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비월문의 장로
유성탄과 둘은 마을의 입구에서 헤어졌다. 마동파와 강태웅은 은밀하게 몸을 숨기며 안으로 숨어들었다. 비록 변복을 하기는 했지만 마을의 공기가 변복을 믿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것 같았다.
우선은 숨어 다니다 만약 걸리면 나무꾼이라고 우겨보는 것이 더 좋을 듯싶었다. 문제는 유성탄이었다. 강태웅이나 마동파는 유성탄이 막무가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조심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강태웅과 마동파가 담벽에 붙어 사라지는 것을 본 유성탄은 크게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떳떳하게 큰 길로 걸어 마을로 들어갔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기억나는 아버지의 말! ‘남자는 대범해야 한다.’ 때문이었다.
유성탄은 거리낌 없이 사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자 사방에서 칼을 찬 놈들이 유성탄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거 자식들! 좀 이상하게 생겼구먼. 그런데 뭐가 이렇게 많아.’
유성탄은 상당히 많은 자들의 생김새가 자신과 좀 다르다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 듯이 돌아다녔다. 비월문의 문도들은 거의 팔 할이 안남 사람이었다. 당연히 유성탄과는 좀 다르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저놈 뭐지? 생긴 것도 이상하게 생긴 놈이 사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데…….”
십여 명의 비월문 무사들이 앉아 대화를 나누다가는 유성탄을 보더니 말했다.
“누구 찾는 거겠지 뭐!”
“수상한 놈은 아닌가?”
“어떤 미친놈이 저렇게 ‘나 수상한 놈이오!’ 하고 광고를 하고 다니겠냐? 내 경험상 저런 놈은 진짜 수상한 놈이 아니다. 마을 사람이 틀림없을 거다.”
“그런가……?”
그들은 유성탄에 대한 관심을 끊고 다시 자신들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들 역시 이 마을에 들어온 지 며칠밖에 안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무서워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있어 마을 사람의 얼굴을 다 알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수상하게 돌아다니는 유성탄인지라 오히려 의심을 하지 않는 그들이었다.
“뭐야! 위험하다더니 하나도 위험하지도 않구먼.”
혼자 중얼거리며 걷던 유성탄의 눈에 화려한 이두마차가 보였다.
“어! 저거 화려한 이두마차… 맞지?”
유성탄은 그래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마차 가까이 걸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서너 명의 무사들이 나타나더니 유성탄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누가 마차를 타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경호가 대단했다.
“누구냐!”
‘뭐야 이 자식! 깜짝 놀라게 소리치기는. 씨……!’
“난 유성탄이다.”
유성탄도 질세라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로 아느냐고 묻는 눈짓을 했다. 그리고 전부 모른다는 빛을 보이자 가운데 있는 자가 다시 소리쳤다.
“유성탄이 누구냐?”
“유성탄이 유성탄이다.”
유성탄은 소리치면서 생각했다.
‘진짜 무식한 놈들이로구나. 유성탄에게 유성탄이 누구냐고 물으면 어쩌라는 거야.’
그들의 무식이 은근히 불쌍한 유성탄이었다. 그리고 세 명의 무사도 생각했다.
‘이놈 진짜 엄청 무식하다. 유성탄이 누구냐고 물으면 뭘 하는 놈이냐고 묻는 건데 유성탄이 유성탄이라니. 쯧쯧, 중원 놈들 우리보고 야만인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무식한 놈도 있었구나.’
“지금 뭐 하는 중이냐?”
“걷고 있는 중이었다.”
유성탄의 말을 들은 세 명의 무사는 다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심전심으로 느꼈다.
“이놈! 진짜 짜증스런 놈이다. 죽여버리자.”
순식간에 세 개의 도가 유성탄의 몸을 베어왔다. 그 기세가 낭인들의 도와는 차원이 달라서 유성탄도 무의식중에 피했다. 아무래도 맞으면 아플 것 같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성탄은 세 개의 도 사이를 교묘하게 빠지며 도를 피했다. 순간 비월문의 무사들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보법은 분명 아닌 것 같았는데 아주 적절하게 도 사이로 몸을 피한 것이었다.
“이놈 양민이 아니다. 죽여라!”
유성탄의 몸놀림에 놀란 그들은 조금 전과는 달리 초식을 사용하여 유성탄을 핍박해 나갔다. 낭인들이 유성탄을 죽이려 할 때는 그 힘이 자신에게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끼고 피하지 않았던 유성탄이었지만 피하려 마음먹자 그 빠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앞이 보이지도 않던 충동에서 그렇게 빨리 날아다니던 벌레들을 맨손으로 잡아먹고 피하고 하던 유성탄에게 사람이 휘두르는 도는 너무 커 보였고 느렸다.
“으악!”
유성탄이 도 사이를 가볍게 빠져 들어가며 주먹으로 그대로 배를 치자 무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버렸다.
내공을 가진 자가 내공이 없는 자의 주먹에 심한 고통을 느끼거나 내상을 입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유성탄의 주먹은 보통으로 단련한 주먹과는 달랐다. 몇 년인지는 모르지만 유성탄은 충동을 빠져 나오기 위해 계속 땅을 파왔고 수시로 나타나는 오름길을 오르기 위해 주먹으로 벽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파고들게 했었다.
