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도박장
“그러니까… 왜 말을 타야 하냐고?”
“천하가 얼마나 넓은 줄 아십니까? 걸어서는 못 다닙니다.”
“걸어서 왜 다녀! 뛰어서 다니면 된다.”
유성탄은 말을 탈 줄 몰랐다. 물론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유성탄에게 체면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니까. 그런데 말 값이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유성탄은 성한 다리를 놔두고 저 비싼 말을 타고 간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너희들이 만날 그렇게 편한 것만 찾아다니니까 그렇게 약한 거야! 이제부터 우리는 뛰어다니는 칠웅이다. 너희들이 말보다 더 빨라질 때까지 우리는 뛴다!”
유성탄은 소리쳐 놓고는 자신이 말을 무척 잘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아우들의 얼굴은 똥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저거 뭐 하는 짓이에요?”
“미친놈을 대형으로 삼더니 모두 미쳐가는 모양입니다.”
마차를 타고는 유성탄 일행을 보고 있던 하후란은 그들이 마시장에서 말을 사다 말고는 갑자기 뛰기 시작하자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설마 진짜 뛰어가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요?”
“진짜 뛰어갈 것 같은데요.”
고을을 벗어나고서도 두 시진 가까이를 쫓아가던 하후란이 답답한 듯이 묻자, 말을 몰던 마효춘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따라갔지만 갈수록 속도가 떨어지는 그들 때문에 마차까지 굼벵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지금 가는 방향이 북서쪽이에요. 그리고 이 길이 관도고 하니 어디로 방향을 잡았는지 알 것 같아요. 우선 먼저 가서 기다리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마효춘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편하게 기어가던 말이 화들짝 놀라며 뛰기 시작했다.
“푸푸! 저것들이 먼지란 먼지는 다 내고 가네.”
아우들을 재촉하며 달려가던 유성탄은 마차 하나가 달려가며 먼지를 내자 마차를 보며 소리쳤다.
“오고 있나요?”
관도를 따라 만난 첫 번째 객잔에 든 하후란은 마효춘에게 유성탄 일행이 오는지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 안 옵니다. 그런데 아가씨께서 유성탄 그놈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 척지경을 죽일 때 얘기 들으셨어요?”
“들었습니다. 무수히 맞았다고 하더군요.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본 관점은 달랐어요. 척지경은 무림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대단한 고수였어요. 그런 자에게 그렇게 맞고도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맞았다는 것만 생각하는 듯한데 저는 살았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네요. 제 짐작이 맞다면 유성탄 그자에게 분명 뭔가 있어요.”
마효춘은 하후란의 말을 들으며 솔직히 동의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후란은 문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천재였다. 그런 그녀의 말에 토를 달기는 힘들었다.
“옵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창밖을 보던 마효춘이 갑자기 말했다. 유성탄과 그 아우들이 나타난 것이다. 모두 기진맥진한 모습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유성탄만은 전혀 끄떡없었다.
“대형, 좀 쉬어 갑시다.”
덩치 큰 황대산이 못 참고 말하자 유성탄은 객잔을 슬쩍 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솔직히 아직은 쉬면 안 되지만 첫날이니 봐준다.”
자기가 배고파서 쉰다고는 말하지 않는 유성탄이었다.
“대형, 계속 이런 식으로 다닌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대형께서 어떻게 수련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저희들에게 너무 힘든 수련방식입니다.”
음식을 시킨 모두는 아귀같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태웅이 유성탄에게 말했다.
“밥 먹을 때는 그냥 먹기만 하자. 골치 아픈 얘기는 이따가 하고.”
유성탄은 입에 음식을 가득 넣고는 강태웅의 말을 귀로 흘려들으며 대답했다.
“대형의 말씀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수련을 하기에는 저희들의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식사를 다 끝낸 낭인칠웅은 의논을 시작했다. 우선 강태웅은 지금 이런 식으로 뛰어서 천하를 다닌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야, 강태웅, 너는 무공이 특별한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무공이란 결국은 강건한 체력이 뒷받침되면 강해진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시키는 수련을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내가 대형이거든. 대형 말을 안 들으려면 지금이라도 떠나라.”
생각지도 않게 청산유수같이 말하며 거기다가 협박까지 하는 유성탄을 보며 모두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
“계속 뛰어다닐 모양이네요.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유람이나 하면서 천천히 목적지로 가야겠어요.”
낭인칠웅이 하는 말을 다 엿들은 하후란이 마효춘에게 말했다.
“마차로 저들이 뛰는 것을 쫓아가기는 힘듭니다.”
“호호호! 저들이 가는 곳을 아는데 굳이 쫓아갈 이유가 무엇이 있겠어요? 우리가 먼저 가서 기다릴 거예요.”
“아이구! 노숙하게 생겼습니다.”
