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낭인 대장 화정 (9/79)

제9장 낭인 대장 화정

낭인촌 서쪽 으슥한 곳에 일곱 명의 건장한 인영이 나타났다. 잡초가 길게 자란 평원에 비까지 내리고 있어 그다지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이 자식들은 하필이면 왜 비 오는 날 만나자고 그런 거야! 난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은데…….”

유성탄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마동파가 말을 받았다.

“대형, 전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 제일 싫다고 했잖습니까?”

“이건 도대체 인간심리를 몰라요. 인마 매일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사람인 거야. 오늘은 비 오는 날이 싫은 날이란 말이야!”

유성탄의 현답에 모두의 얼굴에 피식 하고 웃음이 떠올랐다.

“옵니다.”

약간 앞에 나가 살펴보던 표도행이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십여 명은 됨직한 낭인들이 나타났다.

“어이, 강태웅! 오랜만이구나.”

“전 며칠 전 병발에서 봤는데 화 형께서는 못 보신 모양입니다.”

“그때? 아하, 내가 좀 바빴지.”

강태웅과 말을 주고받는 화정이라는 자는 덩치가 철패와 맞먹을 정도 컸고 등에는 커다란 대감도를 매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힘을 이용한 강력한 도법의 소유자가 분명했다.

“야! 네가 화정이냐? 야 인마! 예의 좀 있어봐라. 나 유성탄 대형이 나온다고 했으면 먼저 와서 기다렸어야지 나를 기다리게 하다니 아주 싸가지가 없는 놈이군.”

유성탄의 말을 들은 화정의 얼굴이 분노로 뻘겋게 변했고 주위의 부하들의 얼굴도 묘하게 변해갔다.

“아주 개망나니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진짜 상종도 못할 호래자식이구나. 내가 이 바닥에서는 너보다 최소한 십 년은 선배다. 이런 자리지만 선배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게 낭인들의 법이다. 너야말로 예의가 완전 젬병이구나.”

유성탄은 화정의 말을 듣자 강태웅을 보며 물었다.

“태웅 아우는 쟤 말이 이해가 되나? 나보다 십 년은 선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지저분한 생활을 도대체 몇 살부터 했다는 말인가. 하여간에 자랑할 게 없으니까 별걸 다 자랑으로 삼는 놈들이 있다니까. 이놈아! 나는 십 년 전에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할 곳에 있었다.”

화정은 유성탄의 말을 듣자 잠시 멈칫했다.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곳이라면?

“설마 황궁에라도 있었다는 말이냐?”

유성탄이 설마 벌레 굴에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화정이었다.

“뭐 그건 됐고. 그래, 내게 할 말이 뭐냐?”

유성탄이 말을 끊고 자신이 묻고 싶은 것을 묻자 화정은 이상하게 자기가 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로 낭인들의 왕인 화정이다. 낭인이 됐으면 당연히 내게 와서 인사를 해야 하는데 너는 낭인의 법칙을 위반했다.”

화정의 말을 코딱지를 후비며 듣고 있던 유성탄이 소리쳤다.

“낭인의 법 같은 것은 나는 모른다. 나는 유성탄이다. 내게는 유성탄의 법만이 존재한다!”

소리친 유성탄은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 반하고 말았다. ‘유성탄의 법’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지만 너무 멋있는 말 같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안 되면 유성탄의 법으로 다 밀고 나가기로 한다.

화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극도의 분노를 참고 있는 것이다. 화정은 무림인으로 나가도 일류 이상의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고수였다. 하지만 그는 뱀 머리는 될지언정 용의 꼬리는 되기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계속 낭인생활을 고집하고 있었고 그 덕에 낭인들 사이에서는 정말 왕같이 군림하고 있었다.

“화 형,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낭인답게 결투로 승부를 결하는 것이 순리일 듯합니다. 어떤 방식을 택하시겠습니까?”

강태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야! 도창! 오랜만이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표도행이 화정 쪽에서 나선 도창을 보며 이죽거렸다.

