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제1장 왕태산의 산적 (10/79)

제1장 왕태산의 산적

곧 죽을 듯한 노인은 너무 시끄러워 눈을 떴다.

“누구시오?”

“아버지! 저 유성탄이에요! 제가 아버지 보고 싶어서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어요.”

“유성탄? 난 그런 아들 없는데… 아하! 옆집에 유 포장이 잃어버렸다는 그 아들인 모양이구려. 집 잘못 찾아왔소. 이제 나 죽어야 하니까 그만 울고 가시게. 자네 아버지는 아주 멀쩡하네.”

말을 마친 노인은 곧 꼴까닥한다.

“이씨! 괜히 피 같은 눈물만 흘렸네. 하여튼 고맙소!”

그러나 이미 죽은 노인은 말이 없었다.

* * *

“야! 왕태산의 산적은 너희들끼리 가서 처리하면 안 되겠냐? 나는 산에 들어가는 것 무척 싫어하는데…….”

아우들의 강요에 못 이겨 왕태산을 향해 떠나면서 유성탄은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

사실 유성탄은 충동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산속을 싫어했다.

그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대형, 우리끼리 가면 다 죽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만 갑니까?”

“너희끼리만 가면 다 죽어? 왜? 너희들 그렇게 약하냐?”

“솔직히 우리가 낭인들 사이에서는 큰소리 좀 치지만 전체 무림에서는 아주 약한 편입니다.”

“이것들이 완전히 나를 물먹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나 유성탄의 아우들이 약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냐! 안 되겠다. 이제부터 내가 수련을 좀 시켜줘야겠다.”

유성탄은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는 듯이 자신이 아는 수련방법으로 아우들을 수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두에게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헥헥! 대형, 조금만 쉽시다.”

왕태산은 그리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말로 달려서 삼 일은 걸리는 곳이었는데 유성탄은 그들을 산속으로 몰고 들어가더니 달리기를 시켰다.

거기다 이따금 엎드려서 기어가게도 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걸어가게 하기도 했다.

결국 철패와 장우왕이 먼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쉬기는 어디서 쉬어! 나는 착한 아우는 봐도 약한 아우는 못 본다.”

말과 함께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그들을 가격했다.

“우악!”

철패나 장우왕은 유성탄의 주먹을 처음 맞아보았다. 그리고 왜 화정이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아니 제발 죽여 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았다.

철패와 장우왕은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유성탄의 주먹에 맞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아프기에 우왕 형님과 철패가 저런 비명을 지르는 거야?’

황대산은 가장 맷집이 좋은 그 둘이 비명과 함께 자신을 앞지르자 놀라서 속력을 더 낸다. 뒤로 처졌다가 맞을까 겁이 난 것이다.

‘낄낄낄! 나는 알지.’

마동파는 이미 유성탄의 주먹을 많이 맞아봐서 그들의 심정을 아는지 속으로 낄낄대며 열심히 뛰었다.

밤이 되자 유성탄이 기진맥진한 아우들에게 말했다.

“나는 진짜 하루 종일 달렸다. 안 달리면 벌레들이 온몸에 붙어 가렵고 아프고 견디기가 힘들었거든. 그리고 매일 온몸을 부딪치며 살았고 매일 벽을 때리며 지냈다. 왜냐? 할 게 없었거든. 강도 높은 훈련밖에 강해지는 방법은 없다고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유성탄은 자기가 진짜 멋있는 연설을 아우들에게 했다고 생각했다.

* * *

내가 아우들을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잘 가르치는지 삼 일도 안 되어서 얘들이 당장 절정고수로 변하는 거야!

아우들이 나보고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감탄을 하고.

하여간 그래서 내가 생각했지. 무관을 차리면 천하의 돈은 다 내가 쓸어 담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야.

* * *

왕태산에 도착한 것은 오 일 후였다.

하지만 아우들은 힘만 들 뿐, 전혀 자신들의 실력이 느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대형, 이제 좀 쉬어야 합니다. 너무 지치면 싸울 수가 없습니다.”

가장 잘 버티던 강태웅도 도대체 지치지를 않는 유성탄을 보며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관도를 이용해서 말을 타고 달려도 삼 일이 걸리는 길을 산으로만 달려서 오 일 만에 도착했으니 얼마나 강행군을 했는지 알 만했다.

