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_Last LKL
LOS는 원정 경기를 뛰는 스포츠가 아니다.
주 경기장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만큼 각 팀의 사옥은 멀어도 수도권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팀은 이동에 익숙지 않다.
특히 연고지 결승 제도가 도입된 후.
결승은 우연치 않게 인천이나 성남 등 주로 가까운 곳에서 치러진 데다 결승에 참여하는 팀은 고작 두 팀.
8월 말의 어느 토요일.
결국 대전에 발을 디딘 것은 FWX도 처음이다.
그리고 그 상대는.
“야, ‘가장 큰 무기’?”
“...”
“야, 친삭으로 가스라이팅 하는 애.”
“...”
“내 말 안 들리냐?”
먼 곳까지 출장 나온, 성남 스톰이었다.
모처럼 나들이 가기 좋은 주말이었지만 하늘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비가 오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호텔 안에서도 아차 하는 사이 빗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도였다.
바닥이 우릉우릉 울린다.
“권건!”
강준윤은 빽 소리를 질렀다.
“응?”
“왜 나 쌩까냐고!”
“있는 줄 몰랐어.”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권건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니, 왜 형한테 반말을..”
“언제 왔어? 지금 도착했어?”
당당한 태도에 당황한 건 강준윤이었다.
“그..”
“뭐.”
“잘 지냈냐고..”
뱉어 놓고도 아차 싶은 말이다.
세상에 이런 찐따가 있나.
근데 솔직히 권건을 보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일단 저 어린놈이 달성하고 있는 기록이 너무 압도적이고.
얼굴은 잘생긴 데다.
싸움도 잘한다.
개빡치네.
“가내 두루 평안해라, 나쁜 새끼야!”
“형 뭐해..”
옆에서 서포터 진주호가 말린다.
그들은 이제 막 체크인을 마친 참이다.
“솔직히 쪽팔려..”
주최 측에서 제공한 숙소는 충분히 좋았지만, 스톰 선수들에게도 이곳은 낯설다.
“잘못은 얘가 먼저 했잖아, 얘 알고 보면 인성 진짜..”
“아니 그거 코치가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라며..”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물론 FWX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난 권건이 로비에 있는 카페로 가서 한참 대화를 나눈다.
근처에 있던 FWX 서포터가 쪼르르 달려가서 뭔가 묻는가 싶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사라진다.
“쟤 뭐해?”
“몰라.”
“얘들아. 준비 다 됐으면.”
체크인 절차를 마무리한 스톰 감독 김지훈과 매니저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잠시만요.”
“음?”
권건이 손에 음료를 들고 오고 있다.
“형, 이거.”
“어..”
“마셔.”
옆에 있는 서포터에게도 건넨다.
“플랜 선수도 드세요.”
“너.. 나.. 알아..?”
“알죠. 진주호 선수. 작년까지 빅스에 계셨었잖아요.”
“옴마나.”
진주호는 잔뜩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권건은 김지훈 감독과 눈을 마주쳤다.
“음.”
김 감독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둘의 대화는 사실상 처음이었다.
김 감독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오실 줄 몰라서 따로 준비를 못 했네요.”
“아뇨,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김 감독은 권건에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며 무뚝뚝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제 팀 선수들에게는 엄해도 지킬 건 지키는 사람이다.
“얘들아.”
그는 선수들에게서 음료를 뺏으려고 생각했다.
당장 내일 결승에서 만날 상대가 준 음료라는 생각 때문에, 혹시 모르니까.
하지만 권건이 말을 걸어서 타이밍을 빼앗겼다.
“캬아아! 건아! 이거 아샷추냐?”
“형, 그게 뭔데?”
“복숭아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 추가 몰라? 이거 파는 데 별로 없는데.”
“와.. 그거 완전 불호..”
“메뉴에 없길래 따로 요청했지.”
권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한다.