“표도행! 요새도 남들 말을 쥐새끼처럼 엿듣고 다니냐?”

정보통인 표도행을 비웃는 말이었다.

“야, 이놈아! 이빨 좀 닦고 다녀라! 어떻게 냄새가 여기까지 나냐!”

표도행의 독설에 화가 난 도창이 손에 든 낫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도창은 몸에서 냄새가 좀 심한 편이었다. 그는 자신이 고아로 자라게 된 것도 냄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표도행이 자신의 약점을 건드리자 흥분하고 만 것이다.

표도행도 자신의 쌍검을 꺼내며 맞부딪쳐 나갔다. 표도행의 쌍검은 거의 면도(面刀)와 같은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쟤들 지금 무공을 사용하고 있는 거냐?”

유성탄이 표도행과 도창의 싸움을 보며 강태웅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째 막싸움같이 보인다.”

강태웅은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살짝 놀란다. 그들이 무공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식으로 배운 무공들이 아니다 보니 실전감각에 의지하는 싸움을 많이 하게 된다. 당연히 막싸움같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무공을 모르는 유성탄이 발견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인데 유성탄은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타고난 힘에 순발력, 그리고 이해를 할 수 없는 단단한 몸, 게다가 눈썰미까지… 어쩌면 대형은 배우지를 못해서 그렇지 타고난 무골일 확률이 크다.’

강태웅은 다시 싸움구경에 몰두하고 있는 유성탄을 보며 어쩌면 자신이 생각 이상으로 과분한 대형을 모시게 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쟤들 너무 피를 많이 흘리는데 괜찮을까?”

유성탄이 다시 말했다. 낫과 면검은 강하지는 않으나 무척 날카롭고 가벼운 무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서로 큰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자잘한 상처를 많이 입고 있었고 날카로운 무기이다 보니 온몸에 피가 흘러 보기에 무척 안 좋았다.

“안 되겠다!”

유성탄이 앞으로 나서려고 한다.

“대형, 어쩌시려고요?”

강태웅이 놀라 막으며 물었다.

“어쩌긴 뭘 어째? 내 아우가 저렇게 피를 흘리는데 대형이 되어가지고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런다.”

“안 됩니다. 대형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낭인들에게는 낭인의 법이 있습니다. 지금 대형이 나서서 표 아우를 돕는다면 그건 표 아우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일입니다.”

“야! 강태웅, 내가 솔직히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 게 많다. 하지만 나는 내 가족이 누구에게 다치는 꼴은 못 본다. 표도행이 나와 형제의 의를 맺은 이상 표도행은 나의 가족이고 나는 아우가 피 흘리는 것은 못 본다. 그리고 나 유성탄은 낭인이 아니야. 나는 너희들의 대형이다.”

말을 마친 유성탄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말릴 새도 없었다.

* * *

나 유성탄은 낭인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의 대형이다! 하니까 모두가 감격에 빠지는 거야. 내가 그때 느꼈지. 난 정치를 했어야 하는구나 라고…….

* * *

자신이 한 말에 혼자 너무 멋있었다고 감격한 유성탄은 그대로 도창을 머리로 받아버렸다. 한창 표도행과 손속을 나누던 도창은 갑자기 달려드는 유성탄에게 자신의 낫을 그대로 찍어갔다. 하지만 유성탄은 낫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도창의 낫이 유성탄의 등에 찍힐 간발의 차이로 유성탄의 머리가 도창을 받아버렸고 도창은 그대로 날아가 기절해 버렸다.

만약 유성탄의 낫이 자신의 등을 찍기 직전에 도창을 먼저 받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실로 감탄할 일이었지만 낭인들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놈! 낭인의 법을 어기면 너는 더 이상 낭인이 아니다.”

화정이 대감도를 뽑으며 소리쳤다.

“나, 원래 낭인 아니거든.”

유성탄이 목을 움직여 목에서 두둑 소리가 나게 하더니 간단하게 대답하자 화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화정의 부하들도 전부 달려들었다.