그런데 유성탄은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오히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바람에 그들보다 두 배는 더 뛰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유성탄은 지친 흔적이 없었다.

“남자들이 이 정도에 빌빌거리면 어떻게 하냐? 에그…….”

유성탄은 이번 기회에 아우들의 기를 죽일 생각으로 괴롭혔다. 훈련을 핑계로 전부 다 몇 대씩 아프게 때렸다.

전부 다 유성탄의 심모원려였지만 아우들은 유성탄의 계략을 눈치 채지 못했다.

“대형, 도대체 충동(蟲洞)에는 어떻게 들어간 겁니까?”

황대산이 물었다.

유성탄의 말로 충동이 사람 살 곳이 아니란 것은 알 것 같았지만 유성탄은 혈문에 납치된 사실만 말해 줄 뿐 충동에 빠지게 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세상은 자기보다 난 사람을 질투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그들이 내게 무공을 가르치면서 내가 마치 걸레가 물 빨아먹듯이 쑥쑥 모든 것을 단숨에 익히니까 이것들이 불안해하는 거야! 아마 내가 커서 지들을 죽이고 혈문을 아예 빼앗아 버릴까 두려웠겠지. 거기다 내가 집요했거든.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누구를 한번 노려보면 교관들까지 호랑이 앞의 강아지처럼 바짝 어는 거야. 결국 자신들이 키울 재목이 아닌 기재를 데려왔으니 감당이 안 된 거지. 한동안 불안해하더니 결국 나를 충동에 던지더라.”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우들의 얼굴에는 유성탄의 말에 뻥이 얼마나 섞였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히히히! 하여간에 대형의 뻥은 대단해. 세상에 일곱 살짜리가 노려본다고 설마 교관들이 얼었을까? 맞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지…….’

“내가 알기로는 왕태산의 산적들의 수는 거의 이백에 가깝습니다. 거기다 무공을 할 줄 아는 자도 삼십 명에 가깝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보통인 표도행이 신중하게 말했다.

“야! 너 그런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거야? 이게 대형을 죽이려고 환장을 했나! 이백 명이 넘고 무공을 아는 놈이 삼십 명이 넘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기냐!”

유성탄이 마치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이 펄쩍 뛴다. 유성탄은 조금이라도 자신이 위험할 것 같으면 피하고자 하는 욕망에 빠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씨! 나는 한 열 명쯤 되는 줄 알았는데…….’

유성탄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금자 백오십 냥을 포기할 생각을 간단히 하고 있었다.

“대형, 하지만 대형이 계시지 않습니까?”

“응! 내가 뭘……?”

“우리만이라면 절대로 생각도 못 할 일입니다만, 대형이 계시기 때문에 저는 아무런 걱정 없이 그 일을 맡은 것입니다. 대형의 실력이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이기실 수 있습니다.”

강태웅이 유성탄을 슬쩍 올려주자 유성탄은 그냥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만다.

“헤헤헤! 내가 실력이 있기는 있지. 암… 그따위 산적, 이백 명이 아니라 천 명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다.”

“맞습니다. 대형이 누구십니까? 우리 낭인칠웅의 최고 형님 아니십니까! 우리는 진짜 대형만 믿고 온 것입니다.”

마동파가 강태웅의 작전을 알아차렸는지 급히 같이 맞장구치며 유성탄을 띄웠다.

그리고 유성탄은 넘어갔다.

“웬 놈이냐!”

유성탄과 아우들이 제 딴에는 들키지 않으려고 살살 들어갔지만 금방 걸리고 말았다.

왕태산의 산적들도 남무림과 안남 비월문의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가 만만치 않았다.

“안녕하시오. 혹시 왕태산의 호걸님들이십니까?”

표도행이 앞으로 나서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가 왕태산 녹림의 영웅들이시다. 네놈들은 누구기에 감히 이곳에 무기까지 소지하고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거냐?”

십여 명은 됨직한 자들이 손에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는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에구! 낭인 놈들만 그렇게 생긴 줄 알았더니 여기 놈들은 더 우습게 생겼구나.’