그리고 충동을 나올 즈음에는 가볍게 주먹을 뻗어도 어깨까지 땅속으로 박힐 정도가 되었었다.
유성탄의 주먹이 단지 파괴력만 좋았다면 내공을 지닌 자는 그런 주먹에 겉으로는 상처는 입을 수 있어도 속으로는 큰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성탄의 주먹은 파괴력뿐만 아니라 속까지 파고드는 주먹이었다. 탄력이 있는 사람의 몸이고 무공을 익힌 자들인지라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 충격이 속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유성탄의 주먹에 맞는 사람들마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이유였다.
비명소리가 퍼지자 갑자기 사방에서 무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싸움이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이놈 이상합니다!”
싸우던 자 하나가 소리쳤다. 아무리 몸이 빠른 유성탄이었지만 무공을 모르는 그로서는 그 많은 무사들의 합공을 모두 피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몇 번 칼을 맞은 듯한 유성탄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자 슬슬 이상한 것을 느끼는 그들이었다. 거기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주먹에 맞기만 하면 상당히 참을성이 많은 자들도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니 점점 두려울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중원 놈들이 금지마물인 강시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가 또 소리쳤다. 수십 명이 어우러져 있어 누가 대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지휘자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저렇게 시끄러운 강시 봤냐!”
유성탄은 싸우면서도 잠시도 입이 쉬지 않고 있었다.
반 시진 가까이 지나자 비월문의 무사들은 십여 명만 남기고 모두 쓰러져 끙끙거리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십여 명의 무사 중 제법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가 얼굴이 하얘져서 말했다.
이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름 상당히 맞았는지 약간 아픈 표정을 짓던 유성탄은 목을 움직여 뚜둑 소리를 내더니 중년의 무사를 보며 소리쳤다.
“이씨! 너희들 오늘 다 죽었어. 나를 건드리고 편하게 산 놈이 없었다.”
유성탄이 소리치자 중년의 무사의 얼굴에서 살기가 번득였지만 덤비지는 못하고 있었다.
“비켜라!”
갑자기 뒤에서 둔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십여 명의 비월문 무사들은 깜짝 놀라며 옆으로 쫘악 물러섰다.
‘뭐야! 저건 엄청 무게를 잡는데… 저렇게 하니까 뽀다구가 나긴 하는군. 나도 기회가 생기면 저렇게 해봐야겠다.’
유성탄은 무사들이 허리를 숙이며 쫘악 갈라서고 그 사이로 노인 하나가 척 나타나자 멋있어 보였는지 자신도 다음에 그렇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공이 전혀 없는 놈이 비월단 마월령무인 오십여 명과 싸워 사십여 명을 쓰러뜨렸다? 이상한 놈이군.”
보기만 해도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유성탄을 유심히 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놈이 아니라 놀라운 분이다. 왜? 너도 맞고 싶으냐?”
유성탄이 나타난 노인의 기세에 이상하게 자신이 좀 움츠러드는 것을 느끼자 숨을 들이쉬며 용기를 북돋듯이 소리쳤다.
“하하하! 내가 비록 안남에서만 박혀 있었지만 무림의 내로라하는 놈들도 내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할 놈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거늘,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로구나.”
노인은 일갈을 하더니 갑자기 신형을 날려 유성탄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어느새 유성탄의 눈앞까지 나타난 노인의 장이 그대로 유성탄의 가슴에 작렬했다.
“으악!”
순간적인 공격에 심장 부위를 맞은 유성탄의 몸은 담에 부딪치더니 담벽까지 부서뜨리며 그대로 나아가더니 철버덕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정말 엄청난 공격이었다.
“어린놈이 좀 특별해서 살려주려 했더니, 너무 버릇이 없구나.”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털더니 죽은 듯 꼼짝하지 않고 있는 유성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유성탄은 죽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 서 있던 십여 명의 무사들의 눈에서는 감탄의 빛이 흘러나왔다. 도와 검을 그렇게 맞고도 피 하나 안 흘리고 끄떡 안 하던 유성탄을 단 일 초식에 죽여버린 노인의 무위에 놀란 것 같았다.
‘엄청난 노인네다. 어떻게 맞았는지도 모르게 맞았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아프냐?’
유성탄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유성탄은 원래 아픈 것을 되게 못 참았다. 그런데 몇 년 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룡봉의 기연 아닌 기연 이후 처음으로 아픔다운 아픔을 느껴본 유성탄으로서는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당장 일어나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아까 노인의 공격을 생각해 보면 도망치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단숨에 눈치 챈 유성탄은 우선은 죽은 체 하기로 했다.
노인은 비월문의 사대장로 중 한 명인 대월인이라는 자였다. 그는 약 백여 년 전에 새외의 침입으로 상처를 입고 안남으로 도망갔던 청성파의 단중인이라는 기인이 남긴 최심장이라는 절세의 장법을 익힌 자로 안남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그는 명나라의 안남 정벌 당시 참전했던 점창파의 속가인 오호장군 유중일과 백초를 겨루면서 무림인에게까지 이름이 난 초절정고수였다. 유중일은 군문의 장군이었지만 그의 무공은 점창의 속가 중에는 가장 강해서 무림 백대고수와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고 평을 받는 인물이었다. 특히 대월인이 익힌 최심장은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으면서 심장만 부셔버리는 내가장법으로 외공을 익힌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무공이었다.
