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내가 유성탄이다
“아버지! 아버지! 으흐흑… 아버지,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제가 얼마나 아버지를 보고 싶어했는데요. 흐흐흑… 아버지,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탄이가 왔어요. 아버지~.”
* * *
“어이 이리 와 보시게! 같이 일하게 됐는데 통성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소?”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삼과 홍두표 그리고 단수호는 지나가고 있는 유성탄을 보자 말을 걸었다.
“나 말이오? 헤헤, 나랑 친해져서 손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까짓 거 합시다. 나 유성탄이오.”
“여기서 일을 시작하면 서로 간에 과거 얘기도 해주고 해야 서로 정도 돈독하게 붙는 법이오. 나이는 몇이고 전에 한 일은 무엇이고… 얘기 한 번 하시게. 어차피 우리가 한 조가 될 것 같은데…….”
“나이? 나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떠돌다 보면 이상하게 나이부터 묻는 사람이 꽤 많습디다. 그래서 나의 나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오. 낭인으로 떠돌던 주제에 신분을 확인할 길은 어차피 없고, 무조건 형이라 우기다가 말이 안 통하면 그때는 우리만의 방법으로 확인하면 되는 거 아니겠소?”
시작부터 약간 껄렁하게 시작되는 유성탄의 과거사였다.
* * *
결혼? 물론 안 했다. 아직 팔팔한 나이에 한 여자에게 매여 살 필요가 무엇인가! 나는 놀 만큼 놀고 즐길 만큼 즐기다 예쁘고 유식하고 돈 많은 여자를 골라서 결혼할 계획이다.
이왕이면 말까지 잘 들으면 좋겠지만, 나도 양심이 있다.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나 같은 주제에 어디서 그런 여자를 구하냐고? 바로 나, 유성탄이기 때문에 방법은 무진장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을 열거하면 도장 찍고 사귀기, 때려눕혀 사귀기, 겁줘서 사귀기…….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나는 그리 착한 놈은 아니다.
사는 곳이 어디냐고? 나는 사는 곳 물어보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하늘을 지붕 삼아 땅을 방바닥으로 여기며 사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방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게 내 방의 장식품이고 노리개다.
그렇게 보니까 내가 엄청 부자 같아 보이는데 가진 것은 x알 두 쪽밖에 없다. 그래도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시하면 그때부터 그자에게 세상은 지옥으로 변한다.
남들은 나보고 부모도 없이 자란 막돼먹은 호래자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도 엄연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제일 잘생겼다고 믿는 부모가 있었다. 그때 그 일만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 엄청 착한 아들로 세상의 칭송을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 일… 생각할수록 개자식들이다.
* * *
“너 이리 오지 못해! 도대체 저게 커서 뭐가 되려고 이렇게 속을 썩이는 거야! 이리 못 와!”
별로 부자 동네는 아니나 그렇다고 빈민들이 사는 곳도 아니다. 한마디로 중산층에서 조금 많이 떨어지기는 하나 그럭저럭 굶지는 않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그저 그런 동네가 지금 웬 아줌마의 엄청 큰 목소리로 시끄럽다.
소리치는 아줌마의 앞에는 딱 삼 장 거리를 두고 꼬마 하나가 서 있었다. 당차게 생긴 꼬마는 뒷짐을 지고는 땅을 쳐다보며 발로 땅을 탁탁 치고 서 있었다.
“너 정말 이리 오지 못해!”
움직이지 않는 꼬마를 보며 아줌마가 한걸음 앞으로 다가서자 꼬마는 화들짝 놀라며 두 걸음 물러선다. 그러더니 아줌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면 때릴 거잖아요? 씨! 난 아무 잘못 없는데…….”
꼬마의 말을 들은 여인이 작전을 바꾼 듯 목소리를 낮추며 손에 든 회초리를 등 뒤로 숨기며 어른다.
“탄아, 이 엄마가 왜 우리 예쁜 탄이를 때리겠니? 엄마는 그냥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니까 어서 이리 오련.”
선녀의 목소리였다. 누구든 엄마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다. 거기다 저렇게 어르는 목소리는 천상의 소리 같은 법이다. 그러나 일곱 살밖에 안 된 유성탄은 거의 하루에 한 번씩 듣는 유혹의 소리에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 뒤에 숨긴 거 회초리 맞지요? 그거 어디 쓰려고 들고 계신데요?”
유성탄의 말에는 웃기지 말라는 뜻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참지 못한 유성탄의 어머니 강추화는 회초리를 휘두르며 돌진했고 동시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유성탄이 쏜살같이 도망간다. 언제부터인가부터 강추화는 더 이상 유성탄을 잡기가 힘들어졌다. 숨을 헥헥거리며 멈춘 강추화가 유성탄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너 오늘 저녁은 다 먹었으니까 각오해!”
