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첫 경험 (6/79)

제6장 첫 경험

“대형으로 모시겠습니다.”

강태웅에게 말을 들은 철패는 설득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그만큼 강태웅의 말이라면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따르는 철패였다.

‘이놈은 뭔 덩치가 이렇게 큰 거야. 이런 놈이 옆에 있으면 내가 좀 돋보이지를 않을 텐데… 고민이네.’

유성탄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철패를 보며 은근히 갈등하고 있었다. 근육이 우락부락한 철패는 얼굴도 선이 굵은 호남형이었다. 그런 철패가 옆에 있다면 유성탄이 좀 초라해 보일 것은 자명했다. 확실히 유성탄은 쪼잔한 데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대형으로 모신다는 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말 잘 듣고 나한테 돈 빌려달라는 소리 같은 것은 하면 안 된다.”

“죽음으로 대형을 모시겠습니다.”

치사한 말을 하는 유성탄이었지만 철패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엄숙하게 머리를 땅에 부딪칠 정도로 바짝 숙이며 대답했다.

며칠이 흘렀다. 돈은 나오고 전투는 없으니 유성탄에게는 평화 그 자체였다.

“대형, 혹시 청루에 가 보신 적 있습니까?”

“청루? 그건 뭐 하는 데냐?”

“아직 청루도 모르십니까?”

마동파는 놀란 눈을 하더니 혹시 하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여자랑 그것도 못 해보신 거 아닙니까?”

“여자? 여자랑 그게 뭐냐?”

여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유성탄이었지만 본능적으로 뭔가 확 끌리는 걸 느낀 그는 마동파의 얼굴을 빤히 보며 아주 흥미롭다는듯이 물었다. 그러자 마동파가 놀라 강태웅과 철패를 불렀다.

“형님 이리 와 보시오. 동생도 이리 오고.”

“무슨 일이냐?”

강태웅이 가까이 오더니 물었다.

“대형께서 아직 여자랑 그것도 못 해봤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곧 낭인세계를 통일할 분이 여자랑 그것도 못 해봤다면 정말 천하가 비웃을 겁니다.”

“대형! 정말 여자랑 안 해보셨습니까?”

철패까지 놀랍다는 듯이 묻자 유성탄은 여자랑 뭔가를 안 한 것이 큰 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들이 누구를 바보로 아나! 야, 내가 누구냐? 유성탄이야, 유성탄! 그런 내가 여자랑 아직도 그것도 못 해봤다고 생각했냐? 이것들이 대형을 뭘로 보고…….”

“여자랑 그거 하는 게 뭔데요?”

마동파가 물었다.

“이게 정말! 너 오늘 나한테 좀 맞고 싶냐? 앙!”

강태웅과 마동파 그리고 철패는 유성탄이 그게 뭔지 모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알겠습니다. 해보셨다니까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네요. 그럼 됐습니다.”

마동파가 슬쩍 물러서자 유성탄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이 씨! 이게 궁금하게 해놓고 싹 빠지면…….’

유성탄은 이상하게 그게 뭔지 정말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미 큰소리를 쳐 놓았으니 동생들에게 물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유성탄 잠 못 들게 생겼다.

“청루에 가시면 대형께서는 그냥 가만히만 계십시오. 그럼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말입니다.”

유성탄은 마동파에게 여자 어쩌구를 듣고 나자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형 체면에 안다고 해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은근하게 마동파를 찝쩍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동파는 유성탄이 그에게 찌질대는 이유를 단박에 알았고 철검보 총관을 찾아가 너무 오래 참았더니 폭발할 지경이라 말하고는 하룻밤 놀고 오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용병들에게는 한 달에 이틀 정도의 외박을 주었다. 한창 혈기왕성하고 거친 용병들에게 금욕을 강요한다는 것은 전투능력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 된다.

그리고 지금 마동파를 나머지 세 명이 따라가고 있었다. 청루는 강태웅도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리 즐기지를 않았고, 철패는 좋아하기는 했지만 돈이 충분치 못하니 자주 가지 못하고 한 번에 해결되는 홍루나 창기방을 애용하는 편이었다.

유성탄은 아예 여인의 손도 잡아본 적이 없었으니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머머! 마 대협께서… 어떻게 이렇게 오랜만에 오신 거예요.”

마동파가 들어서자 상당히 많이 드나들었는지 대접이 보통이 아니었다.

“대형, 이런 곳에서는 한번 얕보이면 병신 취급 받습니다. 초짜라면 완전히 벗겨 먹으려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아주 경험이 많은 듯 무게만 잡고 계십시오. 그러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마동파가 유성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꿀떡! 그래 걱정 마라. 내가 무게라면 또 한 무게 하잖냐.”

이미 입구에서부터 본 낭인촌의 여인들과는 전혀 다른 예쁜 기생들의 모습에 홀딱 간 유성탄은 침까지 꿀떡 삼키며 흥분해서 대단히 가볍게 대답했다.

