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313화 (313/326)

313_발사 준비

프로게이머의 선수 계약은 축구나 야구만큼 길고 복잡하지는 않다.

자본과 파이가 크지 않고 역사가 짧아서다.

하지만 이 산업은 여전히 성장기에 있다.

이 분야는 빠르게 발전해왔으며 앞으로도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미 세분화는 시작됐다.

1군의 계약은 연습생 시절의 단출한 계약서와는 달리 꽤 복잡한 방식이다.

권건은 FWX와 계약했다.

스토브 리그 당시 다른 팀들은 FWX가 어떻게 이 대어를 잡았는지 궁금해했지만.

이 비밀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풀렸다.

기본적으로 이 팀에서 뛰는 2년에 대한 확정 계약.

2+1 옵트 아웃.

사실 어차피 이번 월챔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권건 입장에서 계약 기간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오히려 권건에게 가장 중요한 건 주전 확보다.

제 손으로 우승해야 하니까.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비해, 회귀자도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로스터 제외 시 옵트 아웃 선언 가능’ 조항이 있다.

FWX가 권건을 주전에서 뺀다면 계약 파기와 이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파격적인 조건.

물론 작은 세부 조항이 따라붙고, FWX가 권건을 주전에서 제외할 이유도 없는 데다 LKL 판에서 로스터가 갑자기 바뀌는 일이 흔한 건 아니지만 구단에게는 치명적인 조항이다.

이 말은 ‘우리는 널 주전에서 절대 안 뺄 거다, 진짜 찍고 맹세, 만약 빼면 진짜 네 맘대로 다 해도 됨’이니까.

언뜻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법 아래 보호받는 계약은 절대,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려운 조항이다.

사람은 누구나 갑이 되고 싶어 하고, 구단은 더욱 그렇다.

B급, C급 카드라도 들고 있다면 쓸 수 있다.

하지만 FWX는 받아들였다.

‘~시 협의’라는 마법의 단어가 있는데도 이걸 선택한 이유는 명백하다.

감정의 표현.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계약서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감정 표현, 전폭적인 신뢰.

불과 1년 반 전에는 뒤가 없었던 FWX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물론 이 신뢰라는 말조차 때론 ‘신인 선수에게 과한 부담감’, ‘가스라이팅’ 등으로 변질되거나 이용될 수 있지만 어쨌든 박 감독은 순수했다.

나는 믿어, 권건 믿어.

사실 김수연 단장의 심계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감독은 그랬다.

그리고 특약.

추가 옵션.

축구로 치면 몇 골 이상을 넣었을 때 추가, 발롱도르 후보로 뽑히면 추가 같은 것들.

임대나 완전 영입 관련된 사항들도 있다.

상업 라이센스 계약과는 별도.

당연히 권건의 계약서에도 여러 가지 옵션이 있다.

리그 우승 옵션, 출전 옵션 등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계약 기간 내에 모두 달성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뿐이고 옵션 금액은 넉넉하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비밀이다.

하지만 비밀일 수 없는 것도 있다.

“상하이 게이밍이 올 거다.”

회의실에 앉은 박 감독은 광각 디스플레이의 패널을 조작한다.

FWX에서 ‘밀어 넣기’한 전자 기기가 너무 많지만 그중 손이 가는 건 몇 개 되지 않는다.

패널에 그래프가 뜬다.

“그리고 항저우즈.”

확정 그래프가 있고.

“베이징 이스포츠, 충칭 게이밍, 정저우 파이브.”

예상 그래프가 있다.

“감독님 의견은 어떠신가요?”

차분하게 앉은 권건이 물었다.

“나는..”

박 감독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이 젊은 선수가 요구한 것.

구두로도 충분할 수도 있지만 아예 계약서에 때려 박은 조항.

‘중국 팀 분석 리포트를 지원’.

그가 계속해서 정보를 물어다가 권건에게 제공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LPL 상위권인 상하이 게이밍 SHG, 항저우즈 HZ, 베이징 이스포츠 BJE, 충칭 게이밍 CQG, 정저우 파이브 Z5에 대한 정보를.

“아무래도 정저우 파이브보다는 충칭 쪽이 올라올 것 같다.”

그리고 그 덕분에 박 감독은 남는 시간마다 먼 미래를 준비해야 했다.

이유찬이 리드한 동물농장 픽을 했을 무렵부터 선수들은 감독과 분석팀에게도 시간을 주기 시작했고, 월챔 대비 기간에 맞춰 보다 세밀한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3번 시드는 아무래도 베이징일 것 같죠?”

“확실히.”

LKL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느라 정보가 부족했던 지난 월챔.

이번에는 달랐다.

팀에게는 적을 알 시간이 있었다.

“그럼 이번에 올 네 팀은..”

두 사람은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눴다.

박 감독은 신기한 감정을 느낀다.

권건은 선수들만 리드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 팀 전체를 리드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마일 스톤이라도 박혀있는 것처럼, 꼬박꼬박.