엄청난 협박을 하며 돌아서는 강추화를 보며 유성탄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씨! 엄마가 돼가지고 꼭 밥 갖고 겁주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 군것질은 상상도 못 하는 유성탄에게 밥 안 준다는 협박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유성탄은 진짜 오늘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일곱 살짜리 어린애의 본능이 죄라면 죄였다.
집밖으로 나온 그의 눈에 앞집에 사는 장쾌의 모습이 보였고… 그리고… 장쾌의 손에 그 맛있는 당과가 들려 있는 게 아닌가!
“장쾌야, 맛있니?”
유성탄이 침을 꿀꺽 삼키며 앞으로 다가섰다. 유성탄을 본 장쾌가 놀라며 한걸음 물러서며 말한다.
“진짜 맛있다.”
말한 장쾌가 혓바닥을 꺼내더니 당과를 맛있게 핥았다. 진짜 맛있단다. 진짜 맛있는 게 뭔지 엄청 궁금해진 유성탄이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 딱 한 번만 핥아보자. 그냥 혀만 살짝 대볼게.”
혀만 살짝 대 볼 걸 뭐 하러 핥아보려는지 모르겠다.
“싫다. 너도 전에 옥수수 먹을 때 나 안 줬잖아. 그런데 내가 왜 이 맛있는 당과를 핥게 해주냐?”
진짜 쪼잔한 놈이다. 그게 언제 때 얘긴데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단 말인가. 옥수수하고 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는가 말이다. 옥수수는 무조건 최소한 한 알은 줘야 한다. 옥수수를 핥아보자는 놈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당과는 혀만 대어본다고 하지 않았는가. 혀만 대는데 당과가 얼마나 닳겠는가!
일곱 살짜리들도 주먹에는 서열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유성탄은 최고 상위였다. 결국 유성탄은 주먹을 들지 않고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유성탄의 주먹이 올라가자 장쾌의 얼굴이 변하더니 자기의 집을 쳐다본다. 여차하면 울 것이고 그러면 그의 강력한 원군인 엄마가 튀어나올 것이다. 전에도 한 대 슬쩍 대기만 했다가 장쾌 엄마가 유성탄의 엄마를 찾아가 한바탕하면서 엄마한테 엄청 맞은 불행한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유성탄이 일곱 살답게 얼렀다.
“입만 대보고는 더 이상 안 한다. 정말이다. 하지만 네가 싫다고 하면 이제부터 애들한테 너랑 놀지 말라고 할 거다.”
유성탄의 협박이 먹혔는지 아니면 어른 게 통했는지 장쾌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당과를 유성탄에게 내밀며 말한다.
“혀만 살짝 대는 거다. 핥아도 안 된다. 손도 대면 안 된다.”
유성탄의 얼굴로 다가오는 당과는 장쾌의 침으로 범벅이 되어 번질거렸다. 하지만 진짜 맛있다는데 그까짓 침이 대수랴. 그리고 당과가 순식간에 유성탄의 입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오는 장쾌의 울음이 섞인 비명소리, 그리고 뛰어나오며 소리치는 장쾌의 엄마!
“누가 우리 착한 장쾌를 울리냐! 아니 너 유성탄이 이놈! 또……!”
장쾌의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하고 유성탄은 쏜살같이 도망갔다. 그리고 당과는 아껴 빨아먹었지만 순식간에 다 녹아 목으로 넘어가 버렸다. 뒤에 그가 겪을 고난에 비해서는 너무 짧은 행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슬슬 집으로 걸음을 옮기던 유성탄은 장쾌 엄마가 자신의 엄마와 같이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유성탄과 엄마의 거리는 삼 장이 되었고, 이제는 저녁을 굶게 생겼다.
“탄이 어디 가니?”
지나가던 천씨 아저씨가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유성탄을 보며 물었다.
“아버지 기다리러 가요.”
유성탄이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자 천씨 아저씨가 웃으며 말한다.
“또 말썽부린 모양이구나. 그런데 너의 아버지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텐데…….”
이상한 아저씨다. 유성탄이 아버지 기다리러 간다는데 그게 왜 그가 말썽부렸다는 생각과 연결이 된단 말인가! 하지만 동네에서 유성탄은 아주 유명한 아이였다. 하루도 말썽을 안 부리는 적이 없었다. 그때마다 강추화가 유성탄을 잡으러 다녔고 곧이어 유성탄의 비명소리가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요즘은 동네 어귀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유성탄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유성탄의 아버지는 감숙성 한주현 포청의 포교였다. 할아버지도 포교였으니 벌써 이대째였다. 그다지 청렴결백하지도 않았고 뒷구멍으로 들어오는 돈은 미안해하지 않고 다 받아 챙기며 살아왔는데도 생활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하긴 일개 포교에게 생겨봐야 얼마나 생기겠는가.