마동파가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관도를 따라 가던 유성탄은 강태웅이 따지고 나서자 심술이 났는지 산속으로 길을 변경했다. 물론 모두는 더한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길까지 잃고 만 것이다. 결국 한밤이 되도록 길을 못 찾은 그들은 노숙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야! 전부 다 이리 와 봐라.”
대충 잠자리를 준비하자 유성탄이 모두를 불렀다.
“내가 보니까 너희들 너무 약해. 그래서 체력단련과 함께 매일 나랑 비무를 병행한다. 대신 너희들이 아는 무공을 하나씩 내게 가르쳐줘라. 가만 보니까 무공을 배우면 좀더 쉬워질 것 같더라.”
유성탄은 아직 치기를 버리지를 못하고 어린애 같은 행동을 이따금 하기는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싸움을 하기 싫어도 싸움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은데 무공을 아는 게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 낸 것이 아우들에게 무공을 배우는 것이었다. 혈문에서 어릴 적 배웠던 기초무공들은 이미 다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무공을 안다고 큰소리쳤지만 자신이 뻥이 이미 뽀록 난 지 오래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대형, 우리가 아는 무공은 거의 삼류무공들뿐입니다. 도움이 별로 안 될 겁니다. 그것보다는 무림문파를 찾아가서 정식으로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빨리 지도에 그려진 장소를 찾아 기연을 만나던가요.”
표도행이 자신들의 무공은 배워야 소용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곳에 가서 배우려면 사부를 모셔야 한다며?”
“당연히 사부를 모셔야지요.”
“난 그런 거 싫다. 내가 왜 이 나이에 남들 밑으로 들어가서 머슴 노릇을 하며 무공을 배운단 말이냐? 그냥 너희들에게나 무공을 배울란다.”
결국 표도행부터 무공을 가르치기로 했다. 당연히 심법 같은 것은 없었고 면검을 사용하는 검법 위주로 공부가 시작되었다.
“면검은 검이 넓고 아주 얇습니다. 대신 검 중에서는 가장 가볍습니다. 그래서 저같이 내공이 약한 사람이 익히기에는 최적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많아서 무공의 주류에는 못 들고 방문외도에 들어가는 무공이지요.”
말을 마친 표도행은 면검을 공중에서 몇 번 휘둘렀다. 그러자 휘익 하는 소리가 싸아 하게 들렸다. 소리만으로 끔찍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밖에 아는 게 없냐?”
“그리고 암기술을 조금 압니다.”
“그럼 암기술이나 말해 봐라. 그 면검법이라는 것은 나한테는 안 맞는 것 같다. 내가 면도사도 아니고 어떻게 대형이 되어가지고 면도칼 가지고 싸우겠냐?”
“면도칼이 아니고 면검입니다.”
“그게 그거지 뭐! 하여간 난 싫다.”
“아니 대형 그걸 맞추신 겁니까?”
암기술을 배운던 유성탄은 배운 지 삼 각도 안 되어 뭐든 던지기만 하면 백발백중 맞추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아우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암기술은 보기보다 상당히 어려운 기술로 연습이 엄청 필요한 무공이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원하는 표적을 그대로 맞추는 유성탄이었다.
“내가 눈이 엄청 좋거든. 거기다 충동에서 무지 빨리 나는 벌레가 있었다. 그래서 심심해서 돌을 가지고 벌레 맞추는 연습을 많이 했었다. 암기술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인 줄 알았는데 돌 던지기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암기술도 무공입니다. 당가의 암기술은 하늘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표 동생의 암기술이 약해서 그런 겁니다. 암기술이라고 앝보시면 안 됩니다.”
강태웅은 유성탄이 자신들의 무공을 기준으로 보고 무공이라는 것을 우습게볼까 걱정이 된 듯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말로 달렸으면 열흘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절강성이었지만 산속만 헤매고 다니면서 체력단련과 무공을 익히며 가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 한 달 동안 아우들은 자신들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지옥이 따로 없다 할 정도로 유성탄은 그들을 괴롭혔고 쉴 때면 비무를 해야 했다. 특히 유성탄은 다칠 염려가 없으니 그들은 비무를 실전에 버금갈 정도로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모두는 유성탄에 대해 완전히 넋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대형은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유성탄은 시간만 나면 잠을 잤다. 지금도 잠시 쉬자 바위 위에 드러눕더니 금세 잠에 빠져버렸다.
“대형의 몸은 아무래도 인간의 육체가 아니다. 나 장우왕이 느려서 그렇지 맞추기만 하면 부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대형의 몸은 내 도끼에 정확히 맞아도 끄떡도 안 한다. 요새는 도끼가 몸에 닿는 순간 튕겨나가는 느낌을 확실하게 느낀다.”
“무공을 배우는 속도는 어떻고요! 세상에 육합권으로 저런 위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를 않습니다.”
황대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자 철패 역시 감탄의 목소리로 말했다.
