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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충동(蟲洞)의 기연 (2/79)

제2장 충동(蟲洞)의 기연

충동은 혈문이 백여 년 전 이곳에 본거지를 마련하면서 발견한 자연 동굴이었다. 비밀장소를 만들기 위해 동굴을 파던 그들은 갑자기 나타나는 엄청난 벌레 떼에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혹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이따금 독벌레까지 나타나는 바람에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시체 처리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따금 유성탄같이 미움을 받으면 산채로 던져지기도 했다.

* * *

충동! 야 이게 제법 웃기는 곳이더라고. 벌레가 엄청 많아서 충동인데 혈문 그놈들이 나를 죽이려고 그곳에 던진 거지. 하지만 난 유성탄이야, 유성탄! 벌레들까지 나를 알아보는 거야. 내가 떨어지니까 벌레들이 쫙 물러나더라니까. 한마디로 하늘이 낸 사람을 알아본 거지. 나도 그때서야 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거야. 하하하!

* * *

충동에 던져진 유성탄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엄청 바동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동거림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 떨어지면서도 살기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가던 유성탄의 손에 칡덩굴 같은 나무뿌리가 손에 잡혔고, 손바닥이 다 찢어지는 상태에서도 죽어라고 잡는 바람에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면서 떨어지는 충격도 같이 줄었던 것이다. 거기다 어린애였던 것도 행운이었다. 무게가 적게 나갔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아앙~ 엄마!”

떨어지는 순간 잠시 정신을 놓았던 유성탄은 깨자마자 다시 울기 시작했다. 사방은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거기다 무엇인가가 계속 자신의 몸을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겁이 난 유성탄의 입에서는 어린애 특유의 째지는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나왔다. 개구쟁이였지만 나름 사랑을 받고 자라던 그가 혈문에 납치되어 일 년간 왕따로 엄청 고생을 했다. 꾀를 많이 부리기는 했지만 그것도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자기보호 본능이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 지하 동굴에 홀로 떨어져 몸에 무엇인가 계속 스멀거리며 기어다니니 이제 겨우 여덟 살 어린아이인 유성탄으로서는 울지 않고는 그 불안과 공포를 추스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면서 무작정 걷던 유성탄은 아버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사막에 혼자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 진짜 남자라고 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생존본능이 유난히 발달한 유성탄의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아! 울었더니 배가 고프구나.”

유성탄은 보려고 눈을 부릅떠 보았지만 보일 리 만무했다.

“씨! 뭐가 보여야 먹을 것을 찾든지 하지. 아! 이건 뭔데 자꾸 몸에서 기어다니는 거야.”

유성탄은 우선 앉았다. 그리고는 몸에 붙은 무엇인가들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땅을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뭔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 유성탄의 손으로 이상한 것들이 계속 꾸물거렸다.

“이게 뭐지? 말캉말캉한데… 먹어도 되려나?”

손에 잡히는 제법 큰 벌레를 하나 잡은 유성탄은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듯 계속 꾸물럭대는 벌레를 주무르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어린아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좀 시금털털하지만 먹을 만하네.”

유성탄은 먹어보고는 그런대로 괜찮았는지 또다시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유성탄은 동굴 구석에 처박혀 열심히 자고 있었다. 벌레도 한참 먹으니 배가 차 왔고 그러자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잠을 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원체 한번 잠들면 누가 때려도 모르고 죽어 자는 유성탄인지라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하지만 코와 귓속으로 기어드는 놈들은 정말 문제였다. 그래도 귀는 입고 있는 옷을 조금 찢어서 막았지만 코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옷을 얼굴에 덮고서야 잘 수 있었다.

유성탄이 약간이라도 민감한 성격이었다면 아마 잠을 못 자서 죽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씨! 답답해 죽겠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사람도 사는 것 같지도 않고…….”

잠에서 깨어난 유성탄은 우선 볼일부터 본 후 주위를 더듬거리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디에도 빛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꾸 몸에 기어오르는 벌레들이 귀찮아 떼어내기에 바빴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어 올라오는 게 더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앞도 안 보이는데 벌레를 잡으려면 땅을 계속 더듬었어야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몸에 붙어 기어다니는 놈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벌레 밥으로 들여보낸 유성탄이 벌레를 밥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앞이 안 보인 게 어쩌면 다행이었다. 만약 보였다면 어린 유성탄으로서는 그 징그러운 벌레들을 밥으로 먹기 힘들었을 것이다.

“가만… 이놈은 맛이 없던데……. 그래도 배는 부르니까… 옳지 잡았다. 요놈은 맛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유성탄의 촉각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손에 닿기만 하면 무슨 벌레인지 전부 다 알게 된 것이다.

그곳에 있는 벌레의 종류는 엄청났다. 얼마 전 유성탄이 심심해서 세어보다가는 결국 포기했었다.

유성탄은 본능적으로 나갈 길을 찾기 위해 사방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빛이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 모든 것을 손의 감촉과 귀에 들리는 소리로 판단해야 했다.