“너희들은 그냥 구경이나 해라.”

유성탄이 뒤를 돌아보며 여유 있게 말했다.

“표도행, 너도 뒤로 물러나라. 이 대형이 뭔가를 보여주겠다.”

유성탄이 어정쩡하게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표도행에게 물러서라고 말했다. 이미 화정까지 달려들고 있는 상태에서 그냥 있다가는 순식간에 목이 달아날 상황인지라 표도행은 생각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모두 무기를 빼 들고 준비해라. 만약 대형이 위험하다 싶으면 곧 달려든다.”

강태웅은 유성탄을 보며 아우들에게 말했다.

“태웅 형님, 그래도 대형 혼자 싸우시게 하는 것은 좀…….”

마동파가 약간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강태웅에게 작게 말했다.

“내 생각하는 바가 있다. 우선은 구경만 하자.”

강태웅은 낭인 중에서는 화정과 함께 최고의 고수에 들었다. 그 말은 나름 보는 눈이 있다는 말이다. 강태웅은 유성탄이 분명 싸울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세히 그것을 확인해 볼 참이었다.

물론 유성탄에 대한 걱정은 전혀 안 했다. 화정이 비록 낭인 중에서는 제법 큰소리는 치지만 척지경의 공격을 머리와 몸으로 막아낸 유성탄을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으악!”

“으아악!”

싸움이 시작되면서 비명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유성탄의 주먹이나 다리에 걸리기만 하면 그대로 기절하는 부하들을 보며 화정이 괴상한 기합을 지르며 계속 공격하고 있었지만 유성탄은 놀랍게도 한 대도 안 맞고 있었다.

“대형이 저렇게 강했나요?”

황대산이 놀라 말하자 마동파도 강태웅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형이 지금까지 자기 실력을 숨긴 것이었나요?”

“아니다. 대형은 분명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련을 적어도 십 년 이상 하셨다. 그렇지 않고는 저런 빠르기와 감각을 가질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수련을 쌓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그렇게 맞았을까요?”

표도행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도 그게 이해가 안 간다. 분명한 것은 대형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모르신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굉장한 대형을 모시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대형이 좀 철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너희는 언제나 대형을 감싸주고 편을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강태웅의 말을 듣는 모두의 얼굴에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하여간에 저 자식은 사람 이상하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어. 내가 대단한 대형이면 거기서 끝내면 되지 철없는 행동은 뭐야! 마지막이 멋이 없잖아.’

싸우면서도 귀가 너무 좋은 유성탄은 강태웅과 모두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얘기의 흐름이 자신을 존경하는 쪽으로 흐르자 기분이 좋아 싸움도 더 잘되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 말이 기분을 나빠지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빠지자 더 싸움이 잘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유성탄이었다.

기분이 좋아도, 나빠도, 모두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유성탄이었다.

“으윽!”

화정은 태어나서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치욕을 겪고 있었다. 데리고 온 오십여 명의 부하들은 이미 뻗어서 꿈쩍도 안 했다. 화정은 자신도 저렇게 뻗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형! 화정 형은 그래도 낭인 중의 낭인 소리를 듣던 분입니다. 죽일지언정 이런 식으로 괴롭히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유성탄이 화정을 무릎 꿇려 놓고는 사정없이 때리고 있자 강태웅이 나서며 말했다.

“너는 이놈이 내게 욕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냐? 나는 나를 욕하는 놈을 그냥 놔둔 적이 없다.”

“대형, 욕은 서로 했습니다. 대형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한 것까지 죄를 준다면 하루도 사건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대형이 화정 형을 이긴 것으로 대형은 낭인들의 대장이 된 겁니다. 화정 형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더 이상 괴롭힌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강태웅의 말을 듣던 유성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죽여버릴까?”

화정은 유성탄의 말에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야! 너도 그냥 죽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냐?”