“아무리 몸이 단단해도 심장까지 단련을 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도 아주 특이한 무공을 익힌 것 같으니 사체를 소금에 절여 총단으로 보내도록 해라.”
대월인은 유성탄의 움직임이 없자 확실히 죽었다고 믿었는지 특별한 경계 없이 유성탄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직접 피부라도 만져볼 생각이었다.
‘저 늙은이가 왜 여기로 다가오는 거야. 지금이라도 그냥 냅다 튀어?’
유성탄이 대월인의 기척이 가까워오자 갈등에 빠지고 있었다.
* * *
“어찌하시렵니까?”
양쪽으로 나누어져 왔던 강태웅과 마동파는 유성탄이 싸우는 바람에 수월하게 사방을 돌아볼 수 있었지만 마차를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가기 싫었지만 싸우는 곳으로 발을 옮겼고 유성탄과 비월문의 무사들이 싸우는 광경을 목도하고 말았다. 그리고 유성탄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다가는 대월인이 나타나자 놀라서 숨까지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대월인에게 유성탄이 일초에 죽음에 이르자 마동파가 강태웅에게 물은 것이다.
“저자가 분명 비월문의 사대장로 중 하나가 분명하다면 우리 역시 일 초 이상 견디기 어렵다.”
강태웅의 말은 사실이었다. 무림 백대고수와 맞먹는 자를 낭인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럼 빨리 도망갑시다. 저기 보시오. 화려한 마차 맞지요? 화려한 마차가 있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 나갑시다. 우리가 제법 멀리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우리의 기척 정도는 금방 눈치 챌 것입니다.”
마동파가 우리끼리라도 살자는 듯이 말했다.
* * *
그 괴상한 노인네가 정말 엄청 강하더라고! 하지만 내가 누구야. 유성탄이야. 내가 한 방 쳤더니 날아가서 담벼락까지 부수면서 나가떨어지는 거야. 그러고는 겁이 나는지 죽은 척하고 있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가까이 다가갔지. 하하하! 그랬더니 겁이 나서 덜덜 떠는 거야.
* * *
유성탄은 대월인이 가까이 오자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싸운다는 용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대범한 사내의 기질 따위는 애초부터 유성탄에게는 없었다. 결국 도망치기로 결정을 내린 유성탄은 대월인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튀기 위해 후다닥 일어나더니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대월인의 얼굴에 놀람의 기색이 스쳐갔다.
“진짜 대단한 몸을 가졌구나. 나의 최심장을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죽기는커녕 도망갈 정도로 팔팔하다니.”
어느새 유성탄의 앞을 가로막은 대월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충동에서 날아다니는 벌레까지 잡던 유성탄의 몸놀림을 순식간에 무력화 시키는 대월인이었다.
‘이놈의 늙은이가 뭐가 이렇게 빠른 거야. 씨!’
“사나이 유성탄이 도망을 친다고! 웃기지 말아라!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서 그런 것뿐이다.”
여차하면 다시 뒤로 튈려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큰소리를 치는 유성탄이었다. 하지만 이미 노회한 대월인이 유성탄의 자세에서 유성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순식간에 유성탄의 가슴 앞까지 다시 달려온 대월인의 최심장이 유성탄의 가슴을 때렸다.
“으악!”
가슴을 정통으로 맞은 유성탄이 다시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아이구! 이놈의 늙은이가 때린다는 말도 없이… 치사한 놈!”
이번에는 죽은 척이 소용없다고 생각한 유성탄은 벌떡 일어서더니 욕부터 한다.
“정말 이상한 놈이구나! 최심장으로 심장 부위를 정확히 맞았거늘 어떻게 멀쩡히 일어난다는 말인가?”
대월인은 어이가 없는지 유성탄을 자세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진력을 모으는 것 같았다.
“잠깐! 잠깐! 우리 우선 말로 합시다. 사해가 동도라는데 그렇게 까칠하게 힘까지 쓰며 때릴 필요까지야 없지 않겠소? 나는 아주 착한 유성탄이오. 영감은 누구… 아악!”
유성탄은 대월인이 진력을 모으자 놀라 말리려 했다. 하지만 말도 끝내기 전에 달려든 대월인의 최심장이 이번에는 유성탄의 머리에 작렬했다. 심장이 터지지 않으니 뇌라도 부셔버릴 생각이었다.
“이놈의 늙은이가 정말 봐주려고 했더니 쪽팔리게 머리를 때려! 이판사판이다. 이놈! 너 죽고 나 살자.”
다시 벌떡 일어난 유성탄은 이제 도망가기는 다 틀렸다는 것을 알자 죽기로 싸워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유성탄에게 다른 길도 없었다. 어쨌든 그 상황에서도 봐주려고 했다며 큰소리치는 유성탄이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소! 위력이 강한 장에 저렇게 맞고도 저런 큰소리가 나오다니… 정말 이 마동파 누구를 존경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진짜 대형으로 모시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동파는 도망칠 생각도 하지 않고 유성탄에게 완전히 굴복을 하고 있었다. 낭인답게 실력보다도 굳센 큰소리에 더 반하고 있었다.
유성탄이 죽기 살기로 덤비기 시작하자 갑자기 싸움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슴만 노리며 한 대씩 때리던 대월인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는 장만이 아니라 권과 각까지 다 나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놈의 늙은이가 점점 치사하게… 이제 눈까지 찌르네!”
