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철검보의 용병들
“철패 형님!”
유성탄과 같이 철검보에 용병으로 온 낭인 중 하나가 용병숙소에 도착하자 알고 있는 자가 있는지 달려가며 허리를 구십도 각도로 굽히며 인사를 한다.
“너 탁칠이, 네가 어떻게 여기에 왔냐? 용병으로 온 거냐?”
철패라는 자는 얘기책에 나오는 탁탑천황같이 생긴 자였다. 덩치도 덩치지만 그 근육이 보통이 아니었다.
“예, 저도 이번에 용병으로 뽑혔습니다.”
“낭인촌이 많이 약해졌구나. 너 같은 놈이 철검보에 뽑혀오다니……. 하여간 반갑기는 하구나. 안에 들어가 봐라. 태웅 형님도 계시다.”
“강태웅 대형이요?”
유성탄의 눈이 반짝였다. 다른 것도 다 못 참지만 남이 대형이라고 불리는 것은 더 못 참는 유성탄이었다.
“강태웅 대형께서 철검보에 계셨습니까?”
다른 낭인도 놀라 물었다. 강태웅이라는 자가 얼마나 낭인들 사이에서 유명했는지 알 만했다. 강태웅은 낭인촌에서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무려 오십여 번에 달하는 결투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고, 또한 낭인으로는 드물게 의리와 협을 알아 자신의 강함을 한 번도 내세우지 않고 약하고 어려운 낭인들을 제 몸 돌보듯이 돌봐주곤 했다. 낭인들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대형이라고 부르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철검보에서 용병으로 있었던 것이다.
용병으로 들어와 전투에 다섯 번 이상 참가해서도 죽지 않으면 돈이 두 배로 뛴다. 그만큼 용병으로 다섯 번의 전투까지 살아 있는 자는 드물었다.
살아나는 유형도 여러 가지였다. 진짜로 강해서 죽지 않는 자는 극소수였다. 낭인이 이류 이상의 무공실력을 지닌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한 칼 맞게 되면 죽은 척하고 있거나 싸움의 뒤로 자꾸 숨으면서 도망을 다니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도 다섯 번이나 살아 있는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다섯 번 이상의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강하다고 인정을 해주는 것이었다.
강태웅은 철검보에서 낭인들의 수장이었고 벌써 여덟 번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발군의 용병이었다. 그래서 다른 용병들은 다 무시하는 철검보의 무사들도 강태웅에게만은 함부로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기회를 못 잡은 영웅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그였다.
안에 들어가자 적어도 삼십 명은 넘는 용병들이 나무로 만든 긴 침상에 뒹굴거리고 있었다. 몇몇은 장기를 두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그런데 유성탄이 낭인촌에서 배운 것 중 제일 재미있어 하는 것이 장기였다. 특히 돈내기를 좋아했는데 배운 지 얼마 안 된 그로서는 당연히 오래 배운 사람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 번도 돈을 잃은 적은 없었다.
* * *
내가 얼마나 천재냐 하면… 장기! 장기 알지? 그거 천재나 하는 놀이야. 그걸 하루 만에 배워가지고 백전백승을 했다는 거 아니겠어.
* * *
전부 다 새로 온 용병들을 쳐다보자 유성탄과 같이 처음온 낭인들은 몸이 경직되어 숨까지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거리낌 없이 장기를 두는 사람 옆으로 다가서더니 장기판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아직 유성탄이 누군지 모르는 선임 용병들의 인상이 구겨지고 있었다.
‘저 새끼가 겁이 없는 거야 아니면 모자른 거야? 분위기 파악을 저렇게 못 할 수가 있나.’
한 명이 인상을 콱 쓰며 일어서자 옆에 앉아 있던 고참이 손을 잡는다.
“놔둬 봐라. 여기가 낭인촌인 줄 알고 나름대로 기싸움에서 지지 않겠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기다려봐.”
지금 장기를 두는 자 중 한 명은 마동파라는 자로 성질이 무지 나쁜 자였다. 거기다 강하기까지 해서 벌써 네 번의 전투에 참가해서 부상도 입지 않은 자였다. 특히 성격이 독종 중의 독종이어서 맞아 죽어도 누구에게 머리를 숙이는 자가 아니었다. 이곳에서도 강태웅 정도만이 그를 간섭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른 용병들이 보기에 유성탄이 마동파가 두는 장기판에서 훈수를 두는 것은 나 죽여주십쇼 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자네, 장기 제법 두는군.”
유성탄이 훈수를 두는 것을 들은 그 마동파가 빙그레 웃으며 유성탄에게 말했다.
“내가 다른 것도 잘하지만 장기도 무척 잘 두지.”
