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306화 (307/326)

306_파도 파도 괴담만

“어디까지 얘기했죠?”

호넷의 안우진은 목을 축였다.

“CQG 미드 욕먹음, 근데 장난이었다, 하지만 출근은 하지 마. 그리고 사랑받던 채지한 선수의 귀환.. 여기까지요.”

충실하게 대답한 해머스 김흥민이 눈을 반짝인다.

“흥민이는 그냥 듣지 마라.”

“왜요?”

“그런 게 있어. 너는 아직 너무 꿈나무라.”

“그래. 막내는 귀 막아.”

강동흔이 김흥민에게 손짓했다.

“넵!”

김흥민이 정말로 귀를 막은 사이 안우진이 입을 턴다.

“봐봐..”

그림판에 쓱쓱 그림이 그려진다.

“중국에서 리뉴 선수가 사랑을 참 많이 받았어. 팩트.”

“응.”

“중국어도 잘한대. 팩트. 아, 나 이 선수 잘 몰라요. 아는 사이 아니야. 근데 기억나지? 이 선수가 ‘최고의 용병상’도 받았었던 거.”

한 사람 위에 하트가 그려진다.

“채지한 선수가 받은 용병상, 그거 누가 줄까요?”

고개를 든 안우진이 질문을 던졌다.

“팬들이?”

“아니야, 형. 그거 투표 아녜요. 우리랑 달라.”

“그럼?”

“그으으을쎄? 몰?루? 이것도 좀 궁금하네~?”

안우진은 의뭉 떨며 말을 끌었다.

“아무튼 이 선수가 중국에서 사랑을 많이 받은 건 확실해. 사설 기관에서 진행한 ‘리그 최고의 신랑감’ 탑 텐에도 들었거든요? 명예 중국인이라고.”

그림판의 채지한 위로 트로피가 두 개 그려진다.

“그딴 쓸데없는 건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난 호-넷이잖아.”

세상의 모든 가십거리를 섭렵하는 썰쟁이가 눈썹을 찡긋거렸다.

“근데 형 되게 예리했어요. 형 말대로, 저딴 쓸모없는 설문 조사를 왜 했을까?”

“그러게..? 가십?”

강동흔이 고개를 기울였다.

“자.”

이미지 위에 큰 물음표를 그리던 안우진이 다시 묻는다.

“용병이 용병이 아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어.. 그거 뭐야, 이민? 근데 그거 절차가..”

“더 쉽고 빠른 거 있죠? 결혼.”

“아. 있었지. 있었어. 그런 케이스! 근데 그게 왜..”

강동흔은 뭔가 알듯 말듯 한 표정으로 볼을 긁었다.

막내는 여전히 귀를 막고 멀뚱멀뚱 두 사람을 바라본다.

“중국은 벌써 여러 번 그런 식으로 달콤한 맛을 본 적이 있어. 아! 물론 LOS만 그런 거 아니고, 한국인만 그런 거 아니야. 아시죠?”

- ㅇㅇ 축구도 있음

- 야구도 그 흑형 넘어갔음

- 이번엔 당구 쪽에서 누구 있지 않았나?

안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만남과 사랑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근데.. 분위기 정도는 조성해줄 수 있는 거잖아~?”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단축키를 누르자 그림판이 텅 빈다.

“다시 정리해보자. 채지한 선수는 현지에서 용병상을 받았어. 신랑감 상? 뭐 그것도 받았어. 근데 ‘공인된’ 투표는 아니었다.”

하나씩 가닥이 잡힌다.

“이건 어떤 ‘기관’에서 선정한 거겠지? 글쎄, 뭐, ‘작업’을? 치고? 있던? 에헴! 어흠! 중! 이었을 수도 있고~?”

“어!”

강동흔은 이제 안우진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자행되어왔던 악습 중 하나.

선수 빼가기.

채지한은 찍혔던 거다.

좋은 쪽으로.

“근데 어쩌나? 이 선수가 갑자기 다 쌩까고 홀라당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네?”

“닭 쫓던 개 신세?”

“그치! 완전 찐빠 난 거야!”

안우진이 손뼉을 쳤다.

“근데 여기서 아~ 너무 안타까운 게. 채지한 선수가 정말 너~무 매력적이었던 거야. CQG가 채지한 선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어. 화가 나. 열받아. 애증이 팔팔 끓어.”

그의 표정 연기는 일품이었다.

“그리고 자기네 미드를 봐. 얘는 자국민이긴 한데, 전임자보다 너무 처지죠? 이거 어떡해? 이렇게 되면 그렇게 중시하는 ‘체면’이 뭐가 되냐고. 안고 갈 수 있어? 아니, 꼬리 잘라야겠지?”

그래서.

“다 얘 때문이다. 그냥 얘가 못하는 거다.”

가까이 있는 현직 미드 라이너가 욕을 먹는다.

놀랍지만 이럴 때만큼은 그들도 하나의 중국이 아니다.