이빨은 닦지 않아 누렇고 털은 아무렇게나 잘라서 덥수룩한 산적들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그리 친근한 모습은 아니었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이놈들이 나보고 뚝하면 산적같이 생긴 놈이라고 한 게… 내 이놈들 다시 만나면 절대 용서 안 한다.’

유성탄은 나타난 산적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다가는 갑자기 그동안 싸우면서 그가 자주 들었던 산적같이 생긴 놈이라는 말이 욕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우리는 요 밑에서 제법 힘 좀 쓰던 왈패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좀 사고를 크게 쳐서 관에 쫓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태산에 가입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표도행의 말을 들은 산적들 중 선임인 듯한 자가 손에 든 도를 흔들며 소리쳤다.

“생긴 것을 보니 전부 흉악하게 생긴 게 거짓말은 아닌 듯하지만 본채는 여느 산채와는 다르다. 어중이떠중이 다 받아주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 무기를 버리고 오라를 받으면 내가 산채까지 데려다는 주겠다.”

“제법 눈치가 있구나.”

산적의 말을 들은 강태웅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손을 들었다. 공격신호였다.

산적 놈의 말대로 오라를 받으면 십중팔구는 그들의 칼에 목이 떨어질 확률이 많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구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장 앞에 있던 표도행의 쌍면검이 먼저 공격에 들어갔고 단숨에 한 명의 산적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적이다!”

한 명이 너무 간단히 쓰러지자 얘기하던 자가 소리를 치더니 품에서 조그만 피리 같은 것을 꺼내서는 입에 물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달려든 강태웅의 검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여간해서는 잘 싸우지 않는 강태웅이었지만 막상 검을 뽑으니 그 위력이 만만치 않았다.

“대장인 듯한 저놈만 조금 무공을 알 뿐 나머지는 삼류도 안 되는 자들입니다.”

간단히 모두를 쓰러뜨리고는 강태웅이 유성탄에게 말했다.

“야! 너희들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사람을 죽이냐? 무섭다 무서워……. 이렇게 무서워서야 어디 니들하고 상종이나 하겠냐!”

수없이 싸우면서도 아직 한 명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는 유성탄으로서는 비록 아우들이었지만 사람을 간단히 죽이는 것을 보며 가슴이 섬뜩한 것을 느꼈다.

용병시절 전쟁을 하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이미 여러 번 본 그였지만 지금의 살인은 그때와는 와 닿는 것이 좀 달랐다.

유성탄이 보기에 굳이 죽일 필요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대형! 대형 마음을 제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죽이지 않으면 계속 덤벼들 겁니다. 저쪽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데 우리는 살리면서 싸운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입니다.”

강태웅이 유성탄의 말에 급히 해명했다.

“난 지금까지 아무도 안 죽였지만 계속 덤비는 놈은 없었다.”

“그게 대형과 우리의 차이인 것입니다. 대형은 그러셔도 아무도 덤비지 못하지만 우리는 살려주면 언젠가는 등에 칼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대형께서도 강한 적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유성탄의 얼굴이 약간 변했다.

진짜 강한 적이니, 등에 칼을 맞느니 하는 말이 영 거슬렸다.

유성탄은 아무리 봐도 낭인은 이번으로 그만두고 야바위꾼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야, 이놈들. 상당히 경계가 심한데요.”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했지만 가는 족족 경계에 걸리던 낭인칠웅 형제들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벌써 죽인 자들이 삼십 명을 넘고 있었다.

마동파도 팔에 상처를 입었고 장우왕도 표도행을 구하다가 가슴이 쩍 벌어지는 검상을 입고는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너희들 이러다가 전부 다 죽겠다. 그냥 포기하고 도망가자.”

유성탄이 장우왕의 가슴에 흐르는 피를 딱하다는 듯이 보며 말했다.

“대형! 이 정도에 포기하고 도망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대형께서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강태웅이 호기롭게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쟤 때문에 내가 죽겠다니까… 영웅이 되면 밥이 생겨, 돈이 생겨! 등에 칼침이나 맞는다면서 뭔 영웅을 저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니까.’

* * *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영웅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그때 내가 알았어.

나는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 거야!

누가 뭐라 해도 영웅은 영웅이라나 뭐라나… 결국 난 그때 내가 타고난 영웅이라는 것을 알고 말았지.