‘잘… 두지? 이 자식이 말이 왜 이렇게 짧은 거야? 훈수 두는 거 보니까 완전 초보던데… 우선 참고 잠시 후 두고 보자 이놈!’
마동파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말했다.
“그럼 나랑 한판 두겠나? 물론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돈은 걸어야겠지.”
“돈내기! 하하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바로 돈내기다. 내 도전을 받아주지.”
‘뭐? 도전을 받아줘? 이 새끼 돈 좀 빨아먹고 혼내려 했는데 돈이고 뭐고 그냥 아작내 버려?’
유성탄의 말투가 너무 비위에 거슬리는지 당장 한 방 칠 것같이 하던 마동파는 참고 만다. 합법적으로 돈을 빼앗을 수 있는 기회를 그대로 놓치기는 아까웠다.
“하하하! 역시 통이 크구먼. 어떤가, 그럼 한 판에 은자 한 냥, 할 수 있겠나?”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 판에 은자 한 냥이면 너무 컸다. 먼저 와 있던 용병들은 유성탄의 건방짐에 혼내주려 마음먹었던 것과는 달리 유성탄이 약간 불쌍해졌다. 목숨 값을 다 잃고 아마 판이 끝나면 엄청 맞을 것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성탄과 같이 들어온 용병들은 유성탄에게 장기 시합을 하자고 한 마동파를 무지하게 불쌍하게 보고 있었다. 유성탄이 얼마나 악질이고 거머리 같은 놈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러줘!”
시작한 지 일 각도 안 되어 유성탄이 가장 좋아하는 차가 마동파의 마에 의해 잡아 먹혔다. 그러자 유성탄은 깜짝 놀라며 차를 빼앗아 오더니 말했다.
“돈내기 장기에서 물러주는 것은 없는 법이다. 이리 내놓고 계속해라.”
“나는 이럴 때 물렀다. 나하고 둘 때는 내 법을 따라야 한다. 물러줘라.”
유성탄이 차를 쥔 손을 품안에 넣으며 억지를 부리자 상대를 하던 마동파가 드디어 화를 못 참고 소리쳤다.
“내 세상에 장기 두면서 이렇게 쪼잔하고 치사한 놈은 처음 본다. 이놈아! 난 못 물러주니 돈이나 내놔라. 은자 한 냥이다.”
마동파의 말을 들은 유성탄의 눈에 살기가 나타났다.
“장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돈을 내놓으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성탄의 주먹이 마동파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마동파도 보통 독종이 아니었고 나름 탄탄한 무공의 기초는 가진 자였다.
“이놈이 내가 누군 줄 알고……!”
순식간에 장기판이 날아갔고 후다닥 주먹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 각도 안 되어 마동파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분명 자기가 더 많이 때리고 있었는데 유성탄은 전혀 끄떡없었고 어쩌다 한 대 맞는 유성탄의 주먹은 정말 아팠다.
마동파도 독종답게 참으며 계속 싸워갔지만 한 대 맞을 때마다 생기는 충격에 점점 신형이 느려지더니 어느새 무차별하게 유성탄에게 맞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결국 견디지 못하고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놀란 몇 명 선임 용병이 달려들었지만 유성탄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주먹에 맞고는 그 아픔에 너무 놀라 더 이상 끼지 못했다.
“빨랑 둬! 나는 이 세상에 제일 나쁜 놈이 끝나지도 않은 장기판을 질 것 같다고 쳐버리고 오히려 돈을 달라는 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너같이 치사한 놈이 아니다. 나는 확실하게 이겨야 돈을 받는다.”
얼굴이 온통 부어서 메주같이 변한 마동파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다시 장기를 두기 시작했다. 마동파로서는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물러줘!”
뭐든 잡아 먹히기만 하면 물러달라는 유성탄의 억지도 억지였지만 마동파의 것을 잡으면 그대로 훌쩍 집어가는 유정탄의 뻔뻔함도 견디기 힘들었다. 마동파도 물러달라고 한 번 해보았다가는 남이 힘들여 생각해서 잡은 말을 물러달란다고 때릴 듯 억지를 쓰는 바람에 더 이상 물린다는 생각은 접어버렸다.
결국 두 시진이나 걸려 마동파는 유성탄의 말은 하나도 잡지 못하고 완벽하게 져주고 말았다. 그리고 은자 한 냥을 주고 일어나려는 순간! 마동파는 유성탄의 본질을 알게 된다.
“왜 일어나? 난 뭐든지 삼세판이다. 아직 두 판이 남아 있다. 나는 이럴 때 싫다고 하는 놈이 있으면 죽을 때까지 때린다.”
마동파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울화가 터지는 것을 억지고 참으며 두 시진이나 두었는데 두 판을 더 둬야 한다고?