“제 도법이 그리 절기도 아니고 도도 그냥 대장간에서 산 싸구려 도인데 그 도로 바위를 잘랐습니다. 내공 없이 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내가 대형의 맥을 짚어보았다. 분명 어떤 신공도 배우지 않으셨다는 분이 엄청나게 큰 단전을 가지고 계셨다. 나로서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천하제일의 대형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대형은 자신의 능력을 모르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허접한 무공으로 배우고도 예전보다 열 배 이상 강해지셨다. 저분이 진짜 무공을 익힌다면 어디까지 강해지실지 나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내공을 기르는 심법은 몸에 생긴 기운으로 혈맥을 넓혀 진기가 원활하게 움직이게 해주는 무공이었다. 어느 정도가 지나면 진기를 몸에 간직할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진기를 담는 그릇을 단전이라고 한다.
유성탄은 한 번도 심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충동에서 그 오랜 시간 동안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뛰어다녔다. 거기다 공기 희박한 곳에서 지내다 보니 폐활량도 커졌지만 호흡을 길게 하는 버릇이 저절로 붙었다. 자신도 모르게 하루 종일 단전호흡을 한 것이다.
누구에게 가르칠 수도 없고 자신도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유성탄은 자연이 저절로 가르쳐준 심법을 익힌 것이다. 아직 진기를 스스로 담지 않아서 그렇지 그의 단전의 크기는 진기를 담기만 하면 수 갑자를 금방 상회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런데 요새 제가 느끼기에도 상당히 강해진 것 같습니다.”
“당연하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대형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비무를 매일 하고, 매일 뛰고 기고, 정말 이런 식의 수련이 효과가 이리 좋은 줄은 몰랐다. 대형이 진짜 이런 식의 수련을 오랜 시간 하셨다면 저리 강하게 된 것도 이유가 맞는 듯싶다.”
강태웅도 인정한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훈련을 한다면 견디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황대산의 말에 모두 동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것들이 좀 풀어줬더니 꾀나 부릴 생각이나 하고. 이제부터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겠구나.”
유성탄이 언제 일어났는지 몸을 일으키며 지옥의 사자같이 말했다.
“이야~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항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유성탄 일행은 소호라는 곳에 들렀다. 유성탄이 그동안 보았던 고을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커다란 소호의 광경에 유성탄의 고개는 잠시도 쉬지를 못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여자마다 다 예뻐 보였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냄새들은 전부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있었다.
“여기가 소호라는 곳으로 유명한 환락의 도시입니다. 특히 도박장과 기루는 아주 유명합니다.”
“환락의 도시? 그게 뭐냐?”
“말 그대로 환락이 넘치는 도시라는 거지요!”
“뭘 환락이라고 하는데?”
유성탄은 환락이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계속 환락에 대해서만 묻는다.
“돈과 여자가 철철 넘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손을 뻗으면 여자가 잡히고 발로 차면 돈이 걸리고…….”
“그런데 난 왜 손을 뻗었는데 여자가 안 잡히냐?”
유성탄이 손을 쭉 뻗으며 말했다.
“대형하고는 정말 말이 안 통합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그게 진짜로 뻗는다고 잡히는 게 어디 있습니까?”
“죽을래?”
“이 정도면 부자들도 많겠구나?”
“당연하지요. 지나가던 개도 금자를 물고 다닌다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흐흐흐! 심봤다!’
유성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드디어 갈고 닦은 야바위 실력을 마음껏 펼칠 곳을 발견한 것이다.
‘귀찮은 애들부터 떼어놔야겠는데…….’
유성탄은 강태웅에게 말했다.
“야, 강태웅! 오늘은 휴식시간을 줄 테니 마음껏 쉬면서 놀아라. 나도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우선 쉴 곳은 정하고 놀든지 해야지 않겠습니까?”
“저기로 하자. 그럼 이따 저기서 보자.”
유성탄은 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화려한 객잔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만화원!
유성탄이 가리킨 곳은 객잔이 아니었다. 하지만 잡힐까 싶어 쏜살같이 사라지는 유성탄을 강태웅은 잡을 생각이 없었다.
“대형께서 뭐가 저렇게 급하실까요?”
철패가 사라지는 유성탄을 보며 묻자 모두 철패를 쳐다보았다.
“야, 철패! 너 미련한 것을 알고 있었다만 아무리 이것도 눈치를 못 채냐? 대형 지금 돈 벌러 가신 것 아니냐!”
“태웅아, 여기 흑도는 그냥 흑도가 아니다. 사파라고 봐야 한다. 이런 곳에서 시비가 붙으면 아주 일이 커질 수 있다.”
서열은 강태웅의 밑이 됐지만 강태웅과는 거의 친구로 지내는 장우왕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대형을 믿자. 유성탄 대형의 신화가 소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하하! 우리는 술이나 먹자!”