거기다 이곳은 너무 더웠다.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 때문인지 너무 더워서 유성탄은 하루 종일 땀을 흘렸다. 그러다 보니 허기와 갈증이 쉽게 왔고 당연히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벌레를 먹어야 했다.

충동은 물도 없었다. 이따금 습기를 머금은 땅이 있기는 했지만 식수로 사용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여러 종류의 벌레들은 물을 많이 머금고 있었다. 어떤 벌레는 씹으면 물이 탁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수시로 달려드는 독벌레는 정말 골치 아팠다. 처음에는 너무 아팠고 열까지 펄펄 났지만 지금은 물리면 아프기만 했다.

유성탄은 모르고 있었지만 하루 종일 땀을 흘리는 것이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한꺼번에 물리면 이미 죽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양의 독에 노출된 유성탄이었지만 땀으로 계속 배출되는 바람에 견딜 수 있었고, 자신도 모르게 독에 저항까지 생기고 있었다.

거기다 그가 먹는 벌레들은 생각 외로 영양도 좋았다. 벌레들도 땅속의 영기를 축척해 몸에 지니고 있다. 다만 그 양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에 천고의 영물 같은 효과는 없었다. 그러나 유성탄이 먹는 벌레의 양이 엄청나다 보니 그 효과가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 땀으로 계속 불순물을 배출시키니 생각 외로 햇빛도 안 드는 어두운 동굴 생활이었지만 건강은 오히려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기연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유성탄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동굴을 마치 제집 돌아다니듯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옷은 이미 다 찢어져서 완전 알몸이었는데 땀을 너무 흘려서 매일 목욕한 사람 같았다.

“하하하! 이제 너도 나한테는 안 된다.”

유성탄은 거의 주먹만 한 벌레를 하나 잡더니 입에 넣고는 우적우적 씹어 먹기 시작했다. 요즘 유성탄은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심심한 것을 싫어하는 유성탄은 스스로 놀이를 만들고는 벌레들과 그 놀이를 시작했다. 일종의 숨바꼭질이었는데 소리만으로 특정한 벌레를 잡아내는 놀이였다.

사방에 엄청나게 몰려 있는 벌레 중에 소리만으로 특정한 벌레를 잡아낸다는 것은 처음에는 불가능이었지만 그것을 재미로 삼고 노력하다 보니 차츰 그의 귀에는 벌레들 특유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목표로 잡은 벌레는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놈이었다. 다른 놈들은 맛이 찝찔하거나 시금털털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놈만은 씹으면 단물이 나왔다. 그래서 유성탄은 그 벌레에게 당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놀이 겸 당과를 먹는 겸 시작한 놀이는 이제는 뛰는 와중에도 소리로 그놈을 찾아서 잡아먹을 수 있게 발전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놀이가 유성탄이 독충이라고 이름 지어준 벌레였다. 이놈은 독벌레였는데 한번 물리면 엄청 아팠다. 처음에는 너무 아파서 그놈을 피하다가 시작한 놀이였지만 이제는 잡기 위한 놀이로 변했다.

한번 물렸을 때 우연히 그 벌레를 잡았는데 먹어보니 의외로 상당히 고소했다. 그래서 자주 그 벌레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물리면 너무 아파서 엄두를 못 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 벌레가 자신의 몸에 붙으면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놈이 먹고 싶으면 손이 안 닿는 등만 동굴 벽에 기대고 있다가 그놈이 달라붙으면 손으로 때려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쉬울 것 같지만 잠시만 움직이지 않아도 수많은 벌레가 몸에 달라붙어 기어 다니는 상황에서 특정 벌레만을 느낌으로 알아낸다는 것은 대단한 감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냥 동굴을 헤매고 다니던 유성탄의 귀에 여태 들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은 크지는 않았지만 정말 길었다. 거기다 그 가지가 얼마나 많은지 미로도 그런 미로가 없었다. 앞도 안 보이는 유성탄으로서는 무작정 벌레를 먹고 뛰어다니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러다 보니 유성탄은 자신은 모르지만 매번 새로운 곳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벌들이 나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바람소리로 변해갔다. 유성탄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무엇인가 위험함을 느꼈다. 유성탄은 슬슬 뒤로 발걸음을 옮기다가는 돌아서더니 무작정 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좁은 동굴을 마치 보이는 듯이 뛰어가는 유성탄이었지만 날아오는 벌레를 뿌리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앗! 따가… 앗! 아야……!”

갑자기 유성탄은 따갑고 후끈한 기운을 느끼며 펄쩍 뛰었다. 그동안 많은 독물에게 물렸지만 이번에 느끼는 고통은 대단했다. 얼마 안 가 유성탄의 몸은 이상한 벌레들이 뒤덮기 시작했다.

유성탄이 뛰면서도 본능적으로 떼어내었지만 달라붙는 벌레의 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점점 심한 고통에 결국 유성탄은 넘어져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땅바닥을 뒹굴었지만 한번 달라붙은 벌레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벌레들의 수는 엄청났다. 몸부림치는 유성탄의 몸에는 빠진 데 없이 벌레들이 달라붙었고 비명을 지르는 유성탄의 입속까지 벌레들이 달라붙었다. 고통 속에서 유성탄은 죽어라 하고 들어오는 벌레들을 씹어 먹었다. 하지만 마지막 반항도 곧 사라지고 유성탄의 몸은 움직임이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성탄의 몸에 붙었던 벌레들은 이상하게 전부 말라가며 떨어졌다.