* * *

“맞다! 천하의 영웅인 나 유성탄이 이 정도에 도망을 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좋아! 하지만 나는 아우들이 다치는 것은 정말 보기 싫다. 나 혼자 가서 다 때려잡을 테니까 너희들은 천천히 올라오면서 뒤나 정리해라. 그리고 이번 일이 끝나면 너희들 다 죽을 준비해. 내가 엄청 훈련을 시킬 거니까.”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아우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유성탄은 자신이 혼자 싸우기로 결정했다. 그도 갈수록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룡봉의 기연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니 충동에서의 수련 덕이라고 생각했다. 유성탄은 그 훈련을 아우들에게 시킬 생각을 한 것이다.

“정말 대형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보십시오. 갈수록 강해지고 계세요. 이제는 열 명 정도는 일 각도 안 되어서 처치하고 있습니다.”

표도행은 유성탄의 뒤를 멀리서 따르며 유성탄이 나타나는 산적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산적들이 기절을 하거나 끙끙대며 일어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한 명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래… 그리고 타고난 성품이 여린 분이다. 어쩌면 나의 계획을 빨리 시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강태웅은 독백하듯이 말하며 품을 한 번 만져보았다.

죽으면서 자신에게 전부 다 남겨주신 이름도 모르는 노인은 강태웅에게는 사부와 마찬가지였다. 그 노인은 강태웅에게 또 다른 기연을 준 것이 있었다.

유성탄이 앞장 서 나가면서 오히려 일곱이 같이 갈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벌써 유성탄에게 쓰러진 산적의 수가 오십을 넘고 있었고 그 중에는 무공을 아는 산적도 십여 명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강했나……?’

유성탄은 싸우면 싸울수록 신이 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싸움에서는 때리는 대로 맞았다.

그러나 대월인과의 싸움에서 피한다는 것을 알았고 척지경과의 싸움에서는 감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적들의 검이 날아오면 충동의 벌레들이 달려드는 식의 느낌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벌레들의 움직임은 정말 미약했었다. 그것에 비해서 산적들의 공격은 정말 천둥소리 같았다.

유성탄은 지금 거의 한 대도 맞지 않고 있었다.

“강태웅 형님! 대형의 몸놀림이 무공은 아닌 것 같은데 저럴 수가 있는 겁니까?”

마동파가 유성탄의 몸놀림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놀라울 정도의 순발력이야. 순간적인 움직임이 폭발적이다. 무공이란 것을 꼭 현재의 무공만 따진다면 저게 무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무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도 없지 않겠느냐. 대형은 스스로 자신의 무공을 개발하신 것 같다.”

“웬 놈이기에 감히 왕태산에 와서 행패냐?”

마치 천둥이라도 울리듯 커다란 목소리가 들리더니 완전 멧돼지같이 생긴 자가 손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거의 이십 명은 됨직한 부하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저건 또… 무슨 돼지야?’

유성탄은 왕태산 산채의 두령인 추달귀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야아! 세상에 너같이 생긴 놈도 있구나. 어릴 때 굿하는 것을 봤는데 거기서 본 돼지머리하고 똑같이 생겼네! 너 진짜 세상 살기 싫었겠다.”

유성탄의 말을 들은 추달귀의 코에서 뿌연 김이 새어나왔다.

추달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얼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성탄은 얼굴이 아니라 아예 돼지머리라고 하지 않는가,

“이놈! 너도 생긴 걸로 따지면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 삐쩍 마른 게 꼭 젓가락같이 생긴 놈이 누구 얼굴을 흉을 보는 거냐?”

추달귀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이놈아! 너는 비 오는 날은 밖에 나오지 마라. 코로 물 다 들어가겠다.”

유성탄의 말은 결국 추달귀의 꼭지를 돌게 만들었다.

“이놈~!”

추달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부(斧)를 휘두르며 유성탄에게 달려들었다.

‘어? 이놈은 좀 다르네…….’

유성탄의 추달귀가 달려드는 순간 지금까지 싸우던 산적들과는 실력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척지경과 싸워본 그에게 추달귀는 그리 무서운 상대는 아니었다.

‘으윽! 저놈의 주먹이 왜 이렇게 아프냐? 한 대 맞을 때마다 내장까지 울리는구나.’

