 최고의 무관의 관주의 아들이었다. 재산은 물론 감숙성에서 손꼽을 정도로 부자였고 그 형제와 친척 중에 고관이나 높은 무관도 많았다. 한마디로 시골 구석인 한주현의 힘없는 포장 정도를 겁낼 그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성화는 아버지 유정삼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고 아버지를 누구나 다 무서워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성화가 미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주현, 특히 유성화가 사는 마을에서 유정삼은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비록 포장치고는 포쾌만 한 힘도 없는 그였지만 마을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누구나 유정삼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고 유정삼은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곤 했다. 그 덕에 죄 없이 관에 잡혀가거나 하는 사람들을 많이 빼준 것이 유정삼이었다.

그러니 그 속에서 자란 유성화에게는 유정삼만큼 대단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죄소백에게는 웃기는 말일 뿐이었다. 이미 유성화를 유혹할 때 그 집안까지 알아본 그였다. 당연히 유정삼은 자기가 총관에게 한마디만 해도 포청에서 당장 쫓겨나거나 그냥 손으로 목을 그으면 그 다음날 시체로 발견되게 할 수도 있는 그런 자에 불과했다.

“내가 화 매를 얼마나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제도 나 한숨도 못 잤어. 밤새 화 매만 생각했다니까!”

유성화는 좌소백의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불쌍한 남자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물론 좌소백은 유성화와 혼인할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아무 끗발도 없는 유성화 정도는 얼마든지 가지고 놀다가 처리할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여기 한주현 유씨 집안이 끗발이 없다고 생각하는 불쌍한 인생이 또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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