강태웅은 뭐가 좋은지 파안대소를 터트리더니 아우들을 이끌고 만화원으로 들어갔다.
* * *
“저 새끼 뭐냐?”
전대삼은 웬 키만 훌쩍 큰 말라깽이가 가게 근처에 좌판을 펴 놓고 호객하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얼굴을 사선으로 지나가는 칼자국이 살벌한 전대삼은 소호를 장악하고 있는 흑도문인 흑사파의 중간 두목이었다.
“모르겠습니다. 한번 알아볼까요?”
“그래, 알아봐라.”
“야바위꾼인데요.”
가게의 그저 종업원인 도이는 후다닥 뛰어갔다 오더니 보고했다.
“야바위? 이런 천하에 진짜 야바위 같은 놈이 있나! 감히 흑사파에서 직영하는 도박장 앞에서 야바위 판을 벌여? 저거 미친놈 아니냐?”
유성탄이 고르고 골라 판을 벌인 곳이 설마하니 도박장 앞일 줄은 유성탄도 전혀 몰랐다.
그리고 도박장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운이나 한 번 보려고 하는 사람들로 제법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역시 노는 물이 다르구먼. 매일 이러면 돈 좀 벌겠구나. 기연이고 뭐고 아예 여기에 뿌리를 내려? 에이, 안 되지. 참 아버지하고 엄마를 찾아야 하는데…….’
하지만 도박장 앞에 야바위 판을 벌이는 간 큰 유성탄을 도박장에서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돈 놓고 돈 먹기! 맞히면 두 배! 기분 좋으면 세 배도 줍니다. 아저씨, 이리 와서 해봐요.”
전대삼과 그 똘마니 세 명이 나타났지만 유성탄은 아직 상황판단이 안 되었는지 전대삼에게까지 돈을 걸라고 꼬드기고 있었다.
“기분 좋으면 세 배도 준다 이 말이지. 흥! 가운데를 거마!”
“돈을 거셔야지요. 돈 안 거시면 안 됩니다.”
“금자 열 냥을 거마. 됐냐!”
“금자 열 냥이요! 헤헤헤, 좋습니다.”
돈은 걸지도 않고 입으로만 말하는 전대삼이었지만 유성탄은 상관없었다. 돈을 건 이상 자신의 돈을 떼어먹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의 사나이가 유성탄이었다.
그리고 가운데 표가 열렸고 당연히 꽝이었다.
“아이구, 손님. 오늘 조금 재수가 없으시군요. 금자 열 냥 되겠습니다.”
전대삼은 유성탄의 말을 듣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데리고 온 똘마니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 세상에 느려도 이렇게 느린 놈은 처음 본다. 어떻게 상황판단을 이렇게 못 하냐?”
“하하하!”
똘마니들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나왔다.
“금자 열 냥 되겠습니다.”
유성탄이라고 눈치가 없을 리 없었다. 목소리에 살기가 들어갔다.
“이 새끼야! 옛다! 금자 열 냥이다.”
전대삼은 말과 함께 그대로 유성탄의 턱을 주먹으로 쳤다. 그리고 그 주먹은 정통으로 유성탄의 턱에 작렬했다.
“고객을 위하는 정성으로 한 대는 맞아줬습니다. 금자 열 냥입니다.”
전대삼은 자신의 주먹에 정통으로 맞고도 끄떡없는 유성탄을 보고는 자신의 주먹을 한 번 들어 쳐다보았다.
‘이상하군. 어제 내가 힘을 너무 뺐나?’
속으로 중얼거린 전대삼의 주먹이 다시 유성탄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옆의 똘마니 하나가 유성탄의 야바위 판을 발로 찼다. 그리고 유성탄의 꼭지가 돌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이미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유성탄에게 흑도의 졸개들이 당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엄청 두들겨 맞은 전대삼과 그 부하 세 명은 무릎을 꿇은 채 야바위 판 옆에 앉아 있었다. 코에는 코피가 눈에는 커다란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다.
“금자 열 냥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평생 나한테 맞아야 한다.”
말을 마친 유성탄의 주먹이 전대삼의 머리통을 그대로 한 대 쳤다. 그리고 다시 긴 비명소리가 저잣거리를 울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도박장에서는 이십여 명의 덩치들이 손에 갖가지 무기를 들고는 뛰어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차례로 코에 피를 줄줄 흘리며 전대삼의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 돈 놓고 돈 먹기! 오세요!”