그러나 유성탄에게 있어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었다. 한번 저잣거리에 아버지와 같이 나갔던 유성탄은 아버지를 완전 존경하게 되었다. 육모방망이를 건들건들 흔들며 거리를 거니는 아버지에게 사방에서 굽실대며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 중에는 유성탄이 보기에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인상이 더럽고 덩치가 큰 왈패들도 있었다. 유성탄의 눈에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유성탄에게는 너무 자상했다. 엄마가 아무리 화나도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는 유성탄을 때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눈치를 깐 다음부터는 유성탄은 제 발로 엄마에게 가서 때리는 대로 맞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유성탄은 엄마가 화났을 때는 우선 도망을 가서 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같이 들어가곤 했다.
“왜 이렇게 안 오시는 거지? 아, 배고파……. “
사방이 어둠으로 덮이자 은근히 무서워지는 유성탄은 그냥 집으로 가서 몇 대 맞고 밥 먹고 자고 싶은 욕망이 몇 번이고 일어났지만 이미 여러 시진 기다린 게 아까워서 똥고집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동정호 누각에 학이 날아오며~~~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수한 노랫소리… 아버지였다.
“아버지!”
유성탄은 너무 반가워 크게 소리부터 치며 달려갔다.
“으잉! 이게 누구냐? 하하하! 너무 예쁜 우리 아들이 왜 또 여기서 이렇게 아버지를 기다리는고?”
유정삼은 어디서 얼큰하게 한잔했는지 약간씩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유성탄의 목소리를 듣자 호탕하게 웃으면서 안아서 번쩍 들었다.
“아버지, 술 먹었어요? 아휴, 술냄새!”
“하하하! 아버지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한잔 했다.”
유 포교로 불리는 유정삼은 포교들 중에서는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비록 뒤로 받아먹는 것은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포교들처럼 수금을 하러 다니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안 준다고 패악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따금 들어오는 돈은 그가 맡은 구역에 주루가 많았고 여러 가지 변태 영업으로 걸릴 것이 많은 주루의 특성상 예방차원으로 쥐어주는 것이 태반이라 유정삼은 그리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종종 오늘같이 한 잔 얻어먹는 경우도 많아서 술을 좋아하면서도 술값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사나이 유성탄이 오늘은 무슨 일이 생겨서 아직까지 집에 못 들어가고 여기서 헤매고 있느냐?”
유성탄은 코를 손으로 쥐고 코맹맹이소리로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하하하! 역시 내 아들이구나. 아버지를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내 피를 이은 게 분명하구나. 하하하! 그리고 거짓말도 쬐끔 잘 치고. 하하하하……!”
유정삼은 유성탄이 너무 예쁜지 볼에 뽀뽀를 해준다.
“아이, 따가워요.”
유성탄이 유정삼의 수염이 얼굴에 닿자 따갑다는 듯이 유정삼의 얼굴을 손으로 밀었다. 그러자 유정삼은 유성탄을 내려놓더니 등을 내밀었다.
“업혀라. 업고 가는 게 더 쉽겠다.”
유성탄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폴짝 등에 업힌다.
“아버지!”
등에 업혀가던 유성탄은 집이 가까워오자 유정삼을 슬쩍 불렀다.
“루루루루루~~~ 응? 왜?”
유성탄을 업고 가면서도 입으로는 계속 노래를 응얼거리던 유정삼이 다정하게 대답했다.
“당과가요… 우연히 입에 들어와서 실수로 먹어도 죄가 되나요?”
‘옳지! 요놈… 드디어 뭔 일인지 부는구나.’
“글쎄다? 당과가 어떤 우연으로 입으로 들어갔는지 그리고 어떤 실수로 먹게 됐는지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게요… 누구 손에 있었는데요… 갑자기 그 손이 내 입 쪽으로 왔어요.”
“음… 갑자기 손이 네 입으로 온 이유를 알아야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 알겠구나.”
포교답게 유도심문을 펼치고 있는 유정삼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건의 개요는 알 만했다. 누군가의 당과를 빼앗아 먹고 엄마에게 혼날까봐 도망친 게 눈에 보였다.
“탄이 밥은 먹었니?”
“아직 안 먹었어요.”
“또 엄마한테 쫓겨났구나.”
“난 엄마 아들 아닌가 봐요. 만날 밥도 안 주고 때리려고만 하고…….”
엄마를 아버지에게 아무리 과장되게 일러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어린 유성탄이었다.
“탄아,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엄마는 너를 무지 사랑하고 있단다. 생각해 봐라. 매일 밥 안 준다고 그러면서도 결국 밥을 주잖아. 네 옷도 매일 빨아주고… 너 그리고 아직도 엄마 젖 만지잖아.”
“나 엄마 젖 안 만져요!”
유성탄이 가장 창피스럽게 여기는 말이 엄마 젖 만진다는 말이었다. 만약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일곱 살짜리 유성탄도 다 알고 있었다. 분명 얼레리꼴레리였다.
