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316화 (316/326)

316_K-리그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LOS 파크. 먼 곳에서 중계를 맡은 저는 캐스터 안은우.”

“해설 이승수.”

“남동현입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다.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군요?”

“네, 그렇습니다.”

“2026 월드 챔피언십,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캐스터와 해설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평소 방송에 노출되지 않는 하의로 반바지 등을 입던 차림새와는 다른 모습이다.

“어, 현재 선수들이 광저우의 자우 롱 체육관에서 경기를 대기하고 있는 시각이고요.”

“현지 시각은 한국보다 1시간 느립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12시 반, 광저우 현지 시각은 지금 오후 1시 30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구김 없는 깔끔한 정장.

선수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긴장하고 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여러분을 만난 게 정말 오랜만이죠?”

“그렇습니다. 점심시간에 살짝 경기를 보고 계신 분들도 있으실 테고.”

“이렇게 함께 응원의 힘을 보태러 와주신 분들도 현장에 많이 계십니다.”

“저희도 현지에 가보고 싶었습니다마는.”

그룹 스테이지의 시작.

현지 경기장은 자우 롱 체육관으로 결승과는 다른 장소다.

여기서 4강까지의 경기가 진행된다.

이 경기장은 광저우시의 하이주 구에 있는 곳이다.

하이주는 섬이었지만 여의도의 스무배에 달하는 거대한 섬으로 땅값이 비싼 편에 속했다.

주변에 강이 흐르는 경기장은 화려했고, 티저 영상 역시 돈을 퍼부은 티가 났지만.

“이렇게 여러분을 보니, 여기만큼 좋은 곳이 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럽지 않다.

한국, 서울에 위치한 LOS 파크.

선수석은 비어있었지만 꽉 들어찬 내방객들이 함성을 내지른다.

다시 한여름의 열기가 돌아오는 듯 뜨겁다.

과거에는 8강부터 입장을 받았지만 관심도가 올라간 올해부터 그룹 스테이지 역시 LOS 파크 경기 중계를 오픈했다.

LOS 파크 측의 예상대로 중계장은 만석을 이뤘다.

팀의 구분은 없었다.

설마 했던 미라쥬가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본선에 진출하면서.

네 팀에 해당하는 팀의 팬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한국’을 응원한다.

“자, 먼저 경기 방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뿌듯한 광경에 남동현이 신나게 외쳤다.

권건은 출국 전에 남동현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형이 응원하던 언더독의 끝을 봐달라고.

오랜만의 연락이었지만 남동현은 그 말을 굳게 믿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도 진짜 현장에 나가 있는 프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과거 현역이었던 자신이 더 잘 알았으니까.

“우선 그룹 스테이지는 총 6일간 진행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첫째 날..!”

“각 조의 네 팀이 한 경기씩, 그러니까 오늘은 A, B, C, D조에서 두 경기. 총 8경기가 단판제로 진행됩니다!”

“전반부, 후반부로 나누어지며 저희도 역시 로테이션으로..”

“그래서 오늘의 객원 해설, 전 해머스 코치 윤하운..”

“이제 슬슬 현지에서도 오프닝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첫 번째 경기 팀을 알려드리자면!”

이승수 해설은 소리를 높였다.

“대-유니버스의 경기로..!”

“대구라고 정확하게 좀 말해요.”

“대흐 유니버스의 경기로!”

그는 유니버스 출신이자 올해 해설 자리를 딴 신입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유니버스와 FWX의 유착 관계를 지지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스톰과 미라쥬를 얼른 재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건 강팀이 약팀을 두드려 패서 죽여놓는 플롯.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프며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가운데 앉아있는 캐스터는 두 사람의 취향을 잘 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취향이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경기! 만나보시겠습니다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당장은, 한국의 경기가 시작된다.

#

이번 월챔의 공식 버전의 채택은 최신 버전에서 조금 더 앞선 버전으로 적용되어 기존 선수들이 리그를 뛰던 버전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었다.

최근 실섭에서 정글 복권 운동을 반영한 패치가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패치가 이뤄진 이유는 단순했다.

여태까지 무슨 수를 써도 늘리기 어려웠던 ‘정글’ 포지션의 붐, 그리고 늘어난 정글 유저들의 원성.

그래서 실섭에서의 정글은 받쳐주기에서 벗어나 게임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정글 챔피언의 폭이 늘어난 것도 물론이다.

그렇게 올해 하반기 내내 눌려왔던 정글이 기지개를 켤 참이었지만, 월챔에서는 그 흐름이 끊겼다.