유성탄이 다시 크게 외쳤지만 덩치들 수십이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곳에 가서 야바위 패에 돈을 걸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두 시진이 흘렀다. 무릎을 꿇고 있는 놈들의 수는 오십여 명으로 늘었지만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전부 다 더 때려서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금자 열 냥을 받아야 보낼 수 있다는 유성탄의 생각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야바위꾼한테 우리 아이들이 오십 명이나 가서 깨져! 거기다 길가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고? 이놈들이 흑사파의 명예에 똥칠을 해도 분수가 있지… 오십 명이나 되는 놈이 그래 도망도 못 치고 모두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
“어찌나 집요하고 눈치가 빠른지 한 놈도 도망을 칠 수가 없답니다. 아무래도 진짜 야바위꾼이 아니라 무림고수가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림고수가 왜?”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미친놈! 우리 흑사파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무림인이 누가 있냐? 전쟁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시비를 걸 무림인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흑의단원에게 얘기해라. 꼴상을 보니 우리 힘으로 이기기는 힘들 것 같다.”
“알겠습니다.”
“야, 이 자식아! 세상에 벼룩의 간을 떼어먹을 놈, 어떻게 불쌍한 야바위꾼의 돈을 떼어먹으려고 그러냐 앙!”
말과 함께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전대삼의 배를 쳤다.
“아아악! 제가 무슨 돈을 떼어먹었다고 그러십니까?”
전대삼은 유성탄의 주먹이 너무 무서웠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뼈까지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전대삼은 울부짖었다. 언제 내가 돈을 떼어먹었느냐고…….
“이 자식아! 네가 금자 열 냥 갔잖아. 남자새끼가 돈을 걸어 잃었으면 남자답게 시원하게 줘야지 계집애같이 이러면 되겠냐?”
자기가 한 짓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듯한 유성탄이었다.
“그거야… 으악!”
뭔가 변명을 하려 했지만 다시 날아온 주먹에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는 전대삼이었다.
“뭐야 이건 또?”
고꾸라진 전대삼의 몸 위로 검은 그림자 여러 개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유성탄이 쳐다보니 온통 검은색으로 온몸을 휘감은 장한 다섯이 서 있었다. 모두 같은 흑의에 머리에는 검은 띠를 묶은 그들의 등에는 검이 꽂혀 있었다. 척 보기에도 보통 실력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놈이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이유를 알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시다.”
가운데 서 있던 장한의 입에서 억양에 변화가 없는 메마른 소리가 나왔다.
‘어쭈! 목소리를 까시겠다? 이게 누구를 양아치로 아나 그런 거에 겁먹게.’
“그분이라는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싶으면 직접 오라고 해라. 난 지금 장사가 안 돼서 아주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 앞에서 무게 잡지 마라!”
“말이 안 통하는 놈이군. 말이 안 통하면 통하게 해줘야겠지.”
장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 서 있던 네 명의 장한이 어느새 검을 빼 들고는 유성탄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식의 연수가 한두 번이 아닌 듯 공격의 범위가 아주 간결하면서도 빠질 곳이 없이 완벽했다. 막는다면 모르지만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 빨랐다.
그러나 유성탄의 눈에는 아주 느렸다. 충동에서 물리면 유난히 아픈 벌레가 있었다. 너무 빨라서 그가 박쥐라고 이름을 붙여준 그 벌레의 속도는 정말 빨랐었다. 그런 박쥐의 공격도 마음대로 피하던 유성탄에게 그들의 검이 느려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 자식들이! 무게 잡지 말라니까!”
보법도 아니면서 신기하게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네 개의 검을 피한 유성탄의 주먹이 순식간에 그들의 몸에 작렬했다. 막주먹이다 보니 그냥 아무데나 맞았다. 그러나 상당한 고수로 보이던 장한들도 단 한 대에 전부 공중을 날아가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당연히 전대삼을 비롯한 무릎을 꿇고 있던 덩치들로서는 자신들이 완전히 잘못 건드렸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너 이리 와!”
네 명의 장한을 순식간에 보내버린 유성탄은 처음 말을 건 장한을 쳐다보며 손짓을 하며 불렀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러는지는 모르지만 흑사파는 네놈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조직이다. 분명 후회할 것이다.”
장한은 소리를 외침과 동시에 역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뭐라고 그러는 거야? 금자 열 냥만 줘봐. 그냥 돌아갈 테니까. 나도 이러는 거 피곤한 사람이다.”
장한의 무공은 역시 우두머리답게 그 중 제일 나았지만 역시 유성탄의 한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고꾸라졌다. 결국 길바닥에 있는 놈들이 다섯이 더 늘었다. 다만 다른 것은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뻗었다는 차이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흑의단 다섯이 모두 뻗었다는 말이냐? 그것도 단 일 초에?”
도박장을 책임지고 있는 동후상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흑사파는 흑도의 왈짜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겉으로 나타난 것과는 달리 상당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흑의단과 혈의단은 흑사파의 최고 무인들이었다. 그런 흑의단과 혈의단의 단원은 모두 합쳐 겨우 백여 명, 흑사파가 맡고 있는 구역으로 보면 많지 않은 숫자였다. 그중 도박장은 그런대로 중요성을 인정받아 다섯 명의 흑의단과 한 명의 혈의단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섯 명이 한 방에 갔다고 하니 동후상으로서는 기겁을 하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혈의단원을 불러라.”