“내가 졌다고 하겠소. 여기 은자 두 냥 더 주면 되겠소?”
말을 하며 마동파가 은자 두 냥을 꺼내더니 유성탄에게 던졌다.
“이게 나를 뭘로 보고!”
“으아악!”
유성탄은 그대로 달려들더니 마동파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왜 이러시는 거요? 내가 졌다고 돈도 줬는데… 아이고!”
“내가 거지냐? 왜 돈을 던져! 거기다 두지도 않았는데 네가 이길지 내가 이길지 어떻게 알아? 네가 점쟁이냐? 나는 너 같은 놈은 그냥 못 놔둔다.”
한참을 맞고는 코에 코피를 질질 흘리며 장기판 앞에 앉아 다시 장기시합을 시작한 마동파의 귀에 다시 유성탄의 말이 들려왔다.
“물러줘!”
그리고 유성탄은 삼전삼승을 이루어 자신의 승률을 높였다.
“대형! 저놈 알아봤더니 낭인촌에서 아주 악질로 유명했답니다.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강태웅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낭인들이 둘러앉아 바깥 나무그늘에 누워 빈둥대는 유성탄을 보며 말했다. 그들의 눈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신참이 가장 빈둥거리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지만 마동파가 당하는 것을 본 그들로서는 유성탄을 먼저 건드리는 짓은 서로 하고 싶지 않았다.
“놔두게. 마동파는 좀 느리기는 하지만 낭인으로는 드물게 내공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네, 그런데 그런 친구를 막싸움으로 완전 떡을 만들어놨네. 거기다 마동파가 어떤 독종인지는 자네들도 잘 알지 않는가. 그런 그가 저자 앞에서 설설 기고 있네. 매일 죽는다는 생각으로 산다는 마동파가 저런다는 것은 저자의 주먹이 얼마나 지독한지 안 맞아봐도 알 수 있네. 나도 이길 수 없는 상대야. 그냥 놔두는 게 괜한 분란을 만들어 마동파같이 된통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걸세.”
침착하게 말하는 자는 바로 모든 낭인들에게 대형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고 있는 강태웅이었다. 가장 강하다는 강태웅조차도 피하는 유성탄을 다른 자들이 건드릴 용기는 없었다.
“마동파 이놈 어디 갔지? 심심한데…….”
그늘에 누워 빈둥거리던 유성탄은 마동파가 안 보이자 궁금해졌다. 이미 마동파에게 장기로 딴 돈이 은자 열 냥이 넘고 있었다.
“모두 모여라!”
며칠 동안 간섭 없이 편하게 쉬던 낭인들은 철검보의 순찰영주의 외침에 뭉그적 일어나서는 그의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시 비월문에서 깔짝댄다는 정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구역 쪽으로 상당히 많은 무사들이 모인다고 한다. 그래서 순찰을 돌 용병이 필요하다. 지원자는 나와라.”
순찰영주의 말에 모두 관심 없다는 듯이 돌아서려고 한다. 이미 경험이 좀 있는 낭인들은 전투보다도 순찰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순찰을 나갔다가 잘못하여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 죽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물론 철검보의 무사들과 같이 가기는 하지만 철검보의 무사들은 정식 무공을 배운 자들이었다. 당연히 신법도 알고 무공도 그들보다 높으니 먼저 알고 도망도 잘 친다. 하지만 용병들은 아무것도 모르고는 범의 아가리로 그냥 들어가기 일쑤여서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번 순찰은 하루에 은자 스무 냥이다.”
엄청난 돈이었다. 하루에 이십 일 치를 벌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용병들은 그래도 마음에 안 내키는지 나서지 않았다. 돈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도가 크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은자 스무 냥이라구? 내가 할 거야! 아무도 나서지 마! 나서면 죽어 나한테!”
누워 빈둥거리던 유성탄의 귀에 은자 스무 냥이란 말이 들어왔다. 그리고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난 유성탄은 모여 있는 낭인들을 거칠게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서더니 소리쳤다.
“스무 냥은 내 거야! 누구도 눈독 들이면 죽는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낭인들을 쳐다보며 살기 띤 눈으로 소리치는 유성탄을 보며 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무식한 놈! 돈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가자고 해도 안 간다, 이놈아! 너나 가서 목이나 잘려라.’
어차피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유성탄까지 설치자 모두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돌아서려고 하자 순찰영주가 다시 소리쳤다.
“세 명은 필요하다. 두 명 더 나와야 한다. 만약 안 나오면 순찰은 취소된다.”
순찰영주의 말에 유성탄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뭐야! 잘못하면 큰 수입을 놓치게 생겼잖아 에이 씨! 가만있자…….’
