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324화 (324/326)

324_프로게이머, 그만 두겠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게임을 했더라.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

햇볕이 내리쬐는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던 어느 주말.

이 심부름을 마치면 부모님께 용돈을 받기로 했던 어린 나는 방금 건조기에서 나와 따끈따끈한 수건 위에 누워있었다.

‘건아, 너 그러다가 온종일 수건만 개겠다~’

다정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깨려고 틀었던 TV.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게임 채널의 중계.

‘여보, 이건 무슨 채널이야?’

‘음.. 게임 이름은 알아, 리오서. 내 친구들도 많이 하더라.’

‘아, 아~ 알겠다. 유명한 선수 이름 들어본 적 있어.’

‘누구 말하는지 나도 알 것 같은데?’

우리 부모님은 게임을 잘 몰랐고.

나는 게임은 알지만 프로게이머는 잘 몰랐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부모님 앞에서 자기가 게임을 한다는 얘기를 숨기는 건 당연하다.

정말 숨겨지지는 않았지만.

‘결승이라는데 한번 볼까?’

내가 이 게임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아는 부모님은.

‘월드 챔피언십 결승이면 우리나라가 잘하나 봐!’

일부러 야단법석을 떨며 한창 말 안 듣던 나를 살살 달랬지만.

‘이런 거 안 봐.’

나는 두 분의 다정한 모습에 질투가 나서 수건만 구겼다.

투정도 잠시.

나도 모르게 경기에 빠져들어 순식간에 한국이 우승하는 걸 보고, 선수들이 우는 걸 보고, 팬들이 우는 걸 보고, 해설진이 우승팀의 이름을 외치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도.

‘감동적이네..’

‘대단하다, 그치?’

마음이 두근거리는 걸 모르는 척하면서 또 반항한다.

‘몰라.’

지금은 어색한 표현인 엄마, 우리 엄마는.

‘아들. 좋아하는 거 다 봤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빨래를 개는 내 주변을 서성댔고.

‘뭐든지 관심 가져보면 좋지. 꿈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아빠는 엄마를 지지했다.

내게 뭐든지 해주고 싶었던 부모님이 환하게 웃으며 내 등을 떠밀었고.

나는 끝까지 성질을 내다가.

마지못해 하는 척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한 ‘프로게이머 되는 방법’.

그것이 내 인생의 첫 꿈이자 시작이었다.

#

두 번째 세트가 끝난 뒤 돌아온 권건은 손을 떨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슬쩍 짚어본 이마에서는 열이 펄펄 끓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없었던 열이다.

당황한 박 감독은 잠시 경기를 중단시키고 의료진을 부르려 했지만 권건은 손을 들어 말렸다.

“지금 이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아요.”

그건 정말 절박한 말투였고, 먼 곳을 떠돌다 고향이 돌아온 나그네의 마지막 한마디 같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여기 이 자리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어떤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래.”

박 감독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바깥은 좀 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이 퇴장을 하는 모양이다.

FWX의 경기는 완벽했다.

처음부터 이 자리에 새로운 걸 얻으려고 온 게 아니다.

그저 여태까지 보여줬던 것의 정리.

그리고 그만큼 서로의 격차를 느낄 수 있었던 두 세트였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은 3세트에서 FWX가 이기리라는 것을 알았고, 다음 챔피언이 FWX가 되리라는 것도 알았으며.

이 길었던 여정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박 감독은 잠자코 있었다.

코칭 박스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장소는 달랐지만 익숙한 구조.

박 감독은 오랜 시간 여기서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으며, 때로는 제가 직접 들어가서 싸우고 싶다고 느꼈다.

오늘이 그렇다.

권건이 안쓰럽다.

처음으로 안쓰럽다.

“얘들아.”

하지만 언제나처럼 숨긴다.

“가자.”

불안함을 쏟아내고 싶은 마음, 잘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 믿는 마음마저 모두 숨긴다.

그 모든 것들을 이 선수들이 더 크게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가서 이기고 오자.”

박 감독은 다시 문을 열었다.

이제 이동이 끊겨 듬성듬성 이가 빠진 결승 경기장에서.

FWX의 색깔을 한 별빛이 하나, 둘, 셋, 넷..

조금씩 빛나기 시작한다.