“이미 연락이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흑의단 다섯 명을 일초에 작살냈다면 혈의단원이 온다 해도 이기기 힘듭니다.”
“그걸 아는 놈이 뭘 꾸물거리는 거냐? 빨리 본부에 연락해라. 아무래도 강적이 나타난 것 같으니 응원군을 보내달라고!”
“알겠습니다.”
“빨리 걸어! 자식아!”
장사가 안 되자 유성탄은 잡아놓은 왈패들을 모아놓고 그들을 상대로 야바위 패를 돌리고 있었다. 돈을 안 걸면 맞는다는 소리에 모두 전낭을 활짝 풀고는 돈을 걸고 있었고 그 돈은 여지없이 유성탄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부터 이럴 걸 괜히 시간만 버렸네.”
왈패들에게서 벌어들이는 돈이 생각 외로 쏠쏠하자 유성탄은 기분 좋았다.
흑사파의 본부는 도박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느 파에서 보낸 놈 같으냐?”
“현재 소호를 탐내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우리의 뒤를 봐주는 마룡방까지 우습게볼 만한 세력이라면 구룡회와 상관세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관세가는 명색이 정파로 이렇게까지 대놓고 일을 벌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구룡회가 가장 의심스럽습니다.”
흑사파의 두목 양성패의 말에 총관 예문탁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니야. 구룡회의 회주 저만우 그놈이 얼마나 여우같은 놈인데 이런 모험을 할 리가 없다. 나는 오히려 상관세가가 의심스럽다. 지금 나타난 놈도 전혀 이름이 없는 놈이고 거기다 뜬금없이 도박장 앞에서 야바위 패를 한 것도 자신들의 행동을 숨기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상관세가라면 문제가 커집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상관세가에서 직접 소호를 맡아 운영한다는 것은 어렵다. 남들 눈을 엄청 따지는 족속들이 정파거든.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위탁을 맡길 텐데. 어떤 놈들이 바람을 넣고 있을 게 분명하다.”
“두목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게 맞는 것 같기는 합니다. 어쨌든 그놈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떡할까요?”
“혈의단 열 명하고 흑의단 이십 명을 보내라. 이미 창피를 당할 대로 다 당했다. 아는 놈들은 모두 거기에 무릎 꿇고 있는 놈들이 흑사파 애들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놈을 그냥 살려 보낸다면 우리는 소호에서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마룡방에도 연락을 넣어라.”
“알겠습니다.”
‘금자 열 냥 부른 저놈만 남겨놓고 다 돌려보내?’
뒤져서 돈 나오면 동전 한 문에 한 대씩이라는 말에 모두는 비상금까지 탁탁 털어서 야바위 패에 돈을 걸었다. 물론 전부 잃었다. 돈을 다 딴 것을 안 유성탄은 슬슬 전부 다 잡고 있는 게 귀찮았다.
“야! 저놈만 남고 다 가라!”
유성탄에게 지목당한 전대삼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고 나머지는 화색이 만면해서는 급히 일어서더니 뛰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유성탄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무서웠던 것이다.
“넌 금자 열 냥 줄 때까지는 매일 나한테 백 대씩 맞으면서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
유성탄의 말에 사색이 된 전대삼은 기절하고 싶었지만 기절이란 것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짜식! 뻥인데 겁먹기는…….’
“저자의 정체가 뭘까요?”
도박장이 보이는 주루의 이층에서 아주 깨끗한 인상의 젊은이가 뜻하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신기한 장면을 보며 옆에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글쎄요… 무공의 초식을 보건대 이름난 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신기하게 강하군요. 제 생각으로는 구룡회가 지금 소호의 흑사파를 노린다는 정보가 맞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황 노의 말씀은 구룡회에서 흑사파를 흔들어보기 위해서 저런다고 보시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 봤는데 공자님 생각은 다르신가 봅니다.”
“구룡회의 회주는 아주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벌인 짓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무식한 것 같습니다.”
유성탄을 보며 조용하게 말하는 그는 무림 팔대세가의 하나인 상관세가의 이공자인 상관무청이었다.
“저놈이 누군지 알겠냐?”
구룡회의 순찰영주 임기만은 유성탄과 흑사파의 부하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흑사파를 몰아내고 자신들이 후견하는 흑도파를 소호에 심으려고 한 지 벌써 이 년째였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 마룡방의 세력이 구룡회에 전혀 손색이 없어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기가 힘들었고, 그 둘이 싸우기만을 기다리며 호시탐탐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는 상관세가가 또한 눈엣가시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흑사파보다 강한 흑도를 포섭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파의 거두인 그들이 직접 흑사파를 친다는 것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었다. 거기다 마룡방이 끼어든다면 겨우 고을 하나 먹으려다가 엄청난 전력의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마룡방을 견제하는 정도에서 흑사파를 없애줄 세력이 필요한데 그게 만만치가 않았다. 그런데 유성탄의 활약을 보니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못 보던 자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새로 나타난 조직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선을 한번 대봐라. 잘하면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소호의 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유성탄의 야바위 행각이 소호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게 도박장인데 저기가 네가 일하는 곳이다. 이 말이냐?”