화정의 얼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있었다. 당연히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낭인 대장으로 군림하던 그로서는 지금 상황에서 살려달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쪽팔렸다. 보통은 이럴 때 ‘남자답게 죽여라! 나는 목숨 따위는 구걸하고 싶지 않다’ 하고 말하면 남자의 기상이 맘에 든다면서 살려주는 것이 낭인 사이의 공식이었다.

그러나…….

화정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유성탄이 그럼 남자답게 죽어라 하면서 당장 죽일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말해 봐!”

유성탄이 다시 대답을 재촉하자 화정은 굳게 마음을 먹고는 말했다.

“살려달라면 살려주실 거요?”

“아니!”

“그럴 거면 물을 필요가 뭐란 말이오?”

“죽여달라고 하면 살려주려고 그랬지.”

“그럼 죽여주시오.”

화정의 말을 들은 유성탄이 강태웅을 보며 말했다.

“자기가 살고 싶지 않다는데 이런 거는 죽여도 되는 거 아니냐?”

유성탄의 어이없는 말에 화정이 끝내 못 참고 소리쳤다.

“이 비열한 놈아! 사람을 가지고 놀지 말고 죽일 거면 죽여라!.”

유성탄은 드디어 기다리던 말이 나왔는지 강태웅에게 말했다.

“봐라! 강태웅이 너는 이놈이 나를 몰라서 그랬으니 봐주라고 했지만 이놈은 이제 나를 확실히 알면서도 욕을 했다. 이런 놈을 어찌 봐주라고 하느냐?”

유성탄의 말을 들은 아우들은 유성탄을 새로운 눈으로 보며 생각했다.

‘야아!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상대로 하여금 욕을 하게 만들어서 때린다. 대형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다. 조심해야지.’

“살려주십시오. 아니 그냥 죽여주십시오.”

유성탄의 매타작을 견디다 못한 화정이 드디어 체면불구하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동파는 화정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있었다. 어떤 독종도 견디지 못하게 아픈 유성탄의 주먹을 자신은 많이 맞아 본 것이다.

“나 유성탄은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사람이야. 난 안 죽여. 계속 괴롭히는 게 더 재미있는데 왜 빨리 죽여서 낙을 놓칠 이유가 없다. 나는 너를 끌고 다니며 매일 다섯 시진씩 지금같이 때릴 거다.”

화정의 얼굴이 노래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맞은 것이 한 시진도 채 안 됐는데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일 다섯 시진이라면 화정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마동파! 내 돈 가지고 도망간 년 아직 못 잡았지?”

뜬금없는 유성탄의 말에 마동파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는 급히 말했다.

“예! 아직 못 잡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 돈을 훔쳐가! 벼룩의 간을 훔쳐갈 계집 같으니라고. 아! 이럴 때 누가 내가 본 손해를 메워주면 기분이 좀 좋아질 텐데.”

유성탄의 말을 들은 화정은 역시 경험이 많았다.

“제가 좀 모아 놓은 돈이 있습니다. 제법 됩니다.”

화정이 허리춤에서 전낭을 꺼내더니 유성탄에게 바쳤다.

“이 새끼가! 누구를 거지로 아나? 야! 내가 니 돈을 왜 받아? 너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야?”

유성탄이 방방 뜨자 화정이 급히 말했다.

“저는 단지 대형께서 돈을 도둑맞았다고 하셔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아는 화정답지 않게 느글대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는 화정이었다.

“그래… 뭐 나는 안 받고 싶지만 니가 안 받으면 죽을 것 같아 그러니 받아주지 뭐.”

전낭을 받아 든 유성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무게가 묵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봐라.”

‘죽일 놈! 이럴 거면 그냥 돈을 달라고 하지 다 때려놓고… 으흑!’

너무 간단하게 가라고 하는 유성탄을 화정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힘들게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사라져갔다.

결국 그렇게 때린 이유가 돈을 알아서 바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챈 아우들의 눈에 감탄을 넘어 공포의 빛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대형, 그냥 전낭을 뺏으면 될 걸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때리고 뺏습니까?”

청루로 돌아가며 마동파가 물었다.

