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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301화 (302/326)

301_세상에 단 하나뿐인

트릭스터는 두 번째 세트에서 미드가 펜타킬을 보여주면서 차력쇼를 했지만.

결국 탑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그래서 올라온 팀은 미라쥬.

광주 미라쥬는 대외적으로는 FWX를 견제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감정적 라이벌은 성남 스톰이었다.

두 팀 사이의 기 싸움은 여전히 있었으니까.

그 스톰 역시 제주 F.L.E를 꺾고 올라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2라운드.

결승이 아니라면 쉬는 날은 없다.

LKL 결승 직후의 월챔 선발전, 그리고 최종적으로 9월 말부터 시작되는 월챔 참여를 위해서는 남는 일정이 없으니까.

물론 이 월챔 일정은 예선 무대에 해당하는 플레이 인을 포함한다.

하지만 촬영 일정까지 포함하면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LOS 파크는 붐볐고.

각종 이벤트는 극에 달했다.

정규 시즌에 1위를 차지한 FWX는 선택권을 가졌다.

2라운드에 올라온 팀은 두 팀.

미라쥬와 스톰이다.

“미라쥬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FWX는 급히 방향을 틀었다.

“알겠습니다.”

미라쥬와 트릭스터의 승패가 결정된 직후, 박 감독은 스탭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기존의 계획은 여기서 스톰을 꺾는 쪽이었다.

FWX는 미라쥬와 스톰 중 더 까다로운 상대로 스톰을 꼽았고, 일정상 유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예성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지금.

“내일 경기는 미라쥬 전이다.”

플랜 B로 트는 게 옳다.

스톰의 미드, 킹은 강한 미드 라이너니까.

그리고 정규 시즌 2라운드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는 게 심상치 않다.

마음 같아서는 스톰을 패자전에 보내서 체력을 빼놓고 싶었는데.

욕심은 일단 접기로 했다.

“오케이~”

“미라쥬 바로 때려주고~”

“트릭스터가 한 판 더 이겨서 체력 빼주면 좋았을걸.”

“말뭐.”

그래도 안 좋은 대진은 아니다.

“감독님..”

김예성은 조금 미안해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몸은 어때? 열은 없지?”

“네. 열은 내렸고.. 목은 좀 아파요.”

“말 많이 하지 마라. 손수건 감아 줄게.”

“네.”

“솔직히 성북동 주문 할아범은 우리 김미드가 한 손으로도 이기지 않음?”

“탑 너 뭐 좀 아네?”

“나한테 1년 배웠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너 진짜..”

“예성. 목 아껴.”

“응.”

그리고 정규 시즌에 2위를 차지했던 대구 유니버스의 상대는 자동으로 성남 스톰이 배정.

이 경기는 모레 진행된다.

“일단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말고, 경기 전 패턴대로 쉬어라. 대신 4시에는 무조건 소등이다.”

“네.”

저녁 스크림과 피드백 회의를 마지막으로 준비는 끝났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박 감독은 깨끗하게 세탁한 담요를 미드에게 건넸다.

“예성이 약 챙겨주시고.. 네, 맞습니다. 동그란 약은 절반으로 잘라야 합니다. 그리고 실내는 24도..”

그리고 긴급 투입된 스탭들과 매니저에게 몇 가지 요청 사항을 남긴 뒤.

문백산 코치와 함께 감독실로 돌아왔다.

화상 회의를 켠다.

최 코치와 김 코치는 오늘까지 격리다.

증상도 잦아들었고 컨디션은 나쁘지 않지만 다음 주의 결승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시점에서는 당장 우르르 모여서 연습하는 것보다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단숨에 본론을 꺼낸다.

“누가 이길까?”

승부 예측은 언제나 어렵다.

내일 FWX의 경기 얘기가 아니다.

선택권이 있었고, 준비가 끝났으며 선수들 실전에 달려있다.

지금 얘기하는 건 상대.

“일단 이야기 나눠보자.”

최종 디테일링을 위해 누가 올라올지를 예상해둬야 한다.

대진은 정해졌다.

2라운드에 남은 팀은 네 팀.

FWX가 3라운드에서 만날 팀의 경우의 수는 둘.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결승에서 만날 팀의 경우의 수는 여전히 셋이다.

더블 엘리미네이션에는 패자 부활이 존재하니까.

만에 하나 FWX가 4라운드, 패자전에 갈 가능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박 감독의 마우스가 움직인다.