“좋아하던 놈은 갔고, 싫은 놈은 남고. 벤츠 가고 똥차한테 뭐라고 하는 셈.”

“오.. 너.. 말 되게 잘한다? 되게.. 그럴듯해..”

강동흔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연습생 시절 후 처음 만나는 이 선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호넷은 대체..

“근데! 더 빡치는 건, 그렇게 그들이 사랑했던 채지한 선수의 트릭스터가 1위가 아니라는 거야!”

흐름을 탄 이야기꾼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아씨, 이거 배 아파서 어떡해? 지금 한국 1위는 누구야? 욕심 나, 안 나? 다시 벤츠 타고 싶어, 안 타고 싶어!”

안우진.

사실 에이린이 김예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가장 먼저 LOS 판에 퍼뜨린 사람도 그다.

SNS 밀착형 팀, 호넷의 얼굴마담이자 (진)스트리머 대기자.

“타.. 타고 싶긴 한데, 자기들은 중국 4위잖아?”

“그쪽 애들은 국가 순위가 자기 팀 순위인 줄 알잖아요! 랭킹 내로남불!”

그리고 겁을 상실한 은퇴 직전의 사나이.

“어..”

“자! 질문!”

안우진은 맑은 눈을 번들거리며 카메라와 눈을 마주친다.

“그럼 지금 실연당한 CQG는! 이 아픔을 겪으면서 뭘 어떻게 했을까요?”

갑자기 던진 질문에 몰입한 시청자들이 정신없이 대답한다.

- 자존심 상해서 2군 키운다?

- 기분 나빠서 저격? 언플?

- 한국 전체 팀 스크림 거부?

- 입국 금지

답변이 쏟아져 나오고 잠시 채팅창을 읽던 안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상상력이 부족하시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안우진의 뇌피셜이고, 가십에 불과하다.

팩트와 스토리를 교묘하게 조합한 이야기.

하지만 그 말은, 이 중 절반은 팩트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 빨리 말해! 현기증 나!”

씩 웃으며 시간을 끌던 이야기꾼은 아직도 귀를 막고 있는 순진한 정글러를 본다.

“?”

김흥민은 여전히 눈만 데굴데굴 굴린다.

저 꿈나무는 정말 들을 필요 없는 얘기다.

“여기서 다시 오피셜.”

안우진은 카메라에 바짝 다가가서 속삭였다.

“중국은, 아예 룰을 바꿔버렸어.”

“..?”

“그리고 타깃을 옮길 거야.”

“무슨 뜻이야?”

“글쎄요..”

늘 그렇듯.

“다시 말하지만 이건 사천왕 중의 최약체의 이야기라고요? 후후후..”

- 파도 파도 괴담만;;

- 자본주의의 리그 그것은 실존한다

- 그저.. “대.륙”..!!!

상상보다 현실은 더 놀랍다.

어딘가에는 경기장을 무단 이탈해 몰수패를 당하는 프로가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딘가에는 알몸으로 상점가를 활보하다 검거당하는 프로가 있을 수도 있다.

세상은 넓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넓은 곳.

FWX가 상대해야 할 적의 심연은 깊었다.

#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뜨거운 여름, 매일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운전자가 있다.

이 매장은 주문을 받아 아이스크림을 퍼주는 형태의 샵이다.

그런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샀을 때는 차량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초콜릿이나 과일 맛 아이스크림을 샀을 때는 일발 시동.

왜일까?

아이스크림이 ECU를 제어하는 현상?

혹은 차가 선호하는 아이스크림 맛이 있는 걸까?

미친 소리 같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

그럼 그냥 운전자의 착각이었을까?

정말 그런 얘기였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겠지.

상관관계를 밝혀낸 사람은 이 둘을 분리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인기가 많다.

스테디셀러는 앞쪽 진열장에 전시되어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다른 아이스크림보다 ‘빨리’ 나온다.

‘자동차’가 뜨거운 날씨에 겪을 수 있는 현상 중에 베이퍼 록이 있다.

이건 열로 브레이크액이 끓어오르는 현상이다.

그러면 브레이크 작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답은 시간.

다른 맛과 달리 주문 즉시 나오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샀을 때는 마찰 때문에 일어난 브레이크액이 안정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던 거지.

결국 둘 사이에 직접 인과는 없지만 간접 인과가 있었던 셈.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이 뭐냐고?

“하, 이거 진짜 좀 그렇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말도 진짜일 수 있다는 거.

그러니까 직관을 바탕으로 한 가설이 진짜일 가능성 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얘기지.

“LPL 샐러리캡 완화건 말씀이세요?”

나는 감독님께 커피를 건네며 넌지시 물었다.

“어? 응? 어..”

그러니까 나도 감독님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분명히..

“그거 아니고.”

오잉.

“다른 건데..”

아니었나?

잠깐 직관력을 다른 사람한테 뺏겼나?

“왜 그러세요?”

우리는 내일 대전으로 떠난다.