“강태웅 형님은 잘하실 거고, 철패! 너는 여자들 너무 겁주지 마라. 겁먹으면 잘 못 논다.”

“걱정 마슈! 나도 알 만큼은 알고 있소.”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유성탄의 기분이 최고로 올라갔다.

‘컥컥! 야, 이런 천국 같은 곳이 있었다니… 내가 어찌 이런 곳을 모르고 있었을꼬……. 매일 와야지.’

유성탄이 당돌한 결심을 하고 있는데 유성탄의 옆에 앉은 기생이 마동파에게 뭔가 주의를 받은 것이 있는지 상당히 저돌적으로 유성탄의 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유성탄은 손을 발발 떨면서 갈등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자꾸 기생의 옷 속으로 손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유성탄을 보며 기생이 생긋 웃더니 유성탄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속으로 넣어줬다.

‘으익! 이게 무슨 기분이냐?’

기생의 가슴에 손을 넣자 유성탄은 너무 이상한 느낌에 놀랐다. 처음에는 그냥 기분이 좋고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황홀한 기분만 들었지만 자꾸 그녀의 가슴을 더듬는데 이상하게 어렸을 때의 기억이 갑자기 난 것이다. 술까지 어느 정도 취하니 잘 안 돌던 머리가 원활하게 도는 것 같았다.

‘맞아! 엄마의 젖이다. 잘 때마다 엄마의 젖을 만지고 잤었는데…….”

유성탄은 갑자기 가슴이 복받쳐왔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대형! 왜 그러십니까? 야, 너 대형에게 최상의 대접을 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했기에 대형께서 우시게 만드는 거냐!”

마동파가 놀라 유성탄의 옆에 앉아 있는 기생을 보며 험악한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녀가 항변하듯이 소리쳤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유성탄이 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야, 마동파! 나는 지금 무지 즐거운데 왜 분위기 깨고 지랄이냐? 이쪽은 신경 끄고 너나 재미있게 놀아라.”

“알겠습니다, 대형!”

마동파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크게 대답했다. 유성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위에 심어주기에 넉넉했다.

“아이고! 목 말라라…….”

새벽에 갈증을 느끼며 일어난 유성탄은 옆에 옷을 벗고 누워 있는 여인을 보며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여자랑 한다는 게 뭔지 안 것이다.

여인은 이곳에서는 미인으로 알아주는 이름난 초앵이라는 기생이었으니 얼굴이나 몸매에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거기다 청루 주인의 잘해줘야 한다는 명령 아닌 명령까지 받은 그녀는 자신이 아는 모든 기술을 써서 유성탄을 대했으니 그 만족도는 처음 하는 그로서는 황홀한 정도를 넘어 몽롱할 정도였다.

본래 청루의 기생은 술과 기예만 팔 뿐 몸은 팔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나 돈만 많으면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오늘 하루에 마동파가 쓴 돈은 무려 은자 삼십 냥이었다. 중원의 기루도 아닌 남쪽 구석의 기루로서는 엄청난 손님이었으니 당연히 예외가 되었다.

“그런데, 대형이라고 들었는데 맞아요?”

초앵은 유성탄이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며 애교스럽게 물었다.

“하하하! 내가 바로 유성탄 대형이다. 누구든 까불면 내게 말해라.”

유성탄의 큰소리를 들으며 초앵이 다시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오실 거예요?”

“자주 올 것이다. 정말 자주 올 것이야!”

유성탄은 자기에게 약속하듯이 확실하게 대답했다.

“아이, 좋아라! 호호호… 그런데 저한테 아무것도 없어요?”

이미 마동파에게 충분한 화대는 받았지만 유성탄이 말하는 거에서 어리숙함을 발견한 초앵이 더 뜯을 생각으로 애교를 다시 떤다.

“뭐? 내가 너한테 줄 거라도 있었냐?”

유성탄은 자신이 혹시 술 먹다가 취해서 취앵에게 빌린 것이라도 있었나 생각해 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 참! 왜 이러실까… 제가 어젯밤 대형을 즐겁게 해드렸잖아요. 그러면 그 보답으로 돈 같은 것 있으면 좀 주는 거예요.”

유성탄은 초앵이 돈 얘기를 꺼내자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어제 분명 즐거워하기는 나보다 네가 더 즐거워한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네가 나한테 돈을 줘야지 왜 내가 너한테 돈을 줘야 한단 말이냐?”

초앵은 유성탄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세상에 기생하고 놀고서 기생보고 돈을 달라는 손님이 어디 있어요!”

“그렇다면 손님한테 돈 달라는 기생은 어디 있다는 말이냐?”

“전부 다 그래요!”

유성탄은 결국 동전 하나를 초앵에게 빼앗겼다. 초앵은 나가는 유성탄을 보며 하녀를 시켜 소금을 뿌리라 명했지만 유성탄이 동전이나마 하나라도 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 *

“야! 마동파, 오늘은 안 가냐?”