그 벌레들은 지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지룡봉이라는 신비한 벌이었다. 거의 십여 장 이상의 지하에서만 생존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룡봉은 승천에 실패한 용의 시체를 먹고 산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용이 진짜 존재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만큼 특별한 벌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룡봉이 어쩌다 지상에 나타나는 경우가 생기면 독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의술을 배운 사람들은 그것을 구하기 위해 만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다.

지룡봉의 독은 사람을 죽이는 독이 아니라 살리는 독이었다. 즉 몸속에 어떤 독이 있어도 지룡봉의 독이 섞인 약을 먹으면 독을 중화해 내었다. 또한 지룡봉의 몸속에는 특유의 꿀이 존재하는데, 그 꿀을 그냥 먹으면 별 효능이 없지만 어떤 상처도 그 꿀을 섞은 약을 바르면 순식간에 아물기 때문에 무림인들에게는 그 꿀을 섞은 지룡고라는 이름의 금창고는 최고의 보물이 되기도 했다.

만약 유성탄이 만난 지룡봉의 떼를 밖에서 보았다면 큰 난리가 날 만한 일이었지만 유성탄은 아무것도 모르고 죽은 듯이 누워 있기만 했다. 엄청난 고통 속에 정신을 잃었던 유성탄의 몸은 보기 흉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지룡봉이 이렇게 떼를 이루는 경우는 번식을 할 때뿐이었다. 번식을 할 때가 되면 지룡봉은 수놈과 암놈은 수정을 한 후 같이 특이한 종류의 벌레를 찾아 알을 낳는다. 먼저 벌레에게 수놈이 독을 주입한다. 그러면 그 독이 주입되는 즉시 벌레는 정신을 잃는다.

수놈은 자신의 몸속에 있는 꿀을 벌레의 몸속에 넣고는 죽는다. 수놈의 작업이 끝나면 암놈이 달려든다. 암놈은 벌레의 껍데기가 굳어지기 전에 속에 알을 낳고는 역시 자신의 몸속에 있는 꿀을 전부 몸속에 넣어주고는 암놈도 죽는다. 그 후에 암놈의 꿀과 수놈의 꿀이 섞이면 황제나 먹는다는 신선봉유가 만들어진다.

신선봉유는 피부를 젊게 해주고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나서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모두 인기가 매우 좋았지만 지룡봉 자체를 발견하기도 어렵거니와 암수 한 쌍에게서 만들어지는 신선봉유의 양은 정말 적어서 여간한 부자가 아니면 구경하기도 힘든 기물이었다.

특히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지룡봉이 유성탄을 공격한 것은 기사였다. 그것은 유성탄이 가장 맛있게 먹은 단물이 나는 벌레 때문이었다. 지룡봉이 알을 낳는 벌레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벌레의 단맛을 좋아하는 유성탄이 그 벌레 종류를 좋아해서 너무 많이 먹었고 잠시도 쉬지 않고 흘리는 땀에 그 벌레의 특이한 향기가 묻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두운 동굴에서 지룡봉은 그 벌레를 냄새로 찾기 때문이었다.

퉁퉁 부어 있던 유성탄의 전신은 마치 풍선에 바람을 넣은 것 같았다. 그리고 피부가 잠시도 쉬지 않고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유성탄의 피부에 낳아 놓은 알은 한 시진 정도면 알을 깨고 나와 자신이 살 집을 준비한다. 지금 유성탄의 피부에는 깨어난 애벌레가 피부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애벌레들은 우선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타액을 배출한다. 그 타액은 벌레의 조직을 바꿔버린다. 지룡봉이 알을 낳는 벌레는 단맛이 많이 나기 때문에 많은 벌레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살아 움직일 때는 벌레가 스스로 방어를 하지만 정신을 잃은 벌레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룡봉의 애벌레는 다른 벌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벌레의 조직을 바꿔 벌레의 껍데기를 단단하면서 질기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애벌레의 타액에 의해 변한 벌레의 조직은 단단하면서도 탄력을 가진 고무같이 변하여 안에 있는 애벌레는 여간한 충격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커가게 된다.

하지만 유성탄의 몸 안에는 애벌레들이 자리를 잡기에 필요한 공간이 없었다. 유성탄의 온몸 구석구석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은 공간을 찾기 위해서 유성탄의 몸을 온통 헤집으면서 유성탄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며 타액을 내뿜으며 조직을 바꿔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츰 애벌레들은 결국 인간의 몸 안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죽어갔다. 또한 애벌레의 움직임으로 신선봉유는 유성탄의 몸 전체에 퍼져 흡수되었다.

신선봉유는 공력을 늘여주는 효과는 없었지만 많은 양을 몸에 주입하면 평생을 남아 있으면서 어떤 상처든지 즉시 낫게 해주는 천고의 영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성탄의 피부는 엄청난 탄력을 가진 고무처럼 변해갔다. 유성탄에게는 실로 천고의 기연이었지만 유성탄은 죽을 때까지 그것을 모른다.