“이 자식이 미쳤나? 내가 언제 뺏었어? 그놈이 존경해서 그냥 받아달라고 사정해서 받아준 거다.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도둑질이나 강도짓은 나쁜 짓이라고.”

낭인촌에는 아직도 많은 낭인들이 남아 있었다. 용병으로 나가지 못했던 낭인들은 돈이 없었고 용병으로 갔던 낭인들은 상당히 큰돈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당장 갈 곳이 없었다.

“화정 대형이 마질대형에게 깨졌다면서?”

“그냥 깨진 게 아니라 완전 작살이 났다고 하던데…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살려달라고 빌기까지 했다는 소문까지 돌더라고.”

“설마……! 화정 대형이 어떤 사람인데 죽으면 죽었지 빌기까지 했겠어.”

“하여간, 소문이 맞건 틀리건 낭인세계는 완전히 마질대형 판이 되어 버렸어.”

“난 아무래도 낭인을 때려치우고 어디 표국에 표사 자리라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네. 내가 마질대형을 본 적이 있는데 진짜 상종할 사람이 아니더라고.”

낭인세계에 새로운 대장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낭인촌을 휩쓸었다. 곧 소문은 북상하여 천하의 낭인들이 다 알게 될 것이다. 화정은 일개 지역구의 낭인 대장이 아니라 전국구였다. 이제 내로라하는 천하의 낭인들의 대장들도 유성탄의 이름을 듣게 될 것이었다.

* * *

유성탄은 오늘도 청루의 초앵의 방에서 코딱지를 후비며 뒹굴거리고 있었다. 청루의 주인으로서는 환장할 지경이었지만 자기 집의 기생이 돈을 훔쳐 달아났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앓고 있었다.

“대형, 글을 좀 배우시지요?”

강태웅이 유성탄을 보며 말했다.

“내가 네 살 때 천자문을 다 뗀 천재라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리셨지 않습니까? 남자가 글을 모르면 어디 가서 행세하기 힘듭니다.”

“나는 글 몰라도 얼마든지 행세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라.”

“대형,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예쁜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예쁜 여자일수록 글을 모르는 남자는 사람 취급을 안 한다니까요.”

마동파가 슬쩍 미끼를 던졌다.

‘예쁜 여자는 글을 모르면 사람 취급을 안 한다고?’

속으로 잠깐 생각하던 유성탄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여자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이제 여자라면 신물이 난다.”

“아이 참! 대형께서 여자를 뭘 안다고 벌써 신물이 나십니까? 겨우 초앵이 두 번 본 게 다 아니십니까? 초앵이는 기생입니다. 화류계 여자라고요. 진짜 여자를 대형이 만나시면 아하! 이거로구나 하신다니까요.”

마동파의 얘기를 들으며 유성탄의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유성탄은 진짜 여자가 어떤 건지 만나보고 싶었다.

“좋다! 그럼 진짜 여자를 내가 만나면 그때부터는 글을 배우마. 어떠냐?”

“진짜 여자라면 어떤 여자가 있겠냐?”

강태웅도 여자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유성탄이 글을 배운다는데 한번 찾아볼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진짜 여자라면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을까요? 우선 예쁜 여자가 있고, 착한 여자가 있고, 그리고 똑똑한 여자가 있지 않습니까?”

장우왕이 여자라면 자신도 자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어떤 여자를 진짜 여자라고 대형이 생각하겠느냔 말이다.”

“예쁘면서 착하고 거기다 똑똑하기까지 하다면 대형이 진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표도행의 말이 끝나자 모두 쳐다본다.

“아우는 그런 여자가 대형을 쳐다라도 볼 거라고 생각하냐?”

표도행은 철패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건 좀 어렵겠군요. 그럼 예쁘면서 착한 여자는 어떻겠습니까? 예쁘면서 착하고 좀 바보 같은 여자라면 대형을 보고 사귈지도 모르지 않을까요?”