“나는 아무래도 BJE가 빌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팀, 리그 순위는 3위지만 KPM과 GDPM 곱셈식으로 봤을 때 2위보다 수치가 더 높거든.”

그렇다고 뒤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좋은 팔로워였고, 리더가 뒤로 무너지려고 할 때 뒤를 받쳐주는 사람들이었다.

권건이 운전대라면 선수들과 감코진, 총 열 명의 사람들은 굴러가고 있는 바퀴다.

“그래서 우리 데이터와 비교할 수 있게 기준점 세팅용 스크림 일정 잡아놨고..”

박 감독은 무거운 짐을 느낀다.

“좋은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그날의 권건이 했던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

계약하던 그 날.

‘목표는 월챔 우승’.

그때 ‘당연하지. 남자라면 당연히 월챔을 노려야지!’ 같은 가벼운 말로 대답했던가?

막상 다가오니 기분이 다르다.

시즌을 달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중압감에 숨이 가빠온다.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시간도 없이 월챔이 다가오고 있다.

경기 속에 들어가 있는 선수들은 오죽할까?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차분한 저 선수의 시야를 보면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이 선수는 처음부터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가장 높은 곳, 오직 딱 한 점만을.

그가 생각한 도착 지점이.

권건에게는 그저 과정일 뿐이었다.

“그래.”

하지만 복잡한 감정을 티 내지 않는다.

박 감독은 비어있는 권건의 잔을 보고 슬슬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좋아.”

그는 밝게 웃어 보였다.

“가볼까?”

권건이 보는 것과 박 감독이 보고 있는 것은 다르다.

권건이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박 감독은 선수들의 등만 바라보는 사람이다.

게임보다 선수가 먼저고, 선수에겐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

웃기지도 않는 고전 낭만 시대의 말.

현실에서의 이 말은 힘이 없을 때는 얻어맞기만 하는 호구라는 뜻이다.

그만큼 한없이 바보 같고 멍청했던 FWX.

“이번 월챔에서..”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권건이 이 리그를 소중하게 여기며 말했던 것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진짜 불꽃이 뭔지 보여주자.”

FWX 감독에게 그건, 이 선수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것이다.

“좋습니다.”

권건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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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KL) 선발전 종료 ]

유니버스, 미라쥬, 트릭스터, F.L.E의 선발전이 끝났다.

[ 제주 F.L.E, 선발전에서 ‘고배’.. 아쉬운 결말 ]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 F.L.E 감독 오지현(lift) 은퇴 번복.. “책임지고 은퇴하려고 했다.. 하지만 많은 분의 응원과 지지로..” ]

[ SNS에 ‘청정 제주 못 잃어ㅠㅠ’ 행렬, F로 시작하는 이 팀과 ‘그’ 팀의 공통점? ]

ㄴ 끝까지 ‘청정’ㅋㅋㅋ

ㄴㄴ 인공 지능조차 더 적합한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

ㄴㄴ 그저.. 청 정 팀!!

[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제주 F.L.E, “제주 결승을 꿈꾸며” ]

ㄴ 다음 시즌에 얘네한테도 주식 살짝 넣어볼까? 청정이라니.. 왠지 되게 트렌디하잖아^^

ㄴㄴ #환경 #자연보호

ㄴㄴ 아씨ㅋㅋㅋ 핀트 어긋나는 거 존1나 웃기네ㅋㅋ 얘 삼송 9만원에 샀을 듯ㅋㅋㅋ

ㄴㄴ ㅋㅋㄹㅇ LKL 생태계에서 청정을 담당하는.. 맑고 고운 사람들..

제주 F.L.E가 가장 먼저 탈락했다.

그래서 우리는 선발전 전날 누구랑 스크림을 했냐고?

제주 F.L.E다.

몇몇 사람들은 당연히 F.L.E를 스크림 대상에서 뺄 거라고 생각했지만 최은호가 의견을 제시했다.

월챔에서 우리가 무조건 강팀만 만날 거라는 보장이 어딨냐고.

오히려 엉뚱한 플레이나 부족한 선택을 하는 팀에게 대응하는 감각을 살리는 쪽이 더 낫지 않겠냐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그 의견은 꽤 많은 호응을 얻어냈고, 복귀 날의 저녁은 F.L.E와 연습 시간을 가졌었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꽤 오래전, 최은호가 패배하고 나서 울고 있는 F.L.E 선수들을 보고 자기 모습 같다고 생각했었다는걸.

그리고 같은 서포터인 유상준의 친정이라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도.

뭐, 이건 감정적인 부분이고.

어쨌든 근거는 괜찮았으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제주 F.L.E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내년에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던데?

근데.

결국 우리는 다른 일정을 미뤄가면서 모든 팀과 다 스크림을 돌았다.

두 팀이 경기하면 그다음 팀들, 그리고 또 그다음 팀들과.