‘하하하! 조그만 게 창피한 거는 알아서…….”
하지만 유정삼은 유성탄이 강추화의 젖을 아직도 만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따금 밤에 강추화의 가슴으로 손을 넣으면 유성탄의 손이 잡히곤 했기 때문이었다.
“알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집에 가면 ‘엄마 잘못했습니다.’ 그러고 다시는 안 그런다고 싹싹 빌어라. 알았지?”
등에 업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 유성탄은 어느새 따뜻한 유정삼의 체온에 동화됐는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집에 도착한 유정삼은 그때까지 밖에서 서성이던 강추화를 보더니 조용하게 불렀다.
“여보! 탄이 잠들었어. 그런데 왜 밖에 나와서 기다려. 감기 들려고…….”
“아이고, 이놈의 자식 당신 힘들게… 당신한테 갔겠지 하기는 했는데 너무 늦잖아요. 혹시나 걱정이 돼서 방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저녁도 안 먹었는데 그냥 재워도 될까요?”
“이불이나 펴요. 이놈이야 한번 잠들면 아주 죽어 자는 놈이니 괜찮을 거요.”
“걱정이에요. 말썽만 피우고 조그만 게 힘도 얼마나 센지 옆집에 열세 살 먹은 순돌이도 이긴대요.”
“그거야 우리집 피를 타고났는데 당연한 일 아니겠소. 아버님도 천하장사로 소문이 자자하셨고 나도 젊었을 적에는 근방에 힘으로 나를 이기는 놈들이 하나도 없었잖소. 당신이 내 힘에 반해서 나한테 시집온 거고. 하하하! 안 그렇소?”
“이이가 주책 맞게 그런 망측한 소리를 하고 그래요. 애 들으면 어쩌려고…….”
“하하하! 오늘 술 한잔해서 그런지 당신이 월궁의 항아로 보이는구려. 오늘 탄이 동생이나 하나 만들어 볼까?”
유정삼은 따뜻한 방에 들어오자 취기가 도는지 강추화를 안아가며 농을 했다.
“평상시에 그렇게 봐줘야 나도 기분이 좋은 거지. 술이나 취해야 그렇게 보인다면 나도 흥! 이네요.”
“하하하! 당연히 평상시에는 한주현 최고의 미녀지. 암!”
유정삼의 말이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는지 피식 웃는 강추화였다. 그리고 호롱불이 작아지는 듯하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포교란 직업이 술 먹었다고 늦게 일어날 수는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난 유정삼은 사지를 널브러뜨리고 진짜 개구쟁이같이 자고 있는 유성탄의 얼굴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볼에 뽀뽀를 한번 하고는 의관을 정제하고 허리에 포승을 차고는 방망이를 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이미 강추화가 아침을 차려놓고 뭐가 기분이 좋은지 함박웃음을 짓고 기다리고 있었다.
“탄이 혼내지 말고 좀 봐줘.”
아침을 다 먹은 유정삼이 일어나며 강추화에게 슬쩍 말했다.
“난들 혼내고 싶어서 혼내는 줄 알아요. 당신이 너무 물러서 애 버릇이 너무 나빠지고 있다고요. 당신은 몰라요. 당신이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나는 동네 아낙들한테 하루에 한 번은 빌러 다닌다고요.”
“그래도 예쁘잖소.”
“예쁘면 장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아직 어리니까 좀 봐주라는 말이지.”
강추화의 목소리가 약간 뾰족해지자 유정삼이 놀라서 말했다.
“하여간에 애 교육은 내게 맡기고 돈이나 많이 벌어오세요. 탄이도 이제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학당도 제법 비싸더라고요.”
“그래도 천자문은 벌써 제법 읽던데 포교 아들이 그 정도면 되지 않나?”
“나는 탄이까지 포교 시키고 싶지 않아요.”
더 있다가는 바가지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유정삼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도망가듯이 나가버렸다.
“엄마, 배고파!”
유정삼이 가는 모습을 미소를 띠고 보고 있던 강추화는 눈을 비비며 배꼽을 내놓고 밖으로 나오는 유성탄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걸… 예쁘기도 하고 웬수 같기도 하고…….’
강추화는 우선 먹여놓고 잡기로 한다.
* * *
나도 엄청 예쁨 받으면서 자랐다. 이따금 엄마한테 맞기는 했지만 그거야 사랑의 매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맞아도 엄마를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효자가 될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이름만 들으면 무슨 태어나면서부터 악마의 피라도 타고 태어난 괴물인 줄 아는데 나 보기보다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날만 아니었다면…….
다시 생각해 봐도 그놈들은 똥물에 튀겨 죽여도 마땅한 놈들이었다. 그렇지만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인 나는 그냥 이 주먹으로 때려만 줬다. 얼마나 착한가.