유성탄은 기루에 갔다 온 후 하루가 멀다 하고 마동파를 졸랐다. 늦게 난 바람이 더 무섭다고 유성탄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돈에서 여자로 바꿀까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특히 남자의 몸과는 확연히 달랐던 여인의 벗은 몸이 매일 머리에 떠올라 다시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대형! 여기의 외박은 한 달에 한 번뿐입니다. 그러니 한 달은 더 있어야 갈 수 있습니다.”

마동파는 유성탄을 기루에 데려간 것을 엄청 후회하고 있었다. 한 번 자기가 샀으면 다음은 자기가 사겠다 하는 그런 예의는 있어야 하는데 유성탄에게서 그런 것을 바라기는 애당초 틀렸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번 순찰 건으로 큰돈이 들어와 한 번 크게 낸 것인데 유성탄은 너무 쉽게 또 가자고 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외박의 규칙을 핑계로 압력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유성탄은 한 달 내내 여자와 한 것을 사방에 자랑하고 있었다.

* * *

아마 어떤 남자도 나 같지는 못할 거야. 하하하! 그 기생이 내가 얼마나 좋았으면 자기가 돈을 줄 테니 그냥 와달라고만 하는 거야! 그래도 사내대장부가 어찌 여자에게 홀려 정신을 놓겠어?

내가 단호하게 그랬지 ‘나는 정말 바쁜 사람이다. 사방에서 나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니 보고 싶더라도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라.’ 하하하! 그때 난 알았지.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여자도 나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 * *

‘씨! 내일이면 한 달이 되는 날인데…….’

유성탄은 산속을 걸어가며 계속 씨부렁거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마동파가 말하던 딱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기루에 갈 생각으로 잠까지 설치던 유성탄은 갑작스런 전투 명령으로 용병 모두가 소집되자 안 가겠다고 처음에는 버텼다.

하지만 마동파까지 가게 되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아직은 마동파 없이 혼자 기루에 가는 것은 불안한 유성탄이었다.

“대형! 이번 전투는 아무래도 큰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는 언제나 뒤를 조심해야 합니다. 또 너무 기분 내다가 잘못하면 적진 깊숙이 들어가 혼자 남게 되면 십 중 십 죽게 됩니다. 대형은 이런 전투는 처음일 테니 저만 따라 다니십시오.”

강태웅이 유성탄의 옆으로 가더니 작은 소리로 주의사항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 유성탄에게는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대형! 싸움을 빨리 끝내면 빨리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매일 조르던 마동파가 유성탄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는지 위로 차원의 말을 전해주었다.

“뭐! 싸움이 빨리 끝나면 빨리 돌아갈 수 있다고!”

금방 유성탄의 귀에 들어간 말이었다. 그리고 유성탄은 여간해서는 꺼내지 않던 박달나무로 만든 육모방망이를 꺼내더니 손에 움켜쥐었다. 빨리 싸움을 끝내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다짐하는 유성탄이었다.

* * *

용주는 안남과의 접경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비월문의 무사와 남무림의 무사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안남과 통하는 중원의 교역이 전부 이곳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안남인과 중원인의 비율이 거의 같은 지역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비월문이나 남무림이나 이곳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경제활동의 중심지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만약 용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비월문도 안남의 부족들에게 경원시를 당할 것이었고 남무림은 남무림대로 관부의 간섭을 받게 된다. 결국 오월동주를 하고 있는 곳이 용주였다.

그런데 용주에서 약 오 리 정도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병발이라는 곳이 나온다. 그곳은 용주와는 달리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유성탄을 비롯한 용병이 움직인 곳이 바로 병발이었다. 도착을 하니 생각보다 엄청 많은 용병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큰 싸움이 있을 모양인데요?”

마동파가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사방에는 각 파의 용병들이 서로 모여서 집단을 이루고는 사방을 째려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낭인들은 어딘가에 소속만 되면 패거리 기질을 보인다. 지금도 서로 기선을 제압하려고 눈을 부라리고는 탐색을 하고 있었다. 특히 대장이 강하면 엄청 무게를 잡는다.

유성탄이 앞으로 나서고 옆으로 강태웅과 마동파 그리고 철표가 포진한 상태에서 뒤로는 철검보의 용병들이 쫘악 따르자 제법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대형이 되니까 좋은 것도 있구나. 저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는 놈들 좀 봐라! 헤헤헤!’

유성탄은 채신머리없이 속으로 웃으며 어깨에 힘을 팍 주고 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었다. 거기다 다른 용병들에게는 눈을 부라리던 무리들이 유성탄 일행만 지나가면 구십도로 허리를 숙여 절을 하니 유성탄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했다. 그들이 인사를 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니고 강태웅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유성탄이었다.

“태웅 형님!”

다른 용병 무리 사이에서 엄청난 덩치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강태웅을 부른다.

“황 동생, 오랜만이네.”

강태웅도 반갑다는 듯이 웃었다.

“대산 형님, 오랜만입니다.”