눈을 부라리며 좌중을 돌아보던 유성탄은 두 명을 어떻게든 맞춰주기로 결정했다.
“너! 마동파, 너도 가자.”
유성탄의 눈을 피해 다니던 마동파는 순찰영주가 부르는 바람에 모였다가 재수 없이 유성탄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고 진짜 재수 없게 유성탄의 마수에 잡히고 말았다.
“난 지금 몸이 좀 안 좋수! 그래서…….”
하지만 마동파는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유성탄의 눈에서 살기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뭐? 몸이 안 좋아? 이 새끼 만약 순찰이 취소되면 진짜 몸이 안 좋은 게 뭔지 보여주겠다.”
마동파는 쏜살같이 유성탄의 옆에 와 섰다. 순찰영주는 마동파를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마동파가 그런대로 양보하는 사람은 강태웅과 철패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들도 마동파에게 이렇게 대하지는 못했다. 순찰영주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너 이리 와.”
마동파를 끼워 넣은 유성탄은 한 명 더 고르기 위해 쭉 둘러보다가는 강태웅을 가리키더니 불렀다.
“저… 저놈이!”
사방이 웅성거렸다. 감히 강태웅을 고를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마치 강아지를 부른 듯한 유성탄의 말투였다.
“나 말인가?”
강태웅이 전혀 당황하지 않은 말투로 반문했다.
“난 두 번 말하게 하는 놈을 제일 싫어한다. 이리 나와라.”
유성탄의 눈에서 다시 살기가 튀어나왔다. 동시에 강태웅의 눈에서도 신광이 번쩍였다. 하지만 찰나간에 사라져 순찰영주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하하! 알았네, 이거 나가지 않기에는 너무 살벌하군.”
강태웅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더니 유성탄의 옆에 가 섰다.
“세 명 다 됐수! 이제부터 은자 스무 냥씩 주는 거요?”
순찰영주는 용병들의 대장 격인 강태웅까지 협박하는 유성탄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유성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이상하군. 강태웅까지 한 수 접는 것을 보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말하는 것은 완전 양아치니…….’
“순찰은 내일 아침에 떠난다. 그리고 은자는 내일부터 스무 냥씩 지불된다.”
순찰영주의 말에 유성탄의 눈에서 다시 살기가 돌았다.
“지금 장난하는 거요? 내가 목에 힘줘서 둘이나 더 잡아줬는데 왜 내일이란 말이오? 얘들은 몰라도 나는 오늘부터 스무 냥 줘야 하오. 만약 오늘부터 안 준다면 난 그만두겠소.”
유성탄은 한번 튕겨보기로 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상당히 많이 배운 그였다. 그러나…….
“그럼 너는 그만둬라. 다른 사람을 뽑겠다.”
“내일부터 받겠소!”
유성탄은 숙소에 누워 돈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스무 냥이면 열흘이면 백오십 냥이고 이십 일이면 이백오십 냥이고 한 달이면… 어쨌든 많다. 히히히!’
엉터리 계산을 하면서도 유성탄은 기분이 좋았다. 유성탄은 그리 많지 않은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이상하게 엄마가 돈을 무척 좋아했다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가 가장 존경하던 아버지와도 돈 때문에 여러 번 싸웠던 것 같은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유성탄은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만났을 때 흠뻑 안겨드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은 효자였지만 하는 방법은 호래자식이었다.
“야! 잠깐 일어나 봐라.”
누군가가 유성탄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누구냐? 나 지금 바쁘다. 다음에 한가할 때 불러라.”
유성탄은 누가 부르는지 왜 찾는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듯 한마디 내뱉더니 다시 계산에 들어갔다.
‘이 새끼가… 이거 정말 바보야 뭐야? 왜 이렇게 상황판단을 못 하는 거야?’
속삭이던 자는 유성탄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보통은 이렇게 말하면 상황을 눈치 채는 법이었다. 그리고 당장 경계를 하든지 아니면 기세가 죽든지 한다. 그러나 유성탄의 행동은 상식에 전혀 맞지 않았다.
“야! 지금 안 나오면 후회할 거다.”
‘은자 스무 냥씩 열흘이면 백 냥이고 이십 일이면 이백 냥이고… 어! 이상한데?’
아까와 똑같은 계산을 다시 하면서 그사이 계산이 달라진 유성탄은 자신이 계산하고도 이상한지 손가락을 움찔대며 다시 계산을 하다가 들려온 후회라는 낱말에 생각을 멈추고 속삭이던 자를 쳐다보았다.
“후회? 왜 맛있는 거라도 있냐?”
“그래 아주 맛있는 것을 준비해 놨다. 그러나 지금 안 나가면 국물도 없다.”