전대삼은 유성탄의 구타에 도박장을 가리키며 거기에 가면 어쩌면 돈을 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대삼 정도의 지위에 있는 놈을 위해 금자 열 냥이나 내줄 흑사파가 아니었지만 너무 아픈 유성탄의 주먹을 우선 피하고 볼 생각이었다.
‘흐흐흐, 저게 마동파가 말한 돈이 굴러다닌다는 도박장이다 이 말이지. 저런 좋은 곳을 눈앞에 놔두고 내가 여기서 이런 놈들을 데리고 삽질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유성탄은 빨리 알지 못한 것이 너무 원통한지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전대삼의 뒷덜미를 질질 끌고는 도박장을 향하여 걸어갔다.
“저놈이 사전 탐색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시비를 걸려고 하는 모양이다. 장주님께 빨리 가서 보고해라. 드디어 도박장으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도박장 앞을 둘러싸고 유성탄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던 흑사파의 부하들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들로서는 유성탄을 막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안 될 수밖에 없었다.
“장주님께서 곧 본부에서 사람이 온다고 그때까지는 막지 말고 그냥 두고 보랍니다.”
안에 들어갔던 부하가 급히 뛰어나와 말하자 책임자인 듯한 장한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두 숨어라. 다시 명이 떨어질 때까지 감시만 해라.”
그리고 모두 이곳저곳으로 사라졌다.
‘저것들은 왜 저렇게 바쁜 거야? 자식들이 하는 일도 없이… 살은 뒤룩뒤룩 쪄가지고 생긴 것도 어떻게 전부 다 저렇게 흉악하게 생긴 거야?’
유성탄은 가는 곳마다 보이는 놈들이 다 인상이 더럽자 자신의 기분까지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하여간에 나같이 잘생긴 사람은 거의 없고… 세상은 불공평해.’
도박장 안은 밖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밖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전혀 상관도 안 할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유성탄은 사방에 쌓여 있는 돈을 보며 입맛부터 다셨다. 저절로 다셔지는 것이었다.
“누구한테 가면 되냐?’
전대삼은 덜덜 떠는 음성으로 애처로이 도박장의 중간에 서 있는 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잘못하면 유성탄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순간 흑사파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몰랐다.
“저기 가운데 서 계신 노인께 가면 됩니다.”
“노인장, 혹시 이놈 아십니까?”
유성탄에 대해 이미 보고를 받은 도박장의 책임자인 동후상은 역시 경험이 많은 자답게 전혀 꿀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네.”
“이놈이 나한테 금자 열 냥을 걸었는데 졌단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 돈을 떼어먹으려고 하는데 노인장이 그 돈을 대신 줄 거라고 합디다. 줄 거요, 말 거요?”
‘말도 되게 못 하는 놈이군.’
유성탄의 말로만으로는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동후상이 이미 보고를 받지 못했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었다. 동후상은 전대삼을 살기 띤 눈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내가 대신 안 주면 어찌할 건가?”
“내가 어찌할 게 뭐가 있겠소!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때려 부수는 것밖에 없소.”
동후상은 유성탄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전대삼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박장이 부서지고 손님이 다 나가면 금자 열 냥이 문제가 아니었다.
“금자 열 냥 정도라면 주겠네. 대신 더 이상 행패를 부리지 말고 조용히 나가게.”
동후상은 판단은 잘했지만 말을 잘못 했다.
‘열 냥 정도? 정도라는 말은 그까짓 것이라는 뜻이렷다. 헤헤헤, 심봤다.’
“노인장은 공부를 좀더 하셔야겠습니다. 아까까지는 열 냥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것 때문에 내가 힘쓴 게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거기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자가 붙었지요.”
‘징그러운 놈! 아주 짜증나는 놈이구나.’
동후상은 몸을 건들대며 말하는 유성탄에게서 완전 양아치의 기운을 느끼고는 상대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를 원하는 건가?”
“많이요!”
동후상의 인상이 변했다. 많이라니? 금자 열 냥에서 붙어봐야 얼마나 붙는다고 많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얼마를 원하느냔 말일세?”
“오나 가나 많이라는데 꼭 얼마냐고 물어보니… 좋소, 원하니 말해 주겠소! 금자 이백 냥이오.”
“이런 날강도 같은 놈이!”
잘 참던 동후상의 입에서 드디어 참지 못하고 욕이 나왔다. 자신들이 하는 고리대금업이 엄청 악질로 이름을 날리기는 하지만 열 냥을 몇 시진 만에 이백 냥으로 불려 받지는 못했다. 고리대금업에도 양심이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이 불렀나?’