* * *
유성탄은 오늘도 엄마와 삼 장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탄아~ 이리 온~ 엄마가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다니까?”
강추화는 오늘도 유성탄을 꼬드기고 있었다.
“거기서 얘기해요! 나 다 들려요.”
유성탄은 오늘도 땅을 발로 탁탁 차면서 강추화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이제는 쫓아봐야 잡지도 못한다는 것을 아는 강추화! 힘들게 뛰기도 싫다는 듯이 말했다.
“좋다! 엄마 말 안 듣는 자식은 자식도 아니냐! 이제부터는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고 집에도 들어오지 마라. 나도 이제부터는 밥도 안 주고 너 부르지도 않을 테니까!”
엄청난 협박을 내뱉은 강추화는 감춰둔 회초리를 바닥에 버리더니 집 쪽으로 돌아섰다.
‘씨! 또 밥 가지고 그러네. 에이, 내가 먼저 그런 거 아닌데…….’
분명 건드린 것은 그놈이 먼저였다. 오늘도 할 일 없이 동네를 쏘다니던 유성탄은 장쾌가 나이 많은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당과 문제로 조금은 미안했던 정의의 사나이 유성탄이 못 참고 끼어들었다.
“야! 왜 장쾌 건드려?”
“넌 뭐야? 쪼그만 게 너도 맞고 싶냐?”
“장쾌는 내 동무다. 아버지께서 동무를 위해서는 싸움을 피하면 안 된다 했다.”
유정삼은 남자에게는 의리가 첫째라고 언제나 가르쳐왔다. 그리고 유성탄은 아버지 말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일곱 살짜리 꼬마였다. 그리고 장쾌를 괴롭히고 있던 아이는 건방진 꼬마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린 유성탄의 몸은 일곱 살짜리로 보기에는 너무 날랬다.
유정삼은 포교 무공을 유성탄에게 세 살 때부터 가르쳐왔다. 물론 포교 무공이라는 게 강호의 절기는 아니고 사실 무공이라기보다는 무술에 가까운 공부였지만 막싸움에는 생각 외로 효과가 좋은 수법이었다.
그리고 세 살이나 많은 그 아이는 유성탄에게 맞고 말았다. 언제나와 같이 그 아이의 부모가 유성탄의 집을 찾아왔고 결국 유성탄은 엄마와 또다시 삼 장의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아빠나 기다려야겠다.’
터덜터덜 동구 밖으로 가는 유성탄을 동네 아주머니가 발견했다.
“탄이 어디 가니?”
“아버지 기다리러 가요.”
“아버지? 또 무슨 사고를 쳤는데?”
‘씨! 아버지만 기다리러 간다면 다 사고 쳤다고 그러네.’
유성탄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터덜터덜 걸어갔다.
* * *
“열 살보다 어린 놈을 구해야 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지금 어디서 구한단 말이야. 에이!”
혈문의 양과는 갑자기 내려온 혈문의 명령으로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혈문은 매 5년마다 아이들을 납치해서 문도를 충당해 왔다. 너무 어린 아이는 돌보기가 만만치 않고 너무 나이가 많으면 무공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고 이따금 커서 반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다섯 살보다는 많고 열 살보다는 어린 아이를 납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혈문에서 살인청부를 잘못 받으면서 너무 많은 문도를 잃고 말았다. 그 바람에 문도들 보충에 문제가 생기자 갑작스럽게 아이들을 납치해 오라는 명이 떨어진 것이다.
아이들도 아무나 납치할 수 없었다. 후환이 없기 위해서는 부잣집 아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관인의 자식들은 납치하면 안 된다. 또한 납치 시에는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고 해쳐서도 안 된다.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 이유는 만약 혈문에서 어린애들을 납치해서 문도를 충당한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해서 관부나 무림세력의 신경을 건드리면 무림공적으로 몰리거나 관군이 토벌을 감행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같은 지역에서는 절대 한 명만 납치해야 했고 거지도 절대 안 되었다. 거지는 너무 못 먹어서 발육이 너무 안 좋았고 이따금은 병까지 가지고 들어와서 다른 아이들까지 전염시킨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간이 많았다면 어떡하든 구하겠지만 갑자기 내려온 명령에 양과는 투덜거리며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유성탄이 보인 것은 실로 엄청난 행운이었다.
‘응! 저 아이는… 옷을 보아하니 절대 부자도 아니고, 고관의 자식도 아니고, 거지는 더더욱 아니다. 나이도 저 정도면 조건에 딱 맞겠구나. 흐흐흐.’
양과는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제법 어두워지기 시작한 그곳에는 불행히도 지나가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마치 혈문에게 납치해 가라고 내놓은 아이 같았다. 그리고 유성탄은 간단히 납치됐다.