철패도 아는 인물인지 인사를 한다. 그는 마웅보의 용병 대장인 황대산이었다. 웅면탈혼이라는 낭인에게는 드문 별호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이름 그대로 마치 곰 같은 얼굴에 칼자국이 사방으로 나 있어 얼굴만 봐도 여간한 사람은 사색(死色)을 짓게 만들 정도였다.

‘뭐야! 이 자식은… 하여간에 강태웅 이거는 알아도 어떻게 저렇게 흉악하게 생긴 놈들만 아는 거야, 값 떨어지게. 에이…….’

‘이자가 누군데 태웅 형님이 옆에서 따르는 거지? 생긴 거 봐라. 엄청 짜증나게 생긴 게 악질 티가 팍팍 나는구나.’

대형이 될 유성탄과 셋째 동생이 될 황대산과의 첫인상에 대한 서로의 감상이었다.

“대형, 이 친구가 우리 낭인칠웅에 들 친구입니다. 황대산이라고 생긴 것은 이래도 의리 하나는 죽여주는 친구입니다.”

‘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짜증나게 하네. 내가 분명 의리가 밥 먹여주는 거 아니라고 그랬는데…….’

유성탄은 강태웅의 소개에 짜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의리 없는 유성탄에게 의리를 자꾸 강조하니 마음에 부담이 너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산 아우도 인사하게. 내가 대형으로 모시기로 한 유성탄 형님일세. 전부터 내가 찾던 영웅이 되실 분이네. 나를 믿는다면 자네도 이제부터 대형으로 모셔야 할 것이네.”

강태웅의 말이 끝나자 황대산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유성탄의 앞에 넙죽 엎드리더니 절을 한다.

“유성탄 대형께 소제 황대산 인사드립니다.”

그의 행동으로 보아 평소에 강태웅이 얼마나 그의 존경을 받아왔는지 알 만했다.

낭인들에게 서열은 대단히 중요했다. 그래서 낭인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첫날부터 싸움이 끊이지 않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서열싸움 때문이었다. 결국 강한 자가 대우를 받는 곳이 낭인세계였다. 그런데 또 다른 서열을 정하는 방식이 자신이 모시는 형님이 누군가를 대형으로 모시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들 역시 대형으로 모시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가 보기에 영 아닌 사람을 모시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때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래도 참고 대형으로 모시거나 형님으로 모시던 사람을 떠나는 것뿐이었다.

황대산은 강태웅의 말에 아무런 의심이 없이 유성탄을 대형으로 인정한 것이다.

“일어나게. 하하하! 이렇게 아우를 만나니 내 기분도 참 좋네!”

떠나기 전 마동파에게 들은 대로 말을 한 유성탄이 손을 들어 황대산의 어깨를 잡더니 꽉 껴안았다. 낭인들의 인사법이었다.

‘씨 이게 뭐야! 청루에 가서 초앵이나 안아야 하는데 이런 흉악하게 생긴 놈이나 안아야 한다니…….’

그러자 주위에 있는 용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강태웅이나 황대산은 이곳 용병만이 아니라 낭인세계에서도 이름난 호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유성탄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낭인세계에 신성이 나타난 것이었다.

인사가 끝나고 유성탄은 주위를 쓱 돌아보았다. 그러자 사방에 있던 용병들의 눈이 아래로 깔린다. 감히 유성탄의 눈과 마주칠 배짱을 가진 용병은 이미 이곳에 없었다. 그리고 유성탄은 기분이 무지 좋아졌다.

* * *

“내가 스윽 하고 한 번 좌우를 둘러보니까 모두의 눈이 쫘악 아래로 깔리는 거야! 한마디로 그냥 나를 보자마자 존경이 시작된 거지. 그래서 내가 생각했지. 얼굴이 너무 존경스럽게 생겨도 불편하구나.”

* * *

밤이 되자 음식과 고기가 푸짐하게 나왔다. 용병들에게 내일 싸움에서 힘을 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술은 한 잔도 반입이 안 되었다. 낭인들의 특성상 술이 나오면 자제를 못 하고 무한정 마실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술은 전투력을 엄청 떨어뜨린다.

“태웅 형님, 이 정도의 대접이면 내일 싸움이 보통 격렬한 게 아닐 듯싶습니다.”

마동파가 푸짐한 음식과 고기가 반갑지만은 않은 듯이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낭인이 받았다.

“비월문에서 긴 싸움을 이번에 끝내자고 연락을 한 모양입니다. 자기들이 지면 더 이상 월경을 안 하겠다. 대신 이기면 광서의 반까지는 비월문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인정을 해달라고 했다 합니다.”

말한 낭인은 표도행이라는 자로 역시 강태웅이 말했던 칠웅에 들 자였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비밀일 것 같은데…….”

완전히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같이 생긴 장한 하나가 물었다. 그는 강태웅과 가장 가까운 친우인 장우왕이라는 낭인이었다.

“우왕 형님도 참! 얘 특기가 그런 거 알아내는 것 아닙니까.”