동후상은 유성탄이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시비를 걸려고 작정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직 본문에서 보낸다는 무사들은 도착을 하지 않았다.
‘좋다, 우선은 주자! 그리고 무사들이 오면 그때 살가죽을 벗겨버리자. 돈은 그때 다시 뺏으면 된다.’
순간적으로 욕을 내뱉었지만 동후상은 머리가 비상한 자였다. 우선은 달래기로 했다.
“가서 금자 이백 냥을 가지고 와라.”
잠시 후 입이 크게 벌어진 유성탄은 받은 돈주머니를 어깨에 둘러메고는 나가려 했다. 그도 양심이 있었다. 동후상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계산이 잘못됐다고 다시 돌려달라고 할까 불안도 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여기까지 와서 도박 한 번 안 하고 간다면 그것도 예의는 아니지 않겠소? 그 정도 돈이면 한판 거하게 놀 수 있을 텐데 한 판 하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소?”
아직 무사들이 오지도 않았는데 유성탄이 그냥 가려고 하자 동후상이 급히 유성탄을 잡았다.
‘마동파가 말하기를 도박장에서 잘만 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했는데 온 김에 아예 부자가 돼서 나가?’
유성탄이 야무진 꿈을 꾸며 도박장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야바위 패하고는 달라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 없는 짓은 절대로 안 하는 유성탄이었다.
“나는 도박을 해본 적이 없소. 그리고 나는 야바위꾼이지 도박꾼이 아니오.”
“그럼 야바위로 해서 한 판 하면 어떻겠소? 물주는 나이니 패는 내가 돌리겠소.”
“나는 불공평한 놀이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 번갈아 패를 돌리기로 한다면 해보겠소.”
동후상은 세상이 알아주는 도박사였다. 거기다 배짱도 보기 드물게 두둑해서 여간한 사람은 그와 도박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박 중에 가장 기초가 야바위 패 돌리기였고 당연히 동후상은 야바위 패에 대해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동후상은 유성탄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짜식들이 까불고 있어!”
유성탄이 도박장을 나온 것은 거의 두 시진이 지나서였다. 옷을 툭툭 털고 나서는 유성탄의 몸에는 피가 여러 군데 튀어 있었다.
도박장 앞에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나 모여 있었다.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온 것은 반 시진 전이었고 계속 피로 범벅을 한 장한들이 튀어나오니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이라지 않는가.
동후상이 유성탄과 야바위를 시작한 후 유성탄은 놀라고 말았다. 동후상의 실력이 유성탄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유성탄의 법이 나오기 시작했다.
따면 그냥 받고 잃으면 물러달라는 유성탄의 특기가 나오면서 동후상은 어이가 없다 못해 피를 토할 정도로 머리에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유성탄은 처음에는 행복한 웃음을 띠고는 패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신이 살짝 바꾼 패를 동후상이 귀신같이 발견해서 맞춘 것이다. 돈을 주며 유성탄의 행복한 웃음은 급이 한 단계 낮은 즐거운 웃음으로 변했다.
다음은 동후상이 패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 있게 돈을 건 유성탄은 자신이 건 패가 꽝이 나자 한 단계가 더 떨어진 쓴웃음으로 표정이 바꿨다.
그리고 세 번째 다시 돈을 잃자 유성탄의 입에서는 드디어 그의 전가의 보도인 “물러줘!”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동후상의 얼굴이 확 변했다. 도박생활 삼십 년, 별의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들어본 그였지만 물러달라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이런 양아치 같은 놈이……!’
하지만 어차피 잡아놓는 것이 주목적인 동후상은 물러주고 말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억지에 얼굴이 변하기 시작한 동후상이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못 물러준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유성탄은 유성탄의 법을 운운하며 자신과 야바위를 하려면 자신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또 다른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결국 참다못한 동후상은 원래의 목적을 잊고 본부에서 무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공격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절대 흥분하지 않는다는 도박꾼의 전문가로서의 기본까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공격명령은 더 큰 손해를 자초하고 말았다.
유성탄에 의해 도박장이 부서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본부에서 흑의단과 혈의단이 도착했다. 대화를 나누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흑의군과 혈의군의 공격은 도박장에서 경비를 맡고 있던 흑사파의 왈패들과는 실력이 달랐다. 결국 도박장은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 박살이 나고 말았다.
유성탄은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백해무익한 도박장을 부순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흑의군과 혈의군까지 모두 뻗어버리자 유성탄은 사방에 흩어져 있는 돈들을 전부 보자기에 주섬주섬 담고는 밖으로 나온 것이다.
‘흐흐흐! 대박이다. 빨리 도망가야지.’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쳐다보며 유성탄은 빨리 소호를 벗어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