추달귀는 유성탄과 싸우며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교묘하게 부 바로 앞에서 몸을 피하며 한 대씩 때리는 유성탄의 주먹이 맞으면 맞을수록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뭐 하냐! 당장 이놈을 때려죽이지 않고!”

추달귀는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부하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같이 나타난 이십여 명의 산적들도 싸움에 끼어들었다.

“아니! 저놈들이……!”

멀찌감치 뒤에 숨어서 보던 강태웅 일행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무기를 빼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유성탄에게 달려들던 산적들 중 일부는 강태웅 일행을 맞아 싸우기 시작했다.

‘으힉! 이놈이 사람이야, 뭐야?’

간간이 자신의 부가 유성탄의 몸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에서는 튕기는 느낌이 들고 유성탄은 전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추달귀는 갈수록 전의를 잃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치기도 만만치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부하들을 놔두고 도망간다면 십 년에 걸쳐서 간신히 올라선 산채의 두목 자리를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거참! 이상하네. 저놈의 몸놀림이 다 보여.’

유성탄은 사실 추달귀를 벌써 때려눕힐 수 있었다.

그런데 싸우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전에는 무조건 맞고 때리느라 몰랐는데 산적들과 싸우면서 올라오다 보니 점점 몸의 감각을 조절할 수가 있었다.

추달귀의 도끼를 모두 피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부가 맞는 순간 그 타격 부위에 순간적으로 근육의 힘을 응집하여 부를 튕겨낼 수도 있었고 무기가 자신의 몸에 가까이 오는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불쌍한 산적에 불과할 뿐이오. 왕태산이 대협과 원한을 맺은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이러시는 거요?”

결국 유성탄의 주먹을 견디지 못한 추달귀가 도끼를 떨어뜨리고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지더니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가 보기에 유성탄이 천하의 고수로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천하의 고수가 힘없고 불쌍한(?) 산채의 산적을 괴롭히는 것이 진짜 이해가 안 된다는 투였다.

“야! 세상에 불쌍한 산적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하여간에 생긴 대로 논다니까, 무식해 가지고. 내가 너희들을 없애면 돈을 받기로 계약을 맺었거든. 얼마나 많이 받냐 하면 무려 금자 백오십 냥이야.”

유성탄이 추달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유성탄의 말을 들은 추달귀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말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만 돌아가신다면 제가 금자 삼백 냥을 드리겠습니다.”

유성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은 것이다.

‘어라? 이런 장사가 또 있었네. 가만있자… 슬쩍 튕겨봐?’

“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냐? 사내대장부가 한번 한 약속을 파기하는 값이 겨우 금자 삼백 냥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단 말이냐! 나는 많이 아니면 말을 안 바꾼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이! 결국 바꾼다는 말 아니야? 도대체 많이가 얼마야?’

추달귀도 상당히 거친 자였다. 당연히 유성탄의 말에 욕이 절로 나왔다.

“너! 속으로 나 욕했지?”

“아닙니다. 절대로 욕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네……. 욕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하여간에 많이 아니면 나는 말을 안 바꾼다. 그러니 이제 죽어라!”

유성탄이 직격탄을 먹였다.

“아닙니다. 많이 드려야지요. 산채에 가면 금자 오백 냥은 있을 것입니다. 그걸 다 드리겠습니다.”

“금자 오백 냥!”

유성탄의 입이 벌어졌다.

많이가 얼만지는 그도 몰랐다. 다만 많이라는 말이 좋아서 지껄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분명 오백 냥이 많다는 것은 유성탄도 안다.

“대형, 이대로 가도 되겠습니까?”

표도행이 왕태산을 내려오며 유성탄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가서 뭐라고 하지요?”

마동파도 어쩔 생각인지 물었다.

“이런 미련한 놈들을 봤나! 가기는 왜 돌아가? 금자 오백 냥이나 받았는데. 그냥 다른 데로 가자고. 알 게 뭐야. 그냥 도망갔나 보다 하겠지 뭐!”

“대형, 그건 안 됩니다. 우리가 왕태산의 산적을 없애지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도망쳤다는 소문이 나면 안 됩니다. 산적에게서 도망쳤다는 소문이 나면 위신은 실추될 것이고, 실추된 위신을 다시 찾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배는 더 들게 됩니다.”