더 오래된 버전이 채택된 근거는 단순했다.

새로운 챔피언이 등장하면서 버그가 발생했기 때문.

다만 신비로운 것은 하나다.

신챔.

그 새로운 챔피언이 특별히 다른 챔피언의 궁극기를 뺏거나, 몸을 뺏거나, 부활시키거나, 지형을 변동시키거나, 데미지 계산식이 어렵거나, 심지어 한영 키가 안 먹히는 버그를 발생시키는 기조의 챔피언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신챔은 기존 사례가 많았던 설치형 트랩과 돌진기를 중심으로 한 ‘서포터’였다.

버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례적일 정도는 아니었다.

LOS에 버그가 없었던 시점이 있을까?

없다.

게임 서비스 시작 이래로 단 한 순간조차도 버그가 없었던 순간이 없다.

그리고 글로벌 밴이라는 좋은 방안이 있음에도 다운 그레이드 버전을 택했다는 점이 한국 팬들의 불만을 불렀다.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입맛대로 이용하지 말라는 논조였다.

물론 이미 결정된 버전은 바뀌지 않는다.

아쉬울 뿐이다.

이건 FWX에게만 해당하는 장점이 아니었으니까.

한국에서 괴랄한 정글러를 맞서 본 모든 팀은 어떻게든 제 팀의 정글러를 성장시켰다.

아니,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손만 빨다가 게임이 끝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아쉬움 속에도 불구하고.

그룹 스테이지 진행은 중반으로, 후반으로 접어들어 가고.

A조.

“우와, 우와, 우와,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A조, A조, A조의 화시이이이이인!”

“대애애애애애애애애애 유우우우니버스!”

해설진은 잔뜩 볼륨을 높이고 있었다.

“유우우우니버스, BJE에게 톡톡히 갚아줍니다!”

“숨겨놨던 정글이, 고오오오작 이 정도였어?! 아앙?!”

- 피맺힌 서리한ㅋㅋㅋ

- 페스티벌에서 그렇게 재더니ㅋㅋㅋ

- 꼴 좋ㅗ읍읍다

유니버스는 ‘유니버스’답게 조금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누가 디제이 좀 보내줘요, 여기 텐션 떨어집니다아아악!”

“이 타이밍에, 사이다같이 뻐어엉 뚫리는 써머의 솔ㅡ로ㅡ키이일!”

세계의 무대로 나온 한국 팀은 오히려, 더 강했다.

“유니버스가 답답한 경기를 킬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거 중요한 게, BJE 원딜이 이번 턴에 점멸이 없기 때문에 대응을 전혀 못 할 수도 있거든요?!”

“기회에요, 이건 기회! 기회라구요!”

- 가냐?

- 가니 옥희야?

- 옥희야 보여줘!

“여름 남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써머어어어어어어어어어!”

환호.

“우리가 그렇게에에에에에에! 바라던! 결과를! 보여줍니다아아아악!”

그리고 또 환호.

“이렇게 되면! LPL의 베이징 이스포츠! 승점 마아아아아않이 부족하게되는데요?!”

“홍콩 P5G와의 경기에서 무조건, 무조건 이겨야 하는데! 글쎄요! 홍콩이 그렇게 만만할까요!”

A조, 유니버스가 속한 이 조는 기존 예상과 달리 훨씬 더 잦은 업셋이 일어났다.

뒤의 3일, 그룹 스테이지 2라운드에 접어서면서 갑자기 BJE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

그러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뷰가 올라오고.

[ 중국 BJE, '안하무인' 모드 끄고 ‘우승’ 향해 총력 기울이겠다 ]

ㄴ 아 존’나 웃기네ㅋㅋ 누가 보면 지난번에 우승이라도 한 팀인줄ㅋㅋ

ㄴㄴ 난 로스터 발표부터 존나 양학하겠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ㅋㅋ 오해했네ㅋㅋ ㄹㅇ도전하시는 입장이었고ㅋㅋ

ㄴㄴ 부비트랩 ㅅㄱ

결과는 점점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B조.

“한국의 자아아아랑스러운 미라쥬!”

“광주를 대표하는 팀! 밝을 광, 주.. 주우우욱어라!”

“니가 게임을 그렇게 잘해? 북미 최고야? 앙?”

“이리 와! 이리! 와아악!”

늑대 무리 같은 미라쥬가 적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아니 궁을 왜 저렇게? 우와아아아아아우! 미라쥬, 살아갑니다!”

- 형 어디 웨이크보드 타러 왔어?ㅋㅋㅋㅋㅋㅋㅋㅋ

- 존나 신났네 ㅋㅋㅋ

“제가! 말했죠! 북미! 이대로는! 안 됩니다!”