#

프로게이머에게 게임은 인생이다.

그래서 게임은 내 인생이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 인생도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원래 살았던 내 삶만큼이나 길었던 이 회귀 때문에.

내 인생은 죽으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로그라이크 게임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브레이크, 그리고 리턴.

그래서 처음에는 더 쉽다고 생각했다.

내 실력은 늘고 상대에 대해서 아는 게 많아졌으니까.

하지만 한두 번의 실패를 거친 뒤.

현실에 가미된 로그라이크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유쾌하지도 않았으며.

‘다시 살아서 부자가 되고 성공한다’는 플롯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마지막 세트가 되면 좋겠습니다.”

“네,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FWX가 보여준 힘이.. 상당히 좋았거든요.”

“상대적 우위..”

“너무 조심스럽게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역시 한국이 최강이죠?”

“너무 가지는 마시고.”

“하하. 그냥, 그런 거죠. 저희는 사실 FWX한테 ‘해줘’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저 선수들이 해주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그만큼 자랑스러운 거 아니겠습니까.”

“네. 사실 FWX는 LKL에서 꼴찌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니었던 팀이잖아요. 뭐, 계속 10위였던 건 아닙니다만 소위 말하는 언더독. 언더독 중에서도 바닥, 지하, 내핵.”

“그랬죠.”

“그런데 여기에 있습니다.”

“...”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게. 지금 여기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건 FWX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팀이 이 높은 산을 함께 올랐다는 거예요.”

“모두, 다 함께 말입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그래서.. 걱정이에요.”

하지만 나는 엔딩 그 너머를 원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게 게임이 아니다.

“FWX의 픽은..”

“권건의 리싱.”

인생을 건 게임이 되는 거다.

순수했던 나를 떠올리며 몸을 낮춘다.

손에 식은땀이 가득하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순간일진대.

그 누구도 결과를 장담해주지 않기에 두렵다.

“차니의 사이언, 라온의 아라, 세자의 징크시와 클래스의 탐치.”

각자에게 상징성이 있는 픽을 들고 엄숙한 자세로 경기에 임한다.

“SHG는 제이슨, 세주, 르블란, 바류스와 브리움입니다.”

“이 전략이 어디서 나온 거냐면, 딱 LKL 결승 때 스톰이 보여줬던 경기 스타일이거든요. 람블 대신 르블란을 선택했지만 스타일만 다릅니다.”

“맞습니다. 아예 접근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하게 증명된 파훼법.”

어깨가 무겁다.

이게 마지막 세트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혹시라도, 혹시라도 SHG가 희망을 품게 된다면..”

“그건 최악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죠.”

내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이번 세트를 확실히, 좀 더 초반부터 확실히 잡고 가는 쪽이..”

이제 고작해야 세 세트째인데도.

하지만 이건 아마도 LOS 월챔 결승에서의 ‘마지막 세트’.

숱한 선수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마지막 세트를 맞이하지만 나의 ‘마지막 세트’는.

2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맞이하는 세트다.

내겐 지난 2년이 쭉 여기까지 이어지는 길이었고.

오직 하나의 경기였다.

그렇기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이거.. 이번에는 류가 단단히 각오하고 나왔습니다!”

나는 얕은 호흡을 유지한다.

“이번에는 FWX도 굴리는 조합이 아니기도 하고, 네..”

“SHG가 그런 부분을 철저히 막고 성장한 다음에 싸우자는 식이거든요.”

컨디션을 인지한다.

“아, 헤이랑이 첫 번째 탑 갱을 흘립니다.”

“아쉽군요.”

“SHG가 잘한 거예요.”

무언가를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SHG는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올라오고 있다.

“FWX가 전령 가져가는 사이! SHG가 바텀 찌릅니다!”

“아, 이거 굉장히 익숙한 전략이거든요?”

“ㅡ흘립니다!”

주먹을 쥐었다가 편다.

떨리는 눈꺼풀을 치켜뜨고, 숨을 뱉는다.

“양측 정글이 생각보다 굉장히 잠잠한데요.”

“이런 조합에서는 사실, 뭔가 만들어주는 게 좋습니다. 탑도 그렇고 바텀도 그렇고 다 상호 작용이거든요?”

“네, 그러니까 한 번씩 이렇게, 어떻게 압박해 주고 그러면..”