또 시간이 흘렀다.

“으응… 씨! 아까 그놈들 뭐야?”

정신이 든 유성탄은 좌우를 둘러보더니 아무것도 안 보이자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언제나 들리던 벌레들 소리만 들릴 뿐 자신을 덮쳤던 지룡봉의 날개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휴~ 가버린 모양이구나. 이제 소리를 기억했으니 그놈들 소리만 나면 무조건 도망쳐야지. 와! 진짜 아팠다.”

지룡봉이 자신의 몸에 알을 낳고는 다 죽어버린 사실을 유성탄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룡봉에 물렸을 때 끔찍하게 아팠던 기억에 다시는 지룡봉을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배고프다! 그런데 벌레들 소리가 왜 안 들릴까?”

유성탄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의식을 잃었었는지 몰랐다.

유성탄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땀을 흘렸다. 먹는 것도 없이 땀만 계속 흘린 유성탄의 몸은 모든 조직의 불순물이 땀을 통해 제거되면서 그자리를 몸 곳곳에 퍼져 아직 남아 있던 신선봉유가 채워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완벽하게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유성탄의 몸에서는 신선봉유의 달콤함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언제나 유성탄의 몸에 붙어 기어 다니던, 그리고 손만 내밀면 잡히던 벌레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린 이유였다.

정신이 든 유성탄은 엄청난 허기를 느꼈다. 하지만 지룡봉은 벌레들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지룡봉 한 마리만 나타나도 벌레들은 모두 도망을 가는데 온몸에서 지룡봉의 달콤한 냄새가 퍼져 나오는 유성탄의 근처에 벌레들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굴은 길었지만 넓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뛰어다니다 보면 사방에 튀어나온 칼끝같이 뾰족한 바위에 온몸이 긁히고 찢겨지기 일쑤였다.

당연히 보이지도 않는 유성탄으로서는 온몸에 상처가 그칠 새가 없었다. 조심조심 다녀도 위험한 곳을 빠르게 걸어다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유성탄만 나타나면 벌레들이 다 도망가거나 숨어버리니 유성탄은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러다가는 굶어죽겠다.”

벌레들로 배를 채우려면 사실 잠시도 쉬지 않고 먹어야 했다. 벌레들의 양은 너무 적었고 들어 있는 물기도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쉬지 않고 땀을 흘리는 유성탄으로서는 하루 종일 잠시도 쉬지 않고 벌레를 먹어야 했다.

그동안은 다행히 벌레들이 저절로 달라붙으니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유성탄은 배를 채우기 위해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간신히 배를 채울 정도였는데 계속 뛰다보니 배가 더욱 고파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특히 유성탄이 가장 좋아해 당과라 부르던 달콤한 벌레는 지룡봉의 냄새만 나도 멀리 날아가는 통에 유성탄은 정말 빨리 움직여야 하루에 한 마리나 먹을 정도였고 갈증을 풀어주던 물을 많이 함유한 벌레는 땅속 깊이 도망가는 바람에 갈증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계속 땅을 파야 했다.

그동안은 몰랐는데 막상 벌레들도 도망가기 시작하니 보통 빠른 게 아니었고 여간 영리한 것이 아니었다. 부수지 않고는 잡을 수 없는 바위 틈 같은 그런 곳으로만 도망쳤다.

그러는 동안 유성탄의 몸에는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귀는 이미 동물이나 들을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땅속에서 움직이는 벌레의 미약한 움직임조차 들을 수 있었다.

거기다 온몸의 감각은 어디의 공기가 약간의 파장만 생겨도 즉시 알아차릴 정도로 예민해졌다. 당연히 벌레가 살짝 날기만 해도 유성탄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손은 손가락 끝으로 바위를 찌르면 그냥 구멍이 날 정도로 단련이 되었고 바위를 치면 손쉽게 어깨까지 파고들 정도가 되어 있었다.

지룡봉의 기연이 있기 전까지는 유성탄의 몸에는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러나 지룡봉의 기연이 있은 후로는 유성탄의 몸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물론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 바로 그랬기에 얻을 수 있었던 힘이었다.

아프지를 않으니 될 때까지 단련을 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도 힘든 수련이었다. 물론 유성탄은 수련을 한 것이 아니고 벌레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충동(蟲洞)에 떨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직 살기 위해 지내온 시간이었다. 자신의 몸에 변화를 느끼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먹기 위해 땅을 파고, 먹기 위해 달렸고, 먹기 위해 벽을 뒤지며 바위를 부쉈다. 유성탄에게 힘을 주는 것은 오직 하나, 어렴풋이 생각나는 엄마와 아버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일념뿐이었다.

“어, 이상하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유성탄은 눈앞이 이상한 듯하자 눈을 비볐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들어보았다.

“하하하!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앞이 보이네. 와아, 드디어 보인다.”

갑자기 앞의 광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어렴풋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본다는 것은 빛이 사물에 반사되면 그 빛이 눈에 들어와 알게 되는 것이다.