유성탄은 후다닥 일어나더니 말했다.
“기특한 놈들… 내가 출출한 것은 어떻게 알아가지고. 나가자.”
생각이 다른 둘이 나가자 잠자는 것같이 조용히 누워 있던 낭인들이 모두 몸을 일으켰다. 아무도 자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새끼!”
문을 나선 유성탄의 목에 도끼가 그대로 떨어졌다.
“아야!”
목에 도끼를 맞은 유성탄의 입에서 아프다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왜도같이 가느다란 칼이 그대로 유성탄의 배를 쑤셨다.
“아! 따가!”
다시 유성탄의 입에서 소리가 튀어 나왔다. 순간 다시 유성탄의 머리에 쇠몽둥이가 그대로 작렬했다. 그러더니 망치로 바위를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유성탄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이구!”
동시에 십여 명의 주먹과 발길질이 그대로 유성탄의 몸에 떨어졌다. 하지만 유성탄을 기습한 모두의 머릿속에서는 이상한 질문이 지나가고 있었다.
‘도끼를 목에 맞은 놈의 비명이 아야! 가 뭐야?’
‘이상한 놈이다… 칼로 복부를 쑤셨는데 아! 따가! 라니…….’
“쇠몽둥이가 머리를 부수면 말도 하지 못하고 직사인데… 아이구?’
그들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자식들!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죽어라!”
이미 죽었어야 하는 유성탄이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칼과 도끼 그리고 몽둥이가 유성탄의 몸에 꽂히고 있었지만 이제는 가벼운 비명소리도 나지 않았다.
* * *
“봐!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했잖아.”
숙소 안에서 구경하던 자들 중 유성탄과 같이 용병이 된 자 하나가 옆에 있는 자에게 속삭였다.
“나 유성탄이 가장 싫어하는 놈이 바로 너희들같이 맛있는 것 있다고 해놓고서는 거짓말 치는 놈들이다.”
숙소 앞에는 십여 명의 낭인들이 손을 들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유성탄을 기습한 자들이었다. 이미 얼굴은 얼마나 맞았는지 퉁퉁 부어 있었고 코피가 난자하게 얼굴과 옷에 묻어 있었다.
그러나 유성탄이 소리친 것과는 달리 죽은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유성탄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맛있는 것이 있다고 거짓말 했다는 것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 * *
“이게 뭐냐?”
유성탄은 고기를 입에 집어넣으며 무척 맛있다는 듯이 물었다.
“저장육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 나한테 매일 이런 것 사주기로 약속한 것 잊어버리면 안 된다.”
유성탄은 계속 입에 저장육을 집어 넣으며 말했다.
유성탄을 습격한 낭인들은 유성탄의 매를 견디다 못해 돈을 모아 밖에서 가장 고급집이라는 청루에 사람을 보내 고급음식을 시켜오고 말았다. 그리고 유성탄의 매는 멈췄다. 역시 유성탄은 죽이려 한 데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유성탄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 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행동이 남들이 죽이고 싶어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몰랐다.
‘후후후! 진짜 괴물 같은 친구로구나.’
강태웅은 유성탄이 자신을 습격한 자들을 앞에 무릎 꿇려 놓고는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겁에 질려 유성탄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다른 낭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그였다.
“어디까지 가는 거요?”
아침 일찍 일어난 유성탄은 순찰을 떠나기로 한 강태웅과 마동파와 함께 그동안 보던 철검보의 무사와는 달리 상당히 강해 보이는 중년의 무사 몇 명과 철검보를 나섰다. 그런데 한 시진도 안 되어 불평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의 말에 철검보의 무사들은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저것들이… 그냥! 에이 내가 은자 스무 냥 때문에 참는다.’
유성탄은 억지로 참으며 그냥 뒤를 따랐다. 하지만 반 시진도 안 되어 다시 물었다.
“도대체 밥은 주고 계속 걸어야지 아무리 은자 스무 냥이라고 해도 굶기면서 일을 시키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오?”
“철검보에서 출발하기 전에 충분히 먹은 것으로 아는데? 안 먹었나?”
순찰을 지휘하는 철검보의 무사 하나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언젠데 과거를 말하는 거요?”
“겨우 두 시진 전인데 그것도 과거라고 할 수 있는 거냐?”
“아 씨! 듣자 듣자 하니까 계속 반말인데, 당신 몇 살이야?”
유성탄이 결국 터트리고 말았다.
“여기 책임자는 나다. 그리고 너는 용병으로 우리에게 돈을 받고 명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런 질문은 더 이상 하지 말아라. 그리고 최소한 너보다는 내가 나이가 많다.”
무사는 아주 차갑게 말했다. 용병인 유성탄을 무시하는 것이 분명했다.