유성탄의 말에 강태웅이 다시 반대하며 나섰다.

‘쟤 또 나서네. 위신이 밥을 줘, 돈을 줘? 하여간에 강태웅이 쟤는 도움이 안 돼요.’

“그럼 가서 왕태산 산적들을 다 때려줬다. 하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지요. 어차피 우리가 왕태산의 산적을 작살낸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황대산이 유성탄의 말에 동조를 했다.

“맞습니다. 대형께서 정말 좋은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표도행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정말 우리 대형은 머리가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좋은 생각을 하셨는지… 전 무조건 찬성입니다.”

마동파가 늦게 나선 것을 한탄한다는 표정으로 급히 맞장구를 쳤다.

유성탄의 확실한 실력을 본 아우들이 알아서 기는 중이었다.

“저도 찬성하겠습니다.”

언제나 느린 철패까지 유성탄이 무슨 좋은 생각을 했다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똑똑하다는 말에 흐뭇해진 유성탄이 장우왕을 쳐다보았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장우왕뿐이었다.

‘이크!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냐?’

느려빠진 철패까지 찬성을 했건만 유성탄의 눈을 보고서야 분위기 파악을 한 장우왕이 급히 말했다.

“저는 이미 마음속으로 찬성을 했습니다. 아마 제가 가장 빨리 찬성했을 겁니다.”

장우왕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유성탄이 말했다.

“다음부터는 입으로 해라. 마음속으로는 욕을 하고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왕태산의 산적을 때려는 줬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았다는 말이 그렇게 좋은 말인가?’

이미 제쳐놓은 강태웅을 제외한 모두의 찬성을 받기는 했지만 뭐가 그렇게 찬성을 받을 말이었는지 유성탄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 *

“아저씨, 한 푼만 주세요.”

왕태산을 내려와 관도를 따라 걷던 무한 일행은 갑자기 다가선 꼬마거지를 보며 혀를 찼다.

삐적 마른 아이는 얼마나 배를 곯았는지 배가 짱구배가 되어 있었다. 얼굴도 파리한 게 곧 죽을 것 같았다.

“얘는 뭐냐?”

유성탄이 아이를 보면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며 물었다. 몸에 닿는 것도 싫을 정도로 정말 지저분했다.

“거지 아닙니까?”

“얘가 거지냐? 전에도 거지는 한번 봤는데 얘는 정말 드럽네.”

“아저씨, 삼 일째 한 끼도 못 먹었어요. 한 푼만 주세요.”

보통은 유성탄 같은 낭인들에게는 구걸을 하지 않는다. 생김새도 우락부락하지만 낭인 중 돈 있는 자도 별로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정말 절박한 것 같았다.

문제는 그 근처가 모두 오랜 한발로 생활이 피폐해졌다는 것이었다.

잘사는 사람 몇몇을 빼면 모두 생활이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인심도 무척 나빠져서 거지에게 돈이나 음식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유성탄 일행이 타지 사람이라는 것을 거지소년은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무서운 낭인이라는 생각은 배고픔이라는 더 큰 무서움에 생각도 못 했다.

“저리 가, 인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마동파가 냄새가 풀풀 날리는 소년을 발로 밀며 소리쳤다.

“야! 마동파! 너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다른 것도 아니고 삼 일이나 굶었다잖냐! 너 굶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건지 아냐?”

배고프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이라는 것은 유성탄이 충동에서 이가 갈릴 정도로 많이 경험했다.

거의 한시도 쉬지 않고 벌레를 잡아먹었지만 양이 너무 적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충동에 있는 내내 배고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유성탄에게 배고프다는 소년의 말은 약간은 동변상련의 느낌을 주었다.

“대형, 거지들은 누구나 삼 일을 굶었다고 그럽니다. 짠 것도 아닐 텐데 어째 모두 삼 일을 굶었다고 그러는지…….”

“미련한 놈, 거지들이잖아. 무식하니까 삼 자까지밖에 모르나보지.”

“저 무식하지 않아요. 글자도 읽을 줄 알아요.”

거지소년은 나름 자존심이 있는지 유성탄을 보며 힘이 없어 떨리는 목소리이긴 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얘기했다.