분석팀의 손을 거친 자료가 뜬다.

최종 확률은 가려져 있다.

수학의 힘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깨끗한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

“3라운드 상대 말씀하시는 거죠. 유니버스랑 스톰 중에 누가 이기고 올라올지? 저는 스톰.”

김 코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유니버스와 스톰 중에서 스톰이 이기고 올라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근거는 경기 일정 차이와 선수들의 체력 소모였다.

“저는 반대로 유니버스.”

문 코치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고 근거는 라인전 힘과 간절함, 그리고 기세였다.

“제 차례인가요?”

인게임에 가장 깊게 관여하는 최수철 코치가 잠시 고민하다가.

“저도 스톰입니다.”

한 표를 보탰다.

그의 근거는 메타 적합도와 플레이 상성이다.

세 코치는 모두 시야가 달랐다.

“유니버스는 정규 시즌에 스톰에게 모두 졌어. 하지만 세트 승은 있었지. 다전제 변수를 포함한 분석팀 자료에 의하면.”

박 감독이 주도적으로 피드백했던 확률표가 열린다.

“스톰의 승리 확률 78.3%.”

“음.”

“아.”

“역시.”

수학은 옳다.

하지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

“의견을 합쳐 스톰이 이긴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3라운드에서 바로 스톰을 만나고. 4라운드까지 거치는 경우를 생각해봐도..”

회의는 선수들이 연습하는 시간만큼이나 길다.

그리고 결론.

“정리해보자면, 내일 대 스톰 파트 회의를 한 번 더 잡자. 오전 중에.”

끊임없이 커피를 들이키던 박 감독이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시즌 막바지에 와서 초과 근무를 따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고생 많았다.”

그리고 엔돌핀은 끝없이 돌고 있다.

당연히 시즌이 끝났어야 할 시기가 바쁘다는 게 행복이다.

“그나저나.”

이제 남은 커피를 마시던 박 감독이 볼을 긁었다.

“유니버스 애들도 참 고마운 존잰데 말이야.”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했지만 뻥순위 소리를 듣고 있는 유니버스.

“아낌없이 퍼주는 나무.”

앞에서 막아주고, 귀찮은 사람 힘 빼주고.

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이렇게 다 같이 월챔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이전 월챔의 FWX는 가시밭길을 뚫고 지나갔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떨까.

“기대되네요.”

누군가 말했고.

이제 남은 건 내일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달렸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마무리 지은 FWX에게 최종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

다른 데에 쓸 에너지를 관리에 집중한 만큼 체력에 문제는 없다.

물론 김예성의 컨디션이 나쁘긴 하지만 팀에서도 이 점을 충분히 고려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여전히 LOS 파크.”

어쨌든 플옵에 접어든 지금, 이제 하루에 경기는 하나.

“모든 것은 LKL로부터. 열광하라, 8월의 뜨거움을! 오늘은 제2라운드 첫 번째 경기.”

우리는 1라운드를 프리패스했고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게 정규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의 특권이다.

캐스터는 엄숙한 목소리로 팀을 호명한다.

“정규 시즌 1위로 선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팀은 대전 FWX.”

묘한 긴장감에 아무도 환호를 뱉지 않는다.

“그리고 강팀 트릭스터를 꺾고 올라온 광주 미라쥬.”

우리는 무대 뒤에서 서로를 흘긋거리고 있다.

미라쥬는 우리 팀원에게 예전처럼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서포터 왕지우는 나를 부담스럽게 바라봤고.

순수 메이지 신봉자이자 김예성의 방송을 좋아하는 미드 안희종은 마스크를 쓴 상대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었으며.

이적한 원딜 고수호는 다시 찾은 친구 유상준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장난스럽게 죽여버리겠다는 몸짓을 보내고 있었다.

선수 멘탈을 잡아주는 털보와 인간적인 면을 깨달은 김병우 감독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가 개선된 미라쥬다.

짐승 같았던 미라쥬가 어떻게 이렇게 순한 팀이 되었나.

이건 내가 있었을 때보다 훨씬 극적인 변화다.

참 신기해.

어떻게 보면 트릭스터와 완전히 엇갈린 운명의 팀이다.

“그 멋진 무대를 지금부터.”

항상 들리던 멘트가 들린다.

“만나아아아아아! 보시겠습니다!”

미라쥬가 먼저 입장한다.

몇몇 멘트가 나오고.