* * *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 같은 행운의 사나이가 어째서 그런 놈에게 걸렸는지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간다. 다른 사람이 그놈들에게 잡혀가서 나 같은 고생을 했다면 이미 열 번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 비위를 건드린 놈들은 나의 이 주먹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으니까.
* * *
유성탄이 없어진 후 한주현은 겨우 며칠간 시끄러웠다. 유정삼이 그래도 포교라서 잠시나마 활발한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시체가 발견된 것도 아니고 누가 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일개 포교의 자식이 없어진 것을 가지고 관부의 군사가 계속 움직여줄 리는 만무했다.
“으흐흑, 나 때문이에요. 내가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집을 나간 거예요. 내가 나쁜 엄마예요. 흐흐흑……!”
강추화는 자신 때문에 유성탄이 없어졌다는 죄책감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며칠째 계속 울기만 했다.
‘탄이는 내가 안다. 겨우 일곱 살이지만 지 엄마한테 몇 마디 들었다고 집을 나갈 아이가 아니다. 탄이를 마지막에 보았다는 아줌마도 탄이가 나를 기다리러 간다고 했지 않은가. 내가 조금만 빨리 돌아왔어도…….’
자신이 늦게 온 게 큰 죄라도 지은 것 같은 유정삼이었지만 강추화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강추화는 유성탄이 그냥 가출한 것으로 아는 게 더 좋을 것이었다.
“더 이상 마음 쓰지 말구려. 그렇게 불효한 놈은 아예 안 들어오는 게 더 나을 것 같소.”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유정삼이 말했지만 강추화는 대답 없이 울 뿐이었다. 유정삼이 얼마나 유성탄을 사랑했는지는 강추화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라고 유정삼이 저렇게는 말하지만 그 속마음이 어떨지 모를 리 없었다.
* * *
혼혈이 찍힌 후 마차 안에 실린 유성탄은 정신을 못 차린 채 실려 가고 있었다. 가는 동안 몇 번 깨기는 했지만 무공이 없는 사람은 어른이라도 혼혈을 찍힌 후 깨어나면 얼마간은 정신을 못 차리는 법이다. 하물며 일곱 살짜리 꼬마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마차 안에 탄 자는 유성탄이 멍한 상태로 깨어나면 희멀건 죽 같은 것을 한 사발 먹이고는 다시 혼혈을 짚어버렸다.
“수고했다. 물론 아무도 눈치 못 챘겠지?”
혈문사자는 양과가 유성탄을 메고 관제묘 안으로 들어오자 조용히 물었다.
“염려 마십시오, 사자님. 아무도 눈치 못 챘습니다. 절대로 문제가 생길 아이가 아닙니다.”
“수고했다. 갈 때도 조심해서 가라.”
“예.”
양과가 유성탄을 내려놓고 나가자 유성탄의 몸을 훑어본 혈문사자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 이놈은 그래도 근골이 제법이군. 그런데… 얼굴이 엄청 말 안 듣게 생겼구나. 어쩌면 네 부모가 너 없어진 것을 좋아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말을 마치자 혈문사자는 유성탄을 안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내참 웃겨서! 혈문인지 뭔지 하는 삼류 살수집단에서 감히 나 유성탄을 납치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야! 천하의 유성탄이 바로 나야! 그놈들이 망하려고 작정을 한 거지만 사실 그놈들도 알기는 힘들었을 거야. 누가 봐도 내 얼굴을 보면 ‘저렇게 착하게 생길 수가!’ 하고 감탄하는 얼굴이니 설마하니 나같이 생긴 사람이 그렇게 무서울 줄이야 그놈들도 몰랐을 거다.
* * *
유성탄을 안고 산 위로 올라간 혈문사자는 커다란 가마 앞에 도착하자 가마 문을 열더니 짐짝 던지듯 유성탄을 안으로 던져 넣었다.
“가자!”
혈문사자가 말하자 가마를 들고 말없이 있던 가마꾼들은 대답 없이 혈문사자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산을 두서너 개 넘는 동안 그렇게 큰 가마를 메고 가면서도 가마꾼들은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혈월이 문을 열었다!”
혈문사자는 으슥한 곡 안으로 들어가다가는 갑자기 옆에 있는 나무를 향해 말했다. 아마 암호인 듯했다. 그리고 좌측 삼 장 쪽에 있던 바위가 움직이더니 굴이 하나 나타나자 혈문사자와 가마꾼들은 전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가 마중을 나온 듯 나타나더니 혈문사자에게 인사를 했다.
“가마 안에 있는 아이들을 전부 수련관에 집어넣고 깨어나면 우선 먹을 것이나 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혼혈이 풀리자 유성탄은 깨어났다. 한식경 정도 멍하니 앉아 있던 유성탄은 차츰 정신이 들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벽에는 횃불이 타고 있어서 어렴풋이 주위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자 유성탄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어! 여기가 어디야?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뭐야! 저거는 죽은 사람인가?”