“알겠으니 우선 빨리 목적지까지 갑시다.”
유성탄이 앞으로 한 발 나서자 강태웅이 급히 중재한다. 그리고는 유성탄을 보며 말했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꾸 방해하면 더 늦어질 뿐이다.”
강태웅의 말은 무척 무게가 있어서 철검보의 무사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저게 나한테는 반말을 하더니 저놈한테는… 씨, 두고 보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유성탄은 강태웅의 얼굴을 잠시 째려보더니 다시 뛰기 시작했다. 철검보의 무사들은 당연히 신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태웅과 마동파도 어느 정도 절기는 아니지만 신법을 펼칠 줄 알았다.
하지만 유성탄은 그냥 뛰어야만 했다. 그러니 유성탄의 배가 금방 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성탄은 몸을 날리는 그들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급히 쫓아갔다.
‘정말 웃기는 작자란 말야. 어떻게 뛰면서 신법을 쓰는 우리랑 속도를 같이 맞추는 거지?’
마동파는 부지런히 달리는 유성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빨리 달릴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유성탄같이 몇 시진을 전력을 다해 뛰면서 숨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라.”
책임자는 세 명의 용병만 남긴 채 철검보의 무사를 이끌고는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저것들 어떻게 저렇게 날아다니는 거야?’
유성탄은 그들이 신법을 이용해 몸을 날리는 것을 보더니 속으로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그들이 지금까지는 유성탄 등을 생각해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유성탄은 묻지 않았다.
“태웅 형님! 철검보에서 그 속도로 무려 네 시진 가까이 남쪽으로 내려왔소. 그렇다면 거의 안남의 접경에 도착한 건데 무슨 순찰을 여기까지 온답니까? 이상하지 않소?”
마동파가 강태웅을 보며 물었다.
“나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곳까지 굳이 우리 같은 용병을 데려온 이유를 모르겠다.”
강태웅도 뭔가 수상한지 경계를 하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강태웅이나 마동파가 낭인 중에서는 대단한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만 무림의 고수를 만난다면 삼초를 버티기도 힘들 것이었다. 물론 강태웅은 좀 달랐다. 숨기고 있는 무공이 좀 있었다. 그러나 알아주는 고수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사실 강태웅은 십 년 전 용병으로 첫 번째 전투에 참가하고는 무척 놀랐었다. 어느 정도는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로서는 진짜 고수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 후에도 그는 여러 전투에 용병으로 나갔었고 나갈 때마다 고수들이 사용하는 초식을 눈여겨보고는 싸움이 끝나면 홀로 열심히 본 것을 연습하고는 했다.
실지로 강태웅은 무공에 관한 한 천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재질이 뛰어난 자였다. 하지만 좋은 스승과 좋은 무공을 만나지 못했고 아무런 신공이나 기초심법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무술을 익힐 수 있을지 몰라도 무공이라고 할 만한 실력을 키우기는 요원했다. 그러나 한 번도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열정을 버린 적이 없었기에 남들보다 열 배 이상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먹는 나이는 점점 그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기연이 찾아온 것은 약 삼 년 전이었다. 속담대로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같이 그의 의협심이 기연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천하를 떠돌다 우연히 황산 기슭에서 심한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노인을 구해준 것이다. 노인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강태웅은 몰랐지만 노인은 강태웅에게 큰 선물을 주고 죽었다. 강태웅은 한 가지 심법과 한 가지 검법, 그리고 노인의 공력을 전해 받는 큰 기연을 받은 것이었다.
그 후 삼 년에 걸쳐 그는 자신의 전력을 다해 무공을 익혀왔고 지금 그의 실력은 거의 일류고수를 넘어가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낭인이 아닌 무림인으로 행세하고도 남을 정도의 무공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무림의 고수에게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우선 그는 받은 공력의 삼 할 정도밖에 활용을 못 하고 있었고, 검법도 이미 굳어진 몸으로는 십 성 이상 연마가 불가능했다. 거기다 그는 낭인의 생활이 좋았다. 거칠고 어찌 보면 너무 험한 생활이었지만 강태웅은 그 생활이 좋았다.
지금도 강태웅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기조식을 하고 자신이 아는 단 하나의 검법을 연습했다. 하지만 낭인들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다 보인 적은 없었고 누군가를 죽인 적은 더욱 없었다. 그가 가볍게 이번 순찰을 따라온 것도 어느 정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런 그도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아! 진짜 배고프다. 도착만 하면 밥을 준다고 해놓고는 밥도 안 주고 지들끼리 사라지고…….”
혼자 독백처럼 크게 말하던 유성탄은 강태웅과 마동파를 보며 다시 말했다.