무림의 고수가 밤에도 낮같이 본다는 말도 비록 흐릿하나마 달빛과 별빛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곳같이 불빛이 한 점도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유성탄은 보인다고 하고 있었다.

유성탄은 지금 갑자기 보이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갑자기는 아니었다. 유성탄은 동굴에 떨어진 후 무던히도 앞을 보려고 노력했다. 어른이었다면 당연히 포기할 일이었지만 유성탄은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무조건 보려고 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모든 감각을 보기 위해 열어놓고 있었다. 보인다기보다는 감각에 의한 진동에 의해 그 형체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었지만 유성탄은 그 차이를 알 수 없었다.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유성탄은 마치 진짜 박쥐같이 동굴을 날아다니듯이 뛰고 있었다. 이미 청년으로 변해 있는 유성탄이었다. 발가벗은 몸은 탄탄한 근육과 땀으로 번들번들했다.

나이가 들면서 유성탄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혈문에서의 지옥 같은 일 년이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기억이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오직 어둠과 고독과 괴로움뿐이었다.

그러자 오직 마음속에는 혈문에 대한 원망과 복수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혈문의 인물들은 진짜 무서웠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모르고 어릴 때 생각만 하는 유성탄이었다. 그리고 유성탄은 처음으로 단련이라는 것을 하기로 결정했다. 혈문을 때려 부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 * *

다른 사람 같으면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도 남을 어려움 속에서 나는 스스로 무공을 창안해 내기 시작했다. 번득이는 감각과 천재적인 머리로 나는 홀로 무공을 익힌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할 수 있다. 왜냐! 바로 내가 유성탄이거든.

* * *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배웠던 포교 무공을 생각해 보았다. 물론 기억에는 모두 사라졌다. 형도 초식도 하나도 남은 게 없었다. 오직 아버지로부터 배운 포교 무공 중 그가 기억하는 것은 강한 몸과 빠른 몸이란 말이었다.

그 후 유성탄의 하루는 오로지 단련뿐이었다. 아무런 무공의 기초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강한 단련뿐이었다.

동굴의 벽은 단단했고 복잡했다. 한군데도 직선으로 십 장 이상 이어진 곳은 없었다. 유성탄은 그 벽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그냥 몸으로 돌진하여 부딪쳤다. 그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강한 몸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내공도 없고 외공도 모른다. 무조건 때리고 막고 벽에 뾰쪽하게 튀어나온 돌들은 자신을 노리는 무기로 보고 주먹으로 부셔버렸다.

빠른 몸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뛰었다. 휘어지는 곳도 멈추지 않고 뛰었다. 처음에는 강한 충격으로 벽에 그대로 박혀버리기 일쑤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좁고 꼬불꼬불한 동굴을 전혀 속도를 바꾸지 않은 상태로 뛸 수 있었다. 지룡봉의 기연으로 상처를 입지 않는 단단해진 몸과 아픔을 못 느끼는 신체로 변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무식한 방법이었다.

유성탄의 방식으로 훈련을 한다면 여간한 고수도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이나 할 방법으로 몸을 단련하는 유성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동굴을 날아다니듯이 뛰어다니던 유성탄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젠 지겨워서라도 여기서는 더 못살겠다.”

언제부터인가 동굴의 사물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유성탄은 그동안 자신의 먹을거리로 자신을 살려온 벌레들을 보면서 식욕을 잃고 있었다. 안 보일 때는 그렇게 사랑스럽고 먹음직스러웠던 벌레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징그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 유성탄은 동굴의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이도 없이 그리는 지도는 별 쓸모가 없었다. 동굴은 그 가지가 너무 많았고 떨어지고 난 후 어둠 속을 방향감각도 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시작이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이거 도대체 동굴에 끝이 없으니…….”

유성탄은 바닥에 털버덕 주저앉아 가지고는 지친 듯 고개를 동굴 벽에 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내려갈수록 더워진다. 그러나 온도만으로는 동굴이 너무 올라갔다 내려갔다 굴곡이 심해서 꼭 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꽉 막힌 동굴치고는 숨쉬기에 불편이 없다. 그렇다면 공기가 순환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입구를 찾는데는 도움이 안 되었다.

사실 보통 사람에게 동굴의 공기는 무척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랜 동굴생활과 끝없이 뛰어다닌 덕으로 폐활량이 보통 사람의 몇 배로 커졌기 때문이었다. 동굴에서도 하루 종일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그가 만약 밖에 나간다면 그 지구력은 아마 끝이 없을 것이었다.

* * *

세상에 그런 미로는 아마 없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아마 거기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불가능이란 말이지. 하하하! 그러나 나 유성탄은 천재 같은 머리로 모든 미로를 분석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드디어 알아냈어. 바로 그것은 자연을 이용해 만들어진 하늘의 진이라는 것을.

나 같은 하늘이 낸 사람만이 알아낼 수 있는 하늘의 진! 모든 원리를 알게 된 후 나는 누구도 깨지 못할 그 진을 완벽한 분석으로 깨나가기 시작했다.