주위에는 유성탄 또래의 애들이 이십여 명 정도 누워 있었는데 이미 유성탄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들도 여럿 보였다. 드디어 정신이 바짝 든 유성탄은 드디어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 유성탄은 엄마도 아버지도 안 보이자 가장 먼저 울기 시작했다.
“아아앙! 엄마! 앙아앙~~~.”
유성탄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는 다른 아이들도 겁에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는지 결국은 다 울기 시작했다.
“야! 울기는 왜 울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하는 그런 소리 못 들어봤어! 이럴 때는 마음을 다부지게 잡고 머리를 써야 하는 거야!”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제법 덩치가 큰 아이 하나가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그러자 모든 애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더니 그 애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끝까지 한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아앙! 엄마 무서워 앙~~.”
유성탄이었다.
잠시 후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들이 대여섯 명 들어오더니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커다란 만두를 하나씩 집어주었다.
“아무리 어려도 말은 알아들으리라 믿는다. 저쪽 벽에 있는 항아리에 물이 들어 있다. 옆에 바가지가 있으니 물을 먹고 싶으면 그걸로 먹어라.
그리고 저쪽 구석에 보면 구멍이 두 개 있다. 볼일은 거기서 본다. 만약 아무데서나 오줌을 누거나 하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맞게 되니 명심해라. 하루에 우리는 두 번 이곳에 들어온다. 그 외는 너희들 마음대로 생활해라.”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약간 어려운 말을 늘어놓고는 그들은 그냥 나가버렸다. 처음에는 겁에 질려 있던 아이들이었지만, 역시 아직 어려서인지 시간이 좀 지나자 사방에 흥미가 생기는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 성질이 괄괄한 아이들은 이 애 저 애한테 이름을 묻기도 했고 벌써 덩치 좀 큰 아이는 여러 명을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다수 아이들은 아직 겁이 나는지 무서운 듯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울지 말라고 소리친 아이는 그 중 제법 나이가 들었는지 어른스러웠다. 나이답지 않게 정좌를 하고 앉은 아이는 사방을 살피며 나름대로 여기가 어딜까 생각하는 듯했다.
또래끼리 모이면 비록 어리다 해도 대장이 생기는 법이다. 한 시진 정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옹기종기 무리를 짓기 시작했고 소리친 아이의 주위에 가장 많은 아이들이 몰려 앉아 있었다.
유성탄이 비록 골목대장으로 동네에서는 유명했지만 철은 좀 없었다. 결국 아무 곳도 끼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던 유성탄은 외톨박이가 된다. 지금이라도 아무 곳이나 끼어들면 됐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남들이 밑으로 들어오는 것은 몰라도 남들 밑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가장 오래 울어댄 일곱 살짜리 꼬마의 밑으로 들어올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검은 두건을 쓴 자들은 꼬박꼬박 들어와서 만두를 하나씩 쥐어주고 갔지만 나이 어린 그들로서는 날짜까지 유추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그 방의 서열이 다 정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소리친 애가 대장이 된 것이다. 그 아이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는 꼼짝 못했다. 결국 대장 하나에 부하 이십여 명 그리고 왕따 하나.
서열이 잡힌 후의 유성탄의 수련관에서의 생활은 정말 괴로웠다. 나이 가장 많은 애들은 약 열 살 정도였고 어린아이들은 일곱 살 정도였다. 유성탄은 거기서 가장 어린 나이에 속했지만 성질이 누구에게 지는 것을 선천적으로 싫어하다 보니 싸움이 잦았고 끝에 가서는 몰매를 맞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저놈은 누구지? 열 살도 안 된 놈이 오로지 기세만으로 아이들을 전부 휘어잡다니… 아무리 봐도 보통 집안의 아이가 아닌 것 같은데… 후환은 분명히 없겠지?”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방안을 작은 문으로 주시하던 혈문의 문주가 혈문사자가 가리키는 대장이 된 아이를 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럼 저놈을 보고한 대로 일호로 정하겠습니다.”
혈문사자의 말에 문주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게 해라. 그런데 한 놈이 좀 문제가 있다고?”
“예! 한 놈이 좀 문제가 있습니다. 저놈입니다. 다른 놈들과의 화합에도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청개구리 심보를 타고난 건지 말도 엄청 안 듣습니다.”
혈문사자는 유성탄이 혈문에서 키우기에는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 겨우 며칠이었지만 도대체가 교육을 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얘기 도중에 딴 짓을 하기 일쑤였고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리지를 못하고 있었다. 비록 혈문이 사파이고 살수집단이기는 했지만 동료 간의 협동이 제일 중요했다.