“SHG가 성장을 마치게 되면 이번 경기가 많이 어려워질 수 있어요. 제이슨, 르블란, 바류스. 전부 다 포킹 대장들입니다..”

지지부진한 경기가 이어진다.

손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내게 일상처럼 익숙한 이 챔피언이 낯설다.

그때 판단이 선다.

“아, 속도 안 나고 있습니다.”

이번 세트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어어..?”

“어어, FWX..”

“이번에는 SHG가.. 뭐라도 보여줄 생각인 것 같거든요?”

등에 소름이 끼친다.

“..금 교전 약간 교환은 있었지만..”

지금 와서 무너진다고?

그럴 수 없다.

“..번에는 바텀 방향에 힘을 주면서, 라인 밀려서 FWX 쪽에 손실이..”

얻은 것들을 상기한다.

인연, 꿈의 부재.

“왕슈잉과 라온의 대치가 계속 이어지면서, 일대일 성장의..”

여기에 내 모든 시간, 모든 노력, 모든 공력을 다 퍼부어야 한다.

여태까지 내가 만들었던 모래 그림은.

몇번이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지만 결국 이번에는 완성이 다가오고 있다.

“미드 타워를 먼저 민 건 SHG지만 FWX가 스택을 챙기고..”

완성하고 말 거다.

“FWX도 미드 타워 미는 데에 성공하면서 다시 한번 전령..”

“숨이 꽉꽉 막히는데요..”

이를 악물고, 혀를 꺠물고, 허벅지를 찔러서라도 완성하고 말 거다.

이번 그림만큼은 반드시 완성할 것이다.

“아ㅡ!”

“차니가 솔로킬ㅡ!”

“후우! 반가운 소식이 이쪽에서 터져 나오면서 희망을..”

지금 이렇게 내 몸이 떨리는 건 단 한 가지의 이유.

내가 팀원들에게 정을 줘서도 아니고, 꿈이 없어서도 아니며.

프로답지 못해서도 아니고, 체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저 회귀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게임에 인생이 걸려있으니까.

“잠깐만요, 잠깐만요!”

“라인 배분 절차에서 SHG가.. 라온을 끊습니다..”

“미친.. 피지컬..”

“교전 발생, 교전 발생!”

“반대로! FWX도 팅을 끊어줘서 원점!”

“어어어어, 어어어어어!”

“잠깐만요, 이거.. 싸움 길어집니다!”

“양측 모두 전투 판단으로 몰리는데..!”

나 자신에게 실망하면서 다시 고개를 든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거, 어, 어어! 권건은 아직!”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나는 되새긴다.

“세클 듀오 끊기고, 이러면!”

여태까지 배워온 모든 것들을.

“잠깐만요.. 잠깐만요! 부활한 탑 헤이랑이 다시 합류하면서! 순식간에 숫자 역전!”

나는 때론 불이었고.

때론 물이었으며.

때론 배의 선원이었고, 또 어떨 때는 동물이기도 했고 황제이기도 했으며 영웅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평범한, 한 사람의 프로게이머.

“아니, 아니, 아니, 차니, 차니..까지..!”

“잠깐만요..”

“남아있는 건 SHG의 미드 왕슈잉, 바텀의 류와 메이메이!”

“정글러 팅도 곧 부활..!”

게임은 내 인생이지만,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은 혼자 할 수도 있을지 몰라도.

인생은 결코 혼자 헤쳐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FWX는..”

나는 프로게이머가 됐지만 그건 오직 내 선택에 의해서였다.

내 꿈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옆으로 한 명의 프로게이머가.

그 옆에 또 다른 프로가, 감독이, 코치가, 스탭이, 리그가, 그리고 또 그 리그의 팬이.

그렇게 하나의 불은 모이고, 모이고, 또 모여서.

여러 조각이 하나가 되고.

그건 이윽고 찬란하게 터지는 불꽃이 된다.

“권건만 남았어요..!”

해낸다.

길었던 절망 속의 해피엔딩을 위해서.

[ 넌 뭘 하고 싶어? ]

고작해야 꿈이었던 것에게 잡아 먹혀서, 아무것도 이겨내지 못하는 게 프로게이머라면.

“제발, LKL..!”

나는 차라리.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고 한 줌의 불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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