* * *

유성탄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머리로는 그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뭘 배운 게 있어야 머리라도 돌 텐데 배운 게 없으니 상식적인 생각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공 수련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생각해 낼 수 없는 가장 무식한 방법을 생각해 내고 만다.

벌써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성탄은 무조건 위로 올라가다가 내리막길이 나타나면 무조건 땅을 파고 올라가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흙은 길이 막히지 않게 동굴 사방으로 밀어내며 바위가 나타나면 깨부수고 안 깨지면 옆으로 돌고 이따금 무너지면 다른 곳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조금씩 위로 향해 갔다.

어떤 때는 흙더미에 묻혀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유성탄에게 상처를 주지 못했다. 유성탄의 몸이 변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하기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에게는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니 아는 방법이 없었다.

유성탄의 신체는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거의 괴물로 보일 정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천하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벌레들의 동굴에서 거의 불사신에 가까운 괴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렀을까… 계속 땅을 파고 올라갔다면 시간이 단축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하루의 반 이상은 먹이를 잡는데 사용해야 하는 그로서는 계속 땅만 파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으악!”

유성탄은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높이는 거의 오 장이 넘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온몸이 박살날 수도 있는 높이였지만 유성탄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툭툭 털며 일어났다.

유성탄이 판 통로는 겨우 유성탄의 몸이 간신히 빠져 나갈 정도였으니 떨어지면서 온몸을 엄청 긁혔지만 상처 하나 없었다. 이미 그 정도 높이에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이 떨어졌던 유성탄이었지만 이번은 느낌이 달랐다. 갑자기 손이 푹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눈에 엄청난 빛이 들어왔고 유성탄은 눈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순간적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이고, 눈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동안 아픔을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유성탄은 갑작스런 아픔에 깜짝 놀랐다. 유성탄은 흙이 범벅이 된 손으로 눈을 한 번 비비더니 천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뚫어놓은 통로가 직진이 아닌지라 끝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거 분명 빛이다. 우하하하! 드디어 뚫었다.”

한번 기분 좋게 호탕하게 웃어젖힌 유성탄은 왜 눈이 그리 아팠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갑자기 손이 푹 빠지는 바람에 눈에 흙이 들어갔다고.

“으악! 이게 뭐야? 왜 흙도 안 들어갔는데 아파오는 거야?”

유성탄은 그대로 벽에 팔을 박아가며 위로 다시 올라갔다. 사람들이 보면 어이없을 정도의 무식한 방법이었다. 거의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진 벽이 가볍게 찌르기만 해도 마치 두부 찍듯이 팔이 팔꿈치까지 박히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통로에 도착한 유성탄은 눈에 흙이 안 들어가도록 조심하며 올라갔다. 그리고 빛을 똑바로 받는 동시에 다시 눈이 아파옴을 느끼며 눈을 감아버렸다.

“으으윽! 내가 나가면 혈문 이놈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거야!”

팔을 벽에 박은 채 대롱대롱 매달려서 잠시 생각하던 유성탄은 혈문이 더욱 미워졌다. 아니 사람을 납치하는 놈들은 한 놈도 살려주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있었다. 아무 이상 없이 나갔다면 어쩌면 몇 명은 봐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입구를 보고도 나가지를 못하자 갑자기 혈문에 대한 원한이 더 쏟아지고 있었다.

“안 되겠다. 빛 때문에 그런 모양이니 조금씩 눈에 적응이 될 때까지 좀 기다려야겠구나.”

생각을 마친 유성탄은 우선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벌레들로 배를 채우기 시작한 유성탄은 뚫어 놓은 통로 밑에서 며칠을 버티면서 눈을 단련시켰다. 처음에는 햇빛은 물론 달빛에도 눈이 부셨으나 며칠이 지나자 많이 견딜 만해졌다.

“휴우! 되기는 되는구나. 안 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됐는데…….”

“으하하하! 드디어 나왔다. 하하하하! 아아아앙아앙… 아버지! 엄마!”

드디어 빛에 눈이 적응되자 밤을 기해 밖으로 나온 유성탄의 입에서는 천하가 울리는 듯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길어지던 웃음이 드디어 울음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더니 아버지와 엄마를 찾으며 절규로 변해버렸다.

발가벗은 몸에 한 번도 수염을 깎지 않아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괴인이 달밤에 아버지와 엄마를 찾으며 내뱉는 절규 속에는 원한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안에서는 몰랐는데 나오니까 왜 이렇게 엄마하고 아버지가 생각나는지 모르겠구나?”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자 유성탄의 입에서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찬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유성탄은 부모의 이름도 마을의 이름도 기억이 전혀 나지 않고 있었다. 생각나는 이름은 혈문과 장쾌뿐이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기억이 나지만 자신이 생각해 봐도 아버지란 이름과 엄마란 이름만으로 아버지와 엄마를 찾기는 힘들 것 같았다. 잠시 달을 멍하니 쳐다보던 유성탄은 아버지의 등에 업혀 보던 달이 기억났다. 그리고 천하를 다 뒤져서라도 부모님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 * *

사천성과 광서성의 경계에 귀주라는 곳이 있다. 근처에는 구파에는 들지 못하지만 그래도 무림에서는 큰소리치는 공래파가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유명한 곳이 낭인촌이었다. 귀주에 낭인촌이 형성된 것은 안남에 비월문이라는 비밀조직이 생기면서부터였다.