대월인은 이렇게 때려도 저렇게 때려도 유성탄이 죽지 않자 손가락을 세워 조법으로 눈을 파버렸다. 그리고 정통으로 눈을 찔린 유성탄이 비명을 지르더니 눈을 감싸고 뒤로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 그렇게 강한 조법으로 눈을 찔렸는데도 눈알이 터지기는커녕 피 한 방울 나지 않자 점점 대월인은 질러오고 있었다.
싸움이 계속 진행되면서 화가 난 대월인은 십 성에 가까운 내공으로 계속 가격했고 때리는 대로 맞던 유성탄은 갈수록 몸이 빨라지며 이제는 제법 그의 권과 장을 피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어느 정도는 강약을 조절해야지 계속 전력을 다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아마 유성탄이 고수였다면 대월인도 길게 보고 지치지 않도록 힘의 배정을 잘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때리는 대로 맞는 유성탄이었으니 조절을 할 생각도 대월인은 하지 못했다. 곧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유성탄은 더 심한 욕을 하며 팔팔해져 갔고 대월인은 은근히 지쳐가고 있었다.
‘이놈 진짜 괴물이구나. 분명 금강불괴도 아니고 무공은 한 초식도 모르는 것 같은 놈이 어떻게 저런 보도 듣도 못한 외공을…….’
잠깐의 방심이었다. 유성탄이 눈을 감싸고 물러났기에 생긴 방심이었다. 천려일실이라고 할까… 유성탄의 순간적인 순발력은 사실 유성탄이 제대로 사용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무림고수도 따르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갑자기 달려든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대월인의 가슴을 쳐왔다. 하지만 대월인은 초절정고수였다. 순간적으로 방심은 했지만 즉시 팔을 들어 유성탄의 주먹을 막았다.
동시에 대월인은 눈이 크게 떠지며 뒤로 반 장 이상 물러섰다. 싸움이 시작하고 처음으로 대월인의 몸에 한 방 먹인 것이었다. 물론 팔에 방어가 되긴 했지만 옷깃 하나 건드리지도 못하던 유성탄으로서 팔에 막힌 한 방이라도 맞혔다는데 의의를 둘 만했다.
하지만 대월인의 놀라움은 엄청났다. 최심장을 펼치는 팔은 실로 단단해져서 여간한 충격에는 미동도 안 한다. 거기다 그 자신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안남 특유의 신공으로 몸을 방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력도 깃들지 않은 유성탄의 주먹은 대월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저자의 권에서 분명 어떤 내공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충격이…….’
유성탄의 권을 막은 팔은 감각이 사라질 정도였다. 거기다 팔 안으로 느껴지는 괴상한 고통은 실로 이상해서 대월인으로 하여금 진땀을 흘리게 할 정도였다. 물론 체면이 있는 그로서는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비명을 지를 수는 없었다.
“이놈! 내가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맷돌에 갈아버리겠다.”
충격으로 팔을 들지도 못하고 진땀을 흘리며 대월인이 큰소리를 치자 유성탄은 무의식중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내 오늘은 급한 일이 있어 그냥 간다마는 다음에 다시 걸리면 그때는 진짜 갈기갈기 찢어주겠다.”
눈을 부라리며 유성탄에게 엄포를 놓은 대월인은 주위에 서 있는 부하들을 보며 소리쳤다.
“우선 이곳을 포기하고 오늘은 그냥 돌아간다!”
대월인이 말을 하더니 마차도 타지 않고 사라져버리자, 중년의 비월문 무사는 뜻밖이라는 듯이 사라지는 대월인을 쳐다보더니 급히 부하들에게 뭔가 명하더니 대월인을 쫓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비월문도들이 보기에 대월인은 거의 일방적인 공격을 하고 있었고 맞은 것은 겨우 딱 한 대였다. 그것도 정확하게 맞은 것이 아니라 팔로 막았다. 그런데 거의 다 잡은 것 같은 적을 놔두고,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급한 일을 말하며 사라지는 대월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남은 무사들은 급하게 쓰러져 있는 무사들 중 움직일 수 있는 무사들은 놔두고 움직이기 힘든 부하들만 부축해서는 사라졌다. 그러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억지로 힘을 내며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유성탄은 그들을 막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막았다가 무서운 노인네가 또 나타나는 것이 겁이 난 것이다.
“정말 대단했소, 대형.”
유성탄은 갑작스런 대형 소리에 그쪽을 쳐다보자 마동파가 달려오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대형! 나 마동파 진심으로 대형으로 모시겠소.”
유성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강압적으로 대형이라고 부르라고 억지를 부리기는 했지만 그도 진심으로 하는 것과 억지로 하는 것 차이는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유성탄은 강태웅을 쳐다보았다.
“하하하! 정말 대단했소! 나 역시 오늘 같은 광경은 처음 보오. 나도 약속대로 대형으로 모시리다.”
강태웅은 일류 이상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월인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리고 대월인이 왜 그냥 갔는지 알고 있었다. 분명 유성탄이 대월인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대월인 역시 유성탄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도망간 것이었다.