여섯 명의 아우들이 모여 꽤 긴 시간을 의논했지만 결론은 기생이 아닌 이상 양갓집 규수로서 유성탄과 사귈 여자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림여자 중에서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무림여자들 중에서 예쁜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전부 다 남자같이 거세고 얼굴도 완전 호박들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무림사봉이니 그런 여자들은 예쁘다고 하던데…….”

“그거야 무림여자들 중에서 좀 괜찮다는 말이지요. 제가 언젠가 남궁세가에 용병 일을 갔다가 사봉 중의 한 명인 남궁혜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봉 중에 제일 예쁘다고 해서 상당히 기대를 했는데 솔직히 여기 초앵이보다도 못생겼어요. 여자가 선도 굵고 키도 훌쩍 큰데다가 걸음걸이도 완전 남자라니까요. 난 그런 여자 옷 벗고 덤벼도 싫습니다.”

황대산이 자신의 얼굴은 생각지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저는 대산 형님께서 그렇게 눈이 높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마동파가 웃으며 말하자 장우왕이 거든다.

“눈이 높은 게 아니라 완전 포기상태다. 보니까 무조건 여자혐오증에 걸린 거다. 말로는 저래도 저번 창기방에서 정말 추녀가 들어왔는데도 좋다고 자더라.”

“우왕 형님, 말은 똑바로 해야지요. 그건 공짜로 준다니까… 제가 공짜를 무척 좋아하지 않습니까!”

얘기가 자꾸 다른 데로 새자 강태웅이 손을 들었다.

“아무래도 우리 머리로는 어떤 여자가 진짜 여자인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그 문제는 좀더 생각해 보고 왕태산은 언제 올라가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자.”

“제 생각으로는 내일 당장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우리도 이만 이곳을 떠야 하고 뭔가 세력을 만들려면 돈은 필요하고 하니 빨리 가서 결단을 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표도행이 말하자 마동파도 찬성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세력을 만들려면 모르는 놈들보다는 아는 놈들이 좀 편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낭인촌에 애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황금 백오십 냥이면 한 오십 명 정도는 일 년 정도 끌고 다녀도 될 돈입니다. 일 년 안에 구역 하나 잡아 세력을 만들면 수입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난 반대다.”

장우왕이 갑자기 말하자 모두 쳐다본다.

“난 무림인들의 속성을 잘 안다. 옛날 백정질 할 때부터 무림인들에게 고기를 납품했다. 그 덕에 하급무사지만 무림세가의 무사도 좀 알고 여러 방파의 사람들도 안면을 터서 얘기해 본 적이 있다. 만약 우리가 오십 명씩 끌고 다닌다면 당장에 칼침 맞는다. 대형이야 맷집이 좋으니 모르겠지만 우리까지 다 보호하시지는 못할 거다.”

“우왕의 말이 맞다. 지금 우리 일곱 명이 몰려다니는 것도 그들의 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데 오십여 명이나 낭인들을 몰고 다닌다면 관부부터 우리를 주시할 것이다. 우선은 세력보다 우리의 이름을 알리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름이 나면 함부로 하지 않는 게 또 무림인이다.”

강태웅이 장우왕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그럼 우선 우리의 이름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부터 생각해 봐야겠군요.”

황대산이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내 계획은 왕태산부터 시작이다. 어차피 우리는 실력이 딸려서 대형에게 묻어가야 한다. 그러니 대형의 이름을 천하에 알리는 데에 주력하는데 왕태산의 산적은 이름을 알리는데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강태웅의 말을 들으며 모두의 얼굴이 침울해진다. 모두 나름대로 실전경험도 많고 절기는 아니지만 무공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내공이 없었다. 가장 내공이 높은 강태웅이 겨우 삼십 년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노인이 자신의 내공을 강태웅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간신히 십 년 남짓이나 될 것이다.

“천년성형하수오나 만년삼왕 같은 것을 먹으면 공력이 는다는데 그런 거라도 하나 어디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군요.”

표도행이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꿈같은 얘기를 한다.