황대산이 커다란 고기 하나를 들어 우적우적 씹으며 말했다.

“그런데 다면 다지 절반은 뭐래?”

“더 올라가면 공래파가 있지 않습니까! 공래파와는 시비를 붙지 않으려는 심산이지요. 아무래도 공래파를 건드렸다가는 구파일방이 나설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비월문의 문도가 많다고 해도 순식간에 작살이 날 테니 피하는 거지요.”

“공래파는 구파에 끼지 못하잖아?”

“구파에 끼지는 못하지만 거의 한통속이지 않습니까? 건드리면 분명 구파에서 도울 겁니다. 그게 대파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이니까요.”

표도행은 무림에 대해 사정이 아주 밝은지 척척 대답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강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한 명이 일류에 들어선 낭인 중에서는 최고의 고수들이었다. 거기다 서로 간의 개성도 달랐고 특기도 달랐다.

강태웅이 말하던 칠웅이 드디어 다 모인 것이었다. 이미 유성탄을 대형으로 모신다는 인사는 다 했고 이제 시간을 잡아 형제의 의식을 치르기로 다 약속이 된 상태였다. 그들은 전부 다른 파의 용병 대장이었는데도 여기 와 있었다. 하지만 대형인 유성탄은 전혀 재미가 없는 듯 비스듬히 누워 눈만 감고 있었다.

“대형! 대형도 한잔 하십시오.”

철패가 유성탄이 힘없이 누워 있자 이상하다는 듯이 한잔 권했다. 아무리 술의 반입을 막았다 해도 그들 정도의 용병 대장 정도 되면 한 병 정도는 얼마든지 감추어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다.

“술은 여자가 있어야 마시는 거다. 너희나 먹어라. 나는 흉악하게 생긴 너희들과 술 먹고 싶은 생각 없다.”

유성탄이 눈도 뜨지 않고 말하자 장우왕과 황대산의 얼굴색이 변했다. 열혈남자들인 그들은 유성탄의 말이 비위에 거슬렸다. 하지만 강태웅의 눈짓에 마음을 가라앉힌다. 마동파도 눈치를 채고는 급히 말했다.

“대형이 한 달 전에 여자와 처음 해보셨소. 그러다 보니 그게 아직 마음에 남아 있어서 그런 거니 이해하십시오.”

마동파의 말을 들은 그들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말했다.

“대형께서 한 달 전에 처음 했단 말이오? 하하하! 그렇다면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나는 여자와 처음하고 거의 삼 개월을 몽롱하게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돈은 없지 자꾸 여자의 몸은 떠오르지 아주 죽을 뻔했었는데…….”

황대산의 말에 모두 크게 웃었다. 그때였다.

“잠시 공지사항이 있으니 들으시오.”

날카롭게 생긴 노인 하나가 젊은 무사들 몇 명과 같이 나타나더니 크게 소리쳤다.

“내일 그동안의 싸움을 끝낼 대회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용병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언제나 우위적인 싸움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싸움의 종착역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싸움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일 인 당 은자 오십 냥씩을 내릴 것입니다. 물론 싸움이 끝난 뒤가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금자 두 냥씩이 주어질 것입니다. 특히 비월문의 간부 이상을 제거한 용병에게는 금자 열 냥이 주어질 것이며, 장로 이상을 죽일 경우 금자 오십 냥이 포상금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비월문의 본무사를 죽인 용병에게는 무조건 한 명 당 은자 열 냥씩이 추가 지급될 것입니다. 오늘은 맘껏 드시고 즐기십시오.”

노인의 말이 끝나자 용병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참 가지가지 하는군요. 거기다 저 돌머리들은 뭐가 좋다고 저리 환호성인지 내 참!”

“뭐가 어때서? 나도 환호성이 나오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았는데…….”

마동파의 말을 들으며 유성탄이 묻자 모두 유성탄을 쳐다본다. 하여간에 대형치고는 참 가벼운 유성탄이었다.

“대형, 저게 미끼라는 겁니다. 져도 은자 오십 냥은 준다는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진짜 지면 지들 코가 석 자가 될 텐데 우리까지 신경 써줄 것 같습니까? 저건 그냥 싸우다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한 미끼일 뿐입니다.

금자 두 냥은 죽기 살기로 싸우게 하기 위한 미끼이고, 금자 열 냥이나 금자 오십 냥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그냥 입으로만 하는 사탕발림이라 이거지요. 그런데도 저 미련한 놈들은 무조건 좋아만 하니 하는 말입니다.”

마동파가 자세히 설명하자 모두 머리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런데 황금 한 냥하고 은자 한 냥하고 차이가 뭐냐?”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 유성탄이었다. 그가 궁금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황금 한 냥이면 거의 은자 백 냥 가치는 된다고 들었습니다.”

“뭐야! 은자 백 냥! 그럼 황금 백 냥이면… 우와~ 은자 천 냥!”

유성탄의 감격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모두 고개를 돌렸다.