강태웅은 남자 중의 남자였고 낭인 중에서는 상당히 많이 배운 측에 드는 인물이었다. 거기다 협의까지 갖춘 제대로 교육만 받았다면 대협이 될 성정을 가진 자였다. 강태웅이 보기에 유성탄은 이유는 모르지만 엄청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혀 연마가 되지 않은 보석이었다.
거기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하는 행동이나 말하는 본새에 비해서는 성정이 착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무식했다. 유성탄의 능력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이용을 당하든가 잘못 길을 들어 희대의 마인이 될 수도 있었다.
강태웅은 유성탄을 대형으로 받들고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유성탄이 자신의 대형이 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 * *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라.”
“여기 계신 유성탄 대형께서 마을에 있던 비월문의 무사들을 다 때려 부수고 이 마차를 아예 가져왔다는 말이오.”
유성탄과 강태웅 그리고 마동파가 아예 이두마차를 끌고 나타나자 철검보의 무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고 마동파는 다시 대답했다.
‘이 자식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먼. 이 마차의 주인이 누군 줄 알고 그런 뻥을? 하지만…….’
무사는 그들이 거짓말을 친다고 생각했지만 마차를 끌고 온 것을 보며 뭐라 하기가 힘들었다. 이 마차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순찰대를 급조해서 나타난 이유이기도 했다.
비월문이 안남을 넘지 못하게 막고 있는 문파는 물경 십여 개나 되었다. 그 중 철검보와 같이 최전방에서 비월문과 직접 맞대고 있는 문파는 모두 네 개였다. 그 중 철검보는 제자의 수에 비해서 싸움터에서 너무 용감했다. 당연히 비월문에서는 철검보가 맡은 구역으로는 월경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비월문의 최고수 중 한 명인 대월인이 철검보의 구역 쪽으로 움직였다는 정보를 받자 순찰단을 조직해서는 그들이 주둔했다는 이 마을로 쉬지 않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막상 와보니 철검보의 무사가 직접 들어가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 듯하자 유성탄과 강태웅 그리고 마동파만을 들여보낸 것이다.
철검보의 정예인 자신들도 발각의 위험이 커서 못 들어간 곳에 용병을 들여보낼 때는 당연히 그들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 일이었지만 알아오면 좋은 것이고 만약 죽는다 해도 비월문에 우리가 너희들의 동향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다는 복안이었다.
그런데 일개 용병인 유성탄에게 철검보 전체를 술렁대게 만든 대월인이 도망갔고 나머지 오십 명이 넘는 비월문도들이 오지게 터지고는 다 기절까지 했었다고 하니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전부 철수했네. 그리고…….”
마을의 동정을 다시 살피러 갔다가 온 다른 무사 둘이 올라오며 말하더니 모두를 모아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이따금 유성탄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유성탄에 대해 탐색하는 눈치였다.
“좋다. 원래는 칠 일을 예상하고 왔는데 생각 외로 시간이 짧게 걸린 것 같다. 우선 보로 돌아간다.”
지휘하는 무사의 말에 유성탄이 놀라 펄쩍 뛰며 말했다.
“아니 일주일이었다니? 왜 그런 말을 이제야 한다는 말이오?”
유성탄의 말에 철검보의 무사들의 짜증스런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런 말을 우리가 용병에게 할 이유가 뭐란 말이냐? 용병은 우리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거다.”
“하지만 일주일이면 하루에 스무 냥씩 무려 백 냥이 아니오. 그런데 일이 빨리 처리되어서 삼 일 만에 돌아간다면 그 손해는 누구에게 받는단 말이오?”
철검문의 무사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유성탄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돈은 우리가 지불하는 것이다. 너는 삼 일 만에 육십 냥이나 받는 거고. 그런데 네가 손해날 게 뭐가 있다는 말이냐?”
“손해지! 백 냥 생길 게 육십 냥이 됐는데 어째서 손해가 아니냐?”
유성탄의 말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돈 때문에 아니꼬운 것도 참아온 그가 아니던가. 그런데 두 눈 똑바로 뜨고 무려 은자를 사십 냥이나 손해(?)보게 생겼으니 더 이상 참기에는 그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놈이 용병 주제에 주는 돈이나 받으면 되지 뭔 말이 그리 많으냐! 그리고 스무 냥씩 일주일이면 백 냥이 아니고 백사십 냥이다.”
무사가 눈을 부라리며 유성탄을 쳐다보며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어떻게 비월문의 대월인이 물러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성탄이 이겼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으악!”
그대로 달려든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말하는 무사의 배에 작렬했다. 그러자 무사는 단말마를 터뜨리며 그대로 쓰러진다.
“이 새끼가 내가 용병 되는데 지가 보태준 게 뭐가 있다고 까부는 거야. 씨!”
지휘를 하던 무사를 한 주먹에 보내버린 유성탄이 갑작스런 상황에 검을 뽑아 드는 다른 두 명의 철검보 무사에게 달려들더니 다시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그들의 검도 유성탄의 몸을 베어갔다. 하지만 잠깐 사이지만 유성탄의 실력은 부쩍 늘어나 있었다.”
“억! 큭!”
두 번의 짤막한 비명과 함께 그들도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야! 마동파, 이놈들 뭐 가져다가 묶어라.”
“아니 대형, 우리를 고용한 무사를 이렇게 때려서 묶으면 어쩝니까?”