“그런 것보다 더 효과가 좋다는 것을 제가 아는데…….”

마동파의 말에 모두 솔깃한다. 여간해서는 쓸데없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강태웅까지도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그들에게 내공을 올려준다는 말은 최고의 소원이었다.

“저…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무산의 신녀궁에 천기단을 먹으면 단숨에 일 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던데요.”

마동파의 말이 끝나자 모두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식으로 고개를 돌린다.

“동파 형님, 말을 하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말을 해야지요. 무산신녀궁이 어딘데 거기서 우리에게 천기단을 준답니까?”

“맞습니다. 무산신녀는 여자 중 최고의 고수라지 않습니까? 거기다 천하제일미녀에 성스럽고 똑똑하기까지 하다고 소문이…….”

말하던 철패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모두 서로 쳐다보더니 동시에 소리쳤다.

“진짜 여자!”

“그러니까 무산신녀하고 대형이 사귈 수 있기만 하다면 천기단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무산신녀 같은 여자가 대형 같은 사람을 사귀려고 할까요?”

표도행이 강태웅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산신녀는 천하에 스스로 공표한 게 있다. 천하제일영웅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대형을 천하제일영웅으로 만들면 된다.”

“그게 더 어렵겠습니다. 이미 낭인들 사이에서도 악질로 유명한 분인데 어떻게 영웅을 만듭니까?”

“영웅이 뭐 따로 있겠느냐? 그냥 영웅이라고 소문이 나면 된다. 우리는 안 되는 게 없는 낭인이다. 해보자!”

“형님 말은 알겠는데 솔직히 낭인이라는 게 되는 것도 없는 부류 아닙니까. 하여간에 노력해 보지요.”

무산의 신녀궁은 무림의 비역 중의 하나였다. 의가로 유명한 신녀궁은 무림인들이 꿈에도 갈망하는 여러 영약을 무수히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영약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노리는 사람이 많은 무림에서 신녀궁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녀궁의 무공이 강호의 일절이었고 신녀궁을 돕는 무림인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신녀궁에는 하나의 전통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신녀의 혼인이었다.

다음 신녀가 성인이 되면 천하에 남자를 구하는 서찰을 보낸다. 물론 누구에게 서찰을 보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찰을 받은 사람은 싫으면 안 가도 된다. 하지만 남자라면 천하제일미녀라고 소문난 신녀를 만나러 가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물론 진짜 천하제일미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대로 신녀는 언제나 예쁘고 똑똑하고 성스럽다고 소문이 났다.

신녀궁에 도착한 남자들은 서로 간에 만나지도 않았다. 결국 누가 신녀의 남편으로 점지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남편이 되었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녀궁에서는 신녀가 혼인을 하면 했다고 발표를 했고 만약 배필을 맞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시 서찰을 보낸다고 세상에 통고를 했다.

신녀궁에서 이십 년 만에 신녀의 배필을 찾는다는 공고를 한 것이 몇 달 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서찰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강태웅은 유성탄에게도 서찰이 오도록 이름을 날리게 할 생각이었다.

“강태웅 형님, 신녀궁에서 배필을 구한다는 공고를 한 게 벌써 석 달 전인가 그런 걸로 아는데 대형이 서찰을 받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공고를 하고 일 년간 계속 초대장이 나간다고 들었다. 물론 그 전에 배필을 정한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배필은 하늘이 정해준다고 했다.”

* * *

아우들이 나에게 여자를 붙여주려고 무척 신경을 쓴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걔들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야, 내가 엄청 눈이 높거든!

* * *

유성우는 진시에 합격은 했지만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부름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성우 아버지! 성우가 낮은 직책이라도 한자리 하도록 힘 좀 써봐요.”

강추화는 아침부터 장작을 쪼개고 있는 유성우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구… 당신도 알잖아. 솔직히 나도 지금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야.”