일할 시간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이런 방법이 있었네?

물론 이것도 다른 팀들의 ‘무조건 오케이’ 신호 덕분에 가능한 일이긴 했다.

그럼 나머지 팀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 인천 트릭스터, 광주 미라쥬에 패배 ]

[ 트릭스터 미드 리뉴(Renew) 채지한, “나에게는 딱 한 조각이 부족했을 뿐이다” ]

ㄴ 그리고 그 조각은 바로 ‘그 정글’이다..

ㄴㄴ 걘 이미 광야로 걸어가 위협에 맞서서

ㄴㄴ 백마 타고 올 초인을 기다려

ㄴㄴ 어떻게 리뉴만 중국 못 보내냐? 우리 팀 실화냐? 기껏 중국에서 돌아왔는데 나머지 라이너들 때문에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리뉴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ㄴㄴ 형들 정신 차려..

[ (SNS) ‘선임된 지 3일 만에’ 패배한 트릭스터 감독 이준창, “휴가 반납 후 (월챔 참여 팀들에게) 전폭 지원 약속. LKL에서는 적일지라도 세계에서는..” ]

ㄴ 저지르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네

ㄴㄴ 그래도 새 감독.. 쫌? 호감ㅋㅋ..ㅎㅎ!

ㄴㄴ 휴가 반납은 킹정이긴 한데.. 트릭스터 팬 입장에서는 굳이?

ㄴㄴ 애기야 이게 ‘사회생활’이라는 거다

ㄴㄴ 뭐 일찌감치 스프링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개같이 구르는거지~

트릭스터가 탈락했고.

[ 광주 미라쥬의 월드 챔피언십 참전 확정! ]

[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구 유니버스, “최선을 다할 것” ]

[ 3, 4 시드 결정전! 칼 대 칼의 싸움.. LKL ‘피지컬’ 대표 두 팀! ]

ㄴ 이번에도 그 알루미늄 호일 모자 쓰고 오냐?

ㄴㄴ ㅋㅋㅋㅋ 미친 광신도들ㅋㅋㅋ

미라쥬와 유니버스가 붙었는데..

[ 월챔 일등석에 탑승할 팀은?! ]

[ ‘미라쥬 카운터’ 유니버스 탑 최정인(Summer)! 미라쥬, 멈춰! ]

[ 이승수 해설, “유니버스는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는 팀..” ]

ㄴ 일등 조연이라는 뜻

ㄴㄴ 콩라인 절대 못 벗어나!

ㄴㄴ 유니버스 못 잃어ㅋㅋㅋㅋ

[ 써머(Summer), “듣고 있나! 이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약속했으니까..” ]

ㄴ 형 누구 이야기하는 거야?

ㄴㄴ 누구겠냐

ㄴㄴ 지겹다 지겨워 건친놈..

ㄴㄴ 모자라지만 착하지도 않은 놈..

ㄴㄴ 얘 인터뷰 좀 못하게 해요 제발ㅋㅋㅋ

ㄴㄴ 우리 옥희한테 왜 그래.. 은퇴할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러지 마ㅠㅜ

ㄴ 야 나 방금 10소름 돋는 생각 했는데.. 얘 은퇴하고 FWX 코치 지원하는 거 아니냐?

ㄴ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쟤가 어떻게 코치를 함? 코치가 장난이야?

ㄴㄴ ((그리고 이거 보면 진짜 실천할 수도 있으니까 옥희가 보기 전에 삭제해 제발))

ㄴㄴ ㅋㅋ ㅈㅅ;

[ 미라쥬 한상열, “우리 애들한테 그런 험한 말 하지 말아주세요” ]

ㄴ 이 털보는 ㄴㄱ?

ㄴㄴ 몰?루;;;

ㄴㄴ 온 몸에 근육이 꽉 찬 게 육아 잘하게 생겼네..

ㄴㄴ ㄹㅇ.. 스윗 유럽 파파 스타일..

ㄴㄴ 근데 쟤 머리에 쓴 거 알루미늄 호일 모자냐?

ㄴㄴ 다.. 다.. 미친놈들이야..

그만 알아보자.

그렇게 선발전이 끝났고.

3시드는 유니버스, 4시드는 미라쥬다.

이렇게 되면 미라쥬는 플레이-인, 예선부터 올라오게 되는데.

사실 이 상황은 좀 재밌는 상황이다.

미라쥬가 예선에 가 있을 팀이 아니라는 거.

휘청거리는 성향은 있지만 꽤 강팀인데도 마이너 리그 팀이 잔뜩 있는 예선까지 밀려나다니, 이건 정말..

“조 추첨 시작한다!”

“호로롤로로로!”

“흑마늘 즙 먹을 사람?”

“너.”

그래.

이제야 세계 모든 리그의 정규 서머 시즌이 끝난 모양이다.

“얼른 다 모여!”

자, 이제 운명의 룰렛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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