“거지가 글은 어디서 배웠냐?”

“저 원래부터 거지 아니에요.”

“원래부터 거지였던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냐?”

“대형, 거지하고 자꾸 말해서 뭐 합니까? 가지요.”

마동파가 뭐 하러 귀찮게 대꾸를 하냐며 가자고 한다.

“저 정말 배고프거든요. 한 푼 줄 거 아니면 그냥 가세요.”

거지소년도 유성탄이 자꾸 말을 걸자 더 이상 말하기도 힘든지 다른 사람을 쫓아 발을 옮겼다.

“자식! 진작 그럴 것이지. 감히 누구 돈을 삥 치려고…….”

유성탄은 한소리하며 가려다가는 다시 거지소년을 쳐다보았다.

‘배고프다고 했단 말이야…….’

유성탄은 이상하게 자꾸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야! 너 이리 와 봐.”

유성탄이 거지소년을 부르자 모두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설마 대형이 거지에게 돈을 주려고 그러나?’

모두 생각하는데 거지소년도 희망을 안고는 다시 돌아왔다.

“너 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안 가르쳐주는 엄청난 비밀인데 너한테만 가르쳐줄 테니 잘 듣고 배고픔에서 벗어나라.”

배고픔을 벗어나게 하는 비밀이라면… 세상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비밀이 어디에 있겠는가! 거지소년도 놀라운 유성탄의 말에 솔깃해서 쳐다보았다.

“나무의 낙엽 밑이나 바위 같은 것을 뒤지면 벌레가 나온다.”

유성탄의 말이 나오자 모두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 나오려고 그러나 무척 궁금한 얼굴들이었다.

“그 벌레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하루 종일 먹으면 배고픔이 어느 정도는 가실 거다.”

유성탄의 말을 들은 거지소년은 들고 있는 동냥바가지로 유성탄의 면상을 한 방 갈기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꾹 참고는 그냥 돌아섰다.

“저놈은 좋은 걸 가르쳐줘도 배우려고를 안 하는구먼! 하여간에 요즘 어린 것들은… 가자!”

유성탄은 나름 좋은 일 한 번 하려고 비밀까지 가르쳐줬는데 거지소년의 반응이 영 시원찮자 기분이 상한 듯 아우들에게 소리치며 몸을 돌렸다.

“저애 쓰러졌는데요.”

“뭐!”

거지소년이 쓰러졌다는 말에 유성탄은 깜짝 놀라 소년을 쳐다보자 거지소년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에이! 한 냥만 주고 가자.’

결국 유성탄이 한 냥만 주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불쌍한 것을 못 보는 것은 딱 아버지 유정삼과 같았다. 유정삼도 이따금 급여 받은 것을 거지들에게 주었다가 강추화란 싸울때가 많았었다.

“야! 너 오늘 땡 잡은 거야.”

유성탄은 말을 하며 금자 한 냥을 꺼내서 소년에게 쥐어주었다.

“대형! 그거는 금잔데요?”

표도행이 놀라 소리쳤다. 동전 한 문만 줘도 되는 것을 은자도 아닌 금자를 주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관하지 마!”

소리친 유성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소년을 다시 볼 용기가 없었다. 은자를 줘야 하는데 실수로 금자가 나온 것이다.

유성탄은 소년을 봤다가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 다시 뺏게 될까 두려웠다.

“아저씨!”

‘저게 금자를 한 냥이나 줬는데 또 왜 부르는거야 씨… 이제 안 줘.’

유성탄은 또 빼앗길까 더 이상 대답도 하지 않고 가려고 했다.

“아저씨, 제 아버지가 죽어가요. 좀 도와주세요.”

거지소년은 유성탄이 보기와는 달리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는 더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소년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유성탄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유성탄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아버지가 죽어간다지 않는가.

“에이 씨! 가보자.”

유성탄은 결국 걸음을 멈추고 소년을 따라갔다.

“뭐야! 낭인촌보다도 더 더럽잖아.”

유성탄이 따라간 곳은 정말 지저분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풀로 지어졌고 사방에 오물이 가득 차 악취가 진동했다.

“너 이런 곳에서 사냐?”