명초에 안남을 토벌하면서 안남에는 명나라에 대항하는 결사조직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욱일승천하는 명나라를 더 이상 상대하기 어려워진 결사조직은 명에 대한 반항을 포기하고 비월문이라는 무림조직으로 변질되었다.

결사조직이 무림세력화하자 그 힘이 안남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안남에는 그런 큰 세력을 먹일 만한 시장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비월문은 안남의 경계를 슬슬 넘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대규모로 접경을 넘어와서는 무림 남쪽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러자 광서와 운남 그리고 사천의 남쪽에 있는 문파들은 비월문을 상대하기 위한 연합을 이루었다. 한 문파로 상대하기에는 비월문의 세력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슬이 퍼렇던 명 황실의 무림문파에 대한 견제책 때문에 각 문파는 삼백 명이 넘는 문도를 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명 황실의 간섭을 받지 않는 비월문은 고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 문도수가 거의 일만에 달했다. 결국 연합을 한 문파들은 관의 허락을 받고는 각기 돈을 염출하여 용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일만이면 군이 출동해야 할 일이었지만 황실에서는 안남을 너무 자극하지 않기 위해 무림에서 견제해 주기를 원했다. 황실의 허락 하에 전쟁이 벌어지자 할 일 없던 낭인들이 일을 찾아 남으로 대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으로 이동한 낭인들이 용병으로 팔려가기 전에 모이는 곳이 바로 낭인촌이었다.

낭인촌에서 그들끼리만의 검증을 통해 몸값을 정하면 각 문파는 그 몸값을 인정해 주었다. 문파의 연합체였지만 낭인은 문파별로 영입하고 있었다. 싸움이 끝난 후에 세력판도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 검증이란 것도 간단했다. 처음 낭인촌에 낭인이 들어오면 기세싸움이 시작된다. 고수는 힘쓸 필요도 없이 기세만으로 높은 몸값을 형성할 수 있었지만 기세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만한 고수는 낭인들 사이에서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 다음은 싸움이었다. 어떤 자가 몸값이 은 열 냥인데 누가 그를 꺾으면 은 열두 냥이 되는 식이었다.

낭인촌에 이상한 괴인이 나타난 것은 일주일 전쯤이었다. 얼굴이 장비털로 덮여 있는 그 괴인은 이상하게 생긴 짧은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낭인촌의 특성상 들어오면 신고식 비슷한 것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밀리면 완전 기를 못 펴고 지내게 된다. 만약 버티면 피를 보게 되는데 보통은 눈빛만으로도 서열이 정해진다.

그런데 그 괴인은 단 한 주먹으로 낭인촌의 말썽꾸러기였던 적발귀를 때려눕히면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하루에 한 명씩 그에게 작살나면서 일권박살(一拳搏殺)이란 이름이 붙었고 열흘도 안 되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공포의 악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의 별명은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너무 무식하고 말이 안 통하는 그를 사람들은 마질(魔蛭)이라 부르며 모두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질은 한번 걸리면 끊임없이 귀찮게 하는 괴인의 찰거머리 같은 행태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그 괴인은 바로 충동에서 빠져나온 유성탄이었다.

산을 내려오던 유성탄은 화전민이 사는 집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 너무 반가워 막 달려갔지만 화전민 부부는 벌거벗고 뛰어오는 유성탄을 보더니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가 버렸다.

“뭐야! 뭐가 저리 바쁜 거야…….”

혼자 중얼거린 유성탄은 집 주위를 둘러보더니 갑자기 어렸을 때 살던 집이 생각났다.

“맛있다. 쩝쩝……!”

부엌에서 삶은 옥수수 몇 개를 발견한 유성탄은 화전민 부부들이 뛰어간 쪽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옥수수 하나 먹을 거요!”

하지만 이미 사라진 그들에게서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한 유성탄은 맛있게 옥수수를 먹었다.

“엄마가 삶아준 옥수수가 진짜 맛있었는데…….”

어렸을 때의 생각이 간간이 나는 유성탄이었다.

“가만있자… 이거 옷인데…….”

유성탄은 뭔가 더 먹고 싶은지 주위를 둘러보다가는 허름한 옷이 걸려 있자 자신의 몸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때서야 자신이 알몸이란 것을 생각해 낸 유성탄은 옷을 심각하게 쳐다보더니 다시 화전민 부부가 사라진 쪽을 보며 소리쳤다.

“옷 하나만 가져갑니다. 도둑질 아니에요!”

역시 아무 대답이 없자 유성탄은 허락을 받았다 생각하고는 옷을 입었다. 하지만 유성탄에게는 너무 작았다.