‘엄청 무식하다고 하더니… 정도가 심하구나. 산수도 엄청 못 하는구나.’

‘나도 무식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좀 너무하구나.’

강태웅만은 그런 유성탄을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귀여운 대형, 오늘 그 신위를 만방에 떨치시오. 좋아하시는 돈 소리를 들었으니 힘이 부쩍 나실 겁니다.’

풀이 죽어 있던 유성탄이 다시 힘을 내는 모습을 보며 강태웅은 잘하면 낭인칠웅의 이름이 이번 싸움으로 단숨에 소문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이 되자 용병들은 싸우기로 한 병발 평야로 진지를 옮겼다. 먼저 싸움의 전초전은 용병들이 하게 되어 있었다. 용병들을 비싼 돈을 들여 고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죽을 때까지 한 명의 적이라도 죽이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파 제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용병들도 그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병들이 다 죽게 놔두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적들도 용병을 쓰거나 자파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자들부터 내보내기 때문이었다. 결국 싸움은 그럭저럭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된다.

어느 정도 상황이 무르익으면 양쪽의 본진이 나서기 시작한다. 고수들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용병들은 뒤로 물러설 수가 있었다. 사실 그때쯤이면 너무 지쳐서 싸우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너희들은 어제 내가 말한 대로 해야 한다.”

강태웅이 아우들을 모아놓고는 다시 당부를 했다. 강태웅은 그들에게 싸움이 시작되고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유성탄에게 달려와 유성탄의 뒤를 경계하라고 했다. 말이 좋아 경계지 유성탄의 뒤에 숨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없이 죽을 다른 용병을 보거나 아우들의 자존심과 의리를 생각하면 그러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강태웅도 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이번 전투는 예전의 싸움과는 다를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남무림 문파의 모든 용병이 모이는 대전투는 처음이었다. 거기다 그동안 격렬한 싸움을 여러 번 했어도 어제같이 특별 포상금을 먼저 말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강태웅이 보기에는 생각 외로 각 파의 정예가 모두 모인 것 같았다. 그 말은 비월문도 최고의 고수가 다 모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용병들의 실력으로 고수의 공격을 십 초 이상 견딜 수 있는 자는 진짜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드물었다. 당연히 용병대장으로 어깨에 힘을 주는 동생들도 십 초 이상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강태웅은 약속을 했으니 최대한 열심히 싸워는 주지만 어이없는 죽음까지 감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부하들이 다 죽어가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황대산이 강태웅을 보며 자신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전부 마찬가지라는 표정으로 강태웅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를 한다. 하지만 다 잘 싸우는데 그러라는 말이 아니다. 싸움도 되지 않는데 버티다가 그냥 목을 내주는 바보짓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강태웅도 그들이 말하는 의미를 아는지라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형님과 아우들은 태웅 형님의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죽기로 싸워서 상처라도 입힐 자신이 있으면 싸우십시오. 하지만 덤벼봐야 내 목만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덤빈다면 그건 의리가 아닙니다. 나 같으면 부하들한테도 다 도망가라고 하고 대형께 뛰어오겠습니다.”

마동파가 끼어들며 부언했다.

“그런데 진짜 대형이 고수들을 상대할 실력이 됩니까?”

황대산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대형 옆에 있으면 단 한 시진이라도 목숨은 더 붙어 있을 것이다.”

“야! 마동파!”

유성탄이 마동파를 찾았다. 강태웅은 비록 동생이 되었지만 막 대하기가 여전히 껄끄러웠고 나머지는 아직 낯이 설었다. 만만한 것은 마동파와 철패뿐이었으나 유성탄에게는 마동파가 좀더 편했다. 때리면서 정이 든다는 말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유성탄이었다.

“대형! 부르셨습니까?”

“저기 까맣게 몰려 있는 놈들이 오늘 싸운다는 놈들이냐?”

“그렇습니다. 저게 비월문 놈들입니다. 수가 너무 많지요?”

“여기 용병이래야 많아야 오백이나 될까 말까인 것 같은데… 저거는 거의 천 명도 넘을 것 같은데 상대나 되겠냐?”

“걱정 마십시오. 곧 남무림의 무사들까지 다 오면 여기도 수로는 그리 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저자들이 천 명이 된다는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이게 누구를 바보로 아나! 저거 봐라. 여기보다 최소한 열 배는 될 것 같지 않냐? 그러니 천 명인 걸 알지!”

“오백 명의 열 배는 오천 명인데요?”

‘오백 명의 열 배가 오천 명이라고? 씨… 숫자는 말하지 말 걸 그랬구나.’

유성탄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너는 내가 오백 명의 열 배가 오천 명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그런 것은 많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대형.”

마동파는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저기에서 금자 오십 냥짜리가 누구냐?”

“예……?”

“저기 있는 놈들 중에 금자 오십 냥짜리가 누구냐고?”

금자 오십 냥짜리라면 전에 유성탄을 무지 팼던 대월인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유성탄은 이미 오십 냥은 자기 거라는 듯이 물어보고 있었다.