“하.. 권건.. 존나 얄미운 새끼.. 솔랭에서 적으로 만나면 답도 없는 새끼.. 말 걸어도 대답 없는 새끼.. 기껏 대답하나 싶으면 코치 조종해서 친삭하는 새끼.. 하지만 내 취향만큼은 십년지기처럼 정확하게 알고 사주는 새끼.. 그저..”
그리고 그새 받은 음료를 마신 강준윤이 행복한 표정으로 잔을 흔들었다.
“갓건..!”
그 꼴을 보며 김 감독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아샷추라고 했나?
아샷추.. 아샷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가 아니구나.
“방금 카페에서 산 거예요. 제가 만든 건 아닙니다.”
“네. 그렇군요.”
무뚝뚝한 감독의 의심을 읽은 권건이 얇게 웃었다.
“김 감독님.”
“네.”
“건강하세요.”
“네?”
김 감독은 드물게 당황했다.
그 모습을 보며 권건은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스톰의 2군 감독은 상종 못 할 쓰레기였지만.
1군 감독 김지훈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노오력을 강요하는 타입에 고집쟁이이긴 해도,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들에게는 관대한 사람.
그리고 한없이 남만 관리하다가 본인의 건강은 신경 쓰지 못할 사람.
권건은 미운 정이 들었던 과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경기 하면 좋겠습니다.”
김 감독도 권건이 내민 손을 보고 다시 선수의 얼굴을 확인했다.
분명히 한창 어린 선수다.
하지만 어딘가 일렁이는 이 눈빛은 뭐라고 해야할까.
아주 무거운 걸 혼자 짊어지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왠지 나이가 아주 많은 감독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요.”
김 감독은 권건의 차가운 눈빛 아래에 끓는 광기를 느낀다.
“같이 갑시다.”
그래서, 선뜻 손을 마주 내밀었다.
#
무대는 어둡다.
마냥 화려했던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술렁임이 가라앉을 시점.
화면이 다시 켜진다.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LKL의 1년.”
FWX의 누군가가 말하고.
“올해의 오늘은. 그리고.”
또 누군가 말한다.
“이 경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선수와 팬, 그리고 선수들의 가족.
선수들과 리그, 리그와 리그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있다.
“봄에 거둔 승리는 전초전에 불과했고.”
“우리는 올해의 마지막 여름을.”
“뜨겁게 불태울 겁니다.”
“FWX.”
불꽃이 일어나면서 화면이 타오르듯이 사라진다.
바람 소리가 들린다.
“선수로 산다는 게 대체 뭘까, 생각했던 적이 많아요.”
“그냥 이기는 게 좋아서 이기고, 게임하는 게 좋아서 게임하고.”
“매일 똑같이 살던 삶에.”
선수들이 한 점을 올려다본다.
화면은 빨라진다.
“목표가 생겼어요.”
빠르게.
“진짜 꺾고 싶다.”
더 빠르게.
“원래 내 자리였던 저 자리가.”
폭풍처럼 빠르게.
“다시.”
“내 자리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람 소리가 멈추고.
“스톰.”
마지막 한 마디가 나온 뒤.
다시 조명이 꺼진다.
침묵.
침묵이 이어진다.
힘이 넘쳤던 오프닝 무대와는 정반대의 색.
그리고 정반대의 고요다.
또각, 또각.
암전된 무대 위에서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딸깍.
“렛 더.”
안은우.
“파이널스, 비긴.”
오랫동안 LKL에서 오프닝을 맡았던 캐스터.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캐스터는 낯선 경기장을 둘러본다.
무대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그 외에 달라진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커졌다.
대전에서 이를 갈고 준비한 요원들과 페스티벌은 놀라운 수준이었고.
경기장의 퀄리티나 무대 장치도 부족함이 없었다.
유명인이 대거 직관하러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래도 부족했던 좌석은 이제 더 부족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다만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요란한 빗소리만이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해 외부에서라도 결승을 즐기고 싶었던 사람 중 대부분은 발길을 돌렸지만 임시 천막 아래에서 휴대폰을 들고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에는, 대전입니다.”