산을 내려온 유성탄은 모든 것이 생소했다. 사람들은 완전 거지 같은 몰골에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옷을 입은 유성탄을 피하기 바빴다. 유성탄의 몸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풀풀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충동에서의 유성탄은 오직 살기 위해 먹었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흑은 그의 온갖 감각을 칼같이 만들어놨고 자연스럽게 그 감각은 살기로 변해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겨우 어렸을 때 칠 년이었다. 그것도 아기 때부터 사오 년은 전혀 기억이 없는 시기였으니 간신히 이삼 년이 그의 인간다운 삶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까지 유성탄을 버텨오게 만든 힘이었다.

포교였던 유정삼은 유성탄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시켰다. 현재의 유성탄에게는 간신히 기억나는 유정삼의 그 말이 나름대로 그의 생활의 기준이 되어 있었는데 그 첫째가 도둑질이었다. 포교답게 유정삼은 도둑질과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짓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고, 착한 사람은 도와야 하며 남자 간에는 의리가 최고라고 가르쳤다.

생각나는 것은 그게 다였지만 유성탄이 나쁘게 빠지는 것을 막아주기에는 충분했다.

“이거 참 벌레도 몇 마리 없고 배는 고파 죽겠는데…….”

세상에 나오니 그렇게 많던 벌레들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방을 뒤지면 꽤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작은 소리도 듣는 그로서는 사방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벌레의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 수가 너무 적었고, 그것보다는 사방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음식 냄새에 더 이상 벌레에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저거 그냥 집어 먹어, 말아? 안 돼. 그래도 아버지가 도둑질은 절대 안 된다고 했어.”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불쌍하게 앉아 있는 유성탄에게 그래도 안돼 보였는지 지나가던 사람이 동전 하나를 던져주었다.

“동전이다! 분명 그냥 준 것 같은데… 이건 도둑질은 아닐 거야.”

그 동전은 유성탄에게 한 끼 식사를 하게 해주었다. 다행히 돈을 엄청 좋아하던 엄마 덕분에 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길에서 파는 만두 하나가 딱 동전 하나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굉장히 언짢게 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저놈 뭐야! 거지가 왜 저렇게 살벌하게 생겼어? 보기 싫으니까 대충 두들겨 패서 쫓아내라.”

그 조그만 마을에도 왈패는 있었고 유성탄은 그놈들의 비위를 거스르기 딱 좋게 생겼다. 이 마을 왈패들의 두목인 호기문은 자신도 모르게 사신을 건드리고 말았다.

“야! 너 잠깐 이리 와 봐!”

유성탄을 부르는 험상궂은 놈들을, 아직 먹은 게 부족한지 만두가 약간 붙은 손가락을 핥고 있던 유성탄은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이놈 보기만 그렇지 영 멍청한 놈이군! 동태눈 뜨지 말고 따라와라.”

그놈들은 윽박지르듯 말하더니 손가락을 까딱거리고는 걸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유성탄은 어기적 그들을 따라갔다.

골목을 따라간 유성탄은 십여 명이 넘는 자들이 골목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유성탄이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한 놈이 유성탄의 어깨를 주먹으로 탁 쳤다.

“이 자식 여기가 어딘… 으악!”

유성탄의 어깨를 주먹으로 친 놈은 말하다 말고 유성탄의 주먹에 그대로 날아가며 뻗어버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왈패들이 유성탄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움직이지도 않고 그들의 주먹과 발을 모두 피하면서 딱 한 대씩 주먹으로 그들을 때렸다.

일 각도 안 되어 왈패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뻗어버렸다. 그래도 두목이라 맷집이 꽤 좋은지 호기문은 다른 놈들과는 달리 한 대 맞고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

“대형! 제가 대형을 몰라 뵙고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호기문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뒷골목 왈패로는 상당한 깡과 주먹실력을 가진 그였지만 유성탄의 주먹은 다시는 맞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아팠다. 다시 그 주먹을 맞는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왜 나를 여기로 부른 거냐?”

유성탄은 싸우고도 아직 이유를 모르는지 어눌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너무 멋있게 보여서 성명이라도 알고 싶어서 부른 것입니다. 절대로 딴 이유는 없었습니다.”

유성탄의 목소리에 약간 미련하다고 생각한 호기문이 둘러댔다.

“아니다. 그런 이유는 아니야. 분명 나쁜 짓을 하려고 했어. 나는 느낄 수 있다.”

유성탄은 너무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으므로 생긴 약간 더듬는 목소리로 다시 말하며 또 때리려는 듯이 주먹을 쥐었다.

“아닙니다. 저희 같은 무뢰배들이 어찌 감히 대협 같은 분에게 나쁜 짓을 하겠습니까? 언감생심 절대로 아니니 때리지만 마십시오. 흐흐흑… 또 치시면 전 진짜 죽습니다. 제발…….”

호기문은 유성탄의 주먹에 완전 겁을 먹었는지 울기까지 했다. 유성탄은 우는 모습을 보자 어렸을 때 생각이 떠올랐다. 그 당시 일곱 살짜리들의 싸움은 누군가가 울면 싸움이 끝나는 게 보통이었다. 유성탄은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마. 대답을 잘해주면 그만 때린다.”

“아무것이나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호기문은 살았다는 듯이 황급히 대답했다.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유성탄의 말에 호기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는 급하게 대답했다.

“돈을 버는 방법은 제가 천 가지도 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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