“아… 예! 여기서는 너무 멀어서 안 보이는데요.”

마동파는 유성탄을 감탄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죽느냐 사느냐 모두 불안해하는 이 상황에서 오십 냥짜리를 찾는 유성탄은 마동파에게는 정말 존경스러운 대형 이상이었다.

드디어 진군의 명이 떨어졌고 양쪽의 무사들은 평원의 가운데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로 가까워지자 비월문의 무사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도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몇 명은 겁에 질려 사색이 되어 있는 무사도 보였다.

그들은 조끼 같은 가죽옷을 입고 있어서 땀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더운 날씨이지만 조금이라도 치명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팔이나 다리는 어느 정도 상처를 입어도 아픔을 느끼지도 않는다.

하지만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에 이르는 가운데 선을 찔리거나 베이면 그대로 쓰러진다. 가죽옷도 칼에 찔리고 도에 베이기는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상처를 적게 만들어준다.

“저놈들은 얼마짜리냐?”

걸어가며 유성탄이 옆에 서 있는 강태웅에게 물었다.

“저들은 우리와 비슷한 자들이오. 내 생각에 저들은 죽여도 돈 안 줄 겁니다.”

“치사한 놈들! 누구는 죽이면 돈을 주고, 누구는 죽여도 안 준다는 것은 사람을 차별한다는 말인데 그럼 못 쓰지. 나는 사람 차별하는 놈들이 참 싫은데.”

이상한 데서 차별을 따지는 유성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던 양쪽의 무사들은 더욱 가까워지자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 장을 남겨둔 상황에서는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싸움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다.

“와아! 쳐라! 죽여라……!”

사방에서 누구의 고함소리인지 알 수 없는 외침이 울렸고 곧 이어 처절한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뒤를 따라 울렸다. 도끼로 상대편을 치면 뒤에서 다른 자가 검으로 찌르고 그러면 옆에서 도로 베는 실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겨우 일 각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평원에는 피가 난자했고 쓰러진 자들이 수십에 가까웠다.

“뭐야 이거. 때리기도 미안하게.”

유성탄이 빨리 싸움을 끝내기 위해 육모방망이를 휘두르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기세가 엄청 살벌했고 위력도 달랐다.

휘두르는 대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비월문의 무사들을 보며 유성탄도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유성탄의 주위에 비월문의 무사들이 가장 많이 쓰러져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무서워하지 않고 실지로도 공격이 통하지도 않는 유성탄에게 역시 용병들과 비슷한 삼류무사들이 당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저놈… 안 되겠다. 누가 한 명 나가서 저놈의 목을 따 와라.”

싸움을 유심히 살피던 비월문의 총당주가 비월문의 고수 몇 명에게 명을 내렸다. 유성탄에 의한 피해가 생각 외로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세 명의 인영이 싸움터로 달려 나갔다. 신법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게 지금 싸우고 있는 무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가 분명했다.

‘저놈! 저번에 보았던 괴물 아닌가?’

총단주의 옆에 서 있던 대월인이 유성탄을 알아본 듯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에게도 유성탄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전투에 나온 것을 보니 용병이 분명했고 싸우는 모습도 무조건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 영락없는 삼류무사였다. 그런 유성탄에게 질려서 도망친 사실을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대월인의 이름이 너무 높았다.

“대형! 저놈들이 은자 열 냥짜립니다.”

유성탄의 근처에서 싸우던 경험 많은 마동파가 고수가 달려오자 즉시 눈치를 채고는 소리쳤다. 보통 용병들은 싸우기에 바빠 주위에 신경 쓸래야 쓸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마동파는 이런 전쟁을 여기서만 벌써 여러 번이었고 다른 곳까지 합치면 이십여 번의 전쟁 경험이 있었다.

“은자 열 냥! 어디냐?”

유성탄이 마동파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며 외치는데 주위에 싸우던 비월문의 하급무사들의 무기가 유성탄의 몸에 작렬했다. 사방에 적을 놔두고 딴청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대형! 조심하십시오.”

하지만 이미 그들의 무기는 유성탄의 몸을 그대로 베고 찔러버렸다. 하지만 유성탄은 그들의 검은 상관도 하지 않고 달려오는 은자 열 냥짜리인 세 명의 무사를 향해 그냥 돌진했다.

유성탄의 몸을 공격했던 자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뛰어가는 유성탄을 바라보더니 뒤로 주춤 물러났다. 싸움터에서 정신을 놓는다는 것은 그대로 죽음인 법이다. 분명 검을 맞고도 그대로 달려가는 유성탄에게 잠시 넋을 잃었던 그들은 어디에서 날아왔는지도 모를 검을 맞고는 죽었다.

“저놈 미친놈 아니야?”

달려오던 삼 인의 비월문 고수는 도망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유성탄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달려오는 그대로 비월문의 절기인 파월검법을 시전했다.

‘으잉! 이게 뭐야?’