“고용은 철검보의 보주가 한 거지. 이놈들하고는 아무 상관 없다. 나는 이놈들 묶어놓고 일주일 동안 놀다 들어갈 것이다. 거기다 백 냥도 아니고 백사십 냥이라지 않냐! 난 그런 손해를 눈뜨고는 못 본다.”
마동파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하하하! 역시 내가 대형으로 모실 만하오. 남자가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 남자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하하하!”
마동파도 낭인들 사이에서는 독종 중의 독종이었고 배짱도 대단해서 죽음 따위는 우습게보는 자였다. 거기다 한번 마음을 주면 절대 변하지 않는 의리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데 있었다.
아무리 배짱이 좋아도 혼자 하고 둘은 다르다. 혼자서 독불장군 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낭인 사이에서는 맞아죽기 쉬운 것이지만 둘만 되어도 두 배 이상의 기운을 얻게 된다. 마동파는 정말 남자다운 남자를 만났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유성탄이 은자 팔십 냥을 손해 보기 싫어서 그런 거지 절대로 배짱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대형, 이렇게 된 것 우리, 의형제를 맺읍시다.”
철검보의 세 무사를 묶은 후 점혈까지 한 마동파는 숲속의 한가한 곳에 도착하자 유성탄과 강태웅을 보며 말했다.
“의형제? 그거 하면 뭐 좋은 거 있나? 괜히 의형제라고 돈이나 빌려달라고 그러면 더 귀찮다. 형제라고 달라붙으면 때려주지도 못하고 난 그런 거 안 한다.”
강태웅과 마동파는 유성탄을 보더니 감탄의 빛을 띠었다. 낭인으로 별의별 종자를 다 만나봤지만 저런 요상한 이유로 의형제를 거절하는 사람은 처음 본 것이다.
“대형이 몰라서 그런 거지 대형이 되면 동생들이 돈도 벌어다 주고 그거 괜찮습니다.”
‘돈을 벌어다 준다고……!’
유성탄과 마찬가지로 요상한 좋은 점을 부각하는 마동파를 보며 강태웅이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누구에게 대형으로 불려보기는 많이 했지만 대형으로 부르기는 이번이 처음이오. 그만큼 대형에게 내가 반했다는 말이오. 그렇다면 대형도 뭔가 아우를 받아들일 성숙함을 보여야 하는 것이오.”
강태웅이 점잖게 말하자 유성탄이 요상한 눈으로 강태웅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자식 특별한 놈으로 봤더니 정말 특별하잖아. 남자에게 반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거기다 성숙하라니……. 아주 요주의해야 할 놈이구나. 절대로 손도 닿지 말아야지.’
강태웅은 자신의 말을 유성탄이 요상하게 해석을 하는 것은 모르고 유성탄이 좀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대형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내가 보기에 곧 무림에 그 이름이 퍼지게 될 것이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이름을 날릴 수도 있고 천하에 악명을 떨치는 마인이 될 수도 있소이다. 나는 동생으로서 대형을 보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자식은 확실히 다른 놈들하고 달라 함부로 대하기도 힘들고… 얘는 동생 삼고 싶지 않은데…….’
유성탄은 강태웅이 보통 낭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첫날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태웅에게만은 함부로 대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실력이 높고 낮고를 떠나 강태웅에게는 이상한 대장 기질과 대인의 풍모가 저절로 흐르고 있었다. 양아치 근성으로 가득 찬 유성탄으로서는 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강태웅 덕분으로 유성탄은 천하에 악명을 떨치는 좋은 사람으로 이름이 나게 된다.
“그러니까… 낭인칠웅을 만든다 이건가?”
“그렇소! 낭인 중에는 상당히 실력도 좋고 의리도 있는데 오로지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용병이나 하고 다니는 불운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낭인에서 무림인으로 올라가는 방법으로 좋은 것이 용병생활을 통해 무림문파의 고수의 눈에 띄어 문파의 무사로 들어가는 것이 있고, 두 번째는 스스로 세력을 만들어 문파를 만드는 것이 있소이다.
하지만 처음 방법은 여간해서는 영원한 비주류로 그 한계가 정해져 있고 두 번째 방법은 거의 크기 전에 칼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대형은 특별한 사람이니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오, 대형! 그러면 얼마나 뽀다구 나겠소. 대형이 가운데에 딱 서 있고 그 뒤에 우리들이 쫙 늘어서 있는 것이오. 아마 무지 멋있을 것이오.”
마동파가 옆에서 바람을 잡았다.
‘내가 가운데 서고 옆으로 아우들이 쭉 늘어서서 내게……. 헤헤헤, 생각만 해도 멋있기는 한데…….’
유성탄은 대월인이 나서는 순간이 기억났다. 무게 잡힌 목소리로 비껴라 하자 좌우로 쫙 물러서는 부하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부러워했던 유성탄이 아니었던가.
“하자! 낭인칠웅을 만들어서 세상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자.”
“철패를 우리 칠웅에 끼운단 말이오? 그 무식하게 힘만 센 놈을 여기에 끼워주면 우리의 무게가 좀 떨어질 텐데요?”
마동파가 강태웅이 철패를 끼워줄 생각을 말하자 반대하며 말했다.
“철패? 야 마동파, 넌 정말 무식하다. 철패라면 너보다 최소한 두 배는 무거울 텐데 왜 우리 무게가 떨어져? 하여간에 모르는 게 더 큰소리친다니까.”