유정삼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포장에 오른 지 벌써 삼 년째였다. 포장이 되어 삼 년이 되어도 지위가 오르지 못하면 ‘왜 안 그만두나?’ 하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 년이 되어도 지위가 오르지 못하면 타의로 그만두어야 하니 이제 이 년만 지나면 그도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남에게 뜯는 재주가 없는 그로서는 위에 바칠 것도 없었다. 이미 위는 위대로 아래는 아래대로 그에게 언제 그만두나 하며 계속 눈치를 주고 있는 것을 모른 척하고 억지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의 녹봉까지 없으면 가족은 손가락을 빨고 지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었다.

‘아! 내가 빨리 자리를 얻어야 하는데, 열여덟 살이나 되어가지고 밥값도 못 하니 부모님 뵐 면목이 없구나.’

장작을 패면서 유성우는 부모가 자신을 쳐다보며 뭔가 말을 주고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똑똑한 그가 두 분이 말하는 것이 무엇일지 짐작하지 못할 리 없었다. 유성우의 얼굴에 시름이 가득했다.

“부르셨습니까?”

유정삼은 포청에 등청하자 현령이 부른다는 소리에 놀라 달려갔다. 그만두라는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쿵쿵 뛰는 가슴을 안고 뛰어간 것이다.

“유 포장인가? 들어오게.”

한주현 현령 갈추산은 유정삼이 도착하자 아주 다정하게 말했다.

“자네 아들이 이번 성에서 개최한 진시에 장원했지?”

유정삼이 자리에 앉자 갈추산은 다시 한 번 다정하게 물었다.

“예, 제 아들놈이 저랑은 많이 달라서 좀 똑똑합니다.”

유정삼은 유성우의 말이 나오자 기분이 좋은지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하하! 그래그래. 똑똑하다고 소문이 났더군.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네 아들이 나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되겠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자네 아들을 내 곁에 두고 일을 좀 시키고 싶다는 말일세.”

“그럼… 벼슬을?”

유정삼은 너무 기뻐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벼슬이랄 것까지는 없고 우선은 내 곁에서 내 일을 좀 돕다가 기회가 되면 벼슬 한자리 마련해 주겠다는 말일세. 어떤가?”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그 은혜를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어쩌구저쩌구할 것도 없습니다. 무조건 현령님을 도우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유 포장 성격이 시원시원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구먼. 좋네, 그러면 내일부터 내게 오라고 전하게. 그리고 자네 아들에게는 누구에게도 나를 돕는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게. 자네도 마찬가지고. 만약 소문이 나면 자네 아들이 벼슬을 받았을 때 내가 도와서 벼슬을 얻었다고 구설수에 오르게 될지도 모르니까. 알겠나?”

“걱정 마십시오.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겠습니다.”

“어째서 저런 놈의 아들을 이용하시려고 하십니까?”

유정삼이 나가자 갈추산의 앞에 험상궂은 얼굴을 한 애꾸가 나타나서는 물었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나만 믿게. 저 유정삼이라는 포장은 믿을 만하네. 능력은 하나도 없지만 주위에 신망을 많이 받는 편이지. 그리고 그 아들놈도 제법 똑똑하다고 소문났고. 우리가 꾸미는 일은 모두 그 아들놈이 하게 될 거야. 결국은 걸리게 되겠지. 그리고 그 죄는 모두 저 부자가 뒤집어쓸 거고. 하하하!”

“그래도 포장 정도 되면 뒤탈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을까요?”

“이름만 포장인 자야. 할아버지 때부터 포쾌 일을 한 이곳의 토박이라서 포장이 된 것일세.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귀신도 모르게 제거하면 누구도 시비 걸 일이 없는 자들이지. 다른 놈들은 별 볼일 없는 포졸도 나름 아는 자들이 있어서 더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내가 가장 뒤탈이 없는 자들로 고른 것이니 걱정 말게.”

“알겠습니다. 그럼 현령님만 믿고 회주님께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회주님께는 내 공을 잊으시면 안 된다고 꼭 전하게.”

갈추산은 유정삼과 유성우의 뒤에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 버티고 있는지 아직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포천망쾌」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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