살수에는 독불장군은 소용이 없었다. 이따금 전설적인 살수가 혼자서 살업을 간단히 수행하는 이야기가 떠돌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게 무공이 높은데 누가 살수를 하겠는가. 살수에게는 동료의 살업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자세가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유성탄에게서는 그것을 바라기가 어려워 보였다.
“우선은 수련을 시작해 보고 결정하자.”
문주의 명이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혈문사자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이놈은 안 되겠습니다. 도대체 하루가 멀다 하고 동료들과 싸웁니다. 거기다 죽어라고 시킨 대로 안 합니다. 때리기도 많이 때렸는데 맞을 때는 어찌나 엄살이 심한지 울고불고, 하여간에 잡혀서 고문이라도 당한다면 전부 술술 불어버릴 놈입니다. 아주 치사한 놈입니다. 괜히 더 수련을 시켜봤자 돈과 시간만 아깝습니다.”
혈문사자는 일 년 동안 유성탄 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었는지 원한이 깊이 박힌 듯한 말투였다.
“도저히 안 되겠느냐? 그럼 무공의 진척은 어떻더냐?”
혈문 문주는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다른 것을 물었다.
“무공 진척도 느립니다. 뭐든 가르쳐도 이해도 느리고 처음에는 어디서 어쭙잖은 외공을 좀 배웠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나가는 듯하더니 이제는 제일 못 합니다.”
“그래? 반골근성이 있다 해서 더 악착같이 열심히 할 줄 알았더니 안 되겠구나. 그럼 알아서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 * *
나 유성탄이 납치해 온 놈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유성탄이 아니다. 난 진짜 버텼다. 그놈들이 아무리 때려도 신음소리 한마디 안 냈다. 그놈들이 나한테 그러더군. 나같이 지독한 아이는 처음 본다고. 누구라도 자신들에게 맞으면 울고불고 난리인데 나는 인상 하나 바꾸지 않았거든. 무공도 가르치는 대로 따라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납치해 온 놈들을 사부로 모실 수는 없었다. 더욱 말썽을 피우고 다른 사람 수련까지 방해했더니 이놈들이 나를 죽이려들더군. 죽일 놈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버텼다. 그놈들의 죽인다는 협박에도 난 코웃음도 안 쳤다.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어! 그랬더니 나를 죽이려던 놈이 그러더군. 세상에 나같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은 처음 본대나 어쩐대나…….
* * *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할게요.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혈문사자에게 끌려나온 유성탄은 처음에는 또 맞나 보다 하고는 바짝 얼어 있었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이 되었지만 혈문에서 일 년을 보낸 유성탄의 눈치는 어른 뺨 칠 정도였다. 그러나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죽인다는 말을 들은 유성탄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 코에서는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러게 좋게 말할 때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아직 어려서 안됐기는 하다마는 아프지 않게 죽여주마.”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던 검은 두건을 쓴 자가 검을 높게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유성탄이 소리를 지른다.
“아아악! 사람 살려~. 누구 나 좀 살려주세요. 아버지! 엄마!”
유성탄의 비명소리는 진짜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잠깐 기다려라.”
혈문사자가 말하자 검은 두건을 쓴 자의 검이 멈췄다. 유성탄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으며 혈문사자를 무지하게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놈은 검에 피를 묻히기도 아깝다. 일 년간 그놈 때문에 속 썩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세상에 이놈같이 말 안 듣는 놈은 내 세상에 처음이었다. 이놈을 충동(蟲洞)에 던져버려라.”
“충동에 말입니까? 그래도 어린앤데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요?”
“그놈은 산채로 벌레 밥이 되어도 마땅한 놈이다.”
“아아악! 나는 벌레 밥이 되기 싫어요. 인제 진짜 말 잘 들을게요.”
유성탄은 혹시나 하다가 살아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혈문사자는 이미 나가버렸다.
“이놈아, 내가 말했지? 그렇게 말 안 듣다가는 죽는다고. 하여간에 말은 엄청 안 듣더니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냐?”
“원망 안 해요! 정말이에요. 죽인다는 말이 공갈인 줄 알았어요. 이제 진짜라는 거 알았으니까 말 잘 듣는다니까요!”
그러나 아무 말 없이 유성탄의 목덜미를 질질 끌고 혈문 뒤쪽 동굴에 도착한 검은 두건을 쓴 자는 거침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에도 유성탄은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나이가 어려도 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한참을 유성탄을 끌고 동굴을 걷던 그는 드디어 동굴의 끝에 도착하자 조그만 바위 하나를 치웠다. 그러자 끝이 안 보이는 조그만 갱이 나타났다.
어두워서인지 깊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수직으로 끝이 안 보이게 뚫려 있는 갱 속은 지옥의 입구를 보는 듯했다. 갱 속을 잠시 쳐다보던 그자는 서슴없이 유성탄을 갱 속으로 던져버렸다.
“말 잘 들을게요~~~.”
끝까지 살기 위해 버둥대던 유성탄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