은자 삼십 냥으로 보고 달려들던 유성탄은 그들의 검이 갑자기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자신을 쳐오자 순간 놀라고 만다. 본능적으로 검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안 되겠다. 튀자!’

위험한 것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유성탄의 또 다른 본능이었다. 은자 삼십 냥은 다른 놈들을 잡아서 벌기로 한다. 유성탄의 순발력과 순간적인 방향전환은 무림의 고수들의 몸놀림으로도 따르기 힘들 정도였다.

“뭐야 저 자식!”

유성탄이 뛰어오는 속도 그대로 돌아서 도망가자 삼 인은 크게 소리치며 신형을 날렸다. 이상한 방법이긴 했지만 삼 인이 합공으로 펼친 파월검을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유성탄이었다.

“이얍!”

커다란 기합소리와 함께 어느새 세 명의 검이 유성탄의 등을 쳐왔다. 그냥 달리는 유성탄의 속도로는 신법을 구사하는 일류무인을 따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등에서 검기가 느껴지자 유성탄은 도망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유성탄은 충동에서 벌레들과 숨바꼭질 할 때가 생각났다. 그 당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많았었다.

독벌레들이 달려들고 유성탄은 그걸 물리지 않으면서 도망치고 하는 놀이를 많이 했었던 것이다. 그 작은 벌레들이 수십 마리가 달려드는 상황에서도 그는 그 사이를 빠져 다녔다.

유성탄은 갑자기 그 생각이 나자 왜 자신이 괜히 주먹에 맞고 칼에 맞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간단한 일이 아니던가.

유성탄은 갑자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등에 떨어지고 있는 검의 기운을 생각했다. 눈을 감자 오히려 더 주위 상황이 일목요연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눈을 감았는데도 전부가 눈에 보이고 있었다.

“으아악!”

눈을 감은 유성탄은 기묘하게 검 사이를 빠지더니 손으로 동굴벽을 치듯이 그대로 삼 인을 쳤다. 아무리 빠르다 하나 무공을 익히지 못한 유성탄의 주먹을 그냥 맞을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성탄의 주먹을 장과 팔로 막았다. 내공이 없는 주먹 따위를 겁내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유성탄의 주먹은 막은 팔은 부러뜨렸고 장은 그대로 파열시켜버렸다. 그리고 삼 인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이놈들! 은자 삼십 냥!”

자신의 방법이 통하자 흥분한 유성탄은 쓰러진 그들을 보자 좋아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더니 한 대씩 더 때렸다. 보통은 한 대면 그냥 갔는데 그들은 꿈지럭거리며 일어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으하하하! 이제 너희들 죽었어!”

간단하게 삼 인의 비월문 고수를 제압한 유성탄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는 아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부 나름대로 경험도 많고 실력도 좋은 그들이었지만 이런 싸움에서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유성탄은 강태웅이 싸우기 전에 한 말이 생각났다.

강태웅은 대형이란 아우들의 생명까지 보호할 수 있어야만 존경을 받는다고 했다. 유성탄은 돈은 이미 조금 벌어놨으니 존경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유성탄이 자신의 능력을 조금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싸움은 일방적으로 남무림에 유리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냉월단은 나가서 저들을 도와라!”

비월문의 총당주는 약간 당황한 얼굴로 비월단의 진짜 무력집단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월단이 뛰쳐나오자 남무림에서도 남무림 각 문파의 진짜 고수들이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진짜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야! 저것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뛰냐? 날아다니는 것 같네.”

본격적인 무사들이 뛰어나오자 용병과 비월문의 하급무사들 간의 싸움은 약간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물론 잠시였다. 숨을 고르고 나면 곧 다시 공격명령이 떨어질 것이었고 이제부터 용병들은 완전 칼밥이 될 것이었다. 어쨌든 잠시 쉬게 되자 고수들의 싸우는 모습을 보며 유성탄이 강태웅에게 물었다.

“대형은 무공을 배운 적이 진짜 없으십니까?”

“무공……?”

유성탄은 반문하듯 대답을 해놓고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생각하건 스스로 모른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은 그였다.

“무공을 배우면 저렇게 됩니다.”

“너희들은 무공을 안 배웠냐?”

“저희들도 배우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절기를 배운 것과 우리같이 시중에 떠도는 하급 무공을 배운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거기다 저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웠지만 저희들은 나이가 들어 배워서 내공도 약하고 여러 가지로 저들과는 실력 차이가 많습니다.”

“공격!”

강태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이제부터가 용병들에게는 지옥이었다. 처음 전투에서는 죽는 사람보다는 다치는 사람이 많이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거의 죽는 사람만 나온다. 단 한 칼을 맞아도 위력이 다른 것이었다.

공격명령에 유성탄이 몽둥이를 단단히 쥐고 나가자 여섯 아우가 그 뒤를 따랐다. 낭인칠웅 중 셋은 다른 파의 용병대장이었다. 자연히 네 개 파의 용병들이 그들의 뒤를 따르자 유성탄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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