- 북미한테 처맞고 “고평가”하던 사람은 어디 갔어?

- ㅋㅋㅋㅋㅋㅋ 그만큼 신나신다는 거지~

“와드 바로 지워져요. 어어? 열받죠? 이거 신상인데? 이거 신상인데?”

“신상 바로 되팔렘하면 더 달죠? 아, 미안한데 이번 럭키 드로우는 내가 뽑았어.”

“북미 친구들이 이런 데 약하거든요!”

오히려 꿀을 빤 건 이쪽이었다.

어렵게 올라온 것과 시드 넘버에 비해 미라쥬가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는 무수히 많았다.

특히 광폭해진 바텀의 힘은 너무 대단해서.

“아니, 헥사 이 선수 뭐 하는 선수예요?! 언제부터 이렇게 잘했어요!”

- 서폿킹 “왕지우”

- ㅇㅈㅇ! ㅇㅈㅇ!

- ㅇㅈㅇ! ㅇㅈㅇ!

‘극찬’을 듣기 바빴다.

“근데 왜 한국에서는 4위밖에 못 한거냐구요, 왜! 이거 명예 순위 다시 정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4위였던 내가 북미 1 시드 앞에서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너무 재수 없게 말한다ㅋㅋㅋ

- 편파 해설 지리늌ㅋㅋㅋ

- 뭐 어때ㅋㅋㅋㅋ 지금은 ‘그래도 된다’

그리고 D조.

LKL 구 챔피언 팀이자 손꼽히는 강팀인 스톰과 지난 챔피언 상하이 게이밍이 있는 조.

“이게, 이게, 이게, 이게에에에에에에!”

스톰은 ‘전’과 다른 플레이를 보여줬다.

다른 팀들과 달리 안정적인 성향의 플레이를 지향했던 스톰.

미드에서 트페를 유도했던 SHG였지만 스톰의 강준윤이 요내를 기용하면서.

“스톰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던 스톰이 맞나요, 이게?”

“여기서 보니까 또 달라요! 이렇게까지 먹힐 줄은 전혀 몰랐는데, 언제 이렇게 칼을 갈아왔나요!”

공격력 높은 상대에게 칼로 맞서는 플레이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이게 저희가 좀, 한국팀 경기다 보니 편파적일 수 있다는 부분을 양해를 부탁드리면서..”

“아, 그럼요! SHG도 오늘 경기력 살벌합니다?”

- 못한다는 뜻:)

“팅이 해줘야죠!”

- 팅 말고는 다 못하고 있다는 뜻:)

“아직 힘은 남아있거든요!”

- 곧 자연사:)

“SHG, 안타깝지만 이번 경기에서 손들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 스무스하게 끝난다는 뜻:) ㅅㄱ

“경기이이이이이이이! 종료됐습니다!”

“오늘 스톰 경기? 95점! 왜냐? 오점이 없으니까!”

“그래! 너네 마음대로 드립치고 노세요! 내가 특별히 월챔이니까 허락할게!”

물론 여기도 남탓이 있었다.

[ SHG, “CQG가 준 (스톰에 대한) 정보가 틀렸다, 최악의 배신” ]

ㄴ 아ㅋㅋ 이것도 존나 오해했네ㅋㅋ 하나의 중국할 줄 알았는데 존나 위촉오였고

ㄴㄴ 그것이 ‘역사’니까..

‘그’ CQG를 한 조로 만난 FWX는 말할 것도 없다.

북미 2 시드와 중국 4 시드를 한 조로 만난 FWX는 이변 없이 정주행 중.

- (FWX) 아 ㅋ 슬슬 “고속버스”타고 싶어지네..ㅎ

ㄴ 진 주인공 ㅇㄷ?

ㄴㄴ K-소드 수련 중..

ㄴ 으으억ㅋㅋㅋ 애국트수 절대 지겨ㅋㅋㅋ

ㄴㄴ 국뽕 찬다ㅋㅋㅋ

ㄴㄴ 가자, 한국의 소드마스터 [척준경]

그렇게 그룹 스테이지 말미까지 LKL이 초강세를 잃지 않았고.

수많은 팀이 예선에서, 본선에서 부딪히면서.

팬들의 기대 위에 지난 1년간 LKL이 쌓아 올린 것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 (LWC) LKL, 4개 팀 모두 ‘8강’. ]

[ 한국의 축제가 되어버린 중국 광저우 월드 챔피언십 ]

대진표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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