대전 시티즌스 파크.
연고지 제도에 의해, 지난 우승팀의 연고지에서 진행되는 결승.
지난 우승팀이 대전 FWX였기 때문에 결정된 장소.
그리고 대전 최초의 결승.
“...”
캐스터는 숨을 들이쉬었다.
FWX.
대전 FWX.
“한 달이 지나면 잊힐 이름이라고.”
권건이 데뷔했던 2025 스프링.
한참 추웠던 1월 말, 콜업 후에도 바로 주전이 되지 않았던 권건.
“계절이 바뀌면 지워질 이름이라고.”
2025 서머.
기존 탑이 은퇴하고, 최은호가 손목 부상을 입었던 그 계절.
“해가 넘어가면 사라질 이름이라고, 모두가 생각했었습니다.”
2026.
2025 시즌을 마친 뒤.
권건이 스토브 리그에서 이적을 선택하리라고 모두가 확신했던 그해.
“하지만.”
캐스터는 발을 구른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본다.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영광의 길을 걷는 자들.”
바닥 조명이 켜진다.
“한 발, 전설을 새기고.”
딸깍.
“두 발, 앞으로 내딛습니다.”
딸깍.
“세 발, 왕좌에 오르며.”
딸깍.
“네 발. 이제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빛의 길이 만들어진다.
선수들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유찬, 권건, 김예성, 곽지운, 최은호, 유상준.
쿵쿵, 쿵.
각자 다른 길을 걷던 선수들이 한 길을 따라 걸어온다.
땅을 다지듯이 꾹꾹 밟으며 온다.
“여기는 한국의 정점, 이곳이야말로 가장 높은 곳.”
화면에 FWX의 엠블럼이 뜬다.
딸깍.
선수들이 서 있는 위치로.
여섯개의 스포트라이트가 내려꽂힌다.
“FWX.”
FWX.
캐스터는 입가에 웃음을 띤다.
한 점을 계속 돌던 LKL에 새로운 돌을 던진 이들.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준 사람들.
새 희망을..
“결국, FWX가 우리의 성화를! 축제의 도시, 대전까지 데려오고 말았습니다!”
만들어 준 사람들.
“그 모든 것은, FWX! FWX, all along!”
우르르르릉.
거대한 베이스 소리와 함께 우퍼가 떨려온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태 침묵하고 있던 사람들이 함성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멀리서 들려오던 빗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이제는!”
함성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캐스터도 목청을 높인다.
“이제는! 전 세계의 선수들에게, 그리고 팬들에게 아로새겨진 그 이름!”
“FWX!”
군중의 외침은 거대했다.
“지난번 월즈에서 쓰다만 그 이름!”
“FWX!”
캐스터의 고함도 밀리지 않았다.
“그 이름을! 오늘 LKL에서 먼저! 다시 한번 더! 새기고자 합니다!”
그는 목에 핏대가 터지도록 외쳤고.
“FWX!”
군중은 웅성거리는 소리를 통일했다.
치열한 두 외침에 화면 중앙의 엠블럼에 불이 붙었다.
“외쳐보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활활 타오르던 엠블럼이 하얀 불꽃으로 터져나가면서.
“FㅡWㅡX!”
“FWX!”
함성 역시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FWX! FWX! FWX!”
그 웅장함 앞에 선수들은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FWX! FWX! FWX!”
일시에 켜진 응원봉의 빛이 까마득하게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엠블럼에서 시작된 불꽃은 사방을 뒤덮고, 이제 객석이 불타는 것처럼 너울너울 춤을 춘다.
그 모습을 FWX 선수들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번지는 불길 속에 홀린 듯 몸을 맡긴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에게 이곳이 제자리처럼 편안하다.
끝내 대전까지 들고 오고야 만 이 불꽃을.
이제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누군가 작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