“야! 저것들 지들끼리 먼저 맛있는 것 다 먹고 우리 부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마동파의 얼굴이 찌그러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밥을 찾는 배짱도 대단했지만 애들 같은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기가 막혔다.
마동파는 유성탄이 오로지 먹기 위해 벌레만 잡아먹으며 살아온 생활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처절한 생활을 한 사람이 유성탄이었다.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먹었지만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먹기 위해 사는 상황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남들과 전혀 대화도 못 했고 공부는 당연히 못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의 생활은 그의 모든 사고를 열 살쯤에서 멈추게 했고 배고프면 참지 못하는 동물 같은 본능을 극대화 시켜 놓았다. 거기다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으니 남을 배려하는 것도 배우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유성탄의 이기적인 성격도 거기에 기인한 것일 거라는 것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하! 정말 배짱이 대단하구먼. 자네 이름이 유성탄이라고 했지? 어떤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것 같은데 우리 친하게 지내는 것이?”
유성탄은 본능과 육감이 남들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그래서 유성탄도 강태웅에게는 크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강태웅의 몸에서 나타나는 협의의 기질이 유성탄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것은 나도 좋지만 나와 친해지려면 누구라도 내게 대형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이미 네가 대형이라고 불리고 있으니 난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친구로군. 나는 대형이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뭘 말이냐?”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간의 서열을 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네. 그 중의 가장 간단한 방법이 나이를 비교하는 것인데… 어떤가? 우리 서로 나이를 비교해 보는 것이?”
‘나이? 나이가… 내가 몇 살이지?’
유성탄은 도대체 자기가 얼마나 충동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어린 나이에 들어갔는데 나와 보니 어른이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너는 몇 살이냐?”
“그럴 때는 자네의 나이부터 말하는 게 예의라네.”
유성탄은 예의라는 말에 잠깐 멈칫했다가는 말했다.
“어째서 내가 먼저 말하는 것이 예의란 말이냐?”
“내가 자네에게 나이를 비교해 보자고 말했지 않는가? 그러니 자네가 먼저 말하는 것이 예의란 것이네.”
“그건 너의 예의다. 나의 예의는 네가 먼저 나이를 비교하자고 했으니 네가 먼저 말하는 것이 예의다.”
유성탄의 억지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태웅의 말도 그리 신빙성이 있는 말은 아니었으니 유성탄의 억지를 반박할 만한 이유를 찾기는 힘들었다.
“자네의 예의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말하겠네. 나는 스물일곱 살이네.”
강태웅은 생각 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나는 서른 살이다.”
유성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자네는 자네가 서른 살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내가 내 나이를 서른 살이라는데 누가 의심한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곧 말하지 못하고 잠시 생각한 이유가 뭐냐?”
“나는 숫자에 좀 약하다. 그래서 세어보느라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난 너의 나이가 서른 살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왜 못 믿는다는 말이냐? 내가 너보다 수염도 더 길고 키도 크다.”
“수염은 나도 길다. 다만 매일 깎아서 짧은 것이다.”
강태웅은 솔직히 말했지만 유성탄은 분명 거짓을 말했다. 하지만 증인이나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 서로 간에 우긴다면 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저 내 생각인데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마동파가 둘의 입씨름이 길어지자 나서며 말했다.
“우리는 어차피 낭인입니다. 낭인이 나이로 형, 동생을 따지는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남자답게 누가 강하냐로 결정짓지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끼리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니 만약 오늘 전투가 벌어진다면 적들 중에 강한 자를 이긴 사람이 대형이 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유성탄과 강태웅은 마동파의 말을 듣자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동시에 말했다.
“좋다! 그거 좋은 방법 같다. 만약 오늘 싸움이 없으면 다음이라도 싸움이 벌어지는 날을 기점으로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때였다. 떠났던 철검보의 무사 중 한 명이 나타났다.
“여기서 반 시진 정도 내려가면 영흠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그곳에 들어가서 적들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몇 명이나 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아가지고 와라.”
무사는 급하게 말했다.
“우리 셋만 말이오?”
“그렇다. 너희 셋이서만이다. 비월문 놈들은 내공이 있는 무림인을 보면 무조건 검사를 한다. 너희들이 양민으로 변장하고 들어가서 정찰을 하고 나온다. 그리고…….”
철검보의 무사가 잠시 말을 흐렸다. 강태웅은 즉시 다음에 나올 말이 본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들어가면 화려한 이두마차가 있는가 찾아봐라. 만약 있다면 곧장 나오면 된다.”
“마차가 한둘이 아닌데 그냥 화려한 이두마차라면 우리가 찾는 마차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하겠소?”
마동파가 물었다.
“보통 화려한 마차가 아니니 보면 저절로 저거구나 하게 될 것이다.”