무한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우들도 이런 악취는 처음인지 코를 손으로 잡았다.

남쪽지방에 한발이 시작된 것은 벌써 삼 년 전이었다. 계속되는 가뭄에 농지는 다 말랐고 안남과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군대가 주둔하면서 살기는 더 어려워졌다.

거기다 원칙적으로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금지되어 있다 보니 그냥 그 자리에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관의 허락 없이 떠난다면 난민이 되어 사방에서 구박을 받으면서 거지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아버지! 여기 무사님들이 금자를 한 냥이나 주셨어요. 이제 우린 살았어요. 그러니 제발 눈 좀 뜨세요.”

아이는 울부짖듯이 울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간 유성탄은 더욱 놀라고 말았다.

뼈만 남은 아줌마 한 명이 역시 뼈만 남은 남자 하나를 간호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배만 뽈록 튀어나온 대여섯쯤 먹은 아이 하나가 풀을 빨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미련한 사람들이 많은 거야. 사방에 벌레투성이구먼.”

더러운 곳이다 보니 벌레가 어느 지역보다도 많았고 그 소리는 유성탄의 귀에 다 들리고 있었다. 그들의 삐쩍 마른 몸을 보며 유성탄은 벌레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이자는 아픈 게 아닙니다. 너무 굶어서 허약해진 거예요. 먹으면 낫는 병입니다. 이만 가지요.”

황대산이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유성탄을 졸랐다.

“야! 넌 대형이 가만히 있는데 보채고 그럴 거냐? 자꾸 그러면 한 대 맞는다.”

말을 마친 유성탄은 누워 있는 남자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간호하는 여인을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씨! 내가 여기를 왜 온 거야! 에이…….’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던 유성탄이 강태웅을 불렀다.

“야, 강태웅!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먹을 수 있으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하겠냐?”

“글쎄요. 척 보기에 적어도 금자 오백 냥은 들겠는데요. 너무 많습니다.”

“으악! 금자 오백 냥? 그렇게 많이 필요하냐?”

다시 생각에 잠긴 유성탄은 다시 강태웅에게 물었다.

“철검보에서 금자 백오십 냥을 받을 수 있겠지?”

“당연하지요.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그 말을 들은 유성탄은 무척 갈등하는 얼굴로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깨에 둘러매고 있던 전낭을 내려놓더니 몸을 돌려 꿈지럭대다가는 돌아서며 말했다.

“자, 이 돈으로 여기 사람들이 먹고 지낼 수 있게 해봐라.”

몸을 돌려 뭔가 꿈지럭대던 유성탄이 내민 것은 놀랍게도 왕태산의 산적에게서 빼앗은 전낭이었다.

오백 냥이나 되는 돈을 들어 준다고 해도 싫다며 그 무거운 것을 혼자 메고 다니던 그였다.

아우들은 그런 유성탄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동전 한 문에 벌벌 떨고 초앵이 돈을 훔쳐갔을 때는 까무러치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사람이라고 보기엔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아우들을 데리고 가서 준비해 오겠습니다.”

강태웅만은 유성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를 지으며 아우들을 데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강태웅을 보며 유성탄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휴우! 내가 전낭에서 금자 열 냥을 꼬불친 거는 아무도 눈치 못 챘겠지?’

유성탄은 아무래도 다 주기는 아까웠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살짝 열 냥을 빼놓은 것이었다.

강태웅이 마차에 쌀을 가득 실어온 것은 두 시진 만이었다.

금자 오백 냥은 무척 큰돈이었다. 수천 명의 이재민들이 최소한 두 달 이상은 먹을 만큼 많은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우선 사 온 식량을 이재민들에게 나눠 준 강태웅은 나머지 돈은 가족 당 한 냥씩 나눠 주었다.

하지만 유성탄은 식량을 나눠 주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보다가는 돈이 아까워서 못 견딜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큰절까지 받으며 떠나는 낭인칠웅의 마음은 이상하게 굉장히 뿌듯했다.

그런데 유성탄이 모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거지만 보면 나한테 빨리 말해라!”

“왜요? 볼 때마다 도와주시게요?”

마동파가 웃으며 말하자 유성탄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거지가 나타나면 도망치려고 그런다.”

유성탄의 말에 모두는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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