유성탄이 마동파의 말에 토를 단다.
‘대형이 나하고 잘 맞기는 한 것 같은데… 너무 무식한 게 좀 흠이란 말이야. 말을 못 알아들으니 대화에 문제가 좀 있을 것 같구나.’
“철패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의리 하나는 인정할 만하다. 남자라면 의리 아니겠느냐? 철패는 우리 칠웅에 꼭 들어와야 한다.”
‘강태웅이 저거는 아무래도 껄끄러워. 의리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뭔 의리를 저렇게 찾는 거야.’
의리가 너무 없는 유성탄으로는 의리 있는 집단을 만든다는 것이 좀 찝찝했다. 유성탄은 아직도 기억하는 말이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싸울 때면 엄마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의리가 밥 먹여줘요! 만날 의리 찾으면서 와서 민폐만 끼치는 친구는 다 정리하란 말이에요!”
어린 나이여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성탄에게 의리는 민폐 끼치는 단어였다. 물론 아버지인 유정삼은 유성탄에게 남자는 의리라고 가르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유성탄은 엄마의 말이 더 무서웠던 것 같았다.
강태웅은 이미 생각해 놓은 것이 있었는지 같이 합류할 친구들을 줄줄 말했다. 낭인촌 시절부터 가장 믿고 의지하던 친구들이자 동생들로 이미 오래전부터 오웅이라는 이름으로 뭉치자고 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강태웅은 자신의 능력으로 뭉쳤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무림제파에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월문의 대월인을 도망가게 만든 유성탄의 능력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먹을 것 좀 주시오.”
아혈을 풀어줄 때마다 철검보에서 너희들을 다 죽일 거라 등 협박과 회유를 하던 철검보의 무사들은 무차별적인 유성탄의 매타작에 드디어 고분고분해졌다. 그리고 삼 일째 되는 날에는 드디어 자존심을 누르고 고분고분을 넘어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대형, 먹을 것을 좀 주기는 해야 합니다. 사 일째 물만 주고 먹을 것을 안 줬습니다.”
“놔둬! 먹을 거 주면 똥이나 싸고 더러워. 그냥 오줌이나 누게 해라.”
마동파의 말에 유성탄이 놔두라고 한다.
“대형!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의(衣), 식(食), 주(住)라고 합니다. 즉 입고 먹고 자고 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식! 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을죄를 지은 놈들도 그냥 죽이면 몰라도 굶겨서 죽이는 것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형 같은 분이 우리와 같이 온 일행을 삼 일씩이나 굶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러자 강태웅이 음식은 제공해야 한다는 듯이 장황하게 설교한다.
‘이 자식은 낭인이라는 놈이 뭐 아는 게 이렇게 많아?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안 주면 나쁜 놈이 된다는 말이 분명해.’
속으로 중얼거리며 유성탄은 생각했다. 그리고 나쁜 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해 냈다.
“먹을 거 줘라.”
* * *
철검보로의 귀환은 정확히 팔 일 만이었다. 유성탄이 혹시 하루 더 늦어지면 돈을 더 줄지도 모른다며 잔머리를 굴렸기 때문에 하루 늦게 들어온 것이다.
“태웅 형님, 이거 무사들 때렸다고 우리 죽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용병 숙소에 도착한 마동파가 강태웅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성탄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아챈 마동파였다.
“우리만 그랬다면 분명 우리를 때려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들도 어느 정도는 비월문의 장로에 대한 말이 들어갔을 것이니 절대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태웅은 확신한다는 말투로 말했다.
몇 시진이 지났다. 용병 숙소는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갑자기 돌아온 유성탄과 강태웅의 서열이 바뀐 것을 모두 눈치 챘고 마동파까지 강태웅에게 딱 붙어 속닥거리니 낭인들로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강태웅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철패조차도 강태웅에게 묻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직 유성탄만 비스듬히 누워 코딱지를 후비며 히죽대고 있었다.
‘스무 냥씩 팔 일이니까… 이백 냥이구나. 그 돈이면 우와! 부자다.’
한 번도 맞지 않는 계산을 몇 번씩 하고 있는 유성탄이었다.
철검보의 외당 당주인 철검비호 정두호가 십여 명의 철검보 무사를 거느리고는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언제나 침착하던 강태웅까지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철검비호 정두호는 거물이었다. 남무림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고수였고 철검보에서도 지위는 다섯째였지만 실력은 보주 다음의 2인자 대접을 받는 자였다.
“순찰 나갔던 용병들이 누구냐?”
싸늘한 정두호의 말에 마동파가 가장 먼저 일어났고 강태웅이 뒤를 따라 일어났다.
“너희만이냐? 유성탄이 누구냐?”
“난 왜 찾으시오?”
코에 이상한 건더기가 걸려 나오지 않자 혼자 애를 태우며 계속 후벼대던 유성탄이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네가 유성탄이냐?”
정두호의 눈이 살짝 커지며 유성탄을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내가 지금 좀 바쁘오. 왜 찾는지 이유나 말해 보시오?”
코 파는 게 뭐가 그리 바쁜지는 모르지만 유성탄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유성탄은 정두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하하! 시시한 놈이었으면 그냥 때려 죽이려 했는데 진짜 배짱이 보통이 아니구나. 돈을 주러 왔다.”