“FWX의 서머 최초 다전제, 오늘 경기 양 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에 대해서..”

“최근 적용된 버전에서 암살자들의 숨통이 살짝 트였지만 여전히 바텀 중심의 전략이 좀 더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보니 오늘 각 팀이 선택을..”

그리고 우리가 따라 들어간다.

진영 선택에 따른 결과다.

다 함께 무대 인사를 나누고 함성 샤워를 거친 뒤.

오늘 출전하는 선수들이 자리로 향한다.

“잠깐만요.”

그러다 장비 교체.

“지금 응원해주시는 분 중에 권건 선수에게 청혼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이거 한국 사회에서는 옳지 못한 일이거든요?”

“너는 아우슈비츠 내 마음을 징역..”

“작가님 요즘 권건 선수 등 뒤에 후광이 누락된 것 같습니다 수정 요청 드립니다..”

“와.. 멘트 너무 공격적이시다. 2013 로맨틱한 지구인 탑 5에 선정된 저조차도 따라갈 수 없는 문구로군요.”

“근데 왜 메모를 하시죠?”

“내년엔 진짜 로맨틱해지고 싶어서요.”

해설진이 잠깐 우스갯소리를 하며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죄송합니다.”

곽지운은 장비를 교체했다.

“얘들아, 쏘리쏘리~ 최은호가 내 패드에 물 다 묻혔어.”

“아, 너가 물 다 먹었다고 찡얼거리니까 내가.. 그냥 좀 튄 거잖아!”

물은 장패드를 약간 적셨지만 혹시 물방울이 튀었을 수도 있어 키보드와 마우스까지 교체했다.

정규 시즌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흐르는 공기가 좀 다르다.

“이거 어쩔 건데, 최은호? 내 패드 어쩔 건데?”

“까고 있네.”

“실수했으면 보상을 해주는 게 도리 아니냐?”

다행히 팀원들의 긴장도는.

“얼만데! 얼마면 돼!”

농담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컨디션 나쁜 동료를 대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두 사람이 더 유쾌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2020년 FWX 특별 에디션 프리미엄 포함 중나 기준 48만원.”

“..할부 되냐?”

“꺼져.”

어쨌든.

“재개하겠습니다.”

스탭 콜이 들어오면서 우리는 순식간에 정자세로 돌아온다.

“얘들아.”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헥사의 딩거 밴 먼저 하고 시작한다. 상대 서폿이 장인이니까.”

“네.”

그리고 꼼꼼하게 준비해왔던 카드를 내밀면서 다시 업무 모드.

“예성아, 르블란 생각은?”

“음..”

김예성의 답이 평소보다 훨씬 느리다.

“일단 두고 보는 걸로 하자.”

대신 감독님의 선택은 빨랐다.

“감독님, 칼리 밴 자리 남아요?”

“일단.. 오, 저쪽에서 밴.”

시즌과 버전 변경을 거쳐 감코진이 내게 가져온 정보는 꽤 정확했다.

탑은 사이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픽.

정글은 여전히 자생이 가능하면서 유통기한이 긴 픽.

미드는 다재다능한 챔피언이 대세지만 여전히 깜짝 카드처럼 트릭스터 미드인 ‘채지한식’ 캐리 챔피언들이 나올 수 있음.

바텀은 점점 중요도가 올라서, 캐리력있는 원딜과 팔이 길고 견제가 좋아 라인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서포터가 중심.

물론 팀의 챔피언 풀이 다르니 분석도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의 FWX에게는 이게 맞다.

“미라쥬가 탑 카드 까면 미드 고르자. 가능하면 미룰게.”

“감사합니다.”

반대로 ‘우리를 상대할’ 미라쥬는.

탑은 버틸 수 있는 픽을, 미드에서는 장기인 유틸 메이지를.

그리고 서포터는 견제 픽을 노릴 것이다.

물론 아주 기본적으로는 말이야.

“밴 끝났다.”

침이 넘어간다.

나는 이렇게 카드 깔 때가 제일 짜릿하더라.

“미라쥬가 먼저 픽 시작합니다!”

자, 뭘 준비해왔을까.

그리고 우리는 뭘 보여줄 수 있을까.

“예성. 괜찮지?”

다전제, 플옵, 월챔?

컨디션이 나쁜 미드 라이너?

쓸모없는 걱정은 모두 잊어버린다.

때론 맡겨 놓는 것이 답일 때가 있다.

“어..”

우리 미드니까.

맞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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