“마차가 비월문에 납치된 것이오?”
강태웅이 물었다.
“그것은 알 필요 없다. 그냥 있나 없나만 보고 오면 된다.”
“그런 거라면 무지 쉬운데 굳이 셋이나 들어갈 필요가 뭐가 있겠소. 나 혼자 들어갈 테니 세 명에게 줄 돈을 다 나에게 주시오.”
유성탄이 끼어들며 말하자 무사는 유성탄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더니 대꾸도 안 하고 보따리 하나를 던져준다. 보따리에는 나무꾼들이나 입을 추레한 마의가 세 벌 들어 있었다.
‘저게 내 말을 씹어!’
유성탄의 눈에서 잠시 살기가 번뜩였다. 한 명도 죽이지는 않으면서 살기는 엄청 뿜어대는 유성탄이었다.
“안에 비월문도들이 많이 있소?”
강태웅이 물었다.
“모른다.”
“그게 말이 되오? 모른다니. 만약 많이 있으면 우리는 그대로 골로 가는 거 아니오?”
마동파가 흥분하여 말했다.
“그래서 변복을 하고 가는 것 아니냐? 용병이라면 알아서 처신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런 것까지 우리가 가르쳐준단 말이냐? 거기다 하루 은자 스무 냥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뛰다가 돌아가는 일에 누가 그런 큰돈을 준다는 말이냐?”
말인즉슨 맞는 말이었다. 하루 은자 스무 냥이면 보통 대문파의 장로들이나 받을 만한 급여였다.
“야, 마동파! 겁나면 넌 여기에 있어라! 대신 돈은 나 줘라. 그러면 내가 니 몫까지 잘 조사하고 오겠다.”
유성탄이 다시 나섰다.
‘저 자식은 돈에 걸신이 들렸나……. 영주님도 참 이런 중요한 일에 하필이면 저런 또라이를…….’
말하던 철검보 무사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해대는 유성탄이 무척 비위에 거슬렸다. 하지만 이미 적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들어와서 큰 소리를 낼 수도 없었으니 철검보에서도 과격하기로 유명한 그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셋이 같이 들어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 마을을 셋으로 나누어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대신 해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씨! 좋다 말았군.’
유성탄도 더 이상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세 명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어차피 가서 소란을 피우라고 들여보내는 거지만 그래도 좀 안됐군. 강태웅은 가장 쓸모있는 용병이었는데… 마동파도 좀 아깝고…….’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는 세 명의 낭인을 보며 무사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다가 유성탄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중얼거렸다.
‘저놈은 꼭 죽었으면 좋겠구나. 하여간에 엄청 짜증나는 놈이다.’
그들이 내려가는 고을은 큰 마을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명이 조사하고 다니기에 작은 마을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굳이 셋이나 조사를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미끼인 게 분명합니다. 저 정도 크기의 마을에 우리가 셋이나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난 아무래도 돈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갔으면 싶네요. 우리가 돈 벌러 온 거지 죽으려고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동파가 마을이 보이자 입을 열었다. 마동파도 낭인으로 제법 잔뼈가 굵은 자였다. 당연히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오래전에 그의 목은 땅에 떨어졌을 것이었다.
“야, 마동파. 그러지 말고 너 이 근처 어디에 숨어서 찌그러져 있어라. 그럼 내가 알아보고 와서 너도 같이 갔었다고 말해 주마. 그리고 돈은 받아서 나 주면 되고.”
유성탄이 마동파의 말을 듣자 기회라는 듯이 말했다.
“정말 왜 그렇게 돈을 좋아하는 거요? 지금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있는 거요?”
“난 돈을 많이 벌어서 가야 된다. 넌 모른다. 내 엄마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화나면 밥도 안 주고 집에서 쫓아낸다.”
“그게 돈하고 무슨 상관이오?”
“엄마가 돈을 좋아한다.”
유성탄의 말에 강태웅이 미소를 지으며 부러운 듯이 말했다.
“보기보다는 효자구나. 부럽다. 난 효를 바칠 부모도 없다.”
그들의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마을 안에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거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같은데요?”
마동파가 귀를 기울이더니 말했다.
“우리 말고 또 다른 침입자가 있는 모양이다. 내 생각에도 지금 저곳에 들어가는 것은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미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강태웅도 위험을 느끼는 듯이 말했다.
“저거 싸우는 소리 아니다. 장난하는 소리다.”
소리만으로 싸우는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한다는 듯이 말하는 유성탄을 강태웅과 마동파가 쳐다보는데 유성탄이 또 헛소리를 한다.
“너도 겁나는 것 같은데 너도 숨어 있어라. 그리고 돈은 나 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