코 속에 박혀 있던 유성탄의 손가락이 급히 빠지며 후다닥 일어났다. 역시 돈 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유성탄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정두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뒤에 서 있던 무사 하나가 전낭을 세 개 꺼내더니 각자에게 하나씩 던졌다. 마동파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그 역시 이렇게 큰돈은 처음 만져보는 것이었다.
“이게 모두 얼마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돈 주머니의 무게를 재던 유성탄이 정두호에게 물었다.
“은자 백육십 냥이다.”
뒤에서 전낭을 던진 자가 대답했다.
“무슨 소리요! 은자 백육십 냥이라니… 스무 냥씩 팔 일이면 이백 냥인데 왜 백육십 냥만 주는 거요? 이런 식으로 돈을 떼어먹으면 사람들에게 욕 먹는 거요.”
유성탄이 흥분해서 입에 침을 튀기며 따지듯 말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스무 냥씩 팔 일이면……?’
무게를 엄청 잡는 정두호였지만 계산머리는 별반 좋지 못했다.
“이백 냥이 맞는 것 같은데 왜 백육십 냥만 넣었느냐! 철검보는 돈을 떼어먹지 않는다.”
정두호가 싸늘한 말투로 전낭을 가져온 무사를 쳐다보며 말하자 무사의 얼굴이 곤란하게 변했다.
‘스무 냥씩 팔 일이면 백육십 냥이 맞는데 당주님께서 이백 냥이 맞다고 하니 말할 수도 없고…….’
“죄송합니다. 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곧 나머지 돈을 가져오겠습니다.”
당주한테 미운 털 박히는 것보다는 편히 사는 길을 택한 무사는 어쩔 수 없이 대답하더니 밖으로 뛰어나갔다.
“곧 나머지를 가져다 줄 것이니 걱정 마라. 그리고 유성탄이라고 말은 들었다. 대월인을 물리쳤다니 그 공이 무척 크다. 그냥 왔었다면 그 공으로 적어도 은자 오백 냥 이상은 따로 포상금으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철검보의 무사를 괴롭힌 죄는 죽어 마땅하다. 그래서 포상금과 그 죄를 까기로 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보자.”
정두호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숙소를 나가자 곧 ‘툭’ 하고 소리가 났다. 얼굴이 흑색으로 변한 유성탄이 전낭을 그냥 땅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내 돈 오백 냥!”
“대형! 힘 좀 내시오. 이미 지난 것을 어쩌겠습니까. 좀 아깝기는 하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어쨌든 형님 덕에 사십 냥이나 더 받았으니 그것도 운이 아니겠습니까?”
마동파가 지딴에는 달랜답시고 한 말이었지만 유성탄에게는 놀라움이었다.
“사십 냥이 더 생겼다니 그건 무슨 말이냐?”
“스무 냥씩 팔 일이면 백육십 냥이 맞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계산을 이백 냥으로 하는 바람에 사십 냥이나 공으로 생겼잖습니까?”
“너는 내가 계산을 잘못해서 이백 냥으로 말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게 날 뭘로 보고…….”
마동파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실수다! 모르고 있었는데…….’
“하하! 대형이 설마 모르셨겠습니까? 다 알고 계셨겠지요. 저도 압니다.”
“그렇다면 그 사십 냥은 날 줘야 하지 않겠냐?”
유성탄의 말에 숙소에 있던 용병들의 얼굴이 전부 유성탄에게 향했다. 그들의 얼굴은 유성탄의 치사함에 질리고 있었다.
“맞다. 마 동생도 사십 냥은 대형께 드려라. 나도 드릴 테니.”
강태웅이 일어서더니 전낭에서 사십 냥을 꺼내며 말했다. 마동파로서는 자신의 싼 입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전낭에 팔십 냥을 집어넣으며 유성탄의 얼굴에 그러저럭 만족한 웃음이 나타났다.
* * *
“돈은 주었느냐?”
철검보 외당 당주 정두호에게 말을 놓는 인물은 보주인 철검무적 상관청이었다.
“예! 아주 단순한 놈 같았습니다. 겉보기로는 무공도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고 내공이 있다는 낌새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정 당주가 그리 보았다면 맞겠지. 그렇다면 대월인이 물러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아직은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외당의 무사들이 그곳으로 조사를 나갔으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곧 알아올 것입니다. 다만 대월인이 자신이 타는 이두마차를 놔두고 갈 정도로 급히 떠난 것만은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용병들과 같이 순찰을 나갔던 무사들은 철검보에서도 알아주는 강한 무사들이었습니다. 그 셋을 간단히 제압해서 며칠을 묶어두었다면 보기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할 것 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유성탄이라는 놈이 대월인과 싸웠다는 말까지 믿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어쨌든 돈 몇 푼으로 그런 놈을 용병으로 쓸 수 있다면 우리에게 나쁠 것은 없다. 우선은 대접을 잘해주고 다음 싸움에는 돈을 더 올려준다고 해라. 그리고 고수를 잡으면 포상금이 상당히 크다고 하고. 말을 들으니 돈을 좋아하는 놈 같으니 조종하기는 무척 쉬울 것이다.”
“알겠습니다.”
정두호는 상관청의 말이 끝나자 허리를 숙이더니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