일요일에 있을 결승에 대비해 약간의 버퍼를 둘 예정이다.

“그게, 음.”

감독님은 잠깐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곧 목뒤를 긁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것도 좀 불편하긴 해..”

중국 리그는 꽤 오래전부터 샐러리캡 제도를 적용해왔다.

샐러리캡은 팀 연봉의 총액 상한선이다.

이건 그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많은 팀, 더 큰 규모의 리그를 운영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고.

자본 면에서 타국 리그의 경쟁력 확보에도 역시 도움이 된 부분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서로의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였다.

중국의 자본 규모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이맘때가 부풀었던 풍선이 터지는 시기라는 걸 알고 있다.

샐러리캡 패널티 완화 소식.

이건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선수 싹쓸이를 못 하도록 무조건 막던 규칙이 있었는데 이제 벌금이나 예외 조항을 두기 쉬워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뒤로 찔러 줄 방법이 있었지만, 이제는 더 쉬워졌다고.

“네. 그게 아니에요?”

근데 이것보다 더 불편한 게 있다고?

“육성형 용병 제도가 도입됐어.”

“무슨.”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게..”

감독님의 말에 의하면 샐러리캡, 정확히는 샐러리캡 패널티의 완화 폭은 내가 알던 것보다 크지 않다.

대신.

“기존에 두 명이었던 LPL의 외국인 용병 슬롯을 하나 더 늘린 거지. 출전 제약은 전과 같지만 로스터에 한 명을 더..”

감독님은 차분하게 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놨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꽤 자주 하는 편이다.

말이 통하니까.

물론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건 내가 감독님한테 큰 신뢰를 얻고 있다는 거기도 하다.

아마 내가 FWX와의 계약서에 다시 서명할 때.

박 감독님이 직접 차를 운전했던 그 순간부터였을 거다.

내가 진짜 ‘FWX’가 된 그날부터.

“육성 용병은 팀 연봉 총액에 포함되지 않아. 대신 고용 금액 상한 제한이 있어. 그리고 근거도 있다. 세계 리그 활성화를 위한 것, 선수 복지를 위해..”

“근데 왜 대상이 외국인 선수죠? 자국 로스터를 늘리면 될 텐데.”

“1군 외국인 선수들의 예상치 못한 공백에 대한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미간을 찌푸린 감독님은 말을 아꼈다.

“아.”

그리고 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앞의 말은 전부 변명이다.

결국엔.

“유망주 빼가기.”

“그래..”

“...”

잠시 침묵.

아까 아이스크림과 자동차 이야기 기억나?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분명히 인과는 있다.

무언가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을 했을 것 같긴 한데,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이 행보는 전과는 다르다.

내가 잘 나가던 팀에 있었을 때, 그들은 평범하게 ‘선수 연봉 총액 상한’을 늘리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FWX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각 팀에서 유망주나 새롭게 발굴된 한국 선수들이 돋보이기 시작하자 새로운 옵션으로 바뀐 거다.

이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고작 한 줄로 지나갈 기삿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관계자에게는 좀 다른 이야기다.

상한 제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 2군에서 줄 수 있는 돈에 비해 클 수밖에 없으니까.

“안 좋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본주의도, 돈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돈 때문은 아니지만 나도 중국행을 고려한 적이 있었으니까.

애국심?

이것도 강요하기 어려운 말이다.

자신이 갈 곳을 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수의 자유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을 데려간 곳에서 과연 그 선수들을 실제로 기용할지, 혹은 팀에 처박아두고 한국 리그를 천천히 거세시킬지는.

그들만이 알고 있다.

여태 한 번도 없었던 일은 아니니까.

“바로 적용되는 건 아니잖아요?”

“확정은 아니야. 근데 우리 귀에 들어왔다는 건 확정이란 뜻과 같지.”

“늘 그런 식이네요.”

“늘 그런 식이지.”

우리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나는 몇 명을 떠올린다.

처음에는 이 리그에 대대손손 살고 싶어 했던 곽지운을 떠올렸다가.

그다음에는 2군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사라졌었던 과거의 이유찬을 떠올렸다가.

또 그다음에는 가진 재능을 보여주지 못했던 어떤 유상준을 떠올린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같이 뜨겁게 느껴진다.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인다.

이 기분은 뭘까.

“일단 건아.”

내 눈앞에 FWX의 책임자가 가득 찬다.

“이런 부분은 우리가 맡을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마라.”

아니.

한 팀의 감독이라도, 단장이라도, 혹은 협회장이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건 감독님이 더 잘 알 거다.

그런데도 저렇게 말하고 있는 감독님이 왠지 꽤 멋지게 느껴져서.

“네.”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손가락으로 하는 걱정을 하겠다는 것도.

양심이나 애국심에 기대겠다는 말이 아니다.

단 한 가지.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게 했던 과거의 레전드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리그를 더욱 가치 있게, 여기에 있는 선수들이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그리고 계속 여기에 있고 싶도록.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겠습니다.”

그런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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